2023-03-10(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뿌리제거(15) 탐욕 욕심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요일2:15~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V0PM889aoE [또는 https://tv.naver.com/v/34139702]

 

1. 들어가며

  '탐욕 욕심의 영'이란 어떤 쓴 뿌리를 가리키는가? '탐욕 욕심'의 쓴 뿌리는 자기 자신 안에 이 세상에 대한 것을 갖고 싶어하고 누리려고 하는 과도한 욕망을 표출케 하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적인 것일 때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인 욕망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욕망을 갖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영들이 특히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 침투해 들어오고 또한 집을 짓게 되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탐욕 욕심의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되는 것인가? 그리고 탐욕 욕심의 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탐욕 욕심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며 그 영은 어떤 영을 말하는가?

  '탐욕' 혹은 '욕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과도한 욕구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죄가 되고, 영을 불러들이는 것이 될 때에 문제가 된다. 사실 '탐욕'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에피뒤미아'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사실 중립적이다. 그래서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욕망, 욕구, 정욕, 탐욕'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단어가 긍정적으로 쓰일 때에는 '갈망, 소욕, 바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렇다. '탐욕'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죄와 연결되고 귀신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이 어떤 욕망을 표출할 때에 죄를 짓게 되며, 악한 영들을 불러들이게 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 욕망이 세상적인 것일 때에 그렇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그렇다. 우리가 갖는 욕망 가운데,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추구할 때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한다면, 날마다 탐욕 욕심의 악한 영이 내 몸에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이러한 탐욕의 욕망을 좀더 구체적으로 구분해 보면, 첫째, 더 가지려는 욕심이 있을 것이다(딤전6:10). 이는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돈과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탐내는 자는 미혹을 받아 죄를 짓게 된다고 했다. 둘째, 더 높아지려는 욕망이 있다. 더 높은 지위와 더 큰 직분을 얻기 위해서 과도한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다(사14:13). 사탄 마귀가 처음에 그렇게 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보좌를 더 높여, 섬김을 받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사탄 마귀의 높아지려는 욕구를 이렇게 알려 주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사14:13)" 그런데 사탄 마귀는 결국 인류에게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 인하여 인류의 몸안에 여러 가지 뱀으로 침투해 들어와 있다. 셋째, 더 즐겨보려는 욕구가 있다(전2:10, 갈5:19~21). 이러한 욕구에는 육체의 쾌락, 노는 것이 포함된다. 육체가 좋아하는 것으로서, 음란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취미생활이나 유흥에 대한 욕구가 바로 이런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욕심을 갖는 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 욕심을 품는 것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 품는 거룩한 욕심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코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 침투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3. 사람이 이 세상의 것을 위하여 탐욕 욕심의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탐욕과 욕심을 품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이러한 욕심을 품게 되면 온갖 종류의 다른 악한 영들을 더 많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더 가지려는 욕망이 더 진행되면 거짓과 사기의 영, 폭력과 살인의 영이 들어오기 때문이며, 또한 더 높아지려는 욕망이 더 많아지면 저주의 영과 폭력 살인의 영이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더 즐겨보려는 욕망을 품게 되면 쾌락 유흥의 영과 음란의 영 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둘째, 탐욕과 욕심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게 하여 결국에는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딤전6:9). 탐욕 욕심 때문에 믿음에서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천국의 씨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 뿌려진다고 해도 결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막4:19). 탐욕 욕심 때문에 주일을 빼먹기도 하고, 돈 욕심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온전하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게 되면 재물에 욕심이 들어와 거룩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전6:9~10). 사도 바울은 탐욕을 부리는 자나 도적이나 술 취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전6:9~10).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해서는 아니 되며 이 세상의 것에 빠져 지내면 아니 되는 것이다. 

 

4. 탐욕 욕심의 영은 우리 몸의 어디에 침투해 들어오는가?

  그렇다면 탐욕과 욕심의 영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어디에 들어오는가? 그것은 우리의 배꼽 주변의 아랫배에 들어온다. 이는 탐욕 욕심의 영이 시기 질투의 영과 자매지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욕심을 부릴 때에 악한 영들이 배로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그 사람을 시기 질투하여, 욕심을 내면 악한 세력들이 우리 몸에 즉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다. 기도 안하고 욕심부려도 세력이 들어온다. 그러면 배가 아프다. 특히 배꼽 주변이 아프다. 시기 질투의 영이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랫배에 영들이 많아지게 되면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탐욕 욕심의 영과 시기 질투의 영이 쌍둥이처럼 한 장소에 서로 섞여서 집을 짓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의 통로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머리 정수리에 숨골이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빛이 들어온다. 그러면 영안이 열리고 은사가 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배꼽과 성기 중간에 생수가 들어온다.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데, 그 생수가 위로 올라가서 가슴으로 가면 가슴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서 자기 마음에 천국을 이룬다. 또한 그 생수가 아래로 내려가면 생식기가 좋아져서 건강이 찾아온다. 고로 탐욕 욕심의 영과 시기 질투의 영이 있으면 생수가 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아 결국 은혜의 통로가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탐욕 욕심의 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탐욕 욕심의 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사항에 주의하여 실천하면 된다. 앞의 4가지는 일종의 예방책이며, 뒤의 1가지는 해결책이다.

  첫째, 탐심을 물리쳐야 한다(눅12:15~21).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탐욕과 욕심의 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10번째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의 아내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신5:21),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다(딤전3:2~11, 딛1:8).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눅12:21). 

  둘째,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딤전6:6~7).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딤전6:7).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절제해야 한다(딤후1:7, 딤후3:3). 과도한 정욕의 분출과 그 마음을 절제해야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고전9:25~27). 세상 사람은 썪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려가지만 우리는 썪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소욕이 맺을 수 있는 열매 중의 하나가 '절제'이기 때문이다(갈5:18~24).

  넷째, 하늘의 것에 욕심을 내야 한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것이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과 영원한 것에 욕심을 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 욕심, 말씀 욕심, 천국 욕심을 내야 한다. 특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들어갈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 자리에 욕심을 내야 한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탐욕 욕심의 죄를 낱낱이 회개한 뒤에 십자가 세우기를 하고 축사를 받아야 한다. 탐욕 욕심의 영은 보통 무당의 영에 속한다. 쉽게 성공하고 쉽게 거저 얻으려고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볼 때마다 무당 속에 있는 탐욕 욕심의 영이 내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지은 탐욕 욕심의 죄를 회개하고,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본 죄를 철저히 그리고 낱낱이 회개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자가 축사 방법인 탐욕 욕심의 영들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은사자들에게 축사 사역을 받아야 한다. 

 

6. 나오며

  욕심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의 것을 향하고 과도한 것을 추구할 때에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에 탐욕 욕심의 영들이 우리 몸에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들은 자기들만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수많은 다른 영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욕심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족하면서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욕심을 거룩한 방향으로 바꾸어 열심을 내는 것이다. 기도에 욕심을 내고, 말씀에 욕심을 내고, 천국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들어와 있던 악한 영들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철저히 그리고 낱낱이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의 탐욕 욕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특히 쉽게 성공하고 쉽게 취하려고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본 죄를 깊이 자복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고 축사자에게 축사 사역을 받으면 우리는 점차적으로 탐욕 욕심의 영에게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2023년 03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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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탐욕 욕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이 세상에 속한 탐욕에 사로잡혀 미친 듯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이 세상에 속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죽을 때에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데도, 저는 더 가지려는 욕심과 더 높아지려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왜 그리 물질적인 소유욕은 그렇게도 강한지, 그것을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를 갖고 싶은 욕심에 늘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많이 가져보려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으며, 때로는 주일도 빼먹고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피곤했습니다. 지쳤습니다. 그러니 피곤하여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에는 늘 졸았습니다. 영적인 일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새벽기도시간은 늘 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십일조도 아까워 온전하게 드리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를 갖고 싶은 세상적인 욕망이 올라올 때면 그것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 그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셨지만(딤전6:8)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나친 탐욕 때문에 제 삶에는 만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지만(딤전6:8), 저는 남이 가진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을 결코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은 분수에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욕과 권세욕에 빠져 살아온 탐욕의 죄를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또한 저는 이 세상적인 것을 즐겨보려는 욕심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남들 해보는 것은 다 해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먹을 것도 다 먹어봐야 했습니다. 남들이 입는 것이라면 나도 입어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남들이 놀러 다니는 곳에는 나도 놀러 가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쾌락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취미생활이라고 말로 우겼지만, 실은 이 세상의 것들을 보고 즐기는 욕망을 좋아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유흥도 즐겼고, 음란도 즐겼으며,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며 살았습니다. 끝없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욕망에 사로잡혀 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것, 영원한 것, 영혼을 위한 것에는 욕심을 내지 못했습니다. 땅에 속한 것에는 그렇게 열심을 내면서 거룩한 것을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쾌락을 위해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며, 소유욕을 위해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20:17)고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저의 이 부질없이 쾌락에 빠져 지내온 죄를 회개하오니, 이 시간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탐욕에 사로잡혀 불러들인, 탐욕 욕심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겨 탐욕 욕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은 무당인데, 무당을 찾아가 더러운 탐욕과 욕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이 내 배꼽 주변에 자리잡고 그곳에 집을 짓게 한 죄를 회개합니다. 사실 저는 쉽게 성공하고 싶어서 무당을 찾아갔으며 무당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무당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고 어떻게 하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지를 돈으로 물었습니다. 주님, 잘못된 욕심을 갖고 귀신들의 말을 듣고 무당이 시킨대로 행해온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고자 귀신의 힘을 빌어서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는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망이 올라올 때에는 안절부절했습니다. 그럴 때면 애를 태우며 전전긍긍하였습니다. 그럴 때에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했어야 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응답받는 시간이 힘들고 귀찮아서 무당을 찾았

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 욕심을 쉽게 이뤄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당에게 빌었습니다. 무당을 찾아가서 속시원히 물어보고 무당의 힘을 빌려서 성공하고 복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악한 영을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무당의 영은 귀신들의 영인데, 귀신들이 가르쳐주는 거짓 점괘에 미혹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럴싸하고 얼마나 그렇게 믿겨지든지요, 주님, 거짓된 것을 믿고 따라서 그것으로 성공하려 한 죄를 회개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탐심은 다 우상숭배라고 하셨는데(3:5), 탐심이 가득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무당을 섬겨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합니다. 저는 이 세상적인 욕심을 미끼로 무당의 영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불나방이 불 속에 들어가듯 그만 무당에게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무당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게 하시고, 더 이상 무당이 섬기는 귀신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이제는 더디 가고 혹 늦게 가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만 구하는 주님의 참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더럽고 추한 이 세상에 속한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맘몬 신을 사랑하지 말게 하시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이 세상의 속한 탐욕보다는 성령의 열매로서 절제하는 마음을 제 속에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속한 허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한 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의 욕심이 변하여 오로지 기도욕심, 말씀욕심, 천국욕심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하늘의 욕심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무당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탐욕 욕심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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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0 탐욕 욕심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df

2023-03-10 탐욕 욕심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ptx

2023-03-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뿌리제거(14) 시기 질투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삼상18:6~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dO22d0p8CQQ [또는 https://tv.naver.com/v/34139416]

 

1. 들어가며

  시기 질투는 어떤 종류의 쓴 뿌리인가? 사실 쓴 뿌리 곧 사람 속에 들어와 있는 오래된 악한 영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최종적인 결과물인 영이 있고, 또 하나는 다른 영들을 불러들이는 영이 있다. 그중에서 시기 질투의 영은 두 번째에 속한 영으로서 다른 영들을 불러들이는 영에 속한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의 영을 잡을 수 있다면 우리 몸에 역사하고 있는 많은 다른 영들을 잡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시기 질투의 영이란 어떤 악한 영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우리가 시기 질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또한 시기 질투의 영은 우리 몸의 어디에 붙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기 질투의 영은 어떻게 우리 몸에서 제거할 수 있는가? 오늘은 이것을 중심으로 말씀과 실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시기 질투의 영이란 어떤 종류의 영인가?

  시기 질투의 영이란 남이 나보다 더 사랑받고 더 복받고 더 귀하게 쓰임받는 것을 보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됨으로 우리 몸에 받아들이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 질투를 잘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그냥 놔두면 우리의 감정이 시기 질투심에 불타게 되고 시기 질투심에 불타게 되면 시기 질투의 영을 우리 몸에 불러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과연 시기 질투의 영을 잘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인가? 그것은 남이 잘 되고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배가 아픈 분들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은 자기 안에 시기 질투의 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기 질투의 영이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면 1차적으로 집을 짓게 되는 곳이 바로 우리 몸의 '배꼽 주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의 영이 많은 사람은 배가 늘 아프다. 우리나라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사촌이 땅을 샀다는데 왜 나의 배가 아픈 것일까? 그것은 나의 시기 질투심 때문에 시기 질투의 영이 내 속에 들어와 배꼽주변에 많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3. 시기와 질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시기와 질투는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약간 다르다. 왜냐하면 남이 잘 되는 것, 남이 잘 사는 것을 볼 때에 뭔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둘은 동일하지만, 시기심은 반드시 죄가 되어도 질투심은 죄가 될 수도 있고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 66권을 다 찾아 보면,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롬13:13). 

롬13:12~1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그렇다. 시기심은 분명 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자기의 동생 요셉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창37:11,18~19). 그러므로 시기심은 사람이 갖는 악한 마음으로서 미워하는 마음과 결탁이 되었을 때에 결국 사람을 살해하기까지 할 수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가인이 결국 시기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인 사건이 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은 동생의 제사를 하나님께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게 되자, 동생에 대한 시기심이 발동하여 동생을 미워하게 되었고 결국 동생을 들판에서 죽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기심은 질투심에 비해 보통 자신과 남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질투심은 어떠한가? 질투심은 시기심과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질투를 한다고 해서 그것 전체를 다 죄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질투심의 감정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면 자신을 더욱 분발하게 할 수 있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바꿔 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질투심이란 더 사모하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온다(출20:5, 34:14, 신5:9, 6:15, 나1:2). 만약 질투심의 모든 것이 죄라고 한다면, 하나님도 그만 죄를 범한 존재가 되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질투심을 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질투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에는 더 사모하는 마음이 질투심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면 주님을 더 사모하게 되고 더 열심을 내게 되어서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질투심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되면 그것이 미워하는 감정으로 바뀌어 결국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질투심은 상대방과 나 그리고 거기에 제 삼자가 끼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삼상18장에 나오는 사울왕의 경우다. 백성들이 다윗을 더 좋아하고 높이니까 사울왕이 질투심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그만 시기심으로 바뀌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고라 일당의 경우 모세와 아론을 질투하되 질투심이 나쁜 쪽으로 흘러감에 따라, 결국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죄를 짓고 음부에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에도 '질투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질투심 자체를 죄의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신약성경에 '질투'라는 단어가 죄의 목록처럼 나와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 원문을 보면, 원문에는 '흘기는 눈'으로 나와 있는 것을 '질투'라고 잘못 번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막7:22). 

 

4. 시기와 잘못된 질투를 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시기하지 말고 잘못된 질투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시기와 질투심을 갖게 되면 다른 죄들을 더 많이 양산해 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기와 질투심은 결과의 죄라기 보다는 시작의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시기 질투심으로 가득 차게 되면, 결국 마음이 상하여 혈기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지며, 미워하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면 가인의 경우나 요셉의 형들과 사울왕의 경우처럼 폭력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자기가 형통하지 못한 것을 두고 조상 탓을 하거나 하나님을 탓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때에는 어떠한가? 원망 불평의 영이 시기 질투의 영과 함께 우리 몸속에 파고든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보통 게으름의 영과도 합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열등감의 영도 뒤따라온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심은 결국 시기와 질투의 죄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죄들을 짓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시기 질투심은 자신으로 하여금 축복받는 자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기 질투심으로 인하여 시기와 질투의 영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러한 사람은 결코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축복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게을러서 지금 형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도,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는 보지 못한 채 남이 잘 되는 것만 배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시기와 질투심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일에도 도전하지 않으며, 기도하지도 않고 또한 원망 불평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해 보지도 못한 채 세월만 흘려 보낼 수가 있다. 결국 그러한 사람일수록 축복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결국 시기 질투의 영을 비롯하여 갖가지 죄짓게 하는 영들을 불러들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혈기 분노의 영, 미움의 영, 폭력의 영, 살인의 영, 원망 불평의 영, 게으름의 영, 열등감의 영, 우울의 영, 열정 사라지게 하는 영 등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처음 시작부터 잘라내야 한다. 

 

5. 시기 질투의 영은 우리 몸 어디에 달라붙는가?

  시기 질투의 영은 주로 우리 몸의 세 군데에 달라붙는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달라붙는 곳은 '배꼽 주변'이다. 그래서 시기 질투심이 많은 자는 늘 배가 아픈 것이다. 시기 질투의 영이 배꼽 주변에 집을 짓기 때문에 그 영역이 배속에서 커짐에 따라 배가 아픈 것이다. 그리고 시기 질투심이 더 많은 자는 우리 몸에 귀신의 집도 더 넓혀가는데 그러면 우리 몸에 분점과 지점을 내게 된다. 그곳이 바로 '눈'과 '머리'다. 눈에 귀신들이 집을 짓고 그래도 더 많은 영들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머리에도 집을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머리에 많은 열이 난다. 고로 시기 질투심이 많은 자는 찬물을 적신 수건을 머리에 얹어야 사는 사람도 있다. 고로 우리 몸에서 시기 질투의 영을 제거하려면, 먼저는 본점인 배꼽 주변에서 영을 제거하고 그러고 나서 분점과 지점인 눈과 머리에서 제거하기를 바란다. 

 

6. 시기 질투의 영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기 질투의 영을 제거하려면 사전에 그 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예방책도 있고 해결책도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을 받고 잘 되고 있는 사람을 볼 때에는 시기 질투하지 말고 그가 복을 받을 이유가 있어서 복을 받고 있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기 질투를 예방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복을 받고 사는 것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 누군가가 그로 하여금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과거에 무엇인가를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조상들이 과거에 누군가를 구제하고 자기 것을 나눠주고 선을 베풀었다면 그 후손들이 반드시 복을 받고 살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조상들이 후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심어 놓았다면, 그 후손들 역시 복을 받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뿌려 놓은 씨앗이 열매를 딸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은 내가 복을 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심을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물질도 심고 기도도 심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나에게도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 곧 은사와 달란트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더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원망 불평에서 벗어나게 되고 게으름에서도 벗어나 성공하고 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셋째, 이제는 해결책으로서 그동안 시기했던 것과 질투했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 없이는 절대 이러한 영들이 우리 몸에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의 시발점은 바로 회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괜히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여 남을 깎아내리려 했던 것을 회개하고, 미워했던 것도 회개하며, 더 나아가서는 남을 험담하고 악담한 것까지 회개를 해야 한다. 특히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서 쉽게 복받으려고 물어본 죄를 회개하고, 남을 저주하기 위해 무당에게 저주굿을 부탁했던 조상들의 죄까지도 회개해야 한다. 

  넷째, 또한 이제부터는 남을 축복하는 말을 일부러 해 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대로 시행한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축복하는 사람이 될지언정 저주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섯째, 회개를 했으면 시기 질투의 영과 십자가를 세우고 축사 사역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회개를 했다면 내 몸에서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명령해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자가 축사 방법인 십자가 세우기를 행하는 것이다. 악한 영들에게 그들이 패배했던 장소였던 십자가를 세우므로 그들이 우리 몸에서 떠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축사 사역자의 도움을 받아 축사 사역을 받게 되면 더욱더 많이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서 떠나가게 될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시기 질투는 가장 먼저 사탄 마귀가 행한 죄다. 저 에덴동산에서 말이다.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지구를 지으시더니 그곳에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시고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릴 왕으로서 아담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것들 전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아담에게 주어지자, 이것을 지켜본 사탄이 그만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은 하와와 아담을 꾀어서 그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수많은 죄들이 거기에서부터 흘러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심은 수많은 죄를 양산해 내는 부화기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견고한 진을 파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기 질투심을 통하여 수많은 죄들이 생겨나게 되고, 수많은 영들이 달라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제는 시기 질투했던 죄를 낱낱이 회개하자. 아니 날마다 이런 죄들을 회개하자. 그래서 시기 질투의 영을 배꼽 주변과 눈과 머리에 남아 있지 못하게 하자. 그리고 남이 잘 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나도 열심히 심고 뿌려서 남들처럼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보자. 그리고 그들이 잘 되었던 것을 축하해 주는 폭넓은 사람이 되어 보자. 그리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되, 나 혼자 악한 영을 몰아내기가 벅찰 때에는 축사 사역자의 도움을 받아 시기 질투의 영을 온전히 내 몸에서 몰아내는 복된 성도가 되어 보자. 

 

2023년 03월 03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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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시기 질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옹졸하여 남이 잘 되고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한 죄

“하나님, 저는 옹졸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투기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잘 되면 괜히 화가 났고, 싫었으며 울분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 안 되고 실패하기를 속으로 은근히 바랐습니다. 남이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괜히 시기심이 올라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복을 받고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고 더 좋은 것을 얻게 되면,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축복해 주어야 마땅한데, 사촌이 논을 산 것같이 무척 배가 아팠습니다. 아니 내 입에서는 축복하는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고 사는 것은 그만한 공로가 있는 것이고, 또한 조상들이 심어 놓은 것이 있어서인데, 그가 복을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나보다 더 잘한 것이 없는데, 왜 그가 복을 받고 사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남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진정 기뻐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혈기 부리고 투덜거렸습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으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상대방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마구 씩씩거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행적을 비꼬며 험담까지 했습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는 그를 비방하는 말이 서슴없이 나왔고, 그를 만나면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악한 죄를 회개합니다. 내가 사탄 마귀처럼 시기하고 질투했음을 인정합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면 뼈가 썩는다고까지 하셨는데(잠14:30), 그만 내 뼈가 썩고 내 몸이 고장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님께서는 나도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나에게 몇몇의 은사와 달란트를 주셨는데, 저는 저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열심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얻는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얻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저는 저의 게으름과 나태를 회개하기는커녕,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씩씩거리며 기분 나빠했습니다. 특히 저보다 늦게 시작하거나, 저보다 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저보다 더 잘 살고 더 많이 가진 것을 볼 때에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보면서 죽이도록 미워했습니다. 제 마음이 좁고 옹졸하여 그랬다는 것을 이 시간 인정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저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한 나는 내 후손이 복을 받도록 심지도 않으면서, 나는 못난 조상들 만났다고 조상 탓만 했습니다. 아니 내게는 왜 좋은 조상을 주지 않았느냐면서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남에 대해서는 늘 혹평하며 비방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를 험담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때로는 모함까지 하여 쓰러뜨리려고 했습니다.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기를 원했으며, 칭찬듣고 영광받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영광받을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상대방과 결코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칭찬들을 만한 일이 있으면 나만 칭찬을 받으려고 상대방을 늘 배제시켰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이 한 일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을 일부러 평가 절하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상을 받았을 때에 너무나 배가 아팠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내 몸을 상하게 하고, 결국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주여, 이 시간 남이 나보다 더 사랑받고 귀하게 쓰임받고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옹졸하여 남을 시기하고 미워함으로 불러들인, 시기 질투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겨 시기 질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이 세상에서 시기 질투심이 가장 강한 사람이 바로 무당과 점쟁이들인데, 그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을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그들은 시기 질투심이 많아서 서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지기 싫어하고 남이 자기보다 더 잘하면 정말 배 아파 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무당과 점쟁이를 섬김으로 그들 속에 있는 시기 질투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실히 살고 베풀고 살면, 나도 잘 살 수 있는 것인데,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 쉽게 성공하려고 물어본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플 때에는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 상대방을 저주하는 주술을 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대방이 망하도록 저주굿을 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 저는 시기와 질투심의 영이 발동한 것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서라도 상대방이 망하도록 굿을 했습니다. 회개합니다. 나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나무라지 않은 채 오로지 남을 깎아내리고 굿한 죄를 지었음을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게으름은 재껴 놓고 오히려 상대방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살아온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또한 무당과 점쟁이를 가까이 함으로 시기와 질투의 영을 받아들여 상대방이 망하기를 바랐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각기 다른 은사와 달란트를 주셨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어떻게 주셨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시기 질투의 영이 가득한 무당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겠습니다. 잘 되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축복하고, 또한 그를 통해서 오히려 배우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시옵소서. 저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무당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시기 질투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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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쓴뿌리회개(14) 시기 질투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df

2023-03-03 쓴뿌리회개(14) 시기 질투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ptx

2023-02-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12)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전도서2: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bFFbc2BYs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64]

 

1. 들어가며

  사람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를 기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영화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중에 혹시 악한 영들에 의해 나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이 악한 영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임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쾌락과 유흥의 영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쾌락과 유흥의 영 쓴 뿌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 살펴보고,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는 것이 왜 좋지 않은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쾌락과 유흥의 영이 들어오는 통로는 무엇이며, 우리 인생들에게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은 장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들은 우리 몸 어디에 달라붙는 것이며, 그 영들은 과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2. 쾌락과 유흥의 영이란 어떤 영을 가리키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이란 쾌락과 유흥을 즐기도록 꾀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이런 영들이 자기 몸에 많이 달라붙어 있는 자는 쾌락과 유흥에 쉽게 넘어가 버린다.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이 어떤 죄인지부터 살펴보자. 쾌락과 유흥도 일종의 죄가 되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쾌락을 즐기고 유흥을 즐길 때에 악한 영이 내 몸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럼, 쾌락과 유흥의 영은 어떤 때에 내 몸에 달라붙게 되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은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쓰지만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곧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데에는 시간과 물질을 쓰지 않고, 쓰면서도 아깝게 생각하며 사용할 때에 달라붙는다. 대부분 내 눈과 코, 귀와 입에 달라붙고, 손과 발에도 달라붙는다. 쾌락과 유흥 그리고 사치의 영은 얼굴에 달라붙고, 도박의 영은 손에, 그리고 떠돌이의 영은 발에 달라붙는다. 

  예를 들어 보자. 내 눈이 보는 것을 기뻐하고 보는 대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에 악한 영은 내 몸에 달라붙는다. 내 눈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관광과 여행, 전시회 관람, 영화관람, TV 시청하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이 보는 대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에는 명품 구매, 백화점 쇼핑 등 사치에 과감하게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한두 번 물질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거나 혹은 영이 달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경우는 그것을 절제할 수 없을 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 냄새 맡는 것과 입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맛집 여행하기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전국을 순례하면서 맛집을 서핑하며 찾아다닌다. 돈을 버는 목적도 이러한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으로 짓는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세상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도 있어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즐기는 것도 있다. 그리고 입에 쾌락과 유흥의 영이 붙어 있다면, 그 사람은 주점에 가서 술을 먹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차 알콜 중독, 흡연 중독, 마약 중독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쾌락과 유흥의 영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는 것은 왜 좋지 아니한가?

  사실 육체는 먹어야 산다. 그러므로 먹는 것 자체를 가지고 악한 영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는 경우에 문제가 된다. 그것을 위해서 인생 자체를 살고, 그것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고 생각하는 자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을 구경하는 것 곧 여행이나 관광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나 시간을 내는 목적이 온통 여행과 관광에만 쏠려 있다면 그것은 그가 쾌락과 유흥의 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다. 낚시, 바둑, 만화, 게임, 오락, 영화 관람,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 등의 취미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요 기쁨이 될 때 그것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 악한 영들이 내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쾌락과 유흥을 따라가서는 아니 되는가? 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절제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잘못하면 그것이 끊기 어려운 중독 증상으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어떤 것에 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쾌락과 유흥의 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육체를 위해 쾌락과 유흥을 즐기게 되면 대부분 가정을 잘 돌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정을 돌보는 것은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것은 낙으로 생각한다. 셋째, 쾌락과 유흥을 즐기기 위해 물질을 쓰게 되면 가산이 탕진되어 가난하게 살게 되기 때문이다. 명품 사재기를 좋아하는데 어찌 부자로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수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없는데 계속 쓰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가난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넷째, 쾌락과 유흥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삶 곧 영적인 성장과 천국을 준비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소홀히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천국에도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들어간다고 해도 천국 변두리에서 살게 될 것이다. 

 

4. 쾌락과 유흥의 영이 들어오는 통로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몸에 달라붙게 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본인이 쾌락과 유흥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는 데에 지나치게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내 얼굴과 내 손과 발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둘째, 자신의 조상 중에 무당이 있거나 무당과 가까이 교제하면서 산 사람이 있을 때에도 역시 쾌락과 유흥이 달라붙고, 사치의 영이 달라붙는다. 왜냐하면 무당에게 있는 무당의 영은 사람의 영혼의 미래를 위해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육체의 쾌락과 유흥만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당 자체가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영을 받은 자들은 먹고 노는 일에 쉽게 노출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조상들 중에 무당이었던 자가 있는 집안에는 춤추고 노래 잘하는 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과 자신의 조상 중에 부처와 불교를 가까이 한 사람이 있을 때에도 쾌락과 유흥의 영이 달라붙는데, 이런 이들은 보통 여행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의 발에 떠돌이의 영이 달라붙는다. 그러므로 한 달에 몇 번이라도 밖에 나가 바람을 쐬지 않으면 근질근질해서 못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역시 쾌락과 유흥의 변형으로서 떠돌이의 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떠돌이의 영을 가진 사람은 친구들을 술자리에 불러서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들은 그때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말하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쾌락과 유흥의 영을 좇아가지 않도록 우리 인류를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쾌락과 유흥의 영을 좇아가지 않도록 우리 인류를 위해 마련해 주신 놀라운 장치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다.

  첫째, 그것들 중의 하나는 시간을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인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 준수다(사58:13~14).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몸과 영혼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사람은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며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4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안식일에 쉬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참된 안식을 안겨 주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도들은 참된 안식을 주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주일성수는 육체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 영혼을 위해 살 수 있게 배정해 주신 특별한 장치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둘째, 두 번째로는 물질을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인데, 그것은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다(말3:8~12). 십일조는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땀 흘려 일해서 벌어들인 수입이라도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수고해서 얻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얻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다. 우리는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열의 아홉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모든 물질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도록 주님께 먼저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십일조와 헌물을 주님께 먼저 드리지 못하고 세상 일과 육체를 위해서만 물질을 사용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가 물질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육체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라. 그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6. 쾌락과 유흥의 영을 이기고 이것들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 몸의 어느 부위에 달라붙는가? 그것은 좀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우리의 몸 중에서도 우리의 얼굴과 그리고 손발에 달라붙는다. 보통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의 눈과 코, 입과 귀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사치의 영은 우리의 눈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잘못된 취미 생활로 인해 도박과 게임에 빠진 경우에는 우리의 손에 악한 영들이 달라붙고, 쾌락과 유흥의 아류인 떠돌이의 영은 우리의 발에 달라붙는다. 

  우리가 이러한 쾌락과 유흥을 이겨내고 이것들을 우리의 몸에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영들이 우리 몸에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영들을 떼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것들을 알고 실천해 보자. 

  첫째, 우리 인생이 자신의 육체를 위해 먹고 놀고 즐기며 살기에만 급급하다면, 우리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아주 짧기 때문이다(시90:4~6, 약4:13~14).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다 가져 보고 다 먹어 보고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왕은 말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수고에 따른 분복이기는 하지만, 다 바람을 잡는 것 같았으며 다 헛된 것이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진 것일지라도 그것들 중에 하나도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육체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 늙고 병들어서 썩어짐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전2:1~11).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인 것이다.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쉬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와 내 조상들이 그동안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도 회개해야 되지만, 더더욱 회개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최초 원인이 되는 우상숭배의 죄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무당 점쟁이를 따라 산 죄와 부처와 불교를 따라 산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셋째, 날마다 십자가 세우기를 행하여 내 몸에 붙어 있는 쾌락과 유흥의 영을 떼어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 세우기란 십자가에서 악한 영들의 모든 무장이 해제되었다는 결과를 내 몸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했다면 즉시 악한 영들에게 십자가 세우기를 행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내 몸에 붙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방면에 중독이 되어 있는 분은 금식하며 기도하기 바라며, 축사 사역자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7. 나오며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흙으로 빚어진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유일하게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 두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창조된 세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의 세계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구는 동물과 다른 측면이 있다. 사실 동물은 자신의 육체의 욕구만을 채우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산다. 하지만 인간은 영혼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만족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영혼의 허기짐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속에 모시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보통 2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평생 그 만족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종교 생활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을 그냥 즐기며 사는 것이다. 어차피 죽는 것인데 죽기 전에 육체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즐겨 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늦기 전에 우리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내가 벌어들인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사용하며 산다. 그것을 자신이 장차 들어갈 천국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 지혜롭고 올바른 삶이었는지를 죽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2023년 02월 1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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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쾌락 유흥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육체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죄를 회개합니다. 저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보다는 세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쓰지 않고, 먹고 마시고 치장하고 즐기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배 드리는 시간은 왜 그리 아깝든지 그리고 예배 시간은 왜 그리 길든지 예배 시간이 되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또한 매주 기도하는 시간은 왜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금요기도회 시간이 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진정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내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세상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며 살아온 죄를 고백하오니, 이 시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아했습니다. 돈이 생기면 없던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맛집을 서핑하면서 찾아다녔으며, 그곳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또한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나라와 내 영혼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세상 것을 보고 즐기며, 관광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말로는 취미 생활을 한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삶에 지장을 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 저는 스포츠를 너무나도 좋아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축구장과 야구장과 농구장과 경마장을 찾아가서 소리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바둑을 두고 낚시하는 것을 즐겼고, 만화보고 게임을 할 때에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또한 TV 드라마 보기, 음악 감상하기, 영화 감상하기 등은 절대 빼놓지 않고 꼭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예인의 사진과 앨범집을 모으면서 그들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내 몸을 명품으로 치장하는 데에 썼습니다. 남들이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노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서 도박하였고, 화투를 쳤으며 그래서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찾았습니다. PC 인터넷, 핸드폰 게임도 즐겼습니다. 그리고 노래방과 클럽 등에 춤추러 가서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습니다. 또한 친구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술자리를 만들어 불러서, 술 마시며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즐겼으며, 친구 집과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세상을 관광하는 일은 죄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세상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술 취함과 방탕함은 분명히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저는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즐기는데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만족이 없는 물질에 내 마음을 빼앗겨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습니다. 때로는 교회도 가지 않고 일했으며, 주일성수도 하지 않고, 십일조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노후(老後)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개미처럼 일하고 살았지만, 진정 대비해야 할 사후(死後)는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아서 아침에는 피어 자라다가도 저녁이 되면 시들어버린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인생이 밤의 한 경점(更點)처럼 쉬 지나간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썩어지고 없어져 버릴 세상 일과 쾌락과 유흥에만 열심을 내었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육체의 쾌락과 세상 재미에 빠져 불러들인, 쾌락 유흥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김으로 쾌락과 유흥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쾌락과 유흥은 하나님 없이도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은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길 때에 들어온 악한 영들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무당과 점쟁이는 영혼에도 미래가 있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몰라서, 이 세상에서 즐기는 쾌락과 유흥, 음란에 온통 신경을 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이 세상을 즐기라고 충동하는 악한 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에게 속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무조건 가져보려고 노력하였고, 즐겨보려고 하였으며, 코와 입을 자극하는 음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귀에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취하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쾌락과 유흥의 영과, 사치와 알콜의 영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었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쾌락과 유흥의 영이 내 눈과 코, 내 입과 귀에 달라붙게 했습니다. 이 시간 내 눈과 코, 내 입과 귀에 쾌락과 유흥의 영을 달라붙게 한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무당 점쟁이를 섬길 때에 불러들인, 쾌락 유흥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3) 부처 불교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부처와 불교를 섬겨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부처와 불교를 섬기면 현실감이 떨어져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망각하게 되고, 또한 어디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됨으로, 헛된 데에 시간과 물질을 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부처와 불교를 섬기면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음으로 영혼에 허기짐이 발생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기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떠돌아다니게 하는 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럴 때면 여행이나 관광을 다녀오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의 영을 나의 발과 발목에 달라붙게 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앞길도 자주 막히곤 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소중한 시간을 내 영혼의 미래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육체의 쾌락과 유흥 그리고 사치를 즐기는데 사용한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또한 돈 버는 것을 내 삶의 목표에 두고 돈 버는 재미로 살아왔던 죄도 함께 회개합니다. 이 시간 이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처 불교를 섬길 때에 불러들인, 떠돌이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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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 회기기도문.pdf

2023-02-17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 회기기도문.pptx

 

2023-02-10(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11) 원망 불평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민14:26~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g0HZhugd3A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26]

 

1. 들어가며

  원망과 불평은 어떤 때에 생기는가? 원망과 불평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그가 채워 주지 아니할 때,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평하며 나아가서는 바로 그 대상을 미워하는 감정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원망과 불평은 아무리 해 봤자 결국 그것은 나를 좀더 나은 삶으로 결코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며, 그것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것을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의 죄가 교만이나 음란의 죄보다는 약하지만 나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망가뜨리며 다른 범죄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원망 불평의 죄를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망 불평의 죄도 역시 내가 원망 불평할 때에 짓는 것이지만 원망 불평의 영 때문에 발생하며 더 키워 나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원망 불평의 쓴 뿌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는 것이며, 왜 이것이 나에게 좋지 아니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의 죄가 가져다주는 4가지 결과와 이것을 내 몸에서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원망 불평의 쓴 뿌리는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원망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영안을 열어서 보면, 말을 할 때마다 입 주위와 이빨 사이에서 악한 영들이 바깥쪽으로 나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원망과 불평의 영들'이 그것들이다. 결국 원망 불평도 악한 영이 역사하는 쓴 뿌리인 것이다. 그러나 원망 불평은 내가 말로 짓는 죄에 속한다. 그러므로 내가 원망 불평을 함으로 악한 영들을 내 입에 달라붙게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조상적으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 때문에 나에게 쉽게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원망 불평의 죄를 짓게 되는가? 그것은 자신이 지금 잘 되지 못하는 이유를 타인들과 비교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릴 때에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을 항상 다른 사람에 비해 피해자라는 생각 속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오면 그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놀라운 특징이 있다. 그리고 원망 불평의 죄로 말미암아 내게 달라붙어 있는 악한 영은 주변의 사람들까지 빨리 감염시키는 놀라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같은 영들은 서로를 잘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과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에게서 악한 영들이 내게로 넘어올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악한 영들도 상대방에게 넘겨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망 불평의 영은 어떤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에 내려오게 되는가? 모든 악한 영들은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도 들어오지만 이미 내 주변에 혹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도 있다. 이미 내 주변에 그리고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은 대부분 조상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댓가로 내게로 내려온 것들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으나 조상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조상들 속에 있었다면 3~4대까지 그 영들이 후손에게 내려가기 때문이다(출20:5). 그러므로 원망 불평의 영도 일종의 유전의 영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조상들이 어떤 우상숭배를 했을 때에 원망 불평의 영이 주변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그것은 제사의 죄를 지었을 때다. 제사를 지내게 되면 조상 앞에 절을 하게 되는데, 그때에 악한 영들이 내 머리 속에 침투해 들어온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늘 섭섭한 마음을 불어넣는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비교하기 시작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뇌속에 있는 악한 영들은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속삭인다. 그러므로 더욱더 원망 불평은 가중된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의 영인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반드시 조상제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3. 원망 불평의 죄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성경에 보면 최초의 원망 불평의 죄는 출애굽기 15:24에 나온다. 출애굽 후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기에 모세를 원망하여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한다(출15:24). 이것이 최초로 성경에서 원망했다는 기사다. 이것은 원망과 불평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시작되는지를 알려 준다. 즉 우리가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제는 그러한 삶이 되지 않을 때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을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애굽을 떠나서 광야에 들어와 보니 이것은 이전의 삶보다 훨씬 더 형편이 어려운 것이었다. 마실 물이 제대로 있나, 먹을 음식이 제대로 있나,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추와 파 마늘 그리고 고기를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이나 고기도 없었던 것이다(출17:23, 16:3). 그러자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지 않고 광야로 인도한 것인가? 그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인 송아지 우상을 보면서 그것을 같이 숭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출애굽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으로 애굽의 잔재를 없애서 정결케 하기 위해 광야에 먼저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송아지 우상을 신으로 숭배하고 살았던 죄를 회개한 후에 오직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광야에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송아지에게 제사지냄으로 받아들였던 악한 영들 특히 원망과 불평의 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곧바로 모세와 아론에게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틈만 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더욱이 정탐꾼을 보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후에는 부정적인 사고에 휩싸여 자신들을 죽이려고 이곳까지 데리고 나왔느냐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대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원망과 불평하는 자는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출애굽 1세대들이 다 쓰러져 죽기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해야 했던 것이다. 

 

4.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대부분 세 종류다.

  첫째는 자신의 가족 특히 부모와 형제들에게 불평한다. 부모에게는 왜 돈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은 많이 낳아서 나에게는 물려준 것도 없이 나를 처음부터 힘들게 하느냐면서 불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에게는 자신은 잘 살면서 왜 나는 도와주지 않느냐면서 불평한다. 때로는 자기의 자식이나 친척까지도 그 대상이 확대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조상 탓을 한다. 왜냐햐면 그들 모두가 다 조상이고 부모이기에 다 나를 도와줄 줄 알았는데,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상은 믿는 자의 경우는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했으며,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부모 밑에 태어나게 했느냐고 하나님께 불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은 힘들이지 않고도 잘 살고 성공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인색하고 나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하나님께 대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착취하고 억압하고 빼앗고, 도둑질하고 속인 것들에 대한 결과를 자손들이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괜히 하나님을 트집잡는 것이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병들게 하고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은 악한 영들이지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나쁜 것만을 물려준 것이 아니라 좋은 것도 물려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좋지 않은 것은 다 조상 탓하고 잘한 것은 자신이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자랑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의 상관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불평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왜 그리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느냐고 불평한다. 더 잘해 줄 수 있는데도 나를 힘들게 한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평하려고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까다로운 상전에게도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 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안 좋은가?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인가? 왜냐하면 원망 불평의 죄는 단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불신의 죄로 이어지고 거역의 죄까지 짓게 되며, 가족의 경우에는 미움의 죄로 이어져 잘못하면 살인의 죄까지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다른 죄들까지 짓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에 그 영들이 내 생각을 틈타고 들어올 때부터 그 싹을 잘라야 한다. 또한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의 특징으로서 게으르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을 일삼는 자는 자신의 부족한 형편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나빠진 상태만을 가지고 늘 입으로 불평하면서 죄를 짓는다. 그러다 보니, 원망과 불평하는 자는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마저 흔들어 놓아 그들이 가진 열심까지 꺾어버리기 일쑤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상황을 계속해서 부각시켜 그것 때문에 자신이 힘들게 되었다고 불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의 죄는 열심을 내려하는 자의 열심마저 꺾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6. 원망하고 불평하면 어떤 결과를 맛보게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어떤 결과를 맛보게 되는가? 그러면 다음과 같은 4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 원망하고 불평하면 현재 나쁜 상황을 개선하려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현재의 나쁜 결과 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망과 불평하는 것은 내 삶을 결코 더 나은 삶으로 바꿔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원망 불평의 영은 혈압과 관련된 병과 입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먼저 원망 불평의 영은 내 뇌를 장악하기 때문에 나의 머리를 뜨겁게 하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그리하면 결국 혈압이 올라가게하고 화병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당뇨와 비만까지도 생기게 한다. 특히 원망 불평은 입으로 하는 범죄이니만큼, 자신의 입에 달라붙은 악한 영에 의해 입에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병들이 자주 생긴다. 그리고 입병이 생겨도 잘 낫지도 않는다. 

  셋째, 무엇보다도 원망 불평을 하면 내 배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신의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자신의 심장 속에 생수를 공급한다. 그런데 원망 불평의 영은 그것을 가로막는다. 그러면 기쁨이 없다. 만족이 없다. 감사가 메말라 버리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께서 주시려 하는 궁극적인 복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서 그 사람을 제외시키고 마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원망과 불평했던 자들은 한 사람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7. 원망과 불평의 영은 주로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가?

  그렇다면 원망과 불평의 영은 주로 어디에 자리를 잡는가? 첫째로,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입이다. 입술과 이빨 사이에 악한 영이 많이 달라붙는다. 그래서 입병이 자주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목이다. 입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영들이 목까지 내려와서 달라붙기 때문이다. 셋째는 뇌속이다. 특히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원초적으로 원망 불평의 영은 내 뇌속에 침투해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속에 들어간 영들은 늘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장이다. 원망 불평하다 보면 마음이 상하고 화병이 생기는데, 이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대상에 대해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심장에도 붙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영들을 제거하려면 회개를 통해 입에서, 목에서, 뇌에서 그리고 심장에서 걷어내야 한다. 

 

8. 원망과 불평의 영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좋지 않은 원망과 불평의 영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처방전으로 제거할 수 있다. 

  첫째, 감사하라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원망하지 말고,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믿는 이들은 내가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아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감사를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까지도 사랑해 주셔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부모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 주셔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존재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중간 단계로서 먼저 '자족하는 삶'을 실천해 보기를 바란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잠잘 곳이 있으면 감사하는 것이다. 사람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하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모든 환경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용서하라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부모나 형제들이라도 기꺼이 용서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때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들도 악한 영들의 피해자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지은 원망 불평의 죄와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먼저는 내가 지은 자범죄로서 원망하며 살았고 불평하며 살아온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나쁜 환경을 개선하려고는 시도하지 않고 늘 남 탓만 해 왔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게을렀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조상들이 제사를 드려 악한 영들이 내 뇌속에 침투하게 한 죄를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악한 영들에게 십자가 세우기를 하고 능력과 권세가 있는 자는 토막치기를 하라는 것이다. 이제 회개했으면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악한 영들은 회개한 자라도 나가려고 일부러 서두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명령해야 하는데, 나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영들은 내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오랫동안 들어와 있던 영은 자리를 잘 뜨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모든 악한 영들은 다 계급장이 뜯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이 능력과 권세가 있는 자들은 악한 영들을 손으로 토막을 쳐서 십자가로 보내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축사 사역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없이는 나왔던 영이라도 다시 들어가고 마는 것이니만큼, 반드시 철저히 회개하고 축사 사역을 받아야 한다. 

 

9. 나오며

  이 세상에 좋은 귀신이나 뱀이라는 것은 단 한 마리도 없다. 전부다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선행을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는 영물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내쫓으려면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하면 하늘에서 내 자범죄가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 죄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내 몸속에 있을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럼 죽은 조상들로 말미암아 들어온 영의 경우는 어떠한가? 죽은 조상들은 자기들의 죄값으로 죽어서 형벌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 속에 들어왔던 악한 영들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자기의 후손에게 일부가 내려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을 제거하려면 내가 내 조상들을 대신하여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조상들의 허리에서 나온 것이요, 조상들 속에 있던 영들도 자신의 후손에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지은 원망 불평의 죄는 내가 회개하면 된다. 하지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악한 영들은 내가 조상들의 죄를 대신 회개함으로 용서받고 내보낼 수 있다. 그러면 원망 불평의 영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그때부터 감사의 말이 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찬양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내 배속에서부터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기쁨이 저절로 솟구쳐 나온다. 그렇다. 회개가 살 길이다. 회개하자. 회개만이 나의 영혼을 천국에 들여놓게 할 뿐만 아니라, 내게 있는 모든 저주까지도 다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2023년 02월 10일(금)

정병진목사

 

 

11. ‘원망 불평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여 불평불만을 쏟아낸 죄

“하나님, 저는 원망과 불평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성에 차지 않았기에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나에게 해 준 것에는 감사하지 않은 채, 서운한 감정을 입으로 내뱉으며 분노하였습니다.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불평불만을 입술에 달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내가 손해 보고 있는 것만 생각하고 기분 나빠하고 짜증을 내었습니다. 원망 불평을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바꿀 수 없는 과거에만 붙들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삶에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늘 짜증 섞인 말투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내하고 참고 있으면 언젠가는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 채 당장 눈앞에 있는 안 좋은 상황만을 보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먼저, 저는 하나님께 불평했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내 뱃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깊이 생각하면 온통 감사한 것 뿐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는 힘들이지 않고도 잘 살고 성공하며 사는데, 왜 나에게는 그리 인색하고 나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이 내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인데도 그만 그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렸습니다. 사실 내 조상들이 나에게 물려준 것에는 나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도 있는데도,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나에게 나쁜 것만 물려주었다고 늘 조상 탓을 하였습니다. 아니 그러한 나쁜 집안에 나를 태어나게 했다고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나를 불행으로 만들고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남으로 모든 문제가 풀어지는 법인데, 회개는 하지 않고 주님을 원망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약속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불행을 나의 게으름과 나의 감사치 못함에서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 탓과 조상 탓으로 여긴 죄를 회개하오니, 이 시간 용서해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 저는 나의 불행을 부모와 남편 그리고 가족에게 돌린 죄를 회개합니다. 돈과 능력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면서 부모에게 대들기 일쑤였고, 형제들에게는 왜 잘 살면서도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며 불평했습니다. 또한 상관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대들고 불평하며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그럴수록 불평불만의 감정은 더 쌓인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뇌건강을 악화시켜 머리는 아프며 스트레스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혈압은 상승하며, 심장병과 비만 당뇨를 가져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원망 불평할수록 주변 사람들마저 같이 전염시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불평불만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더욱더 피해자게 되게 하고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입병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함으로 불러들인, 원망 불평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제사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제사를 지냄으로 원망 불평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제사를 지낼수록 조상으로 가장한 악한 영들이 내 뇌 속에 들어와 그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에게 들어온 악한 영들은 나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늘 섭섭한 마음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했을 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기에, 때가 되면 그것을 주신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고 자기자신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사탄의 말에 속았던 것을 대신 회개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주기 싫어서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사탄이 속였는데도 그것을 믿은 죄를 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왔을 때에는 애굽에서 송아지 우상을 섬기던 것을 버리고, 회개하여 깨끗한 상태가 되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는데도, 회개는 하지 않은 채,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떨어졌다고 그 새를 참지 못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은 것도 역시, 그들이 우상에게 제사드림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섭섭함과 서운함에만 집착하여 불평 불만을 품은 죄를 회개합니다.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래서 혈기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내 입술을 죄짓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내 입과 내 목에 온통 원망 불평의 영이 자리 잡게 했습니다. 내가 조상 제사의 죄를 회개할수록 악한 영들은 나의 뇌 속에서 떨어져 나가며, 내 손에서도 떨어져 나감으로, 감사한 마음도 생기고 하는 일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의 불행을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린 죄를 이 시간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는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사탄이 심어준 그릇된 시각으로 불평하고 원망하던 일을 그치겠습니다.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그치겠습니다. 그들에게 음식을 바치지 않고 그들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을 신으로 섬기지 않겠습니다. 제사를 기독교 모양으로 바꾼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원망 불평의 영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내 입술을 제어하겠습니다. 원망 불평의 영이 나를 주관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나를 도와주지 못했던 사람들일지라도 이해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시간 용서합니다. 그들도 그때에는 어떤 특수한 형편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들도 역시 악한 영들이 피해자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원망 불평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진정 주시고자 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날마다 회개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도록 내 앞길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내게서 떠나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욱더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은혜, 곧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통하여 저주를 끝냄으로 이제는 나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남에게 베풀며 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 불러들인, 원망 불평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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