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6(금) 금요기도회

제목: 풍성한 기도응답과 천국 곳간의 비밀(마13:5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3quX8PDxGw  [혹은 https://tv.naver.com/v/28841319 ]

 

1. 들어가며

  사람들이 기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종합해 보면 보통 3가지다. 첫째는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채워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예를 들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물질을 달라고 기도하며, 건강을 달라고 기도한다. 둘째는 어떤 나쁜 상황에서 건져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예를 들어, 질병에서 치유해달라고 기도하고, 위기로부터 탈출시켜 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셋째는 앞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예를 들어, 자녀의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자신의 직업과 직장과 배우자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첫 번째의 기도제목 곧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채워 달라고 기도하는 예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를 할 때에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인 비밀이 숨어있다. 그것은 하늘창고에 관한 비밀이다. 

 

2. 지혜와 물질과 건강을 풍성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풍성하지 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의 유형 가운데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을 풍성하게 채워달라고 기도할 때에는 다른 2가지 유형의 기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2가지 유형의 기도는 우리가 그냥 하나님께 요청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쁜 상황에서 건져주실 것이고, 앞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의 문제는 우리가 무작정 기도한다고 해서 다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른 변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실천하고 있었든지 아니면 실천했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응답에 관한 전제조건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요청한다고 할지라도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이 풍성하게 채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가끔씩 응답이 되기는 하겠지만 풍성하게 채워지지는 않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천국에 있는 자신의 곳간에서 꺼내올 것들 곧 옛 것들과 새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비축해 놓았어야 할 옛 것들과 새 것들이 없기 때문에 기도해도 그것을  꺼내 쓸 수가 없는 것이다. 

 

3. 지혜와 물질과 건강의 문제는 하늘의 천국창고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천국에도 이 땅에서처럼 창고가 있다. 그런데 천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창고가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창고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은사창고'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은사창고에서 우리가 구할 때에 은사들을 내려주신다. 그런데 또 한 종류의 창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련해주시는 창고가 아니라 우리가 마련하는 창고다. 이 창고에 대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13:52[직역]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 때문에 하늘들의 왕국에 관하여 제자가 되었던 모든 율법교사는 마치 새 것들과 오래된 것들을 자기의 곳간(창고)에서부터 꺼내오는 사람으로서 누구든지 가장(집주인)과 같은 것이다. 

  천국에 창고가 있는데 '자기의 창고'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다. 이 창고는 자기가 비축해놓은 저장물들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창고를 가리킨다.

마6:19~20[직역]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땅 위에 저장하지 말고 있어라. 거기는 좀과 동록(먹는 것)이 망쳐놓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둑들이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그들이 도둑질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하늘 안에 저장하고 있어라. 그런데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하늘 안에 저장하고 있어라. 그곳에는 좀이나 먹는 것이 망쳐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둑들이 구멍을 뚫지도 못한다. 역시 그들은 도둑질도 못한다. 

  그런데 하늘창고는 놀라운 특징이 있다. 그것은 한 번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들은 그 어떤 존재들도 그것을 손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도둑들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며 도둑질도 못한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가? 요10:10에 의하면, 도둑들은 사탄마귀와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이미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들은 귀신들이라도 손댈 수 없고 그것을 가져거가나 훔쳐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창고의 것들은 그놈들이라도 영원히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성경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에 저장할 수 있는 창고가 최소한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바칠 때에 쌓이는 '예물창고(헌물창고)'이며 또 하나는 이웃들을 구제할 때에 쌓이는 '구제창고'다. 먼저, '예물창고'가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렇다. 천국에서는 먼저 '예물(헌물)창고'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드리는 모든 것들이 저장된다. 그래서 거기에는 '십일조'도 저장할 수 있고 '헌물들'도 저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드린 모든 것은 저 하늘에 있는 예물창고에 보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창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웃을 섬길 때에 저장되는 '구제창고'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제창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눅12:33[직역] 너희의 재산들을 팔아라. 그리고 구제하라. 너희는 낡아지지 않고 있는 돈주머니들을 너희자신을 위하여 만들어라. 하늘들 안에 끝이 없는 저장물로. 그곳에는 도둑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역시 좀이 썩게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 천국에는 '예물창고' 외에 '구제창고'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구제할 때마다 하늘에 있는 구제창고에 그것이 저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그것을 언제든지 꺼내다가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삶에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질의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구제를 실천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부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구약의 격언의 말씀들을 주목해보라.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4. 천국창고에서 꺼내올 수 있는 옛 것과 새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람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늘에 있는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창고(곳간)에 어떤 저장물들을 보내어 그곳에 저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늘 저장창고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늘창고의 것을 꺼내쓴다고 할지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기도해서 이미 하늘에 저장된 저장물들을 꺼내쓴다고 할지라도 한 번 그곳에 저장된 것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 번 그곳에 저장되면 저장물들이 다함이 없는(끝이 없는) 상태로 보관되기 때문이다(마6:20).

  그렇다면 우리가 꺼내다 쓸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마13:52에 의하면, 우리가 꺼내 쓸 수 있는 것들은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새 것이요 또 하나는 옛 것이다. 이것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하나는 '최근의' 것들이요 또 하나는 '오래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자는 집주인(가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이렇다. 즉 우리 자신이 천국창고에 저장들을 저장한 것들은 최근의 것들이 되는 것이요, 우리 조상들이 저장해놓은 것들은 오래된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자가 집안의 '가장'이라고 한 것은 어떤 집안이든지 그 집안이 이미 저장해둔 것을 그의 집안의 후손들이 꺼내다가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물창고'야 보통 성도들이 채우는 것이겠지만 '구제창고'는 불신 조상들도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조상들 중에 구제를 많이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후손들 중에 누군가는 그 저장창고로부터 그것을 가져다가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은 비록 부지런히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부족함이 없거나 풍성하게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구제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내가 그 집안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말이다. 

  이러한 영적인 진리는 '지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늘날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상들 중에 누군가를 남을 가르쳐 출세케 한 일이 많을수록 그의 후손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지혜롭게 한 일이 없는 집안에서 지혜로운 자가 나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누군가가 하늘의 창고에 지혜를 많이 저장해두었어야 그이 후손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조상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그것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5. 지혜와 물질과 건강의 문제는 산상수훈의 기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하늘에 예물창고나 구제창고와 같이 자기의 자기의 조상들이 마련해 둔 창고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며 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혜를 얻고 물질을 풍성하게 누리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말씀이 구약에도 나와있었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못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산상수훈의 기도에 관한 말씀 중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주목했어야 했다. 그것은 마7:7~12에 나온다. 

마7:7-12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는 마7:7~11의 말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에 관한 말씀의 결론이 곧 12절에 있다는 것에는 잘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 12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7:12[직역] 그러므로 만약 너희가 장차 사람들이 무엇을 너희에게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 만큼을 너희도 이와같이 그들에게 행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구하여 얻기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나에게 무엇인가를 얻기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베풀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구하는 것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많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남에게 구제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풍성하기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풍성하게 넘치는 일이 적거나 없었던 것이다. 

 

6. 사람이 부자로 살지 못하고 가난하게 하는 이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람이 부자로 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들에는 첫째로, 나와 내 조상들이 남의 것을 착취하고 강제로 빼앗고 노름하여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것을 빌린 후에 갚지 않고 야반도주한 일이 있다면 나와 내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둘째, 하나님에게는 인색하게 드리면서 이방신을 섬길 때에는 어마어마한 물질을 드린 자들도 역시 가난하게 살게 된다. 셋째, 하나님의 것(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여 떼어 먹었을 때도 그렇다. 그리고 넷째, 남을 돕고 구제하는 데에 인색했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창고가 텅 비어 있기에 이런 자들은 기도를 해보아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저장물들이 없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가장 먼저 나와 내 조상들이 착취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그들에게 갚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방신에 물질을 많이 바쳤다면 하나님께 속죄예물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은 것도 갚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부터라도 구제하며 베풀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풍성하게 드려야 하겠지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사는 것이다. 

 

7. 나오며

   이 땅은 어떤 장소인가? 이 땅은 내 것을 하늘에 저장하는 장소이자 흩어서 나누어주는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풍성하게 살 수는 없다. 하늘의 창고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쓸 수가 있어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에는 '지혜'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다. 남을 지혜롭게 하여 하늘창고에 저장하지 않은 사람과 그의 후손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기 어렵다. 삶이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베풀거나 나눠준 일이 없어 하늘창고에 보관된 저장물들이 없는 자는 기도해 보아도 풍성하게 채워지지가 않는다. 남을 건강하도록 도운 일이 없으면서 자신은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비는 기도는 그리 효력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창고의 비밀이다. 우리가 기도한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우리가 요청만 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도들도 있다. 그것은 어떤 나쁜 상황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요, 앞 길을 인도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풍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기도만으로 풍성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먼저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하늘창고가 비어있는가? 지금부터라도 그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와 내 후손이 이 땅에서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08월 26일(금)

정병진목사

 

2022-08-19(금) 금요기도회

제목: 너희는 아버지께 기도하라(마6:9~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ds58o5nuLo  [혹은 https://tv.naver.com/v/28685184 ]

 

1. 들어가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 기도드리는가? 오래된 교회에 가 보면, 나이 많으신 분들의 기도들 중에는 '여호와여'라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도 한다. 어떤 분은 "하나님" 또 어떤 분은 "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학교에서는 "예수님'이라고 기도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어떤 호칭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을까? 기도의 대상을 부르는데 어떤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기본적이며 원칙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도의 대상에 대한 호칭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나는 과연 어떤 호칭으로 기도의 대상을 부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듣고 싶어하는 호칭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용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나오는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의 대상을 어떻게 칭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마5~7장) 가운데 마태복음 6장에는 기도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잘못된 기도의 2가지 유형을 먼저 말씀하신 후에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기도문'이라고 알려진 바로 그 기도문이다. 그 기도문이 어떤 것인지부터 우선 살펴보자. 

마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을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버지여'라는 말이 가장 앞서 나온다. 즉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아버지여, 우리의, 하늘들 안에 계시는 이여"라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 가장 먼저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는 '아버지여'라고 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우리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기도의 대상을 부를 때에는 보통 "하나님", 혹은 "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어떤 수식어를 붙여 기도한다. 예를 들어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롭고 자비로운 주님"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아버지여"라는 호칭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아버지'라는 용어가 지닌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이렇게 부름으로서 우리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기도할 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다면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버지'라는 호칭은 기도하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므로 진정한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된 자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자가 반드시 생명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낳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낳는다'는 말은 아버지의 생명을 그에게 준다는 의미다(요5:26). 그러므로 하나님을 최초로 '아버지'라고 부른 이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아버지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외에 구약 성도들 중에는 단 한 명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자가 없었다. 구약 시대에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었지 아들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은유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하기는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 사람은 예수님이 최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것은 예수님 시대만 해도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말했다(요3:16). 이는 그분이 '홀로(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떤 성도도 사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에 따라서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오로지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바꾸어 불렀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아직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하나님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요20:17).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자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아버지의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생명주는 영'으로 오셔서 믿는 이들 속에 거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진실로 믿는 성도들 속에는 성령이 계신다. 그리고 성령이 그에게 들어가실 때에는 생명을 가지고 들어가시기 때문에, 그때 이후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갈4:6~7). 


5.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진짜로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기도할 수 있게 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아주 자비롭게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그분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11:11~13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집어줄 아비가 없으며,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집어줄 아비는 없다. 그리고 아들이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집어줄 아비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으로 주시겠느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좋으시다.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아버지는 이제 두렵고 경외할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고 친밀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다. 이분을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나쁜 것 곧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으며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 속에는 그분이 우리가 구하는 것이 잘못 되면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응답이 좀 더딜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때에는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구해서는 아니 된다. 예를 들어, 5살짜리 아들이 식칼을 달라고 하면 과연 식칼을 그냥 덥석 내어 줄 아비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을 구해도 주시지 않고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6.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이 곧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구약 시대에도 가끔씩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을 하나님께서도 사용하신 적이 있으시고, 성도들도 그러한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구약 시대에는 아직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아버지를 사용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답할 수 있다. 특히 구약의 인물들 중에 모세와 다윗과 에단,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말라기 등 여섯 사람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들은 다 은유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첫째, 모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라고 말했다(신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얻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32:6)"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얻었고 그들을 만드셨고 그들을 세우신 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의 창시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기를 자신은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삼하7:14, 대상22:10).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솔로몬을 낳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다윗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양육자가 되어 주신다는 의미요, 솔로몬을 돌보아 주신다는 의미다.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를 지도해 주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씨로서 아들 솔로몬을 보내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아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다윗은 하나님을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여기에서도 '아버지'라는 의미는 고아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또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고아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 시편 89편의 기자인 에단이 다윗이 기도했을 것으로 기록한 말에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다윗)가 내(여호와)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시89:26)"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직접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서, 그분만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이끌어 주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시적으로 노래하며 기도한 것이다. 

  다섯째, 이사야 선지자도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63:16)"고 했지만 이것 역시 문맥으로 보면 그분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창조하신 분이요 지으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자, 보라.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라(사64:8)" 

  여섯째,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나(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31:9)"라고 말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문맥으로 보면, 여기서 '아버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분으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일곱째, 마지막으로 말라기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말로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제사장들로부터 공경받을 분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고(말1:6), 둘째로, 모든 인류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말2:10).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그렇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씩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거나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인류의 창조자가 되신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문맥을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의미이며, 모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며, 타락한 인류를 회복시켜 주실 분이요 공경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예언해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장차 보내 줄 메시야의 진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7. 그분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들 안에 계신 이 곧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분은 하늘들에 계신 분이라는 의미를 알고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는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에 계신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과는 다른 것이다. 이 땅에 육신의 부모는 우리가 해 달라고 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줄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 우리의 간구에 다 응답하실 수 있는 분도 역시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대상인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의 아비와는 다르다. 그래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곧 "하늘들 안에 계신 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하늘들 안에 계신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그분은 하늘들에 다 계셔서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는 새가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공간인 둘째 하늘, 하나님이 계시는 첫째 하늘 안에 그분이 충만히 거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뜻으로서,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다 아시고 또한 우리의 기도를 다 들을 수 있는 분인 것을 말해 준다. 한 마디로 '전지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둘째, 그분은 높이 있는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초월해계시는 절대 전능자라는 의미다. 이 세상의 법칙에 좌우되는 분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시는 절대자로서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그 기도를 다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그분은 어디에든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할 수 있는 분이시다. 

 

8. 나오며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모든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시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제 계속해서 이와 같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모범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주기도문이야말로 이미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오늘날 나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기도인 것이다. 사실 이 기도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하는 것의 모든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에 더 빨리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기도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드리는 대상을 단지 '하나님'이나 '주님'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명령했다는 말씀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그분이 우리와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하고 우리에게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구약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아버지에게 기도하자.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자.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듣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022년 08월 1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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