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 바울의 일생(5) 최종회] 선교사였던 바울, 그는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마무리했는가?(골4:12-17)_2024-01-08(월)

https://youtu.be/gOqPnlCcMnc [또는 https://tv.naver.com/v/46733999]

 

1. 들어가며

  바울, 그는 단순한 목회자가 아니었다. 그는 선교사였고, 사도이자 선지자였고, 교사였고 또한 목회자였으며, 학자이면서 신학자였고, 성경 기록자였다. 그는 보통 목회자처럼 한 교회에 시무하여 그 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사역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도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한 다음, 그 교회를 사역자에게 맡겨 놓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였다. 더욱이 그의 사역 중반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신학교(두란노 서원)를 세워 목회자를 배출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2차 전도여행 때부터 자신이 개척한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성경 13권이 되었다. 그는 2차 전도여행 때에 2권(살전, 살후), 3차 전도여행 때에 4권(고전, 고후, 갈, 롬) 그리고 로마에 가서 1차 투옥 때에 옥중서신으로 4권(엡, 빌, 골, 몬), 2차 투옥 때에 목회서신으로 3권(딤전, 딛, 딤후), 도합 13권의 책을 집필한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편지(책)를 남기고 후계자를 양성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2.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중후반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마무리했는가?

  바울의 전도여행은 작게는 3차례 크게는 5차례였다.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바울의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A.D.47~49), 2차 전도여행(A.D.49~52), 3차 전도여행(A.D.53~58)이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로 수감되어 갈 때 있었던 4차 전도여행(A.D.58~61)과 로마의 수감 이후 한 번 풀려나서 다시 전도여행을 한 때가 있다. 이것을 5차 전도여행(A.D.64~66)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전도여행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2가지가 있다. 모두 2차 전도여행 때에 일어났다.

  첫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나 자신이 파송한 목회자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가장 먼저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을 때였다. 앞서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도하여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었는데, 3주가 못 되어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었다. 다시 가려고 했지만 가지 못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 교회를 향하여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내기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바울의 최초의 서신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라는 편지다. 그리하여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개척했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고, 자신이 개척하지 않았지만 로마교회에도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바울의 목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둘째는 그가 후계자를 양성하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먼저는 2차 전도여행 때에 디모데를 데리고 가서 자신의 후계자로 양성하였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디모데를 양육하여 고린도에 편지를 보냈고 나중에는 그레데 섬에 목회자로 남겨두었다. 더욱이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에베소에 약 3년간 머무르면서 이방인들을 전도하고 그곳에 신학교를 세워 목회자를 양성했으니 그곳이 바로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이다. 이때 전도를 받아 목회자가 되어서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바로 골로새교회의 개척자인 에바브라이다. 그리하여 바울의 사역은 바울로만 그치지 않고 그 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역자들이 항상 신경써야 할 것은 사역의 계승과 책의 집필이다. 

 

3. 바울이 편지(책)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사람이 일평생을 살다가 책 한 권쯤은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책을 집필하는 일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 동안 그가 배우고 실천하여 터득했던 노하우를 한꺼번에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책을 쓰게 되었는가? 바울이 편지(책)를 쓰게 된 데에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안부와 상황을 묻고 또한 그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침을 내려 주고, 또한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지를 알기 원하는 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결국 바울이 편지를 쓰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교리를 가르쳐 주고, 당면한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바울의 서신들은 교리의 앞부분과 실생활의 뒷부분으로 편지가 나뉘어져 있다. 그렇다.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지침에 대해서 편지를 이용하여 가르친 것이다. 

 

4. 바울과 같은 사역자가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가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자신의 사역이 남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어떻게 전도하며,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잘 배우고 익힐 수가 있었다. 그러자 2차 전도여행 하반기부터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말을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수준으로 그의 영적 수준이 올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둘째는 자신의 전문성이 타인에 의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의 편지가 나중에는 신약성경으로 승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게 좀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자신이 써 보낸 골로새서를 라오디게아교회에도 읽혀지도록 명령하였으며, 라오디게아교회에서 온 편지를 골로새교회에서도 읽혀지도록 지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골4:16). 

 

5. 바울이 편지(책)를 기록함으로 바울의 사역의 뒤를 따라가려는 이들과 바울 사도를 통해 복음을 전해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

  바울이 편지를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생각과 신학사상을 글로 남겨둠에 따라 오늘날 바울의 뒤를 따라 전도하고 선교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도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이 걸어간 것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자들에게 복음 전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바로 그러한 지침서(매뉴얼)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는 자에게 불필요한 시간과 물질의 소모를 미리 막아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도사역의 지침서가 나옴으로 시행착오를 미리 방지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친히 경험해서 터득해야 할 것을 미리 알려 줌으로 시간과 물질에 있어서도 많은 절약을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지침서가 마련되어 있으니 바울이 죽은 후에도 그것으로 인하여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바울이 선교의 지침서를 남기지 않고 죽었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살아야 하고, 거기에 합당한 사람을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침서가 마련되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넷째, 바울 본인이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 책만으로도 교육과 바르게 함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시간과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후기 사역은 편지를 보내서 미리 준비하게 할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있었을 때에는 로마교회에 미리 편지를 보내, 바울의 서바나 전도여행에 그 교회가 후원해 주기를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롬15:22~24).

 

6.바울이 13권의 책을 통해 남긴 그의 신학사상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바울이 자신의 편지 13권을 통하여 우리에게 남겨 준 신학사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엄청난 신학사상의 발전이지만 간략하게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올바른 구원론'을 제시하였다. 

  둘째,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서는 '올바른 기독론'을 제시할 수 있었고, 에베소서 및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올바른 교회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 에베소서는 보조적인 테마로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예정론'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셋째,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를 통해 올바른 종말론을 제시하였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사랑하여 그 교회에 편지를 보내게 된 데에는 그 교회가 바울로부터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절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엡2:13). 또한 그 교회는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을 과감히 버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기를 매우 사모하는 교회였다. 그러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리 곧 종말론의 교리를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에 기록하여 보냈던 것이다. 

  넷째, 바울은 이제 마지막으로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에 목회론을 언급해 놓았다. 그래서 성도를 대하는 자세와 직분자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알려 주었다. 

 

7. 나오며

  바울이 처음부터 편지를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개척한 교회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가 부딪히고 있는 당면한 문제들을 수습하고 신앙의 바른길을 제시하기 위해 바울은 이같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바울이 남긴 13권의 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를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목회에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체험을 생각으로만 가진 채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글로 써서 보냄으로써 후손들에게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후계자를 양육하고 파송함으로써 자신의 전도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 순수하고도 때 묻지 않은 정결한 복음이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날 어떤 전도사역이나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든지, 바울의 일대기를 잘 살펴보면 거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2024년 01월 08일(월)

정보배목사

2024-01-0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우리는 왜 성경말씀을 책으로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암송을 해야 하는가?(딤후3:14~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AIhkfFPqcI [또는 https://tv.naver.com/v/46733993]

 

1. 들어가며

  성경을 소지하는 것과 암송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왜냐하면 응급상황에서 성경을 소지할 수는 없어도, 암송한 성경 말씀은 꺼내어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꺼내서 찾아보고 죄짓지 않도록, 우리를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필요한 성경 말씀들을 암송하고 있는 것이 좋다. 성경 암송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마음에 새겨 두는 것을 가리킨다(시119:11).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책을 빼앗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암송한 말씀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저 북한을 보라. 1949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모든 성경책은 압수되었고 불살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전에 성경과 찬송가를 암송한 사람들은 기억을 더듬어 암송했던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글로 기록했고 그것을 후손에게까지 물려주었다. 그렇다. 우리 마음에 성경 말씀을 새겨 넣는 일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 말씀을 책으로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을 암송하는 것과의 차이를 살펴보고, 성경 말씀에 대한 암송을 생활화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으며 또한 말씀이 계셨다(요1: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아직 기록으로 표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기 전까지, 인류는 글자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다만 그때에는 그림으로 어떤 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담부터 노아시대까지, 노아시대에서 아브라함시대까지, 다시 아브라함부터 모세의 시대까지 족장들은 구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모세시대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시면서, 드디어 글자가 기록된 돌판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그 글자를 익히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고 보여 주신 것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기록한 최초의 성경책이 바로 모세 오경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세가 B.C.1446~1406년경의 어느 어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글을 읽을 줄 안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하고도 변형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전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경우 성경 말씀을 자기 집이나 서재에 비치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말씀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구원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성경을 암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성경을 암송해야 할 이유는 성경 말씀을 곁에 두지 못한 상황이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마음에 새겨 놓은 암송 성경은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고, 사탄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줄 나침판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1968년 1월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항 공해상에서 북한에 의해 강제 납치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생존한 승무원과 82명과 시신 한 구가 남한 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억류 기간 동안 승무원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때 개인의 모든 소지품은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겨 성경책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성경을 암송하고 있던 사람들이 성경 구절을 화장지에 적어서 돌려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 격려함으로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에게서 성경책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음 속에 새겨진 말씀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4. 성경을 암송하는 자가 받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구약 39권과 신약의 27권의 성경 말씀을 다 암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 인간의 머리가 그처럼 뛰어난 것이 아니다. 비록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 전체를 다 암송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말씀 중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중요한 말씀들은 암송해서 자기 마음 속에 새겨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첫째,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를 안정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사41:10, 잠6:20~22). 그렇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곁에 모시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릴 때에 성경 말씀을 암송함으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를 믿고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가 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잠6:20~22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둘째, 사탄 마귀가 유혹하고 시험할 때 그를 물리칠 수 있는 병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엡6:17).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죄가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데에서 우리를 건져 주기 때문이다(시119:9,11)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119:11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셋째, 복음에 관해 묻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에도 강한 확신과 담대함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벧전3:15). 우리 주변 사람들 중에는 복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느 날 복음에 관해 물어올 때에 암송한 성경 구절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넷째,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성경을 암송하고 있는 자는 더 잘 인도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요14:26).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우쳐 주실 뿐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자를 성령께서는 더 기뻐하시고 그를 더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암송할 필요가 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5. 성경을 암송하는 자가 받게 되는 부수적인 유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을 암송하는 자가 받게 되는 유익은 위와 같은 4가지 정도 뿐일까? 아니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암기력이 향상되어서 일상적인 공부도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이 들어 있는 주소를 기억하는데 암송 한 구절 한 구절이 매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성경 말씀이 성령께서 우리를 깨우치고 인도하는 도구로서 하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성도의 영적인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자일수록 성령께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고 그 가운데서 머물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자신의 영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자신감이 부쩍 배양된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알고 있으면 어떤 위험과 세찬 풍파 앞에서도 말씀으로 그들을 대항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부쩍 생기는 것이다. 

 

6. 나오며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암기하는 능력도 같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성경을 암송하려면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에 암송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각자 자기의 마음에 새기되,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그것을 강론해야 한다고 권면했다(신6:4~9). 그리고 그것을 잘 기억할 수 있게 하려면 시청각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어릴 때에는 글자도 그림으로 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더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에 성경 말씀을 암송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성경을 암송하는 일은 자기가 늦었다고 해서 늦은 것이 아니라 지금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늦는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성경 암송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성경을 늘 암송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가 결국 모든 일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일 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2024년 01월 07일(주일)

정보배목사

2024-01-0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하나님의 경륜(01)] 창조사역에 나타난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창2:7~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w-E97wjm7i4 [또는 https://tv.naver.com/v/46733988]

 

1. 들어가며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시다(사41:4, 44:6, 28:12, 계1:17, 22:13). 고로 언제나 그분이 시작하시고 또한 그분이 끝을 맺으신다. 사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 시작된 것이고 앞으로 그분에 의해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재림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밖에서 존재하실 때에 이미 어떤 일을 계획하셨으며, 그 일을 지금도 순차적으로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 전에 품으셨던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지금 내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을 이해하고 또한 그것의 씨앗으로서 주어진 창조 기사를 통하여 그 기사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창조의 경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우리 모두도 자신의 천국집을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단장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의 경륜'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의 경륜'이란 무엇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경륜'이라는 단어는 조금 생소한 단어다. 성경에 몇 번 안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범위가 좀 크다. 모든 시간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륜'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경륜'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경영, 계획'이라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성취하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이 이 우주와 역사 가운데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경영 방식이나 프로젝트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은 사실 계속해서 감취어진 채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 중 그 누구에게도 이것을 공개한 적이 없으셨다(벧전1:12, 엡3:10). 루시엘도 몰랐고 가브리엘도 몰랐으며, 미가엘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드디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되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공개되었다(엡3:1~5). 그러다가 드디어 사도 바울의 서신 속에 그것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단어를 잘 사용하려면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주목해야 한다(엡1:10, 3:9, 3:2, 골1:25, 딤전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깨닫게 된 것이 결코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비밀은 영원부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인데, 말세에 비로소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럼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었던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가지셨던 그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우주 만물의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 만물 가운데에서 지구를 창조하셨으며, 지구 안에도 에덴동산을 창설하셨고, 또한 그 안에 사람을 두시고 그 사람에게서 여자를 건축하셨기 때문이다. 

 

3. 창조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한 무리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을 얻으시는 것이요 그들을 천국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창조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지켜보면, 창조 기사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대한 한 폭의 암호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 사역에 이미 훗날 하나님이 얻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창조 기사에 계시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인가? 그것은 가장 먼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셨고 지구 안에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고, 동물들도 지으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날에 가서 땅의 흙으로 사람(아담)을 지으셨다. 여기까지가 창세기 1장의 내용이다. 그리고 2장으로 이어진다. 그럼 왜 하나님은 창세기 2장을 쓰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2장의 기사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영혼을 그 코에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다. 그리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그러고 나서 에덴동산에 각종 열매 맺는 나무들이 자라나게 하셨는데,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게 하셨다. 그리고 강물이 에덴동산의 꼭대기에서 흘러내려서 동산을 적신 후에 네 개의 강을 이루었는데, 그 강들의 이름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였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가는 첫째 강에서는 순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산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사람에게 에덴동산에서 경작하면서 그 동산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나는 모든 열매는 먹어도 좋다고 하셨다. 단,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 하셨다. 그러고는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돕는 배필(짝)을 지으셨으니(원문은 '건축하셨으니'),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빼서 여자를 만드시고 살을 붙여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둘이 한 몸을 이루어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다. 

 

4. 하나님의 경륜은 어떻게 파괴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회복될 수 있었는가?

   창조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담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그래서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담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고후4:7).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으나 그 안에는 생명을 넣어두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아담과 그리고 그의 아내 하와는 반드시 그 생명을 취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명나무로부터 열매를 먹기 전에 생명나무라고 속인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사탄 마귀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사탄 마귀는 그가 창조되던 날에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였다. 사탄 마귀는 보이는 천지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먼저 창조되었고 창조 과정을 다 지켜보았던 존재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시고 아담까지 지으시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어진 존재에게 주신 만물의 통치권을 보자 그것이 매우 탐이 났다. 아니 시기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러자 사람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뱀으로 가장하여 에덴동산에 침투를 한다. 그런데 하와는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이 내려진 후에 창조된 존재였기에, 뱀은 하와에게 먼저 접근한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꾀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나님의 생명을 먹어야 신성한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될 수 있는데, 마귀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하와는 뱀의 말을 믿고 욕심이 생겨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그래서 인간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기 전에 선악나무로 인하여 사망이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훼방받은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회복시키셨는가? 그것은 사람의 범죄에 대한 댓가인 죽음을 대신 맛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는 방법을 취하셨다. 그때 오신 그분이 바로 2천 년 전에 이 땅에 탄생하신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골고다 언덕에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기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는 자신에게 죄가 없으셨으니, 약속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신다. 그리고 40일 동안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시고 하늘에 올라가신다. 그리고 생명주는 영이 되신다. 그리하여 자신이 성령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생명주는 영인 성령으로 들어오신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신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지금도 선악과를 통해 인간의 몸속에 침투해 들어왔던 귀신들을 떠나게 하신다. 

 

5. 하나님의 경륜에 관하여 에덴동산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그런데 에덴동산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이 있다. 우리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성경의 결론의 책이자 계시와 묵시의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해 볼 수가 있다. 사실 창세기의 말씀이 씨 뿌림의 책이라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열매 거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무슨 의미였는지를 요한계시록의 거둠의 기사를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2장과 요한계시록 21~22장을 비교 검토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펼쳐진 새 예루살렘 성을 그대로 답습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에덴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거기에서 발원한 물이 동산을 적셨고, 동산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 그리고 네 개의 강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새 예루살렘 성도 성 한가운데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한 개의 보좌가 놓여 있고, 그 밑에 물 웅덩이가 있는데, 그 물이 흘러내려 가서 천국의 온 땅을 적시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이 흘러가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서 천국 백성들이 그 열매를 먹고 살고 있다. 

  둘째, 에덴동산에서 흘러가는 물이 땅을 변화시켰고, 그리하여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그곳에서 산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는 에덴동산이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첫째 비손강의 물이 흐르는 곳에서만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산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의 '베델리엄'이란 '진주'를 가리키며(창2:12, 민11:7), '호마노'는 대제사장의 에봇 가운데 두 어깨 띠에 물린 보석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보석에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각각 절반씩 기록되어 있다(출28:9~11). 그러므로 호마노는 12가지 보석을 대표하는 보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천국을 보자. 새 예루살렘 성은 온통 정금과 진주와 보석들로 가득찬 곳이다(계21:18~21). 새 예루살렘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길이며,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은 진주문들이며, 새 예루살렘의 성벽과 기초석들 역시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그곳이 정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가득차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의 물이 땅에 흘러들어 감으로 그 땅이 보석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이 아름다운 장소가 된 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의 물이 천국의 구석구석까지 흘러가서 그곳에 생명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이 아름답다는 것은 정금과 진주와 보석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이다. 결국 생명의 물의 흐름이 천국의 흙을 정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계속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일시적으로 살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이내 쫓겨나고 말았다. 그곳을 지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뱀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였고 그 뱀의 말을 들어서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을 계속 거기에 둘 수 없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지 못는 자는 결코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 땅에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수 없다. 사실 우리의 육체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우리의 영혼은 천국에서 창조되어 있다가 이 땅으로 보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지 못한 채 죽는다면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땅은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도록 만들어진 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을 누리게 되면 땅의 흙이 점차로 변화되어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를 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손강의 물이 흘러가던 하윌라 땅이 변화되어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를 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게 되었어도, 흘러가는 물로서 성령의 적셔짐이 없는 한 우리의 육체는 계속해서 흙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원래 흙으로 창조되었지만 성령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몸의 구성 성분으로서 흙이 변화되어 천국의 건축 재료인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6. 흙으로 된 우리의 육체가 금과 은과 보석으로 바뀔 때 하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고로 흙으로 지어진 인간이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또한 성령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흙인 우리의 몸이 내 안에 들어오신 성령을 통해 내 육체를 변화시켜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사람의 육체는 사실 예수믿기 이전부터 이미 귀신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마12:43~45). 그러다가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일시적으로 덮어 주신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이다. 고로 귀신이 가득 들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몸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 안에는 귀신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귀신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의 집을 파괴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육체에 집을 짓는다. 그때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마다 우리의 육체의 집을 짓는 재료가 금과 진주와 보석들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흙이었던 우리의 몸이 금과 진주와 보석들로 바뀔 때마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집도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단장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흙이 곧바로 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되지는 않는다. 우선 우리의 올바른 신앙고백을 통해서 흙이 돌(바위)이 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비밀은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가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때에 알려 주셨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 베드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16:18)라고 하셨다. 그렇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 흙이었던 우리의 몸이 돌(바위)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몸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 후에 날마다 우리 몸에서 선악과를 통해 들어온 귀신을 뽑아내고, 성령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면, 우리의 육체도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집의 재료가 보석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7. 오늘날의 생명의 성령의 흐름이 어떻게 내 안에 충만하게 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자기 자신이신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 곧 돕는 자로서, 우리에게 보내어진 예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전15:45의 말씀에서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라고 했다. 주 예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했으며, 그런 자는 자기기 배에서부터 생수의 강(성령)이 흘러나와 적실 것이라고 했다(요7:37~39). 그러면 생명의 물이 자기의 몸을 적시는 것이다. 이 성령의 흐름이 지나는 곳에 결국 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산출된다.

  그렇다.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그래서 아담이 그토록 먹으려 했으나 먹지 못했던 생명나무의 열매를 이제 믿음으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생명이신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 속에 호흡처럼 들어오신다(요20:22).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시작은 사실 생명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 우리는 일평생을 성령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적셔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흙인 우리의 몸이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보혜사 성령이 하시는 일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그분의 하시는 일에 나도 동참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양식으로 먹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요6:63). 둘째로, 예수께서 생명이라는 것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다(요15:26). 셋째로, 성령께서 내 안에서 책망하는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는 분이시다(요16:7~10). 그분이 죄에 대해 지적하면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의가 되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마귀가 심판을 받았기에 마귀가 힘이 없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한 다음 마귀의 종들인 귀신들을 우리 몸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몸은 내 배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우리의 육체를 적시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몸은 금과 진주와 보석들로 바뀌게 될 것이다.

 

8.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땅의 흙도 에덴동산의 생명수가 흘러들어 갈 때에 금과 진주와 보석들이 산출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 몸안에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인 후 성령의 흐름으로 적셔져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는 날마다 이미 선악과를 통해 우리 몸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의 육체를 귀신의 집에서 성령의 집으로 바뀌게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흙이었던 우리의 몸이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성령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 안에 있는 귀신의 집까지도 파괴시켜 주신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우리 육체 안에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집을 지은 만큼 장차 들어갈 천국집도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날마다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양식으로 취하고 있는가? 그분이 생명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이 성령으로서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할 때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생명의 흐름 안에 늘 놓여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통치자들이 되는 것이다(롬8:13~17). 

롬8:13~17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2024년 01월 07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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