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31(수) 수요기도회

제목: [골로새서강해(04)] 땅의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그리고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꾸는 법(골3:1~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gtjHeXbf64 [또는 https://tv.naver.com/v/48258893]

 

1. 들어가며

  골로새서는 어떤 책인가? 한 마디로 그리스도론에 관한 책이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잘 파악할 수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라고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 그리스도가 바로 골로새서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골로새서는 교리적인 말씀만 기록한 책이 아니다. 이어서 실생활에 관한 말씀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골로새서 3:1~17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 실천적인 덕목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골로새서 3:1~17의 위치와 내용은?

  골로새서는 크게 3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는 도입부(1:1~12)와 본론부(1:13~4:6)와 종결부(4:7~18)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본론부는 또한 크게 2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반부(1:13~2:23)는 교리적인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이단 사조에 대한 경계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3:1~4:6)는 실천적인 삶에 대한 부분으로서, 그리스인들의 거룩한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3:1~17의 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3:1~4)은 땅의 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위에 것을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둘째 부분(3:5~11)은 땅의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옛 사람의 습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셋째 부분(3:12~17)은 위에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새 사람의 신앙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 위에 것과 땅의 것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며, 성도는 이것들 가운데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바울은 신앙인의 삶의 실천 덕목으로서 '위에 것들과 땅의 것들'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땅의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위에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골3:1~2). 왜냐하면 땅의 것들을 추구하는 우리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 것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위에 것들에 대해 항상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땅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마치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세례의 연합의 교리 곧 동일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에 우리도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롬6:3~4).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는 나의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한다(롬6:6). 이는 죄를 짓기 좋아하는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 자신은 새 사람이 되었으며,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된 후에 위에 것들을 생각하고 땅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날마다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간주함과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간주하는 것이다(롬6:11). 

  특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주는 영을 받아 산 자가 되었는데, 이때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고 말했다(골3:3).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잘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이 있지 않는 것이 아니니,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에 우리들도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골3:4). 

 

4. 땅의 것으로서 옛 사람의 성품과 행실들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버렸던 옛 사람의 성품과 행실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도 바울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고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머물러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영 안에 받아들인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땅에 있는 지체를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했다(골3:5~6). 그렇다면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땅에 있는 지체들 곧 육체를 따라가게 되면 어떤 성품상의 열매를 맺게 되고 어떤 말과 행동의 열매를 맺게 되는가? 바울은 이것에 대해 5가지 성품상의 열매를 언급하였고, 이어서 5가지 행위상의 열매를 언급한다. 

  첫째,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옛 사람의 것을 생각하면 옛 사람의 성품상의 열매로서, 음란(음행)과 부정(불결함)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의 5가지 열매가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말했다(골3:5). 특히 그중에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골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새 사람이 되었다면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땅의 것에 두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위에 것에 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에 둔 영은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지만, 생각을 육체에 두면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롬8:5~6). 

  둘째,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옛 사람의 것을 생각하면 옛 사람의 행위상의 열매로서, 분함(분노)과 노여움(격동)과 악의(나쁨)와 비방(중상모독)과 부끄러운 말(논설), 특히 거짓말이라는 5가지 열매가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말했다(골3:8).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것들을 날마다 옷을 벗듯이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옛 사람의 열매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자꾸 벗어버려 자기에게서 옛 사람의 열매가 축적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옛 사람의 삶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옛 사람의 삶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첫째는 옛 사람과 그 사람의 실행들을 무장해제시켜야 한다고 했다(골3:9).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더 이상 그것이 우리 자신을 주장할 수 없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날마다 옛 사람의 옷을 벗겨버려서 무장해제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무장해제시킨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펰듀오마이'라는 동사로서, '옷을 벗어버리다', '무장해제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딱 2번 나오는 단어로서, 골2:15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라는 문장에 한 번 더 나온다. 그러니까 골2:15에서는 이 단어가 '무력화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 뜻은 '무장해제시키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옛 사람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를 무장해제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옛날에 전쟁시 승리한 장군이 개선 행진하면서, 적을 포로로 붙잡아 개선 행진에 동참을 시킬 때에, 적의 장수들의 옷을 다 벗겨버림으로 그들이 어떤 계급을 지녔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적의 장수라도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으니 이제는 더 이상 그가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장수로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것이다. 즉 나의 옛 사람이 이미 패배하여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공포하는 것을 날마다 지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새 사람을 옷입어야 한다고 했다(골3:10). 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승리자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옛 사람의 성품들이 그대로 묻어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서 새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함께 참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의 옷을 늘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따라서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옷을 입는 것은 생각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옛 사람이나 타고난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 그를 죽음에 넘기는 것은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되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늘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는 새 사람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6. 하늘의 것으로서 새 사람은 어떤 성품상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맺는 것인가?

  그렇다면 하늘의 것으로서 새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품상의 열매는 대체 어떤 것이 있는가?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새 사람으로서 입어야 할 성품상의 옷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5가지의 성품상의 열매에 2가지를 더해서 총 7가지의 성품상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본적인 5가지 성품상의 열매를 가리켜, '긍휼(동정심)과 자비(친절함)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인내)'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2가지의 '용서'와 '사랑'을 더하여, 총 7가지의 성품상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골3:12~14). 그렇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둠으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에게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하겠다 싶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여, 나를 겸손하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자신 안에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들어온 그리스도에게로 자신의 영을 돌이킨 후에,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겸손이십니다."라고 그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용서해야 되는데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다면, 그때도 역시 우리 자신을 영으로 돌이킨 후에,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용서이십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용서가 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용서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주장하고 있어서 감사드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새 사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골3:15~16).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즉 말을 하든지 아니면 일을 하든지 항상 주의 이름으로 행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상적인 새 사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골3:17)

 

7. 나오며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새 사람이 되었어도 만약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지 않는 한 그는 옛 사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로 옛 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외치면서 실행하면 된다. "죄짓기를 좋아하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시체다. 시체가 죄를 짓는 것 보았는가? 나는 이제 죽었으니 죄를 지을 수 없게 되었구나". 그러고 나서는 둘째로, 날마다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자신의 몸을 이제는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골3:2). 다른 말로 말하면, 날마다 옛 사람과 그의 행위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그리스도를 따라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골3:9~10).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계속해서 실행에 옮겨보라. 그러면 달라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죄짓기를 좋아하는 자신은 점차로 사라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이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01월 31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25)] 예수의 이름과 귀신을 쫓아내는 놀라운 영적 무기들은 무엇인가?(눅10:17~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zKRmolT19oo [또는 https://tv.naver.com/v/48258609]

 

1. 들어가며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몸과 육체의 구원은 귀신을 몸에서 제거하는 일이 그 핵심이다. 왜냐하면 귀신이 우리 몸에 계속 남아 있으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를 죄된 본성으로 유혹하여 우리를 죄짓게 만들 것이며, 자기들의 특성에 따라 온갖 저주를 퍼주다가 결국 우리가 회개치 못하면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 몸에서 귀신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귀신을 우리 몸에서 제거할 수 있는가? 귀신을 축사할 때에 우리가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은 어떤 이름인가? 그리고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떠나가도록 고문할 수 있는 영적인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2.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인가? 아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 곧 마귀와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이다(마4:1~11). 왜냐하면 강한 자의 집의 세간을 강탈하려면 먼저 강한 자인 사탄 마귀를 결박해야 하기 때문이다(마12:29).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몰았고 거기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사탄 마귀와 한판 붙게 했던 것이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께서 체력적으로 가장 떨어져 있던 순간을 알고서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그만 3대 0으로 지고 말았다. 그날 예수께서는 마귀의 3가지 시험들로서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보아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천하 만국과 그것의 영광을 주리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세 가지 시험을 모두 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셨다(신8:3, 신6:16,13). 그리고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영적인 법칙(벧후2:19)에 따라, 마귀는 이제 예수님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마귀의 하수인들인 귀신들을 그때부터 내쫓기 시작하셨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그분이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 곧 사탄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뱀의 머리를 아주 작살낸 것은 아니었다. 

 

3. 믿는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사탄 마귀와 싸워 판정승을 거두신 후,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1/3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데 사용하셨다(눅13:32).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시작에 마귀의 시험을 물리쳐서 이기셨으며, 십자가 사건 때에는 옛 뱀인 마귀의 머리를 박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귀의 머리를 박살냈다는 것은 마귀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권세와 능력과 보좌에 제한을 두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은 그때부터 무저갱에 갇혀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종들을 올려보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끝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때에 주님께서 행하신 또 하나의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높은 계급의 귀신들을 무장해제시켰다는 것이다(골2:15). 이는 귀신들이 가진 권세 곧 그들의 계급장을 떼어버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력화했다'는 말의 원뜻이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어떤 계급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원래 창조된 바에 따라 자기들에게 주어진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후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약 1년쯤 지났을 때에, 당신의 12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와 능력을 주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다(눅9:1~2). 그러고 나서는 70명의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도록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 그러자 70명의 제자들도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었으니 그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은 무엇이었는가! "주여, 주(당신)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눅10:17)"라고 말했다. 그랬다.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을 듣고는 쫓겨났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마치셨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권세와 능력과 보좌를 제한하셨고 귀신들을 무장해제시키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은 이제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막16:17~18),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모든 성도들은 누구나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도가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된 근거는 예수님의 승리에 있는 것이며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귀신보다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 하여도 우리에게는 암행어사 마패와 같은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는 것이다. 

 

4. 예수의 이름이란 대체 어떤 이름인가?

  그렇다면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도록 주신 예수의 이름은 어떤 이름인가? 그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서, 하늘에 있는 자들(선한 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과 땅 위에 있는 자들(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귀신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과 귀신들) 위에 있는 뛰어난 이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 앞에 꿇고 있는 것이다(빌2:9~10).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라는 이름이 단지 아들만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며, 또한 '아들'의 이름이자 '성령'의 이름이기 때문이다(마28:18~19). 왜냐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지만, 이때 사용된 '이름'이 먼저 단수라는 것이며, 또한 제자들이 직접 나가서 세례를 줄 때에,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주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이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여 쫓아내는 것이다. 

 

5.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이름의 권세는 우리가 말로 명령하고 선포할 때 사용하는 것이며, 그러면 능력 있는 천사들이 와서 그 명령과 선포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들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선포한다고 해서 다 떠나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버티기 때문이다. 그래야 루시퍼에게 책망과 징계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디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귀신이 떠나가지 않고 버틸 때 그들이 버틸 수 없도록 강력한 무기들을 써서 그들을 쫓아내야 한다.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강력한 고통을 안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 성도들이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들은 사실 성부와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성자와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성령과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각각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성부와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불'과 '망치'가 있다. 왜냐하면 불은 하나님께서 소멸시키는 불이시기 때문이다(히12:29, 렘23:29).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숴뜨리는 방망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렘23:29).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그들을 불로 태우고 망치로 머리를 깨부셔버려야 한다. 

  둘째, 성자와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와 '쇠지팡이(철장)'이다. 어린양의 피는 모든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귀신들의 권세와 능력을 완전히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계12:11). 그리고 쇠지팡이는 어떤 계급의 높은 귀신도 단숨에 몸통을 잘라버리고 뼈도 부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계2:26~27). 

  셋째, 성령과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무기에는 '검'과 '은사들'이 있다. 성령께서 그때 주시는 말씀인 레마 말씀으로 귀신들을 자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때 사용하는 칼은 예리할 뿐만 아니라 좌우에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엡6:17). 아울러 믿는 성도들은 각종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여 귀신들을 쫓아낼 수가 있다. 이러한 은사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 병들 고침과 능력 행함과 예언, 영들 분별함과 방언과 방언 통역' 등이 있다(고전12:8~10).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영 안에 들어오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분이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승리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되, 각종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해 쫓아내고 안 나가려 하는 놈들은 고문을 해서라도 쫓아내야 한다.  

 

 

2024년 01월 31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24)] 귀신은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가?(요10:10)_2024-01-30(화)

https://youtu.be/_FrWkvpAs_4 [또는 https://tv.naver.com/v/46737008]

 

1. 들어가며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에 있어서 귀신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생명 분배의 최종 단계는 육체의 구원에 있다. 그런데 육체 속에는 귀신이 들어 있기에, 이 귀신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 귀신은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사망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고 간주하는 것만으로 죄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죄된 본성인 귀신들이 우리 육체에 남아 있는데 어찌 육체의 본성을 우리 스스로가 극복할 수 있겠으며 이것을 초월해서 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의 생명이 육체의 영역까지 흘러 들어오게 하려면 반드시 육체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육체 속에서 귀신을 쫓아내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귀신의 집을 완전히 파괴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귀신의 집이 우리 육체 속에 있는 한 귀신은 한사코 우리 육체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 구원의 최종 단계는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귀신의 집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귀신들부터 우리 몸에서 하나씩 하나씩 쫓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귀신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더불어 우리가 귀신을 반드시 쫓아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말씀을 이제 하나씩 정리해 보도록 하자. 

 

2. 귀신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귀신은 영물이다(계16:14). 귀신은 영적인 존재로서 원래는 천사였으나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영물을 가리킨다(벧후2:4). 이들은 하늘들과 지구가 창조된 후, 아직 다른 것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먼저 창조된 천사들이다(창1:1~2,2:1, 왕상22:19, 골1:15). 그러므로 이들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물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종드는 자들로 창조되었다(시103:20~22). 그러나 이들의 대장인 루시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려다가 발각되었고(사14: 12~15, 겔28:12~19),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직후 그들의 대장인 루시퍼를 따라 한 패가 되어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하늘에서 쫓겨난 자들이다(계12:7~9).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그들을 귀신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만 해도 이들은 귀신들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타락한 천사들은 비록 그들의 마음이 타락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잘한 일에는 상을 주시고 악을 저지르면 징계하신다. 만약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숭배하거나 악한 일을 행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때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천사들이다. 그런데 구약시대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때에 선한 천사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악한 천사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범죄한 다윗을 칠 때에는 선한 천사인 '여호와의 천사'를 보내셨다(삼하24:15~17). 그때 그 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쳤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실 때에는 악의 천사인 '사탄('대적하는 자'라는 뜻)'을 쓰셨다(욥1:6~10).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치되, 처음에는 그의 소유물을 쳤고 두 번째는 그의 가족들을 쳤으며, 세 번째는 그의 건강을 쳤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아무리 악한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징계의 일들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 승천이후부터는 달라졌다. 하나님께서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를 보내어 용(사탄 마귀)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쫓아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 사탄 마귀는 음부(무저갱)에 갇혀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사탄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자신을 대리할 자들을 이 땅에 올려보내 사람들을 죄짓게 만들고 있고 지옥으로 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달라진 점은 구약시대에는 악한 영들이 사람의 죄를 참고하는 일을 하였으나,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는 참소하지 않고 우리가 죄를 지으면 곧바로 공격한다는 것이다(계12:10). 

 

3. 귀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귀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은 악의 화신으로서 죄를 지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징계를 내리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기들의 처할 운명의 장소인 지옥불(불과 유황이 타는 못)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마다 온갖 저주들을 받게 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을 죽인 후, 그의 영혼을 지옥에 끌어간다. 그렇다면, 귀신들은 오늘날까지 사람 속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첫째는 질병의 저주를 준다(신28:21~22, 27~28, 59~61). 각종 질병들과 불치병과 중병에 걸리게 하여 성도를 고통받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임신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출23:25~26). 둘째는 가난의 저주도 준다(신28:30~33).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손에 쥐는 것이 없도록 하는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이미 가진 것도 남에게 빼앗기는 저주를 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려온 귀신들이 우리의 물질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있는 물질은 새어나가게 하고, 들어오는 물질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것이다. 셋째, 형통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를 준다. 이것은 성도들의 앞날을 귀신들이 가서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가 망하게 되고, 부부관계는 깨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3가지 저주를 없애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귀신을 제거해야 한다. 

 

4. 예수께서는 사탄 마귀와 귀신들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도둑에 비유하셨다. 그들은 도둑이자 강도라고 말씀하셨다(요10:9). 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빼앗아 가되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죄를 짓게 만든 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이러한 악한 귀신들에게 무엇을 빼앗기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도둑으로 비유된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귀신들이 사람 몸속에 들어갈 때에는 사람을 해치러 들어오는 것이고 저주를 주기 위해서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사망을 선고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3가지로 설명해 주셨다. 

  첫째, 귀신들은 도둑질을 한다는 것이다(요10:10). 도둑질을 하되 사람의 '건강'을 도둑질하여 병들게 하고, '물질'을 도둑질하여 가난하게 만들고, 사람의 '미래'를 도둑질하여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자기의 몸에서 귀신을 몰아내야 한다. 

  둘째, 귀신들은 죽인다는 것이다(요10:10). 여기서 '죽인다'는 표현은 단순히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이 단어는 '뒤오'라고 되어 있다. 이 단어는 '제물로 바치다, 살인하다, 살해하다, 죽이다'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니까 귀신들은 사람들을 죽여서 결국 루시퍼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주의 일을 많이 했거나 주님께 크게 쓰임받는 사람을 죽여서 지옥에 데려가면, 사탄이 상을 주기 때문에 귀신들은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이다. 

  셋째, 귀신들은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요10:10). 여기서 '멸망시키다'의 헬라어 단어('아폴뤼미')는 그 뜻이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멸망시키다, 파괴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둘째는 '살해하다, 피살시키다'는 뜻이 있고, 세 번째는 '잃어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사람을 파괴시키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5. 왜 우리는 귀신들을 우리 몸속에서 제거하고 결국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야 하는가?

  우리가 비록 자기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도, 자신의 육체 또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겼다고 간주한다 하더라도, 귀신이 우리 몸속에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귀신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을 매일 조금씩 조금씩 쫓아내야 한다(신7:22~24). 귀신을 한꺼번에 다 쫓아버리면 우리 육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날마다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경륜상 생명 분배의 최종 단계로서, 사람의 육체가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고후4:11).

  둘째, 귀신이 우리 몸속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이 계속해서 죄된 본성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귀신이 내 몸속에 있는 한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약함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신28장).

  넷째,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한 사탄 마귀를 인간을 통해서 패배시키기 위함이다(요일3:8, 계21:7). 

 

6. 나오며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면, 그것은 영락없이 하나님의 경륜 곧 우리 인간의 영혼육의 구원의 과정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고 있음을 본다. 왜나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와서 40년간 만나를 먹은 후, 가나안 일곱족속을 쫓아내어 그 땅을 정복했던 과정이 영락없이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 과정과 그대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영의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후 광야 같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생명의 떡을 계속 먹음으로 혼의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가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정복하는 것은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정복하는 것이다. 육체의 구원은 귀신을 쫓아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반드시 귀신을 우리 몸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경륜상 생명의 분배 가운데 육체의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귀신의 집까지 파괴시켜야 육체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가 있다. 

 

 

2024년 01월 30(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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