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천주교인들이 실제로 마리아를 숭배하고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넘어 흠숭의 단계에까지 숭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인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천주교는 한 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자동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인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참된 회개를 못하는 구조에 싸여 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성경말씀을 가까이 못하게 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구조는 고해성사제도 때문에요, 두번째 구조는 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교리서와 교황의 칙서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본다. 더욱이 그들은 교황을 베드로의 계승자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만 천국설립권과 사죄권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마16:19을 근거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베드로 자신에게만 천국열쇠를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기만 하면 자신의 죄를 사함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18:18에 보면, 베드로에게만 주어졌다던 권리가 모든 사도들에게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막16:15-16절에 보면, 모든 믿는 자는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만 교회설립권이나 사죄권을 주었다는 것은 억지논리이자 억지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한을 바로 교황이 계승했다는 것은 역사를 무시한 처사다. 590년 내지 607년이 되기전까지, 다시 말해 교황제도가 천주교 안에 자리잡기 전까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만 그러한 권한을 주셨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교황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천주교에서 죄를 사함받으려면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죄권을 가지고 있는 교황을 대신하는 신부들이 죄사함을 선포하여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라. 성경 어디에 죄를 지으면 신부와 같은 교회의 목회자에개 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고 했는가? 그리고 그 어디에 신부와 같은 교회의 목자가 사죄를 선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없다. 사실 베드로는 로마의 첫번째 교황이 아니었다. 행15장에 보면, 최초의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의장은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갈2장을 읽어보면, 첫번째 교황이라고 불리던 베드로가 사도바울에게 책망을 듣기까지 하고 있다(갈2:11). 이신칭의의 복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베드로는 결단코 로마교회의 감독을 지낸 적도 없다. 그리고 교황권을 수여받은 적도 없다. 단지 로마에 전도하러 갔을 뿐이다. 그리고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것도 한참후에 나온 주장인데, 이것도 정확히 맞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 죄사함을 받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요일1:9, 시32:5). 그런데 천주교인들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 대죄를 저질렀다면 신부앞에 가서 그냥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만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어찌 자신이 지은 죄를 아파하며 애통해하며 울며 통곡하며 마음을 찢는 회개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천주교가 회개를 가로막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회개를 보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 통회자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욜2:12-13). 그리고 예수께서 유일하게 회개의 표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니느웨백성들의 회개를 보라(마12:41, 욘3:5-6). 니느웨백성들은 건성으로 회개를 외치는 요나 선지자의 경고를 들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 왕은 왕복을 벗었다. 보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온 백성과 더불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자신의 죄들을 통회자복했다. 그것도 40일동안이나 말이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에는 어떤 악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 도성에 내리고자하는 심판을 철회하셨다. 뒤로 미뤄버린 것이다. 그렇다. 회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왕하22장에 기록된 요시야왕의 경우를 보라. 요시야왕은 그가 왕위에 오른 지 18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나라가 왜 기울어져 가는지, 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는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26살이었을 때에 하나의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그가 성전보수명령을 내렸다. 그때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헌금함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여 그것을 서기관 사반에게 준다. 사반이 그것을 읽어보고는 왕에게서 그것을 또한 읽어드린다. 그러자 요시야왕은 자신의 조부 므낫세와 자신의 부친 아몬왕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와 3-4대 안에 남유다를 멸망시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도 왕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악을 애통해하며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낸다. 선지자 훌다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실행될 것이지만 요시야시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요시야왕이 마음을 찢고 회개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이 회개하려면 죄를 알아야 한다. 죄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천주교는 어떠한가? 천주교에서는 제2바티칸회의(1962-65) 전까지 성경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했다. 그리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지도 못하게 했다. 오직 천주교에서 만들어서 배포한 교리서와 교황의 칙서 등을 가르치고 배웠던 것이다. 특히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서 중 십계명을 보면,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두번째 계명이 빠져 있다. 그러니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 그러한 것을 우상숭배라고 가르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혹시 우상숭배금지조항이 빠진 십계명을 어겼다 할지라도 이런 것들은 대죄에 해당하니 신부에게 가서 고백하기만 그것으로 끝이다. 천주교는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마음을 찢고 통회자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치 않는 것이다. 천주교는 고해성사와 사죄권이라는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죄용서의 방법이 천주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개신교에도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죄를 지어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를 받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개는 하거나 하지 않거나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개하면 과거의 죄가 사함받는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후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용서받는다. 단지 입술로만 아뢰는 것으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받은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의 보혈 아래서 긍휼을 구한 다음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다.

 

당신은 진정한 회개를 하고 있는가? 아니었다면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라.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회는 주교와 사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을 용서한다...”(1448).

성직자의 성사로 주교들과 사제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갖는다”(1461).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양심을 정직하게 살펴본 후 고백하지 않은 모든 중대한 죄들을 기억나는 대로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1493).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냥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무조건 부활하신 것으로 믿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어디 허술하게 부활하신다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얼마나 허술한 사람이 되겠는가?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2가지로 증거하셨다. 첫째, 간접적인 증거들이다. 그것은 무덤에 시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몸을 가지고 그대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즉 빈 무덤이 부활의 아침에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 그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것도 증거다. 즉 천사의 고지도 예수님의 부활의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라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어디서 숨겨놓은 다음 부활했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이러한 상상은 안 해도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무덤의 돌문이 열려져 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안 보인다는 막달라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와서 그것을 확인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 빈 무덤 안에  당신이 부활했다는 증거들을 남겨두었다. 예수님의 시신을 싸 두었던 세마포가 바람빠진 고무풍선마냥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고, 머리 맡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싸 두었던 수건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디 시체를 훔쳐가는 사람이 그 와중에 시신을 둘둘 말아두었던 세마포와 수건을 거기 두고 가겠는가? 하지만 이것도 직접적인 증거는 될 수 없다.
이어 예수께서는 이제 당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하셨다. 그것은 빈 무덤을 찾아온 사람에게로부터 하나씩 둘씩 당신의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고 만져보게 하신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비어 있었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해서든지 시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어떤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시체를 어디다 두었다면 알려달라고 한다. 그때 주님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서야 그녀는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차린다. 그분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불러서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양인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주인의 음성을 알아들었다. 이처럼 부활의 몸은 육체의 몸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함께 생활했던 막달라 마리아도 처음에는 몰라보았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몰라보았다. 나중에 열 명의 제자들도 몰라보았다. 아무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여주셨다.
이처럼 주님이 부활하신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그분이 직접 자신의 부활의 몸을 그때 당시의 제자들과 여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그렇게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날 오셨고 지금도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이 떠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이 죽고나면 영영히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당신이 제자들에게 영으로 호흡으로 온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셨다. 그리고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오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오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장면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분의 부활과 우리 믿는 이들의 부활이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몸을 가지고 그대로 부활하셨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못자국과 창자국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그분의 몸은 흙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활의 몸은 다르다. 우리는 흙이 육신이되었기에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에 생명의 부활에 동참한 사람은 하늘로부터 부활의 새로운 몸이 주어진다. 이름하여 부활체라 하는데, 이 부활체는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이 된다. 이 때의 영광스러운 몸이 예수님의 부활의 몸과 다른 점은 우리의 부활의 몸은 가장 아름다운 때의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것과 영광스러운 몸이라 하지만 무소부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영광스러운 몸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창조주이셨으므로 무소부재한 부활의 몸을 가지고 부활하신다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33년반동안 입으셨던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몸은 흙이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한편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입으신 첫번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로 부활하신 것이다(고전15:20, 레23:10-11). 이로서 모든 믿는 자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서 첫 것은 항상 거룩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먼저 드려져야 했다. 그러므로 부활의 아침에 막달라 미리아가 자신을 만지려하자 만지지 못하게 했다. 자신을 첫 열매로 봉헌하기 위함이다. 그후로 그날 저녁부터는 자신의 몸을 만지도록 허락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이로서 예수님의 신분은 독생자에서 맏아들이 되셨다(롬8:29, 히1:6).
 
예수께서는 부활이후에 자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 자기들의 곁을 떠나시고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지 않은 시간에 주님은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격려해주셨으며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셨다. 왜냐하면 항상 주님은 제자들 곁에 계시다는 것을 훈련하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도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언제까지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아니었다. 승천하기기 전까지만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지금까지 성도들은 예수님을 이세상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천국에 가면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날 아침에 하늘에 올라가셔서 첫열매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신 이후 그날 저녁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을 생각해보라. 그때에는 항상 그분이 제자들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명의 제자들만을 데리고 따로 가실 경우 나머지 9명에게는 주님은 그들곁에 없으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육체를 떠나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시고 이제는 무소부재의 창조주의 상태에 들어가신 다음부터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방식이요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존재방식이다. 주님은 이제 항상 우리와 임마누엘하시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무소부재한 상태로 돌아가신 예수께서 나타나사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 첫째, 그들에게 평강을 기원하셨다. 둘째,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파송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이제 또다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셨다. 이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오심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오심인 것처럼 제자들의 파송도 곧 예수님의 파송이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베드로만 불러서 오직 베드로만에게만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로마카톨릭에서는 베드로에게 사죄권과 교회설립권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먼저는 열한제자들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어리석고 우준한 자들까지도 주님의 대사로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신은 것이다. 셋째, 성령을 바람처럼 제자들의 호흡 속에 집어넣어주셨다. 이때 성령은 정관사가 붙어있는 '그 성령'이 아니라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늘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오순절날 강림하여 제자들 속에 임재하셨고, 부활후 첫날 저녁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창조시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제자들에게도 호흡처럼 불어넣어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동생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복음전파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되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날 아침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형되심으로 원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다. 하지만 그분의 긍휼과 온유한 마음은 변함이 없으셨다. 왜냐하면 부활절날 저녁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에는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래서 도마가 자신은 보고 믿겠노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도마를 위해 일주일 뒤에 또 다시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사용해 못자국와 창자국에 넣어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욱 복 있는 자다"고 하셨다. 그렇다. 당신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복된 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직접 본 도마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는 베드로보다도 더 확실하고 더 나은 신앙고백을 했다. 베드로는 차마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까지는 고백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이는 예수께서 구약에 나오는 바로 그 여호와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여러분은 공관복음서가 이미 기록되어 있었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을 쓰게 하셨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요한은 2가지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궁극적으로 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려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다. 요한복음은 특별한 책이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없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독생자라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을 믿는 모든 자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요한복음을 읽었음에도 거기서 예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메시야)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당신은요한복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요한복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현재 천주교에서 드려지는 기도를 보라. 마리아에게 기도를 부탁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천주교에서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가 되어버렸고, 기도의 중보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젠부턴가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흠숭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하늘의 여왕으로 숭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65년 제2바티칸 공의회에서 천주교의 교리가 확정되었는데, 이 교리들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자 교회의 어머니로서, 찬양의 대상이자 기도(은총의 중재자)의 대상이요 구원의 통로이며 보혜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리아 교리는 점차로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시작했다. 하지만 주후 431년에는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했다. 그러더니 주후 600년 이후에는 그녀에게 바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200년이 흐른 다음,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에 죄없이 잉태되었다고(무염시태설)을 선포했다. 그리고 1891년 교황 레오13세는 천상의 모후의 보좌에 앉아 있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해 탄원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했다. 그러더니 1903년이 되자 교황 비오 10세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보혈로 인해 모든 것을 나눠주는 분이라고 선언했다. 1914년에는 마리아가 모든 은혜의 하나님과의 중보자라 하더니, 1917년에는 마리가 은총의 중재자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마리아가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했다고까지 주장하더니, 1962년에는 마리아가 종신처녀로 지냈다고 했으며, 1965년에는 마리는 하늘의 여왕이며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우상화작업은 사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콘슨탄틴 대제가 태양신과 이방신들을 가지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말해, 주후 300년전까지 마리아에 대한 어떠한 교리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마리아의 교리가 날조된 것임을 그대로 말해준다. 
  신약성경을 주의하여 읽어보라. 성경 어디에 마리아가 기도의 중보자요,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묘사되고 있는가? 마리아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적어도 7남매를 둔 엄마로서 나온다(마13:55~56). 그리고 그녀는 죽어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 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간 그녀라 할지라도 지금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가톨릭 신도들이 왜 자신을 이렇게까지 신으로 숭배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천주교가 이렇게 빗나가게 되었을까? 그것은 주후 300년이 이후부터다. 당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의 최고의 사제(Fontifex Maximus)였다. 그러다가 주후 378년에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Damasus)에게 최고의 사제직을 물려주었다. 결국 순수한 기독교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방종교와 혼합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가 타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양신 신화는 창세기 10장의 니므롯의 아내인 세미라미스에게까지 올라간다는 알고 있는가? 세미라미스는 자신의 남편 니므롯이 죽자, 그가 하늘에 올라가 태양이 되었고, 자신의 사생자인 담무스는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담무스와 결혼하여 신의 아내이자 신의 어머니가 되기에 이른다. 이 신화는 모든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고 각 나라에는 이러한 하늘의 여신 내지는 모자숭배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렸어야 했다. 결코 다른 것과 섞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사탄마귀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을 그냥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줄 것인가? 결국 사탄마귀의 작전은 그대로 적요했고, 천주교는 태양신과 모자숭배종교와 혼합되어버렸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귀신들이 마리아 환상을 보여주며,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을 흐르게 하거나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더 현혹했다. 이제는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성경은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외에 숭배할 대상은 없다고 말이다.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한 경배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이라고 말이다(마4:10). 그리고 그 여호와께서 육신을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하늘과 땅의 중보자요 구원의 길이라고 말이다(요14:6, 딤전2:5). 속지 말라. 미혹받지 말라.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서면 피조물 중의 하나요 구원받을 죄인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단지 그녀가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았다고 해서 그녀는 신이 될 수 없다. 그녀는 결코 은총의 중재자가 아니며, 하늘의 여신도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기도를 대신 해 주거나 직접 기도를 받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천주교에서는 실제적으로 마리아를 신격화시켜 그녀를 세미라미스처럼 하늘의 여왕이자 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기도를 드리며 예를 행한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왜 천주교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성경이 평신도에게 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3세기까지 천주교에서는 평신도에게 성경을 읽지도 못하게 했고, 소유하지도 못하게 했다. 더욱이 자국어로 번역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당신도 성경을 읽으라. 성경을 모르면 당신도 이단이나 이교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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