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우상에 대해 주의해야 하는가?
  첫째, 우상은 무엇인가? 우상이라고 표현되는 구약성경의 단어(히브리어)는 13가지이며, 신약성경의 단어(헬라어)는 단2가지다. 그만큼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에 대해 많이 말씀하신 것이다. 우상에 대한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는 크게 보면 2가지 단어이다. 하나는 '이미지'나 '형상'을 뜻하는 단어군(=image, icon)이 있고 또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뜻하는 단어군(=idol)이 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우상이란 하나님 이외에 사람들이 섬기기 위해 만든 형상이나 경배하는 어떤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별히 인간이 잘 조각하거나 부어만든다면 그것이 나무나 돌이든,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철이든 우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보이지 않는 분이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먼저는 보이지 않는 피조물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보이는 만물을 만들었다. 전자는 바로 천사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우주만물들로서 원소로부터 시작해서 흙이나 나무나 돌 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잘 섬기려면 무엇인가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졌던 아브라함은 오직 말씀하신 하나님만을 따라 갔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당신의 말씀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으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그의 후손들에게도 복을 주셨다. 하지만 기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포로생활을 430년이나 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건져내어 시내산으로 오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서 꼭 지켜야 할 율법말씀을 주신다. 그런데 그 율법말씀의 첫 마디가 무엇인 줄 아는가? 첫째,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절대 두지 말 것. 둘째,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어 섬기거나 절하지 말 것이었다. 그렇다. 사람이 신적존재로서 무엇인가를 만들게 되면 그것이 다 우상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연약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다른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 보이는 어떤 형태의 우상들을 만들어서 자신의 부족신으로 섬겼다.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결국에는 애굽에서 보았던 신들처럼 하나님을 주조해 냈다. 그것이 바로 송아지 우상이었다. 또한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그들은 가나안백성들이 섬기던 신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만들어 섬겼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대체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나무나 쇠붙이, 돌이나 금은동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 자체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우상은 단지 여러 재료들의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천사들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둘째, 왜 우리는 우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이는 사람들이 우상이라는 것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절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우상에게 귀신들이 달라붙어 자기들이 우상의 흉내를 내면서 경배를 받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은 한 분 뿐이다. 하지만 천사들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고 가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만한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자신의 이런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절하고 제사하는 어떤 형상의 뒤에서 신의 노릇을 감당했다. 그들이 타락한 원인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신처럼 경배받기 원했기 때문에 그 속성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간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우상이 진짜 신인 줄 착각한다.
  천주교를 보라.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직접 마리아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사람들을 치료해주기도 하고 어떤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마리아 평생동정설이요 승천설이다. 까딱 잘못하면 귀신들의 속임수에 다 넘어간다. 이것이 귀신들과 금은동철이나 나무나 돌로만든 형상의 합작품이다. 이것이 바로 우상인 것이다.
 
  성도들이여, 신은 한 분 밖에 없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주 하나님만이 신이다. 다른 것은 다 가짜다. 귀신들이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우상을 조각하거나 부어만들지 말라. 그림도 그리지 말라. 오직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라. 그래서 우상숭배에 따른 저주를 받지 않고 축복받아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자신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으며, 자기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찾아 전부 부숴버리고 불살라서 가루로 만들어 없애 버렸고, 하나님의 율법말씀에 따라 그대로 살려고 했던 요시야왕의 자식들과 손자는 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을까?
  남유다 16대 요시야왕은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 곧 우상숭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그의 통치 18년동안 우상숭배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0년전에 우상을 제거하면서도 차마 성전 안에 있는 우상들은 제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26세 되던 해에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는 그는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나라 안에 있는 우상들 특히 성전 안에 버젓이 숭배되고 있는 우상들과 그것의 제단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기명들을 다 제거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 왕국은 요시아왕의 아들들의 시대에 철저히 파괴되었고 영영 망하고 말았. 왜 그랬을까? 
  우리는 성경을 읽어도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읽기 쉽다. 이를테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기 조상들의 저주는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게 된다면 나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했던 죄가 내게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았기 때문이다(갈3:13).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율법의 저주는 내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을 때에 내 후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아니다. 오늘날 예수믿는 자들의 대다수는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의 저주가 내 대에서 끝났으니 자신의 후손들은 결코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되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했다고 해도 우리의 후손들이 율법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는 자손 3-4대까지 넘어간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4-5, 34:6-7). 그러므로 내가 예수믿고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했다고 하더라도 내 자식은 내 아버지나 내 할아버지께서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이처럼 무서운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까?
  첫째, 요시야왕의 조부 므낫세처럼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그 죄가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므낫세왕은 남왕국에서 아주 선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왕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히스기야왕이 제거한 모든 우상들을 다시 들여왔다. 성전 안에도, 남유다왕국에 전역에도 우상을 위한 제단을 세웠고 또한 그것을 섬겼다. 그것이 어떤 죄이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 줄을 그는 몰랐기 때문이다. 우상들을 섬기는 것이 나라의 안정과 자기 자식들을 위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들과 장로들인 매7년마다 찾아오는 면제년 끝 초막절에 율법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다(신31:9-11). 하지만 이 일이 그때에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므낫세왕은 자신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인들은 자신들이 마리아나 성인이나 성상이나 화상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인 줄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유익할 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아니다. 천주교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마리아는 은총의 중재자다. 그래서 그들은 공의로운 예수님께서 직접 기도하지 않고 자애로운 마리아에게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어찌 하나님 이외의 기도를 받는 대상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한때 로마카톨릭의 사제이자 주교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신부는 천주교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9살 때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을 때, 신학교 생활을 중단하고 어머니에게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있는 영들인 자신을 사로잡아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으려는 귀신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에서 해 줄 수는 모든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즉 장엄미사나 종부성사, 교황의 면제권은 그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특히 마리아에게 비는 기도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마리아를 하나님처럼 섬기지만 그들에게 마리아는 우상일 뿐 진정 하나님이 아니기에 리베라의 어머니는 비명 속에 그만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우상숭배인지 몰라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가 우리 개신교에서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느 누가 추도예배, 장례에배드리는 것이 변형된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았었는가? 거의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르고 오늘도 추도예배, 장례예배를 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어떤 경우에는 시체를 교회 안에게까지 가져다놓고 말이다. 구약성경을 보라. 시체를 보면 7일간 부정하다고 했다. 시체를 가까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24시간에 안에 매장해버린다. 그런데 죽은 자를 놓고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예배의 형식은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라지만 죽은 자를 위해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누가 와서 그 예배를 받겠는가? 귀신들이 받는 것이다(고전10:20). 이처럼 자신이 행하는 것이 분명 우상숭배인데 그것이 우상숭배인 줄을 모르고 있다고 결국 회개치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의 천주교와 개신교인들이다.
  둘째, 요시야왕의 경우처럼 우상숭배의 저주가 자손 3-4대까지 내려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자기 후손에게 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요시야왕이 이러한 사실을 일부러 전해주지 아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요시야왕의 아들들은 부모로부터 우상숭배의 심각성에 대해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버지 요시야와 애굽왕 느고를 막다가 갑자기 전사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시야왕의 뒤를 이은 둘째아들 여호아하스, 첫째아들 엘리야김(여호야김)과 손자 여호야긴, 셋째아들 시드기야 모두는 그들의 3-4대 조상이었던 므낫세왕이 저지른 우상숭배를 자기들도 행하다가 그만 우상숭배의 저주를 받게 되고 만다. 비록 요시야왕이 회개했어도 므낫세의 4대후손인 요시야의 아들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바람에 그들을 무참하게 죽었고 두 눈이 뽑혀 포로로 잡혀갔으며, 그들의 다스러던 나라도 완전히 패망해버린 것이다.
   우상숭배하지 말라.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알라. 우상숭배, 이제 나 자신이 끝냈다고 자만하지 말라. 내 자식에게도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가르쳐주라. 그래야 자손만대에 복이 임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책이요 하늘의 책이다. 요한복음을 손에 쥐어 짜게 되면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부터 생명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태초에 계신 말씀 안에 이미 생명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아들(독생자)이요, 퍼도 퍼도 다하지 아니하는 생명수를 제공하시는 이시요, 생명의 떡이며,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얻게 하며, 부활생명이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분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지어졌으며,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요한복음 8장 14장을 보게 되면, 그분은 모세에게 나타났던 그분 곧 여호와이심을 영안을 열어 깨닫게 하신다(요8:2-25,28,58, 14:7,9, 18:6).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결론인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한 마지막 신앙고백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나님"으로 끝난다(요20:28).
그리고 최종적으로 요한복음은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단 두 마디로 요약해준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이다(요20:31).
 
그렇다면, 왜 사도요한은 20장으로 끝마치지 아니하고, 21장을 추가했을까? 그것은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두 번씩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긴가민가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알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하기 위해서요, 둘째, 사명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사명을 다시 고취시키기 위함이며, 셋째, 사도요한은 죽지 않고 예수님의 재림을 볼 것이라는 소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함이다.
특히 요21:1-14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회복의 주님이신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미 제자들이 부인을 경고하기에 앞서 당신이 죽고 나서 부활하게 되면 갈릴리로 갈 것이라고 예고하셨다(마26:32). 그리고 부활직후에는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를 통해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고 알려주었다. 결국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게 된다. 특히 갈릴리 출신의 7명의 제자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기다리는동안 베드로는 고기라고 잡아야겠다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자 나머지 6명의 제자들도 그의 뒤를 따른다. 하지만 밤새도록 던진 그물에 고기 한 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드디어 날이 새어갈 무렵, 어떤 젊은이가 뭍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시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보시오." 그러자 그곳에 그물을 내렸는데 그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사도요한은 즉시 자신이 처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던 그때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시 그는 뭍에서 외치는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 바다에 뛰어들어 예수님께 나아간다.
그때 이미 예수께서는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계셨다. 숯불에 떡과 물고기를 굽게 계신 것이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잡은 고기를 가지고 오라 하신다. 뭍에 끌어올려보니 무려 큰 고기가 153마리나 되었다.
 
그날따라 고기가 한 마디가 잡히지 않았는데 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렸을 때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을까? 그리고 왜 주님은 숯불을 피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또한 오병이의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굳이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 이는 다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그들로 하여금 새로 시작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자신의 부인으로 인해 주님 앞에 나아가기가 부끄러운 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숯불이 피워진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만 하면, 놀라운 풍성함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음과 비록 주님을 부인한 사람이라도 주님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과 만남의 장소를 갈릴리로, 그리고 숯불을 피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회복의 주님을 이 시간에도 찬양드린다. 실수와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물으시며, 언제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주님의 능력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1. 거짓선지자(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실체 
하나님께는 한 분이시지만 인간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삼위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으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으로, 오순절성령강림이후에는 성령님으로 나타나셨다. 그런데 사탄도 하나님을 삼위의 하나님의 방식을 모방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대신에 사탄도 삼위가 있으니,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그것이다(계16:13). 이 세 영들은 개구리같은 더러운 영들이다. 특히 용은 사탄마귀로서 천사이지만,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사람이다(계19:20, 20:10).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처럼 짐승도 사탄을 쏙 빼닮았다. 사탄마귀는 큰 붉은 용으로서 그의 머리가 일곱이요 열 뿔을 지녔다(계12:3,9). 그런데, 사탄마귀의 복사판인 짐승도 일곱 머리와 열 뿔을 지녔다(계13:1, 17:3, 7).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문자그대로 보면 이 두 짐승은 지체장애짐승들이다. 어찌 머리가 일곱개인 짐승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숫자들은 상징적인 숫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용과 짐승은 결코 지체장애천사와 지체장애짐승이 아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이 세상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며, '12'는 천국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10'이라는 숫자는 충만의 수요 안전의 수이다.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의 열이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는 '지혜'를 상징하고, 뿔은 '권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용과 짐승이 그들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가 완전하다는 것이요, 권세가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짐승이 나중에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두 마리의 짐승이 나온다. 첫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서 표범과 비슷한데 그 짐승의 발은 곰처럼 생겼고 그의 입은 사자의 입을 닮았다. 이것은 이 짐승이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헬라제국과 메대와 바사 그리고 바벨론의 대제국의 포학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단7:4~6). 우리는 이 짐승을 사탄진영에서의 그리스도 즉 '적그리스도'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 본문 계13:11-18에 보면, 두번째 짐승이 나온다. 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인데 그 모양이 어린양같이 생겼고 두 뿔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둘째짐승이 어린양되신 예수님을 모방하고 있으며,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그의 입은 용이 주는 입으로서 말로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다. 그리고 그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번째 짐승처럼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게 한다. 요한계시록이 상징적인 책이므로, 이 둘째짐승은 엄청난 권세로서 자기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에게 비행기와같은 것으로 하늘에서 폭격하여 없애버릴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첫째짐승에 앞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면서, 둘째짐승이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첫째짐승 곧 적그리스도를 위해 우상을 만든 다음, 그 우상에게 영을 집어넣어 말을 하게 하고, 그 첫째짐승의 우상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배케 하는 것이다. 아마 이 짐승으로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어린양되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했으나 나중에는 이슬람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가 백악관에 입성할 때 퍼포먼스를 했는데, 나귀를 타고 입성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의 말은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2번씩이나 대통령으로 뽑게 했으며, 세계의 정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곳에는 가차없이 하늘에서 불을 쏘아댈 수 있다.
 
 
2. 짐승의 표인 666의 실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고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가 칼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첫번째 짐승 곧 적그리스도를 위해서 충성스럽게 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첫째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띄워 세계의 모든 나라를 통치하도록 협력할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위한 우상을 세워 그 우상에게 절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짐승이 만드는 그 우상은 어떤 것일까? 다니엘서에는 '미운 물건'이라고 했고(단9:27, 11:31, 12:11),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마24:15)'이라고 했다. 이는 우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현재까지 상황을 고려래본다면, 아마도 모자신상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왜냐하면 둘째짐승이 첫째짐승을 위해 만든 우상이고, 그 우상은 첫째짐승과 연관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대변하고 있는 지금의 교황은 극진히 모자상을 숭배하고 있다.
 
문제는 적그리스도를 위해 거짓 선지자가 추진하는 작업이다. 첫째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자는 매매를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이기까지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3:15). 그런데 이 때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둘째짐승인 거짓선지자가 주는 표식이다. 그것은 비밀인데 숫자로 보면 666이라고 사도요한은 말했다. 666은 그 짐승우상의 숫자요, 그 짐승의 이름의 숫자이다(계13:17-18).
요즘 많은 베리칩종말론자들은 베리칩이 666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에게 사탄이 인치는 표가 666이기 때문이다. 인을 친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만약 베리칩이 666이라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성령으로 인친다고 하셨기 때문에, 믿는 자들의 이마에도 베리칩같은 것이 생겨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인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해주는 것처럼, 666도 사탄의 인으로서 그가 우상을 숭배함에 따라 사탄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마리아상 앞에서 그에게 절하고 그 앞에 기도하여보라. 그러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이마에 사탄의 소유의 표시가 영적으로 찍히게 될 것이다.
특별히 그 표가 '매매'의 표라는 때문에 그것은 결코 영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를 알면 이것도 금방 해결이 되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당시 로마는 자신이 지배하는 모든 도시들에 로마황제의 신전을 짓고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했다. 만약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으면 길드조합의 상업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길드조합원이 되어 상업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황제숭배를 해야 했다. 그래서 황제숭배를 한 자임을 표식으로 구별했는데 그것이 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가 황제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식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계13:16에 나오는 표는 우상숭배자들에게 주어지는 표로서, 당시에는 이것 없이 매매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성령의 표가 보이지 않은 것처럼 우상숭배하는 자들도 보이지는 않지만 사탄의 소유의 표가 쳐지는 것이다. 666은 결코 베리칩이 아니다. 이것 받으면 불못에 들어간다는 주장은 사탄의 속임수다. 666표를 받으면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지 베리칩을 받아서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탄의 표를 받아야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지 RFID칩을 소유했다고 불못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이단에 속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육체를입고 오심은 오직 대속을 위해 피흘리기 위함인데, 예수님의 피 이외에 다른 것이 구원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 이외에 다른 것이 결코 우리의 구원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한낱 라디오칩이 구원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상숭배하면 사탄의 표가 찍히는 것이다. 우상숭배하지 말라.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불못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계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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