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7(화)

제목: 종교개혁자들마저 놓쳐버린 참된 구원관이 이 한 권의 책에_2019-07-09(화)

https://youtu.be/80SjMdetz0c


"회개없는 구원론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

타락하다 못해 몰락해 가고 있는 한국교회!
오늘날 믿는 자들의 부정부패! 음행과 자살! 그리고 부의 대물림! 또한 탈선 그리고 외식함!!! 과연, 이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어느날 부턴가 회개가 빠진 지적 동의를 "믿음"이라고 굳게 믿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 없이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올 수 없느니라!!!"
"회개 없이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에 맞서 "오직 믿음"을 강조했지만, 그만 "회개의 중요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다시 종교개혁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헬라어원문을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사를 통해 어디서 잘못 되었고 어디서부터 빗나갔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여기 그래서 성경원문으로 대조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하신 그 말씀을 원문 그대로 재조명한 그 말씀, 주님께서 피를 토하며 외치신 바로 그 진리의 말씀! 그때 그 말씀! 원문 그대로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글이 있습니다.


● 종교개혁자들은 결국 무엇을 놓치고 말았는가?
● “오직 믿음”만으로 칭의(稱義)를 얻고 구원을 얻는가?
● 회개(悔改)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
●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안전한가?
● 구원은 만세전부터 예정(豫程)된 대로 성취되는가?
● 회개만하면 현재·과거·미래의 죄까지 단번에 용서되는가?
● 이신칭의(以信稱義)가 곧 구원인가?
● 구원은 믿는 순간인가 아니면 일생의 여정(旅程)인가?
●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된 이름은 절대 안 지워지는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노라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겸손한 영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정 이 시대를 바라보고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을 찢으며 보아야 하는 이 한 권의 책,
5년간의 숙고와 피맺힌 설교를 통해서 완성한 책,
이 책에는 25편의 구원론에 관한 참된 복음의 말씀이 빼곡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1월 26일에 성경적인 바른 구원론을 정리한 책 "회개와 천국복음"이 출시되었습니다(발해커뮤니케이션, 2017.12.20).
지금, 인터넷서점인 "갓피플몰"과 "11번가"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가. 갓피플몰 -  http://gpf.kr/3tUpY (클릭하세요)
나. 11번가 -  http://11st.kr/QR/P/1962337661 (클릭하세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화성시 동탄반석로 120(동탄역,1호선 병점역 하차),

제일프라자 8층 동탄명성교회(국수나무옆 지하주차장으로,107대가능)
(031)613-2001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정이철목사, 한 번 구원얻었으면 탈락하는 일이 없다는데 정말 그럴까?(마25:24~30)
https://youtu.be/x8MzvpxinqI

1. "바른믿음"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이철목사는 한 번 구원얻었이면 절대 탈락하는 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성경에서 무수히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말씀(아래와 나옴)은 대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실제로 구원에서 탈락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요?

 

2. 믿음과 회개를 통해 1차적인 구원을 받았으나, 결국 구원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에 믿는 자가 이렇듯 구원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인가요?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구원탈락의 경고들을 무시한 채, 회개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해서 구원에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3. 성경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였으나 구원에서 탈락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구약과 신약의 사례를 통해서 열거해보십시오.

 

(구원에서 탈락하는 구약사례의 대표는 출애굽1세대들의 파멸입니다. 그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이미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1차적인 구원은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멸망받고 받았습니다. 다시 마실 물이 없다고 먹을 음식이 없다고, 거대한 아낙자손이 사는 데에 자기들을 들여보내 죽게 한다고 원망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도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기자(히3:7~4:13)와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유1:5)가 거듭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충성된 자로서 발탁되어 왕이 되었지만 막상 왕좌에 앉은 후에는 자기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도 불순종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  제사장이해야 할 일을 가로채는가 하면, 아말렉족속을 완전 섬멸하라는 명령에도 대놓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분명 잘못했으면서도 백성 앞에서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추켜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요청하는 등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신약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첫째로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7:22~23의 말씀을 통해서 삼판때에 구원에서 탈락할 자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고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날에 비록 자신이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능력을 행했던 자라 할지라도, 주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가룟유다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주님께로부터 여러번 경고받았지만 끝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회개의 핵심은 뉘우침이 아니라, 통회자복하고 주님께로 돌아가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적으로는 한 달란트받은 자의 경우가 또 있습니다(마25:24~30). 한 달란트를 받은 자도 분명 주인의 종이었지만 주인이 무슨 뜻으로 자기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주었는지 알면서도, 회계할 때에는 주인을 아주 인색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속였고(거짓말을 했고), 게을러서 일을 안 한 것에 대해서는 주인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땅속에 파묻어두었다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결국 그는 바깥어두운데 곧 풀무불(지옥불못)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마25:30, 13:41~42,49~50).

  어디 그뿐입니까? 신약의 사도들도 구원타락의 사례와 경고의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일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생성된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성도들에 잘 보이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보이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려했지만 얼마를 감춰두고 다 드린 것처럼 행동하다가 그만 그날 징계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하기 위한 샘플적인 징계로서, 한 달란트받았던 종처럼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멸망받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행5:11~11).

  또한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하여 결국 사탄에게 돌아간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성도였습니다(믿전1:19~20). 또한 후일에는 믿는 자들 중에서도 믿음에서 떠나서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들의 가르침(교훈)을 섬길 자들도 있을 것인데, 그들은 자기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위선 가운데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딤전4:1~2). 이러한 사례들은 누가 과연 구원에서 탈락하는지를 잘 말해주는 말씀들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무려 5번이나 했습니다. 그중에서 히6장 4~6을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레마)와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히10:26~27에서는 진리를 아는 완전한 지식을 가진 자가 고의로 죄를 범했으면 그에게는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주어지지 않으며, 오직 심판을 받아 맹렬한 불 가운데 떨어질 일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약2:14~26),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도 출애굽1세대들의 탈락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유1:5). 그렇습니다. 이처럼 신구약성경에서는 믿음과 회개로 1차적인 구원은 받았으나 구원에서 탈락한 여러 사례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경고가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

 

4. 결국 믿음과 회개로 1차적인 구원을 얻은 자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더욱이 부활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계2~3장에서 사도요한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시기를,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5개 교회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셨으며, 만약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에베소교회는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시겠다고 했으며(계2:5), 사데교회에게는 생명책에서 성도들의 이름들 중에 누군가가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계3:5). 결국 죄를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성도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구원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5. 사도바울은 자신도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고전9:27).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최종적인 구원이라고 했으며(딤후4:18), 자신은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까지 믿음을 지켰노라고 말했습니다(딤후4:7~8). 또한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는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 자신이 이미 받은 구원을 성취해 가라고 명령했습니다(빌2:12).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떻습니까? 자신이 믿음과 회개로 얻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절대 구원에서 떨어질 염려는 없으니 적당히 살아보자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한 번 얻은 구원은 안전하니까 염려할 것이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다른 사도들과 장로들의 경고처럼, 구원은 죽을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충성되이 실아가다가 그래도 넘어질 때면 회개해야 합니까?

 

구원은 믿음과 회개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은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에 비로소 구원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구원은 일종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죄된 본성을 이겨내야 하고, 마귀와 귀신들의 유혹과 핍박도 이겨내야 합니다. 만약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는 그날 심판 때에 자신의 범죄 때문에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주의 말씀에 충성하시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가 천국의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2월 9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정이철목사,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는데 진짜 그럴까?(요10:25~30)

https://youtu.be/fJjjw6xr8iI

1. "바른 믿음"을 추구한다고 하는 정이철목사는 진리를 수호한다고 하면서, 한 번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하는 자는 기독교의 복음을 허무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정이철목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성경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않고 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신앙의 표본으로 삼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예수님의 말씀(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느냐고 추궁해야 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신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사상에서 벗어났으니, 거짓복음이요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게 맞는 주장입니까? 정말 구원은 칼빈이 이야기한 것처럼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주장게 되면 정말 기독교의 신앙을 허무는 것이 되는 것인가요?

 

2. 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곧 루터처럼 오직 믿을 통한 칭의를 강조하고, 칼빈처럼 만세전개인예정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을 수호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 그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 되는 것인가요?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자고 말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칭의"라는 개념도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눅18:13~14)과 사도바울의 말씀(롬4:14)에 나온 바와 같이 회개가 들어가야 온전한 칭의라고 말해야 옳지 않은 것인가요? 왜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도바울의 말씀은 제쳐놓은채, 루터나 칼빈의 주장을 따라가야 기독교의 복음을 수호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가요?
 

3.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를 얻는 것이 믿는 그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칭의는 하나의 서정(여정)이라고 말하면서, 칭의의 시작(창15:6, 롬4:3)과 인침(창17:10~11, 롬4:14)과 완성(창22:12,6~18, 약2:21~25)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 생애에 나타난 칭의의 과정(여정)에 대해 말해보시오.

 

 

4. 아브라함은 맨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해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에게 처음으로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그의 믿음을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첩 하갈을 들여 자식을 얻었기 때문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13년동안이나 외면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그래서 그가 받은 할례에 대해 사도바울은 그것이 죄를 씻어내는 세례와 같다고 해석했습니다(롬2:11~12). 그리고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 칭의가 성취되었다고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약2:23).

  그렇습니다. 칭의를 얻는 것도 어느 순간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게되는 이신칭의의 시작지점이 있고, 믿음이 흔들렸을 때에 칭의를 회복하기 위한 회개의 과정 곧 인침의 과정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순종을 통해서 칭의가 완성되는 과정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믿는 어느 순간의 시점으로 한정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도바울과 야고보장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실제 아브라함의 사례의 경우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받은 칭의가 흔들렸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과 회개로 얻은 채 있는 구원도 다시 흔들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회개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신칭의만을 구원의 핵심요소로 주장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아니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었으니 이미 얻은 구원을 취소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유인즉 구원은 인간편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며 그것을 성취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한 것에 대한 성취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정은 불변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이 성경에 무수히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러한 성경구절을 읽어보셨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성경구절을 다 읽어보더라도 거기에는 이미 구원을 믿음으로 얻어버렸으니 완성되었다는 완료형구문은 나오지 않으며(소망으로 구원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롬8:24은 예외), 대부분의 말씀들은  다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미래형구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참된 진리보수신앙이라고 우기면서 완료형의 문장이 있다고 제시합니다. 그러한 대표구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니다. 그 예는 요5:24, 요10:28~29, 엡2:8~9의 말씀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글성경말고 헬라어원문성경에서 이 구절의 원뜻은 어떤 것입니까?


5. 구원의 안정성을 주장하는 성경구절로서 요5:24과 요10:28~29과 엡2:8~9의 말씀은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한 구절도 완료형 구문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 현재형 구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에서 오히려 애매하게 번역하거나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특히 요10:29의 말씀은 아예 대놓고 오역해놓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이 보다 더 후반기(11세기이후)에 나옴으로 신빙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헬라어소문자사본을 그대로 번역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먼저 나왔으며 원문에 가까운 대문자사본에는 개역개정한글성경처럼 되어있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사상을 참된 신앙으로 우기는 자들은 예수께서 영생을 주시고 아무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는 자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상태에서 예수님에게 보내어주신 자들, 곧 예정된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헬라어대문자사본은 그러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다음 링크를 클릭하시면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https://dongtanms.kr/xe/board_ZOLp66/33288). 누군가가 성경을 번역할 때에 이 본문을 왜곡시켜 번역한 것입니다. 아버지게서 아들에게 보내주심으로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는 대상은 만세전에 아버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사람이라고 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주신 것은 "그들(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것"(중성 단수)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엡2:8~9에 나오는 본문도 현재형구문입니다. 완료형구문이 아닙니다. 다만 보조동사로서 완료형구문이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본동사는 현재 직설법 능동태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이렇게 번역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그 은혜로 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채로 [현재] 있으니...(엡2:8)" 그렇습니다. 이 구문은 그들이 그때는 구원을 받은 채로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구문이지, 그것이 완료형구문으로서 절대 변동사항이 없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혹시 옛날 들었던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래도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이 옳은 것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우리는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성경에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며 성취된 완료형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의 탈락을 경고하는 말씀들이 수두룩합니다. 내일은 성경에 그러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2월 8일(목)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정이철목사,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관을 말하고 있는가?(눅23:39~43)

https://youtu.be/DLz6EiWBwe4

 

1. 미국에서 "바른믿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정이철목사는 전 총신대교수이자 풀러신학교 교수이신 김세윤교수를 일컬어 "성경을 허무는 이단적 구원론"을 설파하는 자라고 매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유보적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단적이라는 것입니다. 김교수님은 칭의가 곧 구원의 완성은 아니며, 종말의 최후심판 때까지 칭의는 유보되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을 이단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랑과 진리교회 담임목사이신 벤자민 오목사님을 대표적인 행위구원론자라고 매도하였으며, 저에 대해서는 칼빈의 예정론이 교회를 망치는 이단사상이라고 했다고, 믿음 외에 올바른 행위가 구원의 요건이라고 당당하게 설교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섞어서 매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보태서 말하고 있으며 왜곡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칼빈의 사상 중에서 만세전개인예정론이 성경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절대 없음, 있으면 그것은 개인사역예정임). 또한 저는 다만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며 믿는 이들 중에서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코 믿음 외에 올바른 행위가 구원의 요건(조건)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성의 한 편 강도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즉 저는 구원의 요건으로 예수님의 말씀하신대로 믿음과 회개로 구원받는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이철목사는 제가 회개를 외쳤다고 기독교의 복음을 허무는 자이며 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가지지 않은 행위구원론자라고 매도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믿음과 회개로 구원얻는다고 주장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 그리고 어떤 신학자가 "회개"를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까? 참된 믿음을 가지려면 당연히 회개할 수밖에 없으니, 믿음을 가진 자는 회개해야 하며, 회개할 때에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이니, 믿음과 회개가 구원얻는 조건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성경을 축소해서 말한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는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말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구원얻는다고 했습니까?(막1:14, 마4:17, 요5:24, 10:27~28, 눅24:47, 계2:5,16,21~22, 3:3,19)

 

 

2. 목회자는 팩트를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거짓을 말해서는 아니 되며, 더해거나 왜곡시켜 말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기본 덕목입니다. 아니 인격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증거하기를 애써 왔으며,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100퍼센트 그대로 믿고 따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바른 신앙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넘어가도 아니 되며 그것들 중에 어떤 것들을 내 생각의 잣대로 계산하여 빼놓고 말해서도 아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신학사조나 어떤 교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에는 빠진 것도 있고 보태진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리의 기록인 성경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사실 훌륭하신 분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당시에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그들도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진리만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구원을 "오직 믿음"이라고(물론 이것만 말한 것은 아니나 후대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는 자가 많음) 강조한 것은 분명 실수한 것입니다. 루터라도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오히려 믿음"이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세전개인구원예정과 만세전개인멸망예정을 말해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오히려 만세전에 예정이 있었음을 말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에 없는 것을 보태서 말함으로써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하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3. 오늘날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지만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와 죄악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해도, 오순절 성령운동을 해도, 기름부음 사역을 해도, 치유사역을 해도 부패한 냄새는 하늘을 찌를듯 합니다. 그래서 요즘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 자체와 우리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깨끗하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진실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온갖 죄를 다 짓고 다니기 때문입니다(문제는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은 죄를 짓고도 왜 회개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믿고 있기만 하면 괜찮다고 혹시 죄를 지어도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그래서 구원은 안전하다고, 자신만큼은 꼭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기형적인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까?

 

 

4. 한국교회의 기형적인 신앙의 배후에는 사실 잘못된 구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바른 진리를 외쳤을 것이라고 믿었던 종교개혁자들마저도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있음을 분별하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계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처럼 사도가 아닌 자들은 분별하는 지혜가 부족했던 것 같음), 그리고 차마 목회자들만큼은 거짓을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들의 삐뚫어진 신학사상(그러나 성경은 삐뚤어진 것이 없습니다)이 그만 성도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종교개혁의 중요가르침 즉 "오직 믿음"을 강조하고, 이어서 성경에도 없는 "만세전개인구원예정"을 강조하는 바람에 발생한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회개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는, 오직 믿기만 하면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인 것처럼 가르쳐버렸고,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가르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병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관은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까? 아니면 "만세전개인구원예정"입니까? 아니면 "믿어도 회개함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5. 지금 한국교회는 온전한 믿음도 아니고 온전한 회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믿음도 온전한 것이 아니며, 회개도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첫째로는 믿음이라는 것이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나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과 핍박과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믿음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강조하지 않은 데서 온 것입니다(롬10:22).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 중에서 한쪽 측면이 빠저버렸거나 약화된 탓입니다. 다시 말해 공생애 때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잘 하고 있으나(주는 그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마16:16), 부활후의 예수님의 대한 신앙고백이 없거나 약화된 것입니다(요20:28).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분은 현재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주님(아도나이)이십니다. 그분은 부활이후 전능자로 복귀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이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지금도 창조주이십니다). 이것을 잘 모르니 하찮은 귀신과의 싸움에서도 비리비리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참으로 믿고 회개했다면 그는 그때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약 그때 죽는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믿는 즉시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수십년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믿음에 따른 열매들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루터처럼 해 버렸습니다. 야고보의 주장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값싼 구원을 전한 것입니다. 점검하는 열매로서의 믿음의 증거는 뒷전에 놓고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가르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교인의 문제점은 온전한 회개를 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첫째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에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히브리서기자도, 사도바울도, 사도요한도 그것을 중엄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은 비록 죄를 짓는다고해도 자신이 만세전에 예정되었다면 자신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구원의 초청에 응하여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던 것이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어떤 개인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영역이므로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으니 그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라고 가르친 것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이 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과 응답마저 필요없다고 생각해버린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하나님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데(물론 성경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에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를 하나님께서 강제로 하게 하실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그 죄가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냥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회개하지 않는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회개생활을 지금 어떻습니까? 여기에 문제는 없습니까?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믿고 회개해서 천국갑시다.
2018년 2월 7일(수)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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