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33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만 해도 마을마다 단골무당집들이 있었다. 그러니 해마다 운세를 보고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은 일상화된 삶이었다. 하지만 그결과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들어올 무렵 동시에 미국에서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이 나라를 살리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믿는 이들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국민의례라는 의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70년동안 처절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북한성도들이 당한 아픔과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아직도 시체를 가까이 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에스겔43장을 보라. 여기에는 우상숭배와 시체를 가까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가 고스란히 나온다. 추도예배, 장례예배, 그냥 이것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덧붙혀 개척교회들이 상가에 포진해 있는 것도 많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1. 들어가며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에게 잡혀간 뒤 20년이 지난 B.C.573년, 에스겔선지자는 새로 회복될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겔40~48장).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어 남유다가 멸망당한지 14년이 되는 해 1월 10일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에스겔을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은 회복되어진 성전이었다. 그때 에스겔은 동쪽으로 나있는 문을 통과하여 성전 안뜰로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다시는 과거의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남유다의 멸망을 자초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남유다의 멸망이유가 성전이 더럽혀진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성전(솔로몬의 성전)의 파괴됨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성전에 관하여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게 된다. 동쪽에 난 성전 문, 바깥뜰, 북쪽에 난 문, 안뜰에 있는 남쪽문과 동쪽문과 북쪽문, 안뜰 북쪽문의 부속건물들, 성전문의 현관,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골방들과 제사장의 방 그리고 성전과 성전을 벽 하나 사이에 둔 왕이 살았던 궁궐을 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왕과 왕의 궁궐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는지를 설명해주면서, 하나님의 성전 주변은 반드시 거룩해져야(구별되고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성전의 법이라는 것이다(겔43:12).

 

3. 남유다가 멸당할 수밖에 없었던 3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남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더렵혀진 성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을 남유다 백성들의 계속된 악행과 불의,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에스겔에게 보여준 것은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이긴 하지만 누가 우상을 숭배한 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는지를 알려주며, 특히 하나님께서 성전 가까이에 절대 두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왕의 죽은 시체를 성전 가까이 매장하는 것이었다고 말해주신다.

  다시 말해 남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3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가르쳐주신다(겔43:7).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 족속 곧 남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둘째, 남유다의 왕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셋째, 남유다의 왕들의 죽은 시체들을 성전 가까이에 둔 것이 그 이유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왕이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증한 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의 대표는 2가지 정도다. 하나는 육적인 음행이요 또 하나는 영적인 음행인 우상숭배행위다. 특히 육적인 음행은 그냥 단순한 음행이 아니라 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등의 혐오수러운 음행을 가리키며, 영적인 음행으로서 이방인의 우상들을 숭배한 것이 남유다멸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우상숭배행위는 사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거부하는 행위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신 것을 거부하는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십계명 중에서 1~2계명을 어기는 것에 해당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던져넣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중하게 보시는 것이다.

  특히 남유다의 우상숭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남유다의 왕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숭배했던 남유다의 왕들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그들의 시체를 멀리 치우지 아니하고 성전과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거기에 매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첫째는 그러한 일들이 매우 가증한 일에 해당되며, 시체는 부정한 것이어서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유다백성들은 이런 것들을 하나님 곁에 두었다. 둘째는 특히 왕들의 시체를 성전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거기에 매장함으로서 하나님과 이 세상의 왕들을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시체 자체만으로도 부정한 것이기에 사람이 죽었으면 얼른 밖으로 내어다가 빨리 매장해야 했다. 그런데, 왕이 죽었을 때 그의 시체를 성전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매장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것 때문에 진노하셨는지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는 시체를 자기곁에 두는 것을 싫어하실까?

  우리는 시체를 가까이 두는 것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바로 사탄마귀가 자기의 것이라고 접수하게 되기 때문이다(창2:14). 더러운마귀가 하나님 뽀짝 곁에서 시체를 접수하고 진을 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언짢아 하셨겠는가? 특히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들은 자신의 가족이 죽지 않는 한 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겔44:25, 레21:1~3). 시체 속에 귀신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체와 가까이 하는 것은 사탄마귀와 친숙해지는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자기의 가족이 아니한 시체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더렵혀서는 아니 되었다. 계속해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일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만약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가까이 하게 되어버렸다면, 그는 일주일동안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런 다음에도 몸을 씻고 제사를 드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 백성들과 왕들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분노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첫째는 백성이 가증한 일을 계속해서 저질렀기 때문이요, 둘째는 남유다의 왕들이 우상숭배를 버젓이 행했기 때문이요, 셋째는 자기들이 죽어서는 성전 가까이에 묻혔기 때문이다.

 

4. 오늘날에 교회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죽은 시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사람 곁에 두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시체는 이미 사탄마귀가 접수해 버린 물건과 같기에, 그것을 앞에 두고 향불을 피운다든지, 음식을 만들어 바친다든지, 그것에게 절한다든지, 그것 앞에서 통곡을 한다든지, 그것 앞에다가 꽃을 바친다거나 그 앞에서 묵념을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탄을 경배하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앞에 놓거나 마음에 생각하고 드리는 그 어떤 예배도 결코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례예배나 추도예배를 굳이 드리겠다면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때 누가 와서 그 경배를 받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때는 사탄이 보낸 귀신들이 와서 그 경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코 하나님이 오셔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사탄을 비롯한 귀신들은 천국에 있을 때부터 경배받기를 얼마나 원했던 자들이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경배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즉시 그 자리에 귀신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귀신들은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들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범죄할 때 더럽혀졌고, 하늘에서 쫓겨날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우리의 몸 혹은 삶 속에 치고 들어오게 될 때에 우리에게서 어떤 저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럴 때면, 질병과 가난에 빠지게 되며, 죽음과 무엇인가를 빼앗기는 아픔을 고스란히 당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의 처소인 교회 안에서 절대 장례예배나 추도예배를 드리지 말라. 그것은 저주받을 일을 스스로 사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보라. 장로님이나 목회자가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의 시체를 교회 안에까지 들려다놓고 예배드리지 아니하는가? 큰 일이다. 저주를 대놓고 불러들어오는 일을 교회가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성전 주변(가까이)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말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가까이에 더러운 것이나 부정한 것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영적으로 풀이해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먼저, 사도바울을 통해 성전과 교회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자. 사도바울은 다메섹도상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성전)가 교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전3:16~17). 하나님을 모시는 집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당신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누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거듭나게 되면,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되므로 그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믿는 성도들이 밖으로 나가서 더러운 행위나 부정한 행위를 계속해서 저지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고 만다. 대표적인 하나의 예를 보자. 예수님을 믿는 자가 계속해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그는 지금 우상숭배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회 밖으로 나가 후에 세상사람처럼 똑같이 죄짓고 욕심부리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러면 그는 죽을 때에 결국 버림을 당하고 말 것이다(히6:4~8).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계속해서 더럽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서 예배처소를 떠나서 밖에 나가더라도 항상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밖에 나가더라고 우상숭배나 악행을 결코 저질러서는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 때문에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죽을 때에 버림을 받아 구원에서 탈락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남유다백성들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상숭배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라고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하신다. 결국 남유다는 우상숭배의 죄값을 70년동안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시체를 성전 가까이 두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일들이다.

  이제 하나의 큰 예를 보자. 북한의 경우를 보자. 북한은 1938년 신사참배를 통해 우상숭배를 교회 안으로 들여왔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처참한 교회의 파괴였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값을 70년동안 치러야 했다. 그런데 남한은 어떠한가? 아직도 시체를 교회 안으로 들여다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는 예배(추도예배, 장례예배)를 드리고 있다. 큰 일이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개척교회들의 경우 대부분 상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가는 크게 확대해서 표현한다면 돈신을 섬기는 자들의 공간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것이 결코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할수만 있으면 거룩한 땅을 준비하고 거기에 교회의 건축물도 세우고 주변을 거룩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오늘 우리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우상숭배와 시체를 성전가까이 두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분노를 가져오는지를 배웠다. 우상숭배와 시체, 정말 우리가 더욱 더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는 주제들이다.

 

2018년 5월 11일(금)
정병진목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는 과연 무엇일까?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감없이 선포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죄들이 들어 있다. 우상숭배의 죄말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는 무엇일까? 오늘날에도 이러한 죄는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닐 것이다.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죄, 이사야가 언급한 3가지 죄는 과연 무엇일까?


1. 들어가며

  성경은 우리에게 2가지를 알려준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어떻게 행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에 관한 문제이며,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것은 죄를 어떻게 깨닫고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는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본문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메시야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또한 내가 과연 무슨 죄를 지었으며 그 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성경을 보고 있는데도 이것 외에 다른 것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보게 된다. 성경이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 것이다.


2. 이사야서에 대한 2개의 큰 구분

  우리는 지난 29번의 이사야강해를 통해서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집중해왔다. 다시 말해 이사야서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야는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살펴본 것이다. 하지만 이제 30번째 시간부터는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후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해내고 처리하는 데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행할 것인지에 대해 2가지 측면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인데, 하나는 이 본문은 과연 무슨 죄를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러한 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각한 3가지의 죄들

  이러한 차원에서 이사야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해본다면, 1장~39장은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40장~66장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사야 1장은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한 서론이자 핵심주제를 말하는 시간이다. 특히 사람이 지은 죄들 중에 어떤 죄가 제일 하나님 앞에 심각한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이 어떤 죄를 짓고 있을 때, 자신이 지은 죄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사야 1장에서는 3가지 죄를 언급한다. 그것은 배은망덕의 죄요(2~9절),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하는 죄요(10절~15절), 마지막으로는 우상숭배의 죄이다(21~31잘). 그리고 중간중간에 지은 죄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사1:24~26) 회개를 촉구하는 부분(사1:16~20)이 들어 있다. 우리가 비록 아무리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사야가 언급한 이 세가지 죄에 대해서는매우 높은 경각심으로 대하고 그것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언급하고 있는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의 참상은 어떠했는가? 그들이 짓고 있는 죄들은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은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4. 하나님 보시기에 심각한 첫번째의 죄

  첫째, 배은망덕의 죄를 알고 처리해야 한다(사1:2~9). 세상의 하찮은 미물인 소나 나귀라도 자신의 임자와 주인을 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고마워하나,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을 자식처럼 양육했던 하나님을 버린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경고하신다. 얼마나 더 매를 맞으리고 반역을 거듭하느냐고 말이다(사1:5). 이미 맞은 곳이 많아 성한 곳이 없는데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하신다. 이 세상에 가장 나쁜 것은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를 저버리지 말자.


5. 하나님 보시기에 심각한 두번째의 죄

  둘째, 형식주의적인 신앙생활의 위험성을 알고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사1:10~15).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상적인 왕국은 다윗왕국이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벌써 260년이란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제사제도와 안식일준수과 절기준수같은 것들은 완숙한 경지에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그들에게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분향이나 월삭이나 절기나 대회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들이 성전마당만 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들은 완전히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인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죄를 지으면 그들은 제사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지으면 양과 소를 바치면 된다는 식으로 이미 마음이 형식화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죄없는 동물이 죽는다는 것을 보고도, 죄를 미워하거나, 죄에 대해 애통해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더이상 자기에게 희생제물이나 기름이나 향을 가져오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왔어도 자신을 보이려고만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형식주의, 그것이 그들에게 배여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무서운 것이다. 이러한 죄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사람은 무력한 신앙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신앙생활에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미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죄를 짓게되면, 죄 때문에 아파하는 마음은 가지지 않은채 "그래, 오늘은 양 한 마리 잡지 뭐."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형식적인 제사에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사1:14).

  이러한 삶은 그때로부터 700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제사장들로 구성된 사두개인들은 제사에 사용될 희생제물로 돈 벌 욕심만 있었지 다른 데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장로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남들을 정죄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힘써야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죄는 내버려둔 채 오로지 남들을 정죄하는 데에 빨랐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두개인들과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고 책망하셨다. 형식적인 것으로 볼 때에는 그들은 흠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다. 그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돈벌 욕심에만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명예와 인기를 얻는 데에세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도 아낌없이 두 번씩이나 금식을 했으며,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렸다. 심지어 회향의 십일조를 드릴 때에는 좁쌀같은 알맹이마저일일이 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그러한 일을 행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6. 하나님 보시기에 심각한 세번째의 죄

  셋째, 그들이처리해야할 세번째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였다(사1:21~31).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숭배의 죄를 같이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신실한 성읍이었던 예루살렘을 창기가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사1:21). 특히 이샤야가 활동하던 당시 아하스왕 때에는 우상숭배의 죄가 아주 심각했다. 왕도 하나님을 등진채 보라는 듯이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만들어 섬겼으며, 자녀들을 몰렉신에서 불태워 바치는 죄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어떠했을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산에 있는 푸른나무, 상수리나무 아래에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들에게 분향하며 경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사1:29, 57:5, 겔6:13, 호4:13, 왕상14:23, 왕하16:4, 대하28:4, 렘2:20). 하나님의 백성에 있어서 제일 싫어하는 죄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1계명과 2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의 죄일 것이다. 혹시 앞에서 언급한 첫번째 배은망덕의 죄와 두번째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죄는 그래도 하나님께서 봐주실만하다. 하지만 당신을 섬기도록 선택받았던 백성이 당신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때에 자비로운 하나님이라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셨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기에 우상을 숭배할 수 있었다고 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상태에서도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동산에 기근을 보내고, 상수리나무가 말라죽게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 백성들은 칼에 쓰러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들을 정결케 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요소는 없을까? 아니다. 우리들에게도 우상숭배의 요소가 있다. 우리도 사두개인처럼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는 죄를 범하고 있으며(마6:24), 물질에 대한 탐심을 끝없이 펼치고 있다(골3:5). 또한 죽은 자를 놓고 예배드리는 우상숭배(추도예배, 장례예배)의 죄를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우상숭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질병과 저주와 가난에 3~4대가 고생하고 있다. 아니다. 그러면 아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명예와 물질과 쾌락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끝없는 탐심을 지금이라도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칼을 가시다가 그것을 내리칠 것이기 때문이다(시7:11~12).


7. 나오며

  그렇다. 이사야가 살던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3가지 죄는 계속되고 있다. 배은망덕의 죄,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죄, 우상숭배의 죄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럴려면 먼저는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꼭 감사하도록 하자.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항상 기대를 가지고 나오도록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만족하려 하는 우리의 태도와 생각을 과감히 버리도록 하자. 그것이 회개요. 그것이 살 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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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담의 타락이후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요일5:19). 그러므로 그때부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마귀인 것이다(요12:31, 14:30, 16:11). 그런데 이 사탄마귀는 사람이나 제국을 내세워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경배하게 하는데, 주로 이용하는 방법이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이때 사탄이 자기 앞에 내세우는 인물과 제국에 대해 사도요한은 "짐승(계14:9)"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짐승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계13:1을 보라. 그 짐승의 모양이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 같고, 그 입은 사자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은 열이라고 했다.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 이 짐승은 온전한 짐승이 아니다. 이런 짐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 상징적인 표현들인 것이다(단7:3~8). 단7장을 읽어보라. 이 짐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나와 있다. 그러므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 666)도 역시 다 상징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곧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쳐지는 사탄의 인이 바로 666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타락이후 모든 인류 가운데 우상숭배자들은 다 666인이 쳐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특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2.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것 2가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2가지를 지켜야 한다(계14:12).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것도 계속적으로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 동사들이 현재, 분사, 능동태구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할 자들은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들)이며,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아 할 자들은 이방인들의 교회라고 주장한다. 진짜 그럴까?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과 이방인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는 정말로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에서 제사할 수 있도록 제3의 성전이 세워질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는 천년왕국이 시작되며, 그때에 유대인들이 땅의 백성으로 참여하여 천년왕국에 들어온 이방인들을 구약의 율법으로 가르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다 틀린 주장들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말씀 중에는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율법이 있기도 하지만, 세상 끝날까지 모든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율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전제사나 제사장제도는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셨기에 더 이상 의미가 없음으로 폐해진 상태다.


3. 율법의 3가지 종류

  자, 이제는 율법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중에는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법이라고 아는 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더이상 율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율법중에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믿는 자들이 다같이 지켜야 할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십계명이다. 이것은 결코 폐해지지 않았다. 이제 율법을 간략히 들여다 보자. 율법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 첫째로, 율법에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이 있고, 둘째로는, 의식법들이 있다. 의식법들에는 제사법, 제사장법, 안식일법, 절기법, 음식법, 정부정법 등이 있다. 그리고 세번째로, 재판법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의식법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사역을 할 것인지를 예표하는 법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이러한 모든 것을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이 법들은 이미 폐지된 상태에 있다(호1:11, 골2:16~17). 그리고 음식법의 규례도 행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보자기 환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미 다 끝난 상태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행10:15). 한편 재판법은 유대인들을 재판하는 법이기에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법으로서 모든 믿는 자들이 그것을 다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4. 모든 시대에 다 지켜야 할 계명인 십계명

  그렇다면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이다. 십계명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그것을 폐지하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지키라고 하셨다. 어떤 율법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그때 예수께서는 십계명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그에게 물어보셨고, 그렇게 하는 자가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0:25~28). 그리고 산상수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어느것도 버려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다(마5:17~19). 오히려 십계명을 알면서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십계명을 한층 더 강화하셨다. 예를 들어 보자. 십계명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있지만, 예수께서는 형제더러 노하거나 욕하는 자가 살인자며 그런 자는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21~22). 그리고 십계명에서는 "간음하지 말라" 되어있지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말씀하셨고, 음행한 이유 없이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가는 것도 간음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5:28,32). 그렇다. 예수께서는 결코 십계명을 폐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강화하셨을 뿐이다


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러므로 계14:12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2가지 명령은 다 예수님을 믿는 오늘날의 성도들도 다같이 지켜야 할 명령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들은 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한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그렇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만 십계명을 통해서는 죄만 깨달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니다. 십계명은 죄를 깨닫기만 하라고 주신 법이 결코 아니다. 죄를 깨닫기 위해서도 주어진 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하는 법인 것이다. 그래서 계14장에서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명하면서, 성도들은 끝까지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계14:12).


6. 십계명 중 하나님 계명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십계명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우선 십계명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지켜야 할 계명이 4가지가 있고, 사람에게 지켜야 할 계명이 6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님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들을 조금 더 들여다 보자.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서 지켜야할 윤리는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다. 첫째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이며, 둘째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이며, 넷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약 예수믿는 사람이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면 그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또 묻겠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그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없다. 아니 전혀 없다. 계21:8에 의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에 지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십계명을 통해서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빨리 찾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신이나 우상은 대체 무엇인가?(출20:3~6) 그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맘몬신 곧 돈이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경고하셨다(마6:24). 그리고 사도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까지 말했다(골3:5). 그리고 이런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임한다고 했다(골3:6).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이제는 우상숭배를 그치라. 자신에 돈과 명예가 우상인가? 아니면 인기와 쾌락이 우상인가?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선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자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시고 천국에 데려가실까? 아니다. 자기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좋아하고 섬기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신이요 우상이기 때문이다. 세상노래도 너무 좋아하지 말라. 그것을 부르는 가수와 그 노래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지 말아야 한다(출20:7). 오늘날에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가 최고의 꼭대기에 앉아서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조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보좌 위에 자기의 보좌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앉아 모든 것을 다스리려는 마귀의 욕심과 비슷하지 않는가? 경배와 찬양도 문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을 통해 젊은이들의 혼을 빼놓을 뿐이다. 정말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그들의 행위는 정말로 거룩해져 있는가? 아니다. 찬양인도자들의 일탈행위는 어디서든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자신의 야망과 명성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출20:8~11). 안식일계명은 도덕법에서도 나오지만(출20:8~11) 절기법에서도 나온다(레23:3).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절기법상의 안식일법은 이미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도덕법상으로 안식일법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절기법상의 안식일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완성된 상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안식하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셨고, 믿는 자들에게 지금도 예수께서 안식을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마12:8). 하지만 도덕법상의 안식일법은 지금도 계승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주일성수'다. 우리는 일주일 중에 엿세동안은 우리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힘써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일성수인 것이다. 우리는 주일성수를 통해 우리의 육체가 아닌 영혼에 생명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안식과 평강을 얻는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한 주간을 어둠 가운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주일  가운데 주일에 주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때 회개하고, 이때 찬양하고, 이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일주일에 하루를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앙의 노정에서 끝내는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지키라.


7. 나오며

  그렇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십계명 준수다. 이것 없이는 우리는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접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이는 죄가 무엇인지 발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이는 성결한 삶을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이제는 십계명을 지키라. 그래도 안 될 때에는 간절히 부르짖으며 마음을 찢고 회개하라. 십계명을 내팽개치며 경홀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님을 알라. 십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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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믿는다고 고백하면 구원받는 것일까? 한 번 고백으로 그것은 영원히 유효한 것인가?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상을 숭배해도 괜찮은 것인가? 구원받는 믿음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믿는 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면 이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오늘은 구원을 받는 믿음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다뤄보자.

2016-09-03 2016년 9월특별새벽집회 마지막날
제목: 구원얻는 믿음 지키는 믿음(계14:12과21:8)
https://youtu.be/PQiqSamxzQQ


1. 들어가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은 첫째,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스리며 살라고 하신 것이다(1:27~28). 그런데 그때 단 한 가지만 하지 말라 하셨다. 선악과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2:17). 하지만 인간은 수 만 가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 가지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을 범하고 말았다. 인간은 결국 그 범죄의 댓가로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3:23, 6:23, 5:1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일을 하셔야 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는 것이었다(1:5, 9:22).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하시는 일도 있다. 그것은 창조하신 만물을 붙드는 일이고(1:3), 오늘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일(8:3~5)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으며 또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딤전2:4, 벧후3:9) 그것은 딱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가운데서 자신을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라고 하셨다. 또한 말을 할 때에도 창조적인 말을 사용할 것인지 파괴적인 말을 사용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라 하셨다. 둘째, 그것은 온 우주를 당신의 공의로 통치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무 조건없이 구원해버리신다면 마귀는 반드시 참소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기를 기다리시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다리신다. 만약 우리가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버린다면, 하나님은 영원한 우주의 범죄자인 사탄마귀와 귀신들을 처벌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분께 구해야 한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를 통해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기도해주실 수가 없고, 우리 대신 회개하실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대신 믿어줄 수도 없다. 그것은 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2.  구원얻는 믿음의 조건 2가지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구원얻기 위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사람이 구원얻기 위한 믿음 곧 신앙고백은 사실 2가지(17:3, 14:12). 한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하나는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요, 또 하나는 사도요한이 승천하신 예수님을 천국에 뵌 후에 천사로부터 들은 메시지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것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약 60년이 지났다. 이 때에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을 만나 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뵈었던 하나님은 그분이 이 세상에 있었을 때에 자기가 형님처럼 따라던 예수님이었다(1:9~20). 죽고 난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셨다(7:15~17). 예수님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 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필요한데 그것은 2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그것이다.


3.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서는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을 모른 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들 속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계명들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에 있는데, 하나님 한 분 이외에 다른 그 어떤 다른 신도 없다는 것이며, 그 외에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다 우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갖거나,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 자기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런 자는 결코 구원받을 없다. 어찌 하나님과 다른 신을 동시에 섬기는 자가 하나님만 계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놀랍게도 오늘날의 신앙고백에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가 빠져 있다(20:3~6).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창조주시요 그분만이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만이 신이시며, 그 외의 모든 신들은 다 귀신들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들은 신들이 아니라 다 우상인 것이다. 부어서 만든 것이든지 아니면 깎아서 만든 것이든지 다 우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믿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21:8).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4. 예수님에 대한 2가지 신앙고백


1)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신앙고백

이제 두 번째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자. 어느 새부턴가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 곧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이라는 고백을 하기만 하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다. 그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강조하던 빗나간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고백일 뿐이다. 16:16에 나오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은 단순히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신앙고백(Person)일 뿐이다. 그것도 육체를 입고 계셨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일 뿐이다.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와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둘 다를 믿어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는 그분이 승천하시어 원래의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셨을 때의 신앙고백이 빠져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다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합쳐질 때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온전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12제자 중에 하나였던 도마가 했다(20:28).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나의 () 주님이시요 나의 () 하나님이시니이다

유대인이었던 도마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그분이야말로 나의 아도나이(Lord)’시며 나의 엘로힘(God)’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나타난 바로 그 하나님 곧 한 분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성도들이여, 이제 우리의 신앙고백을 제대로 바르게 해보자.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베드로의 신앙고백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된다.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의 한 분 하나님이요 여호와이시며 주님이시며, 구약시대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2)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신앙고백 

아울러 우리가 구원얻으려면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Work)에 대한 신앙고백이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고(9:6)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믿음이다. 이때 우리 주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다(19:30). 이는 구원을 위해 더 이상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아들로 오시어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그분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최후통첩과 같기 때문이다. 그분이 바로 처음이요 그분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14:6, 4:12).


5. 구원얻는 믿음 그리고 지켜야 할 믿음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딤후4:7). 성도들이 구원얻으려면 사실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5:24에 의하면, 주님을 믿어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믿음은 갖는 것보다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환난이나 핍박을 만났을 때 주님을 부인해버린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사자굴이나 불 속에 던져진다 해도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믿음을 가질 때에 시작되지만, 끝까지 그 믿음을 간직하고 그 믿음을 지킬 때에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얻는 믿음이요, 우리가 지켜야 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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