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께서는 추수감사절같은 절기를 꼭 지키라고 명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 남자라 한다면 반드시 해 마다 무교절(유월절)과 칠칠절(맥추절)과 초막절(수장절)을 꼭 지키라고 명하셨다(출23:15-17, 신16:16). 그것도 자기 집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가서 지키라고 하셨고, 그리고 그리고 갈 때에는 빈 손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으며, 그때에는 꼭 그들의 신앙고백도 함께 하라고 하셨다(신26:5-10). 왜 그랬을까?
사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이러한 절기의 의식법들은 폐해졌다(골2:16-17, 호2:11). 그러므로 구약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 때문에 지옥 떨어질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기를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근본목적과 그 이유를 간과해서는 아니되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절기들을 지키라고 명하신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 절기를 지키지 아니하더라도 그것까지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시작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류는 다 성경에서 나왔다. 특히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수장절(초막절)에서 나왔다(출23:16, 레23:15-25, 신16:9-12).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해의 모든 농사를 마치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수장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 수장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집에서 잠을 청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주일동안(유대종교력 7.15-21) 예루살렘 성전이나 자기 집밖의 옥상이나 거리에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다(레23:42-43).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과거 광야에서 텐트치고 살았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신26장에 보면, 이러한 추수의 절기 때에 꼭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명령하고 있다. 그것은 대강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요지는 추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지소산의 맏물의 일부를 광주리에 담아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까지 가지고 가서 제단 앞에 놓고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해야 할 신앙고백이다(신26:5-10). 그 고백의 내용은 크게 2가지다. 한 가지는 그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다는 것과 그들의 조상을 하나님께서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기, 이 땅에서 재배한 토지소산의 첫 것이 있나이다."하면서 곡식과 과일바구니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그 내용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가나안땅으로 인도해들이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불편하고 번거롭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토지소산이나 과일바구니를 들고 성전까지 오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꼭 거기에서 신앙고백을 하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것은 그렇게 해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준 그 땅에서 오래 복을 누리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신4:32-35,39-4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어디인가? 처음 400년동안에 그 장소는 베일에 가리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성막으로 가져왔다. 성막이 세워진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자 그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 되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지파별로 흩어져 살았다. 그러므로 절기때가 되어야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주님께서 중앙성소로 나오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바알신이나 아세라 아니면 태양신에게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 신들에게 드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는다면 가나안땅에서 농사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물을 그냥 흡수하거나 흘려버리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비를 주시는 존재가 바알과 아세라신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곳에서는 태양신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에 중앙성소로 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토지소산과 과일을 들고 틀림없이 그 우상신들에게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맏물을 바치면서 반드시 신앙고백까지 동시에 하라고 한 것이다. 어떻게 되어서 자기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해 건져내어주시고 가나안땅까지 이르게 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온갖 저주를 다 받다가 그 땅에서 멸망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왜 하나님께서는 추수의 절기 때에 중앙성소에 나와 토지소산과 과일의 일부를 광주리에 담아 바치면서 신앙고백을 하라고 했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해마다 적어도 3번은 중앙성소까지 가서 하나님께 드리며 신앙고백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렇듯 구약절기의 근본목적을 상실한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리에게 지금도 온갖 땅의 소출을 맺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이러한 추수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알자. 그때 하나님께서는 주께 드리고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빈 바구니를 그냥 돌려보냈을까? 아니다. 그들은 다음 해의 풍년을 위한 비와 풍성한 농작물에 대한 약속과 축복을 가지고 돌아갔던 것이다.

 

오늘날 천주교인들이 실제로 마리아를 숭배하고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넘어 흠숭의 단계에까지 숭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인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천주교는 한 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자동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인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참된 회개를 못하는 구조에 싸여 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성경말씀을 가까이 못하게 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구조는 고해성사제도 때문에요, 두번째 구조는 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교리서와 교황의 칙서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본다. 더욱이 그들은 교황을 베드로의 계승자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만 천국설립권과 사죄권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마16:19을 근거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베드로 자신에게만 천국열쇠를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기만 하면 자신의 죄를 사함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18:18에 보면, 베드로에게만 주어졌다던 권리가 모든 사도들에게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막16:15-16절에 보면, 모든 믿는 자는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만 교회설립권이나 사죄권을 주었다는 것은 억지논리이자 억지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한을 바로 교황이 계승했다는 것은 역사를 무시한 처사다. 590년 내지 607년이 되기전까지, 다시 말해 교황제도가 천주교 안에 자리잡기 전까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만 그러한 권한을 주셨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교황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천주교에서 죄를 사함받으려면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죄권을 가지고 있는 교황을 대신하는 신부들이 죄사함을 선포하여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라. 성경 어디에 죄를 지으면 신부와 같은 교회의 목회자에개 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고 했는가? 그리고 그 어디에 신부와 같은 교회의 목자가 사죄를 선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없다. 사실 베드로는 로마의 첫번째 교황이 아니었다. 행15장에 보면, 최초의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의장은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갈2장을 읽어보면, 첫번째 교황이라고 불리던 베드로가 사도바울에게 책망을 듣기까지 하고 있다(갈2:11). 이신칭의의 복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베드로는 결단코 로마교회의 감독을 지낸 적도 없다. 그리고 교황권을 수여받은 적도 없다. 단지 로마에 전도하러 갔을 뿐이다. 그리고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것도 한참후에 나온 주장인데, 이것도 정확히 맞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 죄사함을 받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요일1:9, 시32:5). 그런데 천주교인들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 대죄를 저질렀다면 신부앞에 가서 그냥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만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어찌 자신이 지은 죄를 아파하며 애통해하며 울며 통곡하며 마음을 찢는 회개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천주교가 회개를 가로막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회개를 보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 통회자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욜2:12-13). 그리고 예수께서 유일하게 회개의 표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니느웨백성들의 회개를 보라(마12:41, 욘3:5-6). 니느웨백성들은 건성으로 회개를 외치는 요나 선지자의 경고를 들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 왕은 왕복을 벗었다. 보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온 백성과 더불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자신의 죄들을 통회자복했다. 그것도 40일동안이나 말이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에는 어떤 악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 도성에 내리고자하는 심판을 철회하셨다. 뒤로 미뤄버린 것이다. 그렇다. 회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왕하22장에 기록된 요시야왕의 경우를 보라. 요시야왕은 그가 왕위에 오른 지 18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나라가 왜 기울어져 가는지, 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는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26살이었을 때에 하나의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그가 성전보수명령을 내렸다. 그때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헌금함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여 그것을 서기관 사반에게 준다. 사반이 그것을 읽어보고는 왕에게서 그것을 또한 읽어드린다. 그러자 요시야왕은 자신의 조부 므낫세와 자신의 부친 아몬왕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와 3-4대 안에 남유다를 멸망시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도 왕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악을 애통해하며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낸다. 선지자 훌다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실행될 것이지만 요시야시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요시야왕이 마음을 찢고 회개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이 회개하려면 죄를 알아야 한다. 죄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천주교는 어떠한가? 천주교에서는 제2바티칸회의(1962-65) 전까지 성경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했다. 그리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지도 못하게 했다. 오직 천주교에서 만들어서 배포한 교리서와 교황의 칙서 등을 가르치고 배웠던 것이다. 특히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서 중 십계명을 보면,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두번째 계명이 빠져 있다. 그러니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 그러한 것을 우상숭배라고 가르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혹시 우상숭배금지조항이 빠진 십계명을 어겼다 할지라도 이런 것들은 대죄에 해당하니 신부에게 가서 고백하기만 그것으로 끝이다. 천주교는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고해성사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마음을 찢고 통회자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치 않는 것이다. 천주교는 고해성사와 사죄권이라는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죄용서의 방법이 천주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개신교에도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죄를 지어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를 받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개는 하거나 하지 않거나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개하면 과거의 죄가 사함받는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후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용서받는다. 단지 입술로만 아뢰는 것으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받은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의 보혈 아래서 긍휼을 구한 다음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다.

 

당신은 진정한 회개를 하고 있는가? 아니었다면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라.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회는 주교와 사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을 용서한다...”(1448).

성직자의 성사로 주교들과 사제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갖는다”(1461).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양심을 정직하게 살펴본 후 고백하지 않은 모든 중대한 죄들을 기억나는 대로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1493).

 

 

 
  오늘은 우리교회가 일곱번째 맞이하는 생일날이다. 7년전에 이곳 동탄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는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과연 우리 교회는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꼭 필요한 교회인가? 아니면 있으나마나 한 교회인가? 아니면 필요없는 교회이자 없어졌으면 좋은 교회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셨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것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었다(마16:18).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셨을까?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 천국열쇠를 주려고 하심이다(마16:19). 사실 베드로는 그 일에 첫번째로 당첨된 인물이다. 그래서 먼저 그에게 천국열쇠를 주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처럼 바른 신앙고백자들을 모아 교회를 세워갈 것이며, 그에게 천국열쇠를 주실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베드로처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국지옥 간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이 시대에 천국에 들어가는 자의 프로테이지가 믿는 자들이라도 고작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목사들도 지옥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무엇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교회에 관한 말씀 말고 또한 교회에 관해 우리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주신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마16장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른 신앙고백자들에게 천국열쇠가 주어질 것이며, 그렇게 해서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2-3장에  가 보면, 부활승천하신 후에 사도요한에게 주신 교회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베드로가 들었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들었던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예수께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이제는 하늘보좌에 앉으시어 교회와 우주를 통치하시고 있는 하나님으로서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때 주신 말씀을 읽어보았는가? 그 말씀은 축복의 말씀보다는 책망과 훈계의 말씀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왜냐하면 벌써 교회가 타락했고 벌써 교회가 세속화되어 있었으며, 벌써 교회 안에 불순물이 들어와 교회가 세상의 종교와 혼합되어 있거나, 그 신앙의 내용 자체가 왜곡된 신앙으로 변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통해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천국열쇠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반드시 천국에 골인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로부터 약 65년이 지나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교회에게주신 말씀에 의하면, 비록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라 할지라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는 성도들은 둘째사망의 해(불못)ㄹ르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계2:11,3:5).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와 더불어 사도요한의 그물깁는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마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최초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르 부르신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그물을 수선하고 있을 때에 부르신다. 그래서인지 베드로는 그문을 던져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임받았으며, 요한은 찢어진 교회의 그물을 수선하는 사도로서 쓰임을 받았다. 
  사도요한을 통해 부활승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들어보라. 거기에는 2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하나는 교회가 더 이상 바알신앙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며 그것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교회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 중 잘못된 신앙고백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 나 자신은 안전할 것이며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빨리 안약을 사다가 발라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하며, 자신의 더럽고 부패한 모습을 회개한 뒤 흰 옷을 입어야 하며, 불순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금과 같은 신앙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한다(계3:8). 오늘날로 표현한다면, "한 번 구원받았다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니, 내가 받은 구원은 안전하다다."라는 것들이다. 만약 그 교리가 맞다면, 왜 예수님께서 그러한 자들 중에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고 말씀하셨겠는가? 그리고 믿는 자들 중에서 우상숭배자들과 음행하는 자들을 불못에 던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겠는가?(계21:8). 그러므로 자신의 지옥갈 죄들을 전혀 보지 못한채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 때문에 지금도 교회는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과연 바른 교회는 어떤 교회를 가리키는 것인가? 주님처럼 성도들을 천국보내는 교회가 바른 교회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무엇 때문에 넘어지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는 교회가 바른 교회다. 교회가 크다고, 시스템이 좋다고, 제자훈련을 받은 리더가 많다고 좋은 교회가 아니다. 결국 영혼이 천국들어가게 해 주는 교회가 진짜 교회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에서 우리 영혼의 돌봄을 받아야하며, 이러한 영적 진리들을 깨닫고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님께서 이 시대에 바라는 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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