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산에 있는 돌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살이에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배워야할 교과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왕은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보았으면서도 권력에 취했고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건 그의 비참한 죽음이었고 나라를 남의 나라에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또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04-15(수) 수요기도회
다니엘강해(06) 벨사살왕 때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와 다니엘의 해석(단5:1~31)
https://youtu.be/mGUnnevC3Eo [혹은 https://tv.naver.com/v/13379399 ]


1. 들어가며

  다니엘서는 총12장으로 구성된 예언서이자 계시서이며 역사서인데, 1장부터 6장까지는 각장마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한 가지씩 있다. 다니엘서 5장도 그중에 마찬가지다. 다니엘서 5장에서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더니 석회벽에다가 어떤 글자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메네 메데 데겔 우바르신" 대체 무슨 암호일까? 아람어 내지는 히브리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4마디의 말은 왜 바벨론의 술사들이 해석은커녕 읽지도 못한 것일까? 읽을 수 있었으나 해석을 하면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못읽는다고 했던 것일까? 당시 세계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왜 이 글자를 해독하지 못했던 것인가? 오늘 이야기는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벨사살왕이 자신의 통치 3년만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석회벽에 쓰인 이 글자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2. 벨사살 왕, 그는 누구인가?

  느부갓네살왕은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왕이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던 걸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했으며, 그 안에 세계 제7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지었던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나보폴랏사르(B.C.625~605)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B.C.605년에 왕위에 올라 무려 43년간을 통치하고 B.C.562년에 사망했던 신바벨로니아 제국의 제2대왕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두번째로 꾸었던 "큰 나무" 환상과 그리고 그 해석을 다니엘로부터 들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광인(낭광증)이 되고 만다. 그후 무려 7년간을 들판에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들짐승과 함께 살아간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 일은 B.C.577~571년에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는 B.C.571년이 되자 그는 다시 왕직에 복원되었고, 9년간을 더 통치하다가 자신의 아들 아멜마르둑(에윌므로닥)(B.C.562~560)에 물려주고 사망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인 다니엘서 5장에 등장하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인 벨사살은 대체 누구인가? 그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 대부분이 언급했던 것 곧 단5장에 나오는 벨사살왕은 바벨론의 제6대왕이었던 나보니두스(B.C.556~539)년의 아들일까? 그런데 이 벨사살은 실제로 왕은 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달신을 섬기기 위해 데마에서 약10년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가 일찌감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직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왕은 아니었지만 왕직을 수행하다가 메대왕 다리오와 바사왕 고레의 침략을 받고 사망했던, 신바빌로니아제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놀랍게도 다니엘 5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서 언급되고 있다. "벨사살은 ...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그릇을...(단5:2)"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왕의 어머니였던 태후(아미티스)도 자기 아들 벨사살 왕에게 "당신의 부친의 때에"라고 언급하고 있으며(단5:11), "당신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단5:11)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벨사살 왕 자신도 다니엘에게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온 유다자손 중의 [바로] 그 다니엘이냐?"(단5:14)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자신도 벨사살왕에게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왕위)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단5:18)"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니엘은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단5:22)"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다니엘서에서는 전적으로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인 것을 언급하고 있다. 고로 우리는 벨사살왕이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왕이라는 증거가 성경 이외에 있을까? 있다. 외경으로 알려진 바룩서에 1장에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 나와 있다. "그리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그 아들 벨사차르(벨사살)가 오래 살도록 기도하여, 땅에서 그들의 날들이 하늘의 날들처럼 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 눈을 밝혀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그의 아들 벨사차르(벨사살)의 그늘 아래 살 것이며, 오랜 나날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총애를 받을 것입니다(바룩1:11~12)."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바룩서는 남유다가 예루살렘에 점령당한 뒤 5년 후에 쓰여진 외경으로서 예언서 중의 하나다. 한편 연대기를 연구해 온 김명현교수(한국과학연구소 소장)는 그의 다니엘서 강해를 통해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서, 느부갓네살왕이 광인병에 걸려 들판에서 지낼 때에 왕위에 올라 3년을 통치했으며, 그가 죽자 메데왕 다리오(그의 외삼촌)가 그 나라를 4년간 차지했다가, 느부갓네살(다리오의 매형)이 제정신이 돌아오자 다시 나라를 그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후 느부갓네살왕은 9년간을 통치하고 그의 아들 아멜마르룩(에윌므로닥)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3. 벨사살 왕은 왜 죽임당해야 했는가?

  벨사살왕은 왜 왕위에 오른지 3년만에 [자신의 신하에 의해] 죽임당해야 했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교만했기 때문이요, 둘째,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며, 셋째, 그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는 아주 교만했으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견고한 대제국을 마치 자기가 세운 것인량 과시하기를 좋아했으며, 그래서 귀족들 1,000명을 불러다가 대잔치를 벌이며 자랑을 했던 것이다(단5:2~3). 또한 그는 왕후들과 후궁들이 많다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으며(단5:2~3),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었던 왕으로서의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자신의 것인량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하늘의 하나님보다 높이며 즐거워했던 것이다(단5:18,23).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신성모독의 죄와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것이다. 먼저 그는 귀족들을 모아놓고 벌인 잔치에서 술에 취한 나머지, 그의 부왕이 예루살렘에서 빼앗아온 성전기명 중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다가 귀족들과 자신의 처첩들의 술잔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단5:3,23). 사실 그는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매우 무시했던 왕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 선왕이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다니엘을 내쳐서 어디론가 보내버렸고, 남유다에서 가져온 성전기명을 향락의 도구로 사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팽개쳐버리고, 오히려 금과 은과 구리와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들 우상들을 찬양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단5:4,23).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긴 것은 남유다 백성의 죄로 인한 것이었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었는데, 그는 바벨론의 신들(마르룩, 벨, 느보 등)이 남유다의 신(여호와)보다 월등한 신으로 착각해버린 것이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이 아닌 금은동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던 것이다.

  셋째로, 그는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결과를 결코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왕이 왜 왕궁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고 있는지를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선왕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왕위와 권세와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을 신격화하려다가 결국 하나님께 철퇴를 맞고 광인이 되었다는 것을 결코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적인 교훈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자는 왕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버림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하에 의해 죽임당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4. 벨사살왕은 어떻게 석회벽에 쓰인 글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나?

  벨사살왕은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에 의해 쓰여진 석회벽 글자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먼저는 사시나무떨듯 떨었던 왕은 이제 정신이 나간듯이 큰 소리로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석회벽에 기록된 글자가 대체 무슨 뜻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를 못했다. 그 글자의 해석은 커녕 읽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후(느부갓네살왕의 왕비)가 귀족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왕 앞으로 나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왕에게 전에 느부갓네살왕 때 있었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왕의 부친 때부터 봉사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의 부친은 꿈해석을 통해 그를 모든 바벨론의 술사의 어른으로 삼았는데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라고 알려주면서 그를 부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당시 왕은 다니엘과 그가 믿는 하나님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자신이 왕이 오르자, 다니엘을 내치고는 어디론가 보내버렸고 또한 그가 믿는 신을 모욕주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은그릇과 금그릇을 술잔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챈 벨사살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오게 한다. 그리고 그를 만나자마자, 그의 신분이 원래 포로가 아니었더냐는 투로 말한다.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라는 자냐?(단5:13)" 하지만 다니엘은 왕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후 왕이 그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들을 사양하고는 왕의 소원대로 글자를 해석해 드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선왕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벨사살왕은 마음을 낮추지 못하고 교만해졌으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칫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는 왕이 성전기명을 술잔으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으며(단5:23a), 아무 의미없는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했음을 지적한다(단5:23b). 그리고 하나님이야말로 왕의 호흡(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왕의 모든 앞날을 작정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단5:23c). 그리고 는 석회벽에 쓰여있는 글자를 해독하기 시작한다.

 

5. 왕궁 맞은편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그때 왕궁 맞은편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다. 이 문장은 아람어이지만 실제 석회벽에 쓰였던 글자는 아마도 히브리어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만약 그 언어가 아람어였다면 아람어를 나랏말로 사용하고 있는 갈대아술사들이 그것을 읽지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그때 기록된 말은 아마도 히브리어로서 "한 마네흐 한 마네흐  그리고 하나의 반 세겔"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마네흐"와 "세겔"은 돈을 세는 단위인데, 20게라가 모이면, 한 세겔이 되고, 60세겔이 모이면 한 마네흐가 된다(겔45:12). 그렇다면 아람어로 볼 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문장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세어보고 세어보고 [무게를] 재어보니 [부족함이 보여서] 나누이게 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우바르신"의 "우"는 "그리고"라는 뜻이며, "바르신"은 "페레스(나누다)"의 복수형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은 첫째, "메네"는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계산하고 또 계산해보았다는 뜻이다. 이 딘어가 두 번씩이나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신중하게 그리고 아주 공의롭게 세어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째, "데겔"은 그의 함량을 재어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다. 셋째, "우바르신"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나누어서 다른 나라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결국 바벨론은 훗날 메대와 바사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처럼 다니엘의 해석은 정확했다. 왜냐하면 그날 밤에 벨사살왕은 [신하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나라는 훗날 나뉜채 메대와 바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금도 세어보고 달아보고 계신다. 그때 우리도 벨사살왕처럼 부족함이 있으면 아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알곡이 되도록 더욱더 성품과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다음주에 공부하겠지만,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이 죽게 되었을 때(B.C.574년), 바벨론이 곧장 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잠깐 바벨론이 벨사살의 외삼촌이었던 메대왕 다리오에게 넘어갔다가, 4년 뒤에 느부갓네살이 정신이 온전하여지자 그 나라를 또한 다리오가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왕에게 다시 되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년 뒤에 바벨론의 7대왕 벨사살2세 때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도 역시 심판하시며, 우상숭배자들도 심판하신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사치와 향락에 쓰는 사람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더욱이 역사의 현장을 보았으면서도 그 교훈을 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벨사살왕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세어보고 달아보시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에 우리의 무게가 합당하게 나간다면 이후에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더 값지게 쓰임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은 하나님이 달아보실 때에 과연 주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버림받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질문해보자.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차례가 된 것 같다.

 

2020년 04월 1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고전10:14~22)_2019-09-25(수)

https://youtu.be/zJZU6mmOVmY

 

1. 왜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성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아닌 고기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이것은  무엇이 깨끗하고 더러운지 그리고 무엇이 속되고 거룩한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정 부정으로 보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기본적으로 부정합니다(더럽습니다). 그리고 성 속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그리스도인이 먹는다는 것은 더러운 것과 거룩한 것이 충돌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체를 놓고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하는 것인지와 일맥 상통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거룩한 일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체를 교회에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시체는 부정합니다. 사망이 임했기 때문이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시체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이 충돌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의 상황으로 보면 좀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시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예수님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체가 생명을 얻어서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 것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체를 교회에 가져다놓고 예배를 드리면, 우리가 시체는 다시 살려낼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 곁에 바꿀 수 없는 더러운 것을 가져다놓는 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만 두고 보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너희가 일부러 나를 더럽히려고 시체를 가져다놓았구나"하시면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가져다놓고 예배드려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2.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왜 죽었나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조금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나니와 삽비라 부부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이 서로 약속하고는 재산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둔 상태에서 재산을 전부 가져온 것처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날 즉사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짓말로 속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정 부정과 성 속의 관계에서 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속이려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거짓증거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을 일부러 같은 곳에 갖다 놓으면 충돌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더럽혀질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아나니라와 삽비라를 징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3.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가나안의 첫성인 여리고성이 정복될 때에 왜 아간과 그의 식구들이 죽임당해야 했나요?

  여호수아의 군대는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수6장).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성으로부터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가나안의 첫 성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첫 열매로 서 그 성을 당신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는 살아있는 것은 다 죽여서 바쳐야 했고, 물건들은 불에 지나가게 하여 남은 것만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중에서 일부(시날산의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나가는 금 덩이 한 개)를 자신의 장막을 감추었는데, 그것을 가족들도 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할 물건을 훔쳐내어 감추었던 아간과 그것을 묵과했던 모든 가족들을 찾아내게 하였고, 아간과 그의 가족들 전부는 바쳐졌던 여리고성 사람 대신에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사람에 따라 하나님께서 조금은 잔인하시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정 부정과 성 속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거룩한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것의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훔치는 것은 죄를 짓는 일로서 하나님께 바친 것을 더럽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 자신은 더럽혀질 수는 없는 것이므로, 아간과 그의 가족에게 죄값을 물어서 그 가족이 죽임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4. 성도가 성찬식을 잘못 행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성도가 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을 "성찬식"이라고 부릅니다. 성찬식은 거룩한 예식입니다. 거룩한 성령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이셨으나 인간으로 오셨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몸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게 되면 주의 몸과 피에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한 떡에 참여하는 성도가 미움과 시기 때문에 서로 분열하고 당파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큰 일 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죄를 범하는 것은 징계감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더럽히는 것이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성찬식을 잘못 행했다가 그만 약하게 되기도 하고 병들게 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죽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고전11:27~30).

 

5.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왜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의 사자를 책망하셨나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의 사자(말씀전달자)에게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도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계2:14, 20). 즉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는 입장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일컬어 버가모교회의 경우에는 "발람의 교훈(가르침)"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명명하고 있고, 두아디라교회에서는 "이세벨의 교훈(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두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성도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좋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틀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모신 자여서 거룩하게 된 자들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상의 제물은 이미 우상에게 바쳐진 더럽혀진 음식이므로, 이것을 먹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불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면 그는 반드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본인은 침상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은 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자기의 자녀들이 죽어나가게 될 것입니다(계2:22~23). 그리고 결국에 자신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계21:8). 그러므로 성도들은 절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2019년 9월 25일(수)

정병진목사 


남유다는 왜 멸망을 당해야 했는가? 무슨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거둬들이지 못하게 했는가? 오늘날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과연 무엇과 깊은 관련이 있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에스겔23장의 말씀에 잘 나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우상숭배 행위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우상숭배행위 가운데서도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우상숭배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은 칼을 빼신다. 더불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권력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칼을 빼신다. 대체 남유다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현재 우리나라도 패망하지 아니하려면 에스겔서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깨우쳐야 하는가? 오늘은 그것을 들여다보자.

2019-09-11(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1)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과 그들에 대한 심판(02)(겔23:1~49)
https://youtu.be/X1hBetp7KVQ


1. 들어가며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기본적인 속성은 그분은 한없이 오래 참으시며, 인자가 풍부하시고, 긍휼히 많으시다는 것이다(출34: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참으시지 않으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심판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언제 심판을 집행하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언제 분노를 거둬들이지 아니하시고 분노를 폭발하시는가?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오홀리바"라는 별명을 가진,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남유다, 진정 왜 멸망당하고 말았는가?

 

2. 에스겔 23장의 위치는?

  그렇다면 실제로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이 적나나하게 기록된 부분은 에스겔과 16장과 23장이다. 사실 에스겔서에서 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에스겔 16장과 23장이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준으로 이전에 쓴 것과 이후에 쓴 것으로 나뉘는데, 멸망 이전에 쓴 심판에 관한 예언은 1장에서부터 24장까지 나온다. 그리고 25장부터 32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에 위치한 이방나라 7개국에 관한 심판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준으로 이후에 쓴 것 곧 회복에 관한 쓴 예언이 바로 33장부터 39장까지에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40장부터 48장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에 대한 환상이 나온다. 참골, 성전의 회복에 관한 환상은 소위 제3의성전 건축에 대한 환상이라고 해석하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스겔서 40~48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전인 '교회'에 관한 환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이것은 시간이 지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고로 에스겔서 23장은 예루살렘 멸망을 다루는 에스겔24장 직전에 주어진 예언으로서,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처럼 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단하신 것이다.

 

3. 그렇다면 남유다는 왜 멸망하게 되었는가?

  에스겔 23장에 의하면,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은 딱 2가지로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자식을 불에 태워 이방신들에게 바치는 우상숭배의 악까지 행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변의 강대국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 지도자들 특히 정치나 종교의 지도자들은 과연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찾아가 부르짖어야 하는가? 그것은 당연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어찌하면 그때 하나님은 영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남편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남유다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남편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남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에 이어 130년만에 멸망을 받는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4. 남유다의 우상숭배 행위와 주변의 제국을 의지하려는 태도는 어떠했는가?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우상숭배 행위를 저질렀다. 아니 북이스라엘보다 더했으면 더했다. 그런데 남유다의 우상숭배를 북이스라엘의 행위보다 더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왜냐하면 남유다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 곧 하나님의 성전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이 없었기에, 그들은 애굽의 신들을 본따서 만든 가짜 성전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남유다에 비하면 북이스라엘이 워낙 땅이 넓다보니 가짜 성전을 2개씩이나 만들어놓았다. 북쪽에는 '단'에 만들었고, 남쪽에는 '벧엘'에 그것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그런데 그 모습은 애굽의 신들이었던 송아지 모양의 우상들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다른 별명으로 부르셨는데, 남유다는 "오홀리바"라고 부르셨고, 북이스라엘은 "오홀라"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오홀리바'는 "그녀 안에 내 장막이 있다"는 뜻이고, '오홀라'라는 "그녀의 장막"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유다에는 하나님의 처소가 예루살렘에 있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만든 가짜 장막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남유다도 북이스라엘만큼이나 우상숭배를 하다가 결국에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유다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은 대체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은 얼마만큼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는가? 남유다 사람들이 섬겼던 우상들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그들의 하늘의 신들을 섬겼다. 그것은 하늘의 태양신(니므롯)과 태양신의 아내인 하늘황후(세미라미스) 그리고 태양신의 아들인 담무스를 신으로 섬겼다. 이것들은 고대 바벨론의 신들이다. 둘째, 가나안 우상들을 섬겼다. 가나안 우상의 대표는 바알과 아세라 신이며, 모압신은 그모스, 암몬신은 몰렉(몰록,밀곰)이었다. 그런데 몰렉신은 상당히 잔인하여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의 2개 가운데 하나우상숭배인데, 그중에 우상숭배 가운데서도 자기자신을 불에 태워 신에게 바치는 우상숭배행위였다. 왜 죄없은 어린 자식을 불에 태워바치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진노하고 또 진노하셨다. 그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 인신제사 행위는 남유다 12대 왕이었던 아하스왕 때에 일어났고, 제14대 왕이었던 므낫세왕 때에 있어서 결국 므낫세 증손자때 남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된다.

  참고로, 아하스왕때의 인신제사 행위를 조금 살펴보자. 그 이야기는 열왕기하 16장에 나온다. 그 이유는 북이스라엘의 제18대 왕이었던 '베가'가 아람나라의 왕이었던 '르신'과 손잡고 남유다를 침공해올 때였다. 그때 남유다의 아하스왕은 16년간 통치하면서 이방신들을 섬기되 자신의 아들을 불가운데도 지나가게 하였다. 몰렉신에 제사한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산당들(높은 산들 위에 있는 사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겼다. 그것은 태양과 하늘황후 그리고 담무스에게 제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 중에 히스기야가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작정하기는 했으나 심판을 연기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왜냐하면 남유다 13대 왕이었던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보기드문 선한 왕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찾았던 왕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분노를 불일듯 일어나게 한 것은 아하스왕의 인신제사행위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앗수르제국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아람나라와 북이스라엘이 처들어오자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은금예물을 보내면서 말이다. 결국 앗수르 제20대 디글랏 빌레셋왕은 아람나라를 패망시켰고, 북이스라엘을 물리쳤다. 그러자 아하스왕은 앗수르왕의 알현차 아람나라의 수도인 다메섹으로 가서 앗수르왕을 알현하였다. 그런데 그가 그곳에서 본 아람나라의 제단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으니 그는 그 제단을 그림을 그려 남유다의 제사장인 우리야에게 보냈는데, 우리야는 왕의 지시에 따라 성전의 번제단을 옆으로 치우고 그리고 물두멍까지 치우고 그 자리에 아람나라의 제단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겠는가? 아마 히스기야만 아니었다면 그 시대로 남유다도 끝장났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왕으로서 아하스왕의 뒤를 이은 히스기야는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들과 아세라목상을 없애버렸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우상처럼 거기에다가 분향하니까 그것도 부수어 없애버렸다. 그리고 유월절제사를 회복시켰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한 왕은 히스기야의 아들이었던 남유다 제14대 왕이었던 므낫세였다. 그는 12살에 왕위에 올라 무려 55년을 통치하여, 67세가까지 남유다를 통치했는데, 그는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서 가장 많은 우상숭배를 자행한 왕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기를 책망하는 이사야선지자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다. 그리고 그는 가나안 우상들은 바알들과 아세라신도 섬겼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신으로 섬겼으며, 아히스왕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도 인신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신접한 자와 무당을 등용하였고, 아세라 목상을 하나님의 성전 안에까지 들여와 세워놓았고 그를 숭배하였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멸하려고 작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역대하33장). 만약 자신의 부친 히스기야와 그의 어머니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므낫세 왕때에 남유다는 아마 끝장났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회개시키려고 앗수르의 침공을 받게 허락하셨다(므낫세 나이 60세경에). 그는 쇠사슬에 묶여 앗수르의 수도인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셨으니, 앗수르왕이 그를 돌려보내주었다. 그러자 그가 돌아와서는 그는 하나님의 전에 있는 우상들을 다 제거하고 산당과 제단들을 다 헐어버렸다. 즉 그는 이때부터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 아몬(남유다 제15대왕)이 뒤를 이었는데, 또다시 그는 므낫세왕처럼 행하였다. 그러자 반역한 자들이 일어나서 그를 죽여버렸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남유다의 제16대 왕으로 등극한다.

  결국 남유다는 제16대 왕이었던 요시야의 아들 때에 멸망을 받는다. 그러나 그중에서 요시야왕은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너무나 선한 왕이었다. 그가 왕이 되자, 그는 율법말씀에 따라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없애버렸고, 산당들을 제거했으며, 남창의 집을 헐어버렸고, 몰렉신 제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태양신 숭배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유월절을 회복시켰다. 초막절까지 지켰다. 그런데 그가 실수한 것은 있었으니,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왕을 치고자 올라갈 때에 그와 맞서다가 그만 전사한 것이다. 결국 왕위는 둘째아들 여호아하스(제17대)에게 넘어갔고, 이어서 첫째아들 여호야김(제18대)과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제19대)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시야의 셋째아들인 시드기야(제20대, 마지막왕)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바로 이 시드기야 왕 때에 남유다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침공을 받아 최종적으로 멸망을 받게 된다.

 

5. 남유다가 의지한 세 정부(정을 통한 남자)는 누구였는가?
  남유다가 사모했던 주변 대제국은 어떤 나라들이었는가? 히안하게도 남유다는 자기나라 땅 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들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는 자기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다. 주변 대제국의 신들이 더 좋아보였는지 모른다. 더불어 남유다 사람들은 자기 민족보다는 주변 대제국의 사람들을 흠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가 새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옷입는 것도 달랐고 머리모양도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말을 타고 다녔기에 그들인 대단히 멋져 보였을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속으로 그들을 대단히 연애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문물과 그들의 섬기는 신까지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경했던 대제국들은 어떤 나라들이었는가? 그 나라들은 셋이었는데, 처음에는 "애굽"이었다. 그러다가 "앗수르"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어서 나중에는 바벨론으로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다가 그만 남유다는 화가난 바벨론왕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새 이방나라의 신들까지 받아들인 성전은 그만 만신전이 되고 말았고, 덩달아 모든 백성들도 하나님도 섬기면서 동시에 우상들도 섬기는 다신론자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지했던 남유다를 멸망시키지 아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그 영향 죄없는 자녀들까지 미치고, 주변의 강대국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하나님은 심판을 집행하시는 것이다.

 

6. 나오며

  모든 인류의 역사는 반복적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자는 예전에 있었던 방식대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 북이스라엘로부터 배우지 못했던 남유다도 역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고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하다가 멸망을 받고 말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나라도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우상숭배(죽은 자를 추모하고,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린다면)를 계속해서 자행하고, 우리가 행하는 우상숭배의 행위를 통해서 죄없는 우리의 자녀가 희생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나라를 심판하고 마실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지하려 한다면 우리나라도 남유다처럼 우리가 의지하는 나라에 의해 멸망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대제국이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만 그것을 빌미로 우리나라를 엿보게 되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먹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국방력을 더 튼튼히 해야 한다. 경제를 높이 끌어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도 세상의 주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아니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도 남유다처럼 멸망을 당한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2019년 9월 1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믿는 자는 기도하고 먹는다면 우상의 제물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은 과연 옳은 것인가?(고전8:1~13)_2019-08-21(수)
https://youtu.be/4x-zZFTYC3g


1. 음식이나 우상의 제물에 관한 취식의 말씀은 어디에 나와 있나요?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에 나와 있습니다.


2.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의 제물이라도 기도하고 먹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우상의 제물(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3가지 측면에서 먹어서는 아니 됩니다. 첫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우상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상의 실체인 귀신이 그것을 장악하고 있어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게 되니, 우상이 없다고 믿는다면 자기가 우상에게 절해도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상의 제물은 우상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행하면 예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듯이, 귀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으면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3. 로마서 14장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8장의 말씀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14장의 말씀은 율법의 음식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8장의 말씀은 음식 중에서 우상의 제물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4장의 관점을 고린도전서 8장의 관점으로 설명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롬14장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롬14장의 말씀은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롬14:20)"이라고 하는 관점입니다. 다시 말해, 레11장에서 부정한 음식이라고 규정된 음식 취식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는 폐지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행10장). 그런데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을지라도 예전 율법의 규정에 따라 먹을 수 없다고 규정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는 어떤 음식이라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를 위하여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먹거나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전8장의 말씀은 다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취식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4. 만약 우상의 제물인 줄 알고 먹게 된다면 어떤 해를 입게 되는 것인가요?
  고전8장에서는 3가지 해가 발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먹는 자의 양심이 연약해지고 더럽혀지게 됩니다. 여기서 "양심"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한 기관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곧 사람의 영이 연약해지고 더럽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연약한 자의 양심에 상처를 주게 됩니다. 결국 믿음이 연약한 자도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므로 결국 그를 죄짓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이 연약한 자가 범죄하여 결국 멸망당할 수도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우상의 제물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합니다.


5.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만 음식을 먹을 때에 무엇에 주의해야 하나요?
  그리스도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장병을 고칠 수도 있고,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음료 대용으로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포도주"를 마시는 일은 주의하고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약한 어떤 형제가 믿음 좋은 선배가 포도주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 그가 실족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을 헤치게 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음식은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 약한 형제 때문에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고(고전8:13),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롬14:21).


2019년 8월 2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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