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있는 직분 가운데 가장 어렵고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고로 주께서는 이 직책을 잘못 감당하는 자에 대해서는 엄한 신판을 예고하신 바 있다(마18:6). 그렇다면, 목사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에 맞물려 성도들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협력해야 할 것인가? 그 비밀이 오늘 말씀 속에 들어있다. 2020-07-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의 은사(25) 목사의 은사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엡4:8~12) https://youtu.be/Gb-N5gD6nMw [ 혹은 https://tv.naver.com/v/14846697 ]

 

 

1. 들어가며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가 있다. 그중에서 초자연적인 특별은사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총9가지 은사들인데,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들치료함의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 말고도 직분으로 주어지는 은사들도 있으니, 그것은 고전12:28~30에 따르면,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 의하면, 직분의 은사는 방금 전에 말씀드린 3가지 것 외에도는 2가지가 더 있음을 소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목사"의 은사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 '목사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목사의 은사"란 대체 어떤 은사이며, 목사직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자이며, 성도들을 어떻게 목사와 협력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목사의 은사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

  목사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오중직의 직분은사들 중에서 교사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은사다(엡4:11). 이것이 한글말으로는 "목사와 교사"의 은사로서, 두 가지 직분을 가진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은, 정관사 하나만 붙어 있는 것이기에, 목사이면서 교사의 은사라고 했던 것이다. 고로 목사직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필수적으로 교사직의 은사도 동시에 받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은사는 한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교사의 은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목사의 은사"는 교사의 은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인데, 그것은 한 곳에 머물러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3.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목사"의 은사란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목사직의 직분은 사실 "목자"의 직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볼 때, 엡4:11에는 "목사"라는 신분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성령으로 본다면, "목사"라는 단어는 오직 엡4:11에서만 단 한 번 등장하고 있긴느 하지만, 헬라어로 볼 때에는 이 단어는 "목사(사목)"가 아니라, 양떼를 돌보는 "목자"(shepherd)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목자라는 직분에서 흘러나와서 더욱 발전된 과정을 거친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목사의 원래 직분인 "목자"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리는 지금의 목사라는 직책이 곧 목자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책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100편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23편의 다윗의 시에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시23:1~4).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께서도 당신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비유할 때에,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였으며, 우리 인간을 일컬어 "양"이라고 비유하였다(요10:11~15)."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요10:14~15a)". 고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부활후 갈릴리바닷가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양의 12제자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심으로, 목자로서의 직분을 사도들에게 위임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일컬어 "양들의 큰 목자(히13:20)"이라고 언급하였고, 베드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이라고 언급한 한편, "목자장(벧전5:4)"이라고 말했다. 

 

5. 목자인 목사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분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직분을 가리킨다. 고로, "목자"라는 직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주변에 다른 양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떼가 없는 목자는 더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로, 목자로서 오늘날 목사는 양으로서 성도들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상대적인 은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목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서 나타나셨을 때에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 속에 잘 나와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제 베드로에게 목자라는 직분을 수여하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내 양을 치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요21:17)"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먹이라(헬, 보스코)"는 단어와 "치라(헬, 포이마이노)"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뜻은 실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먹이라(보스코)"는 단어는 "풀을 뜯게하라" 혹은 "양으로 하여금 음식을 먹게 하라"는 뜻인 것에 비해, "치라(포이마이노)"는 단어는 "지키다. 돌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땅에 세워진 교회에서 목양하고 있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2가지 직무가 있으니, 그것은 양을 먹이는 일이요,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목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직책이라는 것이다(요21:15,17). 성도는 제때에 필요한 말씀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분은 목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에 능통한 자라야 하며, 그 말씀을 잘 먹일 수 있는 은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했으며(시23:1), 목자가 해야 할 일로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어떤 위험한 상황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키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여 그들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둘째,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세력들(곰, 사자, 이리 등)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직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23편의 기자인 다윗은 목자이신 여호와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그림자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악, 악한 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당신)의 지팡이와 [당신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위로)하시나이다(시23:4)" 그렇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가지 도구는 그것의 말해주는 의미가 대단하다. 왜냐하면 "막대기"를 양을 해치려 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 역할을 하는 도구라며, "지팡이"는 양떼들을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자들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려내어 제거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목자로서 목사는 무엇에 유의해야 하는가?

  목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양육하고 돌보아야 할 목사는 양떼인 성도들을 어떻게 목양해야 하는 것인가? 성도를 위한 목자로서 위임받았던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벧전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렇다. 양무리를 목양하는 목자로서 목사는 자신의 직분을 억지로 감당해서는 아니 된다. 자발적으로 해야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기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맡은 자들에게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식으로 목양하지 말고, 양무리의 모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차 재림하시는 목자장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영광의 승리관을 받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7. 목자인 목사를 돕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목자인 목사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목자를 따라야 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에 대한 양의 자세를 이렇게 말하였다. 

히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신약성경 가운데 베드로와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하였는데, 그중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가 취해야 할 행동과 자세를 제시하는데, 이때 목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을 목양하는 자인가를 소개해주고 있다. 그들은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깨어있기를 심판 때에 꼭 자기가 계산(회계)할 자인 것처럼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목사(목자, 목회자)는 다 그렇게 살고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목자로서의 일을 감당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근심으로 하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오늘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로서 "목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목사는 원래 "목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양떼인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자에서 나온 것임을 살펴보았으며, 그것은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명칭에서 온 것임도 살펴보았다. 결국 목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누가 함부로 그 직분을 맡을 수 있겠으며, 함부로 이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만세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목사도 나오는 것이다(렘1:5,갈1:15,딤후1:9). 예수께서는 만약 양떼의 작은 자 중 한 명이라고 실족하게 한다면, 차리라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만큼 목사직을 수행하는 자를 엄하게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18:6).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목사들은 성도들에 비해 거의 배 정도 적은 수가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양떼들을 잘못 인도하고 잘못 가르친 댓가는 실로 크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땅에 목사들은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이며, 또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를 존중하고 목자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로 협력하고 함께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07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4) 복음 전하는 자(전도자)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엡4:8~12)_2020-07-17(금)

https://youtu.be/YCja0c8VYGs  [혹은 https://tv.naver.com/v/14827295  ]


 

1. 사도바울은 교회 가운데 있는 직분으로서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했나요?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도를 온전케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5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은사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있습니다. 

 

2. "복음 전하는 자"라는 어떤 직분의 은사인가요?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28~30에서, 직분으로서의 은사를 3가지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엡4:11에서 사도바울은 그것에다가 추가하여 2가지 직분의 은사가 더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 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와 "목사"(포이멘)입니다. 이중에서 "복음 전하는 자"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에 주셨던 오중직의 하나로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3. 성경에서는 누구를 "복음 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라고 소개하고 있나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의 행적들을 살펴보건데,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 명칭상 구분이 명확히 구별되어 전도자로 불린 사람은 약 세 사람 정도입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최손 3차례 이상 복음을 전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딤후1:11, 갈1:6~9). 사실 사도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사도"이자, "교사"였습니다(딤후1:11).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그것에 더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는 가짜복음이며 그렇게 전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갈1:6~9). 여기에서 "다른 것"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의식법으로서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이미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들입니다. 둘째는 디모데가 바로 "복음 전하는 자"였습니다(딤후4:5). 사도바울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도록 힘쓰라고 당부하면서, 그에게 모든 일을 신중하게 행하되 전도자의 책무를 잘 감당하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입니다(딤후4:5). 그리고 셋째는 빌립[집사]의 경우입니다(행21:8). 예루살렘교회의 일곱집사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빌립은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는데, 그는 혼혈인이 살고 있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마리아에 개척교회를 세웠습니다. 

 

4. "복음 전하는 자"와 "사도, 선지자, 교사, 목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복음 전하는 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이지만 그것을 생업처럼 행하고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는 어떤 한 장소나 한 교회에 머물러 있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는 일명 "순회전도자"라고도 불리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순회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은사자에게는 "사도, 선지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서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교회의 직분자가 있으니, 그들의 직분은"목사, 교사"라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에 보니, 빌립은 전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수많은 표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여러가지 놀라운 표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많은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으며, 못 걷는 사람도 걷게 되는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어떤 것이 너희 위에 내려오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라와 땅끝까지 이르러 [장차] 내 증인 될 것이다(행1:8)"의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의 완전한 성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만 들고 세상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능력도 꼭 함께 가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5. 복음 전하는 자가 능력이 없이 전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능력없이 말로만 전도했을 때에는 전도 받은 자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복잡한 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통해서 비로서 불신자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게 되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능력 없이 전도를 한다면, 그러한 전도는 잘못된 말장난으로 끝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사실 말로만 하는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실 여러 간증에 따르면, 거의 10%도 채 되지 못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로, 자신이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소명을 받은 자가 있다면, 그분은 적어도 빌립[집사]처럼 꼭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후에 복음을 전파하실 소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초신자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면 정말 더욱 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3) 교사의 은사란 무엇이며 사도 선지자의 은사와는 어떻게 다른가?(고전12:28~30)_2020-07-16(목)

https://youtu.be/EkTXAF6H7yU  [혹은 https://tv.naver.com/v/14808985  ]

 

 

1.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2장에서 어떤 직분의 은사들을 언급했나요?

  사도바울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에 3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사도'의 은사요, 또 하나는 '선지자'의 은사요, 마지막으로 '교사'의 은사가 있다고 했습니다(고전12:28~30). 또한 행13:1~2에 보면, 안디옥교회에서도 교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나와 사울은 그 교회의 성경교사였을 것입니다(딤후1:11,딤전2:7). 이렇듯 사도바울은 교회 가운데에 교사의 은사자가 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단지 교회에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수고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2. 교사의 은사란 어떤 은사를 가리키나요?

  "교사"의 은사란 한 마디로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로서, 성경말씀을 잘 가르치고 설명해줌으로 성도를 양육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이 은사는 목사의 은사와 더불어 성도를 성장시켜주는 양육의 은사에 해당합니다(엡4:11). 예를 들어 보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는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 능통한 자였는데, 그는 열심을 내어 예수에 관한 것들을 잘 설명하는 자였습니다(행18:24~25). 그는 바로 흘륭한 교사였던 것입니다(고전3:5~7).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여 고린도교회를 세웠던 자라고 한다면, 그는 고린도교회를 양육했던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3:6)"라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3. 바울은 교회에서 목사(주의 종)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나요? 

  바울은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온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딤후2:24). 왜냐하면 주의 종은 설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도 잘 가르치는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데에게 당부하기를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7)"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이 다시 에베소에 방문할 때까지 성경을 읽는(낭독하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습니다(딤전4:13).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목양자(목사)이면서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4. 바울은 어떤 직분의 은사를 가졌나요?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입은 자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자요,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자였습니다(딤후1:11). 특히 그는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교사가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하였습니다(딤전2:7). 고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필연코 성경을 잘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자라야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5. 교회에서 교사는 사도와 선지자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교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더불어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분의 은사의 하나입니다.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은 교회를 건강하게 건축하는 은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엡2:20). 그리고 교회의 성도 하나하나를 잘 양육하려면 성경을 잘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은사자가 필요한데, 그 은사를 가진 자를 바울은 "교사"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사'는 '사도'와는 다른 은사자입니다. 이때 사도들은 성경의 원뜻과 감추인 비밀들을 드러낼 수 있는 자로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서 일하는 직분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의 가르침은 성경의 원뜻을 알고 전달하는 자이기에 그의 가르침은 교회의 신앙지침서가 될 수 있으며, 사도들의 말은 곧 성경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는 이미 기록된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이기에, 성경 속에 감추인 비밀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 설명하는 사도의 은사와는 좀 다른 은사입니다. 한편, 교회에서는 선지자의 은사를 가진 분들도 있는데, 선지자는 지금 그시에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주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본 후에, 개인과 교회와 민족을 향해 주님의 뜻을 말할 수 있는 은사자로서, 그 핵심은 죄를 드러내어 회개케 하는 일을 담당하는 은사자를 가리킵니다. 그래야만이 사람에게서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고 사람이 깨끗하고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에 선지자의 은사가 없다면, 교회가 자신의 죄를 숨기는 자들로 가득하여, 교회는 잘못하면 위선자들의 천국이 될 수 있으며, 위세 떠는 사람들의 집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의 은사가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0년 07월 1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1) 사도의 은사란 무엇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가?(고전12:29~30)_2020-07-14(화)

https://youtu.be/_B8YtLGhKao [혹은  https://tv.naver.com/v/14769286  ]

 

 

1. 사도의 은사란 어떤 은사인가요?

  "사도의 은사"란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부터 사도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히 은사를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들 중에서 직분은사에 해당합니다. 

 

2. "사도"란 어떤 직책인가요?

  "사도"라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는 명사로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사도"란 "[만세전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선택되어(부름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증인(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으로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위임받아서 파견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고전1:1)"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3. 사도의 큰 줄기 둘은 무엇인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도들의 첫번째 종류는 육신을 입고 계셨던 주님으로부터 직접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도를 다른 방식으로 나눴는데, 그것은 사도를 할례자(유대인)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로 나눴습니다. 그는 갈2:7~8에서 말하기를,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8~9)"라고 언급함으로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사도로는 어린양의 12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를 언급하였고, 자신은 부활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고 일하는 사도로서, "이방인들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4.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했나요?

  바울은 사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거짓 사도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진정 예수님의 사도인지를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3가지 기준을 말했습니다(고후12:11~12).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선택받아서 보냄을 받은 자라 한다고 말했습니다(고전9:1). 고로 누군가가 자신을 "사도"라고 명명하려면 그는 직접 눈으로 예수님을 본 자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양의 12사도들은 육신을 입으신 주 예수님을 직접 본자들이자,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부름을 받은 자로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부름을 받아 사도가 된 자입니다. 둘째,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과 죽음도 불사했던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받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인내로 잘 참아왔던 것이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증거라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을 전파하면서 나타난 "표적과 기사와 능력"도 사도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도바울에게도 표적들이 나타났으니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았으며, 또한 기사도 있었으니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하였으며, 능력도 행하였으니 빌립보의 점치는 귀신을 내쫓아내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도로서 불리기에 합당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말했습니다(고전15:8~10).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많이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사도라 칭함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서,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그것을 결코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고전15:8~10). 

 

5. 오늘날에도 교회에 사도가 존재하나요?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와 같은 자는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도직과 같은 직책을 수행하는 자들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그렇더라도 사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엡2:20).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 사도들이 기초를 딱 잡아놓았기 때문입니다(예배, 교육, 친교, 봉사, 전도).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행2:42). 그러므로 성도가 온전케 되고 봉사의 일을 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려면 성도들은 반드시 사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엡4:12). 또한 사도들이 걸어간 발자취와 그들의 말했던 어록들 그리고 그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했던 모든 것들이 신약성경이라는 책으로 남아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적인 교회를 세우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오늘날에 우리 교회가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에 비교할 때에 과연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를 잘 헤아릴 뿐만 아니라 또한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데에 더욱 주의 종과 함께 많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20년 07월 1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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