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은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교회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참고로 그것은 2가지 은사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음부가 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직분자로 세우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였으며 어떤 직무를 수행한 것인가? 특히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2021-08-04(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8)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3)(고전12:8~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g9nC3t86zM [혹은 https://tv.naver.com/v/21702178 ]

 

1. 들어가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을 제시하였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14장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을 답변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왜 성령의 은사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가운데, 처음 7가지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나머지 2가지 곧 방언과 방언통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것이고 아울러 한 몸에 붙어 있는 다양한 지체들간의 유기적인 연합과 통일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성령의 은사 중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 개론적인 설명과 아울러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은사인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먼저,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으니,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 그리고 '직분의 은사'가 있다. '일반 은사'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은사로서 거기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 은사는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보다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 은사에는 일반적인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 구제, 다스리는 일, 긍휼 등의 은사가 있다(롬12:6~8). 그리고 '특별 은사'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만 선물로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 은사를 총 9가지로 소개하였다. 물론 성령의 특별 은사에는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그러한 은사에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를 비롯하여 추가로 2가지 은사가 있기에, 직분의 은사에는 총 5가지가 있는 것이다(고전12:28). 

 

3.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는 각각 삼위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로서, 은사의 분배는 같은(동일한) 성령께서 하시고, 직분의 수여는 같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6). 참고로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은 이렇다. 직분은 주 예수께서 주시는 은사인데, 직분의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으로서 그 은사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전시간을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성령의 특별 은사에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직분의 은사에는 "선지자(예언자)"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둘의 은사는 다르다.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은 성도가 선물로서 받은 것으로서 사용할 시간이 따로 있겠지만, "직분"은 전시간 동안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신도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역'은 직분은 맡지 않았어도 어떤 일을 도맡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청소를 담당한다든지, 안내를 담당한다든지, 예배위원을 담당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역을 맡은 것에 해당한다. 

 

4.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의 특별 은사 중에서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앎'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의 은사이다. 그리고 '행함'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말'에 관한 은사가 있아면 그것에는 '예언, 방언, 방언통역'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일종의 '말'의 은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란 대체 어떤 것인가?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이 말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주님께 말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영의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방언은 '헛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그것을 알아들으신다.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의 언어를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주는 은사가 있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알아 듣게 하는 것이 바로 '방언통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방언통역의 은사와 쌍을 이룬다. 

  그렇다면, 방언 통역의 은사는 무엇이며, 방언을 통역해보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 방언통역의 은사는 남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자신이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키는데, 그때 들려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나라의 말로 들려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방언을 들을 때 그 방언의 전체적인 내용이 그냥 깨달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방언통역"의 은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했을 때에는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다. 하나는 영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담겨 있으며, 또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는 때로는 책망이나 꾸지람의 말이 들어있기도 하고, 위로와 권면의 말씀도 들어있으며,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쓰시겠다고 하는 미래의 비전에 관한 말씀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하면 일종의 예언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방언과 방언 통역에 관하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 따로 다루고 있으니 그때 가서 보다 더 자세히 다를 것이이다. 

  오늘은 다만 왜 거듭난 사람이 되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특별 은사들 가운데, 방언과 방언 통역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는 구약시대에도 있기는 있었다. 다만 그 강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살던 성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에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덧붙혀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약시대에 성도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백성 혹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했다. 한 사람도 거듭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사람이 거듭날 때에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성령이 들어오신다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요 죽지 아니하는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거듭나게 된다(요3:5). 그때 기존에 사람이 갖고 있는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잡히는데, 그것의 하나가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즉 방언이란 죽은 상태에 있었던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그 충격파가 생겨 영이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거듭난 이는 자기 영 속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태어난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지는 않는다(고전12:30).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의적으로 거절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할 수 있으며, 영적인 세계를 터부시할 때에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과 동시에 영의 터치가 일어나는데, 그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다(행2:4).

  그러므로 방언은 자신의 영이 거듭났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은 자는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아무래도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방언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 몸이라고 하는가?

  교회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체들 중에는 더 연약한 지체들도 있고, 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도 있을 수 있다(고전12:23~24).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모여있는 연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지체들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다고 했다(고전12:12, 20, 27).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없으며,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 없이 다 하나의 지체인 것이다(고전12:13). 그러므로 한 지체가 다른 지체더러 필요 없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지체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여름에 덥고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꺼내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눈만 있어서는 그 우유를 먹을 수가 없다. 발이 냉장고 앞으로 가야 하고, 손이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것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이 벌려서 그 우유를 마시게 될 때 비로소 몸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눈이 가장 소중하게 보이고, 냄새 나는 발은 덜 귀히 보이겠지만, 내 몸이 우유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몸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존귀함을 더하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고 오히려 서로 지체가 서로를 돌보게 한다고 하셨다(고전12:24~25). 우리 몸에 있는 각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한 가지의 지체만으로는 자신의 온 몸을 건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받거나 반대로 우리 몸의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 몸이 함께 고통을 받게 되고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함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이다(고전12:26~27). 

 

6. 직분의 은사는 과연 누가 주는 것이며, 그러한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였다(고전12:28).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크게 8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셋과 다섯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앞의 셋은 "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뒤의 다섯은 "능력들, 병고침의 은사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의 다섯 가지 것들은 사실 직분의 은사라기보다는 특별 은사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실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고유한 직분의 은사에는 앞의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편지보다 조금 뒤에 썼던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더 언급한다. 2가지를 더 추가한 것이다. 이제 그 다섯 가지 직분의 은사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 교사들"이 그것이다(엡4:11). 그러니까 A.D.55년경에 기록했던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만 있었다면, A.D.61~63년에 기록했던 에베소 교회에는 앞의 세 가지의 직분에다가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목자)"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누가 교회 안에 이러한 직분자를 세우시는 것인가가?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그분은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셨으나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4:8~10). 이것은 고린도전서 12:5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회에게 어떤 직분을 주시는 이는 "주님"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왜 직분을 주시는가? 그것은 3가지로 그 목적이 나와 있다. 그것은 첫째,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며,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엡4:11).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교회 안에는 어떤 직분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섯 가지 직분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직분은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켜 직분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가지 직분은 교회 안에 있는 전시간 봉사자들로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일종의 직업과도 같은 것이다. 

 

7. '사도'의 직분과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울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주셨는데, 그중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직책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직책이라고 하였다(엡2:20). 이 땅에 있는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혀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직분자로서 "복음전하는 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복음전도자"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먼저, "사도"가 어떤 사람들인지부터 살펴보자. '사도'란 헬라어로 "보내심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내심을 받았어도 보냄을 받은 자들 모두를 '사도'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때 사도들을 보낸 분은 반드시 "주 예수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들을 보내는 목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기 위함"이어야 한다(행1:21~22). 그리고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는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참 많이 나온다. 세어보면 총 23명이나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만을 사도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선택받았다면 그는 '사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가리켜, 그를 사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울에 대해서 논쟁이 많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울은 '사도'라고 부른다. 아예 이름을 부를 때에도 이름 앞에 직책을 넣어서 "사도 바울"이라고 쓰거나 또한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바울이 살아있을 당시만 해도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아예 성경 한 권을 저술하였으니, 그 책이 바로 '고린도후서'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그가 사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려면 '고린도후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동일한 예수님에게서 파송을 받은 자다. 다만 그는 육신을 입으신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차이가 있다. 그러한 장면은 사도행전 9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도 '사도'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도에 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둘째, '복음전하는 자'는 사도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둘이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둘이 다 직분의 은사로서,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도란 사도적인 직무에 전무하는 자요,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도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아서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를 가리키고, 복음전하는 자는 주 예수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시간 봉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도에는 어린양의 12사도인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파송받은 '바울'이 있다.

  한편 대표적인 '복음전하는 자'로서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빌립'이 있다. 그를 가리켜 사도행전의 저자는 '복음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행21:8). 그럼, '빌립'은 어떻게 되어서 집사에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핍박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12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일곱 집사도 흩어지는 가운데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행8:4~5). 그러자 그 동네에서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이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빌립은 어떻게 전도자가 되어 사마리아성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는가?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치유와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었다. 그래서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고, 귀신을 내어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고, 그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8.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없애고 은사들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의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는 어떤 직분이 필요하며 또한 교회에게 왜 직분자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교회가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은사로서는 부족하고 직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12사도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가 어떻게 기틀을 잡고 또한 세워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직분자로서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가 누군지에 대해 조금 살펴 보았다. 다음 주에는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의 자격과 역할 및 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하시고 기도케 하시며 사모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2021년 08월 04일(수)

정병진목사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선물을 주신다. 그것을 '은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은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교회가 기도가 약해지면서 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목회자들 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요, 받아도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여기, 이에 대한 확실히 해법이 있다. 2021-07-28(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7)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2)(고전12:8~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oCP2rsXDxY [혹은 https://tv.naver.com/v/21617371 ]

 

1. 들어가며

  고린도전서 12장은 보통 '성령의 은사장'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의 목록(고전12:8~10)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들은 고린도전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에도 나오고 에베소서에도 나온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8~10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는 아주 특별한 은사들이다. 그것이 영적인 은사일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은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주부터 성령의 은사에 관한 말씀을 시작하였다. 오늘과 다음 주까지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에 들어와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날에 와서 성령의 은사는 홀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성령의 은사를 오늘날의 교회는 조금 기피하는 경향이 생긴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에서 기피대상이 되었던 이유와 더불어 초자연적인 성령의 9가지 은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오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자. 

 

2.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왜 성령의 은사를 달가워하지 않는가?

  왜 오늘날에 들어와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들의 대부분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좋아하지 않으며 기피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의 지도하는 리더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무지해서 그렇다고 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어떤 장로교회이 목회자는 방언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방언은 아무 쓸 데 없는 것인가? 사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너무나 몰라도 문제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또한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분별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교회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개신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에 의해서 혹시 교회가 소란스러워지고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은사자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교회가 어지러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은사가 없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은사자에게 사람들이 대거 몰리게 되고, 거기에 귀신이 역사한 후에 부작용이 생기면 교인들끼리 싸우며 갈라서고 물어 뜯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우선적으로 은사에 대해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정확한 은사의 정의와 종류들 그리고 각각 은사들의 특징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귀신의 역사인지 성령의 역사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3.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령의 모든 은사들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에는 고전 12장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 이외에도 많은 은사들이 있기 때문이요, 또한 고전 12장에서 언급하지 아니한 유형의 은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은사'라는 것은 거듭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맞는 것으로 개별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은사'에도 크게는 2가지 종류가 있고, 좀 더 넓게 보면 3가지 종류의 은사들이 있다. 그것에는 일반 은사, 특별 은사, 직분의 은사가 그것이다. 

  첫째, 일반 은사란 무엇인가? 일반 은사라는 것은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으면 매우 유익한 선물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사는 로마서 12장에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예언(일반적인 의미의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지도력), 긍휼"의 은사 등이 있다(롬12:6~8). 그런데 이러한 은사에는 이것들 외에도 "노래(찬양), 재물, 사랑, 지혜, 지식, 화평, 언유, 절제, 계획, 친밀함" 등의 은사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타고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둘째, 특별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특별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아주 특별한 은사들로서 영적인 선물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은사가 가진 특징은 모두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은사들은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는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것들은 성도가 기도를 통하여 간구할 때에 주어지는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고전12:8~10에 나오는 9가지 영적인 은사들이다.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들분별, 방언, 방언통역의 은사가 바로 초자연적인 은사들인 것이다.

  셋째, 직분의 은사가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사역자를 세우시는데, 그때 사람에 따라 직분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서는 8~9가지 직분의 은사가 나온다.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 서로 돕는 자,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을 말하는 자, 방언을 통역하는 자 등의 직분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는 직분의 은사를 5가지로 언급한다. 그것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다(엡4:11).

 

4. 성령의 9가지 특별 은사 곧 초자연적인 은사는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9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초자연적인 은사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다 이 9가지 범주 안에 들어갈 것이다. 이 9가지 특별 은사를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우리는 3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앎에 관한 은사가 있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둘째, 말에 관한 은사가 있다. 그것에는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함에 관련된 은사도 있다. 이러한 은사에는 믿음의 은사, 병 고침(치유, 신유)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가 있다. 

 

5.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초자연적인 은사에는 총 9가지가 있는데, 이러한 은사들을 이 한 시간에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 윤곽과 특징을 중심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다. 이 은사는 2가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 둘이 배워서 행할 수 있는 은사가 아님에는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초자연적인 지혜로 말씀들간에 숨어있는 연관성을 알아차리는 은사가 '지혜의 말씀의 은사'라면, 성경말씀 자체를 깨닫는 은사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이 은사를 정의하는 분들도 있다. 나름 의미있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란 예언과 비슷한 은사로서,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행할 것인지 지식을 얻게 해주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받으면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초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이때 아는 방법은 '꿈'이나 '환상'으로 보여지든지, 때로는 '글자'로 보여지든지 한다. 환상이 강한 사람은 이때 눈을 감아도 보이며, 동영상으로 화면이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어떤 사람에게 대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정보(지식)를 알게 해 주는 은사다. 이것이 강하게 나타나면 조상의 죄나 본인의 죄 그리고 사람이 무슨 은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글자'나 '환상'으로 볼 수 있다. 보통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동시에 주어진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많은 비밀을 알게 되고, 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이러한 비밀스러운 내용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함부로 이용해서도 아니 된다. 특히 덕스럽지 못한 내용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비밀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은사가 있다. 믿음의 은사란 일반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여기서 '일반적인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은사란 믿음으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은사를 가리킨다(고전13:2, 마21:21~22).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아니할 일을 자신은 믿는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믿음을 사용하여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다. 

  셋째, 병고침의 은사가 있다. 병고침의 은사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나 희귀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병고침의 은사를 받은 자라도 모든 사람의 질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님만이 가능하다. 병을 고치는 것은 주님이 고치시는 것이요 사역자는 다만 도구이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 먹는다고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치유 은사 집회에서 목발을 짚고 온 사람이 목발을 던져버리고 걸어가게 하는 것은 사실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더불어 기적을 행할 때에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역자는 환상으로 그가 목발을 던져버리는 것을 보이기 때문에 그 환자를 불러다가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영안이 활짝 열리는 사람은 암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데, 그때에는 천국에 있는 치유천사들이 와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보인다. 천사들이 환부에 손을 집에 넣어 약을 바르고,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혈관을 뚫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치유천사들은 그 크기가 사람만큼 큰 천사로부터 시작하여, 혈관 속으로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의 천사들도 있다. 그리고 병고침의 은사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 가운데 귀신을 쫓는 은사가 함께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병원에서도 낫지 않는 질병 중에는 장부에 귀신들이 붙어 있거나 그것을 둘러감고 있거나 그것을 꼭 쥐고 있을 귀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안으로 보이는 것이다. 특히 정신질환자 중에는 아무 많은 귀신이 붙잡고 있다. 특히 우울증과 망상에 빠져있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귀신이 들려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바, 이 때에는 병고침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를 함께 사용할 때에 병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넷째, 능력들 행함의 은사가 있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2가지인데, 먼저는 기적을 행하는 은사가 여기에 속한다. 구약시대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기적을 일으켰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도 하였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였으며,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도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사도들도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일종의 능력 행함의 은사에 해당한다. 어떤 이는 강력한 악령이 몸 속에 들어와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내보낼 수 있는 자가 능력행함의 은사를 가진 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 

  다섯째, 예언의 은사가 있다.  오늘날에 예언의 은사는 성령께서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은사를 가리키지만 정확히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더 수준높은 예언의 은사자는 글자를 영안으로 보고 말해내는 자이다. 이때에 뜨는 글자는 글자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문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환상으로 무엇인가가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같이 간다. 이때에 주님의 얼굴이 나타나서 그분이 직접 입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귀에 들린대로 말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입에서 글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예언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마음에 말씀이 새겨짐으로 그것을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런데 영안이 열린 자라도 하나님이 보여주실 때에만 환상과 글자가 보이는 것이며, 억지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섯째, 영들 분별의 은사가 있다. 영들 분별의 은사는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은사를 가리킨다. 여기서 '선한 영'이라 함은 ‘성령’과 ‘천사’를 가리키는 것이고, '악한 영'이라고 함은 ‘사탄’과 ‘귀신들’을 가리킨다. 고로 내가 영적 전투를 하거나 혹은 축사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실 악한 영은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에게도 악한 영이 들어 있다. 자기나 자기의 조상들이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면 악한 영이 그만큼 더 많이 들어있을 것이다. 죄를 지은 만큼 들어있기 때문이다. 영안이 열려 영분별의 은사를 받으면 귀신 즉 악한 영의 실체가 보인다. 그것의 모습은 뱀, 지렁이, 짐승, 용, 식물의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살펴보면, 그 세력의 성격과 크기가 보이기도 한다. 혹시 영분별의 은사가 ‘눈’에 있다면,  악한 영들 곧 세력들을 잘 보게 되고, 은사가 ‘손’에 있으면 세력들을 손으로 만질 수가 있으며, ‘발’에 있으면 자신의 발에 세력이 감기는 것이나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영안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악한 영이 우리의 영의 눈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영분별로 자기들의 정체가 발각이 되었을 때에 긴장을 한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영분별의 은사를 가진 자의 ‘눈’과 ‘뇌’를 자주 공격한다. 하지만 늘 깨어있어 회개하고 있으면 그들도 공격을 하지 못한다. 사탄은 우리를 보고 있는데, 우리가 사탄을 볼 수 없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를 보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회개하여, 죄가 씻어지고 악령이 떠나가게 되면 눈이 깨끗해지게 된다. 그러면 영안도 열린다. 그리고 영분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천사도 볼 수 있다. 특히 예수님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사도 본다. 천사들의 직책은 총 7가지로서 그들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수호천사, 전령(보고)천사, 전투천사, 치유천사, 예배천사(찬양, 악기연주), 경호천사, 건축천사, 기록천사(생명책, 행위책)가 있다. 

  일곱째,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는데, 이것은 시간관계상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간단하게만 말씀드린다면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말이기 때문에,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가진 자가 아니면 그 내용을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6. 나오며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제외하고는 성령의 은사를 터부시한다. 아니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이 어떻게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기에 아예 처음부터 그 싹을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는 참으로 교회생활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회개를 하여서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지 못한 상태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다보니 사탄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한 두 번 정도는 은사자의 예언이나 방언통역, 환상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뒤로 갈수록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은사를 받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회개를 통하여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사실 성령의 은사 자체는 부정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은사자가 더러운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정말 원한다면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하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깨끗하게 한 상태에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혹 자신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면 은사도 받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8일(수)

정병진목사

 

 

왜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에서 은사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 '은사'라고 하면, 왜곡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만 말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성령의 은사들이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기존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은사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2021-07-21(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01)(고전12: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8LLGeBqeMYs [혹은 https://tv.naver.com/v/21463212 ]

 

[ PDF 자료 다운로드] https://dongtanms.kr/75128 [성령의 은사(28장) 씨리즈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Pn1GC5bxDjj3FlDKUTo5VSC45mwHrCGF [성령의 은사(28강) 글로 보기] https://dongtanms.kr/board_UShK09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그냥 "땡"하고 종을 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여러 선물을 나눠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가리켜 "은사(카리스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부터 있었던 은사들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있는 은사들 간에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는 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일까? 더욱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입장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성령의 은사들에 관하여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린도 교회는 대체 어떤 은사를 받았던 것일까?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가운데 그들은 어떤 은사를 최고로 여겼을까? 그리고 오늘날 작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믿는 이들이 구해야 할 진정한 은사는 어떤 것이며, 은사를 구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요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2. 고린도전서에서 12~14장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장부터 6장까지이며, 후반부는 7장부터 16장까지다. 이중에 후반부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제기한 여러 질문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7장에서 결혼 문제를 살펴보았고, 8~10장에서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고전 11장을 통하여 예배시간에 여자들이 머리에 예배포(수건)을 쓰는 문제와 성찬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부터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은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12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로운 연합을 언급한다. 그리고 13장에는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고, 14장에서는 방언과 방언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개론적인 부분이자 다양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들" 곧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12:1). 이 말은 성도라면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성령의 은사를 모르면 은사를 통해서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성령의 은사들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는 은사를 잘 받아서 그것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귀신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개인과 교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은사문제를 통하여 초래될 수 있는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혼란에 대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우상을 섬기는 자를 보자. 그들은 일종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다. 미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신적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늠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왜 이러한 방식으로 그 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없다. 왜 그 신에게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도 물어볼 수 없다. 제사드리는 자가 알아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씩 모여서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제사가 되었고 그것이 전통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상의 실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신다(렘10:14~15).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공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 사2:8). 그것은 땔감나무에 불과하며, 금붙이 혹은 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에다가 절을 하고 향을 피운다. 그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나무나 금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어떤 우상도 인간에게 반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적 존재가 아니며, 다만 누군가 만들어서 거기에 가져다놓은 한낱 조형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7).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꾸 그러한 조형물에다가 예를 갖추어 절을 하게 되면,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에 의해 미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누가 만들어서 거기에다 가져다 놓은 조형물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거기에다가 절을 하고 향불을 피워놓고 음식을 바치니까,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게 되어서 귀신이 신의 노릇을 하고 있다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곧 귀신을 섬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상과 어떻게 다른가? 그분은 살아있는 인격체이시다. 또한 그분은 믿는 이들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해 깨우쳐주시고 알려주신다. 그 깨우치심의 핵심은 예수께서 주님이라는 것이다(고전12:3). 예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인류의 죄를 속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내 속에 들어온 귀신이 하나씩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3). 우리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비로소 완전한 신적인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수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란 대체 무엇이며, 이것들은 과연 누가 주시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고백케 하시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그리고 우리 인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언급한다(고전12:4~6). 그리고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역들은 누가 하게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12:4~6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먼저, "은사"의 분배는 같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 이는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은사가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은사가 무엇이며 과연 은사는 어떤 목적으로 주어지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로, "직분(섬김)"의 분배는 같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언급한다(고전12:5). 이는 교회에서 일하라고 주시는 직분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주신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직분을 5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라고 하였다(엡4:11).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 등이 있다. 셋째로, "사역"의 분배는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다(고전12:6). 즉 교회에서 여러 가지 행해지는 사역들은 다 성부 하나님께서 분배하여 그렇게 일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찬양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분배받을 수 있고, 직임을 받아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역의 안배를 따라 교회를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은사들을 주시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주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고전12:7).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은 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나눠주신다고 언급한다(고전12:11). 그러므로 혹시 자신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자기와 교회에게 매우 유익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에 대해 주저하거나 꺼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를 뿐더러,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주의 종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잘 모르면,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어떤 교회를 가면, 아예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을 따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교회를 망가뜨리거나 나쁘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들어오는 귀신의 역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신의 역사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역사와 귀신이 하시는 역사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더욱 환영하고 귀신의 역사는 더 물리친다면, 교회는 성령의 은사로 인하여 더욱 더 견고해지며 바르게 성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6.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신령한 은사(특별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다음 주에 더욱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에게는 크게 3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일반 은사"이고, 또 하나는 "특별 은사"이며, 마지막으로 또 하나는 "직분 은사"다. 먼저 "일반 은사"를 살펴보자. 이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가 아니다. 이는 불신자도 갖고 있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특별 은사와 구별하여 "일반 은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에는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은사가 있고, 14장에 "절제"의 은사가 있다. 이외에도 일반 은사에는 노래(찬양), 화평, 온유, 지혜, 지식, 계획, 지도력, 섬김, 재물의 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특별 은사"라는 것이 있다. 이 은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은사로서 총 9가지를 언급한다(고전12:8~10).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이 것이다. 참고로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영의 눈이 열릴 때에 비로소 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환상을 보고, 귀신을 보고, 천사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투영체로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고로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령한 은사는 은사자가 먼저 보고 먼저 들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은사들 중에는 "직분"의 은사라는 것도 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의 직분의 은사에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 

 

7.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께서 믿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총 9가지를 언급하였다(고전12:8~10). 아마도 이러한 은사들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을 가리켜 "신령한(영적인) 은사"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오늘날에 과연 얼마만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러한 은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 믿는 자들이 되었어도 신령한 은사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1, 14:1). 그것은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사모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31). 이 모든 것은 사실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더불어 이것을 분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 은사의 위험성만을 주지시키고 있을 뿐 그것의 유익성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 창고에서 은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령한 은사를 말하는 단체가 잘못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라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은사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은사는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잘 받아 활용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때에는 말씀만이 아니라 능력도 같이 나타나는 지도자가 활동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기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받는 적기 중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받기 전에 더욱더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회개 없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했다가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아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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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자료 다운로드] 

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1)(고전12,1_11).pdf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6) 다양한 일반은사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롬12:6~8)_2020-07-20(월)

https://youtu.be/SUoaXUWqKeM  [ 혹은 https://tv.naver.com/v/14866134  ]

 

 

1.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어떻게 분류할 수 있나요?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반은사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라고 할지라도 조상들로 물려받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은사"는 다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초자연적이며 또한 영적인 은사이기 때문니다. 이러한 특별은사들에는 또한 3가지 종류가 있으니, 말의 은사들(예언, 방언, 방언통역)과 행동의 은사들(치유, 능력, 믿음)과 앎의 은사들(영들분별,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편 "특별은사"에는 은사의 내용에 따른 은사들(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고전12:8~10)과 직분에 따른 은사들(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고전12:28~30, 엡4:11)이 있습니다. 

 

2. 롬12:6~8에 나오는 "일반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롬12:6~8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은사들로서 7가지 은사들이 나옵니다. 물론 일반은사가 이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재물의 은사, 음악의 은사, 기술의 은상 등 더 많은 종류의 은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롬12:6~8에서 7가지 은사만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완전수인 "7"을 사용하여서, 교회에는 다양하고도 풍성한 은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롬12:6의 말씀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말씀을 직역해보면,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졌던 은혜를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반은사 7가지는 또한 그것의 내용에 따라 2가지 은사들 곧 "예언"과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들과 그리고 직책의 은사로서 5가지 곧 "가르치는 자, 위로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은사"로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3. 일반은사로서 등장하는 "예언"과 "가르치는 자(교사)"의 은사(고전12:6~8)는 특별은사로서 "예언"과 "교사"의 은사(고전12:8~10,28~30)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은사"로서 소개되고 있는 "예언"이나 "교사"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은사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테면, 특별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성경말씀에 능통하여 그것을 잘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은사이면서, 교회 내에서 이런 직책만을 수행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일반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부모로부터 가르치는 은사를 물려받아서, 교회의 어떤 부서에서 가르치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는 특별은사로서 나타나는 7가지의 기능(세움, 권면, 위로, 책망, 심판, 드러냄, 가르침)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믿음의 분수대로" 그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은사로서 주어지는 "예언"의 은사는 분량이 적은데, 마치 자기가 특별은사처럼 "예언"의 은사를 전부 다 받은 것인량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7가지 일반은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만약 어떤 것이 예언의 은사라면, 은사자는 반드시 그것을 믿음의 분량을 따라 그 분량만큼만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만약 그것이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라면 봉사 안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자라면 그는 가르침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권면,격려)하고 있는 자라면 위로(권면,격려)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5.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어떤 태도로 사용해야 하나요?

  사도바울은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3가지의 은사들 곧 "구제하고 있는(나누어주고 있는) 자"의 은사와 "다스리고 있는(지도하고 있는, 인도하고 있는) 자"의 은사 그리고 "긍휼을 베풀고 있는(자비를 베풀고 있는) 자"의 은사를 사용할 대에는 각각 성실함(순수함, 관대함)으로, 부지런함으로 그리고 즐거움으로(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 나오는 3가지 은사자가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3가지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항상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연 나는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움으로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 은사자라면 그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에서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20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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