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9)] 몸과 육의 구원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눅11:14~26)_2024-01-25(목)

https://youtu.be/1A_KikjJPTg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72]

 

1. 사람의 구원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가?

  하나님의 경륜의 관점에서 사람의 구원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영이 가장 먼저 구원을 받고 이어서 혼이 구원을 받으면 육이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영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지만 혼의 구원이나 육의 구원은 일평생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믿는 순간에 이뤄지는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이 다 된 것처럼 여기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실은 영이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이제 진짜 구원을 이뤄가야 하기 때문이다. 

 

2. 사람의 몸의 구원 혹은 육의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람의 몸 혹은 사람의 육은 사실 물질세계를 접촉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세 부분으로 창조하셨다. 먼저 땅의 흙으로 육신을 빚으셨다. 그리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영이 들어가게 하셨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혼(a living soul)이 되었다(창2:7). 그러므로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리고 활력이 있기 때문에 좌우에 날이 선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육(관절과 골수)을 분비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영혼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람을 영혼육이라고 말하지 않고, 영혼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 예수님의 강림 때에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존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살전5:23). 이는 곧 사람의 육체가 곧 사람의 몸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렇다면 사람의 몸과 사람의 육체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둘 다 물질세계를 접촉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것이지만 이 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목표 지점이 다르다. 즉 몸의 구원과 육의 구원은 최종 종착 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의 구원은 결국 사람의 몸이 성령의 전이 되어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고전6:19~20, 롬6:13). 그러나 사람의 육의 구원은 결국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이 파괴되어 더 이상 사람의 육체를 귀신이 지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마12:28).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의 육체는 귀신의 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창3:14, 마12:43~45). 그렇다. 구원의 영역에 있어서 사람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의 육은 귀신의 집이 파괴되는 것이다. 

 

3. 사람의 몸의 구원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람의 몸의 구원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고민이 로마서 7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서 7장에서 거듭난 자신의 속 사람(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지만 자신의 육체 속에 죄와 사망의 법이 있어서 자신을 끌고 가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육신의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거기에 죄가 거주하고 있더라는 것이다(롬7:18). 그래서 자신은 선을 행하기를 사모하나 실제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죄를 품고 있는 육체에 대해 그는 '사망의 몸'이라고 정의했다(롬7:24).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드려야 할 자신의 몸이 그만 죄에 팔려 사망의 몸이 되어버렸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신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육체 안에 들어 있는 죄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를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는 여김의 법칙이라고 말했다(롬6:10~11). 여기서 '여긴다'는 말은 헬라어로서, '로기조마이'라는 동사이다. 이 단어는 그 뜻이 '계산하다, 간주하다, 숙고하다, 결론짓다, ~라고 여기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 안에 두 가지 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나는 죄와 사망의 법이  있고 또 하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죄가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면 자신을 늘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서는 자신을 살아 있는 자로 여겨서,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간주의 법칙이자 동일시의 법칙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간주와 동일시의 법칙을 발견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주님을 믿었던 스데반을 핍박한 것은 스데반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된 그리스도를 함께 핍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위대한 교회관 곧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신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자신도 함께 죽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셨을 때에 자신의 몸도 함께 부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해 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육체 안에 비록 죄가 들어 있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죄짓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육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간주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죄짓는 데에는 살아있고 강하며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는 죽어 있고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반대로 간주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계산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점차로 더 죽을 수 있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점차로 더 살아 있는 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실행으로서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은 세례 사건이라 말했다. 물에 장사지낼 때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장사된 것이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는 새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똑같이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와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기라고 말한 것이다. 

 

4. 육체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바울은 사람의 몸에 관한 구원에 있어서 놀라운 빛을 받은 자였다. 하지만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데에는 하늘의 빛비춤이 조금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분의 공생애 3년 반의 2/3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데 사용하셨다. 육체의 구원에 관한 해법을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사실 구약시대에 살았던 어느 누구도 귀신을 쫓아낸 적도 없었고,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던 선지자도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곧바로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는데, 그때 귀신들의 왕 사탄 마귀와 한판 승부를 벌였던 것이다. 즉 예수께서 금식이 끝날 무렵 사탄 마귀가 찾아오더니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다. 그 옛날 첫 사람 아담을 죄짓게 하여 자신의 포로로 만들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 마귀는 3대0으로 판정패당하고 말았다. 어찌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물러가야 했는데,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이긴 자가 되었기에 마귀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벧후 2:19)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의 전반부에 어느 정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12제자들에게 그 일을 행하게 하셨다(눅9:1~2). 그리고 이어서 70명의 제자들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그리고 다시 부활 승천하실 무렵에는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라고 당부하셨다(막16:17~18).

  그렇다. 오늘날 진정 육체가 구원을 받으려면 우리도 역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바로 귀신이 살고 있는 귀신의 집을 파괴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는 아담의 범죄 이후 귀신의 집이 되어 귀신이 거주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창3:14, 마12:43~45). 그러므로 육체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자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야 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귀신의 집까지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육체가 의의 병기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자신과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은 믿음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명령함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4년 01월 25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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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8)] 어떻게 할 때 영혼육 중에서 육체까지도 구원할 수 있는가?(롬7:18~25)_2024-01-24(수)

https://youtu.be/S-vJ_2d8xQc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56]

 

1. 들어가며

  성경은 구원을 삼중적으로 말씀한다. 먼저는 영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고전5:5), 이어서 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벧전1:9)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육체)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고후4:10~11). 그런데 이러한 삼중 구원은 모두가 단회적인 것이 아니다. 영의 구원은 거듭나는 순간에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혼의 구원은 날마다 이뤄가야 하며, 육의 구원도 역시 일평생의 과정을 통해서 이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단번에 이미 받은 영의 구원이라 할지라도, 영의 구원은 우리가 죽는 날에 또다시 한 번 확인이 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짐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최종적인 구원으로서 육체의 구원은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가? 이러한 육체(헬, '사릌스')의 구원은 몸(헬, '소마')의 구원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2. 사람이 구원받는 순서는 어떠한가?

  사람의 창조의 순서는 먼저 흙으로부터 육체가 빚어진 뒤에 그 코에 생기(영)가 들어오고 그때에 혼(헬, 프쉬케)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의 순서는 육과 영과 혼의 순서로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구원의 순서는 창조의 순서와는 약간 다르다. 가장 먼저 영(헬, 프뉴마)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실제의 영인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심으로 사람의 영에 생명의 분배가 먼저 이뤄지기 때문이다(고전6:17, 요3:5, 고전15:45). 그러고 나서 혼의 구원이 날마다 이뤄지되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진다. 왜냐하면 혼은 육과 영이 만날 때에 생겨난 자기 자신(자아)으로서, 이것이 없으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된 혼이 그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육체 속에 들어온 죄된 본성 곧 귀신들과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치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선과 악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혼은 한 사람도 없다. 전부다 죄를 짓는데 발 빠른 혼만 가진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혼이 구원을 받으려면 혼은 부인(거절)되어져야 하는 것이다(마16:24). 혼이 자기를 계속해서 주장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을 부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혼을 십자가에 매일 못박아 그것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갈2:20). 그리고 생각을 영에 둠으로서 혼이 더 이상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매일 혼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므로 혼의 구원은 일평생 그리고 날마다 이뤄가야 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혼의 구원은 일종의 과정이라고 말해야지 순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고 나서 이제 끝으로 육을 처리해야 한다. 육을 처리함으로 육에게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후4:10~11).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3. 우리가 받아야 할 세 번째의 구원은 육의 구원인가 몸의 구원인가?

  그렇다면 사람의 구원의 최종 단계는 육의 구원인가 아니면 몸의 구원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둘 다의 구원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둘이 같은 차원의 구원을 말하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와 그리고 그 목표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종류의 구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둘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몸이라고 하고 또한 육체라고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영혼몸이라고 구분했지만(살전5:23), 히브리서 기자는 사람을 영혼육이라고 구분했기 때문이다(히4:12). 그런데 훗날 사도 바울은 몸속에 죄가 들어 있는 몸을 가리켜 '육체'라고 불렀다. 자기의 속 곧 자신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고 죄가 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롬7:18~20). 그러니까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 아담이 죄짓기 전에 사람 몸속에는 죄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선악과의 형태로 몸속에 들어옴에 따라 사람은 죄된 본성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거듭나서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아니한다면, 그는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을 따라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래서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4. 육 혹은 영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몸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무엇인가? 먼저 몸의 구원의 방법은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롬12:2).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람의 몸을 핏값을 주고 모두 다 사셨기 때문이다(고전6:20). 그러므로 사람의 몸은 더 이상 귀신들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는 곧 사람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다(롬6:12~13). 즉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서, 그것으로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몸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럼, 몸의 구원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몸이 성령의 전 곧 성령의 집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전6:19). 성령께서 영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몸의 구원의 목표다. 

  그렇다면 육의 구원의 방법과 목표는 무엇인가? 육의 구원의 방법은 몸의 구원의 방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육은 이미 마귀의 포로가 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들어와 자신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사람에게 식욕과 성욕과 소유욕을 발동시켜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므로 육의 구원은 몸의 구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를 집으로 삼고 들어와 거주하고 있는 귀신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의 구원의 방법은 혼의 구원의 방법과 동일하다.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날마다 육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갈5:24). 그렇지 않으면 옛 사람의 육이 계속 살아나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생각을 영에 두어 육의 소욕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갈5:16~17). 그러면, 육의 구원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마12:28). 회개를 통해서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제거하는 일이 그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육을 몸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의 병기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24년 01월 2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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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7)] 생명분배의 최종단계로서 몸(육체)의 구원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고후4:8~11)_2024-01-23(화)

https://youtu.be/oMVuWKCqu0w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49]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받는 영역은 어디에 있을까? 성경에 보니,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영역은 세 개다. 그것은 영의 영역이요 혼의 영역이자 육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3가지 구성 성분인 영혼육(몸)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받는 과정을 보면 영에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께서 가장 먼저 사람의 영 속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이다(고전5:5). 그러고 나서 혼의 구원이 시작된다(벧전1:9, 히10:39, 약2:21, 5:20). 이때 혼의 구원이란 타고난 혼(자아)을 부인하고 내 영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혼의 영역으로 모셔와서 혼에서 사시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육 혹은 몸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고후4:10~11). 그렇다면 육(체) 혹은 몸의 구원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것의 핵심 개념으로서 몸과 육체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고전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flesh)은 멸하고 영(spirit)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들](souls))의 구원을 받음이라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soul)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들](souls)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soul)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body)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flesh)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2. 사람이 영혼육의 영역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영혼육의 영역에서 모두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자신의 육체 안에 귀신들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영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구성된 인간의 혼(souls) 역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악해졌고 부패해졌고 더러워졌다. 그리고 육체 안에는 계속해서 귀신들로 채워졌다. 그러므로 선하게 창조된 사람의 영혼육이 다 부패해졌기에 이 모든 것들이 다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타락한 영혼육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처음에는 그것이 어렵게 보이겠지만, 순차적으로 구원을 받으면 된다. 즉 맨 처음에는 영이 구원을 받고 이어서 혼과 육이 구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영의 구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혼의 구원 및 육의 구원에 대해 다루면 되는 것이다. 만약 혼과 육의 구원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인 종말이든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에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 생기고 말 것이다. 

 

3. 사람의 구원의 여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이 되는가?

  사람이 영혼몸(살전5:23) 혹은 영혼육(히4:12)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영혼육의 순서로 구원을 받게 된다. 성경은 가장 먼저 영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고전5:5). 영이 구원을 받으려면 영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어야 한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고전15:45) 믿는 자들의 영 속에 들어오심으로 성취가 된다(딤후4:22). 그러므로 영의 구원은 단번에 그리고 순간에 성취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혼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벧전1:9, 히10:39, 약2:21, 5:20). 혼의 구원은 날마다 자신의 타고난 혼을 부인하고 또한 영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혼의 영역으로 모셔와서 그분이 혼을 다스리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혼의 구원은 한 번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일평생을 두고 '날마다'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눅9:23).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 혹은 몸도 역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아야 할 마지막 영역은 육(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육(체)의 구원이라고도 하고, 몸의 구원이라고도 말한다. 이는 둘 다 인간의 구원 가운데 마지막에 속한다는 것은 일치하지만, 그것의 촛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몸의 구원'이라고도 말하고, '육의 구원'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마지막 번째의 육체의 구원 혹은 몸의 구원은 우리가 일평생을 두고 해결해 나가는 구원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죽는 날에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죽는 그날에 몸의 구속이 완전히 성취되기 때문이다(롬8:23)왜냐하면 거듭난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에 몸의 변형을 받는 구원 곧 부활체를 입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롬8:23 [그런데]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자신도] 곧 성령(그 영)의 '처음 익은 열매(첫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역시]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양자삼음)'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간절히]기다리느니라
 

4. 성경은 몸의 구원 내지는 육(체)의 구원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의 몸 내지 육의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둘 다 인간의 구성 성분 가운데, 물질적인 부분의 구원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같지만, 둘의 강조점이 조금 다르다. 즉 몸의 구원의 최종적인 목표와 육의 구원의 최종적인 목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몸의 구원'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의 몸이 성령의 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구원'의 최종적인 목표는 육체 안에 있는 귀신들을 다 몰아낸 후에 내 육체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의 구원이나 육체의 구원은 한 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혼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일평생을 두고 이뤄라야 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죽는 날 부활체를 입음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5. 몸의 구원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먼저 '몸의 구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몸'이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 육체와 같지만 또한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몸이나 육체는 둘 다 사람의 구성 성분 가운데 물질적인 세계를 접촉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구원의 목표라는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몸의 구원의 목표는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성취되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과 육체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몸'은 유기적인 연합체로서 여러 지체들이 모여 하나를 이뤄감으로 한 육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몸을 언급할 때에는 여러 지체들이 각기 독특한 역할을 감당하지만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언급할 때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고 말하지, '그리스도의 육체인 교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몸은 여러 지체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라.

고전12:12~14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고전12:19~20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전12: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롬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둘째, 몸은 몸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이야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언급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은 전인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온 몸'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아래의 성경 구절을 보라. 

대하25:12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겔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마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눅5: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눅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고전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골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약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셋째, 몸이라는 개념은 육체에 비해 보다 더 긍정적인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사람의 몸 속에 예수의 생명이 더해진다면 그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고(롬6:13), 성령의 전(집)이 되게 할 수 있다(고전6:19)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예수의 생명으로 가득채워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한다(롬12:2). 또한 우리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에 사용하라고 권면한다(고전6:20).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몸의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성령이 거주하는 집으로 내어 드려야 하는 것이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024년 01월 23일(화)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6)] 왜 자기 혼을 부인하고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접촉해야 하는가?(골1:24~29)_2024-01-22(월)

https://youtu.be/reXl6uoWcD0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44]

 

1. 들어가며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은 생명 분배와 땅의 분배다. 그중에 생명 분배의 과정은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는 영에게 생명이 분배되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혼에게 생명이 흘러가는 단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육체를 생명이 장악하는 단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 분배의 핵심은 역시 영 안에 생명이 공급되는 것이다. 이때 생명은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영 안에 들어온 생명을 어떻게 혼 안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로 하여금 혼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하시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2가지 방법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 믿기 이전의 모든 인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자신을 자기 자신 곧 자아(self)가 주관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곧 자아는 혼(souls)이라는 것으로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혼의 생각으로 감정을 느끼며 의지로 결단하여 행동에 옮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혼이 중립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선조인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의 육체 속에는 귀신들이 들어 있어서, 귀신들이 자꾸 혼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의 노예가 되어 죄를 지으며 살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람은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귀신에게 묶여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 선을 택하거나 악을 택할 수 있는 중립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 이전의 나의 주인은 분명 나 자신이었으나 나 자신은 결코 중립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양심도 여러 환경을 접하면서 무디어지고 말아서 죄를 죄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양심에 화인맞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혼은 이미 악하게 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창6:5), 이미 부패해졌으며(딤후3:8) 더러워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딛1:15). 그러므로 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다가 영의 양심이 합쳐진 것)도 역시 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만약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벌하는 자가 없다면 계속해서 더 죄를 범하고 살 것이다. 

 

3. 부패한 인간의 혼을 변화시켜 온전하게 하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부패한 인간의 혼을 원래 창조된 선하고 살아 있고 깨끗한 혼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개입을 하신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는 방식인 것이다. 이때 생명은 죽고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던 예수께서 우리의 영 속에 바람처럼 호흡처럼 들어오심으로 분배해 주신다. 그래서 드디어 혼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자신의 영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혼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2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의 이전의 혼(자아)을 부인해야 한다(마16:24). 이는 이전에 자신을 주장하던 혼이 자기 자신을 주장하도록 계속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이전의 자아를 죽음에 넘겨 더 이상 새 사람된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16:24). 그렇다. 혼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혼이 이미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혼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혼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마16:24, 갈2:20). 즉 혼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사람을 죽음에 넘기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했던 말은 그에게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의 혼을 십자가로 가지고 가서 자신을 죽음에 넘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전의 혼(자아)은 반드시 죽음에 넘겨야 한다. 이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여기는(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마16:24). 여기서 주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자신의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따라가는 말씀을 오직 그분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으로만 인식하여,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로서 주님을 따라가는 방식이고 과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믿고 그분을 내 영에서 누리는 것이다. 

 

4.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혼에서 역사하게 할 수 있는가? 소극적으로는 혼을 부인하는 일이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는 그분이 내 혼에서 거처를 정하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영에 계신 그리스도를 혼으로 모셔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에 공급된 하나님의 생명이 혼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혼에 좌정하시게 된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놀라운 사실은 우리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실 때에 여호와께서 들어오시는 것도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영이 그대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면서 동시에 보혜사이신 성령이시다. 그리고 보혜사이신 성령께서도 그분이 단독적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오시는 것이지 구약시대의 성령이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의 어떠하심을 나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는 3가지를 행하셨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가 부족할 때에는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부른 다음에 그분의 어떠하심을 선포함으로 내 문제에 그분이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이렇게 선포하라.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지혜이십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내게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면, "주 예수여, 주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환난 중에 피난처이십니다."라고 선포하라. 그러면 즉시 내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는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내 영 안에 내주해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 포의 알 약처럼 우리의 영 안에 대기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내 혼의 영역으로 내려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감찰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는 내 혼의 영역에서도 주님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주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참고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주님의 어떠하심에는 "생명, 지혜, 인내, 치료, 귀신 축사, 죽음의 효능, 부활의 능력, 초월의 능력, 왕적인 통치" 등이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성육신 하실 때에 그분의 육체 안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고 하나님의 지혜가 육체로 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을 죽음에 넘기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분의 삶이 곧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능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내 혼의 영역에 좌정하시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2024년 01월 22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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