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그 안에 사는 자들은 누군가?(계21:9~27)_2022-04-15(금)

https://youtu.be/809Sq-HaD0I   [혹은 https://tv.naver.com/v/26248082 ]

 

1. 성도들이 장차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천국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성도들이 장차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천국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인가? 아니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부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인가? 과거에는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3가지 비유에 의하면,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며, 성 밖에 남겨지는 것을 가리켜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2.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새 예루살렘 성은 크고 높은 성곽을 갖춘 정육면체 모양의 도시를 가리킨다. 이 도시의 재료가 금과 은과 12가지 보석이기 때문에 이 성은 한편으로는 '보석성'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면 이 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녔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이 성의 크기를 살펴보자. 이 성은 매우 크고 웅장하다. 왜냐하면 이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12,000 스타디온(약2,400km)이나 된다(16절). 둘째, 이 성의 색상을 보자. 매우 화려하고 밝다. 이 성 전체가 귀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데, 그 색깔은 벽옥(푸른색)같고 수정같이 매우 맑기 때문이다(11절). 셋째, 이 성의 문들을 보자. 이 성의 문은 동서남북 각 방향에 3개씩 있어서 총 12개다(13절). 그런데 이 문은 한 개의 진주로 만들어져 있으며(21절), 이 문 위에는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12절). 그리고 이 문을 12천사들이 지키고 있다(12절). 넷째, 이 성의 성곽을 보자. 이 성의 성곽(성벽)은 144규빗(70m)이다(17절). 엄청난 두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곽들은 12개의 기초석을 가지고 있다. 기초석은 첫째부터 열두째까지, 각색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기초석의 이름은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이다(19~20절). 그리고 이 기초석 위에는 어린양의 12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14절). 다섯째, 이 성의 길을 보자. 이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길이다(21절). 여섯째, 이 성의 빛과 등을 보자. 이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둘러 비치고 있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23절). 그리고 성의 밝은 빛은 성밖에서 비춘다(24절). 일곱째, 이 성 안에 성전이 있는가를 보자. 놀랍게도 이 성 안에 성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이 성의 성전이 되시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에 성전이 성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막'도 그랬다(출40:35~36). 그리고 '예수님의 몸'이 그랬고(요2:19~21), '교회'가 그랬다(고전3:16). 그런데 장차 하늘로부터 내려올 새 예루살렘 성(city)도 역시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성전이라는 건물이 따로 필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육면체의 새 예루살렘 성 전체가 성전으로 보면 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지만, 새 예루살렘 성이 성전의 지성소인 셈이다. 왜냐하면 성전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출25:22, 왕상8:10~11), 지성소는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기 때문이다(왕상6:20). 

 

3. 새 예루살렘 성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상으로 새 예루살렘 성을 살펴보면, 이 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 성은 매우 귀하고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성은 정금과 진주와 각종 보석으로 꾸며져 있고 거기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이 성은 거룩하고 일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성 안에 하나님과 어린양이 계시기 때문이며, 그분이 이 성을 낮과 밤에 상관없이 온 성과 새 땅을 둘러 비추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성은 장 광 고가 똑같다. 이는 하나님이 일정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셋째, 이 성은 완전하고 깨끗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성은 우선 '12'라는 숫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 안에는 12진주문들, 12천사들, 12지파들의 이름들, 12기초석들, 12사도들의 이름들, 12보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12,000스타디온(12*1,000), 144규빗(12*12)이 나오는데 이것도 12에다가 1,000을 곱한 것이며, 12를 다시 곱한 값이다. 그래서 이곳은 완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은 깨끗한 것은 이 성은 해보 다 더 밝게 빛나며, 이 성의 길도 정금이요, 보석과 성벽도 밝고 빛이 나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장소에는 악과 어둠의 세상주관들인 악한 영들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성은 아주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이 성 안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성 안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는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있던 일곱 천사들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을 불러 그를 따로 크고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보여 주었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21:9)" 그렇다. 분명히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천사가 이 성의 모습을 줄곧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비로소 성문을 드나들고 있는 땅의 왕들을 보여 주었다. 이때 땅의 왕들은 그 성 안으로 자신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다(24, 26절). 그것은 그들이 땅의 만국을 다스리는 왕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여기서 '만국(이방인들, 열방들)'이란 성밖에 있는 사람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천사가 크고 높은 산에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준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이렇듯 땅의 왕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 전체를 통해서 살펴보면, 이 성 안에는 땅의 왕들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첫째로, 이 성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다(3절). 이는 이 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하고, 이 성에 사는 사람들을 백성으로 하는 왕국이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 이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양의 아내' 혹은 '어린양의 신부'라고도 불리웠다(9절). 이것은 이 성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삼고 있음을 말해 준다. 셋째, 이들은 '이기는 자들'이라고 불렸다(7절). 여기서 이기는 자들이란 '우세하는 자들, 능가하는 자들, 극복하는 자들'이란 뜻으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존재들이자, 죄와 사탄 마귀 귀신들과 죄된 육신을 이기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넷째, 이 성 안에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린다(7절).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째, 이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라고도 불린다(22:3~5). 여기서 '종'이라 함은 천사를 지칭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여기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을 때에 어떤 특별한 사명을 받고 파송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섯째, 이 성 안에는 제일 높은 계급으로서 '땅의 왕들'이 살고 있다(24절).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높은 계급에 속한다. 참고로 이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네 종류의 계급이 있으니, 왕(왕권신부), 주인(왕후신부), 평민(비빈신부), 섬기는 자(시녀신부) 등의 신분이 있다. 일곱째, 마지막으로 이 성 안에 사는 자들은 '제사장'이라고도 불린다(계1:5, 5:10). 왜냐하면 이 성 안에 들어온 자들은 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배한다는 말은 예수님 앞에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놓고 절을 한다는 뜻이다. 이때 어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기도'를 올리며 예배를 드린다. 

 

5. 이 성 안에는 누가 못 들어 가는가?

  그러나 이 성 안에는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믿었던 자라 할지라도 어떤 이는 불못에 던져지기도 할 것이고(계21:8), 어떤 이는 성밖에 남겨지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계22:15).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12진주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계22:14). 그럼, 왜 이 성 안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끝내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지 않기 때문이다(27절).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아니한 채 있는 사람들로는 처음부터 아예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아니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불신자들이다. 그리고 이미 거기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었음에도 결국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짐으로 인하여 성밖이나 불못에 던져지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었으나 속된 것과 가증한 것에 속해 있다거나 그리고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로 살았기 때문이다(27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4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6) 천국에 있는 24장로들은 누구며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계4:4~11)_2022-04-14(목)

https://youtu.be/vuLTetkpdkI  [혹은 https://tv.naver.com/v/26247214 ]

 

1.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었는가?

  사도 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본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다. 여기서 네 생물은 그 생김새가 각각 달랐는데, 하나는 사자 같고 하나는 송아지 같으며, 하나는 그 얼굴이 사람 같고 마지막 하나는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았다(계4:7). 이들은 아마도 모든 피조물의 대표이거나 아니면 천사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천사들처럼 여섯 날개(3쌍)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한 쌍의 날개에서 두 쌍, 세 쌍의 날개가 있다. 그룹 천사는 두 쌍의 날개를 가졌고, 스랍 천사는 세 쌍의 날개를 가졌다. 그리고 루시엘(사탄 마귀가 된 그룹 천사)만 네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의 좌우를 둘러서 24장로들이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있었다. 

 

2. 네 생물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네 생물이 하는 일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는 것이다(계4:8). 이들도 인간처럼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인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감찰하여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녹화해 두는 일이다. 이 생물의 실제 크기는 집채만 한 크기이며, 이 생물의 몸에는 눈들이 가득 있는데, 한 생물에게 약 80억 개의 눈들이 달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일들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전 우주의 경륜이 기록된 인들을 뗄 때에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 이 일에 네 생물이 관여하고 있다(계6:1~8). 그리고 음녀와 짐승의 치하에 내리는 일곱 재앙이 들어 있는 일곱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주는 일도 이러한 네 생물의 한 생물이 담당하고 있다(계15:7). 그러므로 네 생물에는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가장 근거리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임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24장로들은 천사인가 사람인가?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학자마다 24장로들이 누군지를 기록해 놓고 있다. 어떤 이들은 천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들은 천상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이들을 어떤 존재라고 증언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과거에 사람이었던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3가지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들은 금으로 된 승리관(면류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리관'은 이기는 자들이 쓰는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이것을 쓸 수는 없다. 오직 인간만이 이것을 쓰는 것이다. 고로 이들은 과거 인간이었던 자들이다. 둘째, 이들 24명은 각기 자기들이 앉을 바로 그 보좌에 앉아 있었다(계11:16). 참고로 천사는 섬기는 자들로서 보좌에 앉지 아니한다. 오직 인간만이 천국에 들어가서 보좌에 앉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수고에 따라서 앉게 될 좌석은 다른 좌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들은 네 생물과 항상 구별되어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함께 등장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에서 무려 7번이나 나온다(계5:6,8,11,14, 7:11, 14:3, 19:4). 또한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따로 구별되어 찬양을 드린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도 다른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천국에 실제 가서 보고 온 성도들에 따르면, 이들은 사람이었던 자들임을 확증하고 있다. 

 

4. 천상에 있는 장로들은 왜 24명인가?

  그렇다면 왜 천상의 보좌들 위에 앉아 있는 장로들의 숫자는 왜 24명인가? 성경에서 24라는 숫자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역대상 24~25장이다. 여기에 보면, 다윗이 제사드리는 제사장들을 24반차로 나누었으며, 노래하는 레위인들 역시 24반차로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의 반차는 꼭 24반차로 나눈 것인가? 추측컨대 이는 다윗이 미리 미래의 일들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 되었든지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로서 24개의 보좌에 24명의 장로들이 앉아 있다. 이들이 24명인 것은 아마도 구약의 이스라엘의 지파 12이고, 신약의 예수님의 사도가 12인 것을 감안한다면, 신구약 성도들 가운데에 가장 귀감이 되는 24명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천국에 올라가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본 자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이들은 다음과 같은 자들이다. 먼저 족장 그룹으로서, 1)아담 2)아벨 3)에녹 4)노아 5)아브라함 6)이삭 7)야곱 8)요셉 9)유다가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살았던 10)욥도 있다.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시대에 활동했던 11)모세 12)아론 13)여호수아가 있다. 그리고 능력도 행하고 예언도 했던 선지자들로는 14)엘리야 15)엘리사가 있으며, 오직 예언만 했던 선지자들도 있으니, 그들은 16)이사야 선지자 18)에스겔 선지자다. 그리고 여자들도 둘이 있다. 그들은 19)아브라함의 처 사라 20)다윗의 처 밧세바다. 둘 다 자신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아들로 올 것을 미리 경험하였던 이들이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가 있으니, 21)세례 요한 22)베드로 23)사도 바울 24)스데반이 여기에 속한다.

 

5. 천상의 24장로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럼, 천상의 24장로들은 하늘에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면, 이들은 인류 가운데 최고 수준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수에 포함되어 있는 자들이다. 사실 천국에 가면, 24장로 그룹(group), 144,000명 중에서 왕 노릇하는 그룹, 144,000명 중에서 주인 노릇하는 그룹이 있고, 그룹(케루핌)과 스랍 천사를 비롯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 그룹이 있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은 천국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첫째, 천상의 24장로들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행한다. 천국에서 제사장의 자격으로서 예배를 드리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배를 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며, 그분에게 경배하면서(절하면서) 그분을 높여 드리는 모든 일체의 행위들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이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리면서 경배를 한다(계5:10). 그리고 참고로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한다는 표현은 3번 나온다(계4:10, 11:16, 19:4). 그런데 이때 24장로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음악을 연주할 줄 아는 악기로서 거문고(하프)와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이 있다(계5:8). 여기는 악기는 찬양하기 위한 도구이며,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그릇으로서, 그것은 하나님께 직접 올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24장로들이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그리고 둘째, 천상의 24장로들은 천국에서 보상의 차원에서 보좌 위에 앉는다. 여기서 보좌에 앉는다는 말은 2가지 일을 하는 것으로 하나는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이 왕으로서 통치하고 다스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심판한다는 것이다(계20:4). 천국에서 누가 왕 노릇할 자가 되는지를 심판하는 것이다(마19:28, 눅22:30). 그리고 또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일도 행한다(고전6:3). 이러한 고귀한 신분이 바로 천국에서 우리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회개하여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충성함으로 보석으로 치장된 혼인 잔치의 겉옷을 준비하여, 장차 있을 혼인 잔치에 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4월 14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5) 천국에 있는 4생물과 24장로의 정체와 그들이 하는 일은?(계4:4~11)_2022-04-13(수)
https://youtu.be/Bu-7gwRt8Rw  [혹은 https://tv.naver.com/v/26214869 ]

 

1. 사도 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도 요한이 천국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본 것은 하나님의 보좌였다. 거기에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다. 그리고 그 주위에 네 생물이 있었고, 그 바깥쪽에는 하나님의 보좌 좌우편에서부터 24보좌들이 반타원형으로 놓여 있었다(그러므로 정면쪽으로는 뚫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24장로들이 금으로 된 승리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쪽에는 켜진 일곱 등불이 있었다. 그때에 네 생물들이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에, 24장로들도 역시 자기들의 승리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드리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계4장).

2.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사도 요한은 사실 보좌 위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벽옥과 홍보석같이 보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딤전6:15~16). 그렇다면 왜 사도 요한의 눈에 하나님은 수많은 보석들 중에 왜 '벽옥'과 '홍보석'과 같은 모습으로 보인 것일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에 파악하기 쉽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과 묵시적인 계시들의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보석 하나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 구약시대에 이미 쓰여 있는 어떤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어떤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석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보석과 보석의 색깔로 인하여 그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빗댄 보석도 '벽옥'(ocenn jasper)과 '홍보석'(ruby)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판결 흉패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12개를 물린 것과 상관이 있다. 왜냐하면 판결흉패의 첫 보석과 마지막 보석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흉패의 보석은 3개씩 4줄로 물리게 되어 있었는데, 첫째 줄의 첫 번째 보석이 '홍보석'이었고, 넷째 줄의 마지막 번째 보석이 '벽옥'이었다(출28:17~21). 그런데 천상에서 사도 요한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물리는 마지막 번째와 첫 번째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여기서 '벽옥'의 빛이 파란 색인 것은 하늘 색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홍보석'이 붉은 색인 것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벽옥을 통하여 그분이 초월해 계시는 전능자인 것을 인식할 수 있으며, 홍보석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이제 친근해진 상태에 있게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빛깔이 첫 보석과 마지막 보석인 것은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알파(처음)와 오메가(마지막)이시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사41:4, 44:6, 48:12, 계1:17, 2:8, 21:6, 22:13).

3.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고 있는 일곱 등불은 어디에서 가져온 이미지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고 있는 '일곱 등불'이란 또 또 어디에서 가져온 이미지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 등불이 곧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곧 성령을 지칭한다고 배웠다. 또한 '7'(3+4=7)이라는 의미가 하나님(3)과 인간(4)의 연합이라는 것도 배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완전수 '3'으로 표현된다면, 인간은 피조물의 수인 '4'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3*4=12)라는 숫자가 하늘나라에서의 완전한 연합으로서 하늘나라의 완전수를 가리킨다면, '7'은 이 땅에서의 완전한 연합인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성령은 순전히 이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일곱 등불이나 일곱 영은 어디에서 가져온 개념인가? 그것은 스가랴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던 하늘나라의 일곱 등잔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스가랴는 금으로 된 등잔대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등잔대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등잔은 등잔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두 감람나무에서부터 일곱 개의 관을 통해 기름이 보충되고 있었다(슥4:2~3). 그리고 일곱 등잔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일곱 눈이라고 하였다(슥4:10).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일곱 등불은 바로 스가랴서에 나온 표현을 빌려온 것인데, 그것은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스가랴가 보았던 성령을 사도 요한이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자(계4:5),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고 한 것이다(계5:6).

4.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생물'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그날 천상에서 보았던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한 가운데와 보좌 주위의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이 네 생물은 자기의 몸에 눈들이 가득히 있었다. 그리고 3쌍의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은 네 생물이 다 달랐는데, 첫째는 사자같이 생겼고, 둘째는 송아지같이 생겼으며, 셋째는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고,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같이 생겼었다(계4:7). 사실 이 온 우주 가운데 영적인 피조물은 오직 천사와 사람, 딱 이 두 종류 뿐이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일단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천사인가?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람처럼 생긴 것은 아니고 날개가 있는 영적 피조물이니까 천사의 종류로 보아야 한다. 생각하기에는 모든 피조물의 원형을 간직한 채 있는 천사의 종류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들이 확실히 천사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에스겔서와 이사야서의 말씀이다. 첫째, 에스겔서는 그룹 천사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에스겔이 본 그룹(케루빔) 천사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었고, 총 네 명이었다. 이 그룹 천사들은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각자가 사면에 가진 얼굴의 모양은 사람과 사자, 소와 독수리의 얼굴 모습이었다고 소개되어 있다(겔1:10). 또한 이 그룹 천사는 자기 아래에 바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바퀴 안에 눈들이 가득했다(겔1:18). 그리고 이 그룹 천사의 영은 그 바퀴들 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4명의 그룹 천사들 위에 수정같이 맑은 궁창이 있었고, 궁창 위에 하나님의 보좌의 형상이 있었으며, 거기에 사람의 모습을 한 어떤 형상(하나님의 형상)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겔1:15,18,20,22,26).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은 그룹 천사와 비슷한 천사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은 이와는 약간 달랐다. 첫째로 이 생물은 세 쌍의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서는, 이 생물은 이사야서 6장에 나오는 '스랍(스라핌)' 천사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랍 천사도 역시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을 드리기 때문이다(사6:3).
  특히 이 생물이 세 명도 아니고 일곱 명도 아닌 딱 '네 명'이라고 한 것은 이것들이 피조물에 해당되며, 특히 이들은 피조물의 대표이자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 중에 '사자'는 들짐승의 우두머리요, '소'는 집짐승에서 가장 뛰어난 짐승이요, '사람'은 모든 지구 생명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요, '독수리'는 날아다니는 새들 가운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겔 10장의 경우처럼 '소'를 '그룹'이라고 본다면, 소처럼 생긴 그룹은 모든 천사들의 대표와 우두머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사자, 사람, 소, 독수리가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배열과 일치하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왕(사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요, 마가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은 '종(소 혹은 그룹)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독수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생물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네 생물이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딱 2가지다. 첫째는 이들은 하나님의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계4:8). 역시 이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생물들은 수많은 눈들을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감찰하여 어떤 저장장치(칩)에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천국에 가 보면 이 생물의 크기는 집채만 한 크기이며, 이 생물의 몸 모든 곳에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들은 한 생물마다 80억 개 정도의 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의 일부를 부여받은 것으로서, 장차 모든 인류와 천사를 심판할 때 그 근거 자료로서 동영상을 저장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의 모든 일들을 다 녹화하고 있는 이 네 생물이라지라도, 우리가 지은 죄들이 심판날에 화면에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죄라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한 죄는 영상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땅에 살았을 때에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죄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엡4:26). 왜냐하면 해가 넘어갈 무렵에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 우리의 행위를 보고 하는데, 이미 회개한 죄는 기록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루를 넘겼다고 해서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언제라도 회개하면 그 장면은 화면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13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4)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 있는 4생물과 24장로는?(계4:1~11)_2022-04-12(화)

https://youtu.be/I0RC06AXgn4  [혹은 https://tv.naver.com/v/26214822 ]

 

1. 사도 요한은 어떻게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까?
  사도 요한이 어느 날 밧모섬에 위배되어 있을 때에 그는 영 안에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된다(물론 이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때 되돌아 보니 일곱 금촛대 사이를 돌아 다니고 있는 인자 같은 이 곧 예수님이 보여졌다. 그때 사도 요한은 그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계1:10,12~13,19). 그때 그가 '본 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이었고(계 1장), '지금 있는 일'은 일곱 교회에게 보낼 편지 내용이었으며(계 2~3장), '장차 될 일'은 하늘의 광경들과 환상들(계 4~22장)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난 후, 사도 요한은 하늘에 이미 열려진 채 있는 문(아마도 12진주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을 보았는데, 그때 그가 처음에 들었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을 다시 듣게 된다. 그것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게 네게 보이리라"는 음성이었다(계4:1). 그러자 그는 자신의 영이 몸에서 빠져 나온 뒤, 하나님이 계시는 새 예루살렘 성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의 말씀에는 사도 요한의 영이 천국에 가서 직접 본 것들도 있고, 그때 주님이 장차 되어질 일을 보여 준 환상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이것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4~5장과 21~22장은 최소한 사도 요한이 직접 본 것을 기록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2. 하나님은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계셨는가?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보았을 때 천국에서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셨는가? 그것은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좌정해 계셨다(사6:1 참조). 그런데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의 눈에는 그분이 어떤 색깔과 유사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것의 하나는 '벽옥'이었고 또 하나는 '홍보석'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벽옥(Jasper)'이라 함은 바다 청옥으로써 푸른 빛을 내는 것을 가리키며, '홍보석(ruby)'이라 함은 붉은 빛을 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보석은 사실 대제사장이 가슴에 단 판결 흉패의 마지막 보석과 처음 보석과 같다(출28:17~20). 다시 말해, 이 보석은 오메가와 알파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좌에 둘러 있는 무지개가 그의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이 무지개의 색깔은 '녹보석(emerald)'과 같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빛은 푸른 바다 빛깔이었고, 빠알간 루비색이었던 것이며, 보좌 주위에는 초록 빛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색깔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를 암시해 주는데, 예를 들어, '바다의 푸른 빛'은 하늘색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 엄위성, 무한성을 가리키며, '빠알간 루비 빛'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짐으로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 친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화목제물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따뜻하 분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하나님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였다면 이제는 은혜의 보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엄위하신 분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와 같이 친밀하게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보좌에 둘러서 초록 빛이 나오고 있었다. 이는 구약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이 본 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주위에는 불이 타오르고 불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A.D.95년경에 본 하늘의 광경에서는 불이 아니라 초록의 어떤 빛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거기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노아 때의 무지개처럼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신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3. 하나님의 보좌는 한 개인가 두 개인가?
  그때 사도 요한이 보았던 보좌는 과연 한 개였는가 두 개였는가?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니까,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가운데에 있고 그 보좌 오른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어서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두 개가 아니라, 딱 한 개뿐이기 때문이다. 그 보좌에 주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 그것도 전능자로서,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가 앉아계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22장에 가면, 그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1,3에 보면, 그 보좌는 비록 한 개이지만 그 보좌를 가리켜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라고 언급하고 있다. 보좌는 한 개 뿐이지만 이 보좌를 수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양, 이렇게 둘로서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의 보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가 이제는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 전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셨으니까 그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라고 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기에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세 전에 인류 구원을 위해 예정된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다시 하늘로 가셨다. 그리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지상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시고 모든 것에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사실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활승천하신 후하나님의 보좌에는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보좌에 앉아 계실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 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비공유적 속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그려놓은 삼위일체나 이위일체의 그림은 모두가 다 잘못된 것이다. 어떤 그림은 하나님의 보좌를 3개를 그려놓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좌를 2개로 그려놓은 것도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단지 한 개 뿐이며, 거기에 이제는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계21:5~6,22:12~13,16, 3:21). 

 

4. 하나님의 보좌 옆과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 옆과 그리고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먼저 하나님의 보좌 옆에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4명의 생물이 있었다(아마도 앉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더 바깥으로는 반타원형 형태로 24개의 보좌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앞쪽으로 놓여져 있는데, 보좌들 위에는 24장로들이 머리에 금 면류관(승리관)을 쓰고 앉아 있다. 4생물과 24장로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다음 이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 가까이에는 첫째로, 하나님의 일곱 영인 성령께서 일곱 등불로 불이 켜진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더 앞쪽으로 나아가서는 둘째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도들과 천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성도들은 70줄로 144,000명이 보좌에 쭉 앉아 있으며, 그 너머에는 허다한 무리들이 서서 예배를 드린다. 참고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좀 떨어져서 70줄로 144,000명이 앉아 있는 것은 천국에 직접 가서 본 분들이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실제 사람들과 천사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간증한 것을 바탕으로 말한 것이다. 

 

5. 왜 하나님의 영은 등불로서 표현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등불로 형상화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다(계4:5). 여기에 나오는 일곱 등불은 일곱 촛대는 아니다. 일곱 개의 등불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 보내어진 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 관련된 완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곱 영은 요한계시록 5:6에 보면,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파송한 영이 하나님의 일곱 영이며, 일곱 영은 곧 어린양의 눈이 되어 이 땅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당신을 소개할 때에 "그의 눈이 불꽃 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셨다(계2:18). 이는 예수께서 심판주로서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167장에 나오는 보혜사 성령은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파송한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믿는 자들 속에서 내주하시어 일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일곱 영이 등불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우리는 삼위일체로 표현되고 있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2개 내지는 3개가 아닌 것과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 것을 더욱 더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2022년 04월 1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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