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예수님 시대 이후부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된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못 들어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대표는 '죄'다. 왜 그런가? 그 죄를 없이하려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최소조건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충분조건은 왜 필요한 것인가? 이 한 편의 설교가 우리의 미래를 엄청나게 바꿔놓을 것이다.

 

2022-02-2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07)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마21:31~3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1OX0pPhFbHo [혹은 https://tv.naver.com/v/25403493

 

 

1. 들어가며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구제를 많이 하고 고아를 돌보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며, 사회사업에 힘쓴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가? 아니면 이 세상 이웃에게 전혀 사랑의 손길도 베풀지 않고 인색하게 살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가? 이제 와 돌아보니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한지도 벌써 8년 4개월이 다 되었다. 그동안 오직 한 길을 달려왔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성경에 나온 대로 전하고 또 전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나오는 '천국'(하늘들의 왕국)과 또한 셋째 하늘에 실재하고 있는 천국에 관한 영적인 비밀들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아니 정확히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다고 해야 옳다). 그러니 오직 주님의 은혜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금까지 전했던 천국입성 조건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나눠 보려고 한다. 이 말씀 하나로서 우리는 내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과연 천국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어떤 신분으로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영원히 기억하길 바란다. 

 

2. 천국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천국'이란 사실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용어다. 헬라어로 보면, '하늘들의 왕국'을 줄여서 '천국'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늘들'이라는 말은 하늘이 셋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구약시대에 하늘을 '샤마임'이라는 복수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천국은 상태적인 천국만을 가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장소적인 천국'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은 후에 부활체가 들어가는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구원이 완성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마귀가 없다. 귀신도 없고 죄도 죽음도 없다. 거기는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고, 어둠도 없다. 그곳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통치만이 실현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그 보좌 위에 이기고 승천하신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계3:21). 그러므로 천국이라는 개념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잠시 실현될 때도 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3.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 조건과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장소적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 조건은 무엇이며,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여기서 최소 조건이라는 말은 이것만 갖추면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충분조건은 천국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영원토록 누릴 영광과 신분과 지위까지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가리킨다. 어떤 이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은 믿음이 있기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그날에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행함으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이 믿음과 회개로 천국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 편(아마 오른편) 강도의 경우인데, 그 강도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였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했으며, 죽으면 낙원(천국)에 들어간다는 것까지 알았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위해 행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날 주님과 함께 낙원(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한 마디로 '믿고 회개하는 것'이다(막1:15, 마4:17, 계22:14). 믿고 회개하는 자가 구원을 받아 궁극적인 장소인 천국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4.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 전체를 살펴보았을 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 조건에 속한 것으로서 2가지이며, 충분조건으로 보면 다 합쳐서 3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최소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조건은 그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물'이란 죄를 씻는 물 세례와 같은 것을 의미하며, 성령은 성령을 받는 성령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죄사함과 성령을 받는 것이다. 그런 자가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거듭 태어난 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죄사함'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심의 회개를 통하여 과거의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을 가리키며,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었다(요5:26). 그러다가 그분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당신 대신 보내 주셨다. 생명이신 예수께서 생명의 영으로 성령을 대신 보내 주신 것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 오신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들어와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사람에게 들어간 것을 두고 거듭났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사자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사자의 생명이 있어야 하고, 독수리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독수리의 생명을 지녀야 하듯이,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생명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대부분 은혜와 선물로서 주어진다. 

 

5.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예수믿을 때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요일1:9). 왜 그런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죄된 본성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귀신들이 우리를 미혹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라도 죄를 짓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살다 보면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하라고 말씀하셨다(요일1:9). 그래야만 죄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죽는 그날까지 말이다. 만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죄를 지었는데도 자백하지 않고 남겨두었거나 숨겨 두거나 회개를 뒤로 미룬 것이 있다면, 그는 그 죄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에 의하면, 믿는 자라도 비겁하여 주님을 부인한다거나 우상 숭배한다거나 음행하는 자는 반드시 불과 유황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셨다. 거듭나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진다고 하셨다(계3:5, 21:27). 그러면 어떤 자는 새 예루살렘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에 남겨질 자도 있을 것이며(계22:15), 어떤 자는 성밖의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도 있을 것이다(마25:30). 그리고 지옥 곧 불못에 떨어질 자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옥도 3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그 후에는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것은 성만찬 후에 세족식 때에 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요13:10). 이미 예수믿을 때에 죄사함을 받은 자라도 살다 보면 짓는 죄로 인하여 더럽혀지기 때문에 그 더럽혀진 것을 씻어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라도 회개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은혜로 주어진다기보다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쪽에 훨씬 가깝다. 

 

6. 우리는 왜 내가 짓지도 않은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들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조상들의 죄들도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또한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짓지도 아니한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왜 내가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되는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할 것은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인 것이지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한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용서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자기 죄 때문에 지옥에 던져진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죄를 내가 대신 회개하는 것은 사실 죽은 조상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그 결과들이 오늘 나와 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지으면 그 죄값을 3~4대까지 물린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출20:5). 그런데 영적으로 보니,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뱀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창3:14, 마12:43~45). 그런데 이러한 뱀들은 더러운 영들이고 독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그 결과들이 나와 내 후손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누군가가 회개하여 그 죄를 씻어내지 않는다면 그 죄값으로 인하여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 곧 뱀들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의 몸과 환경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 사람의 죄를 회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자기의 조상들의 죄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범죄했을 때에 우리도 씨[앗으]로서 함께 참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조상들의 허리에서 나온 또 하나의 조상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죄를 회개할수록 내게는 더욱 좋은 것이다. 사실 우리 한국 사람은 2~3대만 올라가면 완전 우상 숭배자였다. 그것도 수천 년 동안 수십 대를 그렇게 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영들이 뭉쳐지고 뭉쳐져서 내려오고 그리고 또 내려오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이 악한 영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려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여 그것을 내 몸과 내 환경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조상들의 죄를 내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이다. 

 

7.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조건은 천국 입성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믿음과 회개로 거듭나서 지은 죄를 지금도 자백하여 회개하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 충분히 들어가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함인데, 우리가 천국에서 얻을 이 지위와 신분은 영원무궁토록 우리가 누릴 것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신분과 지위를 이 땅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나에게 죄지은 자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요, 상처입고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의 친구로 여기고 돌보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자기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게 하기 위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구약의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신약의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길수록 우리는 천국에서 더 높은 신분과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몸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 중에는 이미 천국에서부터 어떤 사명을 부여받아 이 땅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그러한 그릇으로 쓰시려고 그렇게 결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토기장이가 흙으로 하나의 그릇을 만들되 자기가 필요한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만들어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어 보내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어 보내신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시고 안배하여 그렇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명을 가지고 온 자들은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해야 한다. 만약 사명을 맡은 자가 있는데 그가 사명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는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바깥 더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5:13~30). 그러므로 맡은 자는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성의 마지막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계2:10).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런 자에게 저 하늘에서 놀라운 신분을 주실 것이다. 사명을 맡은 자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8.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누리게 될 4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말씀대로 순종하고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되는가? 그것은 총 4가지다. 첫째는 더 높은 신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제일 높은 신분이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것이다. 그리고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적고 충성하는 것도 적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서 섬기는 자로 살 것이다(마20:26~27). 이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겠지만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해 주셨고, 천국에 가 보면 또한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천국에서 섬기는 자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슬프게 느껴지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기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더 앞쪽의 보좌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린다. 또한 천국에 들어오는 성도들을 환영하기도 한다. 그때에 천국 성도들은 자기의 보좌에 앉게 되는데, 천국의 무수한 성도들 가운데 144,000명만이 자기의 보좌에 앉게 된다.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울수록 높은 신분을 가진 자가 앉는다. 그런데 이 보좌 자리는 영구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준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순종하고 충성함으로 말이다. 셋째는 여러 종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 면류관의 종류와 크기와 모양이 다르며, 거기에 박혀 있는 보석의 종류와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섬김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 충성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등 다양한 면류관이 주어진다. 어떤 이는 20개 이상의 면류관을 받는 자도 있다. 그렇다고 고개가 아파서 어떻게 그것을 쓰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무게는 이 세상의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는 멋지게 지어진 천국집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천국에 있는 집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면서 헌신할 때에 지어진다. 그때마다 천사가 그러한 사실을 보고하면, 그것이 행위책에 기록되고, 행위책에 기록된 대로 집이 지어지는 것이다. 집은 우리가 올리는 충성에 따라 연건평이 정해지고, 집의 크기가 정해지며 그 안에 들어갈 인테리어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 세상에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천국에서도 나에게 주어진다. 장미꽃을 좋아한다면 아마 화단에 장미꽃이 심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를 좋아하는 자들은 새들도 정원에서 노래할 터인데, 새들의 숫자도 이미 정해져 있다. 

 

9. 나오며

  그렇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회개하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지은 자범죄들을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과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우리에게 내려온 악한 영들이 내 몸속에 침투해 있거나 내 주변에 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회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진실로 예수믿는 자가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자기의 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까지 회개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그럴수록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서 제거되고 우리의 환경에서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신들이 떠나간다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부터는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이 더 크게 준비되기 때문이다. 그날 이렇게 충성한 자는 더 영광스러운 신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영광스러운 보좌 자리와 면류관과 천국집을 하사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잠시만 누리다가 반납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토록 우리가 누릴 영광스러운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의 강도가 다르듯,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도 각자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대로 받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 오후 5시에 들어와서 한 시간만 일했던 자라도 주님은 하루의 품삯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라. 충성하라. 그러면 영광스러운 우리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22년 02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열 처녀의 비유는 주님 오실 때에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비유라는 것쯤은 아마 모두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그 '기름'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성령'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나중에 기름을 가지고 왔는데도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를 통하여, '기름'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자는 오늘부터라도 그 기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2022-02-2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복음(06)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구분하는 2가지 기준은?(마25:1~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4tC_no-EUd8 [혹은 https://tv.naver.com/v/25389890 ]

 

1. 들어가며

  마태복음 25장에는 천국에 관한 3가지 비유가 등장한다. 그것들 중에 첫 번째 비유가 바로 '열 처녀의 비유'다. 이 비유는 누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놀라운 비유 말씀이다. 이 비유에 관한 기본적인 포맷은 이미 며칠 전에 함께 나누었다. "천국복음(05) 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에 못 들어갔는가?"가 그 제목이다. 오늘은 이 비유에 대한 두 번째 시간으로서, 똑같이 둘 다 처녀들이었으며, 똑같이 둘 다 신랑을 기다리던 여인들이었는데, 왜 한 편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었고, 반대로 왜 또 한 편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이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번 말씀을 통하여 대체 '기름'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 깊이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나도 기름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철저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 비유는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충분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2. 천국 준비는 그냥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깨어있으라' 혹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하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의 의미요 저렇게 하는 것이 준비하고 있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흔한 생각은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요 준비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조금 뚜렷하지 않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깨어있으라 그리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충성하고 있으라"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있으라"는 의이다(마24:44~45). 그러므로 내가 지금 깨어 있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똑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혜롭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2가지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주셨다. 하나는 "지혜롭게 하고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마25:1~13). 그리고 또 하나로 "충성하고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시기 위해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셨다(마25:14~30).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지혜롭게 준비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말씀이라고 하겠다. 사실 기도도 배워서 할 때에 시간이 절약되고 더 잘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듯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준비한다면 훨씬 그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3. 처녀들이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거나 못 들어가게 되었던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혼인잔치 곧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국의 영광의 광장에서 이루어질 혼인잔치는 과연 누가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늘 "열 처녀의 비유"에 따르면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요,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하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딱 2가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그날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느냐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준비한 기름이 과연 주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전자는 기름을 준비한 채 나갔느냐 아니면 그냥 나갔느냐 하는 문제요, 후자는 기름을 가지고 가긴 갔어도 그 기름을 과연 신랑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느냐 받지 못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4.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등(등잔이나 횃불)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등만 가지고 나갔다. 곧 기름을 가지고 갔느냐가 결국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럼, 왜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가지고 나간 것인가?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딱 한 가지 차이에서다.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간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만남을 생각하고 준비하고서 나갔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1절과 6절에서 알 수 있다. 1절을 보면,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자기의 등을 취한 후에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맞이하러'라는 말은 '마중을 위하여, 영접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휘판데시스'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누가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가 나오는데, 이는 그분과의 만남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자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만남'이라는 단어는 '아판데시스'이다. 그렇다. 슬기로운 처녀나 미련한 처녀가 신랑을 마중 나갔던 것은 다 동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마중만 나간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을 준비한 채 나갔던 것이요, 미련한 처녀는 그냥 마중만 나간 것이다. 

 

5. 슬기로운 여인이 준비했던 기름은 어떤 용도였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슬기로운 여인이 준비했던 기름은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맞다. 하지만 그 기름은 그 용도로만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 비유의 후반부에 나온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이 온다는 말에 깨어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등잔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좀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그들은 곱게 거부하면서 자기가 쓰기에도 부족할 것 같으니, 가서 댓가를 지불하고 사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기 위해 급히 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온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혼인 집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그들이 신랑에게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청원한다. 그런데 신랑은 그들은 알지 못하겠다고 잘라 말한다. 다시 말해 "너희가 내 신부가 될 사람인지는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련한 처녀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신랑이 그들을 혼인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그들의 등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아서였는가? 아니다. 그들이 신랑의 영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이유는 그들이 나중에 기름을 채워서 왔더라도 그 기름은 신랑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등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아서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을 신부로 맞아들이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슬기로운 여인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전에 준비했던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이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신랑이 오기 전에 준비한 기름은 그녀들로 하여금 신랑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이들이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했다는 증표였던 것이다. 뒤늦게 기름을 가지고 온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그것이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신부로서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슬기로운 여인들은 언제부터 이 기름을 준비한 것인가? 그것은 '처음부터'다. 그들이 앞으로 자신이 신부가 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부터다. 왜냐하면 2절 말씀을 보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된 것이 나중에 신랑을 만날 때에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음을 헬라어 동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을 보면, 슬기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신랑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지혜로운 이들로 있어왔기 때문이요(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구문), 미련한 다섯 처녀도 역시 처음부터 신랑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미련한 이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구문). 그 근거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그릇에다가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이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그것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 왜 슬기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슬기로운 처녀는 어떻게 되어서 처음부터 그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장차 영접하기 위해서만('휘판데시스') 살았던 것이 아니라 신랑과의 만남('아판데시스')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부는 처음부터 장차 신랑이 자신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하면 신랑이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 줄 것인지를 생각하며 준비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신랑이 자기를 아내로 맞이해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만약 그날 그들이 신랑을 만났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나는 당신을 모르겠소. 그래서 나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소"라고 말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기다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지런히 신랑과의 만남을 위해 모든 나날을 준비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그들이 가져간 '기름'은 그저 단순한 기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와 땀과 노력의 결정체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슬기로운 처녀들이 가지고 간 기름의 그릇이 '기름병'이었다고 나온다. 그 안에 기름을 채워서 가져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에서 혼신의 노력으로 댓가를 치러 신랑을 맞을 준비하였던 것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기름이 되어 그 기름병에 채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처녀들이 신랑을 마중 나갈 때에 그들의 허리에서는 찰랑찰랑하면서 기름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 기름병에 담겨진 것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일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은 그 기름을 준비하기 위해 때로는 서슬퍼런 핍박을 견디어내야 했을 것이고, 노동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일해야 했으며,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쁨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장차 신랑을 마주 대할 만남의 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것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처음 믿었을 때에 받은 것을 그냥 가진 채 그냥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주님과의 맞선에서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지에 관하여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8. 열 처녀의 비유가 들려주는 기름의 4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하여, 열 처녀의 비유가 들려주는 기름의 4가지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째는 그것은 절대 남에게 나눠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준비한 것은 자기만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꺼져가는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라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등불'은 계4:5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 곧 '성령'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만나는 그날까지 성령께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수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기름을 미련한 다섯 처녀에 나눠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들이 달라고 했을 때에 그들은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라고 하였다. 자기들도 댓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신랑은 지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졸았고 잠들었다. 모두가 지쳐서 그만 잠든 것이다. 여기서 '잠들었다'는 말은 요11:11~13이나 살전4:13~16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열 처녀들은 모두 다 죽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에 큰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호령'도 아마 천사장의 호령이리라고 본다(살전4:16). 그러자 그들이 깨어났다. 그들이 부활한 것이다(살전4:16, 고전15:12~18). 그런데 부활한 후에 나가서 준비해온 기름은 그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댓가를 치르지 않은 분들은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치른 댓가를 통해서 절대 혼인잔치에 참여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댓가를 치러서 우리의 것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우리가 이땅에 살고 있을 때 뿐이다. 

 

9.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의 최종적인 쓰임은 어디에서일까?

  헬라어원문을 보면, 슬기로운 여인들이 준비했던 기름병의 숫자가 각각 다르다. 어떤 여인은 한 개의 기름병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여인은 두 개의 기름병이나 다섯 개의 기름병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아니 어떤 여인은 한 개의 기름병 안에 기름을 다 채우지 못해 이제 맨 밑바닦에 채울 만큼의 기름만 가지고 있었던 여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을 신랑으로 맞이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며 준비했던 그 여인들을 다 신부로 맞이해주었다. 사실 이 비유에 나오는 '신랑'은 전지전능한 분이다. 왜냐하면 신랑이 곧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미련한 다섯처녀에게 "나는 처음부터 너희들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기름병에 담긴 기름이 어떻게 해서 채워졌는지를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떤 기름은 핍박과 고난을 참으면서 준비했던 한 방울의 기름이라는 것을 그분은 아시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신랑을 만날 그날을 위해 수고한 땀방울의 결실이라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날 기름병의 크기와 숫자와 그리고 양에 따라 신부들에게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들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이러한 면류관으로 주실 것이고, 아니면 저러한 면류관으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면류관에 박힐 보석도 이러한 것으로 주시기도 하고, 저러한 것으로 주시기도 하실 것이다. 기름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말이다. 그리고 그 준비한 기름의 크기에 따라 보좌 자리도, 천국 집도 각기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신분도 정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은 처녀들의 일생의 수고와 사랑과 눈물과 땀이 담겨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기꺼이 하늘나라를 위해 그 기름을 준비했던 것이다. "오, 주여 나도 지금부터라도 그 기름을 준비하게 하소서!"

 

10. 나오며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랬었구나. 그 여인들이 그렇게 해서 기름을 준비하였고 그것을 허리에 차고 마중 나갔었구나"하고 생각하면 그 기름 한 방울 한 방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되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실천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그러한 사실에 관심도 없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곧 그들은 자신은 신랑을 마중 나갈 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그날 그 시에 어떻게 신랑을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등'으로 상징되는 '성령'을 받았고(계4:5), 처음에는 그것으로 불도 사를 수 있었기에 그것이 있으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지체되었다. 오늘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믿는 순간에 죽지 않는다.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살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등불이 점차로 희미해져간다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처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믿은 것으로 혼인잔치에 그냥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혼인잔치에 못 들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분조건으로 그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그렇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후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이라 할지라도 하루치의 품삯을 주었던 그 포도원 주인(마20:1~16)이신 우리 주 예수님,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기억하고 오늘부터라도 신부단장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2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05) 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에 못 들어갔는가?(마25:1~13)_2022-02-25(금)

https://youtu.be/-q3f8_LatVg  [혹은 https://tv.naver.com/v/25388161 ]

 

1. 마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의 주제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의 주제는 언제 주님이 오실른지 모르니 "깨어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깨어 있는 것은 곧 준비하고 있는 것과 같다(마24:42, 25:13). 그러므로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지혜로운) 처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련한(어리석은) 처녀가 될 것인가는 신랑이 올 때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 '열 처녀의 비유' 말씀 중 그동안 잘못 알려져 온 해석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동안 열 처녀의 비유는 곡해되어 온 것이 몇 가지 있다. 그것들 중의 하나는 '열 처녀'가 바로 '신부의 들러리'였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들을 들러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들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와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5:1). 그리고 이들에게 예수님은 신랑인 것이지 자신의 친구의 남편이 아니다. 자기들과 관계되어 있는 신랑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 처녀는 신랑을 "주여 주여"라고 불렀다(마25:11). 이는 이 신랑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또 하나는 신랑이 닫았던 그 집의 문이 신부집의 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도 바른 해석이 아니다. 이 혼인 잔치는 신랑과 함께 신랑의 집에서 시작되는 혼인 잔치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권한은 신부나 신부의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님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마25:10~12).

 

3. 이 비유는 무엇에 관한 비유인가?

  이 비유 말씀은 천국에 관한 비유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4장부터 시작된 주의 재림 시에 있을 징조에 관한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유이며, 주님의 재림은 곧이어 혼인 잔치로 이어지는데, 실제 재림하시는 예수께서 혼인 잔치를 배설할 장소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이기 때문이다(계19:9, 21:2). 정확히는 [천국에 가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영광의 광장이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갔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가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성밖에 남겨졌다는 것은 슬기로운 처녀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성밖에 남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왜 미련한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왜 미련한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는가? 그것은 똑같은 말이지만 표현을 달리하면 2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둘 다 똑같이 자기 자신을 위한 등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기름을 따로 준비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마25:10). 둘째는 열 처녀들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주님께서 전혀 아신 바 된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마25:12). 먼저, 첫째로 이들의 차이는 '여분의 기름'의 준비 여부에 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다른 그릇에 기름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이 비유의 주제가 '준비하고 있으라'인 만큼,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까지 충분히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아니 기름을 따로 준비하는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이 처음부터 어떤 자들이었는지가 2절에 나오는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열 처녀들 중에 다섯 처녀는 미완료 시제로 그들은 처음부터 어리석어 왔고 현재도 어리석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지혜로워 왔고 현재도 지혜로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둘은 처음부터 달랐다. 이것을 요즘 말로 표현해 보면 이렇다. 열 처녀 모두는 다 예수님이 신랑인 것도 알고 있었고, 등('등잔'이나 '횃불')으로 표현된 성령도 받아서 간직한 채 있었으며, 그분이 오시면 혼인 잔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로 두 종류 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으며, 두 종류 다 재림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는 처음부터 그 준비를 해 오고 있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처음부터 그 준비를 해 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들은 준비하지 않고 있어도 언제든 결혼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누리게 될 결혼 잔치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잔치에 참여하려면 신부 단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열 처녀들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주님께서 처음부터 알아온 채 있지 않은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마25:12). 미련한 다섯 처녀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 밤에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기름을 구하러 가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그녀들의 손에 기름이 들려져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들은 한 사람도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돌아왔을 것이다. 그것은 댓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들의 손에 기름을 갖고 있느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시는 주님의 눈에 그들은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최종적으로 "내가 너희를 알아온 채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5:12). 이것은 완료 구문으로서 이미 주님에게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의미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알다'는 말에 사용된 단어는 바로 '오이다'라는 단어이다. '오이다'는 '기노스코'에 비해, 지식적인 앎에다가 친밀한 관계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참고로 '기노스코'는 지식적인 앎에다가 체험적인 앎을 같이 합친 개념이다(마7:23). 그러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들에게 주님은 형식적인 주님이었을 뿐 주님과 커뮤니케이션(교통)이 되는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을 단장하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5. 슬기로운 처녀가 처음부터 준비해 두었던 '여분의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슬기로운('프로니모스') 다섯 처녀는 언제부터 등잔(혹은 '횃불')에 태울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그건 놀랍게도 처음부터다. 그럼 슬기로운(정확히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준비했던 '기름'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이 비유 이야기 속에서는 무엇이라고 딱히 정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른지에 대해서는 4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신랑이 언제 오든지 그 신랑을 맞이할 때에 사용할 충분한 양의 기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마25:3,8). 둘째, 꺼져가는 등불(혹은 횃불)을 밝힐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마25:8). 참고로 여기서 '등'이란 요한계시록 4:5에 나오는 단어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켜놓은 일곱 등불을 가리킨다. 고로 이 등불은 사도 요한의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일곱 영들' 곧 성령이라고 할 수 있다(때로는 그것을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시119:105 참조). 그러므로 여분의 '기름'이란 성령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마25:9).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마25:9). 그러므로 '기름'을 성령으로 푸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은 결코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름'은 남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빌려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나온다. 오롯이 자기가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희생하여 준비하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값진 진주 장수의 비유처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사야 할 만큼 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넷째, 이것은 반드시 신랑이 오기 전에 혹은 자기가 죽기 전에 준비해 놓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마25:5~7, 요11:11~13).

 

 

2022년 02월 2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04) 왜 주님은 천국을 말씀하실 때에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셨을까?(마19:27~30)_2022-02-24(목)

https://youtu.be/L8yqlb7W-Kw  [혹은 https://tv.naver.com/v/25318456 ]

 

1.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조건과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다(막1:15).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그는 최소한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회개해야 한다(계22:14~15). 그렇다면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행위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의로워야 하는 것이다(마5:20).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마7:21). 그리고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것일지라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마19:23). 그리고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희생해야 한다(마13:45~46).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믿는 자들의 약 5%정도만이 천국에 들어가고 있고, 주의 종들은 그보다 훨씬 더 못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 왜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최소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신 것인가?

  예수께서는 지상에서의 공생애 동안에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대부분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셨다. 왜 그러신 것일까? 그냥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좀 더 쉽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은 그러한 말씀들로 말씀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좀 더 얕게 말해 주면, 그러한 일을 어렵게 보지 않고 방심하고 있다가 그만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실 자신도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정도 쯤이야'라고 생각하다가 멸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주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까다롭게 말씀하시어 경고를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것이 되는가? 참으로 측량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긴장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만 방심하다가 큰코다치게 되기 때문이다. 

 

3.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좀 더 까다로운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신 이유 2가지는 무엇인가?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좀 더 까다롭게 말씀하신 이유를 정리해 보면 사실 2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소극적인 이유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이유이다. 먼저, 소극적인 이유부터 살펴보자. 만약 주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성도들은 적당하게 회개할 자가 많을 것이고, 적당하게 충성할 자도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자신은 회개했으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정도만 된 것도 감사해야 한다면서 적당히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만 '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 그리고 '지옥불'에 던져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주님께서는 소극적인 이유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 자칫하면 적극적으로 천국을 준비하지 못해서 성밖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의 예다(마25:1~13). 사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들도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등과 기름까지 준비하고 있던 신부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천국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칫하면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지 못해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달란트의 비유의 예다(마25:14~30). 여기서 '달란트'란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에게 주신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속에 감추어 두고 말았다. 그리고 주인이 다시 오던 날에 그것을 내드렸다. 주인께 손해는 입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사명을 맡은 자는 충성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게으르게 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밖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칫하면 범죄하다가 그만 지옥불에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18:8~9의 말씀에 나온다. 그때 주님께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좀 더 까다로운 충분조건으로 말씀하신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을 조금 어렵게 말씀하신 보다 더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약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면 보좌에 앉아서 왕 노릇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께서 바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천국에 들어갔으나 천국에서 종이나 시중드는 자로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이때 예수께서 보좌에 앉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푹신한 의자에 앉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그 보좌에 앉아서 왕 노릇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날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마20:20~21). 그때 주님께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막10:38). 그리고 과연 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보좌에 앉게 되는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이 땅에서 종으로 살고 이 땅에서 섬기면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헬라어의 실제의 의미는 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0:26~27의 말씀을 직역하면 이와 같기 때문이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장차 너희들의 시중드는 자로 있을 것이다. 만일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첫째이기를 원한다면, 그는 장차 너희들의 종으로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더라도 어떤 사람은 시중드는 자로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종으로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다. 천국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왕 노릇하는 성도가 있고 그들을 시중드는 성도도 있기 때문이다. 천사만이 시중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천사도 시중들지만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가운데서도 왕 노릇하는 성도들의 집에 들어가서 시중드는 자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물론 천국에서 시중드는 것은 이 땅에서처럼 비굴하게 보인다든지 아니면 비참하게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시중드는 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감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면 기왕이면 그곳에서 면류관 쓰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딤후4:8). 천국에서 쓰는 면류관은 그 모양과 크기 그리고 거기에 박힌 보석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면류관도 한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종류의 면류관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천국에서는 면류관을 쓰는 성도와 쓰지 않은 성도에게 있어서 그 명예와 영광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는 천국이기에 시기 질투심은 없지만 부러움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면 기왕이면 천국의 화려하고 좋은 집에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그렇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살 집이 있다. 주소도 있다. 마을도 있다. 그리고 대문도 있고, 집도 있고, 마당도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집에 거의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주님을 위해 충성한 것이 적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집의 크기가 아주 작다. 왜냐하면 너무나 늦게 믿었거나 충성할 시간이 없어서 천국집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천국집을 잘 장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회개하여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고, 이어서 그분이 맡겨 주신 일과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5.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성도들이 갖는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가 다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을 하는 사람은 보좌에 앉아서 왕 노릇하는 자일 뿐이다(마19:27~29). 누구나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는 시중드는 자 곧 종처럼 섬기는 신분을 가진 성도도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나 늦게 믿었다든지, 아니면 너무 늦게 천국의 비밀을 알아서 미처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준비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정신차리고 있지 않다가 간신히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자신이 성 바깥에 남겨졌다든지, 아니면 성밖 어두운 곳에 떨어진 채 고통을 받고 있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과 유황이 타는 영영한 불못에 던져지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신분은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신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이 땅에서 살 때에 천국에서 부여될 영원한 신분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아가서 6:8~9에 따르면, 신부라도 네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같은 신분은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된 것일 뿐 천국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똑같지 않다. 하지만 신분은 네 종류가 있다고 보면 된다. 하나는 왕권신부요 그리고 나머지는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가 그것이다. 여기서 왕권신부는 천국에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고, 대부분은 시녀신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왕후신부와 비빈신부도 있기는 있지만 그러한 신분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 왕권신부쪽으로 갈수록 숫자는 적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회개만 하지 말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지위에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2월 24일(목)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