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21) 첫번째 성령세례사건은 어떠했는가?(행2:1~4)_2020-06-12(금)

https://youtu.be/hyafAAFHo0g [혹은 https://tv.naver.com/v/14249339 ]

 

 

1.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인가 성령세례 사건인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50일째되는 날이었던 오순절날(A.D.30년 3월 5일경)에 성령께서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인가요 아니면 성령세례 사건인가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이면서 동시에 성령세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성령의 내주 사건이자 성령세례 사건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행2:1~4의 말씀만으로는 경륜적인 성령이 120명의 성도들 속에 오셨다는 말도 나오지 않고, 성령이 그들 위에 부어지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베드로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보고하는 장면을 보면, 그 사건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건이자 성령의 성물이 주어지는 성령세례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고넬료가정)에게 임하시기를(내려오시기를) 처음에 우리에게 하신 것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으니(행11:15~17a)" 고로 그때에 경륜적인 성령께서 보혜사로서 120명 성도들의 영 속에 들어오신 것이 맞습니다. 다시 말해 그때에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성령세례를 동반한 성령의 내주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때로부터 열흘 전에 "내게서 들었던 바, 아버지의 약속을 계속해서 기다리라.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은 물을 세례를 주었지만, 그런데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언급하셨던 "내게서 들었던 바 아버지의 약속"이란 첫째, 성령의 내주에 대한 약속이자(겔36:26~27,렘31:31~33,요14:16~17,26,15:26,16:7~8), 동시에 둘째, 성령의 부어지심 곧 성령세례에 대한 얄속이기 때문입니다(욜2:28~29, 행2:17~18). 무엇보다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의 소식을 알고서 몰려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선포했던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 일은 요엘선지자의 예언의 성취 곧 모든 사람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사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증할 수가 있습니다(행2:16~21).

 

3.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성령의 내주"란 믿고 회개하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시어 영생을 주시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성령세례"는 요엘선지자의 예언처럼 성령께서 그들 모두에게 부어지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믿는 사람 위에 부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2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믿을 때에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하나는 믿은 후에 즉 성령의 내주를 이미 경험한 자들에게 별도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강림사건은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서, 성령께서 순간적으로 그 사람들을 사로잡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그들이 방언을 말하게 된 사건을 가리킵니다. 

 

4.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성령의 내주"는 요한복음 3장예서 예수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순절날에는 성령께서 그렇게 은밀하게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날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들어가실 때에는 은밀하게 진행된 사건이겠지만, 주께서는 그 사건을 통하여 그들을 담대한 복음전파의 도구로 삼기 위해 선물로서 표적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령께서 그들 속에 오셨고 또한 그들 위에 세례로 부어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금 그들 모두가 "방언"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120명의 성도들은 자기들 속에 성령이 오셨으며 동시에 자기들 위에 성령이 부어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첫번째 성령세례 사건에서 선물이자 표적으로서 나타난 "방언"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나요?

  모든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에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고전12:28).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성령세례의 표적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을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글로싸)를 말하며...(막16:16~17)"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순절날에 성령께서 오실 때에 동시에 성령세례가 부어지면서,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그 영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4).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성령세례가 부어질 때에 따라오는 표적으로서 "방언(글로싸)"을 이번 개역성경에서 그만 "언어들"이라는 말로 고쳐놓았다는 점입니다. 즉 이때 했던 방언과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로서 말하고 있는 "방언(글로싸)"이 다 동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글성경에서는 행2:4의 말씀 곧 "다른 방언들"이라는 말씀을 그만 "다른 언어들"이라는 단어로 수정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방언들"이라고 놔두었으면 더 일관성이 있었을테고, 그때 했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을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추후 은사편 가서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2020년 06월 1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20) 성령세례란 무엇인가?(행1:4~8)_2020-06-11(목)

https://youtu.be/W0D8NeQxbQA [혹은 https://tv.naver.com/v/14234494 ]

 

 

  

1. 성령세례란 무엇을 가리키나요?

  "성령세례"란 한 마디로 "성령으로(혹은 성령 안에서) 세례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라는 뜻의 주안점은 "세례"라는 말에 있습니다. 고로 "세례"라는 의미가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견주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행1:5). 고로 우리가 성령세례의 확실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물세례"의 의미부터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세례를 최초로 베푼 사람은 사실 세례자요한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게 하기 위해 물로(물 안에서) 세례를 베풀었지만,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인 예수께서는 "성령과 불로"(성령 안에서 그리고 불 안에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마3:10~12). 그러므로 성령세례에 올바른 의미를 찾으려면, 물세례와 불세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물세례와 불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시만, 예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마3:11). 여기서 "불"이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곧 죄를 용서받지 못한 불신자)를 태우거나, 알곡이 되지 못한 쭉정이를 태우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에서 "불"이라는 것은 태워버려 삼켜버리게 하는 도구를 가리킵니다. 마찬가지로, "물"은 사람을 잠기게 함으로서 물로 사람을 삼켜버리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나 불세례는 둘 다 똑같이, 무엇인가를 사로잡아 삼켜버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동시에 물세례나 불세례는 죄를 씻거나 태워버리는 도구로서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세례가 사람의 죄를 씻어내는 세례 혹은 사람을 물로 잠그는 세례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성령세례도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인하여 사람의 죄를 씻어내는 세례의 일종이면서 동시에 성령에게 사람의 영혼이 사로잡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언급하신 성령세례는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약속은 어떤 약속인가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임할 성령세례가 곧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셨습니다(행1:4, 눅22:49).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관하여 어떤 약속을 해 주셨던 것인가요? 이것을 위해 구약성경에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성령에 대해 2가지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첫째로, 장차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며, 둘째로, 사람들 속(안)으로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든 사람에게 다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요엘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약속입니다. 

욜2:28-3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그러므로 이 약속은 몇몇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역사하셨던 구약의 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이 부어질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심지어 성령께서는 어떤 신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 "속에(안으로)"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한 약속입니다.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하면, 돌비과 두루마리(책)로 쓰여진 율법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을 자꾸 깨뜨리니, 장차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되면 하나님의 새로운 영(경륜의 영,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을 사람 속에 집어넣어두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성령에 관한 아버지의 약속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요?

  고로 성령(오순절이후 오실 경륜의 영)에 관한 아버지의 약속은 2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내주에 관한 약속입니다(겔36:26~27, 렘31:31~33, 요14:1~17). 하나님께서 언젠가 성령을 사람의 위에나 옆에 있지 않게 않고, 사람들 속에(안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지는 성령으로서, 성령에 의한 세례를 약속하신 것입니다(요일2:28~29). 이는 신분이나 성별이나 나이에 차별없이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A.D.30년 오순절날에 마가다락방에 경륜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오신 성령은 사람 속에 내주하시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부어지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사람들은 거듭 태어나게 되고, 부어지는 성령에 의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이제 성령세례를 다시 정의해보십시오. 

  이제 성령세례를 다시 정의해본다면, 성령세례란 이미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예언들에 대한 성취로서, 성령의 내주와 더불어 성령께서 믿는 이들 위에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물세례를 받을 때에 어떤 경우에는 물이 부어지듯, 사람 위에 성령께서 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 사람은 대부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며, 동시에 다른 여러가지 은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의미의 성령세례 곧 물세례의 의미처럼 옛사람이 죽고(물에 잠길 때) (물에서 올라올 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성령세례(고전12:13)도 있음을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2020년 06월 1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19) 성령충만과 성령세례의 차이는 무엇인가(행1:4~8)_2020-06-10(수)

https://youtu.be/T96d_UXbFQE [혹은 https://tv.naver.com/v/14211848  ]

 

 

1. 성령충만이란 무엇이며 성령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성령충만"이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서 들어와 가득찬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람 안에서 행하시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세례"라는 것은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그때 그 대상이 처음 믿는 사람이든지 이미 믿고 있었으나 아직 성령의 선물(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이든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지심으로 성령의 선물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2.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성령충만"은 성령의 내주(성령에 사람 속에 들어오심)가 단회적이라면, 성령충만은 반복적이며 계속적인 경우라고 우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세례가 대부분 단회적이지만 반복적인 것도 가능한 것은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성령께서 그에게 부어지심으로 성령께서 그를 사로잡아 어떤 은사를 주시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성령세례도 일생에 한 번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가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으면 대부분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게 됩니다(은사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성령충만의 목적이 성도의 인격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데 있다고 한다면,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성도를 사로잡아 복음을 전파케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행1:8). 

 

3. 성령충만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
  성령충만에 대해서 성경은 성령께서 믿는 자들을 주관하고 있는 상태라고 언급함으로써(엡5:18), 대부분의 성령충만은 장기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키며 인격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순간적으로 어떤 사람을 사로잡아(대부분 기도할 때의 경우임) 그로 하여금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도록 하게 하는 성령충만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성령의 내주를 경험했거나 혹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후부터는 성령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약성경 가운데에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오직 한 번 나오지만(엡5:18), 믿는 이가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경우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4회 나오고(눅1:15, 41, 67, 4:1), 사도행전에서 10회 나오고 있습니다(행2:4, 4:8,31, 6:3,5, 7:55, 9:17, 11:24, 13:9,52). 고로 우리는 "한 번의 성령세례"에 "반복적인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로 일단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4. 성령세례가 순간적으로 성령의 부어지는 경우를 가리키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 언급되고 있으며, 그것도 사도바울의 서신에서만 언급되어 있습니다(고전12:13). 이때는 사람이 성령의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문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고전12:13을 제외한 모든 성경에서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지는 어떤 현상을 가리키며, 그때 성령의 어떤 은사(선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5.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는 성령세례를 어떻게 표현했나요?
  예수께서는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씀 곧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행1:4). 그리고 그 모습(양상)은 세례받는 것과 동일한 양상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행1:5).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서, 물이 사람의 머리에 부어지듯 성령이 그에게 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행1:5).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이란 2가지를 언급하는데, 먼저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마가다락방에서 들려주셨던 말씀들(요14~16장) 가운데에 "보혜사 성령"을 그들 속에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가리킵니다(요14:16~17,26, 15:26, 16:7~8). 그러나 나중에 좀 더 말씀을 더 드리겠지만, 요엘선지자의 말씀처럼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게 되는 것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욜2:28).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도 자신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경험했던 것을 일컬어 "성령세례"라고 언급하였으며 그 일이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행11:15~16). 또한 그때 성령세례로 인하여 고넬료가정에 성령의 선물(은사)이 부어졌다고 보고하였습니다(행11:17). 

 

2020년 06월 10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18) 성령충만과 성령의 내주는 어떻게 다른가?(엡5:17~18)_2020-06-09(화)

https://youtu.be/K70nQKDtcPo [혹은 https://tv.naver.com/v/14191628 ] 

 

 

1. 성령충만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성령충만은 한 마디로 성령이 내 영 안에서 가득찬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은 술의 능력에 의해 움직이듯이 성령이 가득찬 사람도 성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엡5;127, 행2:13). 

 

2. 성령충만은 어떻게 받는 것인가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 내 영이 움직여지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사도바울은 서신서에서 3가지 사항을 권면했습니다. 첫째,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살전5:19). 여기서 '소멸하지'라는 말은 '(불을)끄지'라는 뜻이지만 성령께서 한 번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불을 꺼지듯 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제하지, 제지하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성령을 억눌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엡4:30). 여기서 '근심하게 하지'라는 말의 원뜻은 '고통을 가하지, 아프게 하지'라는 뜻입니다. 고로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결코 성령을 아프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럼, 어떤 것이 성령에게 고통을 가하게 것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범죄할 때입니다. 우리가 죄된 본성에 따라 죄를 지을 때 성령께서 매우 근심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저주받은 영들인 귀신이 역사한다는 것을 성령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 귀신이 역사하면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질병과 저주가 찾아오고, 파멸과 고통이 임하고, 자녀와 가정과 직장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귀신이 와서 이렇게 행하는 일들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더이상 아프게 하지 않도록 죄에게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는 일입니다(요일1:9). 그리고 더이상 죄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게 된다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습니다(갈5:16). 이 말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걸어가는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고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게 하고, 그분의 소원에 나의 소원이 되게 하며, 그분의 뜻이 나의 뜻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성령충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3.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어떻게 내게 말씀하시나요?

  내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께서는 그 시간 이후부터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20)" 그럼, 성령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어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성령께서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들려주시어 인도하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99.9%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귀신들도 흉내내어 그렇게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령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우선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혼(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말씀하시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에게 어느 때에 순간적으로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듯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때로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거나, 때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음성에 늘 순종해야 합니다. 

 

4. 왜 성도는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왜 성도는 자기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할까요? 그리하여 그분의 음성에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우리를 가장 선하고 유익한 길로 언제나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죄된 본성에 팔려 죄를 짓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성도는 누구나 순간에 스쳐지나가듯 깨우쳐주시고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성령의 음성을 잘못 듣겠다는 분이 혹시 있으면 그분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성경말씀을 해석해주는 영적인 목회자의 설교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순식간에 그 사람을 그렇게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일컬어 "성령의 음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성경을 깨닫게하여 말씀하시는데, 실은 성령께서 사람을 사로잡아 쓰게 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현재 붙잡아 쓰는 사람이 곧 설교자이기 때문입니다. 

 

5. 성령의 내주와 성령충만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요?

  성령의 내주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시어 함께 사시는 것을 가리킵니다(요14:16~17). 그것은 예수께서 모세시대처럼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마음 속에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14~15).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을 두고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을 일컬어 "거듭남(중생)"이라고 칭하기 때문입니다. 그순간 우리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며,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1:12). 그러면 그때부터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버지의 생명이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 예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성전삼고 거하심으로 들어오시게 됩니다(요일3:24). 한편, 성령충만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성령충만은 이미 성령으로 거듭태어난 사람의 영이 성령으로 가득차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내주는 한 번 있어질 일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가 없으면 그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성령충만을 못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영생을 못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충만받지 않는 성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06월 09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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