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06)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은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의 성취인가 대환난의 예표인가?(마24:15~22)_2021-08-24(화)

https://youtu.be/A0v0u4fwbO4아침묵상입니다.  [혹은  https://tv.naver.com/v/22031734 ]

 

1. 환난과 대환난은 어떻게 다른가?

  환난과 대환난은 어떻게 다른가? 환난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되어 온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산 자들은 다 짐승을 경배해 왔으며, 이때 짐승 경배하기를 거절한 자들은 다 그 짐승으로부터 핍박을 받거나 죽임을 당해왔기 때문이다(계13:8~10).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받아 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의 끄트머리에 대환난이 또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 마귀가 진짜로 올라오는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0:3,7). 그때의 싯점은 '두 증인'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할 때일 것이다. 이것이 대환난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환난의 예표가 몇 번 있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있었는데, 신약시대에 있는 대표적인 대환난으로 A.D.70년에 있었던 로마의 디도 장군과 그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을 때에 일어났다. 

 

2. A.D.70년에 있었던 대환난은 무엇이었는가?

  A.D.70년에는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5개월간(A.D.70.4월~8월 9일) 에워쌈으로 대환난은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하여 그것이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A.D.68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의 아버지였던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그의 아들 디도(티투스)와 함께 예루살렘을 에워쌈으로 먼저 시작되었다. 하지만 로마 장군 베스파시아누스가 네로 황제의 사망으로 인해 본국으로 소환되었고 곧이어 그는 스스로를 황제로 공포했다(A.D.69.7.1). 그리하여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디도(티투스)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이때 디도는 잠깐 자비를 허락했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펠라 지역으로 떠나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이 있었고 그때가 되면 빨리 도망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15~22). 그리고 로마 군단의 지원을 받은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에워싼지 5개월 만에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멸망하게 되었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는 말은 어떻게 성취되었나요?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24:15)"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이 말했는데 그것이 진짜 이루어지면 빨리 도망치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대환난'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며, '거룩한 곳'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가? '멸망의 가증한 것'은 짐승(적그리스도)의 우상이며, '거룩한 곳'은 제3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것의 대표 주자는 세대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에 7년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짐승 곧 적그리스도가 그 이레의 절반(3년 반)에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그리고 그때 유대인들이 그것을 거부할 것이므로 그때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예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과연 다니엘이 말한 바 '한 이레'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니면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으로 보지 않는다. 다니엘의 한 이레 곧 7년 대환난과 후 3년 반의 기간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주일 오후찬양예배 때(https://dongtanms.kr/77356)에도 살펴보았지만, 7년 대환난은 다니엘의 한 이레의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짐승에 의한 대환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마태복음 24:15의 평행 본문들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막13:14, 눅21:20).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우리는 마가복음이 맨 처음 쓰였고, 이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그 뒤에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는 그 전에 쓰여진 채 있었던 마가복음을 이미 자기의 손에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마가복음 13:14의 말씀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과 "서지 못할 곳"으로 나온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과 "거룩한 곳"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썼던 누가복음에서는 그 부분을 "군대들"과 "예루살렘"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은 어떤 군대들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4. 예수께서 인용하셨던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럼, 예수께서 인용하고 계시는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인가?(마24:15) 그것은 사실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니엘에서는 이 표현이 딱 세 번 나온다(단9:27, 11:31, 12:1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것들 중에 어떤 것을 생각하시면서 비유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는 그것의 하나를 딱 지정하여 말씀하신 것도 아니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이 예언했던 "멸망의 가증한 것"을 다니엘 9:27의 말씀만으로 한정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것 외에도 두 번 더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단11:31, 12:11). 

단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단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이것들 중에서 다니엘 9:27의 말씀을 보자. 이는 '70이레의 예언' 중에서 '한 이레'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있을 일이다. 그런데 다니엘 11:31에서는 헬라 제국이 분열된 후 셀류커스 왕조에서 나온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왕이 저지른 가증한 일(B.C.168년)을 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12:11은 앞의 것을 종합해서 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 9:27의 말씀이 언제 실행되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다니엘의 한 이레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다양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들은 대부분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된 것은 A.D.64년에 일어난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에 군대를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을 유린하였던 일이다(https://dongtanms.kr/62962). 고로,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은 헬라 제국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왕과 로마 제국의 '폼페이 장군'과 그의 군대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유린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5. 세대주의자들이 해석하는 '한 이레'에 있을 일은 과연 합당한가?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곧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말은 장차 미래의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예고한 것이지, 결코 세대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는 한 이레에 있을 일들 곧 적그리스도가 제3의 물리적인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1:20의 말씀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24:15에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한 것이다. 즉 로마의 '군대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말세에 A.D.70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대환난이 다시 올 것이라는 뜻이다. 

 

2021년 08월 24일(화)

정병진목사

 

 

과연 성경에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혹시 나온다면 어디에 있는 것을 가져온 것인가?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신 적이 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을 보면 오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만 나오고 있을 뿐인데,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환난의 기간을 전3년반과 후3년반을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후3년반의 기간은 대체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이 나는가? 이 모든 것이 이 한 편의 설교에 들어있다.

2021-08-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바른종말신앙(05) 7년 대환난은 과연 성경적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마24:15~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BhXzK264iE  [혹은 https://tv.naver.com/v/22002725   ]

 

1. 들어가며

  '7년 대환란', 이는 세대주의자들이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있을 기간으로 설정한 말이다. 이들은 7년 대환란을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서 가져왔다. 그들은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종말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어느새부턴가 한국교회에서도 마지막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자행될 핍박과 고통의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7년대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말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을 지칭하는 대용어로서 과연 합당한가? 과연 예수께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셨던 것이 있으셨는가? 우리는 이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 용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대환난기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든 성도들은 대환난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혹 그 기간에 우리가 놓여 있을지라도 대환난을 잘 이겨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가 과연 성경에 있으며 실제할 것인가?

  '7년 대환난'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용어를 우리가 사용할 때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7년 대환난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세대주의자는 어떻게 7년 대환난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7년 대환난은 이스라엘 민족과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겪을 환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기간은 교회를 지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환난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공히 함께 겪어야 할 환난을 가리킨다. 마지막 시기가 도래하면 정말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대환난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3. '7년 대환난'이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용어인 '7년 대환난'을 세대주의자들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그것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왔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예언에서 가져온 것이다. B.C.538년 메대왕 다리오 원년에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만에 마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을 예견하고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어 장차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에 되어질 미래의 일들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바로 70이레'의 예언이다(단9:24~27). '70이레'에 관한 자세한 예언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 여기서는 대강 아웃트라인만 살펴볼 것이다.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를 기준으로 하여 7이레와 62이레가 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62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과 그 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70이레의 예언은 메시야의 출현과 죽음 및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하여, 이것이 69이레 후에 바로 성취될 것이 아니라,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교회시대 2천년), 인류 마지막의 어느 시기에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마지막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시기를 '7년 대환난'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핍박이므로, 그때 나타나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존재는 이스라엘 민족과 7년간 평화조약을 맺었다가 파기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죽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라고 그들은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추수가 있어야 하기에, 교회는 잠시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7년 대환난 전의 '교회의 비밀휴거'라는 것이다. 

 

4. 예수께서는 '대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대환난에 관하여 말씀하셨을까? 그렇다. 예수께서는 마24장에서,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 곧 우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대환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때에 이스라엘에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15).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질 우상을 숭배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죽임당할 것인데 이것을 두고 대환난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기간을 '7년'이라고 딱 못 박지는 않으셨다. 다만 '대환난'이라고만 말씀하셨다(마24:21). 그리고 그 기간도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이 그 환난의 기간을 7년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산술적인 7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으며, 그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7년 대환난을 요한계시록도 과연 언급하고 있는가? 둘째, 대환난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셋째, 그 환난의 시작과 끝은 언제인가? 

  첫째, 7년 대환난의 기간을 과연 요한계시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산술적으로 7년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이라는 시간이 나오지 않고, 42달이라는 기간이 연거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42달은 한 달을 30일로 치자면, 1260일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삼년반이고, 다니엘에 나오는 표현으로 치자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을 3년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숫자가 완전수 7의 절반으로서 3.5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난의 기간이 완전히 가득찬 기간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 대환난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만이 겪는 대환난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때에 대환난을 겪을 것이겠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곧 교회도 동일하게 환난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2:17, 13:7,10). 그때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 때문에 받는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도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환난인 것이지, 성전을 세우고 거기에서 양잡고 하는 일 때문에 받는 환난은 아닌 것이다.

  셋째, 그 환난의 기간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대환난'이란 그냥 단순한 환난이 아니다. 그 환난은 아주 큰 환난이어서, 그런 환난이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을 만큼 아주 거대한 환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환난은 이전에 있었던 환난과 좀 차별이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도 사실 성도들은 환난을 겪어 왔다. 그것은 짐승(적그리스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거짓선지자(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한 핍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용(사탄마귀)가 가세한 환난이다(계16:13~14). 즉 사탄의 삼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환난인 것이다. 그래서 '대환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때의 환난은 아주 무서운 환난이 될 것이다. 성도들은 이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의해 가차없이 목베임을 당할 것이다계13;10, 20:4).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도 역시 목을 베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그 시기의 최소 시작 지점은 '두 증인'이 사역을 마칠 때다(계11:7, 17:8). 일곱 나팔 재앙으로 치자면 다섯째 나팔이거나 여섯째 나팔 재앙의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활동하는가? 그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땅의 왕들을 동원하여 하늘의 대왕이신 예수님께 대항하는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끝마칠 때까지다(계19:11~21). 이것을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으로 말하면,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 여섯째 대접 재앙까지일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재림하시어서,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무저갱에 쳐넣으셔서 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인데, 전쟁의 주된 존재가 아마겟돈 전쟁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용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계20:10 헬라어원문 참조).

 

6. 나는 대환난의 기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 내 믿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고난도 각오하고 심지어 죽음도 각오하는 것이다. 믿음의 지조를 꼭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지막의 시기에 가서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고 기꺼이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회개하고, 조상들의 죄까지도 회개하여 귀신이 더이상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자녀에게 역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시기에 가서는 내 식구 중에 믿지 않는 자가 나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라고 했다(마10:36). 그러므로 마지막 시기가 되기 전에 꼭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 명심하라.

  셋째,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상급얻는 자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심은대로 천국에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지난 주일(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세력에 넘어가고 말았다. 2001년부터 미국에 의한 침공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국가였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약 1만명의 성도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15일에 아프가니스탄이 급진적인 이슬람세력인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레반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날부로 외국인과 연결된 사람들을 검색하여 처형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한 사람, 미국에 협조한 사람이 날마다 총탄의 세례를 받아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마지막 시기에도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움을 받아야 하고 형제와 가족들에 의해 고발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중에 가면 더 잔인하게 처형될 것이다. 우리 나라도 잘못 했다가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 오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그러한 날이 가까이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평화의 사도처럼 가장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전쟁을 그치고자 종교통합을 이루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예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인정할 수 없기에, 종교통합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면서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찰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약속해주셨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대환난의 날을 감해주신다고 말이다(마24: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죽는 자는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10). 그날 환난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성도들은 과연 대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일까? 그리고 지질이 못난 성도들만 남겨져서 환난을 치라는 것인가? 미국의 백신접종률이 50%를 아직도 넘지 못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가? 미국 성도들은 왜 그토록 백신 맞기를 주저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환난전 휴거'라는 종말신앙이 그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환난전 휴거!!!' 과연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신앙과 일치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혹인가? 여기 속시원한 대답이 있다.

 

2021-08-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바른종말신앙(04)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말은 과연 진실인가 미혹인가?(마24:29~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QDQLnGUR1Q  [혹은 https://tv.naver.com/v/22002641  ]

 

1. 들어가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백신주사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시끄럽다. 특히 미국 상황이 더 그렇다. 왜 그러한가? 미국은 화이자 백신과 모더나 백신 제조국가인데 말이다. 그 나라에서 백신 주사를 맞는 것은 구멍 가게에서 무엇인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빠른데, 왜 미국의 백신접종률은 50%를 넘지 않고 있는 것인가?(정확히는 49.6%). 또한 영국은 어떠한가?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제조하고 있는 국가다. 그런데도 백신접종률은 57.5%에 불과할 뿐이다. 왜 그러한가? 백신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이러한 원인 중에는 환난전 휴거론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에 교회가 은밀하게 휴거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적그리스도가 백신주사를 이용하는 것이라도 한다면 백신주사를 맞은 자는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겨질 것 같기에 그들은 백신주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환난전 휴거가 과연 성경적인지를 한 번쯤은 쏙쏙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왜 다른 나라에 비하여 환난전 휴거를 믿는 이들이 많은가 하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성경에 입각한 바른 종말신앙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세대주의와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난전 휴거'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란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각 시대마다 다르다고 믿고, 그의 백성들의 구원의 방법들도 각각 다르다고 주장하는 신학사조를 가리킨다. 이러한 신학사조는 영국의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였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미국에 건너가서 확장되었고 그 대표작으로 나온 것이 스코필드 주석성경의 발행이다. 그런데 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이 바로 '환난전 휴거(세대주의적 전천년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시대 이후에 문자적으로 '천년왕국'시대가 지상에서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세대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종말에 관한 견해는 과연 사실일까? 우선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사상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그것은 딱 2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등장 전에 교회의 '비밀휴거'가 있다.

  둘째, 교회의 휴거 후에는 '7년 대환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마지막 추수가 있으며, 이것이 지나면 예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시어 '천년왕국'을 이루신다. 

 

3. 교회가 환난전에 들림받는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그렇다면 세대주의자들은 어떻게 되어서 교회가 7년 대환난 전에 휴거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들의 주장은 방대한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처럼 여섯 가지 정도로로 요악할 수 있다(물론 사람에 따라 더 많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다니엘의 70이레 중에서 마지막 한 이레(7년)가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도래할 터인데, 그 때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마지막 추수 기간이므로 교회는 그 이전에 사라져야(자리를 비껴주어야)하기 때문에, 교회는 7년 대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면 교회는 환난으로부터 면제를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계3:10). 그리고 서신서에서도 성도가 환난에 참여한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살펴보더라도,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20장 사이에 ‘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교회가 환난 전에 이미 휴거되어 지상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째, 성도들의 휴거는 예수께서 공중에 오셔서 보물만을 데려가는 은밀한 일이기 때문에, 사복음서에는 은밀한 공중휴거가 나와 있지 않는 것일 뿐 이것은 다른 성경에는 나와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살후3:13과 유1:14에 의하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고 되어 있는데, 그럴려면 먼저 성도들이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 그런데그 방법이 바로 7년 대환난전의 휴거라는 것이다. 
  여섯째, 예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를 환난 치하 곧 적그리스도의 지배하에 그냥 놔 둘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듣고 있노라면, 사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부인 교회를 대체 얼마나 사랑하시면, 교회가 환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 전에 공중으로 불러 데려간다고 하시는지 참으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어떤 주장을 하든지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종말의 시기가 도래하면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24). 그러므로 미국의 신학사조가 환난전 휴거를 중요시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갈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말세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어)과 그분 앞에 모임에 관하여, 누가 영으로 무엇인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혹은 누구로부터 말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혹은 편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쉽게 동요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다(살후2:1~2). 그러므로 반드시 환난전 휴거론도 성경과 일치하고 있는지,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를 분별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4. 교회가 환난전에 휴거된다고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그렇다면 환난전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는 성경 구절은 과연 합당한 성경 구절들인가? 우리가 알 것은 사탄 마귀도 예수를 시험할 때에 구약 성경말씀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점이다(마4:6). 그러므로 누가 성경말씀을 인용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진실이라고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거짓말의 아비인 마귀도 성경구절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를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시험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난전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는 말씀 중에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고 하는 성경 구절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먼저, 대 전제를 보자. 환난전 휴거론자들이 환난전에 교회가 휴거된다는 것을 주장할 때에 반드시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 4:16~17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성경 원문을 따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크게 외침, 명령함)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장차] 강림하시리니(내려올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스스로] [장차] 일어나고(일어설 것이다) 17 그 후에 우리 살아[있고] 남은(남겨져있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장차] 끌어올려(낚아채질 것이다) 공중에서(안으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영접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렇다. 이 말씀 중에서 공중으로 낚아채질 것이라는 말을이 나오는데, 그것을 한자로 '휴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주장은 성경적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겠다. 첫째, 그러한 휴거가 7년 대환난전에 나온다는 말이 이 본문 어디에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다. 전혀 그러한 문맥이 아니다. 고로 이 본문은 환난 전에 휴거가 있다는 말을 증명하는 성경 구절이 될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다만 예수께서 오실 때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고 그 순서가 이렇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한사코 적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은밀한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본문은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실 때에는 은밀하게 조용히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큰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만 보더라도 여실히 환난전 휴거가 틀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더욱이 이 말씀은 어떤 문맥의 말씀인가? 살전4:13부터 이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잠자는 성도들(죽은 성도들)이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문맥이다. 즉 이 말씀은 7년 대환난 전에 성도들이 휴거된다는 문맥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6가지 주장을 보자. 이 주장들과 관련된 성경 말씀들을 보면, 전부 다 엉뚱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있거나 원문의 뜻을 왜곡, 과장하고 있거나, 없는 것들을 있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 

  첫째,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다니엘의 70이레의 한 이레가 마지막 시기에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단9:27), 하지만 이들의 70이레에 대한 성경 해석은 매우 자의적인 성경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말한 바 70이레라는 것은 7이레와 49이레 그리고 한 이레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한 이레(7년)가 수 천 년의 공백기 후에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자기들만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를 없기 때문이다. 

  둘째,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 중에 주님께서는 그 교회에게는 시험의 때를 면제해 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 환난전 휴거의 근거라고 주장한다(계3:10). 그런데 이 구절이 그나마 유일무이하게 환난전 휴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헬라어 원문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는 시험의 때로부터 성도들을 ‘면제’를 해 준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러한 시험의 때로부터 귿르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3:10)
계3:10[헬라어직역]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땅 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온 세상 위에 장차 오려고 하는 시험의 때로부터 장차 너를 지킬 것이다. 

  셋째, 장차 되어질 일들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4~20장에는 이미 교회가 휴거되고 없기에 ‘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로 주장한다면 ‘교회’라는 용어가 하늘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4~20장에 나와야 하지만 그 용어는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인 셈이다. 왜 그럴까? 왜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추측컨데, 환난의 시기에는 많은 수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한편, 요한계시록 4~20장 안에는 환난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표현해주는 다양한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교회'라는 용어가 없다고 해서,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어로 교회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다른 표현들에는 최소 12가지 이상이 있다. 예를 들어, 거기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나온다(계8:3,4).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배하는 자들”(계11:1)이라고도 나온다. 그리고 더불어 다양한 표현들이 나온다. 즉 “두 증인”(계11:2), “해를 옷입은 여자”(계12:1), “여자의 남은 자손”(계12:17),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12:17),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 마귀를 이긴 형제들”(계12:11),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다가 핍박받거나 죽어가는 성도들”(계13:7,10), “땅의 곡식”(계14:15~16), “예수의 증인들”(계17:6),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계17:14), “어린양의 아내”(계19:7) 등이 나온다. 이러한 표현들이야말로 정말 교회를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교회’ 즉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마태복음을 제외한 가운데,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거기에는 교회가 없는가? 또한 디모데후서, 디도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유다서, 그리고 심지어 로마서 1~15장까지에서도 단 한 번도 교회라는 용서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때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은 것인가?

  넷째, 성도들의 휴거 때에는 공중에 오신 예수께서 보물들만을 훔치듯 은밀하게 오셔서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데려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때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재림의 ‘은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발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더욱이 환난전 휴거론자들이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살전4:13~18의 말씀을 보더라도, 주님의 오심은 은밀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떠들썩하게 오시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보는 재림인 것이지 몇 몇의 사람들만 은밀하게 데려가는 그러한 재림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오심은 가시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예외없이 일어날 사건인 것이다(살전4:16~17). 심지어 그날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로마군병도 지옥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가슴을 칠 것이다(계1:7). 
  다섯째,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을 대동하고 오셔야 하기 때문에, 재림 전에 주님이 공중에 먼저 오셔서 교회를 불러서 휴거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때 대동하고 오는 성도들은 7년환난 전에 휴거시키는 성도들이 아니다.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는 것이다(고전15:23~24). 이들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의 사람들이고, 7장에 나오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자, 큰 환난에서 나와 어린양의 피에 자기들의 겉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인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부터는 모든 성도들이 죽은 즉시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천년간] 왕노릇하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여섯째, 그들은 성도들은 결코 환난을 받지 아니하며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대환난을 받기 전에 들림 받는다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 중에는 그러한 말씀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인용하는 말씀은 하나 같이 다 문맥과 상관 없이,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명제를 만든 후에 그것에 알맞은 구절을 하나씩 하나씩 가져다가 짜 맞춘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누구나 다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그들과는 반대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사도바울도,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도 다 그렇게 말씀 했기 때문이다(마10:22~23, 계2:10, 행14:22, 벧전4:13, 계1:9). 그러니까 환난전 휴거에 걸맞는 직접적인 성경구절은 성경에 단 한 개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지어서 우선 세대주의를 통해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앞으로 "바른종말신앙씨리즈" 설교를 통해서도 더 자세히 배우겠지만 우선 세대주의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올바른 종말신앙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한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모든 성도들은 죽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다 환난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둘째, 공중강림과 지상재림 같은 그리스도의 이중재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성도들의 휴거는 마지막 시기에 전 우주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단회적인 부활 사건이라는 것이다. 

 

6. 나오며

  예나 지금이나 종말론은 가장 혼란스러운 영역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이단들이 구원론보다는 종말론에서 더욱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요, 그것도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잘못 해석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배우겠지만 '천년왕국'도 지상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세워지는 나라다. 그런데 환난전 휴거론자들은 그것이 지상에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단들이 늘 그래 왔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증인 등이 그렇게 주장해 온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렇게 중요한 것을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겠는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천년왕국'은 오직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0장에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미래에 있을 환상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오늘 우리는 환난전 휴거 사상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살펴 보았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교단들 중에 순복음 교단과 킹제임스 성경을 유일한 성경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침례교단에서는 아직도 환난전 휴거를 자신의 종말 신앙으로 믿고 있고 교리화시켜 놓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우리는 자신이 믿고 있는 종말 신앙이 과연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증언된 신앙인지를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바른 종말 신앙관을 갖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래야 헛된 소모전을 그치고, 곧 있으면 불어닥칠 환난을 대비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루 속히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여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도 면류관을 얻고 왕노릇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08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2021-08-20(금) 금요기도회

제목: 바른종말신앙(0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종말의 6가지 징조는 무엇인가?(계6:1~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

https://youtu.be/mUUqsuwI_CM [혹은 https://tv.naver.com/v/22002576 ]

 

1. 들어가며

  세상의 끝날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귀신들은 미래를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이 비록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다 배워서 아는 것이고 보고 들어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 계급이 높은 자는 그사람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전혀 모른다. 혹시 아는 귀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당이 한 말을 이루기 위해 귀신이 상담자를 따라나서서 그렇게 만드는 것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시간 밖에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눈에는 지금 돌아가는 세상일지라도 이미 끝난 상태에 있으며, 새 하늘과 새 땅도 이미 도래한 상태에 있다. 다만 우리는 시간 안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아직 미래는 우리에게는 서투른 영역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미래에 되어질 모든 일을 이미 2천년 전에 보았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책에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상이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종말에 있을 일들에 관하여 하신 말씀과 똑같이 성취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A.D.29년경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종말의 징조에 관한 말씀과 A.D.95년경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통해 보게 하셨던 부분을 서로 비교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말씀을 통해 세상의 끝날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종말의 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세상의 끝(완성)의 징조는 어떤 모습인가요?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세상의 끝에 있을 징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마태복음 24~25장의 말씀이 제자들이 질문했던 3가지 것에 대한 답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질문은 이것들이다. 첫째, 성전 건물들이 정말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인가? 둘째, 세상의 끝(완성)에는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 셋째, 주의 임하심(파루시아)에 있을 징조는 대체 무엇인가? 이것들 중에서 오늘 우리가 다룰 말씀은 세상의 끝(종말)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부분이다. 그것은 마태복음 24:4~14(막13:3~13, 눅21:7~19)인데, 그것을 요약하면 약 6가지 정도가 된다. 

  첫째,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한 미혹(마24:4~5) 및 천국 복음 전파(마24:14). 

  둘째, 전쟁(마24:6~7a). 

  셋째, 기근, 지진(마24:7b)과 쓰나미(눅21:25).

  넷째, 전염병(눅21:11)으로 인한 사망.

  다섯째, 성도들이 받을 핍박과 순교(마24:9~10).

  여섯째,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 및 하늘의 능력들이 흔들림(마24:29).

 

3.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보았던 일곱 인들이 떼어질 때에 모습과 종말의 징조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종말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6가지 정도로 말씀해 주셨다. 이때 예수께서 지상사역을 마치기 전이었다(A.D.29). 그런데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또한 종말에 관한 환상을 보았다. 그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같은 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든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상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가 거의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일곱 인들 가운데 앞의 처음 여섯 가지 인들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첫째 인 - 흰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는 '[천국] 복음전파'와 '미혹'을 가리킨다.

  둘째, 둘째 인 - 붉은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셋째 인 - 검은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는 '기근'이다.

  넷째, 넷째 인 - 청황색 말과 그 말 위에 탄 자는 '사망'인데, 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이다.

  다섯째, 다섯째 인 -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의 실제 호소가 있다.

  여섯째, 해가 검어지고, 달이 핓빛이 되고, 별들이 하나에서 떨어지는 환상이다. 그리고 산들도 이리저리 옮져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던 종말에 관한 말씀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환상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저자는 다 성령님 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 말고도 성경의 저자들(사도 바울, 사도 베드로 등)은 종말에 관하여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올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보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고 핍박도 없고 순교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천년 왕국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았는데, 사도 요한이 그것을 언급했다고 해서 그것이 문자적인 천년 왕국을 의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년 왕국은 사도 요한으로 환상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요, 사도 베드로는 천년 왕국이 아예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벧후3:10~13). 사도 요한은 주님의 재림이 있은 직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했다. 나중에 이번 씨리즈 설교를 통해서 알게 되겠지만, 천년 왕국은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천년 왕국이 아니다. 그것은 천국에 먼저 들어간 성도들이 그곳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4. 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4대 3'으로 구분하는 것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일곱 인들이 떼어지면서 보여졌던 환상들은 크게 넷과 셋으로 구분된다. 처음 넷은 전부 다 말들과 그 말들을 탄 자에 대한 환상들이다(계6:1~8). 그런데 다섯째 인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계6:9~11). 이때 성도들은 제단 아래에서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여섯째 인은 주님 재림 직전에 있을 하늘 천체들의 이상을 보여준다(계6:12~17). 그것은 해가 그 힘을 잃어 검게 되며, 달은 온통 피같이 변하고,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에 각 산들과 섬들도 제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인의 환상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 직전까지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처음 네 개의 환상은 말들과 그 탄 자들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들은 이 세상에 종말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환상들의 끝은 마지막 시대에 있을 환상을 한 가지 모습으로 짧게 보여주고 있다(첨부된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라). 이를테면, 둘째 인을 떼었을 때에 붉은 말과 그 말을 탄 자가 나타난다. 이때 말을 탄 자는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게 하는 '전쟁'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탄 자가 '큰 칼'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큰 칼'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인류에게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될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킨다(계19:11~21). 그러니까 예수님의 승천 이후 이 세상에는 계속해서 전쟁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24장의 말씀을 통하여 그것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과 함께, 민족들 간에 있을 전쟁이라고 하셨고 또한 나라들 간의 전쟁이라고 하셨다(마24:6~7). 그런데 그렇더라도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인류 마지막에 가면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단회적이자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마리의 말들과 말탄 자들의 환상들을 살펴보면, 과거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내린 10가지 재앙(출7:14~11:10)과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들 중에서 처음 4가지 재앙들 곧 '피, 개구리, 이, 파리' 재앙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기적' 재앙이라 할 수 있다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으로서 '악질'과 '독종' 재앙은 사람과 동물에 내리는 '전염병'에 관한 재앙들이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재앙으로서 '우박'과 '메뚜기' 재앙은 식물을 없애버리는 '기근' 재앙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재앙으로 '흑암'과 '장자죽음' 재앙은 애굽신 곧 애굽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태양신('라')을 가려서 없애버리고, 그의 아들을 죽이는 영적 전쟁에 관한 재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재앙은 곧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인들에게 가서 은금패물과 의복들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마리의 말들과 그 탄 자들의 환상은 순서만 다를 뿐이지 애굽에 내린 재앙과도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나오며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일곱 인들은 '재앙'이라기보다는 예수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의 인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처음 네 가지 환상 곧 사두경마(복음전파와 미혹, 전쟁, 기근, 전염병)는 역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와도 영락없이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된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흰 말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만국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된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더불어 미혹도 계속될 것이지만). 하지만 마태복음24:14에 보면, 끝이 올 무렵에 전파될 것은 "천국(왕국) 복음"이라고 꼭 집어서 말씀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end)이 오리라(마24:14)" 그렇다. 흰 말을 타고 있는 자는 이미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고, 또한 계속해서 이기려고 달려갈 것이다(또한 그 옆에서 미혹의 영도 달릴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지금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시기에 전파될 복음은 '천국 복음'이라고 따로 구별하여 말씀하셨다. 여기서 '천국 복음'이란 믿는 이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더불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사람이 왕노릇하고 면류관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복음이다. 그런데 현재 이러한 '천국 복음'을 들어보았고 또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도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고 하셨는데, 그 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성도들은 전 세계 성도들 가운데 1%도 채 아니 될 것이이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약 50년 이상을 비켜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물론 주님이 연장하시면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러므로 올 해 서기 2021년을 맞이한 인류의 역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 안에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을 행하는 교회와 개인은 반드시 천국에서 더 큰 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을 이루는 가장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8월 2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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