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람미여인이 솔로몬왕의 부인이 된 것은 본인이 잘 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영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지금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나 혹은 지금 형통함을 누리고 있는 문제가 다 나의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후계자로 선택된 것도 역시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가 디모데에게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 주의 하나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술람미 여인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메시지를 통해 영적인 세계에 새로운 눈이 뜨여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1-10-1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신부(32) 아가서강해(22) 술람미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의 해산의 고통(아8: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gA3N5WqZAs [ 혹은 https://tv.naver.com/v/23034194 ]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짧지만 아주 심오한 책이다. 얼핏 보기에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써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으로 읽는 독자들은 아가서 첫 장부터 왕이 그녀를 침상으로 이끌어 들이신다고 하는 표현이나(아1:3), 개역성경의 경우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라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이 책, 대체 뭐야?'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아1:12). 그리고 그녀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다고 말한다거나(아3;1), 사랑하는 자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하거나 거기에서 자기의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등(아7:10~11)의 표현을 보면서 이 책이 과연 성경책인가 하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가서 8:1~2에 가 보면, 이 책의 저자 솔로몬이 밝히는 솔로몬 자신과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정체가 나오는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아가서를 잘못 보았었는지를 금방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솔로몬의 정체와 아울러 술람미 여인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그녀의 어머니가 누군지를 살펴봄으로서 아가서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를 원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서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가서 8:1~5에서 솔로몬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아가서는 일명 '신부 교과서'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과연 누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게 되는지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부에게는 어떠한 성숙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며, 결국에 '주의 동산'이라 일컬어지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 신부는 어떤 신분을 갖게 되는지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부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 한 사람 나온다. 그는 바로 그녀의 남편인 '솔로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솔로몬이 누군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신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동안에 솔로몬은 시골 처녀 술람미 여인을 신부로 취했던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왕으로서, 장차 그리스도인들의 신랑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를 알려 주는 단서는 대체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아가서 8:1~5에 나온다. 여기에 보면 첫째, 솔로몬은 자기의 아내였던 술람미 여인도 함부로 입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아8:1). 그리고 둘째, 술람미 여인과 그녀의 어머니도 솔로몬으로부터 무엇인가 교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8:2). 그리고 셋째, 술람미 여인의 어머니가 산고의 고통을 겪었던 그 장소에서 솔로몬이 그녀를 깨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아8:5). 이 말들은 대체 무슨 뜻인가? 

 

3. 아가서 8:1~5에 나오는 솔로몬을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

  사실 아가서 8:1~5의 말씀에 오기 전까지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셋째 왕이었던 솔로몬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왜냐햐면 구약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솔로몬의 부인의 이름들 중에서 '술람미 여인'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분명 실재했던 인물이나, 술람미 여인은 실재한 인물이었는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1천 명이나 되었던 솔로몬의 부인들이지만 그중에서 이름이 나오는 여인은 단 한 명 뿐이다. 그녀는 바로 르호보암을 낳았던 바, 암몬 사람 '나아마'였다(왕상14:21). 그렇지만 나아마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령의 어떤 영감을 받아서 이 책을 썼으며 또한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그 의도를 먼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우선 성경의 모든 기록은 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자(요5:39). 그러므로 아가서도 역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소개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가서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솔로몬'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남편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하고는 출생 자체가 다른 분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아가서 8:1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보면, 신부에게 있어서 신랑은 자신의 어머니의 젖을 먹었던 오빠같은 그러한 분이 아니다. 만약 그랬었더라면 자기도 어디서든지 그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왜냐하면 신랑은 결코 신부와 같이 인간의 모태에서 출생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분이 겉으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있으셨지만 이 세상의 죄인된 여인의 젖을 빤 사람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분은 죄의 고된 노역에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사9:6). 이사야 9:6의 말씀을 보라. 비록 그분이 아기이자 아들로서 이 땅에 태어나실 분이기는 하지만 그분 자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 평강의 왕 곧 솔로몬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술람미 여인에게는 어떤 가족들이 있었는가?

  우리는 아가서에서 술람미 여인의 가족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데, 적어도 2가지 정보가 있다. 첫째, 그녀에게 의붓오빠들이 있다는 것이다(아1:6). 왜냐하면 술람미 여인은 그녀의 모친에게 있어서 '외동딸'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요(아6:9), 그녀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의 아들들이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아1:6). 그런데 오빠들이 자신을 미워한 나머지 자신을 바알하몬에 있는 커다란 포도원지기로 삼아서 고된 노역을 시켰다고 말한다(아1:6). 그러니까 아가서에 등장하는 그녀의 오빠들은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배다른 오빠들이었던 것이다. 둘째, 술람미 여인에게 어머니가 있는데 그녀에게 자신은 외동딸이라는 것이다(아6:9).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집 내지는 어머니의 방으로 가자고 제안한다(아3:4). 또한 신랑은 그녀의 어머니가 산고의 고통을 겪었던 장소에서 그녀를 불렀다고 말한다(아8:5).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자신은 그 장소에 신랑을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무엇인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아8:2). 고로 우리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정체가 누군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술람미 여인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그래야만이 누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5.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러므로 아가서에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이 다양한 의미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정리하면, 적어도 3가지 이상의 의미로 등장한다. 첫째, 사람을 존재케 하는 조물주로서 그녀를 본다면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을 대변하는 존재다(아3:4). 왜냐하면 술람미 여인이 그녀의 모친에게서 나왔는데, 그 장소가 사과나무 아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아8:5). 사실 아가서에 나오는 '사과나무'는 '탑부아흐'라는 말로서, '숨 쉼, 호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과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가리킨다. 둘째, 죄를 지어 고된 노동 안으로 떨어지게 한 것으로 보아서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었던 최초의 여자 '하와'를 가리킨다. 이때 솔로몬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술람미 여인을 깨웠다고 말한다. 이는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잠자는 상태에 있던 그녀를 깨워서 다시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그녀로 하여금 고된 노동으로부터 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아8:5). 즉 그녀의 선조 모친으로서 하와는 자신의 남편인 아담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고, 뱀의 말을 들어 죄에 빠지고 말았었다. 그러므로 죄악 가운데 출생했던 술람미 여인은 의붓오빠들로 지칭되는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첫 시작은 술람미 여인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얼굴이 검게 그을린 채 등장했던 것이다. 셋째, 보다 더 전진된 개념이지만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이기는 자를 산출하는 모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모친이 결국 솔로몬의 신부가 될 술람미 여인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솔로몬왕의 신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포도원을 개척함으로써 장차 하늘에서 기업으로 땅을 준비하는 여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모친이 낳았던 술람미 여인은 이기는 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모친은 지금도 이기는 자들을 산출하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 술람미 여인의 모친은 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사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것은 그녀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창3:16).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가 맏아들 가인을 낳게 된 때부터 모든 여자들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의 해산의 고통을 '저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해산의 고통을 겪다 보면 어느 날에는 뱀(사탄 마귀)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는 여자의 후손(씨)을 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창3:15).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어떤 여인이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곧장 이기는 자가 되어 부활승천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최초의 부활체를 입고 승천하신 것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 이후에 모든 인류는 지금까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식을 낳고 있으며, 그중에는 지금도 이기는 자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해산의 수고는 해 볼 만한 수고인 것이지 결코 필요 없는 수고는 아니다. 그랬다. 술람미 여인의 모친도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자식을 낳았던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 전에는 그녀의 어머니도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의 모친이 비로소 이기는 술람미 여인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15에 나오는 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위하여 그녀의 윗대의 모친들이 계속해서 자녀를 낳고 낳은 결과 결국 술람미 여인이 나오게 된 것이다.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세울 수 있는 이기는 신부가 나오게 된 것이다. 

 

7.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신비를 당신은 아는가?

  지난 2011년에 부산의 가덕도에서 다량의 토기와 유골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유골은 '골장'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의 서양의 매장 풍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가 추출되었는데, 거기에는 현재 유럽 사람만 가지고 있는 H형 미토콘드리아 DNA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남자의 정자에 붙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꼬리 부분에 들어 있는데 수정되는 순간 이 꼬리가 잘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연구할 때에 미토콘드리아의 종류는 매우 중요한 인류 판별 기준이 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오랜 고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가덕도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들에게는 H형 미토콘드리아 DNA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인가 이 유전자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연구 조사한 결과 H형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프리카에서 한 모친을 통해서 나와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그중에 일부는 유럽으로, 또한 일부는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건너온 여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H형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로 이동한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존재를 다른 우상으로 바꾸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20세기에 우리나라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예수님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신앙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다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 복음이 전 세계 나라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이 나라에 정착될 수 있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예수님을 잘 믿는 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예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 책임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람미 여인의 모친의 해산의 수고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찌 해산의 수고도 없이 신앙의 유전자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8. 솔로몬의 진정한 신부였던 술람미 여인이 나오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은 원래 잃어버렸던 자신의 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녀를 노예 생활에서 건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정혼한 그녀가 임시로 예루살렘 성에 있을 때에 예비 신랑을 보기 위해 솔로몬을 찾으러 거리로 나간다. 그래서 거리의 순찰자들에게 물어보지만 그들은 알려주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솔로몬이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가 쉽게 솔로몬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술람미 여인의 선조 모친들이 장차 언젠가 자신의 태를 통해 나타나게 될 이기는 자를 위한 기도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후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결혼한 후에 그만 자신의 실수와 부주의로 인하여 신랑의 임재를 놓쳐 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신랑을 찾으러 밤새도록 헤매이지만, 그때는 쉽게 신랑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숫꾼들에게 농락만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찾도록 찾기를 계속하였다. 이것은 그녀가 간절히 그리고 야곱처럼 철야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고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병이 들었고 신랑을 간절히 찾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회개하였음을 뜻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자신의 신랑이 누군지에 대해 10가지로 자랑을 한다. 이것은 그녀에게는 신랑은 오직 솔로몬 뿐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며, 신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만인들에게 전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아침이 되자,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자신의 모친의 선조들의 해산의 수고로 인하여 자신이 태어났고 한때는 은혜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도 이제는 흘릴 기도의 땀이 있는 것이다. 진실한 회개의 눈물도 흘려야 한다. 오직 주 예수님만이 자신의 영원한 하나님인 것을 선포도 해야 한다. 그랬을 때에 술람미 여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자기만의 포도원을 개척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양 떼들을 낳고 양육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이제라도 기도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면, 내게서도 역시 이기는 자들이 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물려받은 신앙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더 강해질 것이고 그래서 그 유전자가 후손에게 내려갈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신앙 유전자를 지금도 생산해 내고 있는가? 

 

9. 나오며

  신앙의 유전자는 거저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또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해산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는 후손들도 거저 신앙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자기도 신앙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어도 자신도 여전히 술람미 여인처럼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선포할 때에 더 강력한 신앙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선조들의 신앙의 유전자 때문에 자기 자신이 지금 복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앙의 유전자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가덕도의 사람들의 경우처럼, 그들에게서 H형 유전자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에게서도 신앙의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왜 내게는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전자가 없냐면서 불평하지 말라. 내가 지금 새롭게 신앙의 유전자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후손들이 나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하여 기본을 갖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저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라. 하지만 그들 자신이 해야 할 일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들도 기도와 회개와 주님을 높여 드려서 좋은 신앙의 유전자를 생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된 것 가지고 후회하지 말자. 이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최소한 서양의 선교사가 우리에게 예수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전해 주었는데 그것을 놓치거나 약화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 후손들에게 좋은 신앙의 유전자를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애쓰는 자들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하늘의 상과 우리에게 주실 기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2021년 10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누가 진정한 신부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나는 신부야"라고 말하면 그냥 신부가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과연 주님은 어떠한 것을 가지고 주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신부가 들려주는 오늘 말씀은 우리의 가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또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가서 6장과 7장의 말씀은 누가 진정한 신부인가를 말해주는 기준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2021-10-15(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31) 아가서강해(21) 보다 더 성숙해진 신부가 준비해 놓은 사랑의 증표(아7:10~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iWHQsuGb6I [ 혹은 https://tv.naver.com/v/23033603 ]

 

1. 들어가며

  아가서에는 신앙과 관련된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장 신앙적인 책이 바로 이 아가서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 곧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만 보아서는 이 책이 무슨 연애 이야기인가 하고 판단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상당히 내공이 필요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거듭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주인공이지만 내면에서는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여호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 혼인 예식을 치르게 될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성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점점 더 성숙해 가고 있는 신부감에 관한 이야기다. 대체 술람미 여인에게 있어서 성숙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녀가 솔로몬을 데리고 갔던 포도원과 합환채 그리고 새것과 옛것으로 마련된 그녀의 집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가? 

 

2. 솔로몬은 왜 그녀를 성숙한 여인이라고 칭찬하였는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항상 좋은 관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놓쳐 버린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놓쳐 버린 신랑을 다시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3가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끈질긴 기도와 진심 어린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높여 드림으로 가능했다. 그 뒤 그녀와 솔로몬은 더욱더 가까워졌다. 신랑은 그녀를 아주 칭찬해 주었다. 그녀를 부르는 명칭에 있어서도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고 했다(아6:4,9). 그리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라고까지 칭찬해 주었다(아6:4,9). 솔로몬은 그녀야말로 진정 신랑을 기쁘게 하는 가장 귀한 존재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는 그녀가 자신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하여 신랑을 놓쳐 버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신랑이 기뻐하는 일까지 준행하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아가서 6~7장이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되어서 더 성숙한 여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도 솔로몬처럼 양 떼를 낳고 양육하는 자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의 과정은 솔로몬은 그녀의 유방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유방에 대해 예루살렘의 딸들은 두 개의 암사슴의 쌍둥이 새끼 같다고 말했었다(아7:3). 이것은 그녀의 성숙도를 말해 주는 표상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장하였고 나중에는 솔로몬은 그녀를 먼저는 종려나무의 열매송이와 같다고 하였고(아7:7), 포도송이 같다고도 하였다(아7:8). 이것은 엄청난 성장이다. 왜냐하면 둘만을 산출하여 먹이던 신부의 삶에서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고 양육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술람미 여인은 왜 신랑을 데리고 포도원으로 가자고 했는가?

  그러던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데리고 자기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으로 데려간다. 그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보여준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때 그녀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들(야생의 들판)로 가서 어떤 동네에서 유숙하자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얼핏 보면 여자는 시선들이 많은 예루살렘 궁을 벗어나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외박을 하고 거기서 둘이 서로 사랑을 나누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결코 청춘 남녀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하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의 초청 장소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바른 분석이 필요하다. 왜냐햐면 아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부르기 위한 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번역본만으로는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동네'라는 말에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동네'로 가서 유숙하자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낸 허성갑 목사는 '고페르 나무 숲'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씀은 아직 포도원을 개척하지 않은 야생의 들로 가서 거기에서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코페르'나무는 아가서 1:14에 나오는 적갈색의 '고벨화'나무의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벨화'는 '코페르'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속죄, 덮음, 속전'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그 나무도 흰 색 바탕에 빨간색을 두르고 있는 꽃잎을 가지고 있어서 죄 없이 순결하신 예수께서 보혈의 피를 흘려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나무다. 

 

4. 그녀가 포도원에서 남편에게 드린다고 했던 '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야생의 코페르나무 숲으로 가자고 한 말은 그에게 '그녀의 사랑'을 드리고 싶어서였다(아7:12). 즉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 놓았는지를 신랑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남편에게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말과 이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보자는 말은 그녀가 일구어 놓은 포도밭과 그리고 그동안 수고하여 얻은 결과들을 신랑에게 보여줌으로 그녀가 신랑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를 대신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새로운 개척지에 또다른 신부를 낳고 그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를 밤을 새워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었다.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나무에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피었는지, 석류나무의 꽃이 피었는지를 보자는 말은 그녀가 어떻게 포도원을 가꾸어 놓았고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같이 보자는 말이었다. 이는 그녀가 신랑을 되찾았을 때 신랑이 하고 있었던 일이 어떤 일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남편의 뒤를 이어 포도원을 가꾸어 열매를 산출하는 일이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었음을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그녀는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고, 이미 그녀가 거둬 놓은 새 열매들과 묵은 열매들이 있는데 그것은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아7:13). 이는 그녀가 얼마나 신랑을 사랑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5. 신부의 성숙도는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는가?

  고로 우리는 신부의 성숙도는 열매로 평가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도 또 다른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고 자라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열매가 없는 삶이었다면 그것은 진실하고도 참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8-20)" 그렇다. 성숙의 척도는 열매인 것이다. 지금도 맺고 있으며 이미 맺은 것도 있고 앞으로 맺을 열매를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미 자라고 있는 것도 있고 이미 거둬 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씨를 뿌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그렇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하며,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나에게도 그분의 열매가 맺히고 있어야 한다. 성품의 열매, 말의 열매, 기도의 열매, 전도의 열매, 영혼의 열매 등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아가서의 말씀 중에서 6~7장의 말씀은 신부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말씀이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자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술의 고백만을 가지고서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의 사랑이라고 받아 주시는 것일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드렸던 것은 입술의 고백이었는가 아니면 열매였는가? 술람미 여인은 그것을 신랑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했다(아7:12). 그런데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솔로몬을 포도밭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꾸어 놓은 포도밭은 이미 포도나무와 석류나무가 꽃이 피고 있었다. 그런데 두 나무들은 아주 많은 열매들을 산출하는 나무들이다. 그녀가 그만큼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여 양육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집에 새것과 묵은 것들도 저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 신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랑에 대한 신부의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야고보의 말처럼(약2:26), 우리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열매가 놓여 있는지, 지금도 일구고 있는 새로운 땅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없었다거나 혹은 작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우리의 말로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의 열매로써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30) [아가서강해(20)] 보다 더 성숙해진 신부가 신랑에게 바친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었는가?(아7:1~13)_2021-10-15(금)
https://youtu.be/_XSbg5JzQTQ  [혹은 https://tv.naver.com/v/23032949  ]

 

1. 아가서 7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아가서 7장은 성숙한 신부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사실 아가서는 누가 주의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며, 그 방법은 신랑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결국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가에 따라서, 동산에 거주하는 땅의 크기와 신분의 유형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들 똑같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으며,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누릴 영광과 그리고 자신이 참여하게 될 계열과 반차는 각자가 다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열과 반차를 결정하는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신부의 '성숙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부가 얼마나 성숙한 자로 성장했느냐에 따라 계열과 반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2. 아가서 7장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아가서 7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신부에 대한 칭찬하는 부분(아7:1~9a)이 앞에 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신부가 신랑을 데리고 가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뒤에 있다(아7:9b~13). 그리고 앞에 나오는 '신부에 대한 칭찬' 부분도 또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7:1~5절까지의 말씀은 추측컨대 예루살렘의 딸들이 신부를 칭찬하는 것 같아 보이는 부분이고(경우에 따라서는 신랑이 신부를 자랑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7:6~9a부분은 확실히 신랑이 신부를 칭찬하는 부분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가서 7장의 전반부(1~9a) 중에서 앞부분(1~5절)의 말씀이 '예루살렘의 딸들'이 하는 말이라고 추측하고, 뒷부분(6~9a절)은 '솔로몬'이 자기의 아내를 칭찬하는 부분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지 그 근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은 첫째, 양쪽에서 술람미 여인을 부르는 호칭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서는 '귀한 자의 딸'이라고 부르지만, 뒷부분은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앞부분은 신부의 10가지 면에 대해 칭찬하고 있지만, 뒷부분은 신부의 4가지 면만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5절에서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는 말을 솔로몬 자신이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넷째, 유방에 대한 표현이 양쪽에 다 나오는데, 앞부분에서는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다고만 말하고 있지만, 뒷부분에는 보다 더 발전하여 '종려나무의 열매송이' 같고, '포도송이' 같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딸들보다는 솔로몬이 말할 때에 훨씬 더 술람미 여인의 성숙함이 증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앞부분은 '예루살렘의 딸들'이 말하는 것이라고 보고, 뒷부분은 '솔로몬'이 말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3. 아가서 5장이 신랑에 대한 신부의 자랑을 쓰고 있다면, 아가서 7장은 무엇을 쓴 것인가?
  아가서 5:10~16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인에게 던진 질문으로서 곧 '네가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랑하는 자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보면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남편인 솔로몬의 아름다움을 높이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자랑을 보면, 신부는 자기의 신랑을 총 10가지로 나누어 자랑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랑하는 순서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그녀는 남편을 머리에서부터 칭찬하기 시작하여 다리로써 끝난다(아5:11~16).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신부를 두고, 여인들이 칭찬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그녀의 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머리로 끝난다(아7:1~5).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자랑할 때에는 그분의 머리에서 시작하여 다리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 신부들에 대한 칭찬은 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머리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그렇다. 신부가 얼마나 성숙한가 하는 문제는 사실 다리의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은 행함으로 통하여 그 믿음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얼마나 그것을 실천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말씀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행함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야고보 장로도 말하기를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이라고 말하지 아니했던가! 

 

4. 솔로몬은 자신의 아내의 성숙함을 어떻게 자랑하고 있는가?
  술람미 여인에 대하여 예루살렘 딸들의 칭찬이 있은 후 이어서 신랑인 솔로몬의 칭찬이 나온다. 그런데 솔로몬의 칭찬을 들어 보면, 우리 신부들은 과연 무엇에 있어서 성장해야 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진다. 그것은 4가지 방면으로 나온다(아7:7~9a). 곧 신부의 키와 유방, 콧김과 입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신부들은 자신의 '키'가 종려나무 같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자. 이것은 여자의 신체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내적 조건으로 볼 때에 영적인 나이가 계속 성장해야 함을 가리킨다. 둘째, 신부의 '유방'을 볼 때에는 종려나무의 열매송이와 같아야 하고, 더불어 포도송이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풍성한 열매가 성숙도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여기에 나오는 신부의 '유방'이란 신부가 성숙했는지 알려주는 척도이면서 동시에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할 수 있는 여자인지를 알려주는 척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유방은 원래 양쪽에만 있는 것이지만 신랑은 보다 더 성숙한 신부가 되려면 대추야자 열매와 포도송이에 비유될 만큼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주님께서는 우리 신부들이 이 땅에 살 때에 더 많은 열매 맺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콧김으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사과 향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사과를 많이 먹었으면 그녀에게서 사과 향기가 나는 것일까? 아가서 2:3에 의하면, '사과나무'는 신랑인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로 신부의 성숙도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얼마나 나는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입은 좋은 포도주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포도주는 그 집을 잔치집으로 만들어 주고 또한 거기에 모인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성숙한 자가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내가 하는 고백들이 진정 자기가 있는 곳을 잔치집으로 만들어 주고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느냐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것이다. 

 

5. 신부의 성숙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신부의 성숙도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다고 결론지어서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신부들이 이 땅에서 현재 맺고 있는 '열매들의 종류'와 '그것의 풍성한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려면 과연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얼마나 그분에게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리고 그 양은 얼마만큼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지금의 영적인 나이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영적인 자녀를 품고 있고 양육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얼마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 얼마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2021년 10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29) [아가서강해(19)] 당당하고 위엄찬 신부와 마하나임에서의 승리의 춤(아6:4~13)_2021-10-14(목)

https://youtu.be/5UWdw2muwuE  [혹은   ]

 

1. 솔로몬은 왜 자신에게 나아오는 술람미 여인을 보고 2번이나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고 말했을까?

  솔로몬이 사실 아가서의 6장에서처럼 술람미 여인에게 칭찬을 했던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사실 솔로몬이 그녀에게 했던 칭찬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왜 솔로몬은 그녀에게 그렇게 했을까? 우선 솔로몬이 그녀에 대해 칭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총 4가지다. 그것은 첫째, 그녀가 매우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또한 곱다는 것이다(아6:4). 둘째, 그녀는 그에게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다(아6:9). 셋째, 그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다는 것이다(아6:4,9). 넷째, 솔로몬에게 왕비와 후궁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술람미 여인같은 여자는 단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아6:8~9). 그런데 우리는 솔로몬이 그녀를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비둘기와 같고' '완전한 자'라고 했다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아가서 6장에 들어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등장하는 칭찬은 그녀야말로 "깃발을 세운 군대까지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아6:4,10).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그녀를 이렇게 칭찬했던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이전에도 솔로몬에게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술람미 여자는 그 누구도 뚫지 못한 그리고 찾아내지 못한 과제를 훌륭히 잘 해냈다고 것이다. 그 일은 바로 술람미 여인을 해치려는 원수의 세력을 이기었고,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거주하는 동산을 찾아내었으며, 솔로몬이 거기에 왜 머물러 있는지를 알게 된 처음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도 결혼 후에 잠시 신랑의 임재를 잃어버릴 뻔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가 잠시 그녀 곁을 떠나간 신랑을 찾되, 끝까지 찾았기 때문이다. 아니 신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끝내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신랑을 찾게 된 데에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깊이 뉘우쳤으며, 또한 그녀로 하여금을 신랑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마저 물리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라고 한다면, 그녀는 원수의 영토에 처음으로 깃발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후 술람미 여인이 내려갔던 호도동산은 무엇이며,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렇다. 술람미 여인도 한 때 자신의 부주의로 신랑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끝내 신랑을 찾아내어 신랑으로부터 당당한 신부로 인정받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후 그녀는 신랑이 양떼를 치고 있던 그 동산으로 여러 번 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왜나하면 그녀가 그 동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석류나무를 심은 것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그 나무들이 순이 나고 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러 가고 있기 때문이다(아6:11~12). 그런데 그녀가 자기의 포도원을 만들었던 그곳을 솔로몬은 '호도(호두)동산'이라고 알려주고 있다(아6:11). 아마도 그 동산의 모양이 동그런 모양의 호두 모양이었기 때문인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가서 7장에 보면, 그녀는 그곳에서 열매를 거둔 후에 신랑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 이것을 보면, 그녀의 삶도 이제는 신랑을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왕비나 후궁들이 왕비의 지위만을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 먹었다고 한다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산 안에 자기도 포도원을 만들어 솔로몬이 하던 일을 자신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예루살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성에서 어디론가 내려가다가 있는 장소라고 나오기 때문이다(아6:2.11). 이는 그녀가 예루살렘 성에 사는 높은 지위를 내려놓았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장소인 것을 알려준다. 

 

3.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돌아오라고 말하는가?

  그런데 동산 밖에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그녀를 불러내려고 한다(아6:13a).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아무도 솔로몬의 동산에 들어가 본 이들이 없을 뿐더러, 그곳에 포도원을 개척한 사람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들처럼 사랑스럽고 예쁘고 고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그들과는 달리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즉 그녀는 밤의 두려움을 이겨내었으며, 그녀를 해치려는 순찰자들과 파수하는 자들의 공격까지도 끝내는 막아내는 여인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많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외치면서, 그녀에게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들에게 들려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아8:13). 

 

4. 왜 당당한 그러한 신부를 '술람미 여자'라고 칭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아가서를 처음부터 읽어오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냥 6장까지 왔다. 사실 그녀의 이름도 모른 채 그녀가 무대 위에 올라와서 말하는 그녀의 음성만을 들은 것이다. 그런데 비로소 6장에 오게 되었을 때에 그녀가 누군지가 공개된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그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술람미 여자(슐람미트)"라고만 나온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밝혀낸 그녀의 정체는 2가지 정도다. 하나는 그녀는 '수넴의 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수넴의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파벳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넴의 여인 아비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해석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술람미 여자('술람미트')'가 '솔로몬의 여성형 명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솔로몬의 잃어버린 짝이라는 뜻이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나온 여자 하와처럼, 그녀는 사과나무(호흡, 숨쉼)에서 나았던 바로 그 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그녀의 직접적인 음성이 뒤에 나온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그의 눈에) '화평(샬롬)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아8:11). 여기에 나오는 '화평을 얻은 자'라는 말은 "화평을 찾은 자, 화평을 발견한 자, 화평을 이룬 자, 화평을 만난 자'라는 뜻이다. 참고로, '솔로몬'의 어원이 '샬롬(화평, 평화)'이라는 점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여성 명사라는 점에서 아주 일리가 있다. 고로 우리는 그녀가 솔로몬의 완전한 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예루살렘의 딸들이 곧 그녀를 '술람미 여자'라고 외쳤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이에 솔로몬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아6:13). 

 

5. 왜 솔로몬은 포도원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녀를 마하나임의 춤에 비교하였을까? 

  우리는 아가서 6장의 맨 마지막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너희는 어찌하여 [그녀가]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려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고 하]느냐?(아6:13b)"이다. 이 문장을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원문에서 번역하고 있다. "너희가 술람미 여인에게서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그것은 마치 두 군대의 무리와 같도다" 이 문장이 온전한 것은 아니다. '춤'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하나임'이라는 단어를 킹제임스 성경은 장소로 보지 않고 어떤 장면으로 보았다는 것은 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마하나이에서 춤추는 것' 혹은 '춤추는 두 군대의 무리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창세기 32장 1~2절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것은 얍복강에서 야곱이 이제 형 에서와의 재회를 앞둔 상태에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올 때에 매우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강을 건널 수가 없어 걱정하고 있었을 때에 본 "두 무리의 군대('마하나임') 천사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때 두 무리의 천사들 중에 한 무리는 야곱 곁에 머물렀고, 한 무리는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에서의 무리를 제압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결국 야곱은 철야기도를 통하여 형 에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이것을 두고, 술람미 여인도 철야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세우는 당당한 승리한 자가 되었음을 춤추는 두 무리의 군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야말로 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며, 이긴 자"였음을 알려주기 위해 솔로몬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민족을 홍해를 건널 때에 적의 군대는 다 수장당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넜던 것을 지켜보았던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면서 춤을 추었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모습인가? 우리도 그러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0월 14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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