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가랴와 엘리샤벳의 영성,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눅1:39~45과 67~7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r2pdB7ufzo  [혹은 https://tv.naver.com/v/31902872 ]

 

1. 들어가며

  우리는 사가랴와 엘리샤벳을 떠올릴 때면 그들이 예수님의 선구자였던 세례요한을 낳은 부모 정도로 생각한다. 특히 사가랴는 주의 천사가 일러준 말을 믿지 아니하여 벙어리가 되었기에, 신앙이 조금 떨어진 사람 정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간단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영상은 상상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세례요한의 부모 이상의 놀라운 것들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이들은 탁월한 예언자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있어서도 놀라운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의 영성은 어느정도였을까?

 

2. 사가랴와 엘리샤벳은 어떤 사람들인가?

  사가랴와 엘리샤벳은 신앙이 매우 경건한 인물이었다. 이들 부부는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사가랴는 제사장의 24반차 가운데 8번째 반차인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으로서 사독계열의 제사장에 속해 있었다(대상24:10).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목전에 의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눅1:6).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모든 계명들과 규례들을 빠짐없이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보시기에도 흠이 없이 행하고 있던 사람이었다(눅1:6). 특히 이들 부부는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다만, 엘리샤벳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 알고 보면, 사실 마리아로 하여금 처녀로서 잉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임신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믿음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이들은 자기들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들의 영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3. 엘리샤벳의 영성은 어떠했는가?

  엘리샤벳은 사가랴의 부인으로서 아론의 가문의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도 제사장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샤벳은 사실 마리아의 이모다. 성경에서는 친족이라고 나와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같은 출생을 가진 골육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약 110Km이상 떨어진 엘리샤벳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무려 3개월이나 머물다 돌아간 것을 보면 엘리샤벳은 먼 친척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았을 때, 그녀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그때였다. 주의 천사가 지금 엘리샤벳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마리아는 곧바로 믿음이 충만해졌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엘리샤벳과 마리아가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엘리샤벳이 나이가 많고 늙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엘리샤벳은 마리아의 이모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또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마리아의 어머니도 제사장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마리아의 어머니도 상당히 경건한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엘리샤벳이 영성에 있어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자신의 이모인 엘리샤벳의 예언적인 선포 때문이다. 그것은 엘리샤벳이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에 있었다. 마리아가 엘리샤벳의 집에 찾아왔을 때에, 엘리샤벳이 그녀에게 들려준 소식은 정말 놀라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엘리샤벳은 알고 있었으며, 장차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아이가 또한 어떤 분인지도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4. 엘리샤벳은 마리아에게 어떤 사실을 들려주었는가?

  우리는 엘리샤벳을 보통 세례요한의 어머니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아니다. 왜냐함녀 그녀는 마리아가 처녀로서 태중에 임신을 하게 되고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리샤벳은 마리아가 임신한 지 1달도 안 되었을 때에 가장 먼저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려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즉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방문했을 때에, 그녀는 마리아가 이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이가 어떤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엘리샤벳은 마리아에게 일어난 비밀스러운 일을 알고 있었으니, 그녀가 태중에 열매(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된 것은 마리아가 천사를 통해 일어준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가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눅1:42,45). 사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은 마리아 이외에는 정작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는데, 1개월 만에 엘리샤벳의 입에서 마리아가 임신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엘리샤벳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엘리샤벳은 마리아가 임신하고 있는 그 아이가 장차 엘리샤벳의 주님이 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눅1:43). 이는 그녀가 마리아를 '내 주님의 모친'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즉 마리아가 태중에 임신하고 있는 분은 장차 엘리샤벳을 비롯한 모든 인류의 주님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엘리샤벳은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그렇다면, 엘리샤벳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그녀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눅1:41). 그렇다. 그녀는 본래부터 의인이었으며, 주의 율법과 규례를 어김없이 실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도를 많이 하여 성령의 사로잡힌 바 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도착하여 문안인사를 하자마자, 마리아에게 놀라운 예언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사가랴의 영성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사가랴가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뽑아서 성소에 들어가서 향단에 향을 사를 때에 주의 천사를 보았고, 그때 천사가 일러준 사실을 믿지 못해 벙어리도 지냈다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이 없는 불신투성이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의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알려준 말씀에 나와 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눅1:13). 자신의 기도가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을 뚫고 하늘까지 모두 다 올라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이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런데 사가랴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삶은 깨끗했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로 율법으로 흠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공중에 악한 영들이 그의 기도를 막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매우 기도에 깊이가 있는 영성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을 낳은 후 그에게 할례를 행했을 때에 그가 예언적으로 선포했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때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자신의 아들 요한이 어떻게 장차 하나님께 쓰임받을 것인지를 예언한 바 있다. 그때 사가랴는 먼저 마리아가 잉태한 메시야에 대해서 예언을 하였다. 그 예언의 시작은 이렇다. 

눅1:68-69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그렇다.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시어 속량하시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구원의 뿔이신 권세있는 메시야를 그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는 것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카 마리아가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가문의 후손인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마리아가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후손을 잉태했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렸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마리아의 잉태가 어떤 종류의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은 눅1:68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눅1:68[직역]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이는 그분이 자기를 위하여 방문하셨기 때문이며, 그분의 백성에게 대속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가랴는 마리아의 임신이 단지 메시야에 대한 임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임마누엘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시어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은 사가랴가 그만큼 경건하였고 기도에 전념하였던 영성가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다시 말해 그는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후세에 길이 남을 찬송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6. 사가랴와 엘리샤벳의 삶이 들려주는 그들의 영성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사실 사가랴와 엘리샤벳의 영성은 요셉과 마리아보다 더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그녀보다 작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마리아보다 더 중요한 하늘의 일들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이 뛰어난 영성가였다는 것은 그의 기본적인 삶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그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의인이었고 주의 율법과 규례를 흠이 없이 실천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매우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뛰어난 영성가였다는 사실은 이들 부부가 메시야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사실을 제일 처음 알아본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부는 약한 마리아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식이 없었던 것은 본인들에게 흠이 있어서가 가 아니라, 마리아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갓 임신을 했지만 약한 마리아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기 위해 이들 부부의 임신을 주님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이 임신 못한 것은 마리아로 하여금 이들 부부가 이미 많이 늙었고 또한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임신함으로 인하여, 마리아도 처녀이지만 임신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불행이 찾아왔을 때에 결코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를 간절히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일을 지금 준비시키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부부는 장차 태어날 메시야가 어떤 일을 수행할 것인지를 알았던 부부였다. 그렇다. 이들 부부는 대단히 믿음이 훌륭한 부부였던 것이다.

 

7. 나오며

  오늘날에 우리 성도들을 보면,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왔을 때에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상당수는 그러한 환경이 주어진 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또한 어떤 이는 그러한 환경이 자신에게 주어졌는데 불구하고 그것을 타개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시고자 그로 하여금 기도하라고 보낸 싸인인데도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저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안주해버리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더 이상 쓰시지 않는다. 이런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더이상의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들을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지가 않는 것이다. 구약시대 한나의 경우를 살펴보라. 사무엘상 1장을 읽어보면, 그녀도 역시 엘리샤벳과 같이 임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자꾸 두번째 부인이었던 브닌나가 자신을 놀리고 격동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때 한나는 어떻게 그것을 대처했는가? 브닌나를 내어쫓으라고 시켰는가? 아니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며 슬퍼하고 그저 안주해버렸는가? 둘 다 아니었다. 그녀는 그때 여호와의 성막에 나아가서 기도하는 것을 택했다. 사실 그녀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기도하라고 그렇게 막았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다윗에게 기름부을 선지자를 얻고 싶어하시는데, 그러한 선지자를 낳아줄 여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차 태어날 사무엘이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너무나 필요한 것이었기에, 기도를 시키려고 하나님께서 한나의 임신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무엇인가가 막혔으면 기도로 뚫어야 한다. 엘리샤벳과 사가랴는 기도로 자신의 문제를 뚫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끝내 기도의 사람이 된 세례 요한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동시에 메시야를 낳게 될 마리아에게 견고한 믿음을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지금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지 둘러보라. 그러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2022년 12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2-1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새 이름'이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계3: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vHXly-7plg [혹은 https://tv.naver.com/v/31818360 ]

 

1. 들어가며

  성경은 계시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계시는 어디에서 완성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모든 계시의 마지막이자 계시의 종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까지 가야 한다. 만약 요한계시록의 바로 앞에 수록된 유다서까지만 보았지만 계시를 다 보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요한계시록만이 전해주는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빌라데빌아 교회에서 주신 말씀을 살펴볼 것이다. 그중에서 예수께서 이기는 자에게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할 것이라는 말씀이 들려주는 놀라운 계시를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새 이름이 과연 무엇이며, 예수님이 누군지를 보다 더 정확히 알아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요한계시록 3:12의 말씀은 누가 들려주신 말씀이며, 그 말씀은 무엇인인가?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계1:19). 그것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에 먼저 본 것과 그리고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되어질 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들 중에서 '그가 본 것'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인자같은 분이시다. 이것은 1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일'이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라는 것으로서,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말씀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차 될 일'이라는 요한이 환상과 계시의 말씀으로서,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3:12의 말씀은 누가 들려주고 있는 말씀인가? 그것은 자신을 '거룩하사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들려주고 있는 말씀이다(계3:7). 특히 계3:12의 말씀은 그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으로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에서 바로 직역해 본단면 다음과 같다. 

계3:12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 안에 그를 기둥으로 [장차]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가 결코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부터(밖으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질적으로] 새[로운] 이름을 그이(그사람) 위에 [장차] 기록할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의 3:12에서 1인칭 단수로서 자신을 '나'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은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자신을 '거룩하사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그분은 대체 누구신가? 예수님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성령님이신가? 우리는 그분이 누군지를 요한계시록 1장에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거기에 보면 그분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분은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신데, 옷은 발에 끌리는 흰 겉옷을 입고 계셨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같고 눈 같았다. 그리고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으며, 그분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된 빛난 주석같았다. 또한 그분은 자신의 오른 손에 일곱 별들(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쥐고 계셨으며, 그분의 일비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그분은 대체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빌라델비아에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 이는 다른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이신 것이다. 

 

4.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은 누구신가?

  우리는 성경에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두 분을 만날 수가 있다. 한 분은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 만날 수 있고 또 한 분은 요한계시록에서 만날 수가 있다. 먼저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소개하고 계시는 분은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나 외에는 결코 다른 신들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신을 무려 세 번씩이나 그렇게 소개하셨다(사41:4, 44:6, 48:12).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이다(계1:17, 2:8, 22:13).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런데 요한계시록 1:17과 2:8에서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계1:18에서 자신을 자신 이제 살아있는 자이며, 자신이 전에 죽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는 분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8에 나오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도 역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이기 때문에 그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13에 보면,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라고 소개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분은 '나 예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계22:13).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신을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5. 요한계시록에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시고 있는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고 계신가?

  그렇다면,구약시대에는 분명히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분명 '여호와'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말해야 옳은가? 그것은 우선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 아니신데, 자신이 가리켜 여호와라고 사기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하신 것이다. 

  과연 이 셋 중에 어떤 것이 맞는가? 첫째는 우선 틀렸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 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다. 사탄마귀가 거짓의 아버지인 것이지 예수께서 거짓말장이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가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맞은 말일 수도 있으나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나 예수님을 둘 다 하나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곧 여호와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예수께서는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호와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번째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서의 말씀이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이렇나 정의에서 적용하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원래는 자신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셨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그분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6. 예수께서 '나의 새 이름'을 이기는 자들에게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이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주신 말씀 가운데 그분이 이기는 자들에게 자신의 새 이름을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영적인 비밀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신 분은 과거에 옛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새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의 옛 이름을 무엇이고, 새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분의 옛 이름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이고, 그분의 새 이름은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분 하나님의 옛 이름은 '여호와'이셨던 것이고, 그분의 새 이름은 '예수'이신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요,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예수로 계시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옛 이름을 끝까지 사용하시지 않고 새 이름을 지으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새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새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새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보통 옛 이름이 계속 사용되길 원하면서 새 이름을 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기보다는 예수라는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도 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구원자이 이름은 오늘날까지 '예수'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본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새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셨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오직 하나라고 하셨다(신6:4). 자신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하셨다(사44:6).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사도들이나 성도들 그리고 예수님도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한 분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언급한 '나의 새 이름'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이 예수님으로 오셨다가 당신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7. 나오며

  한 분이신 주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었는데, 아직까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20~30년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요20:28)이라고 하니, 하나님은 마치 두 분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도 계시고 아들 하나님도 계시니 하나님은 두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성령님께서도 하나님이라고 나온다. 그러니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삼위일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를 듣고 유대인들은 과연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아들 같은 존재는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두 분 혹은 세 분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개신교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을 한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분 내지는 세 분으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세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한 분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다중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달리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존재하실 수 있고, 사역하실 수가 있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여 천국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삼위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다중으로 사역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동시에 존재하실 수가 있었고, 동시에 일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홀로 한 분이신 그분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22:1,3).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만이 영원히 기억할 새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1-2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이삭이 받은 은사들과 그가 소유한 악한 영들은 어떤 것인가?(창22:9~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tWvhV-wBu4  [또는] https://tv.naver.com/v/31251972

 

1. 들어가며

  창세기에서 이삭의 삶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야곱에 비한다면 그리 특출한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삭 이야기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며, 아들 야곱의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이삭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는 단 한 장으로서 창세기 26장 뿐이다. 그러므로 이삭이 주인공이 되어서 나오는 부분은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 이삭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더불어 24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삭의 생애 역시 주도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삭의 생애 가운데 그가 받아누렸던 은사들과 그의 속에 들어있었던 악한 영들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표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삭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태어났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99세 때에 아브라함에게 장차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1년 뒤에 정말 이삭이 태어났고, 그의 이름도 '웃음'이라는 뜻으로 '이삭'이 되었다. 이삭은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3~5살 때 즈음에 돌잔치를 하였다. 그리고 그의 중간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나의 25세 내지는 37세가 되었을 때로 껑충 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쳐졌던 때였다. 그리고 그 해에 자신의 어머니를 먼저 떠나 보낸다.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뒤 이삭은 40세의 나이에 리브가와 결혼한다. 그리고 60세에 자식을 보게 되는데, 쌍둥이로서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그리고 75세 때에 아버지 아브라함도 역시 하나님 품으로 떠나간다. 그리고 그의 나이 135세 때에 야곱(75세)를 외삼촌 라반의 집에 보낸 뒤에 20년 뒤인 155세에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180세에 자신도 하나님 품에 안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브엘라헤로이에 거주했다가(창25:11), 한 때는 블레셋의 그랄 땅에도 거주했으며(창26:1), 이어서 브엘세바에 거주했다가(창26:33), 그리고 헤브론에서 그의 일생을 마감한다(창36:27). 

 

3. 이삭이 받은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삭은 이 땅에 살 때에 어떤 은사들을 받고 살았을까? 그의 은사들에 대해서는 그의 일생이 성경에 짧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의 은사 전부를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생애 속에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그가 받은 은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는 한 가지의 초자연적인 은사와 더불어 5가지의 일반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받은 한 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사'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보았고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창26:2~5, 24).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보거나(물론 직접 본 것은 아니라 빛으로 보았을 것이다) 혹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을 보거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보통의 영성 수준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자기 안에 악한 영들이 거의 없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우상숭배의 죄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그분을 뵈올 수도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사람은 없다. 이삭도 마찬가지다. 직접 본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삭을 하나님을 보았고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이삭은 일반 은사로서 최소 5가지 은사도 같이 받았다. 

 

4. 이삭이 받은 일반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사를 받았을까? 그가 받은 은사들은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사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일반은사들이 있다. 

  첫째, 그는 '헌신의 은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기꺼이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런 저항이나 거역함이 없이 자신을 기꺼이 번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는 '순종의 은사'를 받았다. 그는 헌신의 은사와 더불어 순종의 은사도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토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은사를 받았다.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도 그대로 순종하는 은사를 받았다. 예를 들어, 이삭의 때에 기근이 찾아왔다. 그러자 그는 애굽 땅으로 이주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애굽 땅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머물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창26:1~6).

  셋째, 그는 '기도의 은사'를 받았다. 그에게 간구하는 은사가 있었으니, 그가 장가들어 20년간 자식이 없자, 어느날 하나님께 자식을 달라고 간구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자식을 주셨는데 그것도 쌍둥이를 주셨다(창25:21).

  넷째, 그는 '재물의 은사'를 받았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을 바친 이후 그는 그랄 땅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농사를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땅에서 매년 농사를 짓던 사람들보다 100배의 수확을 하게 되었으니 그에게 재물의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창26:12). 또한 그를 하나님께서 창대하게 하셨으니, 그가 매우 크게 되어서 마침내 거부가 되었으며, 자기 집에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으며, 종들도 심히 많게 되었다(창26:13~14).

  다섯째, 그는 '온유의 은사'를 받았다. 이삭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이후 사실 부활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자신을 죽음에 넘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그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어떤 사람에게도 온유함으로 대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메구거나 빼앗아가면 그는 그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팠다. 그에게는 온유함의 은사가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온유함이 넘친 자에게 땅이 기업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마5:5).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아가자 다른 우물을 팠는데, 역시 파는 곳마다 우물이 나왔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찾아올 정도였다. 그는 정말로 온유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5. 이삭이 갖고 있었던 악한 영들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과 교통하고 지내던 이삭이라고 해서 악한 영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적어도 2가지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었다. 하나는 본인 때문에 들어온 영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부모 때부터 역사했던 영이 자신에게도 들어와 역사한 영이다.

  첫째, 자신이 불러들인 영이 있으니 그것은 '고집의 영'이다. 그것은 장자를 에서로 단정하고 에서에게만 축복하려고 하는 고집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실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쌍둥이를 얻었다. 그런데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을 때에 둘은 뱃 속에서부터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리브가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이럴 때에는 어찌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두 국민이 태 중에 있다고 하시면서, 두 민족이 복중에서부터 나누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할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창25:23). 그런데 리브가의 기도의 응답에 대해 이삭이 못 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이삭은 장자인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이삭은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삭도 자신의 고집을 그때서야 꺾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속이는 영' 곧 '거짓말하는 영'이 그에게 있었다. 즉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두 번이나 속이면서 속이는 영을 받아들였는데(창12:11~13, 20:5), 그 영이 아들에게도 내려간 것이다. 그래서 이삭도 역시 그랄왕 앞에서 자기의 아내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인다(창16:7). 아버지에게서 있던 속이고 거짓말하는 영이 그대로 아들에게 전가되어 아들에게서 역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악한 영들은 회개함으로 자신의 대에서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이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로 내려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오직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 

 

6. 나오며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태어난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우상숭배의 영을 물려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삭 역시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믿었던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야곱도 역시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섬겼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섬기고 살았다. 그러므로 이삭이나 야곱 역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사를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이삭은 태어날 때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는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심지어 하나님을 보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얼마나 더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삭은 어떤 어려움도 없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먼저 태어난 에서를 장자로 취급하려는 그의 고집이 있어서 조금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흠이 있다면 아버지로부터 속이고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서 자신도 모르게 속이고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삭 때에도 그것이 제거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들 야곱 때에도 역시 속이고 거짓말하는 영이 역사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영이 3대까지 지속되지 않게 하려고 야곱에게서 그것을 철저히 뽑아내도록 이끌어가셨다. 그래서 20년의 세월을 통해 야곱은 속이고 거짓말하는 영을 뽑아내야 했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온전한 사람은 없다.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와 허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자신의 후손에게 악한 영을 물려주지 아니하는 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악한 영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철저히 회개하여, 우리 후손들에게는 악한 영들을 물려주지 않도록 하자. 

 

 

2022년 11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1-20(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7가지 은사는 무엇인가(창12:1~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_1dr5FVJQ5A  [혹은 https://tv.naver.com/v/31023178 ]

 

 

1. 들어가며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거 우리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자기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인물이자,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첩을 통해 자식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도 우리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브라함의 첫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받았던 은사를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에, 그는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매우 뛰어난 신앙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떤 은사를 받은 것일까? 그리고 그가 받은 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신앙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2.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과거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인물이라고 평가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과감히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를 하나님께서 불러냈을 때에는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렇다면 대체 그는 어떻게 되어서 담대한 믿음을 갖게된 것일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을 하시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러한 사람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그러한 사람이 되어 있었는가? 그것은 창세기 12:1~3의 말씀에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를 떠났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아브라함을 은사론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는 이때 비로소 신앙이 생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나타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도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는 몇 사람 안 된다. 그런데 그 중에 아브라함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그에게 깊은 신앙심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야 한다. 한 마디로 그는 이미 영안이 열릴 준비가 다 되어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3.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신앙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시기에 아브라함의 신앙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아니 그는 대체 어떤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분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가 갑자기 믿음이 커진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 것은 자신의 아버지 데라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가? 창세기 11:31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를 따라나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분명히 그의 아버지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라가 왜 최소 50년 이상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했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데라의 변화의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성경 기록 외에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통해서 그 내막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여호수아와 다윗도 인정하고 있는 '야살의 책'에서다. 거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10살 때에 노아와 셈의 집으로 보내져서 약 40년을 살다가 50살이 되었을 때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말해 그가 신앙이 좋았던 이유는 그가 아버지에게서 신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의 10대와 9대 조상이었던 노아와 셈에게서 신앙을 배웠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50살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의 아버지가 50년 이상을 우상을 철저히 숭배하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섬기는 우상들을 때려 부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를 설득하여 우상숭배의 도시였던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빠져나오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설득 때문이었던 것이지, 아버지 데라의 스스로의 믿음에 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을 구별된 하나님의 종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노아와 셈 이후, 신앙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셈의 가문을 우상숭배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가 75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이미 성숙한 신앙의 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4. 아브라함이 받은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75세경부터 받아 누렸던 그의 은사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그를 은사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그의 신앙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영성의 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은사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가 받은 은사들에는 일반 은사가 있고 특별 은사(고전12:8~10)가 있다. 먼저 그가 받은 특별 은사부터 살펴보자. 그가 받은 특별 은사는 3가지 정도 다.

  첫째로, 그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먼저 본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에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그가 애굽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래를 자기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인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고 싶어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바로 왕에게 바친 인물로 보아야 하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쪽에서 본다면, 그는 이미 그가 애굽에 들어가서 나올 때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게 될 것인지를 미리 환상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기꺼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이고, 자기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상황 판단을 아주 잘했다. 특히 자기의 조카 롯이 5개 연합군에 의해 붙들려 갔어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5개 연합군이 어떤 모습으로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뒤쫓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318명의 자신의 종들을 데리고 가서 롯을 그들의 손으로부터 구출해 올 수 있었다. 

  셋째로, 그는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면서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서 비록 많은 자손을 보지 못했어도 실망하지 않았으며, 그가 살아 생전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이미 그러한 것들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에 자신을 위해 준비된 기업과 영적 자손이 풍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 아브라함이 받은 일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에는 특별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받은 은사에는 일반 은사도 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일반 은사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받은 일반 은사는 그가 신앙으로서 아버지에게 있는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냄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상에게서 내려오는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냄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일반 은사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일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아브라함은 '형통함의 은사'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는 곳마다 어떤 일에서든지 일이 다 잘 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물질과 종들과 가축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다. 심지어 그가 실수를 하여 자기의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셨다. 그리하여 먼저는 애굽에서 양과 소 그리고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 등을 받아서 나올 수가 있었고(창12:16), 그가 그랄 왕에게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양과 소 그리고 종들과 은 1천 개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창20:14,16). 그리고 그가 318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5개 연합군과 전쟁을 치렀으나 승리하고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창14:14). 왜 그랬는가? 그가 가문의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냄으로 하나님께서 범사에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창24:1). 

  둘째, 그는 믿음의 소식을 잘 '전파하는 은사'를 받았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그의 신앙은 노아와 셈의 신앙을 전수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노아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고집스러웠던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우상숭배로부터 빠져나오게 할 수 있었고 ,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앙을 잘 전파하는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건강함의 은사'를 받았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지만, 그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잘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84세 때에는 조카 롯을 구출해 올 수 있을 만큼 건강하였다. 그리고 그가 86세 때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을 수도 있었다(창16:15). 뿐만 아니라 그는 100세에 이삭을 얻을 수 있었으며(창21:5), 심지어 그의 아내 사래가 127세(자기의 나이는 137세)에 죽은 이후에는 또 그두라라는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6명이나 낳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건강함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넷째, 그는 또한 '기쁨의 은사'도 받았다. 사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는 한 번도 불평이나 원망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기쁨 가운데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특히 자신의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언제라도 새 출발을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그는 '순종의 은사'를 받았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는 75세 때에는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다(창12:4). 그리고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고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에 순종했다(창17:5,10). 또한 하갈과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말씀에도 순종했다(창21:9~10,14). 그리고 그의 나이 125세 내지 137세 때에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즉각적으로 순종했다(창22:2).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단 한 번도 불순종한 일이 없었다. 

 

6. 나오며

  인류에게는 사실 세 번의 시작이 있었다. 처음 인류의 시작은 '아담'이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후손은 타락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담의 10대손 노아와 일곱 식구만을 남긴 채 다 쓸어버리셨다. 그리고 노아로 다시 시작케 하셨다. 그리하여 노아를 통해 인류가 전 세계로 다시 퍼저나갔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이 서로 흩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 바벨탑을 쌓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다시 흩어버리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다시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셨다. 이것이 세 번째 시작이다. 야살의 책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사람이었다. 10살 때부터 그는 노아와 셈의 집에 가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50세에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버지 데라에게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우상숭배를 끝내고 식구들을 갈대아 우르로부터 떠나게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부름받은 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주신 은사들은 매우 특별했다. 그에게는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일반은사들이 풍성했다. 어릴적부터 구별된 삶 그리고 그의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상숭배를 끝내고 주님만을 믿고 따라간다면 놀라운 은사들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2022년 11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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