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우리가 쫓아내야 할 가나안 일곱 족속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신7: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xPdGMhKD8U [또는 https://tv.naver.com/v/34139518]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반드시 그 땅에서 쫓아내라는 것이었다(출23:31). 그리고 진멸하라는 것이었다(신7:2).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고 또한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과 이스라엘이 함께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가나안 일곱 족속은 원래부터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의 주인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더러 그 땅의 거민들을 다 뽑아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나안 일곱 족속이 영적으로 볼 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2. 가나안 땅과 가나안 일곱 족속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은 무엇을 의미하여,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쫓아내야 했던 가나안 일곱 족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첫째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오며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실 약속의 땅이요 축복의 땅으로서 '천국'을 상징한다. 그곳은 아름다운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는 가나안 땅은 '성도들의 몸과 마음'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6:9~10).

  둘째로,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가나안 일곱 족속은 곧 우리가 예수믿기 전부터 우리 몸속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악한 '귀신들'을 가리킨다. 특히 예수께서 귀신이 쫓겨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왕국이 이미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12:28), 이는 아담 이후 사람 몸속에는 귀신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통해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가나안 일곱 족속은 사람 몸속에 거주하고 있는 귀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이 임할 수 있도록 귀신들을 쫓아내셨던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2년 이상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데 할애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자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줌으로서 가나안 여자가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 땅인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상징하는 일곱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눅8:2). 

 

3.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만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마저 쫓겨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신7:4).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자기 몸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들로부터 미혹을 받아 범죄하게 됨으로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자기의 이름이 지워져서 성 바깥으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낸 만큼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수13:6). 마찬가지로 장차 성도들이 천국에서 받을 기업도 성도들이 이 땅에 있을 때에 자기 몸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쫓아낸 만큼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만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평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와 덫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기 때문이다(수23:12~13).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이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이 악한 영들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평생토록 이것들이 가난과 질병을 주고 자녀의 앞길을 막으며 일찍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출23:25~26). 

 

4. 왜 인간들이 천국에 들어가 그 기업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는가?

  성경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 천국에서 살고 있던 타락한 천사들을 그 땅으로부터 쫓아내셨음을 기록하고 있다(계12:9, 벧후2:4).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왜 그들이 하늘에서 쫓겨나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범죄하였고 그 죄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두머리인 루시퍼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을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시켜서 하늘에서 쫓아버리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 중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회개하는 자들이 결국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의 그 영토를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시고 있는 것이다. 

 

5. 가나안 일곱 족속은 가나안 땅의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가?

  성경은 가나안 일곱 족속은 어떤 민족이며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가나안 땅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족속이 살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신7:1, 수3:10).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 그들이다. 이들 중에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인은 [유다]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바다 옆)과 요단강가에 거주하고 있었다(민13:29). 이들 중에서 아모리 족속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수풀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나오며(창14:13), 그들은 요단강 동편에도 거주하고 있었다고 나온다(민21:13). 그들 중에 아모리 왕 시혼이 있다(신3:8, 민21:26). . 

 

6.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표현되고 있는 일곱 귀신들은 어떤 영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표현되는 일곱 귀신들은 과연 어떤 종류의 영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경은 가나안 일곱 족속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사탄 루시퍼를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사탄을 따라 하늘에서 쫓겨난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귀신들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귀신들도 가나안 일곱 족속의 경우처럼 일곱 개의 영역으로 귀신들을 나눠볼 수 있는 것이다. 귀신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는 땅이나 그들의 이름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가 있다. 

  첫째, 헷 족속은 '두려움과 거짓 사기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헷'이란 이름이 힛타이트(Hittites) 곧 '공포의 아들들(Sons of terrors)'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헷 족속은 가나안의 둘째 아들 헷의 자손으로 헤브론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훗날 유다 지파의 땅), 아브라함이 자신의 죽은 아내 사래를 위해 매장지를 샀던 바로 그 족속이다(창23:10~20).

  둘째, 기르가스 족속은 '혼돈, 무질서, 막힘, 이단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르가스(Girgashites)'의 뜻은 '진흙에 거주하는 자(Clay dwellers)'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이들 족속은 영적인 진흙탕에 거하는 것으로 어둠 속에서 미신 잡신을 섬기게 함으로 이단에 빠지게 하고 자녀의 앞길을 늘 막히게 하는 영을 가리킨다. 참고로, 기르가스 족속은 요단강 서편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으로서(수24:11) 갈릴리 바다 근처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훗날 스불론과 납달리, 잇사갈 지파의  땅). 

  셋째, 아모리 족속은 '교만, 자랑의 영'과 '시기 질투, 미움과 다툼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모리(Amorites)'라는 말은 '산에 거주하는 자' 혹은 '탁월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들은 요단강 서편의 산지인 마므레 수풀 근처(창14:13, 민13:29)(훗날 유다 지파의 기업의 땅)와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산(훗날 르우벤, 갓, 동므낫세 지파의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민21:21~34).

  넷째, 가나안 족속은 '낮은 자존감, 우울, 무기력, 가난, 실패, 자살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나안(Canaanites)'은 '저지대의 사람들(Lowlands People)'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가나안 족속은 지중해 해변(훗날 아셀 지파와 서므낫세 지파의 땅)과 요단강가의 낮은 골짜기(훗날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민13:29, 14:25). 

  다섯째, 브리스 족속은 '게으름, 혈기 분노, 고집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리스(Perizzites)'는 그 뜻이 '촌구석에 속한 자(Belonging to a village)'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에 속한 자는 게으르며 좁은 안목을 지녔고 자기 고집을 피우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는 혈기를 내고 분노를 하게 된다. 참고로, 브리스 족속은 에브라임 산지 근방에 거주하고 있었다(훗날 에브라임 지파의 땅)(수17:15). 

  여섯째, 히위 족속은 '향락과 쾌락, 유흥, 유행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히위(Hivites)'라는 뜻은 '마을 사람들(Villagers)' 혹은 '세속적인 축제'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영은 쾌락과 유흥의 영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오락, 댄스, 스포츠, 음악, 예술, 카톡,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취미 중독의 영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히위 족속은 헤르몬(헐몬) 산 아래에 거주하고 있었다(훗날 납달리, 동므낫세 지파의 땅)(수11:3).

  마지막으로 일곱째, 여부스 족속은 '원망과 불평, 폭력, 살인의 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부스(Jebusites)'는 '타작하는 사람들(Threshers)' 혹은 '짓밟음'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영들은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타작할 때 활동하는 영으로서,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하게 하고, 폭력과 살인을 일삼게 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부스 족속은 다윗이 빼앗아 훗날 다윗산성이라고 명했던 시온산성 곧 예루살렘 근방에 거주하고 있었다(훗날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땅)(민13:29, 수15:18, 삿19:11, 삼하24:18, 대상11:5). 이곳의 유명한 타작마당이 바로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이요, 이 자리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게 된다(대하3:1, 삼하24:18). 

 

7. 나오며

  사람이 자기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 전에, 악한 영들은 이미 자신의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의 육체 속에 들어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에서 이미 죄가 가득 차서 쫓겨난 존재들이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영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들이 신앙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의 육체를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그것들을 쫓아낸 적이 없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을 기업은 희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표현된 악한 영들을 쫓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 영들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떠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자 쫓아낸 그 땅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그들과 영적 싸움을 펼치는 것인가? 그것은 자신과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그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출20:5, 요일1:9). 그리고 이러한 영들이 나갈 때에도 결코 한꺼번에 나가지는 않는다. 조금씩 나가는 것이다(출23:27~30). 우리가 회개한 분량 만큼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량 만큼 악한 영들도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지런히 회개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 몸을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다 내쫓아야 한다. 그러면 육체는 강건하여지고 물질에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고, 자녀들의 길은 열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받을 기업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2023년 03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2-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18)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왜 게헨나(지옥)로 불리게 되었는가?(렘19: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VKJGafqtMw [또는 https://tv.naver.com/v/33751102]

 

1. 들어가며

  예레미야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너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이 가득하다. 특히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예레미야는 저미어오는 가슴으로 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천국과 지옥의 실제모습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말씀을 접할 수가 있다. 그것은 힌놈의 골짜기에 관한 예언에 나온다. 우리는 예레미야서 7장과 19장 그리고 32장에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말은 어떤 것이며, 이것이 신약의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의 모형이자 장차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예레미야 19장은 대체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예레미야 19장은 예레미야의 본론부(2~51장) 가운데 제1부 12가지 단편예언(2~25장) 가운데 제8예언에 속한다. 제8예언은 18장부터 20장까지의 말씀인데, 여기에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고 있는 장면과 옹기 파괴를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역사에 관해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예레미야 19장은 옹기파쇄의 장소로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더러 백성들의 어른들과 제사장들 중의 어른 몇 명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토기장의 옹기를 깨뜨리면서 이렇게 예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19: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옹기그릇을 굳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깨뜨리라고 한 것일까?

 

3.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인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여호수아가 장차 정복할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의 골짜기를 언급할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수15:8, 18:16). 그런데 남유다의 12대 아하스 왕과 14대 므낫세 왕이 이곳에서 자신의 자식을 불사르는 제사를 드리게 된다(대하28:3, 33:6). 그때 그들이 섬겼던 신은 암몬자손이 섬기던 '몰록'(말곰, 밀곰)이라는 신이었다(왕상11:5, 11:7). 그런데 이것은 인신제사로서 율법에서 가장 강력하게 금지하는 제사였다(레18:21, 신18:10). 그런데 다윗의 후손이 이러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므낫세의 손자였던 요시야 왕(남유다 10대 왕)이 이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더럽혀 그곳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다시는 그곳에서 자기자식을 몰록신에 바치지 못하게 하고자 원천적으로 그 길을 차단한 것이었다(왕하23:10). 하지만 남유다의 범죄를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그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옹기그릇을 깨뜨리면서 남유다가 이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4.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라고 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가서 시현하도록 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명 하나하나에도 다 어떤 뜻이 들어있다. 하물며, 남유다의 멸망의 모습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시현하도록 명령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갖고 있었던 어떤 의도는 없었을까? 아니다. 분명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끝내 우상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장차 들어갈 영원한 멸망의 처소 곧 지옥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요시야 왕 이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장차 불신자들과 범죄한 자들이 들어가게 될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연상시기에 충분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곳은 꺼지지 않는 유황 불이 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매일 쓰레기들이 태워지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불과 유황이 계속해서 타고 있는 장소로서 영락없이 지옥을 연상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그곳은 구더기가 시체를 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곳은 도저히 맡을 수 없는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2-1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12) 왜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함을 지켜보고만 계시는가?(렘11:18~12: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18ivQluAfo [또는 https://tv.naver.com/v/33750748]

 

1. 들어가며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멸망할 즈음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약 40년간 활동한 남유다의 선지자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20세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스러져 가는 남유다를 향하여 심판을 선고하는 예언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외쳐 보아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미워하였고 그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하였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왜 악인이 형통한 것인지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답변을 해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 제목이 되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형통함을 바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지켜보고 계시는가? 

 

2. 예레미야 11:18~12:17의 말씀의 위치는?

  예레미야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총 52장 가운데 서론이 1장이며, 마지막 52장이 결론으로서 역사적 후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이 본론인데, 본론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2~25장은 유다의 심판에 관한 12가지 단편적인 예언이 나온다. 그리고 26~45장까지는 바벨론의 침공과 관련된 사건과 심판 예언이 나온다. 그리고 45~51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 10개국에 대한 미래와 운명이 예언되어 있다. 그중에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부분은 본론부의 2~25장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들 가운데, 제4예언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제4예언(11:1~12:17)의 전반부(11:1~17)는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심판 예언 부분이고, 후반부인 오늘 본문 말씀(11:18~12:17)의 앞부분(11:18~23)에는 먼저 예레미야의 고향 사람들인 아나돗 사람들의 예레미야 살해 시도와 그에 따른 예레미야 선지자의 하나님을 향한 탄원 및 하나님의 보응 약속과 심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12:1~17)의 말씀은 자신에 관한 아나돗 사람들의 살해 시도와 관련하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과 배치되는 듯한 현상 곧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하는 현상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과연 어떤 답변을 그에게 주셨을까?

 

3. 아나돗 사람들은 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는가?

 왜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을까? 사실 아나돗 사람들은 자기 고향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 땅에 위치한 레위인들의 성읍 가운데 하나다. 그중에서도 제사장의 성읍이 바로 아나돗이다. 그러므로 아나돗 사람들은 전부다 제사장이거나 제사장의 가족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장들이었던 아나돗 사람들은 왜 예레미야 선지자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것일까? 심지어 그의 가족들 조차도 음모에 가담했는데 왜 그러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나돗의 제사장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 그 기원을 알면 쉽게 의문점이 풀릴 수 있다. 왜냐하면 아나돗 사람들은 솔로몬왕 때 폐위된 아비아달 대제사장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다윗 시대까지만 해도 아비아달 제사장은 다윗을 도와서 다윗으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될 무렵, 다윗의 충복이었던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대제사장은 솔로몬을 선택하지 않고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시도한다. 그렇지만 다윗은 이미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던 터라, 결국 아도니야 일당은 죽거나 폐위당하게 되는데, 그중에 아비아달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솔로몬왕은 자신의 부친을 도왔던 아비아달을 당장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그의 대제사장직을 폐위하여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갈 것을 명령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아비아달의 계열에서 대제사장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아비아달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서 예레미야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하나님께 부름을 받더니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자신들의 입지가 그리 좋지 않아 왔는데, 왕들과 제사장들 및 선지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대적인 입장의 예언을 선포하는 예레미야가 달갑지 않게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한 번 두 번 예언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심판의 예언을 선포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자 아나돗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더욱더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는 예레미야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들은 말했다.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버려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렘11:19),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의 손에 죽을 것이다"(렘11:21). 그랬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그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예레미야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4.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형통함을 입고 살며 평안하게 살 수 있는가? 

  그러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아나돗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왜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자들이 다 평안하게 살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질문한다. 왜 악한 자를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내버려두시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2가지였다.

  첫째, 지금 자신의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장차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그것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셨다(렘12:5). 지금 걸어가는 자와 함께 달리면서도 피곤해 하는데 장차 말탄 자들과 어찌 함께 달려갈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선지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만큼 힘겹고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악인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왜 심판하시지 않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로, 악인일지도 하나님께서 쓰실 도구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장 심판하지 않고 그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이다(렘12:14). 그것도 악한 쪽으로 쓰시는 도구로 그들을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이 악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을 형통하게 그냥 놔두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남유다를 징계하실 심판의 도구로 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범죄한 당신의 백성들을 심판하여 죄값을 치르게 할 대상으로서 악인을 그냥 놔두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둘째로, 악인일지라도 그들도 역시 죄가 가득차야 심판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더 악을 채우도록 그냥 놔두시고 지켜보신다는 것이다(렘12:14).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실 날이 빨리 다가오도록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자가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며 너무 불평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악을 채워 스스로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는 아나돗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왜 지켜보는지 예레미야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을 심판할 날 곧 그들의 악이 가득 차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날은 남유다가 멸망하는 날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렘11:22~23).

  셋째로, 악인일지라도 그들 중에 회개하고 구원받을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렘12:16).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바벨론에 팔아넘기셨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하지만 남유다 사람들 때문에 그들 중에 일부가 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이 섬기는 신을 보니 자기들이 믿고 따르고 있는 신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들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일지라도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의 날을 뒤로 연기하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악인들이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역시 하루아침에 심판하여 내던져 버리실 것이다(렘12:17).

 

5. 나오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비록 죄를 지어 악한 자들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당신의 백성들을 치는 자들을 가만두고만 보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당신의 백성들로 선택하셨거나 당신의 자녀들이 된 자들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그렇지만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악한 자들을 통해서 심판의 회초리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하지만 악한 자들의 형통함을 계속해서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 않으신다. 그들도 죄가 차면 곧장 심판을 집행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 중에서도 회개하여 구원받을 자가 더러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동시에 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것을 두고, 왜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함을 지켜보고만 계시느냐며 하나님을 되레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님께서 혹 그들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지금 지켜보고 계시는데 왜 그들을 심판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주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2023년 02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2-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06) 사람과 민족은 언제 하나님께 심판받게 되는가?(렘1:1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SHRRiVVCKc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41]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특히 어느 때 민족을 심판하시어 징계를 내리시고 멸망하게 하는가?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에 나온 기사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며, 사람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는 어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한 민족과 국가를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이 몇 가지의 죄를 지었다고 곧바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으로서,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가 풍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때에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언제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죄가 가득찼을 때다. 죄가 관영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또한 누군가 그 죄의 값을 치러야 죄는 없어지는(덮어지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 죄값을 받지도 않았는데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인 하나님의 인내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남유다 왕국의 말기에는 이미 죄가 거의 다 찬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들에게 임할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 보여 주셨다(렘1:13~14). 여기서 재앙은 죄의 결과로서 사람과 민족 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만큼 죄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예레미야서는 적어도 3가지 죄가 가득 찬 상태임을 말해 준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타락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6:13).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라 함은 일반 백성에서도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까지 다 타락했을 때를 가리킨다. 예레미야 시대가 그랬다. 일반 백성들은 탐욕에 물들어 있었고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내팽개쳐진 상태에 있었으며(렘7:6), 죄 없는 자를 모함하여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왕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며,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거짓을 일삼고 있었다(렘6:13). 특히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다(렘14:14, 23:16,26). 그리고 모두가 도둑질하고 있었고, 살인하고 있었으며, 간음을 행하고, 거짓 맹세를 하고 있었다(렘7:9). 그래서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렘5:1). 다시 말해, 일반 백성에서 종교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썩어서 냄새나는 삶을 살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십계명의 1~2계명의 죄를 심각하게 지었을 때에 심판하신다(렘1:16).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북방에 있는 이방 민족을 끌어다가 남유다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1계명을 어기고 제2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겨 분향하고 절할 때에 그리고 자기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경배하고 그것들에게 음식을 차려놓는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남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들의 수가 그들의 성읍 수처럼 많다고 하였다(렘2:28).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이 섬기던 신들과 우상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끊임없이 보내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참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심판하신다(렘7:25~26, 25:4, 29:19, 35: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곧바로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먼저 돌이키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오히려 핍박하고 죽일 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다. 

 

4. 예레미야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은 어떤 신들과 어떤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크게 세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다른 민족들이 섬기던 신들을 받아들여 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에는 가나안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인 바알신(렘11:13, 19:5, 23:27)과 아세라신(렘17:2)이 있었고, 하늘 왕후로서 바벨론에서 받아들인 이쉬타르신(렘7:18, 44:17~19)이 있었으며, 그리고 몰렉신(렘32:35)도 있었다. 남유다 백성들은 이런 신들을 조각하고 새겨서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신들에게 향을 살라 바쳤고 술잔을 부어 드렸으며, 과자를 만들어 바치고 있었다(렘44:17~19)

  둘째, 그들은 자연 만물인 해와 달과 별들을 신으로 숭배했으며(렘8:2), 돌과 나무도 숭배했다(렘3:9). 그들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란하듯 그들에게 절하고 음식을 차려놓았으며, 그것을 즐겼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도벳사당을 지어 거기서 인신제사를 행하고 있었다(램7:31~32, 32:34~35). 이때 그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그 신은 바로 '몰렉'이라는 신이었다. 

 

5. 왜 남유다 백성들의 궁극적으로 잘못된 판단은 무엇이었는가?

   남유다 백성들은 다른 신들과 우상만을 만들어 섬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본 것과 가나안 땅에서 배운 다신론적 신관을 받아들여서,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생각 자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미 언약 백성으로서 다 할례를 받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 외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그들의 영적인 남편이라고 말씀하셨다(렘3:14).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우상들도 섬김으로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다른 신들과 영적으로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몹시 슬퍼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분노하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읍이 있고, 또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대 자기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렘7:4). 그러므로 자기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성전도 절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작은 심판을 내려 그들을 경고하실 때에도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죄가 쌓여서 심판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이 그들 자신을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그리고 평안하다고 생각했으며, 재앙은 자기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렘23:17).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6.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민사상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선민의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는 잘못된 구원론에서 기인한 것이며, 둘째는 잘못된 예정사상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장로교인이 정말 많다. 전 세계 장로교인의 50%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국 장로교회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구원론이다. 정말 구원의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옳은 주장이지만 그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절대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아니 믿는 이의 절대 다수가 회개하지 않아서 지금도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의 죄는 과거의 죄나 현재 짓고 있는 죄나 미래의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회개를 등한시 하거나 회개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이해하라. 그래도 우리는 개인 속죄제사를 드려야 한다. 개인 속죄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가, 일 년에 한 번 치른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라. 충분한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회개해야 예수님의 피가 나에게 적용되어서 내 죄도 용서받고 귀신들도 떠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잘못된 예정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수믿게 된 것은 만세 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니만큼, 나의 구원은 절대 흔들림이 없을 것이며, 내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은 구원받을 숫자에 관한 예정인 것이니, 개인에 대한 구원 예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예정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 하는 예정 곧 개인 사역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장로교인들이 자신은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다 세뇌교육 때문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는 구원이다. 구원은 이미 예수믿을 때에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인지는 죽은 후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분명한 것이지만, 아직 경주를 끝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는 믿음을 붙잡고 회개하면서 나가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잘못된 예정 구원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7. 나오며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는 누군가가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처리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기만 하면 다 죄값이 처리된 줄로 알고 있는 분들이 아주 많다. 그건 크게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좀 다르다.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탕감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짓는 죄는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요일1:9). 그리고 그때 지었던 죄들 때문에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려면 이것도 다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죄는 아직 내가 짓지도 아니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지금 짓고 있는 죄 때문에 결국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바깥이나 불못으로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21:8, 22:15). 그러면 거기로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1~2계명의 어긴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개하면 하늘의 행위책에서 우리의 죄가 지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 지었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왔던 귀신들(실제는 뱀들)도 같이 떠나가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가 되는 것이다. 죄악이 차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도 명심하자. 그런데 죄가 차지 않도록 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죄에 따른 악한 영들도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 몸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다. 재앙을 비울 수가 있는 것이다. 회개가 정답임을 명심하자. 회개할수록 이미 채워지고 있는 재앙이라도 그것이 비워지게 되고 더이상 차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놀라운 일이다. 회개가 이처럼 영적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놀라운 영적 무기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회개에 집중하자.

 

 

2023년 02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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