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2) 다윗의 인구조사, 대체 무엇을 위함이었는가?(삼하24:1~25)_2022-02-10(목)

https://youtu.be/a97aVYAkbUM  [혹은 https://tv.naver.com/v/25059190 ]

 

1. 다윗이 말년에 시킨 인구조사는 잘못된 명령이었는가?

  다윗은 일생에 있어서 거의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두 번의 크나큰 범죄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삼하11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밧세바와의 간음사건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 살해사건이 그것이다. 다윗은 이 범죄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과오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왕의 재위 40년 중에서 30년동안 그 죄값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 한 번 더 죄를 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그의 나이 65세 무렵쯤에 요압 장군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다(삼하24:1). 그렇다면 그가 인구조사를 시킨 것은 과연 범죄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민수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2번에 걸쳐 인구조사를 하게 한 일이 있다(민1:2~3, 26:2). 이때 첫 번째의 인구조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보다 장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여 속전을 바치게 함이었다(민3:45~48). 그리고 두 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주되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주고 적은 자는 기업을 적게 주기 위함이었다(민26:53~54). 그러므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라 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 다윗을 격동시키사(부추기어) 가서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 그랬다. 분명 사무엘하 기자는 다윗에게 인구를 조사하게 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두번째는 그 이유가 조금 다르다. 역대상 21장의 평행본문을 보면, 여기서는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부추기어)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상21:1). 어떤 기록이 정확한 것인가? 그런데, 실제 인구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 숫자를 보고를 받았을 때 다윗은 자신이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 큰 범죄라고 자책하였다(삼하24:10). 이는 결국 세번째로 다윗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이어서 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인구조사를 명령한 장본인은 다윗이지만 이 인구조사는 하나님과 사탄이 개입되어 있는 어떤 특별한 사항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게 최종적인 명령권자는 다윗이었다. 그러므로 다윗도 인구조사 보고 후 자책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의 어린 아들인 솔로몬(당시 15세 정도)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솔로몬은 한 번도 전쟁을 치러보지 않은 아들로서 공부만 했던 아들인지라, 나라의 국방은 튼튼한지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얼마나 방어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다윗더러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럼 그러한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사무엘하 24장의 기록을 보면 그 이유를 3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격점이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한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함이었다(삼하24:1).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인가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징계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되었다. 굳이 다윗더러 인구를 조사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과연 다윗이 얼마나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후에 나타난 다윗의 반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때였다. 전염병으로 하루만에 7만명이라는 백성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범죄하였고 내가 악을 행하였는데, 주께서는 왜 이 양무리를 치시나이까? 청하건데 차라리 당신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21:17)"라고 청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자신의 허물과 잘못으로 보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주님이 이번 일로 징계하셔야 한다면  죄없는 백성을 치실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과 그의 후손에게 벌을 내리시라고 청한 것이다. 이처럼 늘그막에 다윗은 작은 일에도 죄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자기목숨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한 궁극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장차 솔로몬이 세울 성전터를 다윗으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게 하되 그 장소가 어딘지를 정확히 다윗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왜냐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다윗은 장차 솔로몬이 성전을 세울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예루살렘을 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서 있었고,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삼하24:18). 고로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성전터를 아라우나로부터 구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범죄로 인해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갈 때에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인하여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하여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거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전염병을 그치셨기 때문이다(삼하24:25). 즉 재앙을 끝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5.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가 받은 징계 그리고 그가 드린 제사가 말해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누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죄는 반드시 형벌을 가져온다라는 것이다. 그 형벌은 죄를 지은 당사자인 본인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수 있고, 혹 범죄자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일 경우에는 한 나라와 민족이 그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회개는 용서를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형벌을 면제받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다윗은 자신이 잘못했노라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했다(대상21:16). 그러나 셋째,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의 제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모든의 형벌이 장차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돌아가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갈3:13). 그렇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은 실로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일어난 후에 범죄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의 해결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해결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려오는 그 결과들 곧 귀신들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할 때에 비로소 우리 몸 밖으로 내보내거나 우리 주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1:9). 

 

2022년 02월 10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1) 다윗의 마지막 말 및 참된 신정국가의 조건(삼하23:1~39)_2022-02-09(수)

https://youtu.be/vHngFj3mNHA  

 

1. 사무엘하 23장에 나오는 다윗의 시(다윗의 마지말 말)은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무엘하에 나오는 다윗의 시는 총 3개다. 하나는 1장에 나오는 "활의 노래"(삼하1:19~27)이고,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승전가"(삼하22:2~51)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무엘하 23장의 한 편의 시(삼하23:1~7)가 있다. 이중에서 사무엘하 22장의 시는 다윗이 자신의 왕정 초기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되며,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사무엘하 23장의 시는 그의 말년에 기록한 시로 보인다. 그러므로 시마다 각기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삼하23장의 시에는 다윗의 신앙과 인생경륜이 오롯이 배어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2. 사무엘하 23장의 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무엘하 23장에 있는 다윗의 시는 영성이 깊어진 다윗의 면모가 오롯이 나온다. 그만큼 깊이와 무게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이제 여호와의 영에 깊이 감동된 상태에서 이 시를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삼하23:2). 그리고 다윗은 이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이 누군지를 1절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이새의 아들이었다가 야곱의 하나님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높이 세워진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높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한다(삼하23:1). 그런데 '이새의 아들'이라고 표현을 보자. 이 표현은 사실 사울왕이나 세바처럼 다윗을 대적했거나 미워했던 자들이 다윗을 경멸할 때에 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 용어를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 이는 그가 사실 별 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목동으로 자라났던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 다윗은 원래 자신이 그러한 존재였다는 것을 항상 자기의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지도자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한다. 참으로 겸손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3. 사무엘하 23장의 시는 어떤 내용인가?

  다윗은 그의 인생의 말년에 이 시를 마지막으로 기록하였다. 이 시는 시편에는 나오지 않고 여기에서만 나오는데, 이 시는 누가 신정왕국의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자가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지를 말하고 시다. 그리고 이어서 악한 자의 특징과 그의 결말까지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다윗은 장차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는 신정왕국을 이루는 지도자는 2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사람은 공의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삼하23:3).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경외해야 한다고 했다(삼하23:3). 왜냐하면 공의가 빠진 지도자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도자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높여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복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삼하23:4~5). 첫째로, 그러한 자에게는 돋는 해의 아침 빛같이 그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로, 비 내린 후 땅에서 돋는 새 풀처럼 청청할 것이라고 했으며, 셋째로, 그러한 자가 사는 집은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집이 될 것이며 견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영안을 열어서 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보편적으로 3가지가 보인다. 첫째로, 그의 집에 빛이 비춰지고 있고, 둘째로, 비나 물이 잔잔한 호수나 바닷가 옆에 그 집이 지어져 있으며, 셋째로, 그의 집이 초가집이 아니라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된 대궐 같은 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윗처럼 이 정도의 영성을 갖추려면 사실 매우 많은 회개가 필요하며, 주님의 수많은 다루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말년에 다윗은 이미 이러한 영성을 갖추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악한 지도자는 내버려지는 가시나무 같아서 주변 사람이 그를 만질 수가 없는데,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도 곧장 불살라 없애버리실 것이라고 했다(삼하23:6~7). 그렇다면 나는 과연 주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영광스러운 참된 지도자인가 아니면 내버려지고 불태워질 악한 지도자의 모습인가? 악한 지도자는 늘 남을 찌르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잘 붙지를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4. 다윗에게는 어떤 용사들이 있어서 그를 도왔는가?

  사무엘하 기자는 이제 사무엘하를 마감하면서, 다윗의 곁에서 다윗을 도운 37명의 장수들의 명단을 이 책에 기록한다. 아마도 다윗을 도와 신정국가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훗날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의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다윗을 도왔던 자들의 이름을 전부다 기록하려면 상당하겠지만 사무엘하 기자는 그중에 대표자들 37명의 이름을 소개한다. 그들은 다윗과 그의 나라를 지킨 첫 3인 용사들 그리고 둘째 3인 용사들 그리고 30명의 용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다 합치면 총 36인이다. 그런데 37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앞의 36명에다가 이스라엘의 총 사령관인 요압을 합쳐서 37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럼, 이들 중에서 다윗의 첫 3인 용사는 누구인가? 그들은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과 '삼마'라고 나온다(삼하23:8~12). 그리고 둘째 3인 용사는 '아비새'와 '브나야'와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어떤 용사라고 나온다(삼하23:18~23). 그리고 마지막으로 30명의 용사들이 나오는데, 그 용사들의 명단에는 요압의 막내동생이었던 '아사헬'과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과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아' 장수의 이름도 나온다(삼하23:24,34,39). 그러니까 이 명단은 다윗의 통치 시작 무렵의 다윗의 용사들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사울과 이스보셋의 군장인 아브넬에 의해 죽임당한 아사헬의 이름이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이 암몬자손의 손으로 죽였던 헷 사람 우리아 장수의 이름도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5. 다윗의 용사들  중 둘째 삼인 용사들의 무용담이 여기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무엘하의 기록 중에서 감동적인 명장면 하나를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에 둘째의 세 용사들이 적진의 영채인 베들레헴에 쳐 들어가 물을 길어다가 다윗에게 바친 이야기다(삼하23:15~17). 그런데 이 이야기는 세 용사의 충성심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세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길어온 그 물을 다윗이 마시지 않고 그 물을 오히려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장면을 볼 때에는 정말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의 모습도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그 물을 받아든 다윗이 그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 장수들의 피값이 서려있는 물이라고 말하면, 자신이 어찌 그 물을 자신이 마실 수 있겠느냐고 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이때 다윗은 그 물은 오직 그 피값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다고 하면 그분께 부어드린다. 이런 부하와 이러한 주군이 있는 나라가 있다면 정말 가장 멋진 나라요 하나님께서도 복주시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나라의 지도자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정말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윗의 37명의 용사들처럼 그 지도자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신하가 없다면, 그 나라는 위대한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룬 나라로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2022년 02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0) 이긴 자였던 다윗의 노래와 그에 대한 평가(삼하22:1~51)_2022-02-08(화)

https://youtu.be/ppa1WD-NFQs  [혹은 https://tv.naver.com/v/25058447 ]

 

1.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는 언제 썼는가?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노래(승전가)는 언제 기록한 것일까? 만약 사무엘하의 기록을 역사적인 순서로 본다면 이것은 다윗이 말년경에 기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전 시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사무엘하 21장부터는 성경기자가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생애 가운데 일어났던 사건 가운데 꼭 남겨야할 중요한 사건을 골라서 기록한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무엘하 22장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의 어느 시점에 기록한 것일까? 내용상 이 기록은 다윗의 통치 그것도 다윗의 왕정 통치 초기의 어느 시점에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2. 사무엘하 22장이 다윗왕의 통치 초기에 기록된 시편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윗은 B.C.1010년에 왕위에 올랐으며, 그후 40년간 통치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다윗의 생애를 정리해본다면 이렇다. 그는 15살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고 20세부터 30세까지 10년동안 사울왕을 피하여 도피생활을 했으며, 30세에서 비로소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고 거기에서 7년 6개월간 다스렸다. 그리고  다시 37세에는 예루살렘에서 모든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 되어서 33년 반동안 통일 왕국을 통치하였다. 그런데 다윗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고르라면 그것은 밧세바의 간음사건이자 우리아 장군의 살해사건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약 40세쯤에 일어난 일인데 그 영향은 그가 죽을 때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다윗의 통치기간 중 앞 부분의 10년 통치기간만이 영광스러운 날들이었다고 할 수 있고, 3/4의 시간 곧 30년은 내리막길을 걸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 다윗은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시편을 언제 기록한 것인가? 그것은 시편의 내용이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암시해 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다윗은 자신의 나이 약 40세쯤에 이 시편을 기록한 것 같다. 왜냐하면 첫째, 이 시의 표제어를 보니,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들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기록한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삼하22:1). 그러므로 사울이 죽은 시기와 이 시편의 기록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며, '모든 원수들의 손'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이 시기는 사울왕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원수들을 다 정복한 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삼하22:1). 둘째,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다윗은 범죄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이 주신 법도를 준수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그가 이 시편을 기록할 때에는 아직 범죄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삼하22:21~30). 그리고 셋째로, 다윗이 이방민족들 모두를 무찔러 그들을 굴복시켰으며 어떤 나라에서는 다윗의 소문을 듣고 와서 조공을 바쳤다는 언급을 통하여, 이 시기는 다윗이 주변 민족들을 정복한 후의 어느 시점에 이 시편을 기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삼하8장). 고로 이 시편은 먼저는 다윗이 사울을 10년간이나 피해 다니다가, 사울이 죽은 이후(B.C.1010년)의 어느 시점에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윗이 주변의 이방민족을 평정한 사건(B.C.990년경)을 봐서러도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이전에 주변에 있는 어느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사무엘하 22장의 시편 기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사무엘하 22장은 사실 시편 18편과 같은 시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문장이 거친 것을 보았을 때에 먼저 사무엘하 22장이 기록되었고, 나중에 시편에 편집한 것이 수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어찌 되었든지 사무엘하 22편은 다윗의 승전가로서 원수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다윗이 감사하고 찬양하는 노래다. 이 시편은 표제어인 1절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1절에서 20절까지는 다윗이 자신이 드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며, 21~46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고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21~30절)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 원수를 멸하는 승리를 안겨주신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47~51절에서는 다윗이 영원토록 그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주님께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영원한 인애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4.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원수'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왜 사무엘하의 기자는 다윗이 다윗이 기록했던 시편을 굳이 여기에 수록하려 한 것인가? 그러한 이유로 제일 간단한 답은 사무엘하 기자가 다윗의 위대함을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답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 저자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이곳에 이 시를 수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하다. 이 시편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한 단어를 주목하면 된다. 그것은 '원수들(혹은 미워하는 자들)'이라는 단어다. 다윗에게는 여러 종류의 원수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원수는 다윗을 계속 추격하여 죽이려고 했던 원수들이 있었다. 이들의 예표는 사울왕이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30년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두 번째 원수는 다윗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죽이려고 했던 원수들이 있다. 이들은 그것은 사울왕과 다윗왕에 있어서는 바로 블레셋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주변에 위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곡식을 빼앗아갔고 기름과 포도주를 강제로 취하여 갔으며,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젊은 처녀총각들을 데려가 자기의 종들로 부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멸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쳐 일약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발탁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끝내 블레셋의 가드지방에 여전히 남아있는 거인들 4명을 없애버림으로, 가나안 땅에서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게 하였다. 

 

5. 사무엘하 22장(시편18편)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무엘 22장의 시편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아래에는 세 가지 방면들이 있다. 한 가지라 함은 이 시편은 "원수들에게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세 가지 방면들이 있다는 것은 이 기록이 구원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구원을 받았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의 첫 번째 방면은 원수들이 공격해올 때 다윗이 피하게금 하셔서 다윗에게 어려움이 없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피하게 구원해주신 하나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의 두 번째 방면은 원수들이 공격하여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쏙 빼내어 주시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셀라하마느곳'이 바로 그러한 장소이자 그러한 시기였다. 이는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방면이 있다. 그것은 여러 방면의 원수들을 무찔러 그들을 멸망시켜 버리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이것은 다윗에게 대항했던 이스라엘 주변 이방민족들을 가리킨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진짜로 칭찬을 받게 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나온다. 그것은 다윗은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시도했던 거의 모든 자들을 다 용서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다윗의 삶만을 보더라도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2022년 02월 08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2) 신실하신 하나님, 다윗왕국에게 관한 약속을 이루어주시다(삼하8:1~18)_2022-01-18(화)

https://youtu.be/5OEkDy2spKc  [혹은 https://tv.naver.com/v/24992196 ]

 

1. 다윗이 수많은 주변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이 주변 민족들 곧 블레셋, 아말렉, 에돔, 모압, 암몬, 아람, 아람소바, 하맛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먼저는 이러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이었고(창12:7, 13:17, 15:18~21), 가까이는 다윗에게 하신 것이었다(삼하7:11,16). 사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왕이 있었다면 그는 다윗왕이었고, 가장 태평성대를 이룩한 왕도 바로 다윗왕이었다. 그는 남서쪽 애굽강에서부터 시작된 블레셋 나라로부터 북쪽의 하맛이 위치한 유브라데강까지 정복한 왕이었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다윗이 있기 전 약 1,100년 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바로 그 영토를 차지한 것이었다. 

창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삼하7:11 내가...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삼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2. 다윗이 전쟁에서 진짜 승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다윗이 주변 나라의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사무엘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5,14)". 그랬다. 다윗이 정말 전쟁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예가 출중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부하들이 전쟁 수행 능력이 탁월했으며 무엇보다도 주군에 대하여 충성심을 바쳤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들 18,000명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역대상 18:12의 평행 본문을 보면, 거기에서는 다윗의 장수 아비새(요압의 친동생)가 죽였다고 되어 있다. 사실 아비새는 다윗의 최측근의 한 사람인데 그는 다윗의 누나 스루야의 둘째 아들이자 요압장군의 바로 밑의 동생이다. 그는 과거 하길라 산에 진치고 있는 사울왕의 진영에 몰래 들어갈 때에 함께 갔던 자로서, 모두 다 잠든 사울왕의 진영에서 잠든 사울왕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자신에게 그 기회를 달라고 했던 자였다. 그리고 다윗이 위험에 빠졌을 때 다윗을 도와 다윗의 목숨을 건진 적이 있던 최고의 부하 장수였다. 그랬다. 다윗은 타고난 전쟁 수행 능력자가 아니었다. 블레셋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보여 주었듯이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셔서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신 것이고, 탁월한 부하 장수들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붙여 주셔서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다윗의 부하의 충성심은 어느 정도였는가?

  다윗의 나라가 부강하게 될 수 있었던 부가적인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다윗의 부하들의 충성심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주군을 위하여 언제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다윗이 10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면서 주변 민족들과 그리고 사울왕과 전쟁을 치를 때에 붙었던 관록이 한몫 했을 것이며, 또 하나는 다윗이 사울왕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당시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명분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기회도 2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사울왕을 보호해 주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줄곧 지켜보았던 부하 장수들은 다윗으로부터 부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중의 제일 유명한 일화는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부하 3명이 다윗을 위해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다윗이 소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삼하23:15)" 그러자 세 명의 용사가 블레셋 진영을 돌파하더니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다시 와서 바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은 그 물을 어떻게 했는가? 그는 차마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여, 내가 어찌 이 물을 마실 수 있나이까?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닙니까?(삼하23:17)" 그러자 다윗은 부하 장수들의 마음을 더 얻을 수가 있었다. 

 

4. 다윗의 정복 전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사항은 무엇인가?

  그런데 다윗의 정복 전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윗이 주변 나라 8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가 보인 행위들이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전리품(금방패 등)을 획득하기도 하고, 패전국이 바친 조공(금그릇, 은그릇, 놋그릇)을 받기도 하였는데, 다윗은 그것을 모조리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다는 사실이다(삼하7:7~8, 10~12, 대상18:8). 그는 사울 왕처럼 전리품이나 조공품들을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기념비 제작 같은 것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윗은 그것을 개인 용도로 착복하거나 그것을 즐기는 데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여호와께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그것을 장차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짓는 성전을 위한 건축 재료로 드리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대상18:8, 29:1~3). 그리하여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금'과 '은'과 '놋' 등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한 재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윗은 자기가 받은 복을 자기가 누리는 데에 쓰지 않고 미래에 자신의 후손을 위하여 또다시 심는 데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다윗은 자신이 키도 크고 힘이 좋고 또한 무예가 출중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능력만으로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전리품이나 조공품들을 개인의 만족을 누리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후손이 복을 받지 아니할 수가 있었겠는가!

 

5. 다윗이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에 한 일은 무엇인가?

  이제 다윗의 나라도 거의 안정이 되었다.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다 다윗에게 굴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이상 다윗의 이스라엘 왕국을 괴롭힐 이방 민족들이 없었다. 그러자 다윗은 이제 나라 안살림을 챙긴다. 그러므로 행정 관료들을 적절히 배치한다. 이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나라를 4가지 영역으로 나누었다(삼하8:15~18). 그래서 군사와 역사, 종교와 정치 담당자를 각각 따로 세우는 일을 하였다. 군사적으로 야전(외부)에는 요압장군을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왕궁 수비 대장으로서는 브나야를 임명했다. 그리고 역사의 기록을 고스란히 남기고자 사관으로는 여호사밧을, 서기관으로는 스라야를 임명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아론 자손의 제사장 중에서 양쪽 가문의 사람들을 다 데려다가 일하게 하였으니, 엘르아살 가문의 제사장으로는 사독을, 이다말 가문의 제사장으로는 아비아달과 그의 아들 아히멜렉이 일하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들을 대신들(고문, 자문 위원)로 기용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2022년 01월 1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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