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족보가 두 군데 나온다. 하나는 마태복음 1장이고(마1:1~17) 또 하나는 누가복음 3장이다(눅3:23~38). 그런데 예수님의 조상의 이름들이 서로 같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시조가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시조를 아브라함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조상들의 댓수도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42대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77대손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조상들의 계보가 좀 다르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다윗에서 솔로몬로 이어지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다윗에서 나단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마태복음의 족보는 하향식 족보이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상향식 족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는 솔로몬의 가문의 후손과 나단 가문의 후손 가운데 두 명의 이름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마태복음의 족보를 보면, 솔로몬-르호보암...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아비훗으로 이어지는데, 누가복음의 족보는 나단-맛다다...네리-스알디엘-스룹바벨-레사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 가문과 나단가문이 같은 조상들 곧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갖고 있는 것이다.
3. 헬리는 요셉의 아버지인가 마리아의 아버지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하향식 족보를 통해서, 아브라함(1)-이삭(2)...이새(13)-다윗(14)-솔로몬(15)-르호보함(16)...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아비훗...야곱(40)-요셉(41)-예수님(42)까지 이어지는 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상향식 족보로서, 예수(77)-요셉(76)-헬리(75)-맛닷(74)...으로 올라간다.
그렇다면,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인가 아니면 '헬리'인가?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특징을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마태복음은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묘사하는 복음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사람'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하고 있다(미1:1).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여자의 자손'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자'라 함은 처녀 '마리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잉태사건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남자인 요셉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마1:18~25),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잉태사건은 여자인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눅1:26~56).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족보가 예수님의 법적인 부친인 요셉의 족보라고 한다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부친은 야곱이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의 부친을 헬리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헬리는 마리아의 부친이자 요셉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부친이었던 헬리는 2명의 딸만 낳았고 먼저 죽었다. 그러자 헬리의 장녀인 마리아와 그리고 차녀인 살로메는 자신의 가문을 문닫지 아니하고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한 가지 율법사항을 그대로 준수해야 했다. 그것은 자기가 속한 지파사람 그것도 가까운 족속(가문)으로 시집을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야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도 아니하고, 기업이 자기가 속한 가문에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율법규정은 민수기 27장과 36장에 보면 다 나온다. 그래서 헬리가 자신의 두 딸들만 남겨놓고 일찍 죽자, 마리아는 유다지파이자 자신과 가까운 가문의 남자인 요셉과 만나 정혼을 한 것이다. 그래야 가문도 보존하고 기업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마리아는 대체 누구의 후손인가?
마리아는 대체 누구의 후손인가? 솔로몬의 후손인가 아니면 나단의 후손인가? 우리는 마리아의 아버지가 헬리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헬리의 조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헬리-맛닷-레위로 올라가는 조상들 중에는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이 있다(눅3:27). 그런데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은 요셉-야곱-맛단으로 올라가는 조상들 중에도 있다는 것이다(마1:15~16,12).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솔로몬 가문과 나단 가문이 각기 따로 후손을 낳아 계보를 이어오다가, 스알디엘에 가서 두 가문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나단 가문의 '네리'가 아들이 없이 딸만 있어서 자신의 딸을 솔로몬 가문의 스알디엘에게 시집을 보냄으로, 두 가문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스알디엘은 나단 가문에서 네리의 사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과 가문과 나단가문이 스알디엘을 통해서 또 하나의 가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낳았는데, 스룹바벨의 아들대에서 다시 두 가문이 된다. 하나는 아비훗으로 이어지는 유다-요셉 가문이 되었고, 또 하나는 레사로 이어지는 헬리-마리아 가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가문들 중에서 솔로몬 가문은 솔로몬에서 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왕의 가문이었는데 여고냐(고니야)로 왕이 끝난다. 그리고 스알디엘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가문은 솔로몬 가문과 나단 가문을 동시에 조상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헬리의 딸이었던 마리아는 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의 가문의 후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윗-나단으로 이어지는 가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마리아의 가문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그것의 그녀의 외가의 조상들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외가 곧 어머니는 제사장의 딸이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어머니('안나'로 알려져 있다)와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샤벳은 친자매간인데(고로 엘리샤벳은 마리아의 이모이다), 엘리샤벳은 아론의 자손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눅1:5). 그러므로 마리아의 어머니(안나) 역시 아론의 자손인 것이다. 즉 제사장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제사장의 외손녀인 셈이다. 그러니 마리아의 피에는 제사장 가문의 피가 같이 섞여 있는 것이다.
5. 누가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조상들의 족보에 왜 나단 가문이 들어가 있는가?
사실 마리아의 가문은 여고냐-스알디엘-스룹바벨로 이어지는 왕의 가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고냐의 조상인 솔로몬-다윗의 족보만 있어도 되었다. 그런데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나단-다윗의 족보를 왜 누가복음의 저자는 기록한 것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의도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마리아의 족보에 굳이 필요 없는 '나단-맛다다-멘나...엘기-네리'에서 스알디엘로 이어지는 족보를 기록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윗가문 중에서 나단 가문을 특별히 기록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 시대에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성경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삼하7:2~4,17).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윗의 아내 밧세바(밧수아)가 난 아들들 가운데 '나단'이 셋째 아들이었다는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삼하5:14). 다시 말해 밧세바는 다윗에게서 4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그 이름이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이다. 그러니까 나단은 셋째 아들이고 솔로몬은 넷째 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다윗 가문이 나단 가문과 솔로몬 가문으로 둘이 되었다가 스알디엘에 이르서서 다시 하나가 되었으며, 스룹바벨의 아들 대에서 다시 두 개의 가문이 되었다가 다시 헬리 대에서 하나의 가문이 되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므로 헬리가 요셉의 장인이었다는 것을 추론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시다. 특히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10달 동안 자란 후에 출산의 과정을 거치셨으므로,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우리 모든 사람들도 역시 아담 이후 엄마의 자궁 속에서 10달 동안 성장한 후에 출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라고 하는가? 예수님과 우리는 다 똑같이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 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죄없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대강절의 절기를 맞이하여, 예수께서 왜 죄를 갖지 않은 채 태어난 흠없는 사람이었는지를 좀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2. 원죄(原罪, original sin)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에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의 타락 이후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어거스틴이 처음으로 '원죄'라고 불렀다. 아담이 지었던 죄로 인하여 죄된 본성을 그의 후손도 전가받아 그것을 가진 채 태어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인간은 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원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거스틴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정리해서 원죄라고 했던 것이다.
그럼, 자식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어떻게 원죄를 물려받는가? 그것은 딱히 어떻게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그것을 가리켜 '죄의 유전'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즉 아버지가 죄인이었기에 그의 자녀도 역시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시각은 아마도 사도 바울에 의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롬5:12).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된 본성 곧 원죄를 물려받아서 태어난다. 고로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된 본성을 가진 채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3. 원죄 곧 죄된 본성의 실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원죄 곧 죄된 본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아담 이후 모든 자식(아들과 딸)에게 그것이 전달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는 사람의 육신 속에 거주하고 있는 실체라고 말했다(롬7:18~20).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9절에서 믿는 자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또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죄도 우리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롬7:18~20 내 속[에] 곧 내 육신(육체)[안]에 선한 것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생산하고 있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악한 것)을 [실]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고 있으]면, 이를 행하는(생산하고 있는) 자는 내가 아니요 [오히려] 내 속에 거[주]하는 죄[가 생산하고 있느]니라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육체 속에는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놈이 있다. 그것은 귀신이다(마12:43~45). 귀신에게 있어서 사람의 몸이란 자기의 집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이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된 본성의 실체 곧 원죄의 실체란 사람 몸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귀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사실 귀신은 뱀으로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사탄 마귀의 졸개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죄지은 자에게 지금까지 침투시키고 있는 영적 실제들이 바로 귀신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들어 뱀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벌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의 육체 속에는 귀신들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4. 사람의 육체에 귀신들은 언제부터 침투해 들어가는가?
그럼 귀신들은 언제부터 사람의 몸속에 침투하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엄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다. 사람이 사람이 되려면 남녀 간의 사랑으로 자궁 안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자궁벽에 착상이 되었을 때다. 그때부터 세포분열이 일어나게 되고 약 3개월이 지나면 탯줄로 엄마와 아기가 연결이 된다. 그리고 그 즈음에 하나님께서 낙원에 있는 사람의 영을 자궁 속에 있는 아기에게 넣어 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의 영이 아기 속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귀신들이 침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신들이 사람의 육체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창3:14의 말씀에 따라 뱀이 흙인 사람의 육체를 어거할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 영이 들어가기 전부터 사람의 육체 안에 귀신이 침투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의 자궁 안에는 언제부터 악한 영들이 들어가는가? 그것은 엄마가 죄를 지었을 때나, 엄마의 조상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에 조상들 속에 있던 영들이 내려온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값은 3~4대까지 묻는다고 했기 때문이다(출20:5). 뿐만 아니라 놀라운 사실은 남녀가 성생활을 했을 때, 남자로부터 악한 영들이 그대로 자궁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시집가기 전에 외간남자와 성생활을 한 적이 있다면, 그때 성생활을 했던 남자로부터 악한 영들을 자기 자궁 안에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결혼 전에 순결을 잘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문의 영들이 자기의 자궁 속에 이미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5. 예수께서는 자기 안에 죄된 본성 곧 귀신들을 갖고 태어나셨는가?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은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귀신이 침투한 상태에서 이 땅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아기는 다 죄 가운데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 죄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한가? 예수님도 죄 아래에서 태어나셨는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첫째,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성생활을 통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요셉과 마리아의 성생활을 통해 예수께서 잉태되셨다면 예수님의 육체 안에는 귀신들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예수님은 남자의 정자가 들어가서 육체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씨 곧 말씀이 들어가서 성령에 의해 육체가 되신 것이기 때문이다(마1:20). 그렇다. 예수님의 육체는 남자의 씨가 들어가서 예수님의 육체가 된 것이 아니다. 셋째, 마리아의 자궁 안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지켜 주셔서 악한 영이 있게 하지도 않으셨고 또한 그 안에 침투해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으셨기 때문이다(눅1:35). 그러므로 마리아의 자궁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 보호되어졌고 그 가운데서 성령으로 예수께서 잉태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자식으로 낳아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게 되신 것이다.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네 위에) 임하시고(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6. 예수께서 죄를 짓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기 안에 죄된 본성 곧 귀신도 없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왜냐하면 이미 자궁 안에서부터 귀신의 공격을 받은 채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가 되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와 그녀의 자궁을 직접적으로 보호해 주셨기에, 예수께서는 태아 때에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으셨으며, 귀신을 자기의 몸에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죄를 짓지도 않았는가? 그리고 그분의 일생에 그분 안에는 귀신들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증거는 있는가? 있다.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다(고전15:17,20).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분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런데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그분 자신에게는 죽으실 이유 곧 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때는 사탄 마귀가 불법으로 예수님을 죽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다시 살아나실 수가 있었다. 만일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그날 자기의 죄로 죽은 것인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분이 되살아나심으로 인하여 그분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죽으셨는가? 그것은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는 속죄를 받았지만 그분은 정작 자신이 죄인이 아니었기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죄의 실체인 귀신의 증언이다(막1:24). 귀신들 중에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예수가 누군지를 잘 몰랐다. 그런데 세례 요한에게 안수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영적인 세계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자 곧바로 사탄 마귀가 40일을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준비하고 있던 예수님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분을 시험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그런데 사람이 마귀를 물리쳐서 이긴 사건은 이 세상의 창조 이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귀신들도 예수님 안에 귀신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버나움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가리켜 말할 때에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알아온 채 있으니,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라고 했던 것이다(막1:24). 그분은 실로 거룩한 분이셨다. 그분은 죄를 짓지 않아서 깨끗한 분이셨을 뿐만 아니라 구별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셋째, 성경에 나타나 있는 많은 증언들이 있다. 첫째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증언이다. 그들의 증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까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중에 몇 가지 증언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베드로의 증언을 보자.
벧전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리고 사도 요한의 증언이 있다.
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들어올리시려고) 나타나신(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너희가 아나니(아는 채 있다). 그에게는(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있지 않느니라)
또한 사도 바울의 증언도 있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의 무죄성을 증언한 바 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세례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그분이 세례받는 것을 말렸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죄가 있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모든 인류의 죄를 인류의 대표였던 세례 요한으로부터 전가받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다음 날 그분을 가리켜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다(요1:29). 왜냐하면 자기의 안수를 통해 그분이 인류의 죄를 전가받았기 때문에, 이제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도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할례를 받으셨지만 그분이 속죄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마귀도 그분을 시험했으나 그분에게 귀신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길 수도 없었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무렵,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분을 취조해 본 결과 그분에게는 죄가 없다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실 때에도 자신은 죄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러한 예의 하나는 예수와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나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신을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으로 비유하셨기 때문이다(요3:14). 그것의 예표는 민수기 21장에 나온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그만 독이 있는 불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모세에게 달려왔고, 모세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장대 위에 놋뱀을 달라고 하셨다.그리고 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는 자는 그 놋뱀을 쳐다보라고 하셨다. 그러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놋뱀을 쳐다보았는데, 쳐다본즉 죽지 않고 다 살아나게 되었다. 그때 놋뱀은 어떤 뱀이었는가? 뱀의 모양을 갖추었으나 실제로는 독이 없는 뱀 모양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을 뿐 죄가 없으셨던 분이시다(롬8:3).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죄를 짓지도 않으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7. 나오며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셨는가? 그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씨를 이 땅에 보내 아들이 되게 하신 분이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누구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그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했던 마리아를 통해서였다(마1:1,16).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창세기 3:15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동시에 마리아의 아들도 되실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 태어나실 수가 있었는가? 그것은 마리아의 남편이었던 요셉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가 자궁 안에 들어가서 잉태됨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성령께서 주관하셨다(마1:20, 눅1:3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다(눅1:35). 그리하여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은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으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죄된 본성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게 된 것이다. 아담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은 채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난 둘째 아담이 되셨으며, 동시에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고전14:45,47). 그러므로 그분은 이제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흠없는 속죄제물이 되실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분의 속죄를 믿음으로 자기의 죄들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다 집행하신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태어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마리아의 아들인가?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마리아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도 되시며 마리아의 아들도 되는 것인가? 그것의 숨겨진 비밀은 사실 처녀가 임신하는 것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로마 카톨릭(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낳았던 마리아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거의 신격화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보는가 아니면 메시야 탄생에 있어서 태를 빌려준 여인으로 보고 있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께서 과연 누구의 아들인지를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인가 마리아의 아들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계의 조상들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의 조상들로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도 있고 다윗도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바로 윗대 조상은 마리아의 남편으로서 요셉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일까? 법적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며, 그가 마리아와 결혼했으니,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는 법적으로는 분명 요셉의 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쭉쭉쭉해서 이런 식으로 계보를 나열하고 있는데, 요셉에 이르러서는 "요셉이 예수를 낳고"라고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5~16). 왜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님을 요셉이 낳은 아들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낳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그것은 요셉이 비록 마리아의 남편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씨가 들어간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요셉은 어느 날 마리아와 정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년 뒤에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1년이 되기 전에 아뿔사! 마리아의 배가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자 요셉은 이것을 놓고 깊이 생각하다가 파혼하기로 결단을 한다. 하지만 꿈에 한 천사가 나타나 정혼한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될 터인데 그러면 그의 이름을 '예수'라 지으라고 한다. 그러자 요셉의 의심은 풀려진다. 이에 성령으로 잉태된 상태에 있는 마리아를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때까지 요셉은 마리아의 순결을 지켜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들을 낳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는다. 그러므로 태어난 아기 예수는 씨로 본다면 결코 요셉의 아들은 아니다. 요셉의 씨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 된다(눅3:23, 4:22, 요1:45, 6:42).
눅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눅4: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6: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3. 헬라어 동사로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마리아의 아들인가?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마리아의 아들로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두 개의 단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아버지가 자식을 보았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것은 헬라어 동사인 '겐나오'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beget'이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 아버지가 자식을 본다는 동사는 사실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에 나오는 '낳는다'는 표현이 전부 다 '겐나오'라는 동사다. 더욱이 마태복음 1:16의 말씀에 보면, '겐나오'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우선 마1:16의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자.
마1:16[헬라어 직역] 그런데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자식으로 보았다(겐나오), 그녀로부터 그리스도라고 말해지고 있는 바 예수께서 자식으로 보여졌다(겐나오).
앞부분에서 요셉이 자식을 본 것은 '겐나오'라는 동사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 구문이 사용되고 있으며, 뒷부분에서 예수께서 자식으로 낳아지신 것은 '겐나오'라는 동사의 직설법 과거 수동태 구문이 사용되고 있다. 이때 수동태는 신적 수동태로서 하나님께서 주어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잉태된 아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때부터 아들을 보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둘째, 어머니가 자식을 낳았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기사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말씀을 보게 된다. 그것은 동사 '틱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2장 7절에 나온다.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눅2:7[헬라어 직역]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아들로 맏이(장자)를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포대기로 쌌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구유 안에 눕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관 안에 그들에게 장소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낳았다'는 말은 동사로 '틱토'가 쓰였다. 이는 어머니가 자식을 낳았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분명 자신의 태중에 아기를 잉태한 것이고, 열 달 동안 키웠던 것이며, 또한 출산의 과정을 통해서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예수님은 분명 '마리아의 아들'이기도 하다.
4.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예수의 어머니인가?
그렇다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예수의 어머니인가? 우리는 위에서 예수께서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며,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대체 누구인가?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그러한 용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가 정한 교리를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다.
그럼 로마 카톨릭에서는 언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결정했던 것일까? 그것은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A.D.431년 에베소 공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고, 또 한 번은 A.D.451년 칼케돈 공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에베소 공의회에서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한 것 곧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토코스)다'라는 것을 이단으로 정죄했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데오토코스)다'라는 것을 정통 교리로 확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요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것이 맞다. 오히려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렇게 부른다면, 마리아는 하나님보다 더 높여진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찌 피조물을 가리켜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지만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신적 존재로 믿으려 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는 A.D.431년 에베소 공회의를 정식 공회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A.D.451년 칼케돈 공회의만 정식 공회의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칼케돈 공회의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재결의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우리는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들 중에 이처럼 헛점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믿고 따라야 할 것은 성경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한 적이 없다. 다만 '예수의 어머니'라고만 나온다(막3:31, 눅8:19, 요2:1,3, 행1:14).
막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눅8: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5. 예수께서는 어떻게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셨는가?
일반적으로 아기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함으로 여자의 자궁 속에 잉태가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잉태되지 않았다. 그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마1:20). 그것은 마치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아담의 창조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양쪽 부모의 씨가 합쳐져서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는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날 꿈속에서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을 헬라어 원문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너는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려고 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녀 안에 잉태된(아버지가 자식을 보게 된) 것은 거룩한 영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마1:20)." 그렇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씨가 마리아의 자궁 속에 들어가서 잉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친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나님은 그분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은 두 사람에게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이며, 또 한 사람은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신 것이다(고전15:47,45). 모든 사람은 첫 사람으로부터 육적으로 태어난다. 그러고 나서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영으로 거듭 태어난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육의 생명을 물려받으며, 이어서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영의 생명을 물려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마리아의 자궁 안에 임신이 될 때에 그 아기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태어난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불렀다(요3:16).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채 태어난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6.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곧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라고 불리울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이 자신의 태중에 넣어 준 하나님의 씨를 받아서 10달 동안 키웠고 또한 낳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자식으로 보기 위하여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처럼 흙으로 예수의 육신을 만들지 않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셨다(요1:14). 그리하여 말씀이 그대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 있을 때에 마리아의 피가 예수님께 넘어간 것일까? 아니다. 만약 엄마의 피가 태중의 아기에게로 그대로 흘러 들어간다면 죽는 아이가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와 아기가 각각 다른 혈액형을 가진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엄마가 B형의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A형의 피를 B형의 사람에게 수혈하면 B형의 사람은 금방 사망한다. 그러므로 엄마의 피가 태아에게 직접 들어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 태중의 아기는 어떻게 산소를 공급받으며 성장하는가? 그것의 비밀은 탯줄에 있다. 탯줄에서 치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친과 아기를 연결해 주는 탯줄 안에는 두 개의 동맥과 두 개의 정맥이 들어 있다. 두 개의 동맥을 통해서는 엄마에게 있는 영양분과 산소가 아기에게로 들어간다. 그리고 두 개의 정맥을 통해서는 거꾸로 아기에게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엄마가 받아서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탯줄을 통해서 엄마로부터 호르몬도 공급되고 항체도 전달된다. 그리하여 면역체계가 잘 가동되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탯줄은 임신 4주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임신 3개월이 되면 영양 공급이 시작된다. 탯줄의 크기는 약 1~2.5cm 크기에서 최대 5cm까지 커지며, 길이는 최대 50cm까지 길어진다. 그런데 탯줄에는 신경조직이 없어 탯줄을 자를 때 엄마도 안 아프고 아기도 안 아프다. 성경은 말한다. 마리아가 자기의 아들 곧 맏이를 낳았다('틱토')고 말이다(눅2:7).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는 과정에 마리아를 들어 쓴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의 과정에 사람을 들어 쓰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람이 참여하게 되면 그만큼의 상이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 보면 마리아가 이미 받은 상이 있고 요셉이 이미 받은 상이 각각 따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 나오며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 가장 중요하게 역사한 것은 성령님이시다(마1:20, 눅1:35).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이 씨로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통하여 사람이 되었듯이,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통하여 사람이 되셨다. 단, 첫 사람 아담은 성인으로 창조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아기로 창조되어 엄마의 태중에서 성장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식을 본 것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또한 마리아가 태중의 아기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호르몬과 항체를 공급하여 10달 동안 키운 다음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아들'이기도 하다. 즉 예수님은 신성으로는 하나님이시지만 인성으로는 사람이신 것이다. 그래서 100% 하나님이시면서 100% 인간인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100% 하나님이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100% 인간이신 예수님 때문에 속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 오셨기에 영원한 아버지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분이 피흘리심으로 우리 죄가 속죄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신 일이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천사를 보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에 동의를 구하셨다. 그때 마리아와 요셉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그리스도이시자 구주이신 예수께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