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 해 결산하기(2)] 세 가지의 결산 키워드로 살펴보는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창32;1~11)_2023-12-27(수)

https://youtu.be/ttnzhbbsKBc [또는 https://tv.naver.com/v/45421465]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결산 키워드로 3가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디모데전서 4:7에 나오는데, 3가지다. 먼저 첫 번째는 영적 전투를 통한 영적 성장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얼마나 완수하여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그렇게 맡겨진 사명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3가지 기준에 따라 자신의 인생도 결산해 보며 한 해도 결산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 사람의 일대기를 바울이 제시한 3가지 결산 키워드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 사람은 구약시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인물이다.

 

2. 야곱의 생애는 어떻게 결산할 수 있는가?

야곱의 생애를 결산한다면 그는 과연 성공적인 인생을 살다간 사람일까? 결론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본인이 천국 백성 가운데 이기는 자의 예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발꿈치를 잡은 자 야곱에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둘째, 본인도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12아들들 중에서 2명의 아들을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도 지금 천국에서 24장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아들인 유다와 요셉도 24장로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곱의 인생은 어떻게 되어서 성공적인 인생이 되었을까?

 

3. 바울이 가르쳐 준 첫 번째 결산 키워드로 볼 때 야곱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는가?

야곱의 첫 번째 결산 키워드로 볼 때, 야곱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대적과의 싸움에서 상당한 영적 진보를 이룬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출생의 한계에 부딪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결코 출생의 한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축복의 언약계승자가 되기 위하여 끝까지 노력한 끝에 언약계승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차자였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장자의 권리도 없었고 또한 장자의 축복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기도를 통해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처자식과 가축 떼들을 다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로 승리함으로 인해 결국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의 얍복강의 철야기도이다. 이때 야곱은 두 무리의 군대를 보게 되는데(창32:1~2), 이들은 야곱의 기도에 대처하려고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야곱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여 한 무리는 자기 곁에 붙잡아 둘 수 있었고(창32:24), 또 한 무리는 에서에게 보내 에서의 미움과 시기 질투심, 폭력과 살인의 마음을 제거하고 그의 마음을 바꿀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창33:8).

 

4. 바울이 가르쳐 준 두 번째 결산 키워드로 볼 때 야곱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는가?

바울의 두 번째 결산 키워드로 볼 때 야곱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자였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2가지 사명은 첫째로, 본인이 언약계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이 낳은 열두 명의 아들들을 다 언약계승자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결국 야곱은 이뤄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이루는데 결코 공짜로 그것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기꺼이 댓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댓가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고로 지금 내가 무엇인가 축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내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누리기만 하고 씨를 뿌리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후손은 누릴 것도 없을 것이며, 자기 자신도 또한 천국에 들어가서 누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그는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도 기꺼이 댓가를 지불했으며, 또한 열두 명의 아들들을 얻기 위해서도 기꺼이 댓가를 지불했다. 그는 장자권을 얻기 위해 팥죽을 쑤어야 했으며, 죽을 각오를 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12아들들을 얻기 위해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의 품꾼처럼 살았으니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아내를 4명이나 얻었고 자식들로 아들은 12명, 딸은 1명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불철주야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친 까닭 때문이다.

 

5. 바울이 가르쳐 준 세 번째 결산 키워드로 볼 때 야곱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는가?

바울이 가르쳐 준 세 번째 결산 키워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야곱은 정말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을 끝까지 믿었으며 그것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야곱에게 있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첫째는 엄마가 가르쳐 주었고 둘째는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준 것이었다. 먼저 야곱은 그의 엄마인 리브가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듣게 되었다(창25:23). 그때 야곱은 그것을 마음 깊이 새겼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반드시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둘째는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누워 잠을 자는데 그때 꿈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그가 장차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며, 그의 자손이 많아짐으로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 주셔서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약속을 철저히 믿고 따랐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벧엘에서 시작되어 다시 벧엘에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 바울이 제시한 결산 키워드와 하늘에 있는 천국집의 항아리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바울이 일러 준 결산 키워드를 가지고 장차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보게 될 천국집의 항아리는 사실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인생이 꼭 천국집에 비치되는 3가지의 항아리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첫째, 야곱의 '기도' 항아리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벧엘에서도 기도하였고, 얍복강에서도 기도하였던 그의 삶 전체가 기도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야곱의 '땀'의 항아리는 더할 나위 없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대가 없이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살 때에도 다 자신의 피나는 노동력을 지불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네 명의 아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처가살이 20년의 세월을 통해 아들들 12명과 딸 하나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야곱의 '눈물'의 항아리는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하는 부모의 곁을 떠날 때부터 눈물로 세월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는 길도 힘들었고, 외삼촌 라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고, 또한 형 에서의 손아귀에게서 벗어나는 일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27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한 해 결산하기(1)] 바울이 알려준 한 해를 결산하는 3가지 기준은 무엇인가?(딤후4:7~8)_2023-12-26(화)

https://youtu.be/kgRemDneBjI [또는 https://tv.naver.com/v/45421459]

 

1. 들어가며

2023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한 해를 어떻게 달려왔는가?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과연 무엇을 성취했으며 또 아직은 이루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올 한 해 동안 이루려고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오늘은 한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과연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결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결산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2. 한 해를 결산하는 3가지 기준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제시했는가?

사도 바울은 그가 쓴 마지막 고별편지를 통해서 자신을 향한 인생 결산 기준을 3가지로 말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디모데후서 4:7에 나온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을 구분해 본다면 첫째, 나는 영적 전투를 해서 과연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했는가 그리고 둘째,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으로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에 나는 얼마나 신실함으로 충성했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묻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항목마다 자기의 점수를 매겨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합산하고 다시 셋으로 나누면 올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결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나의 점수는 얼마나 되는가?

 

3. 한 해 결산의 첫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한 해 결산의 첫 번째 기준은 나는 과연 선한 싸움을 얼마나 싸웠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싸운다'라는 동사는 '아고니조마이'라는 동사로서, 그 의미가 3가지다. 그것은 '경쟁하다', '싸우다', '노력하다'는 뜻이 있다. 그럼 첫째 항목부터 살펴보자. 첫째는 나는 과연 얼마나 '선한 경쟁을 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남과의 경쟁이었다면 선한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더 회개했으며 충성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와 경쟁하여 자기를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고전9:25~27).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절제할 것은 절제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은 고군분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의 대적 마귀와 얼마나 피나게 싸웠는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정한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의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엡6:12). 사실 우리는 귀신들과 치르는 이 영적 전쟁에 따라 영적인 신분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만큼 귀신과의 싸움은 필연적인 것이다. 셋째는 내가 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일에 얼마나 더 노력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이 빚으시는 아름다운 인격과 신앙을 갖추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이미 이루었다는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푯대를 바라보고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빌3:12~14).

 

4. 한 해 결산의 두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한 해를 결산하려 할 때 두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달려갈 길을 얼마나 잘 마쳤으며 그리하여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달려갈 길'은 노정이라는 뜻으로서 경주로 대비한다면 '경주 코스'를 얼마나 제대로 달렸으며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결산은 반드시 내가 걸어가야 할 사명을 결산하는 데에 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행20:24). 왜냐하면 그 사명을 위해서 자신이 이 땅에 보내어졌으며, 그 일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의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산은 반드시 자신의 사명에 대한 열매를 보아야 한다. 그럼,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그것은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지를 알았는가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무의미한 한 해를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해의 결산의 두 번째 기준은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고 그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 중에 "나는 아빠 엄마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자녀가 결산의 열매가 되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5. 한 해 결산의 세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한 해를 결산하는 세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신실했는가 혹은 충성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개역성경으로 번역된 '믿음'은 다른 곳에서는 '신실함' 내지는 '충성'으로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바울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을 무렵에 자신의 믿음이 흔들렸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가 자신의 신실성에 대해 말한 것이지 믿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결산하려 할 때에 보는 세 번째 기준은 역시 신실성 혹은 충성도이다. 그렇다. 우리의 결산은 단지 영적 전쟁이나 사명 감당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실성의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신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 맡은 종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죽기까지 충성할 때에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신다고 했던 것이다(계2:10).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과연 충성스러운 사람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환난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환난이 와도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에 충성하고 있었다면 그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우리는 빨리 회개하고 주께 돌아가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6. 한 해의 결산을 통해 성공적인 신앙의 삶을 살았던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한 해 동안 영적 전투를 잘 치렀고, 사명을 잘 감당했으며, 충성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가? 그것은 면류관의 복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충성한 자들에게만 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면류관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한 해를 살아왔는가? 혹 이전에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또 아침해가 떠올라서 또 한 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의 상은 '면류관' 상은 사실상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개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여러 개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실 면류관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면류관 상은 사도 바울만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 채 열심히 자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는 예배드릴 때에 자기의 면류관을 쓴 채 예배 장소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그때 그 사람이 이 지상에 있을 때에 얼마나 살았는지가 고스란히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그 시간에 표현될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그리고 혹 그것이 하나라도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란다.

 

 

2023년 12월 26일(화)

정보배목사

2023-12-25(월) 성탄축하연합예배

제목: [성탄절]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천사가 알려준 소식은 과연 무엇이었나?(눅2:8~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ZONAse9vIdk [또는 https://tv.naver.com/v/45421454]

 

1. 들어가며

예수께서 탄생했다는 소식은 과연 누가 누구에게 알려 준 것일까?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중요한 소식을 전달할 때에는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신 것일까? 이 땅에 구세주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사실 보통 소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소식은 과연 누가 전해 준 것이며, 또한 처음으로 그 소식을 전달받은 자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 소식을 전달받았던 사람들은 또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천사가 전해 주었다고 하는 그 놀라운 소식은 그 내용이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래서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 탄생의 소식을 누가 누구에게 알려 주었으며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은 그 내용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좀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성탄의 기쁜 소식은 과연 누가 알려 주었는가?

누가복음 2:8~12에 보면, 성탄의 기쁜 소식은 한 천사가 알려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성탄의 기쁜 소식은 사실 보통 소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목자들에게 필요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인류)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눅2:10). 그런데 그 소식을 어떤 천사가 전달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를 통해 그 소식을 전달하게 하셨는가? 그리고 그 천사는 대체 누구였는가?

첫째, 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소식을 전달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식을 전달하려 할 때에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했는가? 그것은 시대마다 약간씩 달랐다. 그러나 대체로 3가지였다. 하나는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꿈과 환상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지자였다. 처음 족장들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서(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음성으로 알려 주었다. 예를 들어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셉에게는 꿈과 환상으로 알려 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갔을 때에는 약430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고,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사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사들의 시대가 끝나자, 선지자 사무엘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이렇게 정리해 주었다(히1:1~2).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런데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B.C.400년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더이상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더이상 당신의 말씀을 대언하게 할 선지자들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더이상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가? 말씀을 전달해 줄 모든 사람들이 다 타락했기 때문이다. 선지자들도 타락했고 제사장들도 타락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 상황은 말라기서를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선지자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천사를 시켜서 그 소식을 전달하게 하신 것이다.

둘째, 예수 탄생 소식을 전달해 준 천사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것은 '주님의 천사'였다(눅2:9). 그런데 이 주님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니었다. 이것보다 약 10달 전에 먼저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될 사가랴에게 나타났었고(눅1:19)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에게도 나타났었다(눅1:26). 그때 그 천사는 그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느니라"(눅1:19).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눅1:26)". 그랬다. 그날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소식을 전달해 주는 천사들 중의 최고인 가브리엘 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가 나타나서 전해 준 소식은 인류 최대의 소식이었고 그 소식은 바로 예수 탄생 소식이었던 것이다.

 

3. 성탄의 기쁜 소식은 최초로 누구에게 전달되었는가?

그렇다면 성탄의 기쁜 소식은 최초로 누구에게 전달되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 소식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 소식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유대 왕이었을까? 아니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이었을까? 그런데 아니었다. 당시 어떤 지도자들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들에서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목자들이 선택된 것일까? 그것은 누가복음 2:8에 그 해답이 나온다. 그들은 3가지 방면에서 합당했기 때문이다. 눅2:8의 말씀을 헬라어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눅2:8[직역] 그리고 같은 지방 안에 목자들이 들에서 살고 있으면서 있어 왔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의 양떼 앞에서 밤의 파수꾼으로 있을 때에

그렇다. 하늘의 최고의 천사인 가브리엘로부터 최초로 성탄의 기쁜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 밤에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이었다. 그들이 선택된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베들레헴 들에서 계속 살아왔고 계속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가지 일에 계속적으로 충실하게 일해 온 자들이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둘째로, 그들이 자기들의 양떼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자를 쓰시는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밤의 파수꾼으로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서도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잠자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자를 주님께서 쓰시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다름 아닌 '베들레헴의 목자들'이었다는 것은 장차 베들레헴에서 한 다스리는 목자가 나올 것이라는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에 따라,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베들레헴의 목자의 선배는 목동이었던 다윗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다윗을 참 마음에 들어했다. 왜냐하면 그는 비천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주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다른 형제들과는 어머니가 달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받았고 아버지도 그를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맡겨 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주어진 일에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목자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때 그가 만들어 부른 찬양이 바로 시편23편의 말씀이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목동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셨다. 그래서 나라도 맡겨 주셨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 나라의 왕이 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신 이유다.

 

4.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달해 준 기쁜 소식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때 주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달해 주었는가? 그것은 눅2:11에 나온다. 헬라어로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눅2:11 오늘 다윗의 동네(성읍) [안]에 ‘너희를 위하여’(너희에게) 구주(구원자)가 나셨으니(탄생되었기 때문이니) 곧 그리스도[이시요] 주[님]시니라

그렇다. 예수께서 다윗의 동네에서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3가지 직무를 수행할 신분을 가진 자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은 바로 그가 수행할 직무가 '구원자'의 직무요 '그리스도'의 직무이며 '주님'의 직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도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3가지 기독론적인 칭호인 것이다. 그때 주의 천사가 전달해 준 기쁜 소식이란 바로 이 3가지다.

첫째, 베들레헴에서 드디어 '구주' 곧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이다. '구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야솨'이며, 헬라어로는 '소테르'다. 이 단어는 '구원자, 구주,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칭호를 구약성경에서 살펴 보면, 결국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칭호였다(사43:11, 49:26). 그래서인지 신약시대에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도 '구주'라는 칭호를 '하나님'에게 사용하였다(딤전1:1, 2:3).

사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9: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딤전1:1 우리[의]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전2:3 이것이 우리[의]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그렇다면 태어날 아기 예수님은 과연 무엇에서부터 구원하는 자인가? 그것을 주의 천사는 이미 요셉에게 알려 주었다. 그것은 그분이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할 자라는 것이다(마1:21). 그렇다. 이 땅에 태어나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분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측면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어진 것이다.

둘째, 베들레헴에서 드디어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메시아흐(메시야)'이며,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그리스도)'다. 이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시2:2). 이 말은 다윗시대까지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로 왕이 태어나게 하실 때에 알려진 것이다(시2:7). 그래서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게 될 것이며(시2:2), 철장 권세를 사용해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시2:8~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며, 왕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 가브리엘도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출산하게 될 아기를 가리켜,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통치할 것이며, 그의 왕국은 끝이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눅1:31~33).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방문으로 인해 헤롯대왕이 제사장들과 서기관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그들은 베들레헴을 지목해서 말해 주었다. 그때 왜 그곳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가 그곳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마2:4~6). 그렇다. 이로써 천사가 전해 준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했다는 소식이었던 것이며, 그분이 오셔서 그리스도라는 직무 곧 왕직을 수행하실 것이라는 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베들레헴에서 드디어 '주님'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이다. '주님'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며, 헬라어로는 '퀴리오스'이다. 주님이라는 단어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므로 주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같이 등장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주님'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용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시대 다니엘 선지자는 알려 주었다.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말이다(단9:3~4). 그러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분은 원래는 주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이신 분인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아기는 하나님이신 '구원자'요,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며, 다시 하나님이신 '주님'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잘 몰랐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나서 그분을 가리켜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곧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요20:28).

 

5. 태어날 아기에 대한 신분과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태어날 아기에 대한 신분은 구원자요,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라는 직무 뿐인가? 아니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기 직전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장차 잉태될 아기에 대해 알려 준 것은 그분의 신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네 위에) [장차] 임하시고(오실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장차]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태어나게 된 채 있는)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장차] 일컬어지리라

그렇다. 그때 천사는 마리아가 장차 임신할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아기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천사는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려 주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가브리엘 천사도 아직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해서 그는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장차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질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원래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사9:6)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태어날 아기의 이름도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 주었으니,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이었다. 이러한 이름은 주의 천사가 먼저는 예수님의 모친이 될 마리아에게도 알려 준 것이요(눅1:31~32), 또한 예수님의 법적인 부친이 될 요셉에게도 알려 준 이름이었다(마1:20~21).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구원은 여호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 바로 '예수'인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헬라어로는 '예수'이지만 히브리어로는 '예슈아' 혹은 '예호수아'이다. 이는 예수님이 여호와이신데 구원자로 오신다는 뜻이다.

 

6.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 준 기쁜 소식을 종합하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주의 천사 가브리엘이 목자들과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 준 기쁜 소식은 아기 예수의 탄생에 관한 소식이다. 그런데 이 소식은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할 것이며, 어떤 신분을 가진 자인지를 알려 준 복된 소식이었다. 그분은 신분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분의 직무는 '구주(구원자)'요, 왕직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자와 주님이라는 직무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이므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주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믿는 믿음을 어떤 그림으로 그려 표현했었다. 그것은 바로 '익듀스'라는 물고기 그림이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헬라어로 '익듀스'였기 때문이다. 그럼 왜 물고기인가? 그것은 그들이 암호처럼 그렸던 물고기가 사실은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신앙고백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글자의 약자였다. 곧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에게 신앙고백할 때에 우리 역시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임마누엘 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기 때문이다(마1:23).

 

7. 이제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누가 누구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할 당시에는 그 소식을 받을 만한 종교 지도자들이 없었다. 그러므로 비천한 목자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목자 다윗의 뒤를 이어 자기 지역에서 계속해서 그 일을 해 온 사람들로서 자기들의 양떼를 위해서 밤의 파수꾼으로 일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렇다. 오늘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바로 목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자기의 신분에 관계없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양떼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복음 전파에 최선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천사의 고지를 받자마자 아기 예수께서 탄생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리고 그 아기를 찾아내어 천사가 전해 준 그 소식을 아기 예수의 부모와 거기에 모인 자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렇다. 온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우리만 들어서는 아니 된다.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러라고 먼저 나에게 그 소식을 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그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악한 자 안에 속하여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두면 어느 누구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서 그들을 마귀의 손에서 건져내어 빛되신 예수님에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빛을 믿고 빛을 받아들여 어둠을 이기고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우리나라에도 복음 전파의 시초에 사도 도마가 복음을 들고 다녀갔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때가 A.D.41~49년경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때(그가 바나바와 더불어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때)가 A.D.47~49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도마는 바울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 주었던 때보다 적어도 6년을 앞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해 준 지역에 교회를 세웠지만 도마는 이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잊혀진 나라 '가야(가락국)'라는 나라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 그리고 문화학자들이 연구해 놓았으니, 이제야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도마가 이 땅에 전해 주었던 복음, 이제는 우리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도마가 전해 준 신앙은 김수로 왕릉의 출입문의 양쪽에 그림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니, 쌍어문의 예수님의 얼굴 그림은 2,00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잘 견디어 냈던 것이다. 그 그림의 내용은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피 흘리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에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고, A.D.41~49년에는 도마가 이 나라에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제 마지막 시대에는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확실한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회개없이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 더 선명해졌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 없이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더 많이 전해 주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회개의 능력을 내가 먼저 더 많이 체험하고, 내가 체험한 것을 믿지 않는 가족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를 바란다.

 

 

2023년 12월 25일(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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