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19) 성령충만과 성령세례의 차이는 무엇인가(행1:4~8)_2020-06-10(수)

https://youtu.be/T96d_UXbFQE [혹은 https://tv.naver.com/v/14211848  ]

 

 

1. 성령충만이란 무엇이며 성령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성령충만"이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서 들어와 가득찬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람 안에서 행하시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세례"라는 것은 성령께서 어떤 사람에게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그때 그 대상이 처음 믿는 사람이든지 이미 믿고 있었으나 아직 성령의 선물(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이든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지심으로 성령의 선물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2.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성령충만"은 성령의 내주(성령에 사람 속에 들어오심)가 단회적이라면, 성령충만은 반복적이며 계속적인 경우라고 우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세례가 대부분 단회적이지만 반복적인 것도 가능한 것은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성령께서 그에게 부어지심으로 성령께서 그를 사로잡아 어떤 은사를 주시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성령세례도 일생에 한 번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가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으면 대부분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게 됩니다(은사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성령충만의 목적이 성도의 인격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데 있다고 한다면,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성도를 사로잡아 복음을 전파케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행1:8). 

 

3. 성령충만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
  성령충만에 대해서 성경은 성령께서 믿는 자들을 주관하고 있는 상태라고 언급함으로써(엡5:18), 대부분의 성령충만은 장기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키며 인격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순간적으로 어떤 사람을 사로잡아(대부분 기도할 때의 경우임) 그로 하여금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도록 하게 하는 성령충만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성령의 내주를 경험했거나 혹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후부터는 성령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약성경 가운데에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오직 한 번 나오지만(엡5:18), 믿는 이가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경우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4회 나오고(눅1:15, 41, 67, 4:1), 사도행전에서 10회 나오고 있습니다(행2:4, 4:8,31, 6:3,5, 7:55, 9:17, 11:24, 13:9,52). 고로 우리는 "한 번의 성령세례"에 "반복적인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로 일단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4. 성령세례가 순간적으로 성령의 부어지는 경우를 가리키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 언급되고 있으며, 그것도 사도바울의 서신에서만 언급되어 있습니다(고전12:13). 이때는 사람이 성령의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문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고전12:13을 제외한 모든 성경에서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지는 어떤 현상을 가리키며, 그때 성령의 어떤 은사(선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5.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는 성령세례를 어떻게 표현했나요?
  예수께서는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씀 곧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행1:4). 그리고 그 모습(양상)은 세례받는 것과 동일한 양상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행1:5).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서, 물이 사람의 머리에 부어지듯 성령이 그에게 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행1:5).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이란 2가지를 언급하는데, 먼저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마가다락방에서 들려주셨던 말씀들(요14~16장) 가운데에 "보혜사 성령"을 그들 속에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가리킵니다(요14:16~17,26, 15:26, 16:7~8). 그러나 나중에 좀 더 말씀을 더 드리겠지만, 요엘선지자의 말씀처럼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부어지게 되는 것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욜2:28).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도 자신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경험했던 것을 일컬어 "성령세례"라고 언급하였으며 그 일이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행11:15~16). 또한 그때 성령세례로 인하여 고넬료가정에 성령의 선물(은사)이 부어졌다고 보고하였습니다(행11:17). 

 

2020년 06월 10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17) 중생하게(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요3:1~10)_2020-06-05(금)

https://youtu.be/xaNhK2N1odE [혹은 https://tv.naver.com/v/14135894 ]

 

 

1. 신앙생활의 최대의 2가지 질문은 무엇인가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에게 던지는 최고의 질문 2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내가 과연 거듭났는가 하는 질문이며(요3:5), 둘째, 나는 과연 성령세례를 받았는가(행19:2)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은 자신이 거듭난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람이 거듭났는지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이 주어진 이후의 그 사람의 상태와 결과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진정 거듭났다면 그에게는 이미 "영생"이 주어져 있을 것입니다(요3:15). 그리고 그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에게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서 합당한 어떤 증표(예를 들어,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3. 사람이 거듭난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

  사람이 거듭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단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더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다. 더해진 그것을 두고 예수께서는 "영생(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15). 그런데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만해도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은 오직 예수님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요5:26)"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연 거듭태어났는지의 여부 곧 내가 과연 영생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우리 안에 과연 예수께서 들어와 계시는지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주셨다는)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아들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하나님의 아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느니라)(요일5:11~12)" 고로 우리 안에 예수께서 들어와 계시다면 그는 영생을 이미 가진 자입니다.

 

4.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어떻게 들어오시나요?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어떻게 들어오십니까? 그것은 그분이 영(성령)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요일4:24). 그러므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이요 영(성령)으로 난 자라야 그 영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요3:6).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분이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바람처럼 순간적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그렇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살아있는 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당신의 생명을 취하기 좋도록 생명나무의 열매로 그 앞에 두셨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시조 아담은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그만 뱀(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먼저 따먹고 말았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이 생명을 얻으려면 2가지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일이며, 또 하나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일입니다. 그러나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이상, 하나님께서 는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한 생명수여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바로 그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요14:6에 의하면 예수께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요15:1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동시에 포도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합치면 예수께서는 생명나무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후 그분을 취하는 자가 결국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기 좋게금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15:45)" 그리고 자신을 대신하여 사람 속에 들어오실 수 있는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으니, 이는 곧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이자 생명주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장대 위에 달린 놋뱀(우리 죄를 없이하기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메시야)(요3:15)로 믿고,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는 자는 그 사람 속에 순간적으로 영생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요3:15).

 

5. 중생한 자도 죄를 짓나요?

  그렇습니다. 중생한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3가지 생명이 수여되는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부모로부터 육체의 생명을 물려받았으며, 혼의 생명은 아담이 죄를 지을 때에 마귀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우리는 그때 아담의 허리에 있는 씨의 형태로 범죄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미 마귀가 혼(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 태어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구원의 복음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믿는 우리들 속에는 성령이 들어있고 또한 그분이 가지고 온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자라도 여전히 우리의 혼 안에는 죄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혼의 생명에 의해 육체도 지배당한 상태인지라,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죄된 본성을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듭날 때에 우리 안에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이 들어옵니다. 영생인 것이죠. 그런데 이 생명은 성령께서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강력한 성령의 소욕이 동시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죄된 본성이 들어있는 육체의 소욕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는 성령의 소욕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 둘은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예수 믿기 전의 나 곧 옛사람의 습관에 따라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육체에게 지고 사는 자로서 성령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는 날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에 즉시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계속 거부하고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자신이 죽는 날 그는 성령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날 영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장소인 불못에 들어갈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는 그날부터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2020년 06월 0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바울은 은사들을 말하면서 왜 교회의 직분을 언급하는가?(고전12:28~31)_2019-03-13(수)

https://youtu.be/dyjcJCjiEXM

 

1. 고린도전서 12장은 흔히들 "은사장"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고전12:7~11에 보면, 성령의 9가지의 대표적인 은사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방언말함, 방언들통역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은사들을 언급하다가, 하나님께서 교회 중에 세우신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그것은 대체 무엇입니까?(고전12:28)

 

2.사도바울은 고전12장에서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서 세운 사람들을 언급하는데 이때 언급된 교회의 직분은 총 3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도들이요 또 하나는 선지자들이요 마지막 하나는 교사들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교회의 직분들이 나오는데, 그것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목양자들)이면서 교사들이 이렇게 다섯가지 직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주어지는 이러한 직분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세운 자들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까?

 

3. 구약시대에는 처음 제사장이 세워질 때, 왕들이 세워질 때 그리고 선지자들이 세워질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외에 제사장과 왕들은 그 다음부터는 아들로 이어지는 세습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아버지가 제사장과 왕이었다면 그의 아들도 제사장과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도 혈통적인 조건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직분은 부르심을 받지 않고서 세워진 일은 없었습니다. 한편 제사장이나 왕이 세워질 때에 그것이 비록 세습직이긴 했어도 항상 기름부음을 받고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름부음의 절차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 교회에 주신 직분은 구약시대와는 상당히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은사를 언급하는 곳에서 직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와는 달리 오순절 이후 직분은 어떻게 달라진 것입니까?

 

4. 구약시대와는 달리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의 교회의 직분은 어떤 특정한 자만 전유할 수 있는 그러한 직분은 아니었습니다. 요엘2:28~29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만민에게(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주신다고 했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사역해야 할 직분자들도 모든 만민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교회의 직분에 대한 제한이 다 철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교회의 직분들 곧 목사나 장로, 안수집사와 권사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직분을 수여받으려면 반드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이후 교회의 직분은 성령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성령의 부어지는 외적인 역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은사를 언급하는 곳에서 교회의 직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성령은 어떤 자들에게 부어졌습니까? 그리고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5.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이후 성령께서 부어지신 사건 곧 성령세례사건은 딱 4번 나옵니다. 예루살렘교회(행2장), 사마리아교회(행8장), 고넬료의 가정(행10장), 에베소교회(행19장)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지게 된 이유들을 살펴보면, 예루살렘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일어났으며, 사마리아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까지 받은 상태에서 또한 이미 성령받은 사도들이 와서 안수함으로 성령세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이방인 가정인 고넬료가정에 부어진 성령세례는 그들이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과 회개가 일어나면서 동시에 성령세례가 부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베소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으며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았던 자에게 성령세례를 받은 바울이 내려가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서 안수할 때에 비로소 성령세례가 주어집니다. 결국 사도행전에 등장하고 있는 성령세례의 조건은 간절히 기도함,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회개함, 사모하고 사모함, 사도들의 안수를 받음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성령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교회의 직분자라도 이러한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간절한 기도, 말씀과 회개의 삶, 사모함, 위임받은 자의 안수가 교회의 직분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로부터 안수를 통해 위임받지 않은 직분자는 사실상 교회의 직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과 회개 그리고 사모함이 없이 직분을 맡게 된다면 자칫 잘못하면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전락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과연 직분을 맡기에 합당한 종으로 준비되고 있습니까? 아니 그러한 종이 되기 위해 날마다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2019년 3월 13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수님을 믿어도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행19:1~7)_2019-03-12(화)

https://youtu.be/Keppy0ShizU

 

1. 외적인 성령세례란 무엇일까요?

 

2. 외적인 성령세례란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밖에서 그 사람 위에 부어짐으로 성령에게 푹 잠기거나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킵니다(행10:44~45). 그리고 그때가 되면 대부분 성령의 선물로서 은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통적인 은사는 방언이었습니다(행2:1~4,8:14~17,10:44~46,19:1~6). 사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곧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욜2:28~29). 그러면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눅24:49). 그래서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행1:8). 그러므로 외적인 성령세례는 힘있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증인에게는 매우 필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을까요?

 

3.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에 의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 안수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도 사마리아교회의 경우와 동일하게 사도의 안수를 통해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데, 다만 베드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이었던 고넬료가정에서는 어떻게 되어서 주 예수의 세례를 받지도 않았으며, 사도들로부터 안수도 받지 않았는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4. 고넬료가정에서는 사도베드로를 초청하여 구원얻을만한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고넬료가정 사람들은 에베소 성도들과는 달리 그날 초청한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고 어떻게 죄사함을 받게 되는가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다는 것을 증거할 차라에, 그들 모두에게 성령이 쇄도하듯 내려오심으로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사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성경교사인 아볼로부터 이미 예수님에 관한 것을 다 들었으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나중에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고 물어보았을 때에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성령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요한의 회개의 세례만을 받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그들에게 요한이 말했던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이신 예수의 세례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고 그들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예언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되어서, 바울이 안수하기 전까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5.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회개의 세례를 주었던 장본인 곧 아볼로가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거나 성령세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은 많이 알고 있었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심까지 잘 알고 있었으며, 요한의 물세례까지는 실천하고 있었으나, 성령으로 세례받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자신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그는 예수님이 곧 성령으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증거해주지 않았든지 아니면 예수께서 성령으로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넬료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할 당시 베드로는 이미 예수께서 성령으로 오셨으며 성령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오순절날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볼로로부터 복음을 듣고 세례요한의 물세례까지 받았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내주하시는 성령까지는 받았지만,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세례 즉 외적인 성령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영적 상태 그리고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줍니다. 사실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의 장로교에서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말하지 않거나 금지했던 장로교교단에서는 성령세례를 받거나 성령이 주시는 선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장로교에서는 성령세례는 이미 예수님 믿을 때에 받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은 다 귀합니다. 그리고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그리소 복음전파를 위해 은사를 받아서 그리고 질서있게 사용한다면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나와 있는대로 믿고 사모하고 또 사모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믿는 자에게 성령세례도 부어주시고 성령의 은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2019년 3월 1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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