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23) 성령세례 곧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 이유(눅24:44~49)_2020-06-16(화)

https://youtu.be/qrNr4KdEhY0

 

 

1.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으로 주신 것은 무엇인가요?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가다락방이라는 추정되는 곳에서 나타나시어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이 모든 일들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눅24:48).

 

2. 제자들은 어떤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제자들이 나가서 증거해야 할 것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눅24:46).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 그분이 오셔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특히 그 모든 것이 구약성경에 이미 나와 있는 예언의 말씀의 성취였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될 것이 이미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눅24:47). 

 

3.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기 전에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기 전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 아니 그들이 나기기 전에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으로서, 성령을 그들 위에 보내주실 터인데 그러면, 위로부터 능력을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그것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4:49, 행1:8). 예수께서는 그것을 받기까지는 결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1:4, 눅24:49)

 

4. 성령이 사람들 위에 부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는 경륜적으로 각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요14:16~17).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람들 위에도 부어지실 수 있습니다(눅24:49, 행1:8, 10:45). 그런데 사람들 위에 성령이 부어지게 될 때에는 어떤 현상이 뒤따라오는데, 그것을 가리켜 "성령의 능력이 임했다(행1:8)" 혹은 "성령의 선물(은사)를 받았다(행10:45 헬라어원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예수께서는 "성령세례"라고 명명하셨고(행1:5), 베드로도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행11:16). 이는 곧 제자들이 증인이 되기 전에 먼저 성령세례를 받고 그후에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5. 성령세례 곧 성령의 능력이 부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세례가 부어지기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3년반을 함께 사셨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메시야에 관한 구약성경의 말씀을 일일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 글들과 시편들"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말씀들이었습니다(눅24:44). 그러니까 제자들은 3년반동안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말씀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곧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26, 14:26). 왜냐하면 3년반동안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회개도 함께 가르치셨습니다.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4:17). 그래서 복음말씀과 회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9눅24:48). 그러나 당장 증인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 곧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증인이 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증인으로 나가서 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 곧 성령세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자신은 과연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가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었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으면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를 복음으로 굴복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자들은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약 10일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썼기 때문입니다(행1:14). 기도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없이는 능력의 성령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없이는 능력있는 증인의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혹 자신은 진정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은사)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현장 전도가 어려운 지금은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합니다. 

 

2020년 06월 16일(화)

정병진목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당신이 행한 일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우선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줄 것이고, 그때에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혀지거들랑 그때 나가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옷입혀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왜 주님은 그동안 당신으로부터 보고 들었고 배웠던 것 말고 또 성령의 능력을 옷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는 3가지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서 직접 능력으로 전도했던 것이 3가지였다.

2020-06-1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성령세례에 따른 능력전도의 3가지 유형(눅24:44~49)
https://youtu.be/9Wr7ajjbhU8  [혹은 https://tv.naver.com/v/14284239 ]

 

 

1. 들어가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것도 40일동안에 무려 12번 이상이나 말이다. 그런데 승천하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열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왜 그러셨을까? 예수께서는 왜 즉시 가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 성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약속의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며, 제자들은 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전에 이것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제자들이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혀지기까지 머무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당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혀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며, 사람은 과연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혀지는 것인지 그리고 옷입혀진 결과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기 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즉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으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세상과 그 대상이 그들을 쉽게 환영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갔는데 열매가 없으면 이내 실망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복음전파사역이 중단될 수도 있고, 아예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가서 전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가서 전파할 때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고 또한 복음을 전파에 대한 열매가 산출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잘 준비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가서 전해야 할 세상과 그 대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장소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첫째,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세상은 사탄마귀의 지배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요일5:19).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하지만 창조된 세상은 이미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이 세상의 지배권을 가진 사람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아담에게 주셨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의 말을 듣고 꾀임에 빠짐에 따라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이 송두리채 마귀에게 넘어가고 있다. 고로 아담의 타락이후 이 세상은 악한 자인 마귀 안에 놓여 있게 된 것이다(요일5:19). 그런데 악한 자 안에 놓여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마귀가 호락호락 내주겠는가? 만약 마귀에게 붙들여려 있는 사람들을 꺼내오려면 최소한 마귀보다는 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마귀보다는 더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재 피조물 가운데 마귀보다 지혜로운 존재는 없으며(겔28:12), 마귀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도 없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능력이 크고 지혜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귀도 이 세상에 쫓겨나기 전까지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종하던 선한 천사였다(시103:20,벧후2:11). 하지만 그가 하늘에서 내어쫓겨남으로 악의 화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창조될 때에 그에게 주어진 지혜와 능력은 그대로 그에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내려면 최소한 마귀보다는 더 지혜롭고 마귀보다는 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들이다(히2:7).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하고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성령은 무소부재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능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둘째, 복음을 전파하려면 담대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요16:33). 우리가 혹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주눅들거나 기죽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임을 당한다고 할 지라도 거기에서 꼬리를 내리고 벌벌 떠는 사람이 되어서는 복음을 전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마귀와 맞설 때에 어떤 각오와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그때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마귀야, 네가 혹 나를 죽일 수 있을른지는 모르지만, 네가 나를 죽이면 네가 이 세상임금으로서 왕노릇하는 기간은 단축될 걸. 그리고 나는 너로 말미암아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서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걸. 어디 한 번 죽일테면 죽여봐라."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마귀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사망권세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벌벌 떨어야 하겠는가? 그럼, 어디에서 이러한 담대함이 나오겠는가? 그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혀질 때다. 성령께서 우리 위에 내려오심으로 우리가 그분으로 충만케 되어질 때에 우리는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전에 나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셋째,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사람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서는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고전2:4). 세상 사람들은 말로 전도해야 전도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마귀가 주는 것에 눈에 팔려 그것만 보고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관심을 영생으로 돌리려면 말로 해서는 그들이 좀처럼 돌아서지 않는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배후에 영계가 실존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실체가 귀신들이며, 그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저주를 받고 있으며 불치병과 사건사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계의 최고의 왕은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이 체험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부어지고 그가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다는 말의 의미 무엇인가?

  그러하면,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사람은 비로소 성령으로 세례받음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능력만이 받는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능력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의 어떤 능력을 하나님께서 어떤 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으로 무장하게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부어지셔야 한다. 다시 말해, 세례자요한의 물세례처럼 성령이 순간적으로 그 사람을 사로잡아 거기에 푹 잠기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는 것이라 말한아.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한 마디로 단어로 줄인다면, 그것은 "성령세례를 받는다"로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이 믿는 이들의 위에 부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성령의 능력은 외적인 부어지심을 가리키는 것인지 사람의 속에 있는 성령 곧 내주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성령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이 내려오실 때에 선물로 주시는 어떤 것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4. 성령세례로 능력을 받은 자가 사용했던 능력전도의 3가지 유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 그들이 사용했던 능력전도의 3가지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사도행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들은 3가지 방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여줌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것은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은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불가능한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등의 기적을 행함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 문앞에서는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였고(행3:1~10), 중풍병으로 시달리고 있던 애니아를 일으켜 세웠으며(행9:32~35), 죽어 다락방에 뉘여있는 다비다를 살려준 것이다(행9:36~43). 그리고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못걷는 자를 걷게 하였으며(행14:8~10), 멜리데 섬에서는 바울자신이 독사에 물렸지만 아무런 해가 없었고 뿐만 아니라 죽지 않은 것을 본 섬 주민들은 그를 ‘신’이라고 말했다(행28:1~10). 또한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를 보니,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었으며, 많은 중풍병자와 못걷는 사람도 낫게 하였다(행8:7). 빌립집사도 능력으로 전도한 것이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빌립이 행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 남녀가 세례를 받아 구원얻게 된다.

  둘째,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경험한 초자연적인 역사를 들려줌으로 복음을 전했다즉 자신이 어떻게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치유가 일어났고, 어떻게 되어서 귀신이 나갔는지를 들려주는 것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베드로는 방언을 듣고 찾아온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어떻게 되어서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을 뿐인데 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방인이었던 고넬료가정에 가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그들이 말씀듣는 중에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방언찬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셋째,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았지만, 순수한 복음자체를 들려줌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다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일을 해놓으셔서 그들이 복음만 듣고 초청만 해도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경우다. 예를 들어, 바울이 빌립보성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적을 행하거나 귀신을 쫓아내지도 않았다. 다만 강가에 가서 기도하고 있던 옷감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그녀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에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그리스도가 해 받고 3일만에 살았다는 사실을 전했을 뿐인데 그들 중에 경건한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복음을 듣고 변화될 준비를 시켜놓았기 때문이다.

 

5.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한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하늘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은 없다. 주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온 70명의 전도인들에게 그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했다(눅10:20). 전도하면 그러한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 그들이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고 했다. 하늘에 가면 성도들이 살 집이 있고 그들이 누릴 영광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행한 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들이다. 어떤 이는 해와같은 영광을 누릴 자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을 누릴 자도 있을 것이다(고전15:40~41).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에게는 하늘에 영원노록 빛나는 영광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단12:3). 성령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세례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6. 나오며

  그동안 여러 시대를 거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것인지를 찾고 또한 방법들을 고안해내었고 실천해왔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옷입혀지지 않은 채, 복음을 증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성령의 능력을 옷입지 않았는데도 복음전파의 열매를 얻었다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경우는 하나님께서 이미 작업해 놓은 것을 따오는 수준이었던 것이지, 본인이 그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전도해온 것은 아니다. 어찌 사탄마귀가 자기에게 속한 영혼을 호락호락 내어주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부탁하신 복음전파방법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현장전도가 어려운 지금,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지금 기도하고 지금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며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할 때가 올 것이다.

 

2020년 06월 1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21) 첫번째 성령세례사건은 어떠했는가?(행2:1~4)_2020-06-12(금)

https://youtu.be/hyafAAFHo0g [혹은 https://tv.naver.com/v/14249339 ]

 

 

1.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인가 성령세례 사건인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50일째되는 날이었던 오순절날(A.D.30년 3월 5일경)에 성령께서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인가요 아니면 성령세례 사건인가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사건은 성령의 내주 사건이면서 동시에 성령세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성령의 내주 사건이자 성령세례 사건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행2:1~4의 말씀만으로는 경륜적인 성령이 120명의 성도들 속에 오셨다는 말도 나오지 않고, 성령이 그들 위에 부어지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베드로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보고하는 장면을 보면, 그 사건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건이자 성령의 성물이 주어지는 성령세례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고넬료가정)에게 임하시기를(내려오시기를) 처음에 우리에게 하신 것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으니(행11:15~17a)" 고로 그때에 경륜적인 성령께서 보혜사로서 120명 성도들의 영 속에 들어오신 것이 맞습니다. 다시 말해 그때에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성령세례를 동반한 성령의 내주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때로부터 열흘 전에 "내게서 들었던 바, 아버지의 약속을 계속해서 기다리라.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은 물을 세례를 주었지만, 그런데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언급하셨던 "내게서 들었던 바 아버지의 약속"이란 첫째, 성령의 내주에 대한 약속이자(겔36:26~27,렘31:31~33,요14:16~17,26,15:26,16:7~8), 동시에 둘째, 성령의 부어지심 곧 성령세례에 대한 얄속이기 때문입니다(욜2:28~29, 행2:17~18). 무엇보다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의 소식을 알고서 몰려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선포했던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 일은 요엘선지자의 예언의 성취 곧 모든 사람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사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증할 수가 있습니다(행2:16~21).

 

3.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성령의 내주"란 믿고 회개하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시어 영생을 주시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성령세례"는 요엘선지자의 예언처럼 성령께서 그들 모두에게 부어지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믿는 사람 위에 부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2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믿을 때에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하나는 믿은 후에 즉 성령의 내주를 이미 경험한 자들에게 별도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강림사건은 성령의 내주와 동시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서, 성령께서 순간적으로 그 사람들을 사로잡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그들이 방언을 말하게 된 사건을 가리킵니다. 

 

4.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성령의 내주"는 요한복음 3장예서 예수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순절날에는 성령께서 그렇게 은밀하게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날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들어가실 때에는 은밀하게 진행된 사건이겠지만, 주께서는 그 사건을 통하여 그들을 담대한 복음전파의 도구로 삼기 위해 선물로서 표적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령께서 그들 속에 오셨고 또한 그들 위에 세례로 부어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금 그들 모두가 "방언"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120명의 성도들은 자기들 속에 성령이 오셨으며 동시에 자기들 위에 성령이 부어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첫번째 성령세례 사건에서 선물이자 표적으로서 나타난 "방언"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나요?

  모든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에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고전12:28).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성령세례의 표적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을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글로싸)를 말하며...(막16:16~17)"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순절날에 성령께서 오실 때에 동시에 성령세례가 부어지면서,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그 영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4).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성령세례가 부어질 때에 따라오는 표적으로서 "방언(글로싸)"을 이번 개역성경에서 그만 "언어들"이라는 말로 고쳐놓았다는 점입니다. 즉 이때 했던 방언과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로서 말하고 있는 "방언(글로싸)"이 다 동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글성경에서는 행2:4의 말씀 곧 "다른 방언들"이라는 말씀을 그만 "다른 언어들"이라는 단어로 수정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방언들"이라고 놔두었으면 더 일관성이 있었을테고, 그때 했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을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추후 은사편 가서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2020년 06월 1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20) 성령세례란 무엇인가?(행1:4~8)_2020-06-11(목)

https://youtu.be/W0D8NeQxbQA [혹은 https://tv.naver.com/v/14234494 ]

 

 

  

1. 성령세례란 무엇을 가리키나요?

  "성령세례"란 한 마디로 "성령으로(혹은 성령 안에서) 세례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라는 뜻의 주안점은 "세례"라는 말에 있습니다. 고로 "세례"라는 의미가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견주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행1:5). 고로 우리가 성령세례의 확실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물세례"의 의미부터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물세례를 최초로 베푼 사람은 사실 세례자요한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게 하기 위해 물로(물 안에서) 세례를 베풀었지만,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인 예수께서는 "성령과 불로"(성령 안에서 그리고 불 안에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마3:10~12). 그러므로 성령세례에 올바른 의미를 찾으려면, 물세례와 불세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물세례와 불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시만, 예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마3:11). 여기서 "불"이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곧 죄를 용서받지 못한 불신자)를 태우거나, 알곡이 되지 못한 쭉정이를 태우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에서 "불"이라는 것은 태워버려 삼켜버리게 하는 도구를 가리킵니다. 마찬가지로, "물"은 사람을 잠기게 함으로서 물로 사람을 삼켜버리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나 불세례는 둘 다 똑같이, 무엇인가를 사로잡아 삼켜버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동시에 물세례나 불세례는 죄를 씻거나 태워버리는 도구로서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세례가 사람의 죄를 씻어내는 세례 혹은 사람을 물로 잠그는 세례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성령세례도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인하여 사람의 죄를 씻어내는 세례의 일종이면서 동시에 성령에게 사람의 영혼이 사로잡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언급하신 성령세례는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약속은 어떤 약속인가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임할 성령세례가 곧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셨습니다(행1:4, 눅22:49).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관하여 어떤 약속을 해 주셨던 것인가요? 이것을 위해 구약성경에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성령에 대해 2가지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첫째로, 장차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며, 둘째로, 사람들 속(안)으로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든 사람에게 다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요엘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약속입니다. 

욜2:28-3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그러므로 이 약속은 몇몇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역사하셨던 구약의 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이 부어질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심지어 성령께서는 어떤 신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 "속에(안으로)"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한 약속입니다.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하면, 돌비과 두루마리(책)로 쓰여진 율법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을 자꾸 깨뜨리니, 장차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되면 하나님의 새로운 영(경륜의 영,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을 사람 속에 집어넣어두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성령에 관한 아버지의 약속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요?

  고로 성령(오순절이후 오실 경륜의 영)에 관한 아버지의 약속은 2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내주에 관한 약속입니다(겔36:26~27, 렘31:31~33, 요14:1~17). 하나님께서 언젠가 성령을 사람의 위에나 옆에 있지 않게 않고, 사람들 속에(안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지는 성령으로서, 성령에 의한 세례를 약속하신 것입니다(요일2:28~29). 이는 신분이나 성별이나 나이에 차별없이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A.D.30년 오순절날에 마가다락방에 경륜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오신 성령은 사람 속에 내주하시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부어지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사람들은 거듭 태어나게 되고, 부어지는 성령에 의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이제 성령세례를 다시 정의해보십시오. 

  이제 성령세례를 다시 정의해본다면, 성령세례란 이미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예언들에 대한 성취로서, 성령의 내주와 더불어 성령께서 믿는 이들 위에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물세례를 받을 때에 어떤 경우에는 물이 부어지듯, 사람 위에 성령께서 부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 사람은 대부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며, 동시에 다른 여러가지 은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의미의 성령세례 곧 물세례의 의미처럼 옛사람이 죽고(물에 잠길 때) (물에서 올라올 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성령세례(고전12:13)도 있음을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2020년 06월 11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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