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5)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1:12~14)_2022-06-10(금)

https://youtu.be/mNHtNldt3ic  [혹은 https://tv.naver.com/v/27276963 ]

 

1. A.D.30년 5월 18일경 120명의 성도들은 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약 40일이 되던 날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로 알려진 다락방으로 모였다. 그럼, 그들은 왜 모였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을 받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너희가 들었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왜냐하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행1:4~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성령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곳은 감람산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으로서 안식일에 걸어가기에 알맞은 거리였다. 

 

2. 그곳에는 누구누구가 모여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는 누구누구가 모였는가? 그들은 '열한 사도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그렇다. 이때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었다(행1:11). 그중의 핵심은 열 한 사도들이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이름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름이 첫번째로 기록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자였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눅8:3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님을 도운 여인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일곱 귀신 들려 나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수사의 아내였던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베대의 아내였던 살로메(요한과 야고보의 모친)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막15:40).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름은 분명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동생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시몬, 유다 등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여동생들도 있었으므로, 아무도 여자들 중에 예수님의 여동생들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마13:55). 누가는 그때 모인 무리들의 숫자를 기록해 놓았으니, 그들은 약 120명 정도되었다고 했다(행1:15).
 

3. 이들이 모여서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120명의 성도들이 과연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성령받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합심기도였고 그들은 그것에 몰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행1;14).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 "마음을 같이 하여(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그리고 "기도에 오로지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행1:14).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때 상황이 보다 더 정확히 나온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마음을 같이하여(한 마음으로) 기도에 물두하고 있으면서 있어 왔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있어왔다"는 말은 직설법 미완료구문으로서 그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해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오로지 힘썼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동사는 '프로스카테레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어떠한 상태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 굳게 충성하다. 끈질기게 성실하게 임하다. 몰두하다. 전념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120명의 성도들이, 그때에 오직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합심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에 몰두하여 성령을 간구하면 모두다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4.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건이 총 다섯 번에 걸쳐 나온다. 네 번은 단체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요, 한 번은 개인적으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다. 그것도 한 번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고넬료가정에서,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일어났다. 이것들 중에서 단체적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으로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부어진 것으로 시작된다. 120명의 성도들이 에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서 모여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이 부어졌다(행2:1~4). 이것이 예루살렘 성령세례 사건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는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졌다고 언급되어 있다(행8:14~17). 그리고 고넬료 가정은 개종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그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직접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이었다(행10:44~46). 그리고 마지막은 에베소 성령강림 사건인데, 이때는 사도 바울이 내려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난 것이다(행19:1~6).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 단체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들이다.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성령이 부어진 사건도 나오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금식하고 있던 사울(나중에 바울)에게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이다(행9:17~19).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 사건은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자의 사건마다 성령세례를 받았던 조건은 동일했을까? 아니다. 성령세례가 임한 조건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가 다 예수님께서 누군지를 알고 믿었던 자들에게 부어졌다는 것이며, 성령세례가 부어지게 되면 밖으로 나타난 성령의 선물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섯 번의 경우는 대체 성령세례의 조건이 어떠했던 것일까?

  첫째는 예루살렘 성령강림사건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에 일어났다(행1:14). 둘째는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사마리아의 경우가 있고(행8:14~17) 에베소의 경우가 있다(행19:1~6). 그리고 사울에게는 다메섹의 경건한 기독교 자도자로 추정되는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일어났다(행9:17~19). 그리고 셋째로, 고넬료 가정의 경우는 베드로가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 성령세례가 부어진 경우이다(행10:44~46). 고로 종합해보면, 성령강림이나 성령세례 사건들은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권위있는 사도들이 가서 안수할 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표현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는가?

  오늘 우리는 성령세례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 120명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때 성령세례는 오로지 모인 무리가 예외없이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에 전념할 때에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성령을 달라고 기도에 전념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물론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정확히 이 사건을 살펴보면,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기도', 특히 '합심기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겠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로지 기도에 전념할 때에 성령세례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열심히 기도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를 정확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와 우상숭배에 찌들어 살아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토박이 유대인들이 받는 성령세례와 오늘날 대학민국 사람같은 이방인들이 받는 성령세례는 그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편일률적으로 기도만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잠시 내려놓고 그때 당시로 돌아가봐야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사람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회개"라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눅24:47~49, 행2:38, 8:17~24). 이 부분을 간과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관계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6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4) 복음전파를 위한 성령 세례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행1:4~5)_2022-06-09(목)

https://youtu.be/GlZY0S3eg0g  [혹은 https://tv.naver.com/v/27276790 ]

 

1.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실 시각이 이르자 제자들에게 분부하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원문: '아버지의 약속')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다음 구절만(행1:5) 보면 성령 세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1장과 연결되어 있는 누가복음 24장의 말씀을 보면, 그것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눅24:47~49). 왜냐하면 그분을 예수께서 파송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9).

눅24:47~49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의 말씀(행1:5)의 말씀을 통해서도 위와 같은 사실은 확인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말을 인용하면서 성령 세례가 곧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행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2. '아버지의 약속'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령에 관한 약속인가?

  구약 시대에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활동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선지자 곧 에스겔과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 보내실 성령에 대해 2가지를 계시해 주셨다. 하나는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관한 약속이고(겔36:24~28), 또 하나는 모든 육체 위에 부어주시는 성령에 관한 약속이다(욜2:28~32).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성령에 관한 약속은 어떤 예언에 대한 성취인가? 그것은 사도행전의 기록들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둘 다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최초의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데, 그때에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그들 위에 부어지셨으며 동시에 그들의 속에도 내주하셨기 때문이다. 그들 위에 부어졌다는 것은 120명의 성도들 위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각적으로는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게 되신다는 것은 120명의 성도들이 말했던 '방언'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거듭난 성도의 영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실 때에 나타나는 반응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죽어 있던 사람의 영이 살아남으로 인하여(죽어 있던 영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됨으로) 영이 말을 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사람의 바깥에서는 부어지는 성령으로, 사람의 안에서는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아버지의 약속은 내주하시는 성령과 부어지시는 성령 모두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베드로는 부어지는 성령을 어떻게 받았다고 언급하였는가?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2가지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약속이 동시에 성취된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이러한 성령을 어떻게 경험하였을까? 그것은 베드로의 설교와 고백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들 중의 대표는 사도 베드로였다. 오순절날 오전 9시경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내려오셨다. 그러자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당시 오순절을 지키러 예루살렘 와 있던 헬라파 유대인들을 흥분시켰다. 왜냐하면 그들은 120명의 갈릴리 촌 사람들이 유창하게 15개국의 각국 나라 방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지셨다는 증거가 '방언'으로 나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해 베드로가 일어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였는데, 베드로는 이러한 현상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의 육체 위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행2:17~18). 다시 말해 당시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안겨 주신 것이다. 마가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을 사로잡으신 성령께서 방언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외적인 충만함과 동시에 내적인 충만함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성령이 부어지실 때에 내적으로도 성령이 충만케 됨으로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부어지는 성령 세례를 받을 때에 반드시 어떤 표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일 처음 성령 강림 사건에서는 그것이 곧 '방언으로 말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고넬 가정에서도 역시 방언 말함과 더불어 방언 찬양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부어지는 성령 세례였는데 그때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한 현상을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어떤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고 갓 세례받았던 전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자신도 안수하여 성령받게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베드로에게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행8:18~20).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성령이 부어지는 사건이 또 한 번 나오는데, 그때에도 역시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예언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행19:6).

 

4. 성령 세례가 외적으로 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베드로 사도는 성령이 외적으로 부어질 때에 성령께서 어떤 선물을 주신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선물'이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계시적인 신앙 고백 직후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들을 받았었다(마16:19). 그래서 그는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사용하였다. 오순절날 자기 나라 방언소리를 듣고 달려온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죄를 회개하였고, 무려 3,000명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두 번째로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서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고넬료 집안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때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자들에게 그대로 성령이 부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주어졌는데, 고넬료 집 모든 자들에게서 방언의 은사와 방언 찬양의 은사가 나타났다(행11:44~46). 그리고 그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할 때에 그는 이렇게 말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했다(행11:17). 결국 방언과 방언 찬양은 성령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로 외적으로 성령세례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성령께서 안에도 내주하시면서 그 사람의 영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심으로 인하여 방언을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넬료 가정에서는 방언과 방언 찬양이 나타났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는 방언과 예언이 나타났다(행19:6). 

 

5.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 세례를 받게 된다면 누구든지 외적인 어떤 표시가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가?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되는 장면이 무려 4번에 걸쳐서 나온다. 그렇게 해서 생겨났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고넬료 가정 교회 그리고 사마리아 교회와 에베소 교회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들 중에서 거의 다 방언을 말했다는 것이다(사마리아 교에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방언은 외적으로 성령 세례가 부어질 때, 내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인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 의하면, 모두가 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아닐 수도 있다(고전12:30). 그러나 성령 세례가 부어지면 성령으로부터 어떤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다. 초기 교회 가운데 나타났던 '방언'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고전12:8~10).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는가? 그것은 그렇게 해서 부어지는 성령 세례를 받게 되면 담대함이 생겨서 복음을 힘있게 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 세례를 통한 어떤 신비적인 경험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감사함으로 받게 해 주는 놀라운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는 분들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눅24장의 예수님의 당부처럼(눅24:47~49), 먼저 회개를 한 다음에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나중에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과 성령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일평생 고통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성령 세례가 복음 전파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전에 회개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면 일평생 자신의 선택한 것에 대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022년 06월 09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3)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인가?(행1:1~11)_2022-06-08(수)

https://youtu.be/ce9WRLk_Ags  [혹은 https://tv.naver.com/v/27276286 ]

 

1.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인지 사도행전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가?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는 분명하다. 그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다. 이것은 성경 외의 증거들이 정확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가 없다. 즉 교회의 역사가들의 증언과 초기 교부들의 기록들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 기록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런데 쉽지는 않다. 우선 사도행전 내에서 우리는 그가 바울 선교팀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도 2차 선교 여행 때에 바울팀에 합류한 사람으로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2차 전도 여행 때에 처음으로 자신을 '우리'라는 말로 표현했기 때문이다(행16:10). 그럼, 2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과 함께 했던 자들은 누구인가? 출발은 바울과 실라가 함께 하였다(행15:40).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합류하였다(행16:1~5).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말한다(행16:10). 그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구인가? 바울? 실라? 디모데? 그런데 이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라고 말하던 이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우리'에서 제외시킬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행16:17, 17:14, 17:16). 그렇다면 2차 전도 여행 때에 합류하여 계속해서 3차와 로마 여행까지 함께 했던 바울의 선교 동역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울 서신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는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는 바울이 A.D.67~68년경 순교할 때까지 함께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사랑받는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이다(골4:14, 몬1:24, 딤후4:11). 

 

2.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하여 쓴 것인가?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해 썼는지를 처음부터 밝힌다. 그는 '데오빌로'이다. '데오빌로'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에게 누가가 복음서를 써서 드렸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써서 드린 것이다(눅1:1~4, 행1:1~2). 그에게 누가가 '각하'라는 존칭어를 사용했을 뿐더러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바가 있는데, 그로 하여금 더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것이다(눅1:4). 아마도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위직이었지만 초신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데오빌로'라는 말은 '데오스'(하나님)와 '필레오'(사랑하다)가 합쳐진 단어이며, 그 뜻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기에, 그가 비록 로마의 관리였지만 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애칭으로 그렇게 불렸을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승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클레멘스'였다는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의사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 주기 위하여 또 하나의 복음서를 썼으며, 사도행전을 써서 사도들의 행적으로 정확하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면 '누가복음'을 읽어 보는 것이 좋으며, 사도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면 '사도행전'을 읽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3.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행하신 마지막 유언이자 명령은 대체 무엇인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유언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것으로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행1:4~5). 그리고 둘째는 성령을 받은 후에는 능력을 받으라는 것이었다(행1:8). 왜냐하면 그래야 사도들도 복음의 전파자요 주님의 증언자들이 되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오늘 본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으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행1:5). 그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성령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세례인 것을 뜻한다. 그럼,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성령 세례에 관하여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 그것은 총 2가지였다. 

  첫째, 주님께서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되면, 같은 종류의 질적으로 새로운 여호와의 영을 그들의 영 속에 집어넣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겔36:26~27).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누구든지 성령받은 자는 곧바로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서 걸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B.C.586년경의 약속으로서, 성령의 내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고 회개케 하는 일을 하신다. 

  둘째,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그들의 육신 위에 여호와의 영을 쏟아 부어주실 것인데, 그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부어주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했다(욜2:28~32). 그러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B.C.800년경의 약속으로서, 성령의 외적인 부어주심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 머리 위에 쏟아부어지는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문제는 지금 우리들에게 있다. 초기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먼저 믿고 회개하여서 성령 세례를 받았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구하여서 능력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들은 과연 이와 같이 성령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능력'을 받는다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리킨다(눅9:1~2). 고로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고 이어서 임하는 성령을 받아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성적인 머리(혼적인 생각)만으로 복음을 전해 왔고,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사람들을 속여온 것이다.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에 비로소 우리도 구원을 얻게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데도, 성령, 능력, 귀신, 영적인 세력 등은 뒷전에 두고 오직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죽어서는 천국가며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쳐 왔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 성령은 떠나가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며, 그런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자라도 계급이 똑같지 않아서, 그중에 어떤 이는 왕 노릇하는 자가 있지만, 반대로 천국에서 섬기며 사는 성도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알려면 영안이 열려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오직 혼적인 가르침으로 복음을 전했으니 이것들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나도 성령의 세례를 받고 그러고 나서는 기도하여 능력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며, 악한 영들을 제압하는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2년 06월 08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성령은 누구신가(25) 성령세례로 주어지는 능력 하나님의 선물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막16:15~18)_2020-06-18(목)

https://youtu.be/7GqMgLBv3NE [혹은 https://tv.naver.com/v/14363450  ]

 

1. 예수께서는 부활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엇을 당부했나요?(마28:18~20,막16:16~18,행1:8)

  예수께서는 부활후 승천하시기 전에 가서 모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제자삼아 세례주고 예수님께서 명령했던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너희들 위로 내려옴으로써 위로부터 능력을 받은 후에"라는 조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되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할 때에 바울은 어떻게 전했다고 했나요?(고전2:4~5)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에 "설득력있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성령의 나타남(은사)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말했습니다(고전2:4~5). 이는 바울이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복음전파하기 전에 받아야 할 성령의 능력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성경에 보면,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위로부터 받아야할 "성령의 능력(뒤나미스)(행1:8,눅24:49)"을 말할 때에,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선물"(행8:20,11:17)이라고 하고, 사도바울은 "성령의 나타남(고전12:7)" 혹은 "성령의 은사(고전12:8~10,31)"라고도 했으며, 마가복음에는 "표적(세메이온)"이라고도 말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능력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사도행전에 보면, 총4~5차례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능력들이 나타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때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했는가를 살펴보면, 복음만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초자연적인 어떤 능력들이 나타남으로 따르는 표적을 가지고서 말씀을 확실히 증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방언을 말했다. 예루살렘교회(행2:4), 고넬료가성(행10:46), 에베소교회(행19:6).

  둘째, 방언찬양을 했다. 고넬료가정(행10:46).

  셋째, 예언했다 혹은 예언할 것이다. 에베소교회(행19:6), 예루살렘교회(행2:17).

  넷째, 환상을 볼 것이다. 예루살렘교회(행2:17).

  다섯째, 꿈을 꿀 것이다. 예루살렘교회(행2:17).

  여섯째, 병고침(치유)을 받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미문의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침(행3:6). 사마리아교회의 빌립집사는 중풍병자와 못걷는 자를 고침(행8:7). 베드로가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침(행9:33),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것을 고침(행14:8) 그리고 멜디데섬의 보블리오추장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고침(행28:8).

  일곱째, 귀신을 쫓아냈다. 사마리아교회의 빌립집사(행8:7). 사도바울이 빌립보지역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행16:18).

  여덟째, 능력(기적)을 행했다. 베드로는 죽은 자 다비다를 살려냈고(행9:40), 바울도 드로아의 유두고 청년이 죽은 것을 살려냄(행20:11~12). 그리고 베드로가 옥에 갇혔으나 예루살렘성도들이 합심기도하여, 천사가 나타나 쇠사슬을 풀어주고 파숫군들의 눈을 감기웠고, 문들이 저절로 열리게 했음(행12:7~15).

  아홉째, 뱀(독사)에 물렸으나 아무 해를 입지 않았다(행20:5). 대표적인 것으로는 바울이 멜리데엄에서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고 살게 됨(행20:5).

 

5.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은 마가복음 16:17~18과 비해 보십시오.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능력들 곧 9가지 이상의 "성령의 능력들(은사들, 표적들)"은 사실을 알고 보면, 마가복음 16:17~18에 나오는 예수께서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나타나게 될 표적들과 일치합니다. 이때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게 될 표적들이 총5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냄. 둘째, 새 방언(글로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말함. 셋째, 뱀을 집어올림(사탄마귀와 귀신들을 제어함을 의미함). 넷째,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아니함. 다섯째, 병든 사람을 안수하여 치유함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이러한 표적들은 모두다 사도행전에 보니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나타났던 현상들과 같습니다.

 

2020년 06월 18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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