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1) 요한의 세례 주 예수 이름의 세례 그리고 성령세례의 차이(행19:1~7)_2022-12-14(수)

https://youtu.be/wNuEujrs1bY  [혹은 https://tv.naver.com/v/31818142 ]

 

1. 에베소교회에서는 어떤 세례가 베풀어졌는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만났던 에베소교회에서는 3가지 세례가 베풀어졌다. 먼저는 아볼로에 의해서 '요한의 세례'가 베풀어졌고, 이어서 사도 바울에 의하여, '주 예수 이름의 세례'와 '성령세례'가 베풀어졌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으며, 어떤 교단에서는 성령세례를 강조하고 있지만, 당시 에베소교회에서는 3가지 세례가 전부다 베풀어진 것이다. 

 

2. '요한의 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요한의 세례'라 함은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를 가리키는데, 세례 요한이 죽게 되자 그를 믿고 따르는 후계자들이 베풀었던 세례를 가리킨다. 특히 요한의 세례는 세례 중에서도 '회개의 세례'를 지칭하는 것으로서(행19:4, 막1:4),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자 점차적으로 요한의 세례는 교회 가운데서 사라졌다. 

 

3.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는 어떤 세례인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베풀었던 '주 예수의 이름의 세례'는 어떤 세례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는 세례를 가리키는데, 예수 믿기 전에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거나 혹은 육체 내지는 사탄 마귀가 주인이었던 자가 이제는 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자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 예수 이름의 세례'는 이전의 자기 자신 곧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 생명으로 다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받는 세례라고 할 수 있다(롬6:3~4). 고로 사람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게 되며, 새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은 뒤에 아버지와 아들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마28:18~20).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4. '성령세례'란 어떤 세례인가?

  성령세례는 사람이 주는 세례는 아니다. 성령세례는 주 예수께서 주시는 세례이기 때문이다(마3:11).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물로 세례를 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이는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데,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다(마3:11~12). 여기서 자기보다 능력이 크신 분은 주 예수님을 가리킨다. 고로 '성령세례'는 주 예수께서 베푸시는 세례를 가리킨다.

  그런데 '성령세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2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의 견해로서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세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전12:13). 다시 말해,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어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세례'와는 조금 다르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세례'는 성령이 믿는 자들 위에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에게 말씀을 듣고 있는 고넬료 가정의 사람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이는 성령께서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위에 부어지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이 방언을 말했고, 이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였다(아마도 방언으로 찬양했던 것 같다)(행10:44~46). 그러자 베드로는 자기와 함께 온 신자들에게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한다.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이들은 이미 성령을 받은 상태이고 또한 성령의 은사까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베드로는 '성령세례'라고 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예루살렘교회에 돌아가서 보고할 때에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행11:15~18). 

행11:15~18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렇다.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보고서 베드로는 이것이야말로 장차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은사)이 그들 곧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왜 주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가? 그것은 성령이 믿는 자들 위에 내려오심으로 능력을 받고 또한 은사를 받아 담대히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행1:8). 성령의 강력한 체험과 은사가 나타나야 비로소 성도도 용기를 갖고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요한의 세례, 주 예수 이름의 세례, 성령세례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구원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요한의 세례'는 한 마디로 "나는 죄인입니다"를 인정하는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요, '주 예수의 이름의 세례'는 "나는 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나는 이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아서 담대히 복음의 증인으로 살겠습니다."라고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는 2가지의 세례를 받고 있다. 하나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마28:19). 이때 성도는 물로 세례를 받으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 주 예수님만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고 섬기겠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한편 믿는 이들 중에 어떤 이는 믿을 때에 혹은 믿고 난 후에 성령세례도 받게 된다. 이것은 성령이 그에게 쇄도하여 그 사람의 위에 머물러 있음으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세례를 가리킨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주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주 예수의 이름의 세례나 성령세례를 받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것들은 일종의 의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주 예수님만이 구원자인 것을 고백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형식이 구원의 문제를 결정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은 할례를 받았으니 언약 백성이며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언약백성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성스러운 주님의 명령이므로, 이것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를 만방에 공포할 수 있게 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무시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신랑 신부가 새롭게 한 가정을 시작하려 할 때에 결혼식을 올리고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하고 살게 된다면 그들이 부부인 것은 맞지만, 기왕이면 혼인 예식을 통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부부가 된 것을 알리고 살면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14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80) 에베소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인가 성령의 세례(은사)를 받지 못한 것인가?(행19:1~7)_2022-12-13(화)

https://youtu.be/U1aIVXorgLw [혹은 https://tv.naver.com/v/31818092 ]

 

1. 에베소의 성도들은 무엇을 못 받은 것인가?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지나서 드디어 에베소에 도착한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이미 '아볼로'라는 사역자가 다녀간 뒤였다. 그런데 아볼로는 사람들에게 요한의 세례까지 전파했고 요한이 외쳤던 그리스도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한 뒤 고린도에 가고 없을 때였다(행18:25,28). 그 결과 에베소에는 아볼로로 인하여 12명쯤 되는 성도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바울이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눈에 보기에 그들에게는 뭔가 부족한 듯이 보였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믿을 때에(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행19:2). 그렇다면 에베소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세례를 받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자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할 때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신다. 그러자 그들이 방언들을 발언하게 되었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12명의 에베소의 성도들은 요한의 세례까지 받은 상태에 있었으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2.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은 성령을 받은 것인가 성령세례(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인가?

  바울이 12명의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에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성령이 그들 위에(upon) 오셨다"(행19:6). 그리고 그들이 방언들을 발언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언도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다. 바울의 안수는 성령의 은사의 전이가 일어나게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에베소 성도들이 그날 안수를 받음으로 취하게 되었던 것은 성령 그 자체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곧 은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들 위에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영안을 열어서 보면, 확실히 은사들은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의 은사들은 믿는 자들의 머리에 붙어 있기도 하고 가슴에 붙어 있기도 한다. 그리고 손과 발에 붙어 있기도 한다. 이는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몸 위에 내려와서 달라붙기 때문이다. 

 

3.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에베소 성도들은 과연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과연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개역성경만을 가지고 보면, 그들은 요한의 세례까지 받았고 더불어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아서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소개했던 분은 예수님이니 그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헬라어성경 원문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며, 요한이 소개했던 예수님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데, 다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헬라어 원문으로 잠시 말씀을 살펴보자. 

행19:3~5 또 그가 말하였다. “그런즉 여러분들은 어떤 것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말하였다. “요한의 세례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4 그런데 바울이 말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베풀었습니다). 그가 그 백성에게 말하면서, 그들이 자기 뒤에 오고 있는 분 안으로 믿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은 예수 안으로 [받는 세례]입니다.” 5 그런데 그들이 들은 후에,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렇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 곧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주 예수님도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베푼 것일까? 그것은 요한의 세례는 자신의 죄를 씻는 세례라고 한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자신의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예수님을 믿어서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의 세례였기 때문이다. 

 

4. 왜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이 오기 전에 성령의 세례(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에베소 성도들은 회개도 했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당도하기 전까지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으며, 더불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 곧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받지도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선물로서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복음을 들어도 어떠한 복음을 듣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왕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에는 제대로 된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 그리고 성령세례(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에 성령을 받는다.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2:3). 그러므로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때에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신다. 그러면 그는 그때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도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주 예수님을 고백하는 순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조금 있다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에도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령이 위에 부어져 증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언제 믿는 자들에게 은사를 주시는가? 그것은 믿을 때에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성도들과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가정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지만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성도들에게는 이것들이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에베소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에베소 성도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었고 자기 안에 성령의 내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령의 세례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믿음만 갖고 있었을 뿐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곧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준 뒤, 성령의 은사를 전이 시켜 주는 안수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은사의 하나인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35) 사마리아의 성령세례와 가짜 회심자 시몬을 위한 사도의 처방(행8:14~25)_2022-09-01(목)

https://youtu.be/bLizjW1ZaV8  [혹은 https://tv.naver.com/v/28957528 ]

 

1.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떤 관계였는가?

  '유대인들'이란 남북분열 왕국시 남유다의 2개지파(유다와 베냐민)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사마리아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10개지파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상극이었다. 왜냐하면 B.C.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때 앗수르가 혼혈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만 혼혈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긴다. 그렇지만 신앙과 혈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린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는 남유다 사람들이 그들을 좋게 보아줄 리는 없다. 왜냐하면 남유다도 역시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지만 그들은 신앙의 지조와 혈통적인 지조를 지켰으며, 포로된 지 70년만에 예루살렘에 다시 귀환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인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개 취급하듯 하였으며, 북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자신을 대하는 남유다인들을 좋아하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4장에 보면, 남유다인이었던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할 때에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것은 행로에 곤한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했을 때에,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요4:9).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상종하지(서로 교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유다의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로 왔다 갔다 할 때에는 대부분 직선 거리였던 사마리아를 버리고, 다들 요단강 동편길을 돌아서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마리아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둘 사이를 이제는 형제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 

 

2. 사마리아 교회가 사도들이 오기전까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런데 사마리아 지역에도 이렇듯 복음전파가 있었다. 그것은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거대한 핍박 때문에 흩어진 유대인들 중에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빌립[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그리고 그가 행하는 표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에서도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들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은 그곳에 파송한다. 그러자 그들이 그곳에 내려간다. 하지만 가서 보니 그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사마리아의 성도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한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아예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령 자체는 받았으나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신앙에 있어서 어떤 것이 불분명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성경의 원문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실제가 어떠한가도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성령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의 기록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16절에 나온다. 이 말씀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것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와 다르다. 헬라어 원문에는 "왜냐하면 아직 그들 중에 아무 위에도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온 채로 있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은 채 있어오고 있었다"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마리아 성도들은 그들 위에 내려오시는 성령(곧 성령의 은사)을 받지 못한 것일 뿐 성령자체를 받지 못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이 내려가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둘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형제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3.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과 성령세례는 받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마리아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빌립[집사]를 통하여 복음을 들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자신의 구주로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2절). 또한 그들은 빌립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왕국)에 관해서도 들었었다(12절). 그러므로 그들이 들었고 믿었던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언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회개하고 믿을 때에 성령이 동시에 들어온다고 말한다(행2:38, 10:44). 하지만 어떤 이는 믿고 난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성령께서 들어온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보면 둘 다의 경우가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믿을 때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사람이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가리켜 '회심'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그러므로 믿는 것과 회심은 같은 시간대에 일어날 수도 있고 다른 시간대에 일어날 수도 있다. 살펴 보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1년 안에는 다 '회심'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도들이 믿을 때에 성령세례를 다 받았을까를 질문한다면, 그들은 믿을 때에 대부분 성령자체는 받기는 했지만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렇다. 사마리아의 세례받은 성도들 중에는 아직 회심이 안 된 자들도 섞여 있었으나 대부분은 성령자체는 다 받은 것이다(고전12:3).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아직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4. 시몬은 과연 회심한 자였는가?

  그렇다면 사마리아 교회의 세례받은 성도들 가운데 아직 회심을 경험하지 않는 자는 대체 누구였는가?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마술사 '시몬'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었고 그리고 세례를 받았던 목적은 처음부터 잘못 되었었고 아주 나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도 빌립 집사처럼 귀신도 쫓아내고 중풍병자나 못 걷는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고 싶어서 그렇게 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듣고 싶어서 세례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이러한 자들에게 성령께서 들어가서 그를 거듭나게 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사마리아 성도들 중에 거듭나지 않은 성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는 믿는 이들을 안수할 때에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의 은사가 그들 위에 부어지는 것을 보고 그는 또다시 깜짝 놀란다. 그러자 그는 사도들에게 은화를 갖다 주면서 자기도 그러한 권세를 행할 수 있도록 그것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함으로 그의 실체가 드디어 드러나게 된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던 목적이 여느 사람과 달랐던 것이다. 자신이 빌립이나 사도들로부터 능력과 권세를 더 받아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5. 가짜 회심자 시몬에 대한 사도의 처방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가짜 회심자 시몬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처방은 어떠했는가? 빌립은 아직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마술사였던 시몬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정확히 보지를 못했다. 단지 시몬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였고 또한 세례를 받기를 원했기에 그에게 세례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의 눈에 그는 악한 자였다. 마음이 올바르지도 않았다(21절).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획책했기 때문이다(18~19절). 그의 속에는 악독이 가득하였고 불의의 공동결박으로 꽁꽁 묶여있었다(23절). 이는 여러 귀신들이 그를 결박으로 묶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과 원래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그는 귀신의 힘을 힘입어 자기가 능력있는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을 속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눈에는 그가 어떤 자였던 것이 보인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엄히 책망한다. 베드로는 그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회개할 것과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한다(22절). 그래서 자신의 악함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예수 믿기 전에 이방신을 열심히 섬겼거나 그러한 일에 종사한 자는 자기 속에 악한 영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상숭배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들이 다시 그를 제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고, 일평생 그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들 중에 우상숭배를 많이 행한 자는 보다 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여기서 '철저한 회개'라는 말은 자신이 우상숭배자였던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고 여러 번이고 계속해서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영은 섬길 때마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우상숭배를 행던 죄의 숫자만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는 후에 시몬이 그렇게 회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우리들 중에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보다 더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2022년 09월 0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8) 오순절 성령세례로 인해 나타난 표적은 무엇이었나?(행2:1~4)_2022-06-13(월)

https://youtu.be/KvZ2cJVxnkU  [혹은 https://tv.naver.com/v/27324716 ]

 

1. A.D.30년 5월 28일 오순절날이 되자 마가 다락방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A.D.30년 5월 28일 오전 9시경, 오순절날이 이르자 마가 다락방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그때에 3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째로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으며, 그리고 둘째로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셋째로는 거기에 모인 자들의 입에서 방언들을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행2:1~4).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들은 성령이 각 사람들 머리 위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표적들이며, 세 번째의 것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면서 나타나는 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외적인 성령세례 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령세례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때 밖에(사람의 머리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이고(눅24:49, 행1:5),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저녁에 말씀하신 것이다(요14:16,26,15:26, 16:7~10). 

 

2. 오순절날 아침에 펼쳐진 이 현상은 성령강림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 사건인가?

  오순절날 아침 9시경에 일어난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성령이 오신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인가? 얼핏 보기에는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라고만 보일 것이다. 맞다. 그날이 성령이 오신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바 성령세례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성령이 오시면 능력으로 옷입혀지게 되는 성령세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9, 행1:4~5, 8).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그리고 둘째로, 오순절날 아침에 일어난 사건은 성령세례 사건이었다고 베드로가 훗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행1:15~17). 그것은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거기에서 일어난 성령세례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면서 말한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11:15~17)" 그렇다. 베드로는 오순절 아침의 사건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건이었음을 고백했으며, 그때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했다. 

 

3. 바람과 불의 혀 같은 것의 나타남과 그리고 방언은 어떤 구약의 예언 말씀의 성취인가?

  우리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2가지 성령세례 곧 '내적인 성령세례'와 '외적인 성령세례'를 부어주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내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며(겔36:24~28),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다(욜2:28~29). 고로 오순절날 일어난 세 가지 표적은 이 두 가지 약속이 모두 다 성취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도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믿는 이들 머리 위에도 부어지심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겔36:24~28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4.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순절날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에게 부어질 때에 나타난 현상들 곧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현상은 우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율법을 직접 주려고 하실 때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일어난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도 청각적인 소리와 시각적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출19:16~19). 

출19:16~19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우레와 번개 그리고 나팔소리 및 연기와 불은 하나님께서 직접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먼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오시기 전에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청각적인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둘째로, '연기'와 '불'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실 때에는 이와같이 2가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는 청각적인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시각적인 어떤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서도 나타난 표적들 곧 청각적인 소리가 들리고, 시각적으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인 것은 하나님이 오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의 실제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사들'이 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실 때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얼마라 실제적이었는가는 오늘 본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헬라어 성경으로 행2:1~4의 말씀을 살펴보자.

행2:1~4[직역] 그리고 오순절날의 가득 채워지게 됨 안에서 그들 모두가 같은 곳 위에 함께 있어 왔다. 2 그리고 갑자기 하늘로[안에서]부터 [밖으로] 마치 운반되어지고 있는 강력한 바람 같은 어떤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앉아 있는 바 온 집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마치 불처럼 혀들이 갈라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이 그들에게 보여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각각의 한 사람씩 위에 앉았다. 4 그러자 그들 모두가 거룩한 영의 어떤 것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영이 그들에게 주고 있어온 것처럼 [계속해서] 담대하게(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도록 딴(종류의 다른) 방언들을 [계속해서] 발설하기 시작했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저 하늘 안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었고, 불의 혀들도 같이 내려와서는 사람들 위에서 갈라지더니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 보이는 모습과 들리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체적으로는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 문항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5.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 때 나타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오순절날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오순절날 모인 성도에게 일어난 성령세례에 대한 표적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시편104:3~4과 히브리서 1:7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온다. 

시104:3~4 [그분은]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들](영들)을 자기 사신[들](천사들)로 삼으시고(만드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들](수종드는 자를)를 삼으시며(만드시며)
히1: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그렇다. 성령께서는 능력 있는 천사들을 바람과 불꽃으로 삼고 그날 강림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에 하늘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려왔던 소리 같은 것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의 실체는 천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온 천사들의 분류가 '능력들'이다. 이는 사실 영계에서 볼 때 좀 더 높은 계급의 선한 천사들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엡1:21). 하늘의 천사들 중에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보좌' 등과 같은 높은 계급을 가진 천사들이 있는데(엡1:21, 3:10, 6:12, 골1:15), 이들 중에서 '능력(뒤나미스)'의 천사들이 그날 성령과 함께 온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행1:5) 곧 성령이 오시고 성령세례가 부어지면 능력을 옷입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고스란히 성취된 것이다. 

 

2022년 06월 13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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