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축사사역할 때 선조치와 후조치는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하는가?(계12:10~12)_2024-02-07(수)

https://youtu.be/sjoNBeS253k [또는 https://tv.naver.com/v/48258921]

 

1. 들어가며

   축사사역은 단순히 귀신을 몰아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마지막번째인 육의 구원을 완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누가 과연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신분을 얻고 영광을 누리느냐 하는 것은 이땅에 혼의 구원과 육의 구원 그리고 육의 구원 중에서도 귀신을 우리 몸에서 제거하는 일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던 이들이 왜 뜨뜻미지근하고 또한 그중에 어떤 이들은 불신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지만 혼의 구원과 육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다시 그를 사로잡아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귀신을 잘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귀신을 내보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강제로 귀신을 쫓아내면 오히려 귀신들이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귀신을 축사하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어떠한 선조치가 필요하며 또한 후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때면 오히려 귀신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는 귀신축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2.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잘 쫓아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도 영을 가지고 있어서 4차원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3차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의 영적인 감각은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귀신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귀신들은 4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에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다. 또한 아담의 범죄 이후 귀신들은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그 안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다만 사람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3차원적인 삶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른다. 또한 구원을 받는 문제를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귀신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처럼 여긴다. 그러므로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잘 쫓아내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다고 해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주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둘째, 귀신을 쫓아낸다고 명령해 보지만 귀신을 볼 수 없기에 귀신이 진짜로 떠나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축사할 때에는 반드시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서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귀신이 떠나가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셋째, 귀신을 쫓아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내 삶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귀신이 나를 공격해 오지는 않았을텐데 귀신을 쫓아내다 보니 그들 중의 일부가 도리어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다가 오히려 내가 더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3. 왜 축사자들 중에 반신불수가 되는 이가 있고 중풍에 걸리며 죽는 자도 생기게 되는가?

  교회를 다니다 보면 예수님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되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들 중에는 귀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오히려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떨어져 나가는 귀신들 중의 일부가 축사자의 몸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귀신들이 축사자의 몸안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안수하다 보면, 축사자들 중에 상당수가 10년이 채 못되어 반신불수가 되거나 중풍에 걸리며 몸이 굳어져서 움직이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일찍 죽기도 한다. 분명히 귀신을 축사하는 일은 주님의 뜻이요 제자들이 받은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인가? 그것은 귀신을 처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는데, 귀신을 어떻게 축사해야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잘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귀신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싶다. 

 

4.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는 축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려면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자는 반드시 귀신의 공격을 받지 않는 축사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귀신이 공격해 오지 못하는 축사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귀신을 축사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며, 귀신을 축사한 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얼마든지 축사를 할 수가 있다.

  첫째, 귀신을 축사하기 전에 해야 할 선조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내가 축사할 때 내 몸에 귀신이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 쓰는 방법을 가리킨다. 이때는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는 것이다. 특히 안수해야 할 자신의 양손에 예수님의 피를 흠뻑 바르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유월절 의식에서 가져온 것이자, 이 땅에 남겨두고 가신 예수님의 피를 활용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그렇다. 이 방법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죽음의 재앙의 천사를 보내 장자를 죽이실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보면 재앙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갔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출12:23). 그리고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실 때에, 그분의 살과 뼈는 변형시켜 가지고 가셨으나, 이 땅 위에 물과 피는 다 남겨두고 떠나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 땅에 남겨두고 가신 예수님의 피를 뿌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때는 이렇게 명령하고 선포하라. "내 몸에 예수께서 남기고 가신 보혈의 피를 바르노라. 내 몸은 보혈의 피로 적셔질지어다.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내 몸은 이제 보혈의 피로 코팅될지어다. "

  둘째, 귀신을 축사한 후에 해야 할 후조치가 필요하다. 아니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귀신의 공격은 대부분 귀신을 축사한 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귀신을 축사하고 난 후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이때에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첫째로,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피를 발라야 한다. 그래서 몸에 특히 손에 묻어 있는 귀신들이 피를 보고 떨어지게 해야 한다. "주님, 예수님의 피를 바릅니다. 사역할 때에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영들이 이 시간 다 떨어지게 하옵소서. 내 몸에 예수의 피를 바르노라. 예수님의 피를 바르노라. 이 피에 뱀의 몸이 닿으면 다 녹아내릴지어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귀신들을 불로 태워야 한다. "방금 사역할 때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영들은 다 타버려! 다 태워져! 다 태워져!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버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머리와 손과 가슴을 툭툭 쳐가면서 태운다. 셋째로, 이제는 하늘에 있는 군대천사들을 불러서 사역할 때 떨어져 있는 영들을 결박하여 음부로 보낸다. "지금 하늘에 있는 군대천사들은 만 명 이상이 내려옵니다. 그래서 방금 사역할 때 떨어진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합니다. 그리고 싹 다 음부로 끌어갑니다. 남김없이 싹 다 끌어갑니다." 그러고 나서 " 음부에 끌려간 영들은 다시는 오지 말지어다. 다시는 오지 말지어다." 군대천사를 불러 귀신들을 음부로 보낸 후에는 넷째로, 약 5~10분 정도 귀신을 대적하는 대적 방언기도를 한다. 이때 입으로 방언기도를 하지만 마음으로는 "이 악한 것들은 들어라. 너희들은 진 자들이다.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다 음부로 가라. 다 가야 해, 이곳에 다시는 오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라. 다섯째, 이제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보호할 차례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떠나갈 때 축사자가 강해서 어떻게 할 수 없으면 믿음이 약하거나 영권이 약한 가족들에게 따라 가서 해코지를 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주님,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옵소서. 주님, 나의 아들에게 예수님의 피를 듬뿍 바릅니다. 나의 딸에게 예수님의 피를 뭉쳐서 바릅니다. 귀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5. 결국 귀신 축사사역을 할 때에 귀신들으로부터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 3가지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축사사역을 할 때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3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내 몸이다. 내 육체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다시 우리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가 사역을 한 장소로서 교회다. 귀신축사 사역을 할 때에는 교회에서 하기 때문에 교회에 많은 악한 영들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들을 하늘의 군대천사를 동원하여 제거해 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것들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달라붙어 성도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을 마쳤다면 반드시 축사사역을 했던 장소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고, 군대천사를 불러와서 남은 영들을 결박하여 음부로 끌어가도록 명령해야 한다. 셋째,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 축사사역을 하다 보면 귀신들이 축사자의 영권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축사자를 따라가서 축사자의 가족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믿음과 영권이 약한 가족이 대신 해코지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자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 안전하다.

 

 

2024년 02월 07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30) 최종회] 이제 나도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려면?(고후4:16~18)_2024-02-06(화)

https://youtu.be/Hzs626pe1_0 [또는 https://tv.naver.com/v/48258919]

 

1. 들어가며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생명 분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 분배가 되어야 생명이 사람의 혼과 육에도 확장되며, 이러한 생명이 혼과 육에게까지 확장된 사람이 하늘에서 '땅의 분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는데 참여하는 자가 되려면, 과연 자신에게서 생명이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의 확장은 생명이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감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이 혼과 육에게까지 확장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이유를 찾아보고 그것을 뚫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경륜의 마지막 시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내 혼과 육의 영역에서 생명이 확장되게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온 생명이 확장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르면,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온다(요5:26, 고전15:45). 그런데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온 생명이 거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요10:10). 만약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는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거듭나게 되고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이 성장해야 하고 또한 성숙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영 속에 들어간 생명이 혼과 육체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혼을 장악하고 육체를 장악해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육체가 의의 병기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혼의 영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있는 사람은 여전히 옛 사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옛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영이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혼도 구원시키고(벧전1:9) 육까지도 구원시켜야 하는 것이다(고후4:10~11).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까지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자신의 혼과 육체다. 자신의 혼 곧 자아가 살아 있는 자는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 곧 귀신의 유혹을 결코 물리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에 생명을 받은 자가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혼과 육을 처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혼은 이미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 곧 귀신과 하나가 되어 있어 죄를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16:24, 갈2:20). 곧 혼인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혼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자신의 생각을 영에 둠으로서 영의 통제를 받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혼의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다. 그리고 육체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갈6:24), 성령의 소욕에 자신의 몸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갈5:16). 그리고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을 회개하여 내보내는 것이다(창3:14, 마12:43~45).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의 편지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에 관하여 말해 주었다. 겉 사람은 바깥쪽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고, 속 사람은 안쪽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고후4:17). 이때 '속 사람'이란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안쪽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속 사람을 제외하고 보다 더 바깥쪽에 위치해 있는 사람은 겉 사람인데, 이것은 육과 하나되어 있는 혼(자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겉 사람이란 혼과 육이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 이후로 육체와 혼은 서로 결탁하여 하나가 되어 있다. 서로 끈끈한 정이 있다. 

 

4.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사람의 구조를 보면, 사람은 크게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살전5:23, 히4:12). 사람의 육체는 사람의 바깥을 싸고 있는 것이며, 사람의 영은 사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영이 바깥으로 뚫고 나오려면 자아가 파쇄되어야 한다. 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라고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 하는 일이지 결코 육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이 살아나서 활동하게 해야 하는데, 그 영이 혼과 육체에 뒤덮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이 해방되어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수행하게 하려면 반드시 혼과 육체를 죽음에 넘겨야 한다. 단단해져 있는 자아를 파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안에 있는 영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즉 안에 있는 영은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받아 둘이 하나된 존재로서 연합된 영이 밖으로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님께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쓰임받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사람의 영에 있지 않고 혼과 육에 결합된 겉 사람의 파쇄에 달려 있는 것이다. 

 

5. 천국에서 받을 상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사실 천국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만약 이 땅에서 살면서 천국에서 받을 상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는 천국에는 혹시 들어갈 수 있을른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들어갈지라도 집도 없이 꽃밭에서 살면서 남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영이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혼의 구원과 육의 구원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천국집과 지위와 신분 그리고 이기는 자만 받게 될 면류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땀이 천국에서 어떻게 저장되고 있으며, 훗날에는 어떻게 되찾게 되는지를 잘 모른다. 놀랍게도 옛 사람이 활동하여 일한 것은 천국에서 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혼적인 삶으로 일한 것은 천국집을 지을 재료가 올라갈 때에 아예 계산되어 작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혼의 활동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음으로 상으로 변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자아를 파쇄하고 혼을 죽음에 넘겨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죽음에 넘겨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 자신의 육체마저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래서 혼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에서 받을 보상(미스도스)과 동시에 승리자가 받을 상(브라베이온)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서 자신의 머리에 쓸 면류관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024년 02월 06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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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29)] 우리가 누릴 생명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의 속성과 특징은 무엇인가?(요일1:1~2)_2024-02-05(월)

https://youtu.be/Tn7arpgEeD4 [또는 https://tv.naver.com/v/48258914]

 

1. 들어가며

  '생명'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생명이란 첫째로, 사람이 살아서 숨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하며, 둘째, 여자의 자궁 속에 자리잡아 앞으로 사람으로 태어날 존재라고 하기도 하고, 셋째, 동물과 식물의,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명 활동은 목격되지만 생명 자체를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의 예를 들자면, 어떤 씨앗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땅에 심어 봐야 한다. 움이 트고 싹이 나면 그 씨앗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씨앗에는 생명이 없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생명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생명이 갖고 있는 속성과 특징을 과연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오늘은 하나님 경륜의 분배의 첫 번째 과정으로서 생명 분배와 관련하여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성경에서는 생명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 아버지만 갖고 계시다가 아들에게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요5:26). 그렇다. 생명은 이 세상에 속한 것 곧 물질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만 존재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이 갖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하나님의 많은 속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어찌 보면 영적인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 보이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출현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우리 인간들 중에 "아들을 가지고(모시고) 있는 자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요일5:12)"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이러한 생명을 자기를 포함한 12사도들이 보았으며 심지어 만져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요일1:1~2).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나타난 하나님'이자(요1:18) 동시에 '생명의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요일1:1~2). 고로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생명의 본질에 접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까지 생명은 사실 감추어진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에게 일시적으로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맛보기를 보여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식물과 동물의 생명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식물이나 동물은 생명의 그림자이요 예표일 뿐 생명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3. 드디어 예수께서 보여 주신 생명의 속성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보여 주신 생명의 속성은 어떤 것인가?

  첫째, 이 생명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아버지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생명은 물질세계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들에게 주었고 아들이 그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둘째, 이 생명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자 영원히 살게 해 주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요3:16, 5:24).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에는 사람의 혼의 생명과 육의 생명만 가지고 태어날 뿐 영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받아야 한다. 이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에게서 받아야 한다. 고로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이 생명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영생하지 못한다. 

  셋째, 이 생명은 사망도 이겨볼 수 없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그분은 육이 죽은 것인가 영이 죽은 것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그분이 죽으신 부분은 피와 살에 해당하는 육이 죽은 것이다(히2:9,14). 다시 말해 예수님의 영과 혼과 육체 중에 육체가 그날 죽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영은 어떠한가?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어나는 사람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부터,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부터 자신의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영은 생명을 가진 영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이 생명을 해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지고 온 생명은 부활생명으로서 사망이 죽일 수 없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 생명으로 죽은 육체를 3일 만에 다시 살리어 부활하신 것이다. 사망이 생명을 이겨볼 수 없다는 진리는 어둠이 결코 빛을 이겨보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4. 생명의 특징은 무엇인가?

  생명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 그 누구도 말해 주지도 않았고 또한 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생명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통해서 그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비유를 통해서 3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 예수께서는 생명을 '물'이라고 표현하셨다(요4:14). 생명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 생명체에 물은 어떤 것인가? 물은 사실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물이 없으면 생명체는 죽기 때문이다. 또한 물은 근본적으로 목마름을 해소시켜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를 살게 해 주는 요소이자 영원한 갈증을 해결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때 비로소 영혼의 갈증이 끝나서 만족감을 얻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참된 만족과 평안,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생명을 '떡'이라고 표현하셨다(요5:35). 여기서 떡이라 함은 사람이 먹을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의 힘은 양식을 먹어야 생긴다. 그리고 떡을 먹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하셨다. 이는 자신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자신을 먹어야 힘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취하지 않는 자는 죽게 된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건강이 나빠진다. 

  셋째, 예수께서는 생명을 '빛'이라고 표현하셨다(요8:12). 빛은 모든 생명체를 살아 있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다. 특히 식물 생명체로 하여금 자라게 하여 꽃을 피워 아름답게 할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게 한다. 이처럼 생명은 모든 생명체의 성장의 동인이자, 생명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생명체를 산출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사실 생명체만이 생명을 번식시킬 수가 있다. 

 

5. 하나님의 경륜상 하나님의 생명 분배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의 경륜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 분배는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것은 그 사람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분배해 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 수도 없었고 만질 수도 없던 생명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나타내셨다. 아들은 표현된 생명으로서 그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을 사람들이 물과 양식과 빛으로 취하도록 죽음의 과정을 거쳐 생명주는 영이 되시었다. 그리고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기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자기 안에 분명하게 아버지의 생명, 영원한 생명, 사망이 죽일 수 없는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지고 아들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고, 아들은 생명주는 영이 되어서 지금도 우리 믿는 이들의 영 안에 거처를 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놀라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자기 마음속에 영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 그분이 가진 생명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며,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에 부요하게 된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롬10:12). 그러므로 우리가 약해지고 힘이 없어질 때면 이렇게 외쳐 보라.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풍성이십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완전하신 능력이십니다." 

 

 

2024년 02월 05일(월)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27)]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인가?(계12:1~12)_2024-02-02(금)

https://youtu.be/eCSSeddqzWU [또는 https://tv.naver.com/v/48258904]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인류에게 분배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다음, 영혼육의 구원을 이룬 분량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하려는 경영 계획을 세우셨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생명 분배에 앞서 인류의 구속을 먼저 실행하셨다. 그 이유는 인류의 시조 아담이 사탄의 말을 듣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경륜(플랜A: 생명분배+땅의 분배)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플랜B(구속이 포함된 경륜=구속성취+생명분배+땅의 분배)가 작동된 것이다. 만약 아담이 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과를 먼저 먹었더라면 플랜B는 작동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뱀의 말을 듣고 범죄하고 말았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이다(막10:45).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심으로 플랜B를 작동시키셔야 했던 것일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예 선악과를 두시지 않았다면 그것을 아담이 먹지도 않았을테고 그러면 굳이 플랜B를 작동하지 않아도 되셨을 텐데 말이다. 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에덴동산에 굳이 선악과를 두셨던 것인가?

 

2.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 총 3가지로 답을 해 주고 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첫째,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기려고 오셨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을 구속하시려고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막10:45).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양으로 비유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요10:10). 그런데 이 두 가지 목적은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지만 세 번째는 조금 다른 방면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는 것이다(요일3: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3가지 이유의 관점을 가지고 선악과의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셨는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자라게 하셨는지 아니면 천국에 있는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갖다가 놓으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경우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는 것이다(창2:16~17). 이 명령은 십계명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먼저 주신 계명으로서 일종의 원시계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의 유혹에 직면케 하여 죄를 짓게 만든 후,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로서 아들을 보내 주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옳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죄의 조장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다음과 같은 3가지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천사와 더불어 자유의지를 가진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딱 한 가지만 두신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이상 두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 자유의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락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에 따른 플랜(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2장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고 생명과를 따먹기를 바라셨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에게는 플랜A와 플랜B 둘 다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생명과를 먹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 취식 금지 명령을 내리심으로 인하여,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그리하여 사망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셋째,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 먼저 하늘에서 죄를 지었던 마귀로 하여금 실제로 이 땅에서 범죄하게 함으로 그를 심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죄는 이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롬5:12). 즉 죄가 한 사람 곧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죄가 이 세상 밖에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뱀의 말을 들음으로 인하여 죄가 이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죄는 이미 하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 아담까지 범죄케 한 사탄 마귀가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사탄 마귀의 범죄는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을 품어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적으로 알려 주었다. 

사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사탄이 마음속으로 품은 교만의 죄를 밝히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고, 사탄 마귀인 루시퍼가 듣고 있을 때에,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는 사탄 마귀로 하여금 아담을 넘어뜨릴 계획을 스스로 만들게 하고, 사탄의 본질인 거짓과 속임수가 밖으로 드러나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아담에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지어진 피조물인 사탄이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교만함을 심판하기 위한 덫으로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4. 사탄 마귀는 어떻게 되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는가?

  사탄 마귀(원래는 '루시엘'이었다가, 타락 직후 '루시퍼'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함)는 원래 어떤 존재로 창조된 것인가?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그가 어떤 존재로 창조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스겔 선지자가 두로 왕을 빗대어 루시퍼의 심판을 예고하는 장면 속에 고스란히 나온다. 

겔28:12~15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그렇다. 루시엘, 그는 처음에는 완전한 도장 곧 창조의 걸작품이었고, 지혜가 충만하였으며, 전체가 아름답게 창조된 최고의 피조물이었다(겔28:12). 즉 그가 비록 천사로 창조되었지만 완전함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옷은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입으시는 대제사장 옷에 있는 12가지 보석 중에 9가지 보석들과 금으로 수놓아져 있었다(겔28:13a).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소고(작은 북들)와 비파(관악기)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겔28:13b). 이름하여 찬양 담당 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을 너무나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되었고,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과 같은 보좌에 앉아서 다른 천사들의 경배를 받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인간을 꾀어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와 에덴동산의 모든 지배권을 자신이 아니라, 아담에게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거주하게 했던 공간은 과연 어디였는가? 그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동산 에덴이었다(겔28:13). 이 에덴동산이 지금 우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하늘에 있는 원형으로서의 에덴동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그가 에덴동산에 두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겔28:13). 그런데 그가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더니, 아담에게 지구와 에덴동산의 지배권을 주시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 위에 왕 노릇하는 존재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루시엘이 매우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구와 에덴동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지배권을 제일 잘난 자신에게 줄 줄 알았는데, 한낱 흙으로 지어진 아담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루시퍼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을 품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담과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 범죄케 한 것이다. 

 

5.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가?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들어오셨고 드디어 서른 살쯤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주 예수께서는 3년 반 공생애 기간의 1/3을 귀신을 쫓는 데에 사용하셨다. 그러고는 이내 귀신을 쫓는 권세와 능력을 12제자들에게도 주셨다(눅9:1~2). 그리고 그 다음에는 70명의 제자들에게도 주셨다. 그러자 그들도 역시 귀신을 쫓아내었는데 12제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던 것이다(눅10:17).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기 전에 그의 승천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막16:17~18).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주님께서 귀신을 사람의 몸에서 쫓아내는 일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고 당부하셨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의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 지어진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한 마음을 품은 루시퍼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심판하시고자 함이다(마12:28).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사탄 마귀와 싸우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사람으로 오신 아들에게 맡기신 것이요, 아들은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우리들 곧 교회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땅을 기업으로 물려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냄으로 우리의 육체에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일은 사탄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될 사람들을 위해 결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을 준비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 마귀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인 귀신들을 가두는 영원한 감옥으로 만드신 것이다(마25:41). 그렇지만 귀신들에게 속아 죄를 지은 인간이 귀신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함께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생명 분배의 마지막 단계인 것이다. 

 

 

2024년 02월 0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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