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0)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요일5:10~13)_2020-07-31(금)

https://youtu.be/bYhTwcMc3GA [혹 https://tv.naver.com/v/15056912  ]

 

 

1.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과 회개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은 것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딤전2:4),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3:9). 그렇더라도 믿음을 갖는 것과 회개하는 일은 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요 우리들에게 맡겨져있는 책임입니다. 만약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일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더러 "믿으라(행16:31)"고 명령하셨겠시며,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리고 때로는 주께서 어떤 사람을 보고서 그에게 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기도 하셨는데, 이는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사람이 갖는 믿음이 주님이 다 알아셔 주시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어서 당신이 준 믿음에 반응하는 자를 보고 그를 칭찬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또한 우리 모든 이들에게 믿음이 더 풍성해지시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에 관한 책임은 순전히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요5:39). 

 

2. 주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사랑(아가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된 용어라면, "은혜(카리스)"라는 단어는 예수님과 관련된 용어입니다(고후13:13). 왜냐하면 요1:17에 의하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 죄인들이 속량 곧 죄들의 용서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주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선물로서 은혜는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죄의 은총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다 베풀어 주시는 선물인 것이지 어느 특정한 선택된 몇몇의 사람에게만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요일2:1~2, 딤전2:6). 

 

3.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사람이 믿을 때에 2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요일1:7,9). 또 하나는 주 예수께서 이 땅에 가지고 오셨던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분배되는 것입니다(고전15:45, 롬8:1, 요일5:12). 

 

4.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할 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나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 없는 지어낸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주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데(요일1:7b),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용서된다고 말입니다(요일1:9). 그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주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지 죄용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고로, 죄를 지어놓고도 자백하지 않은 모든 죄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로 지은 죄들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즉시 자백하여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5.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는 것인가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에게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에 인하여 우리 속에 분배된다는 것입니다. 실은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생명이 분배되어 아들(독생자)이 되었듯이, 우리들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먼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후에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사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것이 먼지 일어나고, 그리고 어느날 성령께서 그 사람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분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첫째로 사람이 회개함으로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로,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번째의 일은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여 사람이 중생(다시 태어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받은 생명(영생)이 반드시 영원하게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어 영생을 소유하면 그 사람이 생명을 가졌으므로 곧바로 하늘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기는 하지만, 이미 하늘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사람 중에는 자신의 이름에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할지라고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자는 모세요(출32:32), 다윗입니다(시69:28).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사도요한입니다(계3:5). 고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2020년 07월 3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개와 천국복음(09) 믿음과 회개는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가?(눅15:11~20)_2020-07-30(목)

https://youtu.be/x4EEOPmWaIM  [혹은  https://tv.naver.com/v/15037389 ]

 

 

1. 믿음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가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어 구원받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요?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하나님께서 거저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처럼 거저 주시는 것이라다면 사람들더러 "믿으라"고 결코 명령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시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에게 보인 반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는 등의 칭찬을 하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저 주셨으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감탄하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회개도 하나님께서 회개시켜야 하는 것인가요?

  믿음과 마찬가지로 회개도 하나님께서 거저 주셔서 회개시키는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것도 믿음과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도 믿음처럼 인간편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해당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다 해 주신다거나 대신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벧후3:9), 어떤 사람은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눅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이것을 보더라도, 아버지가 둘째아들의 모가지를 비틀어 강제로 회개시키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하여야 합니다. 둘째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회개는 인간편에서 자기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인 것이지 하나님께서 강제로 행하는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물론 믿음을 갖는 것이나 회개하는 일도 사실은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 다 관여하고 계시고 있지만 말이죠.

 

3.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되, 전적으로 거저주시는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사실 "믿음"과 "회개"는 인간편에서 하는 우리들의 반응이라고 한다면, "은혜"는 하나님편에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해 주시는 것입니다. 

 

4. "은혜"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나요?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거저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인 사람에게 그냥 공짜로 선물로서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거저주시는 것인가요?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 얻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성경에서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의 축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고후13:13)"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주 예수의 은혜로(은혜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언급했습니다(행15:11). 그리고 사도요한도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것(요1:17)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이길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해설해 주고 있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저주시는 바 선물과 같은 것인데, 그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주어지는 속량 곧 죄사함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한데, 그것은 사람이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속죄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요, 또한 하나님이 거저주시지 않고는 우리가 누릴 수 없는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5. 믿음과 회개로 구원받기 위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은혜에 감사함으로 반응하는 일입니다. 우선은 하나님께 인류의 죄용서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엡2:8~9). 그리고 나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요일1:9).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회개는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될 것을 믿는 믿음 가운데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거저받았다면 우리가 할 일은 죄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회개시키신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좀 전에도 눅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회개는 집나간 둘째아들이 해야 하는 일인 것이지 아버지가 해 주는 일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둘째아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한 일은 사실상 없습니다. 아버지는 회개하여 집에 돌아오는 아들을 받아들여서 예전에 아들이 갖고 있던 권리를 회복시켜주셨을 뿐 강제로 아들을 회개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고로 할 수 있으면 예수님의 죄로 자신의 죄가 용서됨을 믿는 가운데 지은 죄들을 날마다 회개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2020년 07월 30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08) 회개의 의미는 무엇이며 후회와 차이는 무엇인가?(마27:3~5)_2020-07-29(수)

https://youtu.be/vjaFOJI8Jf8 [혹은  https://tv.naver.com/v/15019044 ]

 

 

1. 천국은 어떤 사람이 들어가나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막1:15).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분의 피로 자기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며, 그때 직접 자신이 자백함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될 때 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게 됩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생명의 성령께서 우리 영 안에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는 것도 동시에 발생합니다. 이렇듯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구약시대에 "회개"란 어떤 의미였나요?

  "회개"란 헬라어 명사로 "메타노이아"이며, "회개하다"는 동사 "메타노에오"에서 온 단어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신약의 "메타노에오"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사실 없습니다. 굳이 히브리어에서 "회개하다"는 말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는다면 그것은 "슈브"인라는 동사인데, 그 뜻은 "돌이키다. 돌아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슈브"라는 동사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우상들)을 섬기고 있던 자가 우상을 버리고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습니다(슥1:3~4, 욜2:12~13, 사55:7, 삼상7:3).  그런데  구약시대에 쓰였던 히브리어 "슈브"라는 단어는 신약시대에 헬라어로 번역하면 "에피스트레포"라는 단어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행3:19에서 베드로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메타노에오) 돌이켜(에피스트레포)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라고 설교하였는데, 그때 사용되었던 "돌이켜"라는 단어가 바로 "에피스트레포"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돌이키다. 돌아서다. 돌아가다"의 뜻을 지녔습니다. 

 

3. 신약시대에 "회개"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런데 세례요한을 시작으로 하여(마3:2), 예수님(마4:17)과 사도들(행2:38, 20:21)이 외쳤던 것은 "회개"였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에오"라는 동사인데, 이 뜻은 "뒤에 먹은 마음"이라는 것에서 유래하여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 회심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로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구약시대에 사용되었던 "슈브"라는 단어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하겠습니다. 

 

4. 회개와 후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신약의 12사도들 중에 하나였던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다가(후회하다가) 그만 자살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후회하였던 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드로도 그때에 예수님을 모른다가 세 번씩이나 부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지만, 두번째는 맹세하여 부인하였으며, 세번째는 저주하면서 맹세하며 부인하였습니다(마26:69~75). 그런데 베드로는 나중에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후회하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그것을 헬라어로 보면, "후회하다(뉘우치다)"는 단어는 "메타멜로마이"라는 단어로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뉘우치는 것까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회개하다(메타노에오)"는 단어는 후회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용서를 목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죄용서라는 결과는 낳게 하는 뉘우침을 가리킵니다. 고로 가룟유다는 자기가 자기를 죽인 죄(자살)에 대해 죄용서를 받지 못했기에 후회로 끝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베드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았기에 회개했던 자라고 정의할 수가 있습니다. 

 

5. 회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회개는 2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은 죄인이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닌 자가 회개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게 되면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자기의 죄가 사함(용서)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세례요한도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사람이었고(막1:4), 베드로도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라(행2:38)" 설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죄를 "자백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호모로게오"라는 단어인데, 이 동사는 "호모(같은, 동일한)"라는 단어와 "로고스(말, 말씀)"이라는 두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자기가 과거에 한 일을 자신의 입술로 다시 반복하여 말하는 것 곧 자신의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b)"이라고 언급하였으며, 이어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호모로게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용서)하시며(아피에미)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한 채, 입으로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피에 의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회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지금 회개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2020년 07월 2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07)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약2:20~26)_2020-07-28(화)

https://youtu.be/5ii0UAL_etQ  [혹은 https://tv.naver.com/v/14998914  ]

 

 

1. 구원의 필수조건은 무엇인가요?

  구원의 필수조건은 "믿음과 회개"입니다(막1:15).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성결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왜 행위들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인가요?

  행위들이 구원이 조건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얼마만큼 행위들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구원이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과 회개가 부족할 경우, 행함으로서 그것들의 부족한 면을 메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은 자신의 행함(자기의 의)를 드러내어 자랑하게 되고, 행함이 없는 자를 비난하거나 멸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왜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인가요?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데에 행위가 구원에 전혀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약2:14). 하지만 행위를 구원으로 조건이라고 단정하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눅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는 행위가 없었어도 그날 낙원(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우리는 행위를 무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했고(약2:26), 그러한 믿음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약2:14).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것을 언급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야고보서와 충돌되는 것이 아닌가요? 얼핏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둘은 바라보는 시점이 약간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시작으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믿음생활을 끝마칠 무렵 인생을 뒤돌아볼 때에 말하는 칭의 곧 완성단계에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기 때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믿음이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인생의 말기에 행함의 열매들이 그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사실 헛 것인 것이 분명합니다. 고로 야고보서는 마무리단계로서의 칭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말하는 기준점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처음 출발점을 가리키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믿는 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믿는 성도의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나 자신이 구원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가늠케 해주는 척도(바로비터)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위의 열매들은 자신이 지금 온전한 믿음과 회개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척도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둘째,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심판의 기준이 되므로 나로 하여금 언제나 심판을 대비하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심판받는 기준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들입니다(계20:12,22:12). 각자 자신의 행위를 따라(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각자 심판을 받는 것이지 믿음대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에게 믿음에 따르는 열매로서의 행위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 그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바로 행위들입니다. 그럼, 이러한 행위들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입니다. 구약의 의식법(절기법, 음식법, 제사법, 성결법)은 이미 예수께서 완성하심으로 폐기되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할 법으로서 천국헌법은 도덕법인 십계명뿐입니다. 십계명법은 마음과 말과 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는 행동의 법까지 마음의 법으로서 확장시키셨습니다. 즉 마음으로 미워하며 살인죄요, 마음의 간음해도 간음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을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 것이 아니라 십계명법에 따라 심판받을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마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때 영영한 불의 형벌에 들어갈 자는 왼편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말만 하고 행동에 옮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마25:41~46). 

  셋째, 마지막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행위는 만약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된다면 천국에서 상급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서 받게 될 상급은 크게 3가지인데 그것은 "살 집(저택)"(요14:1~2)과 "면류관"(딤후4:7~8)과 자기를 섬겨줄 "천사들"(히1:14)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급은 끝없는 시간 안에서 영원히 주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마치 상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자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자신도 "하나님이 위에서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빌3:12~14)"고 하였으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할 줄 안다(고전15:59)"고 분명히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상이 있을 것입니다(계22:12). 그러므로 행위들는 천국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그것이 상으로 도로받을 것들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5.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무엇과 같다고 비유하였나요?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마치 경주자로 비유했습니다(고전9:24~27, 빌3:12~14, 딤후4:7~8). 그는 성도들에게 상얻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경주자라고 했습니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나는 상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며 지극히 온전한 구원관의 고백인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부지런히 봉사하고 헌금할 필교가 있었어? 그런 것은 천국에서 받지 않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치 상을 얻는 것을 구원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달려가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은 영원무궁토록 내가 누릴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07월 2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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