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4) 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2)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1)(행9:20~22)_2020-08-04(화)

https://youtu.be/SEGyfJxPIxU  [혹은  https://tv.naver.com/v/15106834 ]

 

1.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나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게 해주는 다른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대체 어떤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그것은 2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바른 믿음과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를 구원을 받게 됩니다. 

 

2.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은 어떤 믿음이어야 하나요?

  사람이 구원얻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도 2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그 그리스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혹 누군가 예수님에 대한 이 두 가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음부의 문들도 그를 결코 이기지(우세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6:18). 지금도 지구 깊숙한 곳 음부에서는 불이 타고 있는데, 이 지상에는 저 음부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들은 지금도 죽은 영혼들을 빨아당기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죽었다면 즉시 음부는 그 영혼을 빨아당길 것입니다. 

 

3.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나요?

  예수께서는 인류구원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딤전2:6).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마20:28, 막10:45). 고로 사람이 구원얻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후 대속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곧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고 나서도 자기 죄로 죽지 아니하고 인류를 위하여 대신 죽었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3일만에 약속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분이 자신의 죄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해주는 증거물인 것입니다. 

 

4.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 가운데 첫번째로 그분이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어야 하나요?

  예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바로 그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 함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 곧 "오실 그이"를 지칭합니다. 이분은 구약시대 무려 4,000년동안 약 350가지 이상 미리 약속되어졌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자기가 그리스도이니 자기를 믿으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에 미리 350가지 이상 예언된 대로 오셔서 그 일을 이루셔야 바로 그가 그리스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렇게 오셨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혈통과 그분의 공생애(그분의 출생, 메시야로서의 삶, 그분의 죽음, 그분의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처럼 예수께서 오셨으며 또한 사셨음을 신약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 가운데 두번째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어떻게 알려졌나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은 그분은 단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만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서 태어나신 분으로서, 그분은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실 모든 생명체는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사자의 새끼는 사자의 종류이며, 독수리의 새끼는 독수리의 종류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놀라운 선언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살았던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오셔서 구원자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 그 누구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자, 대제사장은 공회를 열어 예수께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확인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옷을 찢으면서 그가 신성모독죄(참람죄)를 지었으니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했습니다(막14:61~64, 요19:7). 그처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공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사복음서에 보면, 그분이 기도하는 장면이 가끔씩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꼭 "아버지여"라고 호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칭찬하실 때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마11:25)라고 기도하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에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실 때에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해 주옵소서...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12:27~28)라고 기도하셨으며, 마가다락방에서 성만찬을 마치시고 나서는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드리셨는데, 그때에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요17:1),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께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당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요17:11), "아버지여, 당신이 내 안에 내가 당신 안에 있는 것 같이.."(요17:21),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요17:24),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당신을 알지 못하여도 나는 당신을 알았사옵고..."(요17:25),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을 때에는 "압바 아버지여, 당신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14:3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항상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칭하셨고, 더 친밀한 호칭이었던 "압바"라는 명칭도 사용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다락방에 드린 최종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3년반동안 제자들이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과 "아버지께서 그를 보낸 것"을 알고 믿게 되었다면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요17:7~8).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인류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자,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처녀인 마리아에게 보내어 그녀를 통하여 태어날 분은 "지극히 높으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려주었던 것입니다(눅1:32,35). 그럼 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늘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내일 이 시간에 나누겠습니다. 

 

2020년 08월 04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3) 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1) 예수는 바로 그 그리스도다(마16:13~20)_2020-08-03(월)

https://youtu.be/6gAHo7FR_C4 [혹은  https://tv.naver.com/v/15090249 ]

 

 

1. 구원얻는 믿음은 과연 누구에 대한 믿음인가요?

  사람이 구원얻기 위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자기자신 믿음이 있다고 말할 때, 바로 그 믿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나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의 내용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예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나요?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유월절날에 유대나라의 예루살렘 성문밖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대제사장이자 그리고 대속제물로서, 또한 하나님의 성막 자체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회개와 천국복음(12)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탄생하셔야 했습니다. 고로 성육신은 대속의 죽음을 위한 불가피한 하나님의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으신 뒤에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신 이유는 그의 죽음이 인류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증거해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이 죽고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분의 죽음이 과연 자기의 죄로 인한 죽음이었는지 아니면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죽었다가 약속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 그분은 자기 죄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죽으셨고 대속의 제사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상달된 것에 대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4. 예수께서 구원자가 되기 위한 2가지 조건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예수께서 탄생할 기쁜 소식을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전달할 때에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소테르=구원자)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그러면 예수께서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나요? 그것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분이 그리스도로 오시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둘 중의 하나라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게 된다면 그분은 결코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가 되실 수가 없습니다. 

 

5.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약속된 바로 그 그리스도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베드로는 예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물어보셨을 때에 "당신은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마16:16). 그런데 그 고백은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완전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셔야 구원자가 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예수께서 "바로 그 메 시야"라는 사실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그 그리스도니 나를 믿으라"고 했다고 해서 그분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메시야가 되시려면, 구약에 약속된 약 350가지 이상의 메시야(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을 몇가지만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그분의 혈통에 관한 예언이 들어맞아야 합니다. 그분은 "유다지파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어야 했습니다(마1:1, 롬1:2~3, 창22:18, 삼하7:14, 창49:10). 그런데 예수께서는 혈통적으로 볼 때 바로 그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마1:1~16, 눅3:23~38). 둘째, 그분의 신분에 관한 예언이 일치해야 합니다. 이때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 오셔야 하고(사9:6),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하며(창3:15), 처녀의 아들로 오셔야 합니다(사7:14). 그랬는데 딱 그렇게 되었습니다. 셋째, 그분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합니다(미5:2). 그랬는데 예수의 모친이 나사렛에서 살다가 호적령 때문에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고 그때에 예수님을 거기서 출산하게 됩니다. 넷째, 그분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맹인과 못 듣는 자, 못 걷는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되어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사29:18, 35:5~6, 26:19, 61:1~2, 마11:5). 다섯째, 그분의 죽음은 인류 위한 대속의 죽음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사53:5~6). 여섯째,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했는데(욘1:17,2:10), 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수께서는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350가지의 예언을 고스란히 성취하셨기에 오늘날 우리도 역시 그분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2020년 08월 03일(월)

정병진목사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로 구원을 받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믿고 있다면,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는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한 원칙을 제시한다. 그것은 예수믿은 후에 지은 죄들에 관하여는 반드시 자백할 때에 용서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요일1:9).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처리되었다고 믿고 있다. 진짜 그러한가? 이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이미 내 죄를 다 용서한 것인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2020-08-02(주일) 주일찬양예배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2) 영원한 속죄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히9:11~12)
https://youtu.be/6UAf16xWwKM [혹은 https://tv.naver.com/v/15090226 ]

 

 

1. 들어가며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예수께서는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날 있었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원한 속죄"라고 언급하였다(히9:12).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영원한 속죄"란 의미는 대체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인류에게 미친 효과는 대체 어떤 것인가? 단순한 한 사람의 죽음이었는가 아니면 더 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에 어떤 이들은 그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두고서, 그 사건은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해결한 일이었으니 자신은 더이상 죄의 문제로 신경 쓸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옳은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의 영원한 속죄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모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실상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자기 스스로 죄를 지을 수 있는 나이가 찼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죄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는 단순히 죄의 문제만을 해결했다고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장차 구원받은 자가 들어가게 될 천국은 죄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또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면 그 사람은 장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은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보혜사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얻게 된다. 그러면 그 순간에 저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이 된다. 그러면 그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결국 한 마디로 사람이 구원얻으려면 죄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3. 인류의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그렇다면 인류의 죄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피흘림없이 었다면 죄용서는 없다"(히9:22)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사람이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아무나 피흘려서도 되지 아니 한다. 왜냐하면 죄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값으로 죽을 몸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지은 죄값은 곧 사망인데(롬6:23), 죄인이 죽는 것은 자신의 죄값으로 죽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왜냐하면 죄없이 대속의 죽음을 죽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담의 죄의 유전을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죄없는 분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죄값을 대신할 수 있는 대속제물이시다. 

 

4. 구약시대에 속죄제사는 어떻게 드려졌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온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어떻게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레위기 16장에 속죄일제사법에 나온다. 속죄일 제사 때에는 흠없는 두 마리의 속죄제물이 드려졌다. 그때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은 그 속죄제물에 안수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넘겼다. 그리고 난 후에 한 마리의 양은 대제사장이 성막에서 죽여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또 한 마리는 안수후에 무인지경에 내다버림으로 속죄제사를 드렸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그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속죄일제사를 성취하는 것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첫째, 속죄제물로서 예수님은 합당해야 하는데 그것은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태어나셨으므로 조건에 부합한 것이었다. 둘째, 안수를 통해 온 인류의 죄를 전가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랬다. 마11;11에 보면, 여자가 낳은 자가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자였다. 사실 세례요한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었으며, 자신도 또한 제사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부름받은 선지자이기도 했다(마11:9). 그는 사실 구약의 선지자의 마지막 주자였던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은 세례요한까지였기 때문이다(마11:13).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전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분이 바로 지금 여기 계십니다. 바로 이 분이십니다." 결국 여자가 낳은 자 중에 대표자로서 그리고 제사장과 마지막 선지자로서 그는 예수님에게 인류의 죄를 전가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전가했는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 그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인류의 죄를 전가했다(마3:16). 그래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례요한의 안수로 인하여 인류의 죄를 전가받은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요1:29).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왜 그런가? 그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으로부터 인류의 죄를 전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그는 두 마리의 속죄제물로서 하나는 성전에서 피흘려 죽어야 하고 또 하나는 무인지경에서 버림받은 양으로 죽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는 이 땅에 장막을 치러 오신 분이시다(요1:14). 다시 말해 당시 그분의 육체 곧 몸이 하나님의 성막이자 성전이셨다(요2:19~21).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셨던 골고다는 당시 성문밖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때 온 백성들로부터 버림받으시고 골고다에서 죽으신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인류의 구속을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고, 인류의 죄를 한꺼번에 속량하기 위한 속죄제사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랬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속죄제물이 되심과 동시에 성막이 되셔서 성막에서 그날 돌아가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그날 스스로 자기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집례하셨다. 고로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에의 죽음은 인류의 속죄를 모든 율법과 예언의 성취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5.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한편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 2가지를 내포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분은 누구로 믿느냐 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우리는 그분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죄를 없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곧 구원자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마16:16). 그리고 둘째로 그분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것이 곧 믿음의 두번째 방면이다. 좀전에도 살펴보았지만 그분의 죽음이야말로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단순어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분과 죽음을 믿을 때에 우리의 믿음은 구원받을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은 믿지만, 예수님의 죽음이 인류의 속죄의 죽음이었을 믿지 못한다면 그러한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바로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죽음이 곧 나의 죄를 대속하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음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6. 예수님을 믿었으면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은 자가 곧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는 예수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고 있다면 그는 지금 다른 복음이자 거짓된 복음을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며, 죄를 고백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도 않고, 그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있다면 그는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없으며, 그런 자는 결국 구원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7.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것만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는가?

  그런데 오늘날에 자신은 믿는 성도라고 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과연 이것은 옳은 믿음인가? 아니다. 우선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피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와 죽음이 모든 인류가 감당해야 할 죽음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즉 자신은 오로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 중에는 자신이 예수님을 이미 믿고 있다면 어떤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기에 자신의 구원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이제는 더이상 회개생활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는 믿은 잘못된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에 이렇게 생각하는 자의 특징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어도 그러한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다. 예수께서 골로다에서 흘리신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속죄하고도 남음이 있는 충분한 효능을 가진 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과거에 믿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았닥도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그리고 죄를 짓고도 회개를 게을리하고 있다면, 이사람은 대단히 지금 살얼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은 죄들은 오직 우리가 그러한 죄를 지었다고 자백함으로써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사도요한이 분명하게 언급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느니 큰 죄들만 범하지 않으면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한편 자신이 어렸을 때에 지은 죄들 가운데 미처 고백하지 못해서 남아있는 몇몇의 죄들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지옥에 보내시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의 회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도 있다. 한 편 강도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임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분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분이 가시는 왕국에 가실 때에는 자신을 좀 기억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을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회개 때문에 그는 그날 죽기 전에 예수님과 더불어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낙원이 지금에는 이미 천국이 되었으니 그는 천국에 들어간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회개를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가 과거에 지었던 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죽었는지를 말이다. 아니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자신의 죄값에 의한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했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부터 지었던 모든 죄를 다 고백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 자신이 철저히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면 그 사람은 믿을 때에 지난 날의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다 낱낱이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어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믿기 전에 지었던 죄 특히 우상숭배의 죄는 입술로 다시 자백할 때에라야 그 죄로 인한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8. 예수의 피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것을 두고서, 예수의 피로 인하여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굳이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보면, 자신의 지은 죄를 다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에는, 첫째, 예수의 속죄의 제사가 다른 제사나 제물이 더이상 필요없는 완전한 제사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서 영원히 대제사장으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어야 한다. 그렇다. 그분의 피는 모든 죄를 다 용서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하다. 그리고 더이상 다른 피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 그분의 피로서만이 모든 인류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도 항상 살아서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심으로 우리가 자백한 죄들을 다 용서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9. 나오며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편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으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한 번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분의 영원한 속죄의 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죄는 다 용서받았다고 믿으려 한다. 이는 그 저변에 자신은 혹 죄를 지을지라도 그것에 상관없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우리가 예수믿기 전에 지었던 죄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진정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것을 믿음으로서 용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분배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난 후에 그날 바로 죽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 또 다시 죄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럼, 그때 지은 죄는 가만 두어도 되는가? 아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 과거에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 때에 지금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용서받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예수님을 믿은 이후의 죄는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죽는 그 날까지 회개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를 안 짓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좋겠다고 판단된다. 그때부터는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어떤 죄들이라도 자백하기만 하면 2천년에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다 용서될 것이다(요일1:9). 그분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8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Who's 갈렙

오늘 누군가 이 영상이나 글을 처음 접하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을 꼭 끝까지 정독하기를 강력히 권해드린다. 이 글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혼란과 논쟁을 정리하고 종식시키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끝까지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과연 완전한 것인가? 그렇게 해서 얻은 영생은 과연 영원히 잃어버리지 아니하는가? 여기 교리나 신학자의 주장 뿐 아니라 정확한 성경적인 가르침이 들어있다.

2020-07-31(금) 금요기도회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1) 믿음으로 얻은 영생,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가?(요10:27~29)
https://youtu.be/PNq82hFnLuE [혹은 https://tv.naver.com/v/15073120 ]

 

 

1. 들어가며

  사람은 믿음과 회개로 영생도 얻고 구원도 얻는다(막1:15,마4:17,요5:24). 그렇다면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것인가 아니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성경말씀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많은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면 되는가? 아니면 더 많이 배웠거나 위대한 신학자들나 설교자들의 주장을 따라가면 되는가? 아니다. 사람의 해석은 저마다 다양할 수 있고 심지어는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고, 사도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믿음으로 얻은 영생,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2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사실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크게 정리해 보면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요(요일1:7,9),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에게 분배된다는 것이다(요:24,10:28,롬8:1,고전15:45). 앞의 일은 우리의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뒤의 것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앞의 것이 성취되려면 "예수님의 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뒤의 것은 성령의 내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 믿음으로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있는가?

  어떤 이는 한 번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아 자신의 죄가 다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순간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영원히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9세기 신학자이자 설교가로서 스펄전 목사님이 그렇다.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년 6월 19일 ~ 1892년 1월 31일)목사는 영국의 침례교 목사 가운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구원론에 관하여 설교한 것을 들어보면, 그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순간에 모든 죄를 다 용서받는다는 가르침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설교의 내용을 잠깐 인용해본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단순히 믿으시고 여러분을 위하여 창에 찔리신 그 사랑의 마음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의 복스러운 손에 맡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여러분의 모든 죄는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 안에는 한 결속체가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큰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그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펄전목사의 설교는 그가 무엇을 강조하려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그분의 주장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우리의 모든 죄가 사라진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와 죄와 미래의 죄가 영원히 용서된다"는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의적인 해석이지 성경의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서 사람이 구원얻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실은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것(히9:12,10:14)은 그분의 속죄가 완전하다는 뜻인 것이지 "그분의 속죄가 곧 우리의 죄사함"이라고 하는 등식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그분의 속죄가 우리의 죄사함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분의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였으므로(딤전2:6, 요일2:2), 모든 인류가 다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그중에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속죄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사람의 죄는 어떻게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의 죄는 어떻게 용서되는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그냥 무조건 다 용서되는가? 아니다. 사실 이 세상과 우주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오직 대속의 죽음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죄를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두고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물어본다. 예수님을 믿기만하면 자동적으로 자신이 지었던 과거의 죄가 용서받고 그것을 시작으로 현재 짓고 있는 죄들이나 앞으로 미래에 짓게 될 죄들까지 다 용서가 되는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주장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결코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한 사실을 전달해준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을 때에 그분에 피에 의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가 직접 회개(자백)할 때 우리가 지었던 죄들이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요일1:9). 그러므로 자신이 지었던 죄를 자백하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자신의 죄가 자동적으로 다 용서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도들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피로만 자신의 죄를 사함받을 수 있음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죽는 그날까지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없이는 결코 죄사함이 일어나지 않으며,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결국 남아 있는 죄들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로, 사람의 죄를 용서받으라면 죄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는 속죄제물의 피만이 자신의 죄를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믿어야 하고, 자신의 죄를 철저히 자백해야 한다. 여기서 "자백(호몰로게오)"이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과거의 죄악을 고백하는 것이다. 죄를 인정하고 입으로 말해내는 것이다. 이때는 "하나님, 제가 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는 것이다. 

 

5.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람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신다(사람마다 시간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때 성령께서 또다른(같은 종류의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이때 성령은 예수님과 다른 영이 아니다. 예수께서 생명주신 영이 되셔서 성령으로써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고전15:45, 요14:16~17).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조에)를 가지고 들어오신다사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한 분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만 주어졌던 것인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또다른 자기자신인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공급되어질 때에 모든 신자는 그때에 거듭 태어나게 된다(중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동시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도 그 사람의 이름이 기록이 된다(계13:8,21:27). 

  사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생명책의 존재여부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구약시대에는 지도자로서 모세와 다윗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출3ㄷ2:32, 시69:28), 선지자로서 다니엘과 말라기도 생명책의 존재여부를 알고 있었다(단12:1,말3:16).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도 생명책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을 언급하셨고(눅10:20),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도 생명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빌4:3,계20:15).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했을 때에는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음을 경고하셨다(계3:5). 그런데 놀랍게도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 그들은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 중에 있는데, 모세와 다윗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생명책에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지만,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을 보라.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거꾸로 해석하면 어떻게 된다는 말가? 그것은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로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칭의를 얻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거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하면 결국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이나 죽는 그 순간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빌2:12).

 

6. 구원받을 때에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구원에 관해 말할 때에 특별히 신경써야 할 말씀이 있다. 그것은 요10:28의 말씀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영생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이 한글로 번역한대로 그게 사실이라면 영생을 받은 자는 결코 멸망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이 이야기가 나온다(딤후3:8, 딤전:19~20). 그리고 성도의 신앙의 여정의 예표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음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히3:12~4:1,11). 그리고 믿고도 타락한 자들이나 고의로 죄를 범하는 자들 중에는 회개가 안 되어 결국 불사름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히6:6~8, 10:26~27). 또한 사도바울은 이미 구원을 얻은 성도들을 향하여 "영생을 취하라(붙들라)"고 명령하였다(딤전6:11~12). 이는 영생을 얻은 자가 영생에 주의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사도들 및 성경기록자의 말씀이 서로 충돌되는 듯히 보인다. 하지만 헬라어성경원문을 보면, "영원히" 멸망받지 아니한다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요10:28의 말씀은 먼저, 누구에게 영생이 주어지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 "영원히"라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는가? 그 대상은 "그들"이다. 여기서 그들은 바로 앞에 나와 있는 문맥에 따르면 "주님의 양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 이는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들이 아니다. 사실 태어날 때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하여 마귀의 지배아래 놓여 있다(요8:44, 요일5:18). 그들 중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따르기로 하는 자들이 결국에 주님의 양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원히"라는 단어의 뜻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상 "영원히"라는 말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영원무궁토록" 혹은 '세세토록'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말과 "영원무궁토록, 세세토록, 세세무궁토록"이라는 말은 문구(부사구) 자체가 다르다. "영원히(영원토록)"은 "에이스 톤 아이오나"이고, "세세토록"은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온"은 "세대(age, generation)", "세상(world)"라는 뜻이다. 그러니 "에이스 톤 아이오나(for the age, till the generation, till the world)"는 "그 세대까지, 그 세상까지"라는 뜻이다. 고로, 한 번 예수님을 믿어 그가 영생을 가진 자가 되었다면 그는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영생이 취소되거나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가 조금 범죄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생명을 빼앗아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다음은 달라진다. 그가 죽을 때에 성령께서 그를 떠나가심으로 영생도 그에게서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분은 "영원토록(에이스 톤 아이오나)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원토록"이라는 문구(부사구)도 역시 "에이스 톤 아이오나"이다. 이는 믿는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기까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한편 "영원히"에 관한 히브리어는 "올람"이라는 단어인데, 이 역시 마찬가지의 뜻이다. 노아홍수 직전에 사람의 타락은 극에 달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창6:3)" 고로 만약에 이 말씀에 나오는 "영원히"라는 단어의 뜻이 실제로 "영원무궁토록, 세세토록, 세세무궁토록( forever)"라는 의미였다면, 사람 가운데 성령이 함께 할 사람은 그 뒤로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성령이 함께 한 사람이 있었고,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는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영원히"라는 문구도 마찬가지로, "그 세대까지"라고 해석해야 한다. 곧 "영원히"는 "세상끝날까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다시 오실 예수께서도 승천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시대의 끝까지 모든 날들을)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셨다. 재림시에 주님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때 그분은 심판주로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사도바울은 엡4:30에서도 성령께서 언제까지 믿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지 그 시기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구속받는 날까지라고 한정해서 말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우리의 몸이 구속받아 부활체를 입는 그날까지, 성령을 근심하게(슬퍼하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날까지만 성령의 인침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히"라는 말은 세세토록이라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영원무궁토록(forever)"의 의미로서 주님께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말씀을 하셨다면, "에이스 톤 아이오나(단수)"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복수) 톤 아이오논(복수)"이라고 말씀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뜻은 "세대들의 세대들까지(till the generations of the generations), 혹은 시대들의 시대들까지(till of the ages of the ages)"라는 의미로서, 끝없이 지속되는 기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번의 "세세토록'이라는 말은 전부 헬라어 원문으로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으로 나온다. 

 

7. 한 번 믿음으로 성도의 구원의 여정은 시작되었는데, 믿음으로 얻은 그 구원은 어떻게 해야 보존할 수 있는가?

  사실 제대로 된 믿음은 한 번 갖게 되면,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오심으로 그 순간 그 사람의 이름도 역시 하늘에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렇다면 한 번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앞부분에서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지워질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것이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 선지자들이 구약시대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바로 모세와 다윗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데교회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주신 말씀 가운데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가능성을 언급하셨다는 것이다.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를 가리킨다. 주님은 그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날린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과 회개로 일차적으로 얻은 구원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믿으면 되는 것인가? 혹은 구원에 대해서는 이미 끝난 일이니 신경쓰지 말고 그냥 지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 것인가? 성경은 말한다. 한 번 가졌던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인내함으로 잘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마24:13,계14:12). 우리는 사실 믿음을 갖는 것보다 지키는 믿음이 더 어렵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믿는 순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일평생 그 믿음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즉 과제들을 잘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내게 시험이 찾아올 때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부인하게 되면 심판으로 나아갈 때 주님도 그를 부인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는 믿음을 인내하지 못하고 부인하게 되면 그날에 그도 버림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마10:32~33). 

 

8. 구원은 결국 어떻게 해서 완성해 나가는가?

 구원은 사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시작된다. 믿고 회개하는 자는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러면 그는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선수처럼 구원의 노정의 트랙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부는 힘껏 골인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죄를 지어 쓰러질 수도 있다. 계속해서 못달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주저 앉아있으면 안 된다. 그러다가 구원에서 탈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서 다시 일어나 달려야 한다. 믿음의 고백을 다시 견고하고 붙들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십계명)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인내로서 지키는 것이다(계14:12).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용서를 받는 것이다(요일1:9). 

  사실 구원은 믿을 때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 때에 이미 우리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을 얻은 자라도 죄의 유혹을 다 뿌리치고 승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죄를 지어 회개하지 않아 죽는 날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떤 경우에는 말과 생각으로 죄를 짓을 수 있다. 그러면 즉시 회개하라. 그래서 죽는 순간에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도록 자신을 준비하라. 고로 구원에 있어서 최종적인 관문은 회개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회개없이는 구원을 완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의 위치는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그날의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광야생활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된 본성이 여전히 내 속에 들어 있고, 또한 안과 밖에 우리의 영혼을 노리는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과 성령을 주셨으며, 예수의 이름을 들려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약하여 죄를 짓는다. 그러나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의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회개"다. 회개하면 귀신도 힘을 잃어버리고 떠나간다. 회개하면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도 다 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그가 죽는 그날에 성령이 떠나가심으로 그의 구원도 상실되고 말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핍박 가운데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면 그날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다. 구원은 선물로 주신 것이나,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여전히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대신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대신 회개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는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말씀을 들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말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소망으로 얻은 구원이기에(롬8:24),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것이다(빌2:12). 

 

2020년 07월 31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