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의 어머니요 성녀였던, 마더 테레사 수녀! 그녀는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까? 그녀가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그 누구라도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행할 수없었던 수많은 일들을 그녀는 직접 연약의 여자의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 자신 봉사하면서 느꼈던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 그녀는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까? 오늘은 어떤 목사님의 간증에 나오는 그녀가 진정 천국에 있는지 아니면 지옥에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어떤 신앙이 참된 신앙이며, 간증에도 가짜가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020-10-18(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06)-천국편(05)- 테레사 수녀는 과연 천국에 있을까?(에베소서6:12)

https://youtu.be/UIYTp4WYYls [혹은  https://tv.naver.com/v/16281337 ]

 

1. 들어가며

   회개의 천국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회개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막1:15). 그렇다면 천국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 있을까? 만약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천국을 준비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사실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고 하는 분들의 간증일 것이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왔다는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가 70%정도는 성경에 없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면 과연 그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에 모습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면 누가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 진짜인 줄로 안다. 하지만 실제 천국과 지옥의 간증의 대부분은 왜곡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왜곡된 간증을 진짜로 알고 있다가는 천국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생길 수도 있으며, 잘못된 방향을 나아가면 결국 열심히 살았느나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연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 오늘 한 여인이 등장할 것이다. 그 여인을 통해 과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또한 어떤 간증이 참된 간증인지를 분별해도보록 하자. 

 

2. 테레사 수녀가 과연 천국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왔다는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다는 분도 있고 지옥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분도 있다. 그럼 과연 누가 제대로 보고 온 것일까? 둘 중의 하나는 틀린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와 지옥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천국에 있는지 혹은 지옥에 있는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그녀를 보고왔다는 분의 간증들이 정말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말인지를 분별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은 테레사 수녀가 살아생전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그녀의 내면의 모습이 담긴 기록들을 조사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과연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어떤 사람의 천국과 지옥의 간증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실 알고보면 간단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그가 간증했던 내용들 중에 성경과 불일치한 것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말하는데, 성경과 틀리게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상의 모습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에 들어간 사람의 숫자만 다를 뿐,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4.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는지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우선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가장 쉽게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간증자가 했던 간증의 신빙성을 조사해보는 것이다. 간증의 내용 중에서 혹시 성경과 불일치하는 것이 나오면 아올수록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일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에서 테레사수녀는 보았다는 어느 목사님(A목사님이라고 가정해보자)의 간증을 살펴볼 것이다. A라는 목사님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왔다는데, 그 간증 속에 하나도 틀린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테레사 수녀는 천국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테레사 수녀를 천국에서 보고왔다는 목사님의 간증을 살펴보면, 성경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A라는 목사님이 보고왔다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과 사람들에 관하여 핵심적인 몇몇 부분만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A라는 목사님이 지옥에 먼저 갔는데, 지옥에 갔더니 강양욱 목사님께서 나와서 자신에게 지옥을 구경시켜주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100% 가짜를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강양욱목사가 지옥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그가 A라는 목사님을 모시고 지옥을 구경시켜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형벌장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통받는 곳"인 것이다(눅16:28). 누구든지 그곳에 한 번 떨어지기만 하면 결코 나올 수도 없고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오직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안에서 처절히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간 사람들은 뜨거운 불과 아울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사람은 한 시동안도 쉴 틈이 없다. 그곳은 밤낮으로 고난을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계14:10~11). 그러므로 형벌을 받고 있는 강양욱목사가 A라는 목사님을 모시고 지옥을 구경시켜드릴 리가 없다. 

  둘째, A라는 목사님이 지옥이 어디 있는지를 말하는데, 지옥은 지구 곧 지구의 땅 속에 있지 아니하고 이 세상 밖에 있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가짜를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우주 밖에 있지 아니하고 땅 속 곧 지구의 맨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A라는 목사님은 이 세상 밖에 공중의 권세잡은 사탄과 악령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고, 그 너머에 천국에 있으며, 천국 바로 아래쪽에 지옥에 있더라고 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아주 가깝더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는 보았지만 아주 잘못 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지옥은 땅(지구) 속에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며(마12:40), 천국과 지옥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성경말씀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눅16:22~23).

  셋째, 이번에는 A라는 목사님이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천국으로 가는 길이 불타고 있다고 말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황금과 진주로 되어 있었으며, 문은 회전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무엇인지 보았더니, 이마와 오른손에 하나님의 인(도장)을 받은 자만 들어가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천국을 잘못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에 불타는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로 올라갔는데 불타는 곳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곳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 속 곧 땅 속이었을 것이다. 또한 천국문도 사실 없다. 이미 죽자마다 심판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어떤 문 앞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들어간 것이지 거기서 검사받고서 성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다. 또한 천국의 중앙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있으며, 그 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12개의 문들이 있다(이것을 천국문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성에 들어가는 조건은 이마와 오른손에 인을 맞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계21:27). 만약 천국문을 통과하는 조건이 이마와 오른손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쓰는 방법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요한계시록 13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인칠 때에 오직 이마에만 당신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을 영적으로 인을 치시기 때문이다(계14:1). 

  넷째, A라는 목사님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그 보좌 앞에 예수님이 앉아 있었으며 천사장인 네 생물이 주변에 둘러 있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가짜 간증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계실 수는 있으나 그분 앞에 결코 예수께서 앉아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앞에 앉으셨다고 말하는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만 말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 보좌 우편이라는 말은 그분이 세상에서 이기고 권세와 능력을 차지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실제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거나 예수님의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실제로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곧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계셨다(계3:21). 그러므로 A라는 목사님의 간증은 가짜를 보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주변의 네 생물은 천사장이 아니다. 천사장이라고 함은 자기 밑에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하는데, 네 생물은 독립적인 생명체일 뿐 자기 밑에 부하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계4:6~7).  

  이상의 사실들을 보아서도 우리는 천국에서 테레사 수녀를 보았다는 A목사님의 간증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5. 테레사 수녀가 남긴 흔적은 그녀가 현재 어디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가?

  이제는 내증을 살펴보자. 그녀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는 사실 천국과 지옥에 가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내외적인 증거들을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는 그녀를 천국에서 보았다는 목사님의 간증이 성경과 불일치한 것을 살펴보았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녀가 천국에 있을 확률이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녀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찾아보도록 하자. 그녀는 1910년에 태어났다. 그리고1997년 87세의 나이에 작고하셨다. 그런데 그녀는 참으로 너무나 숭고한 일들을 많이 하셨다. 박애정신을 실천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었기에, 사실 그녀는 신자나 불신자나 다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그녀가 갔던 길을 자기도 가겠노라고 하는 이도 참으로 많다. 그녀가 끼친 영향을 실로 대단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녀는 18살에 되었을 때에 수녀가 된다. 그리고 인도로 건너가서 거기서 20년간 교사로서 봉직하다가, 38살부터 87살까지 약 50년간 고아과 빈민자들과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불철주야 섬기는 일을 하셨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해낸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속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과연 믿음이 있었는지는 그 속에 들어가보지 못했기에 실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천주교인으로서 자기의 담당 신부에게 고해를 하고 고민을 털어놓은 글들과 이메일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그녀가 남긴 그 글들을 통하여 그녀가 어떤 마음 상태에 있었으며 결국 그녀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녀가 신부의 지시를 따라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를 기록했는데 그 기도문이 오늘 남아 있다. 거기에는 그녀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 자신이 공허와 깊은 흑암에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 때문에 고통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주님께서 자신을 만나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말씀하지도 않아, 그녀가 번민 속에서 믿음까지 잃어버렸다고까지 말한다. 한 마디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예수께서 거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6. 테레사 수녀는 왜 하나님의 부재와 공허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그렇다면 빈민가의 사람들을 돌보던 때 곧 38살부터 그녀가 잘못 알고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녀의 삶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열심히 구제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자들을 예수님처럼 섬기기를 50년동안 정성껏 다했다. 그녀는 수십년을 변함없이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녀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않았으며, 약산 자들을 섬기면서 그들을 위해 당하는 고통을 기쁨으로 알고 그들을 섬겼다. 그렇게 하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이 로마카톨릭의 구원관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녀는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가난하고 병들고 신음하는 원인을 파악하면서, 그것은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없는 부재 때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진정 사람의 고통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의 부재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김으로 온갖 귀신들의 공격을 받음으로 저주받고 질병에 시달리며, 가난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 가난하고 병든 자들로 존재는 이유는 바로 "사랑의 실천의 부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라도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주는 것이야말로 인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을 기록한 책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책에 살펴보니, 그녀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거기에는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려준다. 거기서 그녀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예수님은 채워져야 할 배고픔입니다. 그리고 목마름이요, 헐벗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집없는 자요, 치유받아야 할 병자이며 의로운 자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분이요, 나병환자이며 거지요 정신병자입니다. 그분은 작은 분이고 장님이며 벙어리요 앉은뱅이이며 약물중독자이고 매춘부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런 자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돌보라고 하셨지, 당신 자신이 매춘부와 약물중독자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받기 위해서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다음 우리 자신을 저주로 옥죄고 있는 영적 세력을 내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영적인 비밀을 전혀 몰랐다.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원인에 대해, 사랑의 부재라고 판단했을 뿐, 죄로 인하여 귀신들이 괴롭히고 있는 것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셋째, 그녀는 그렇게 많은 언론취재와 그리고 엄청난 상들을 수상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이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 가운데서 빠져나오는 근본 해결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죄는 오직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피로서만이 해결된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뿐이다. "힌두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기독교도이든, 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다르고 자신의 신에게 귀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신앙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신의 신앙의 길을 가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 그녀는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그것을 감추어버린 것이다. 혹시일지 모르지만 진짜 그것을 몰랐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허전함과 공허와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녀는 템플턴 상의 수상자로서 명예스런 인물이요, 노벨상 수상자요, 교황으로부터 가장 많은 은총을 받은 로 알려졌지만 그녀의 내면은 그렇게 외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고로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살펴보면, 그녀 속에는 예수님이 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랬다. 그녀는 예수없이 봉사했고 예수없이 구제했으며, 예수없이 병든 자들을 섬겼던 것이다. 고로 그녀의 발자취는 보편적인 인류애의 가장 숭고한 표현이라 기록되고 각인되었지만, 실제 그녀 안에는 예수님이 아니 계셨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천국에 있더라는 간증은 틀릴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천국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테레사수녀를 생각하면 왜 그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그녀가 진정 영적인 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신앙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또 생각해 본다. 그녀는 사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로마카톨릭의 교리에 따라 자선행위를 하고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듯 섬겼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하고 병든 원인이 진정 마귀에게 있고 그 전에는 인간자신의 죄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에게 정말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끝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안에 진정 으로 예수님이 살아계셨다면 그녀는 수많은 공식적인 현장에서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그녀는 끝내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드러내야 할 자리에서도 결국 예수님을 감추어버렸다. 그녀의 삶은 결코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살지 않았다. 그녀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했으며, 어떤 수상 자리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녀를 그렇게 가만 놔두지 않았다. 교황도 그녀를 믿고 지원해주었으며, 세상 사람들도 그녀를 믿고 따라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돈도 기부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수많은 종류의 상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원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영광들이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끝내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고, 특히 영혼의 억압과 저주에서 그분만이 우리 인간을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많은 고통의 세월을 겪었음에도, 늘 공허했고 또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렇게 고뇌하고 슬퍼하던 고통의 숨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듯 하다. 예수없는 봉사는 결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예수 없는 헌신은 죽는 날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본인의 뜻은 아니더라도 결국 사탄마귀에게 영광을 돌리고 만다. 우리는 살아 숨쉬는 모든 날에 빛나는 영광의 자리가 주어진다면 그곳에서 예수님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요,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

 

 

진짜 천국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 한 편의 설교는 천국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보여준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2개 있을까가 아니면 3개가 있을까?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는 누가 보좌에 앉아계시다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오늘날 천국과 지옥 간증에는 가짜를 본 것이 너무나 많이들 돌아다니고 있다. 가짜를 보고 왜곡된 천국신앙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 진짜 천국와 지옥이 어떤 곳인지가 하나도 틀리지 않게 분별해주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2020-10-16(금) 금요기도회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05) - 천국편(04) - (계5:6~14)
https://youtu.be/7N4RGR9Kqy8 [혹은 https://tv.naver.com/v/16265297 ]

 

 

 

1. 들어가며

   요즘 유튜브와 인터넷 공간에 보면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간증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간증들 중에 어떤 것은 가짜 천국과 지옥 간증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언뜻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잘못된 가짜 천국과 간증은 결국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에 대하여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줄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천국신앙에 관하여 올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하고 왜곡된 신앙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간증을 받아들이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천국와 지옥을 보고온 자들의 간증의 상당부분은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나와있지 아니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내용들이 과연 신빙성있다고 받아들일 것인가 버려야 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요번주 화요일부터 천국과 지옥 간증에 대하여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네번째 시간인데, 천국간증 구별법에 관하여 갖는 3번째 순서로서, 이것은 천국에서 하나님 혹은 예수님을 보았다는 간증이, 과연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천국과 지옥간증을 진짜와 가짜로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사실 여러 사람의 천국과 지옥의 간증들을 듣고 있노라면 고개가 갸우뚱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성경을 찾아본다. 그런데 어떤 것은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때에는 그 간증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지 말아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된다. 그런 때에 천국과 지옥 간증이 정말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이외에 간단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첫째, 간증에 나오는 모습들이 과연 성경에 기록된 것들과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모두가 일치한다면 그 간증은 진짜일 가는성이 매우 높다. 설령 성경에 나오지 않는 내용도 진짜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둘째, 간증에 나오는 내용이 성경과 불일치하는 것이 종종 있을 때에는 그 간증이 간짜일 확률이 높아진다. 사실 어떤 간증을 들어보면, 성경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오늘날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왔다는 분들과 일치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그것은 진짜가 아닐 확률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3. 천국의 길과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은 어떻게 생겼는가?

  어떤 목사님께서 천국길과 천국문을 보았다고 간증했다. 그분은 우리나라 서울에서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시고 장로교단에서 신대원장과 교수를 역임하시고 여러 신학책들까지 저술하신 목사님이시다. 그분이 천국과 지옥을 직접 보고 왔다고 책 한 권을 내신 것이다. 벌써 십년도 더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책을 들여다보았더니,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이렇게 보았다고 했다.

  첫째, 천국문에 이르기 전에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에는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옛사람을 태우고 성결케하는 성령의 불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가짜 천국을 보고온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천국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은 향단의 불 이외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은 이미 정결함을 입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인지라, 천국문에 이르러서 검사받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은 깨끗하고 거룩한 자만 들어가는 곳이기에, 성령께서 성도를 또다시 정결케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천국에서 성령께서는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는 일을 수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혜사로 보내심을 받아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분이 천국문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재료가 문은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또한 진주문으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문은 회전문처럼 한 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셋째, 그 성 안에 들어갈 때에는 자기의 이마와 오른손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더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거의가 다 잘못된 것을 본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문은 따로 없으며, 천국에 새예루살렘 성에 문이 있는데, 이 문들은 총12개로 되어있는데,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있다. 그리고 각각의 문들은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계21:12~13,21). 그리고 이 성에 들어오는 자를 그의 이마와 오른손에 하나님의 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이미 천국에 들어온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져있기 때문이다. 혹 이마와 오른손을 인을 맞은 자만 들여보내더라고 한 것은 이 간증이 사탄이 보여준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왜냐하면 계13장에 따르면, 이마와 오른손에 표시하는 것은 짐승의 표로서, 사탄이 자기의 소유가 된 임을 표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마와 오른손에 인을 쳤다는 것은 성경기록과 어긋난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좀 더 말하자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진 자들고 주님을 부인하거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지옥에 떨어질 때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자는 다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된 자들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계21:27).

 

4.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중에서 과연 누구를 볼 수 있는가?

  천국에 가서 주님을 본다면 어떤 모습의 하나님을 보는 것인가? 만약 누군가 천국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세 분으로 계신 것을 보았다면, 그는 가짜를 본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세 분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천국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는데 그 보좌 우편에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더라고 간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실은 가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보좌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다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성경을 보라.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나머지 신약성경에서는 전부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 내지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나온다. 이는 예수께서 실제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천국에 올라가신 후에 어떤 위치(상태)를 차지하셨다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든 신학자가 다 그렇게 해석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천국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은 상직적인 표현을 실제로 보고 왔다고 한 것이 되므로 그는 가짜를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예수께서 승천후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도 실제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죄와 사탄과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는 뜻이며,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셨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후에 과연 어디에 앉아계시는가? 계3:21(직역)에 보면, "이기고 있는 자에게, 나는 나의 보좌 안에 함께 앉는 것을 [장차] 그에게 줄 것이다. 마치 내가 이겼던 것처럼. 그리고 그분의 보좌 안에서 나의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것처럼"이다. 즉 예수께서는 이기시고 아버지의 보좌 즉 한 분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모습이 아니라, 보좌 오른편에 앉아계시는 것을 보고 왔다는 자는 가짜 천국을 보고 온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실제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의 아들 같은 모습인가 아니면 어린양의 모습과 같은가?

  사실 요한계시록의 기록상황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약 60년 뒤의 하늘의 광경을 사도요한이 본 것을 기록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그때 자신의 육체는 밧모섬에 있었다. 하지만 성령으로 그의 영이 빠져나가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보고 온 것이다. 그런데 사도요한 자신도 결코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보좌에 앉아계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예수님만 보았다고 했다. 천국에서는 결코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다 상징적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오직 볼 수 있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은 발에 끌리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계시며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신다(계1;13). 그러므로 아까 소개해 드렸던 신학대학원교수이자 목사님은 천국에 가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예수께서 앉아계시더라고 간증하셨는데, 그것은 가짜를 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실제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천국에서 성도들을 보았는데, 그들이 세마포옷을 입고 있었으며, 모두가 다 가슴에 어떤 띠를 두르고 있는데, 12가지 종류에 따라 금띠와 은띠와 동띠를 띠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가짜를 본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세마포 옷에 띠를 두른 존재는 예수님과 일곱대접을 가진 일곱천사들 뿐이기 때문이다(계1:13. 15:6). 천국에 있는 성도는 흰 세마포옷을 입고 있거나 몇몇만이 면류관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시는가? 한 마디로 천국에서 그분은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계신다(계1:13).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분을"인자(사람의 아들)와 같은(유사한) 이"라고 소개했다(계1:13). 그분이 비록 이 땅에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셨던 그 몸을 그대로 부활체로 바꾸어 천국으로 가셨지만, 그러므로 그분의 손과 발에는 여전히 상처의 모양을 갖고 계시지만, 천국에서 그분은 더이상 유한한 사람이 아니시다. 그분은 전능하신 이이기 때문이다(계1:8). 그리고 천국에서 그분은 보좌에만 앉아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신다(계1:12~13). 그리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들을 쥐고 계셨는데, 이 별들은 일곱교회의 사자들(메시지 전달자들=주의 종들)이라고 했다(계1:20). 그렇다. 그분은 천국에서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또한 그분은 교회를 돌보시고 계시며, 주의 종들을 권능의 오른손의 붙잡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이 비록 사람의 모양을 취하고 있으나, 위엄과 권능(권세와 능력)은 인간과 전혀 다르시다. 왜냐하면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같고 눈과 같으며, 그의 눈은 불타는 불꽃처럼 생겼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와 같고,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이 선 칼이 나오고 있고, 그분의 얼굴에서는 해가 힘있게 비취고 있기 때문이다(계1:13~16). 그래서 그분 앞에 가면 어떤 사람도 그분의 위엄과 권능으로 인하여 그만 저절로 엎드려질 수밖에 없다(계1:17). 

  그런데 어떤 분은 천국에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이며,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계신다고 말한다. 이 표현 자체는 사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천국에 가보니, 예수께서 어린양으로 모습을 하고 있더라는 것은 그가 가짜를 본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흰 세마포옷을 입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모습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4장부터 21:4까지 나오는 사도요한이 본 환상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으로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천국의 실제 상황은 요한계시록 1장~3장까지(정확하는 4장까지) 그리고 21장 5절부터 22장까지만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사도요한이 다 환상으로 본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사도요한이 보았던 어린양이 실제였다고 한다면 사도요한은 괴물같은 어린양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계5:6을 보라. 이 어린양은 7개의 뿔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7개의 눈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7개의 뿔들"은 그분의 완전한 권세를 가리키고, "7개의 눈들"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전지전능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고 다음날 거니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과 같은 표현이다. 그분을 특별히 '어린양"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분이 과거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속죄제물이자, 흠없이 점없는 순결한 분이셨던 사실을 그리고 33세에 죽임을 당하셨던 젊은 분이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것이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천국에서 실제상황이 아니라 환상으로 본 장면 속에 어린양이 등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계3~21:4에서는 단 한 번도 보좌에 앉으신 이이 말씀하시는 것이나 어린양이 말씀하시는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전부 환상의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이 말씀시는 대목은 오직 1~3장에 그리고 21~22장에만 나오는 것이다. 특별히 "보좌에 앉으신 이"는 주 하나님 곧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키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님이라고 불리셨지만, 천상에서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시는 인자같은 이로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시고, 시작과 마침이시다(계22:13).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에서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계1:8)"이라고 말씀하시고, 21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실 때에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다(계21:6)"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체현이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보았다든지 혹는 성령님을 보았다고 간증하는 것은 가짜인 것이다. 오직 우리는 나타나신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위에는 누가 앉아 있는가?

  만약 누군가 천국에 가보았더니, 하나님 보좌 위에 아버지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그분의 오른편에 예수께서 앉아 계시더라고 간증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가짜를 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에는 예수님이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계3;21, 20:11, 마25:31). 예수께서 주 하나님으로 거기에 앉아계시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표현으로 거기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에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자 "전능하신 이"는 바로 주 예수님이시다(계1:8). 우리는 환상으로 보여지는 예수님의 상징적인 모습과 실제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론과 지식으로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있는 분은 천국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각각 따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글로서 설명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표현들에 불과하다. 

 

7. 천국에서 "보좌"는 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하는 곳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여러 선지자들 예를 들어, 이사야나 에스겔이나 다니엘 그리고 시편기자(특별히 다윗)과 미가야 선지자 등이 그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높이 들린 한 개의 보좌(의자)였다. 거기에 지금은 예수께서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그 보좌를 두고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일컬었다(계22:1,3). 여기서 "보좌"는 단수다. 한 개의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라고도 부르고, "어린양의 보좌"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그 보좌에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라고 불리셨던 이가 앉아계셨다(사6:1~5). 그리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인 주 하나님께서 앉아계셨다(단7:13).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라고 불리시는 이가 앉아계신다(계3:21). 한 분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당신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전능하신 분으로 인류의 구속을 위해 동시에 존재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때만해도 한 분 하나님은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 아들로서 존재하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니 예수께서 지상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면서 동시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들로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의 보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예수께서 그곳에 앉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가 예수님의 보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보좌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 보좌는 한 분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보좌이신데, 성경을 보면 크게 2가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통치의 역할이요 또 하나는 심판의 역할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좌가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며,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것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 보좌가 왕으로 통치하는(다스리는) 보좌라고도 부로고(시103:19),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보좌라고 부른다(시9:7). 그런데 이 보좌가 한 때는 아버지의 보좌이기도 했다(예수님의 공생애 때에). 그러나 지금은 아들이신 예수께서 앉아계시는 보좌가 되었다. 그런데 계3:21에 의하면, 예수께서 아버지와 함께 하나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이기는 자들도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함께'라는 말은 통치와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해주겠다는 뜻인데, 예수께서는 실제로 당신이 앉으신 보좌를 당신의 12제자들(나중에는 가룟유다 제외됨)에게도 나눠주셨다. 사실 예수께서는 당신만이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시고 심판하셔야 하는데, 그 역할을 이제부터는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마19:28, 눅22:28~30, 계20:4, 고전6:2~3). 그러므로 이러한 약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24보좌"다(계4~5장).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하늘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서서 24보좌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보좌들이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에 경륜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피조물이 통치와 심판의 역할에 동참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송구스럽고 황공스런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까? 

 

8. 왜 지금도 천상에서는 "하나님"에게만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도 동시에 찬양과 경배를 올리고 있는가?

  영국의 대신학자 리차드 보컴(보쿰)교수는 "요한계시록 신학(한들출판사, 2000년)"이라는 책을 통해서 놀라운 사실을 언급했다. 그것은 유대인적인 사고로서, 어린양에게도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찬양과 경배를 동일하게 드린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계5장). 하나님은 결코 두 분이 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천만천사들이 어린양에게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경배를 동일하게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과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에게 2인자 하나님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 5장을 읽어보면, 모든 생명체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을 드리고 경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세 분으로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신약시대에는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예수님을 통하여 체험하였으며,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이후에는 그분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분리되셨으며, 지금 하늘에 예수께서 하나님으로 계시지만 동시에 이 땅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으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나오며

  만약 지금 내가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서도 우리가 이 땅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세 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계시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한 개의 보좌에 앉아계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것은 바로 천국의 실제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갔더니 아버지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분의 오른편에 예수께서 [땅바닦이든지 보좌이든지 어딘가에] 앉아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지금 가짜 천국을 보고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며, 또한 우리가 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서 예수님은 결코 일곱개의 뿔들과 일곱개의 눈들을 가진 괴물어린양으로 모습으로 실제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수께서 어떤 능력과 권세 그리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그분은 지금도 천국에서 일곱인으로 봉인된 미래의 되어질 일들을 펼치시고 있는 분이시다. 그분이 이 세상과 우주역사의 주관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분이 심판주로 오실 날이 머지 않았다. 깨어 있어야할 때가 된 것이다. 가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자들에게 속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곡된 천국의 모습을 보고 왜곡된 자세로 신앙을 했다가는 제대로 신앙생활하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이제는 똑바로 보고 똑바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더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고, 그곳에서 면류관을 쓰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냥 거기 들어간 모든 자에게 다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0월 1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04) - 천국편(03) -(계5:6~14)_2020-10-16(금)

https://youtu.be/yA_MUQrBW5M  [혹은 https://tv.naver.com/v/16244783  ]

 

 

1. 외국에서 활동하신 분들 중 한국의 목회자들 중에 가짜 천국과 지옥을 외치는 분들은 누구인가?

  외국에서 활동하신 분들 중에서 한국사람으로서 가짜 천국과 지옥을 보고 간증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로는 토마스 주남여사, 박소리목사, 서사라목사, 홍혜선전도사 등이 있습니다(그들의 간증이 가짜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국내에서 활동하는 목회자로서 진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목회자가 있을까요? 예,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영문목사와 이기웅목사의 경우에는 제대로 천국과 지옥을 보고온 목사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2. 목회자 혹은 교수라고 할지라도 그분이 보고 온 것이 가짜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오늘날에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분들이 진짜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는지 아니면 가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는지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첫째, 성경에 없는 내용을 간증에 말하고 있다면 그 간증의 진위여부는 일단 보류해야 합니다.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있습니다. 둘째, 성경에 나와있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과 간증자가 말하는 모습이 틀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 간증은 가짜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고로 이러한 분들의 간증에 나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것들도 가짜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고로 어떤 간증이 진짜가 되려면 성경말씀과 100%로 절대 틀리지 않아야 합니다. 

 

3. 천국에 갔더니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어린양되신 예수님이 앉아계시더라는 간증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천국에 올라갔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아있더라고고 간증한다면 그 간증은 틀림없이 가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결코 하나님 앞쪽에 앉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는 성경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언제나 [그것이 실재이든 상징적인 것이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든지(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든지 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은 실제입니다)(계3:21). 어떤 경우든지 예수께서 하나님 "앞쪽에" 앉아있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앞세워 예수님으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천국에 갔을 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이 땅에 있을 때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을 각각 얼마든지 따로따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올라가서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은 이 땅에서 체험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그건 설명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가서 보니 이렇게 계시더라"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 땅에 있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묘사하는 데에는 삼위일체 형식으로 얼마나든지 표현이 가능합니다(그렇다고 '삼위일체' 교리적 진술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할 때에 "하나님은 각각 구별된 세 위격을 갖고 계시지만 본질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가 아니라고,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아닙니다(이 부분은 전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 위격은 구별되시지만 나누이지 않으며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오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령에게서 발출하셨습니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더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설명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네, 우리 하나님은 한 개의 보좌 위에 앉아계시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예수님의 승천이후의 하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찬27장에도 나와 있듯이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라고 찬송처럼 보고와야 정상적인 것입니다. 

 

5. 요한계시록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이라고 묘사되어 있던데 두 분은 아니신가요?(계5;13)

  요한계시록 4~20장까지를 보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등불" 혹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증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도요한이 본 환상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실재를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환상으로 그러한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숨고르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보았다고 하는 "어린양"은 천국에서 정말로 성경에 나와있는 어린양처럼 실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았던 "어린양"은 실재로 예수께서 그렇나 모습으로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곱인으로 봉인된 미래의 일을 펼치시는 분을 환상으로 보니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린양께서 천국에서 실재하는 존재의 모습이라면, 어린양은 괴물에 해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환상 중에 보았던 "어린양"은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계5:6).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어린양"도 상징적으로 묘사된 것이지만, 주 예수께서 "일곱뿔"을 가지셨다는 것와 일곱눈들을 가지셨다는 것도 다 싱징적인 묘사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일곱뿔들"은 완전한 권세를 가리키며, "일곱눈들"은 온땅을 감찰하기 위해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들로서, 이 말씀의 뜻은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 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시어 세상 모든 일들을 감찰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할 존재"로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죽음을 당하셨던 예수님에 대한 설명적 차원으로 묘사된 환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 다음날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일컬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진짜로 어린양의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볼 때 그분은 세상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구약의 예언을 따라, 속죄제물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도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한 것이지 예수님이 실재로 어린양의 모습으로 있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환상으로 보았던 예수님을 보되, 어린양의 역할을 실재고 집행하고 있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보았다면, 그분의 간증은 가짜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저녁 금요기도회에서 더 상세하게 다루겠습니다. 

 

2020년 10월 1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 천국과 지옥,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03) - 천국편(02)-(계5:6~14)_2020-10-15(목)

https://youtu.be/x6YGkgdNG4A  [혹은  https://tv.naver.com/v/16244720 ]

 

1. 가짜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오늘날에 천국과 지옥에 갔다왔다고 하는 간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간증들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증내용 중에 성경말씀과 위배되는 말씀이 있느냐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내용이 간증에 들어있다면 간증 전체를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2.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누가 앉아계시나요?(계3:21)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는 예수께서 앉아계십니다(계3:21).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에 보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겼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보좌에 예수께서 부활승천후 앉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불립니다(계22:1,3). 여기서 "보좌"는 단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가 각각 따로 있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3. 중세 로마카톨릭에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어떻게 묘사했나요?

  놀랍게도 A.D.325년 삼위일체 교리를 처음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던 니케아종교회의 이후 중세로마카톨릭에서는 삼위일체교리를 정통 신론으로 정립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근거로 그림을 그린 것(아래 참조)을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이 각기 다른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세 분이 각각 따로 있는 그림입니다.또 어떤 그림은 가운데 보좌에는 나이가 지금 지긋하게 드신 할아버지 같은 분이 앉아계시고, 오른쪽 보좌에는 젊은 분이 앉아계시며, 왼쪽에는 비둘기를 그려 넣어놓았습니다. 중세시대만 해도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세 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4. 천국에서 24장로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맞는 표현인가요?

 

  어떤 목사님께서는 천국에 가보았더니 24장로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하더라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천국에 가서 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결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찬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께 찬양하든지 아니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을 올릴 뿐입니다. 신구약성경을 다 뒤져보아도 성령님께 찬양했다거나 경배했다는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분에게만 찬양을 돌리고 경배를 올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께서는 요17장에서 기도하셨던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통해서 영생이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생(시대의 생명)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을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으로 [계속]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이 보내신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계속] [아는 것입니다]"(요17:3 직역).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마1:21이나 딤전3:16, 사9:6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임마누엘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인류에 대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다시 천국에 올라가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장로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했다는 것은 잘못 본 것이요 잘못 들은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보좌 근처에 있는 네 생물은 천사장인가요? 2020년 10월 15일(목) 정병진목사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네 생명이 있는데, 이들은 천사장이 아닙니다. 이들의 천사일 것이라고 추측은 됩니다만(세 쌍 즉 여섯 개의 날개를 지니고 있디 때문에), 이들을 '천사'라고 부르기에는 천사와는 좀 다른 모습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들을 '천사'라고 부르지 않고 "생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겔1:4~21). 특히 이들의 몸의 앞뒤에 수많은 눈들이 달려있는데, 이들의 모습도 각기 달라, 하나는 사자같고 하나는 송아지 같으며, 하나는 사람같고 또 하나는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고 했습니다(계4:6~8). 그러므로 네 생물은 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피조물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성경에서 천사장으로 등장하는 존재는 오직 두 명으로서 그들은 '가브리엘'과 '미가엘' 뿐입니다(단12:1,유1:9,살전4:16)(참고로, 성경에는 천사장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루시엘도 천사장에 해당하리라고 보기도 합니다). 

 

2020년 10월 15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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