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6)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 받게 될 형벌은?(렘34:1~22)_2023-03-23(목)

https://youtu.be/Ltyynv0RxIg [또는 https://tv.naver.com/v/34629379]

 

1.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었을 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어떤 예언을 했는가?

  B.C.588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었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그때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달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에게 넘길 것이고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을 불사를 것이라고 했다(렘34:2). 둘째, 시드기야왕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마주 대하게 될 것인데, 그는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렘34:3). 셋째, 그러나 시드기야왕은 바벨론 왕에게 칼에 맞아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게 될 것이며, 그가 죽는 날에 유다 백성들이 조문을 하고 애곡할 것이라고 했다(렘34:4~5).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진노를 쏟아붓는 중에 시드기야왕에게 내린 긍휼이었다. 시드기야가 왜 그러한 긍휼을 입게 되었는지 정확히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의 부친 요시야왕의 선행 때문이었든지 아니면 본인의 어떤 회개의 행위가 있었든지 했을 것이다.

 

2. 시드기야왕이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행한 귀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그 위기의 순간에 시드기야왕은 백성들과 더불어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려는 싯점에 그 멸망을 잠시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시드기야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어, 자기의 동족 남녀 종들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삼지 않겠다고 언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아마도 출21장에 나오는 '면제년'을 실행한 것이든지 아니면, 아니면 레25장에 나오는 '희년'을 실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때 언약 체결식은 엄숙했다. 왜냐하면 송아지를 잡아 둘로 쪼갠 후에, 그 두 조각 사이를 유다의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지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이 언약을 깨뜨리게 되면 그 언약을 깬 당사자들이 죽임을 당해도 좋다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횃불 언약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었다(창15:8~21).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개 놓게 한 후에, 연기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갔었다. 고로 이번 시드기야왕의 노비 해방 언약 체결식은 참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잠시나마 풀어드릴 수 있는 귀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왕과 백성들은 왜 노비 해방 언약을 다시 파기하고 말았는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노비 해방 언약식은 깨지고 말았다. 원주인들이 노비들(남종들과 여종들)을 다시 끌어다가 노비로 삼아버렸기 때문이다(렘34:11). 왜 그랬을까? 그것은 시드기야왕과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 앞에 급히 시행한 행위였다. 하지만 이내 애굽 군대가 자기들을 도우러 진군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또한 바벨론의 군대도 포위를 풀고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굽 지원군이 자기들에게 온다는 소식과 더불어, 바벨론이 그들의 곁을 떠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쟁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굳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의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애굽 군대가 자신들을 도우러 온다고 하니 마음은 다시 든든해졌고, 바벨론이 물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위기의 요소도 사라졌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4. 노비 해방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 내려질 심판은 어떠할 것이라고 말했는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 금방 노비 해방 언약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버린 남유다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했으니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대적이 되어 그들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하셨다(렘34:17). 이는 남유다가 또다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처참하게 죽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쪼갠 송아지 사이를 지나갔던 이들 전부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겨 버리겠다고 하셨다(렘34:19~20). 그래서 그들의 시체로 하여금 공중의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셋째,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은 불타 없어지게 될 것이며, 주민들이 없어짐으로 예루살렘은 처참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렘34:22). 그리고 이것을 다시 바로 잡지 못하고 수수방관했던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의 칼에 죽임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붙잡혀 그의 아들들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했고 자신의 눈이 뽑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 

 

5. 이 사건이 보여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이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영적인 교훈을 준다. 첫째,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한번 약속을 했으면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맺은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자들을 결코 그냥 두고 보시지만은 않으시기 때문이다. 둘째, 진정한 회개는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이요 그 뒤로도 두 번 다시 똑같은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위기 상황에서 시드기야왕과 백성들은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렸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그 결정을 번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처참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셋째, 긍휼을 베풀면 심판 때에 긍휼이 있는 심판을 받지만, 긍휼을 베풀지 않을 때에는 심판 때에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업신여기지) 자에게 결코 죄 없다고 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그 죄값을 물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갈6:7). 역시,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우리 자신은 이 땅과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을 심고 있는가?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과연 진정한 복을 얻기 위해 선행과 회개를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저주를 받으려고 악행을 저지르고도 회개치도 않고 있는가?

 

 

2023년 03월 23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5)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회복은 과연 누구를 통하여 성취되었는가?(렘33:1~26)_2023-03-22(수)

https://youtu.be/1_V2Z8Kt5_o [또는 https://tv.naver.com/v/34629355]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회복은 어떤 언약의 성취라고 말씀하셨는가?

  B.C.587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곧 멸망할 남유다의 회복은 두 가지 언약에 대한 성취라고 언급하셨다. 하나는 다윗과 세운 언약의 성취라고 언급하셨고, 또 하나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의 성취라고 언급하셨다(렘33:2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B.C.722년에 멸망당했고, 남유다는 B.C.586에 멸망을 당했으나, 그중에 다윗의 혈통을 간직한 남유다가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남유다가 긍휼을 얻을 만한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어 놓으신 언약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름하여, 그것은 '다윗 언약'의 성취이며,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의 언약'의 성취인 것이다. 

 

2. 다윗과 맺은 언약이란 무엇이며, 언제 다시 성취가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이유는 첫째로, 그것은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렘33:17). 하나님께서 B.C.995년경 다윗에게 그 집에 왕위에 앉을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이 있으셨기 때문이다(삼하7:8~16). 그때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말씀드릴 때였다. 그리하여 이 약속에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 계속 이어졌으니 20대까지 왕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갔다. 하지만 남유다 14대 왕이었던 므낫세 때에 이르렀을 때에 남유다의 죄가 가득차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벌하시기로 작정하셨고, 그것을 3~4대 후인 여호야긴왕과 시드기야왕 때에 그대로 성취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고 남유다 왕과 백성들의 일부를 바벨론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70년 동안 죄값을 받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주셨다. 그러나 그들에게 더이상 다윗 가문의 왕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제사장 가문인 하스몬 왕가에서 몇 명의 왕이 나왔고, 에돔 족속인 헤롯 왕가에서 몇 명의 왕이 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남유다 19대 왕이었던 고니야(여고니야, 여호야긴)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것이다(렘22:3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실 것이고, 그를 통하여 유다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히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33:15~16). 그럼 이 약속은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다윗의 가문의 후손으로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으며(마2:2), 33년 반 동안 이 땅에서 왕으로 통치하시다가,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셨기 때문이다(계19;16). 

 

3. 하나님께서 제사장 비느하스와 세운 언약은 무엇이며 그것은 언제 다시 성취되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이유는 둘째로, 그것은 비느하스와 맺은 언약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렘33:21). B.C.1410년경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매우 진노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압 평지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에, 모압 여인들과 음행및 우상숭배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염병으로 치셨고 얼마 후 그들 중에서 2만 4천 명이 죽었다. 그때였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가더니, 장막에서 음행하고 있던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와 모압 여인 고스비를 찔러 죽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시므리와 고스비를 찔러 죽였기 때문에,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 전부를 다 죽이지 않은 것이라고 하시면서,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약속하셨다(민25:13). 그리하여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B.C.586년 남유다가 멸망할 때에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죽었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제사장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후, 7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B.C.516년 성전이 다시 재건되자, 그들도 역시 다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그들은 이미 돈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독사의 새끼들로 변해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디도 장군을 통하여 A.D.70년 성전을 아예 파괴시켜 없애버리고 제사장들을 죽이심으로 제사장들로 하여금 더이상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하셨다. 

  그렇다면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은 어떻게 다시 성취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알려 주었는데,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또 다른 제사장을 일으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4)" 그러므로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완성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께서 친히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치심으로 인류의 속죄제사는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오늘날에는 누가 회복의 주체로서 왕직과 제사장직을 이어받았는가?

  그랬었다. 예레미야 시대에 약속된 남유다의 온전한 회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직을 수행하시고, 제사장직을 수행하심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사실은 주 예수께서는 당신이 수행하신 왕직과 제사장직을 천국의 성도들에게도 나눠주시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 중에 144,000명이 있는데, 이들 중에 1번 줄에서 6번 줄에 앉아 있는 성도들에게 왕직을 나눠주시어 하늘나라를 통치하도록 허락하시고 있다는 것이다(계5:9~10). 그리고 둘째로, 천국에 들어온 모든 성도들에게는 제사장의 직무로서, 찬양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맡겨 주시고 있다는 것이다(계5:8). 특히 하늘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대표들은 24장로들인데, 이들은 자기들의 한 손에는 거문고를 들고 있었고 한 손에는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들고 있었다(계5:10). 여기서 '거문고'는 그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데에 사용하는 악기를 가리키며, '금대접'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가리킨다. 그렇다.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은 다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죄인들이 없으니 속죄제사 같은 것은 더이상 드리지 아니하며, 다만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올려드린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전까지 기도를 올려드리는 일을 한다. 

 

5. 예레미야 33:2~3에 나오는 말씀의 원래의 뜻은 무엇인가?

  예레미야 33:2~3의 말씀은 기도회 때에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그런데 이 말씀 중에 앞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직역한다면 이렇다. "그것을 만드시는 여호와, 그것을 빚으시며 세우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본문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만드시고 빚으셨으며 세우시고 있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시는 분' 내지는 '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분'이라고 언급하셨다. 이는 그분만이 자존자이자 전능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알파다'라고 말씀하셨다. 고로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전능자이시자, 모든 것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예레미야에게 기도할 것을 주문하고 계신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감추어진,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그에게 보여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곧 남유다의 회복을 가리킨다. 그것도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고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크고 은밀한 일'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요, 그분을 통한 회복이요,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인 것이다. 그래서 알파(시작과 처음)이신 여호와께서 오메가(마침과 끝)이신 아들로 오셔서 모든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모셔들임으로 회복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3년 03월 22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4) 왜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야 하는가?(렘32:1~44)_2023-03-21(화)

https://youtu.be/7MplRAbOogk [또는 https://tv.naver.com/v/34629327]

 

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할 때에는 시기적으로 어느 때였는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와서 자기의 밭을 사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32:6~7). 그러자 곧이어 사촌 하나멜이 시위대 뜰에 잡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다가왔고 자기의 밭을 사라고 청하였다. 그럼 이때는 과연 언제쯤인가? 렘32:1~2의 말씀에 따르면, 이때는 유다의 제20대 시드기야왕 10년(B.C.587)이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 18년째 되는 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때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요, 예루살렘 멸망을 1년 앞둔 바로 그 싯점이었던 것이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예루살렘에는 점차 기근이 심하여 먹을 것이 떨어져 가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2. 예레미야 32장은 어떤 예언인가?

  예레미야서 52장 가운데, 예레미야 32장은 예레미야서의 본론부(2~51장) 중에서 제2부(26~45장)에 해당한다. 제2부(26~45장)는 또다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전반부(26~33장)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책망(26~29장)과 더불어 남유다의 회복(30~33장)을 기록하고 있고, 후반부(34~45장)는 예루살렘 함락 직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 32장은 남유다의 회복에 관한 예언에 속한다. 사실 남유다의 회복에 관한 말씀은 30장에서 시작하여 33장으로 마치는데, 그중에서 30~31장은 남유다의 회복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32장은 예루살렘 성에 관한 회복 예언이 기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33장은 새 언약에 대한 재확인이 기록되어 있다. 

 

3. 예레미야는 하나멜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그때였다. 사촌 하나멜이 왕궁 시위대 뜰에 잡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다가오더니,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고 하였다(렘32:8). 그런데 여기의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예레미야의 고향이었다(렘1:1). 그런데 하나멜이 예레미야에게 변두리에 가치 없는 땅을 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에워쌓여 언제 남유다가 멸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 밭을 사라고 한 것이다. 그때 예레미야는 아마도 매우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곧 나라가 망하게 될텐데, 남의 땅을 산들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한편 예레미야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렘16:2). 그러므로 아내도 없었고 자식도 없었다. 그러므로 땅을 산들 그 땅을 물려줄 자식도 없었다. 또한 그의 나이가 지금 몇인가? 그가 20세 쯤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니, 지금은 39년이 흘러간 시점이다. 그러니 나이로 치자면 그는 이제 59세요, 1년 뒤가 되면 그의 예언 사역도 끝마치게 될 시기였다. 그런데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하나멜의 땅을 사야 한다는 말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은17세겔(약 193.8g, 노동자의 68일치 품삯)을 하나멜에게 달아 주고 그 밭을 산다. 그것도 여러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이어 예레미야는 매매증서 2부를 작성하여 하나는 봉인하고 하나는 봉인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신의 서기관이었던 바룩에게 보내어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관하라고 명령한다(렘32:10~14). 

 

4. 하나님께서는 왜 예레미야에게 부질없어 보이는 일을 행하도록 시키셨을까?

  사실 예레미야가 땅을 산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 부질없는 일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예레미야에게 시키셨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이었다. 이제 곧 남유다가 망하겠지만 영영 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때가 되면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시어, 거민들이 자기의 땅들을 매매할 날이 다시 올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장래에 소망을 주려고 그렇게 시킨 것이었다. 이는 남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저지른 악행 때문에, 이때는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바벨론에 넘겨 곧 멸망시킬 것이지만, 그때로부터 70년이 지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를 그치고, 그들을 쫓아보냈던 바벨론 땅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안전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5. 예레미야가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오늘날에 우리는 예레미야가 아나돗에 있는 하나멜의 밭을 산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하나요,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그것에 수반되는 믿음의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있는 믿음은 실은 가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에, 아무 쓸모없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밭 매입을 기꺼이 순종함으로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것은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 있는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천국과 상급에 대한 투자를 열심히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 과연 어디에 내 시간과 물질을 써야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내가 죽어서 들어갈 천국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내 것을 다 팔아 천국을 사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상을 위하여,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사는 육체를 위해 투자하기보다는 내 영혼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것 중에 하나는 열심히 회개하여 내 안에 들어 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상징되는 악한 영들을 내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결국 하늘의 영토를 차지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자만이 결국 천국에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영원한 보상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03월 21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3) 예레미야 시대에 약속된 ‘새 언약’이란 무엇이며, 이것을 계속해서 효력있게 하려면?(렘31:31~34)_2023-03-20(월)

https://youtu.be/Dpnx6Rbez_4 [또는 https://tv.naver.com/v/34629295]

 

 

1. '옛 언약'이란 무엇인가?

  '옛 언약'이란 B.C.1446년경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체결한 언약을 가리킨다(렘31:32).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말로서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핵심 내용은 한 마디로, '십계명을 지키라. 그러면 영육 간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출20:1~1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을 돌비에 새겨 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잘 지킨다면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영적인 복이 있고 육적인 복이 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복이란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출19:5~6). 그리고 육적인 복이란 그들의 양식과 물에 복을 받고, 병이 제하여지며, 자손이 번성하고, 일찍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출23:25~26).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와서 살면서 이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부분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게 하셨으며, 일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뽑아 버려서 바벨론으로 옮겨버리신다.

 

2. '새 언약'이란 무엇인가?

  '새 언약'이란 B.C.595년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언약을 가리킨다(렘31:31,33~34).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다시 체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들의 남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남편(다른 신들)을 섬김으로 언약을 깨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새 언약을 체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언약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민들과 세우지 아니하시고, 훗날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께서 당신의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체결하신다(눅22:19~20, 고전11:23~26). 그 핵심 내용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잊지말라. 그러면 영육 간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때 예수께서 내어 주신 당신의 몸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생명이셨기 때문이며, 그분이 흘리신 피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신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마26:28). 고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한 후 내주하시며, 지은 죄들을 회개할 때에 그 죄를 용서해 주시며, 악한 영들으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신다. 그런데 첫 번째 언약이 말로써 체결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써 체결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3. 한 번 예수님과 새 언약을 체결하면 그 언약은 영원히 유효한 것인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예수님과 새 언약을 체결하면 그 언약이 영원히 유효함으로, 절대 구원에서 탈락되는 일이 없고 다만 죄를 지으면 이 땅에서 약간의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첫 번째 언약 곧 옛 언약이 깨졌듯이 두 번째 언약 곧 새 언약도 어마든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언약이 깨뜨려진 것은 하나님 편에서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인간 편에서 문제가 생겨서다. 즉 인간 편에서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면 언약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만약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그 언약의 효력은 상실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구원에서 탈락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무시하고 새 언약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이 받게 될 무서운 결과를 히브리서 기자는 무려 5번에 걸쳐 경고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율법으로 세우신 옛 언약을 깨뜨린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엄청난 보응을 하셨는데(히2:2),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구약시대에는 그 언약의 내용을 그들이 잊어버리지 않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돌비에 새겼고 이어서 그것을 문서로 기록하고 보관하여 지키게 했지만, 신약시대에는 그 언약의 내용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이행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을 두시어 행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돌비의 언약과 성령의 언약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돌비야 못 봤다 하고 안 들어봤다고 하면 끝이지만,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신 것이므로 성령의 책망을 듣지 못했다고 말할 성도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옛 언약이 영원히 유효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 언약도 영원히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새 언약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새 언약이라도 영원히 유효한 것이 아니라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왜 그리스도인들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것이 문제가 된다. 한 번 믿어 구원을 받았고, 한 번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았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죄사함은 자신의 범죄를 회개할 때에 비로소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행위는 일종의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회개는 반복적인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미4:17)"고 선포하실 때에, 한 번만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을 보니, '회개하라'는 동사가 명령법 현재 능동태이기 때문이다. 사실 헬라어의 명령법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 명령법이고 또 하나는 현재 명령법이다. 그런데 '과거 명령법'은 단회적으로, 확고하게 그렇게 하라는 명령법이라면, '현재 명령법'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명령법이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하는 회개는 현재 명령법 구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해서 회개해야 한다. 이는 계속해서 회개하는 자가 결국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죄를 책망하시어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믿고 회심하여 구원받을 때에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떠나가지 아니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도 죄를 지을 때가 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시고 그 죄를 책망하신다. 그러면 성도들은 즉시 성령의 음성을 받아들여, 죄짓는 것을 그치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죄지은 것을 회개하여 용서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범죄할 때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 중에는 성령의 음성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아니 너무나 많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그 사람에게 들어오신 성령께서 그 사람이 죽는 날, 그에게서 떠나가시고 만다. 그렇게 되면 이미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때에 하늘의 생명책에서도 그 이름도 역시 지워진다. 

 

5. 새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은 3가지 유형은 무엇인가?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유형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 핍박과 죽음이 무서워서 주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 주님을 믿고 있었던 자인데, 자신에게 불어닥친 고난과 죽음이 무서워서 믿는 것을 배반하는 경우다. 그러면 새 언약이라도 깨지고 만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심판 때에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주님께서도 그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둘째, 이미 구원받은 자는 혹시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생명책에서 얼마든지 그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출32:33, 계3:5). 셋째, 한 번의 믿음과 한 번의 회개로 자신은 이미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으니 굳이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의 경우 그 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심판날이 되면 그 죄 때문에 결국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도 온갖 저주 가운데 시달리며 사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든지 아니면 현재 짓고 있는 죄든지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고 지내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귀신들이 우리 몸을 치고 들어온다. 그러면 이 귀신들이 우리에게 온갖 저주를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회개를 통해 죄용서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 저주받은 귀신들을 우리 몸에서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회개가 구원의 최종 관문이 되는 것이다. 

 

2023년 03월 20일(월)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