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40) 끝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이 맞이하게 될 비참한 최후(렘40:1~45:5)_2023-04-05(수)

https://youtu.be/wQ8xnA3JlGs [또는 https://tv.naver.com/v/35305794]

 

1.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남유다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B.C.586년 4월 9일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 인하여 남유다는 멸망한다. 그 뒤로 남유다는 포로에서 귀환하여 돌아왔지만 계속 속국으로 살다가 A.D.70년 로마에 의해 지구상에서 없어진다. 남유다는 그렇게 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남유다의 잔류민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것은 총독으로 미스바에 있는 서기관이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임명해서 세금을 바치며 살게 한다(렘40장). 

 

2. 그다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바벨론 왕이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들에 있는 지휘관들과 부하들이 그다랴를 찾아왔는데 그중에는 '요하난'도 있었고 '이스마엘'도 있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왕족으로서, 왕족인 아닌 서기관 출신이 유다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매우 큰 불쾌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하난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린 후, 그다랴에게 이스마엘을 제거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다. 그 후 어느 날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함께 식사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이스마엘은 아무런 방비도 갖추지 못한 그다랴를 칼로 죽이고 만다(렘41:2). 그리고 그것 외에도 예루살렘 순례객들 70명까지 암살하고 만다. 그러자 요하난이 즉시 전열을 가다듬고 이스마엘과 싸우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자신의 전세가 불리한 것을 깨달은 직후 즉시 8인과 함께 암몬 자손에게 피신하여 숨어버린다.

 

3. 요하난은 남은 유대인을 어떻게 인도했는가?

  그러자 바벨론에서 임명한 총독이 암살당했다는 말이 바벨론에게 들어가면, 틀림없이 응징하러 온다는 것을 예상했던 요하난은 남은 유다인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그냥 유다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하나님께서 세우고 헐지 아니하고 심고 뽑지 아니할 것이라고 전한다(렘42: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하난은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데리고 애굽 땅으로 들어가 다바네스와 믹돌과 놉과 바드로스 등에 거주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애굽 땅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애굽으로 들어갔던 사실을 거론하시면서,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 것을 고집하던 유다의 남은 자손들을 다 처단할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굽 땅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애굽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렘44:18~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있는 유다의 모든 사람들을 바벨론의 군대를 불러다가 칼과 기근으로 죽일 것이라고 경고하신다(렘44:27,30). 

 

4. 남유다 멸망 후 일어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남유다가 멸망했지만 바벨론의 허락으로 인하여 그나마 빈민들은 예루살렘에서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빈민들마저 애굽 땅으로 건너감으로 결국 거기에서 거의 다 죽고 만다.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극히 소수만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은 B.C.586년을 기점으로 폐허더미가 된 것이요 황무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던 모든 말씀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렘7:34, 24:10, 25:18).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된다는 것을 남유다의 멸망 속에서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렘7: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렘24: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25:18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5. 남유다 백성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끝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채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남유다의 멸망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들려주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살길을 제시해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무엇보다도 남유다에게는 끝까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외쳤던 참 선지자 예레미야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선지자의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들을 귀가 없는 자"인 것이다. 아무리 알려 주고 들려주고 보여 주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남유다가 그랬다. 그렇게 날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들을 꾸짖고 또한 그들에게 바른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사람의 눈치만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러면 패망만이 자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회개합시다. 회개합시다."라고 아무리 외친다고 할지라도 실제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라. 모두가 하나같이 주옥같은 말씀들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천국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에는 꼭 한 가지로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마13:9, 계2:5,7). 이는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천국'에 관한 말씀이요 '회개'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회개해야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고, 회개해야 저주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믿지 않는 자들을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도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지 말고, 직접 회개하는 일에 동참하여 회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러한 자가 어떠한 복을 누리고 살게 되는지를 한번 경험해 보자. 

 

 

2023년 04월 0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9)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으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최후(렘37:1~39:18)_2023-04-04(화)

https://youtu.be/hO7N3ZtljY4 [또는 https://tv.naver.com/v/34630496]

 

1.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곁에는 어떤 선지자가 있었는가?

  남유다가 드디어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에, 시드기야 곁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지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다. 그런데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들었을 때에 좋아할 만한 말만 하는 그러한 거짓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해 주는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선지자가 항상 시드기야 곁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2. 남유다의 운명이 기울어질 무렵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가?

  자신의 조카였던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세우고 간 왕이었다. 왜냐하면 B.C.597년경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인하여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갈 때에, 여호야긴왕 대신에 세워 놓았던 왕이 바로 시드기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잘 보여야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거의가 다 친애굽파였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남유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굽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왕은 늘 갈팡질팡했다. 그래도 그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늘 신하들과는 반대되는 예언을 했다. 바벨론이 와서 남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가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에게 항복한다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남유다의 왕과 왕의 자녀들과 백성들의 목숨도 역시 전리품이 되어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항복하여 훗날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만약 자신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면 포로민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는 끝내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3. 시드기야왕의 복과 저주는 무엇인가?

  시드기야왕에게 있어서 복은 그의 곁에 항상 예레미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전달해 주는 메신저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풍향계와 같았다. 그러므로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그는 곧바로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할 정도였다(렘37:3). 하지만 애굽 군대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자마자, 시드기야왕은 금세 마음이 변하였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 군대가 떠나가고 바벨론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이번에도 역시 시드기야왕은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예레미야는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왕도 죽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도 불타지 아니하며, 왕과 왕의 가족도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아니한다면, 왕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서 불살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38:17~18). 그렇지만 시드기야는 끝끝내 신하들의 말을 듣고 결국 바벨론과 항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2년 만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만다.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핵심 진리는 시드기야왕에게 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곁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저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을 때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레미야가 왕의 고관들에 의해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에 그를 살려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왕궁 내시 '에벳멜렉'이었다. 그는 예레미야하고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관들에 의해 예레미야가 무고하게 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곧바로 왕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이는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형국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에벳멜렉의 말을 들은 시드기야는 곧바로 신하 30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를 건져내어 살리라고 명한다. 그러자 에벳멜렉은 그들과 함께 가서 구덩이에 빠진 채 있는 예레미야를 건져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행동을 줄곧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가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 거민을 학살하는 과정 속에서도 에벳멜렉 그 만큼은 절대 죽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렘39:15~18).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시고 달아보시며,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3가지 반응과 그 최후는 어떤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첫째, 어떤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 말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의 태도가 이 경우다. 둘째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관심을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시드기야왕의 경우가 그러하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는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 셋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첫째, 어떤 말씀을 듣더라도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했다. 그럼 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모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둘째, 말씀을 듣고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 결국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경우가 시드기야왕의 경우다. 그런데 이러한 자도 역시 처참한 꼴을 당하고 만다. 그럼, 시드기야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2년간 바벨론과 항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것 같자, 곧바로 밤에 몰래 군사 몇 명과 함께 도망을 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벨론 군대에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끌려간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을 다 죽여버린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버린 채, 그를 사슬로 결박하여 포로로 잡아간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있다. 그러한 사람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그때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고관들은 그를 몇 번이고 죽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결코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가장 먼저 감옥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서 석방시켜 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살 것 같지만 결국 비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신11:26~28, 28:58~64). 

 

 

2023년 04월 04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8) 하나님의 마지막 회개 권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가?(렘36:1~32)_2023-04-03(월)

https://youtu.be/FDsyQhBjVk8 [또는 https://tv.naver.com/v/34630475]

 

1. 사람이 지은 죄가 쌓이고 또 쌓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사람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죄가 쌓이고 또 쌓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게 된다. 어떤 처벌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리 몸속에 악한 영들이 침투해 들어오는데, 죄를 지을수록 그 영들은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을 집행할 분량이 차게 될 때가 온다. 그러므로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면서 그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회개를 통해서 죄의 분량을 덜어내는 일이다. 그러면 그러한 징계가 쏟아지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조상들 중에 회개하지 않고 죄를 쌓아왔다면 그의 후손들 중에 누군가는 그 처벌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범죄로 인하여 조상에게 들어온 영들이 후손에게 내려와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기가 범죄하여 그 분량이 딱 차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는 것이다. 

 

2. 범죄로 인해 귀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게 되면 귀신은 우리 몸속에서 무슨 일을 행하는가?

  범죄로 인해 우리 몸속에 귀신이 들어오게 되면 귀신은 먼저 행했던 일을 우리에게도 행하게 된다. 만약 귀신이 조상을 위암으로 죽게 했다면, 내게 들어온 귀신도 역시 나를 위암으로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신이 조상을 물에 빠져 죽게 했다면, 내게 들어온 귀신도 언젠가는 나를 물에 빠뜨려 죽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실행할 것인지를 작전회의를 하고 그 기간을 정해 실천한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사실을 알고 우리가 회개하여 죄를 덜어 내버리면 귀신은 그 일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다. 만약 회개가 덜 되었거나 회개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우리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회개함으로 진노의 그릇의 일부를 비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내게서 어떤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자기의 뜻을 실행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서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보통 자기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몸도 망가져서 죽게 되는구나 하고서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실은 귀신들이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그동안 차근차근 실행해 온 것을 이제 그 사람이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만약 사람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살 수 있다면, 모세처럼 죽는 날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건강한 상태로 살다가 밤에 잠자듯이 주님 품에 안길 수가 있는 것이다. 

 

3. 다 쓰러져 가는 유다 다윗 가문의 제18대 왕 여호야김에게 하나님은 어떤 자비를 베풀어 주셨는가?

  남유다는 이미 제14대 므낫세 왕 때에 죄가 가득찼다. 그러므로 언제 다윗 가문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될른지는 시간 문제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조금 더 참아주셨다. 그러자 므낫세의 손자로서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가 남유다를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내었다. 왜냐하면 성전을 청소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 옷을 찢고 회개하면서 각종 우상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중지된 유월절을 복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얼마 가지 못했고, 곧이어 쇠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려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두루마리를 보내게 한다. 그것은 그동안 요시야왕 13년(B.C.627)부터 여호야김왕 4년(B.C.605)년까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예언들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한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유다 집안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고 한 모든 재앙에 대해 듣고 각기 자신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면 나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겠다"(렘36:3, 원문 직역). 그러나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4.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예언서를 들은 여호야김왕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당시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 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기에, 자기가 받았던 예언들을 서기관 바룩에게 기록하게 하고 보낸다. 그러자 바룩은 예레미야의 지시를 따라 기록한 책을 여호와의 성전 앞에서 크게 낭독한다. 그러자 제사를 드리러 왔던 예루살렘 거민들과 유다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금식을 선포하며 회개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았던 선지자 미가야가 바록을 데려와 이스라엘의 고관들에게도 그 예언을 듣게 한다. 그러자 그들은 이것을 왕에게도 들려주어야 한다고 판단하고는 여후디를 통해 그 책을 가져가서 왕 앞에서 낭독하게 한다. 그런데 여호야김왕은 그 책에 기록된 예언을 들으면서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읽은 쪽쪽 그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서 화로불에 던져 모두 태워버리고 만다. 그리고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아시고 둘을 피신시키신다. 그렇다. 여호야김왕은 마지막으로 남유다의 회개를 바라고 그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받은 말씀을 들려주었지만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 요시야왕처럼 두루마리 말씀을 들으면 회개하지 않을까 해서 마지막으로 권고한 것인데,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다. 

 

5. 하나님의 마지막 회개 권고를 멸시한 여호야김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야김왕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준다. 그것은 마지막의 회개 경고를 무시한 자가 받게 될 형벌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알려 준다. 그것은 첫째, 그의 가문과 후손에게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한 복을 다 거둬버리시겠다는 것이다(렘36:30). 왜냐하면 그의 아들들 중에서 더 이상 다윗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자신은 죽은 후에 비참한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렘36:30). 그랬더니 정말 그가 죽은 후 3개월이 지난 싯점에 그의 시체는 다시 파헤쳐졌고 예레미야의 예언을 따라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시신은 낮에는 뜨거운 햇빛을 받아야 했고, 밤에는 차가운 추위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셋째, 그의 미친 행동을 막지 못하고 동조했던 신하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36:31). 그래서 결국 신하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죽임당했고, 그중에 소수만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거나 죄에 같이 동조하게 된다면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 경고였다면 그 대에서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징계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또한 자기 후손에게 계속 복이 이어 내려가게 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2023년 04월 03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7)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 시대의 레갑족속은 누구인가?(렘35:1~19)_2023-03-23(금)

https://youtu.be/GZbhUU3Q_h0 [또는 https://tv.naver.com/v/34629391]

 

1. 남유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왕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레미야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가?

  남유다 16대 요시야왕의 아들 제18대 여호야김왕 때(B.C.609~598)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렘35:1~2). 이는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는데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에 비해, 레갑 족속의 후손들은 자기의 조상들 요나답이 남긴 유훈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레갑 족속의 집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선조의 유훈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2. 레갑 족속들은 왜 예레미야가 청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을까?

  레갑 족속들은 레갑의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의 후예들로서, 그들은 자기의 조상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명령한 바를 지키고 있었으니, 즉 5가지 금지 조항과 1가지 시행 조항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5가지 금지 조항부터 살펴보자. 그때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명했던 5가지 금지 조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포도주를 먹지 말라. 둘째, 집을 짓지 말라. 셋째, 파종하지(씨 뿌리지) 말라. 넷째, 포도원을 경작하지 말라. 다섯째,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라(렘35:6~7). 그리고 1가지 시행 조항은 '평생 동안 장막에 살라'는 것이었다(렘35:7). 

 

3. 레갑의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은 누구이며, 그의 후손들은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는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원래 유다인이 아니었다. 그는 북이스라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지파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어찌되었든지 그가 북이스라엘에 살고 있었을 때에, 어느 날 아합왕의 군대 장관인 예후를 만나게 된다. 그때 예후는 여호나답에게 자신과 손을 잡자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호나답이 북이스라엘에서 상당히 고위층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해 준다. 그런데 당시 북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이 하나님을 버리고 북이스라엘 전체를 자신의 아내 이세벨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 신으로 바꾼 시기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군대 장관인 예후 장군을 시켜 아합왕의 집안을 진멸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예후가 아합왕의 집안을 진멸하고 있었을 때에,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자 여호나답은 기꺼이 예후 장관을 도와서 아합의 나머지 사람들을 척결하는데 동참하게 된다(왕하10:15~17). 그런데 그가 죽을 때에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위와 같이 6가지 유언을 남기고 죽게 된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B.C.722년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그러자 장막에 살고 있던 레갑 족속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경계 지점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런데 B.C.605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북쪽에서부터 남유다를 치려고 내려오자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이동해 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끝까지 술을 마시지 않고 장막에 거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자발적인 나실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민수기 6장에 보면,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여 자신을 구별시켜 봉사하고자 하는 나실인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갑 족속들이 스스로를 구별시켜 포도주를 먹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4. 레갑 족속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으시고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남유다 여호야김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레갑 족속을 찾아내어 그들을 만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레갑 족속의 후예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성전에 있는 어느 방에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시고 있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무리 숫자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레갑 족속처럼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세상의 향락과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갑 족속들은 포도주를 일평생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포도주는 술로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도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데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노래방이나 술 주점에서, 낚시나 여행 같은 취미에서 기쁨을 찾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찾으시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곳에 소망을 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갑 족속은 이 땅에 집을 짓지 않고 살았으며 일평생을 장막(텐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시적인 거주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서는 아니 된다. 이 땅에 정착하여 살려고 하면 늘 소유 증식에 눈을 돌리게 될 터이니 말이다. 셋째,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다. 원래 레갑 족속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던 아합왕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남쪽과 예루살렘으로 옮겨가서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사실 레갑 족속들이 포도주를 먹지 않게 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조상 여호나답의 유언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그것을 지키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억하고 찾으시기 때문이다. 

 

5.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에게 주신 축복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레갑 족속의 지조 있는 삶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레미야를 통하여 레갑 족속이 받을 미래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레갑 족속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렘35:19). 여기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고로 이 말씀은 레갑 족속들이 앞으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는 자가 될 것을 뜻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온 레갑 족속들은 이후에 제사장 지파에 편입이 되어 제사장이 하는 일을 돕는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족속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도 믿음의 지조를 잘 지키고 산다면, 우리도 역시 하나님만을 영원히 섬기는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할렐루야!

 

 

2023년 03월 24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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