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586년 남유다가 멸망할 당시에 이스라엘 주변에는 총7개국의 나라들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나라들 중에서 두로와 애굽을 부각시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을 적나나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나라 주변에 있었던 나라들은 무엇 때문에 결국에 멸망을 받게 된 것인가? 전쟁을 못해서인가? 아니면 무기가 최신식이 아니어서였을까? 아니면 주변의 강국을 이용하지 못해서였을까? 하지만 이것보다 훨썬 더 빨리 그리고 더 깊숙히 주변을 바라다보게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두로를 치고 애굽을 쳤던 바벨론왕의 시선과 언약백성이었던 남유다인의 관점에 따라 애굽은 어떤 나라였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2019-09-25(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3) 바다 가운데 큰 악어인 애굽왕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내려질 심판(겔29:1~21) 

https://youtu.be/D8F0zXfgIfw

1. 들어가며

  B.C.586년 남유다가 멸망할 시기에 남유다 주변에는 총 7개국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멀리는 2개의 대제국이 남유다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주변 7개국이란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이집트)"을 가리킨다.이들에 대한 관한 예언이 에스겔서 25장부터 32장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중 마지막 번째인 애굽(이집트)이라는 나라는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대제국이었다. 그런데 신흥 제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앗수르와 그 뒤를 이른 바베론은 파죽지세로 고대 근동지방에 있는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남유다도 포함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유다가 멸망당할 즈음에 애굽은 세계 열강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바벨론은 또한 어떤 위치에 있었던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 한 해 전인 B.C.587년부터 애굽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 예언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런데 어떤 이방민족보다는 애굽에 대해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많은 예언을 쏟아내도록 하였다. 분량으로 친다면 애굽에 관한 예언은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예언 중 절반 가량이 되며, 에스겔서 전체를 놓고 보더라고 약 1/12이나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애굽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 많은 분량의 예언을 쏟아놓게 하셨던 것일까? 그것과 남유다의 멸망과는 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애굽의 심판과 멸망에 관한 예언을 통해, 대제국으로 활동하던 나라라고 할지라도 왜 넘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민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찾아보도록 할 것이다.

 

2. 남유다와 두로의 멸망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애굽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애굽의 심판과 멸망원인을 살펴보기 전에 남유다와 두로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유다와 두로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이 애굽(이집트)의 심판과 멸망원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남유다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남유다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우상숭배였고 또 하나는 주변 강국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남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유다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까지 온통 우상으로 가득차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산당예배와 예루살렘 성전예배에 온통 우상이 들끓었으니 태양신과 하늘왕후 그리고 담무스를 섬기고 있었고, 가나안의 우상들과 주변나라들의 우상들까지 수입해서 섬기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분노가 하늘을 뒤덮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언약민족이었던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주변의 강국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한 것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대에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언약자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복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신들을 수입하여 성전에서까지 섬겼던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남유다의 왕들은 주변 열강을 의지했다.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결탁하여 쳐들어오자, 남유다왕은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엄청난 세금을 거둬 앗수르에 바쳤다. 결국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멸망당하게 되었고 남유다도 앗수르의 신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남유다는 애굽을 의지하였다가 바벨론을 의지하였다가 맨 나중에 애굽을 의지하다가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도 애굽도 멸망을 당하게 된다.

  둘째, 두로의 심판과 멸망원인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한 가지다. 그것은 두로왕의 "교만" 때문이었다. 두로는 사실 작은 도시국가였다. 두로와 시돈이 그 나라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두로가 교만한 나라가 되었는가? 그것은 이 도시가 육지와 섬이라는 두 곳에 "두로"라는 도시를 형성하면서 고대 해상 무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두로는 멀리 4,000km나 떨어져있는 다시스(스위스)에 식민도시를 가질 만큼 해상무역으로 아주 큰 부자가 되었던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두로왕이 그만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겔28:2)" 그는 자신이 가진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고 큰 무역으로 재물이 더해지자 그만 자신은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사람이면서 신(하나님) 행세를 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두로 자신이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말할 수 없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두로를 철저히 파멸시키는데, 먼저 1차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2차는 바사왕 아하수에로를 통하여, 3차는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멸망시키신다. 그런데 지혜와 무역을 통해서 교만해진 두로왕의 타락의 과정이 영락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장 루시퍼의 타락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두로왕의 교만에 루시퍼가 길숙히 관여하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왜냐하면 그것이 두로왕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겔28:12~19).

 

3.  애굽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럼, 애굽의 심판과 멸망의 원인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애굽왕도 두로왕처럼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욥29:3). 그는 생명의 젖줄인 나일강을 두고서, 그것은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했다(겔29:3). 당시 바로왕은 호브라(Hpphra, 재위 B.C.589~570)였는데 그는 이집트의 나일강을 일컬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것을 만들었느니라(겔29:3)"고 하면서 자신이 나일강을 만든 장본인인 것처럼 말했던 것이다. 나일강은 과연 바로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천지만물의 창조주께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근으로 고생할 때에 그들을 먹게 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는 나일강을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자랑하였다. 또한 그는 마치 자신이 나일강을 지배하는 악어처럼 행세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워있는 큰 악어로구나(겔29:3)"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을 비유하는 단어로서 왜 "악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그것은 악어가 아니다. "탄닌"이다. 탄닌은 물 속에 사는 어떤 피조물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아주 힘이 센 존재다. 아마도 물 속에 사는 공룡같은 종류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므로 욥기서에는 그와 비슷한 존재로서 "리워야단"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단어로 한글로서 과거에는 "악어"라고 번역하였다. 바다괴물인 "탄닌"이나 "리워야단"을 한글성경에서는 "악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아닌 다른 성경에서는 "탄닌"이라는 단어를 "바다에 사는 용(시74:13~14)"이나 "뱀(출7:10)"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탄닌"이라는 용어가 바다나 물속에 사는 아주 무시무시하고 힘 쎈 공룡같은 것인데, 그것을 아무나 제어하기가 힘든 탓에, 마치 용인 것처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에 두로왕의 타락을 마치 루시퍼의 타락의 과정에 동일시함으로, 두로왕이 루시퍼의 통제를 받았던 대상이 아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듯이, 애굽의 바로 역시 용인 루시퍼의 지도를 받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적어도 루시퍼로부터 어떤 정보를 넘겨받아 자신을 신격화하려고 시도했던 왕들인 것 같다.

  둘째, 애굽이 이스라엘 특히 남유다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피난처가 될 것처럼 행세함으로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겔29:6~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에게 있어서 애굽은 "갈대 지팡이"라는 말로 애굽의 실상을 적나나하게 폭로하셨다. 여기서 애굽이 "지팡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려는 대상이 바로 애굽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팡이를 하나님께서는 "갈대 지팡이"라고 하신다. 지팡이는 지팡이되, 갈대로 만들어진 지팡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의지할 때에 지팡이가 부러져서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말만 지팡이일 뿐 실은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지팡이였던 것이다. 요시아왕의 증조 할아버지는 히스기야왕이었다. 그때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인데, 그때에도 이사야선지자는 애굽을 갈대 지팡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36:6)" 그런데 망해가고 있는 남유다가 애굽을 지팡이로 의지하려고 하고 있다. 남유다의 맨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버리고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굽은 남유다를 결코 도울 수 없는 지팡이며, 오히려 그를 만질수록 자신이 찔리기만 하는 지팡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더이상 남유다가 애굽을 의지하지 않도록 애굽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4. 애굽에 대한 심판의 결과는 어떠할 것이라고 했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심판하시겠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는가? 다음과 같이 심판하신다고 했다.

  첫째, 나일강의 큰 악어였던 애굽왕 바로를 갈고리를 사용해 아가미를 꿰어서 물 바깥에 있는 뭍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했다(겔29:4~5). 그러면 그 악어와 그 비늘에 붙어있는 고기들이 함께 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 밖의 땅 바닦에서 파닥거리다가 결국에는 말라 비틀어져 죽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둘째, 애굽 땅을 사막과 황무지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장소,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장소가 되게 하시겠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40년간을 말이다(겔29:8~14). 그래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게[ㄹ29:15~16).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을 멸망시켜 황무지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한 땅이 되게 말 것이다. 그리하여 40년의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여기서 "40년"이란 진짜 역사적 문자적으로 "40년"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40년"은 인고의 세월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40"은 고난의 숫자요 고통의 숫자이며 버려진 광야같은 숫자다. 그러므로 애굽 땅도 무려 40년간이나 버려진 땅이요 고통의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벨론 시대이후 애굽은 메대와 바사의 시대까지 실로 애굽은 40년간 전쟁에 패하여 황무지와 같이 버려진 채로 40년이 흘러갔던 것이다.

 

5. 두로를 정복한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게 과연 어떤 전리품이 주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인 체하며 설쳐대면서, 해상무역을 통해 전하의 강자와 부자가 되었던 두로를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두로왕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여서, 두로왕의 부하들이 애굽의 무리를 잡고 물건을 노략질하며, 그들에게 있는 것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보상(삯)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바벨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두로를 심판했지만 얻은 것이 별로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와 노고를 기억하고, 그들로 하여금 풍분한 보상을 받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침으로 애굽을 무찌르는 자가 되어서 효과는 동일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애굽을 물리치면서 지상의 온갖 진귀한 것들을 동시에 그들로부터 빼앗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호시탐탐 남유다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6. 나오며

  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나라들 중에 하나었던 "애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항상 동경하던 나라였다. 그들이 비록 그곳에서 종노릇을 한 400년간 하고 살았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올 때에는 종노릇하러 그곳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올 때면 남유다는 다른 무엇보다도 애굽을 의지하려고 애썻다. 왜냐하면 지구상에서 그러나 애굽은 가장 안전한 나라, 전쟁에 지지 않을 나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갈리었다. 애굽이 계속 패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B.C.갈그미스전투에서 애굽은 바벨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 왜나하면 애굽은 결코 사람이 의지할 수도 없고 약해져 있는 "갈대지팡이"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애굽은 바벨론과 바사와 그리스 제국에서 자신을 지팡이로 이용하는 투숙객들을 상대로 장사하여 돈을 좀 벌게 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집트왕과 같은 자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셈이다.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를 진실로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것은 곧 노아요 욥과 같은 인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2019년 9월 25일(수)

정병진목사


계21:24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땅의 왕들"이 자기의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천국에는 예수님의 신부(어린양의 아내)이자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천국에는 "땅의 왕들"도 있고 "제사장들"도 있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 비밀이 겔45장~48장에 걸쳐서 소상하게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는 "땅의 왕들",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2019-11-06(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9) 새 땅의 분배와 여호와 삼마의 축복(겔47:13~48:35)(부제: 천국에 있는 땅을 기업으로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https://youtu.be/G_5m2MIUo2c


1. 들어가며

  에스겔은 어떤 사람(천사?)의 인도를 따라 새 예루살렘의 성전을 방문하게 된다(겔40~48장). 그때 에스겔은 한 사람의 인도글 따라 성전 곳곳을 세밀하게 견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과 번제단이 준비되자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고지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새 땅에 대한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게 된다(겔45:1~17, 47:13~48:35). 우선 에스겔은 천국의 모든 땅이 세 구역으로 나뉘어지고, 거기에 합당한 자들이 그 땅의 분배를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 예루살렘 성(성읍, 도시)에 대한 환상 중에서 새 땅에 대한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이 좀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보좌 보좌 가까은 곳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장차 성도들이 천국에서 기업으로 받게 될 땅을 얻기 위해서는이 땅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동시에 말해준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직책과 좋은 기업의 땅이 주어지기를 소망한다.

 

2. 에스겔서에서 "새 땅"에 대한 분배의 말씀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에스겔서는 총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1~32장)는 이스라엘(남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이요, 후반부(33~48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 예언이다. 다시 후반부(33장~48장)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앞부분(33~39장)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회복 예언이요, 뒷부분(40~48장)은 새 성전에 관한 회복 예언이다. 다시 새 성전에 대한 회복예언(40~48장)은 새 성전에 대한 회복 예언(겔40장,41장,42장,46:16~18)과 새 제사에 대한 회복 예언(겔44장,45:13~46:15) 및 새 땅에 대한 회복 예언(겔45:1~9,46:16~18,47:13~48:35)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오늘은 새 땅에 관한 회복 예언으로서, 새 땅이 과연 누구에게 분배되며 어떻게 분배되는지 관하여 다룬다.

 

3. 하나님께서는 "새 땅"을 어떻게 기업으로 분배하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새 땅을 어떻게 분배하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새 땅에 들어갈 사람의 각 신분과 직책에 따라서 그 땅을 분배하라고 말씀하셨다. 새 땅에 들어갈 신분에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왕'과 '일반백성' 그룹으로 나뉜다. 다시 말해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땅은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왕과 일반 백성에 따라 땅을 다르게 기업으로 분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은 12지파로 구성되어 있는 바, 각 지파별로 땅이 배분되었다. 이제는 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분배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첫째, "거룩한 땅"은 어떻게 분배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실 땅을 차지하게 하실 때에 먼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을 구별하라고 하셨다(겔45:1, 48:8~12,20). 그 땅의 크기는 길이가 25,000척(13.3km)이고, 너비가 25,000척(13.3km)의 네모 반듯한 땅이다. 그 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거룩한 땅"이 있고, 둘째는 "속된 땅"이 있다. "거룩한 땅"에는 "제사장이 차지할 땅"과 "레위인이 차지할 땅"이 각각 있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예물로 드릴 땅"은 길이가 25,000척(13.3km)이며, 너비가 10,000척(5.32km)의 제사장의 땅이 있다. 이 땅은 지극히 거룩한 땅으로서 제사장들에게 돌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두번째 땅으로 제사장의 땅 윗쪽에 레위인들이 차지할 땅을 따로 두라고 하셨다.

  고로 "거룩한 땅"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차지할 땅으로서, 보다 북쪽에는 레위인들이 차지할 땅이 있고, 연접하여 보다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차지할 땅이 각각 있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자치할 땅은 "지극히 거룩한 땅"이라고 불리며(겔48:12), 레위인들이 차지할 땅은 그냥 "거룩한 땅"이라고 불린다(겔48:14). 그런데 제사장들이 차지할 땅이나 레위인들이 차지할 땅의 크기는 똑같다. 즉 둘 다가 길이(동서)가 25,000척씩이요, 너비(남북)가 10,000척씩이기 때문이다. 이것 중에서 성소(성전)는 제사장들이 차지할 땅(예물로 드리는 땅)의 한 중앙에 두라고 하셨다. 이때 성소는 길이(동서)가 500척이요 너비(남북)도 500척이라고 하셨다.

 

2)둘째, "속된 땅"(성읍)은 어떻게 분배하라고 하셨는가?

  그리고 이이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차지할 땅 아래쪽에 "속된 땅"(일반백성이 들어와서 거주하는 성읍의 기업)을 두라고 하셨다. 이것도 예물로 ㄷ 리는 땅의 일부분이다(겔48:20). 이 땅의 크기는 길이가 25,000척(13.3km)이요, 너비는 5,000척(2.75km)이라고 하셨다(겔45:6). 그리고 25,000척의 땅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한 중앙에 길이가 5,000척, 너비가 5,000척인 성읍(도시)을 두라고 하셨다. 그리고 좌우의 10,000척은 이 성읍에 들어와서 살게 될 일반백성들의 목초지 내지는 경작지로 두라고 하셨다. 성읍에 들어와서 일할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성읍기지의 좌우편에 각각 길이 1만척과 너비 5천척의 땅을 경작지를 두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은 누가 들어가서 사는 땅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백성들 가운데, 그 성읍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겔48:19).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에서 선발된 자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3)셋째, "왕의 땅"은 어떻게 분배하라고 하셨는가?

  한편, 새 땅에는 "왕"도 특별한 몫의 땅이 있었다. 그것은 땅의 한 중앙에 있는 "예물로 드릴 땅(25,000척*25,000척)"의 좌우에 있는 땅으로서, "예물로 드릴 땅"과 연접하여 25,000척의 너비로 하여 대해(지중해)까지 전부의 땅을 왕의 땅으로 분배하라고 하셨고, 마찬가지로 "예물로 드릴 땅"과 연접하여 25,000척을 너비로 하여 요단강이나 사해까지 땅의 정부의 왕의 땅의 분배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왕의 땅"을 따로 두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왕이 땅이 없어 "예물로 드린 땅"이나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한 땅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겔46:16~18). 충분한 자기의 땅을 갖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4)넷째, 일반백성 즉 이스라엘의 12지파의 땅은 어떻게 분배하라고 하셨는가?

  이제는 일반백성이 차지할 땅 곧 12지파들이 분배받아 차지할 땅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땅 곧 "제사장의 땅과 레위인의 땅과 성읍기지의 땅(25,000척*25,000척)"을 제외한 다음, 그것을 가운데에 두고, 그것의 위 아래의 땅을 제비를 뽑아서 각각 분배하여 기업으로 주라고 하셨다. 먼저 "레위인의 땅"의 윗부분(북쪽)은 저 멀리 다메섹 위쪽부터 아래의 레위인의 땅까지 포함하여 총 12개 지파 중에서 7지파에게 그 땅을 분배하라고 명령하셨다(겔48:1~7). 그리고 "성읍기지의 땅"의 아랫부분(남쪽)은 바로 밑부터 남쪽 끝부분까지 총 5개의 지파에게 그 땅을 분배하라고 하셨다(겔48:23~29). 고로 12지파가 분배받을 땅을 제일 북쪽에서부터 제일 아래 남쪽에 있는 땅까지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아래 그림참조].

  [최북단] 단 지파의 땅 - 아셀 지파의 땅 - 납달리 지파의 땅 - 므낫세 지파의 땅 - 에브리임 지파의 땅 - 르우벤 지파의 땅 - 유다 지파의 땅 - 레위인들의 땅 - 제사장들의 땅 - 속된 땅(성읍기지의 땅) - 베냐민 지파의 땅 - 시므온 지파의 땅 - 잇사갈 지파의 땅 - 스불론 지파의 땅- 갓 지파의 땅 [최남단]

 

4. 천국에서 제사장과 왕이 되려면 이 땅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놀라운 사실은 새 땅에서 각자가 기업으로 차지할 땅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신분에 따라 거주할 땅이 구별해 놓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소(성전)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이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고, 성전으로부터 가장 멀리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까이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순서에 따른 구별이다. 고로, 하나님의 성전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더 귀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땅인 천국에서는 어떤 신분의 구별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일반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땅이 있고, 또 하나는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땅이 있다. 먼저, 일반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땅은 "왕의 땅"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땅은 "제사장의 땅"이다. 고로, 새 땅인 천국에서는 평신도로 친다면 왕이 최고의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주의 종으로 친다면 제사장이 최고의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1)천국에서 제사장이 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까이 거주하는 구별된 레위인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레위인들이요, 또 하나는 레위인들 중에서 제사장들이다. 그런데 새 땅에서는 레위인들에게 분배되는 땅이 따로 있고, 제사장들에게 분배되는 땅이 따로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처인 성소(성전)는 레위인들의 땅에 있지 않고 제사장의 땅의 한 중앙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려면 제사장의 직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가 천국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취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겔48:11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럴려면 2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는 자신의 직분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의 합당한 직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제사장의 자격과 기준에 대해서는 이미 겔44:15~31에서 배운 바 있다. 이들은 입는 옷이 다르며, 머리털에 관한 규정이 다르고, 결혼대상에 대한 규정도 따로 가지고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러한 것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줄 알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송사하고 재판하는 일을 해야 며,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될 때에 레위인들도 같이 우상을 섬겼지만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던 것이다.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것이다. 고로 레위인으로 구별된 사람이라도 천국에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목회자)로서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2)천국에서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편, 천국에서는 일반백성이지만 하나님의 처소인 성소(성전) 가까이서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 그중에서 속된(일반적인) 땅인 성읍(새 예루살렘 성)에 거주할 자는 원래는 자기 지파에 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목적에 따라 속된(일반적인) 땅에 와서 살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기업은 자기 지파의 땅 안에 있다. 하지만 왕의 신분을 가진 자는 다르다. 그는 어느 지파에 속해있든지 그가 차지할 땅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땅" 양쪽으로 자신의 기업을 가지고 있는 자다. 그러므로 새 땅인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일반 백성이 보다 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갖기 위해서는 왕의 직분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자가 새 땅에서 왕의 직분을 갖게 되는가? 그것은 3가지의 조건이 있다(겔45:9~17). 첫째는 포악(폭력)과 겁탈(파괴)을 행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왕은 자기에게 권력이있다고 그것을 함부로 남용해서는 아니 된다. 둘째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저울추를 사용하여 속여 빼앗는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예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잘 바치는 것이다. 왕은 백성들로부터 받는 것이 있으나 그것을 다시 구별하여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에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하는 것이다.

 

5. 새 예루살렘 성(성읍)의 출입문의 크기와 이름은 어떠한가?

  이제는 자기 지파에 거주하는 일반백성들이 들어가서 거주하는 "속된(일반적인) 땅"의 성[읍](아마도 '새 예루살렘 성'을 지칭하는 것이라 확실시 됨)의 출입문의 크기와 이름에 관하여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성읍의 크기를 지정해 주셨다. 그것은 길이(동서)와 너비(남북)가 각각 5,000척(5.32km)인데, 이 성읍의 들로서 250척을 두고, 공지로서 250척을 두라고 하셨기에, 실제 이 성[읍]의 크기는 4,500척이라고 할 수 있다(겔48:15~1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성[읍]의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의 문들을 두라고 하셨는데, 그 성문들의 이름까지 지정해주셨다. 그 성문들의 이름은 야곱이 낳았던 12아들들의 이름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북쪽 성문의 이름은 르우벤 문, 유다 문, 레위 문이며, 동쪽 성문의 이름은 요셉 문, 베냐민 문, 단 문이며, 남쪽의 성문의 이름은 시므온 문, 잇사갈 문, 스불론 문이며, 마지막으로 서쪽의 성문의 이름은 갓 문, 아셀 문, 납달리 문이다. 고로 사방의 합계는 18,000척이 된다.

  한편,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서 거하게 될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훨씬 커서 각각 12,000스타디온(2,400km)이며,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문들이 있는데, 그 문들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쓰여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어느 방향에 어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에스겔서에는 동서남북에 있는 12개의 각 성문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나온다는 사실이다(계21:12~13). 한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벽 아래에는 12개의 기초석이 있는데, 그것들 위에는 어린양의 12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나온다(계21:14). 고로, 천국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가 함께 들어가는 아주아주 거대한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6. 새 땅에서 여호와는 어디에 계시겠노라고 말씀하셨는가?

  에스겔서 11: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성읍으로부터 떠나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남유다의 멸망 5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에스겔43:4에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동문을 통하여 들어오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성전의 회복의 환상 가운데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자 그후에 여호와의 영광은 새 성전에 가득차게 된다. 그리고 에스겔서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겔48:35)에 가면,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좌정하고 계시는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는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 삼마"라는 뜻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이제 새 성전이 완공되고 새 예배가 회복되고 새 땅에 분배되면, 새 성읍인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겠다는 뜻이다. 절대 떠나시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는 교회를 통해 일시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성취는 저 천국에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우리는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받으려면 교회를 떠나서는 아니 된다. 교회가 임시 여호와 삼마의 처소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새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이 완공될 것인가? B.C.586년 남유다의 멸망이후 인류 역사상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새 성전과 새 예루살렘 성"과 같은 성전과 성읍이 건축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겔33장에서 39장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보면, 그것은 육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새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다. 그것은 겔33장의 세례요한의 사역, 겔34장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역, 겔36장의 새 영이신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회복될 영적인 이스라엘 곧 교회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 제3의 성전이 완공되고 이스라엘백성이 제사장으로 참여하여 초막절을 집례하는 지상의 천년왕국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천년왕국'은 본인의 요한계시록 20장 강해를 참조할 것). 고로, 완전한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여호와 삼마"의 상태는 지상에서 성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 천국에서 온전히 완성될 것이다. 잠시 성육신하신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성도들은 그것을 맛보기로 지금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과도기적인 교회가 그 중간에 끼어있는 것이다. 고로 교회 이외의 다른 새 하나님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완전한 새 땅의 회복과 분배는 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니 말이다.

 

2019년 11월 06일(수)

정병진목사 


에스겔 선지자의 글의 하이라이트는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환상 곧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보았다던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과연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비근한 예로, "새 성전"은 예수의 지상재림 이후에 있을 천년왕국의 성전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천국에 들어갈 자는 마지막에 어떤 것을 행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바른 종말론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 절반 정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2019-10-30(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8) 회복될 새 성전에 따른 새 제사에 대한 환상(겔43:12~47:12)
https://youtu.be/yit4zYRitBg



1. 들어가며

  에스겔선지자는 남유다가 함락된 후 14년째 되던 해에 환상을 보게 된다. 그는 장차 예루살렘에 세워지게될 "새 성전"과 거기에서 드려질 "새 제사"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과 레위인과 왕(통치자,군주)이 차지하게 될 "새 땅"에 대한 하늘의 계시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을 좀 세분하여 나눠보자면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은 겔40:1~43:11에 나오며, "새 제사"에 대한 환상은 겔43:12~47:12에 집중적으 나오고, 마지막으로  "새 땅"에 대한 환상이 겔43:13~48:35에 나온다. 물론 이것들이 서로 겹쳐있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이 때 보았던 "새 제사"에 대한 환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어떤 이유 때문에 기록된 것일까?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2. 천년왕국은 정말 장차 지상에 세워지게 될 나라인가 아니면 하늘에 있는 통치를 가리키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진짜로 이 지상에 세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천년왕국은 결코 물질적인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0장에 등장하고 있는 "천년왕국"은 결코 문자적으로 천년동안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는 왕국을 가리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계20:10에 보면, 곡과 마곡의 전쟁이후 마귀가 불과 유황불에 던져지고 있는데, 그 때가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같이 불못에 던져지는 시기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헬라어원문참조). 다시 말해,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일으키게 될 "아마겟돈전쟁"과 마귀가 일으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하나의 같은 전쟁을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새 성전에 대한 환상도 역시 천년왕국 기간에 지상에 세워질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 40~48장에 이르는 새 성전과 새 제사 그리고 새 땅에 대한 환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 이 땅 위에 세워질 거들이 아니라, 인류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겔38~39장) 이후에 있을 하늘에 있는 성전과 예배와 땅에 대한 모형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교회에서 실행되고 있으며, 이어서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게 될 천국에서 완전히 실행될 것이다. 그러니까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환상은 과도기적인 성전에 대한 환상이자 땅에 관한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3.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어떻게 생겼으며 장차 어떤 성전을 가리키는 것인가?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에스겔 40:1~43:12에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그동안 지상에 세워진 그 어떤 성전보다도 규모면에서 대단히 크며, 성전기명에 대한 묘사도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해,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지상에 세워질 제3의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에스겔 성전은 제1성전(솔로몬성전)과 제2성전(스룹바벨성전,헤롯대왕이 나중한 증축한 성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새로운 성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된 성전에 대한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이렇다. 그 성전의 외곽의 넓이가 각각 500척(275m)이며, 바깥문이 동쪽과 북쪽과 남쪽에는 있지만 서쪽에는 없다. 그리고 새 성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즉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바깥뜰이 펼쳐져 있고, 다시 안쪽문들(동쪽문, 북쪽문, 남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번제단과 외소와 내소가 있는 안뜰이 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이 지상에 세워질 성전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선 다음과 같다. 첫째, 성전의 안에 있어야 할 성전기명들이 에스겔 성전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지어진 제1성전(솔로몬성전)과 제2성전(스룹바벨성전)에는 성소(외소)와 지성소(내소)에 성전기명들이 있다. 즉 성소(외소)에는 일곱금촛대와 분향단이 놓여있으며, 떡상이 놓여 있다. 그리고 지성소(내소)에는 법궤가 놓여 있다. 하지만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성전 안에는 이러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없다. 즉 에스겔 성전 안에는 일곱금촛대와 분향단, 떡상이 없으며, 심지어 법궤도 없다. 다만 성소(외소)에 제단처럼 생긴 상이 하나 있었을 뿐인데, 그 상의 이름은 "여호와 앞의 상(슐한)"이라고 말씀해주셨다(겔41:22).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와있는 성전 안에는 외소와 내소에 있어야 할 성전기명들이 역시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본 생수 곧 성전 안에서 흘러나와 강물을 이루는 생명의 물이 제1성전과 제2성전에 없지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는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겔47:1~12,계22:1~2). 다시 말해, 에스겔 성전을 보면, 성전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것은 지상에 있는 성전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오직 하늘에 있는 성전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수로서 성령을 가리키는 바, 에스겔이 본 성전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나중에 좀 더 다루게 될 것이다).

 

4. 성전 안뜰에 있는 번제단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에스겔이 본 환상의 성전 안에는 안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번제단과 외소와 내소 건물이 있었다.

   거기에는 뜰 앞쪽에 번제단이 있었는데, 이는 제1성전과 제2성전보다 훨씬 커다란 번제단이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척(6.38m)인 정방형의 이 번제단은 총 3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번제단은 워낙 높아서(11척=5.8m) 이곳에 올라가 제물을 사르거나 번제단의 네 뿔에 제물의 피를 바르려면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에스겔에서 성전 구석구석을 순례케 하고 있는 어떤 사람(천사이거나 성육신 전의 그리스도?)은 이제 번제단의 봉헌식을 할 것을 명령하였다. 성전봉헌식은 8일동안 진행하는데, 첫날에만 수송아지라고 속죄제물을 삼아 그 피를 제단의 네 뿔에 바르고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라고 하였다. 그기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날마다 흠없는 숫염소로 속죄제물을 드리고, 수솟앙지아와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새 성전에 번제단이 그대로 있는가? 그것은 새 성전이 제3의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성전으로서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는 교회 안으로 들어와 일찍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5. 에스겔의 새 성전 안에는 누가 있었으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스겔이 본 새 성전 안에는 4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일반백성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왕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이들 4가지 사람들이 왜 그러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셨다.

  첫째, 거기에는 일반백성들이 있다(겔44:5~8).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는 원래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대해 제사장의 국가로 세움을 받았던 민족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제사장적인 신분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성전 안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일 데리고 들어와 성전을 더럽히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직분을 빼앗아 구별된 다른 사람들 곧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일반 백성들로서 아무런 신분이 주어지지 않는 자들이 있다.

  둘째, 거기에는 레위인들이 있다(겔44:9~14). 이들은 처음에는 일반백성들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도록 직분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우상을 따라 주님을 떠나게 됨으로 그들을 주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역시 제사장의 직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성전을 지키는 역할과 성전에서 모든 수종드는 일을 맡기신다고 했다.

  셋째, 거기에는 제사장들이 있다(겔44:15~16). 거기에는 사독의 자손 레위자손으로서 제사장들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며, 외소와 내소에 들어가 섬기는 직분을 감당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 어떤 옷을 입고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고, 제사장의 직무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셨다.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려 할 때에는 성전 안뜰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거룩한 방에 들어가 평상복을 벗고 제사장복 곧 가는 베옷을 입고 가는 베관을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평소 때에는 제사장은 결코 머리털을 대머리처럼 밀지 말라고 하셨으며, 너무 길게 자라게도 너무 짧게 깎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려 할 때에는 결코 포도주를 마셔셔난 아니되며, 죽은 사람의 시체를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가족 때문에는 허락한다고 하셨다. 이들은 결혼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했으니, 과부나 이혼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말고 오직 처녀나 제사장의 과부된 자를 아내로 취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제사를 드리는 일 외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송사하는 재판을 하되, 하나님께서 가르쳐준 규례대로 재판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절기에는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라고 하셨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 그들에게는 따로 땅의 기업이 없는 대신 그들에게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셨다(겔44:28).

  넷째, 마지막으로 거기에는 왕들(군주들, 통치자들)도 있었다(겔45:7~12). 그들은 왕들인데, 그들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차지하는 땅 밖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새 예루살렘 안에서 왕들로서 살아가려면 첫째, 포악과 겁탈을 자신에게서 제거하라고 하셨다. 둘째,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백성들로부터 착취하지 말라고 하셨다. 셋째, 항상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사용하라고 하셨다. 만약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는 땅을 차지하는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6.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스겔에게 새 성전을 안내해준 그(겔43:6,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이번에는 성전 문으로 갔다. 그런데 보니, 성전의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서는 아라바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에스겔은 손에 측량줄을 잡고 물 속으로 들어가 천 척(532m)을 재어보았다. 그랬더니 물은 자신의 발목에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천 척(532m)을 측량하고 앞으로 가니 물이 무릎에 차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천 척(532m)을 측량했더니 이제는 더이상 건너가지 못할 강이 되었다. 강가에는 나무들이 심히 많았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들이 가득했으며, 고기도 심히 많았다. 그(천사?)는 장차 그 강에서 어부들이 엔게디(사해서쪽)로부터 에네글라임(사해동쪽)까지 그물을 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강 좌우에는 모든 종류의 과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를 낼 것이며, 열매는 달마다 맺게 되는데, 그 열매는 음식이 되고 그 잎들은 약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스겔44장에 보면, 그(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동쪽 바깥문에 이르자 동쪽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때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동쪽바깥문은 닫고 다시 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이제 성전으로 들어온 하나님께서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렇다. 성전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지만 성전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물이 모든 생명체를 살게하는 것을 보니, 그 물은 분명 "생명의 물" 곧 "생명수"였던 것이다.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니, 그 생명수의 역할을 죽은 것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역할이다. 어느날 초막절 끝날(7월 22일)에 예수께서 이러한 설교를 하신 적이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그런데 사도요한은 생수의 강을 성령이라고 해석했다(요7:37~39). 곧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왔던 물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실 A.D.30년 오순절 이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이신 교회 안에 계신다. 그리하여 이제 교회는 그분의 보좌가 되었고 그분의 발을 두는 처소가 되었다(겔43:7). 그러니 성전으로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계시지만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으로 성령을 보내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고 있다(겔47:12).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A.D.95년경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하늘에서 성전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 그 자체이신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의 물(생명수)이 흘러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고, 강 좌우편에 생명나무들이 즐비해 있어서 달마다 12실과를 맺고 있었으며, 그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 있었다고 고백하였다(계22:1~2). 다시 말해, 에스겔이 본 성전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 대한 모형이었던 것이다.

 

7. 나오며

  에스겔이 B.C.573년경이 보았던 환상은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환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새 성전은 장차 2차성전 이후 지상에 세워질 것이라고 보고 있는 성전이 결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에스겔이 보았던 성전 안에는 지상의 성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성전기명들 즉 금촛대와 분향단, 떡상과 법궤 등의 성전기명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강을 이루는 것을 에스겔이 보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이 있는 성전 문지방에서는 물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증거들이 더 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성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곡과 마곡의 전쟁 후에 나오며, 그것이 천국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전과 매우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하늘에 있는 성전에 대한 모형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왔던 물은 생명수로서 성령의 사역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이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며, "생명수"는 생명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의 시기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서도 일반백성이나 레위인처럼 자신의 신분을 박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며, 제사장들과 왕들처럼 천국에서 높은 지위를 얻은 채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른지도 모른다. 분발하자. 충성하자. 횓개하자. 소망하자. 할렐루야.!

 

2019년 10월 30일(수)

정병진목사

  


에스겔은 그의 사역 20년만에 놀라운 하늘의 환상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그것은 이미 14년전에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성전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새 성전"을 두고 어떤 이는 천년왕국 때에 지상에 실제로 건축될 천년왕국성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것을 영적인 성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지상의 성전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을 더 많이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성전(겔40:1~43:11)은 어떤 모습의 성전이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성전인가?

2019-10-23(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7) 회복될 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환상(겔40:1~43:11)
https://youtu.be/mnuPdhHXrW4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B.C.572~5733년경 에스겔선지자에게 장차 회복될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하여 환상을 보여주신다(겔40~48장). 에스겔은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지 25년이 되던 해에 능력의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그의 영이 바벨론에서 순식간에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져 장차 새롭게 지어질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계시를 보았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가 보았던 "새 성전"에 관한 환상 부분(겔40:1~43:11)을 살펴보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전을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 기간에 이 땅에 세워지게 될 "제3의성전" 혹은 "천년왕국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 땅에 다시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만약 이 주장이 잘못 되었다면,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의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래서 새 생전은 과연 어떻게 생겼으며 그것을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져 주님께서 3,500년전에 보여주신 새로운 성전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2. 새 성전에 대한 환상 예언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심판이고(겔1장~32장), 하나는 회복이다(겔33~48장). 그중에서 에스겔40~48장은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회복에 관한 예언을 다루고 있다. 에스겔은 그의 나이 50세되던 해 1월 10일, 또 한 번 이상을 보게 된다(겔40~48장). 그는 바벨론의 델아빕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힘입어 그의 영이 빠져나간 뒤, 이스라엘의 땅으로 순식간에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장차 회복되어 건설될 새 생전이 눈 앞에 있었다. 그때 새 성전의 이곳저곳을 안내할 안내자가 있었는데, 그는 "놋같이 빛나는 사람"이었다(아마도 천사였든지 성육신 전의 예수님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그들은 에스겔과 함께 이스라엘의 매우 높은 산(아마도 감람산이었을 것이다)에 있었다. 그때 에스겔은 남쪽을 향하여 "성읍형상 같은 것"(성전은 성전인데 워낙 커서 성읍처럼 보임)을 보게 된다(이것이 바로 장차 회복되어 새로 지어질 새 성전의 모습이다).

 

3. 에스겔은 언제 새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환상을 보았는가?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본 때는 그가 포로로 사로잡혀간 지 25년 되던 해였다(겔40:1). 그리고 그 해는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지 14년이 되던 해였다. 에스겔은 사실 제2차 바벨론 포로기에 여호야긴왕과 함께 바벨론에 끌려간 귀족에 해당된다. 그때는 B.C.597년경이었다. 그리고 5년 뒤,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다. 그는 원래 사독가문의 제사장으로서 부시의 아들이었는데, 제사장으로서 직무 한 번을 수행해보지 못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온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25년이 지나갔다. 그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나이는 25세였고, 다시 25년이 흘러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에 이제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해는 예루살렘이 성이 함락된 때부터(B.C.586년) 약 14년이 흐른 해였다(B.C.572년).

  그렇다면, 왜 여기에 "25"라는 숫자가 등장한 것일까? 에스겔에서 "25"라는 숫자는 첫째, 에스겔이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의 나이와 똑같다(겔1:1~3). 둘째,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동방태양을 경배하고 있는 제사장들의 숫자값이다(겔8:16). 셋째, 겔40:1~43:11에 나오는 새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층계)의 총숫자(7개+8개+10개=25개)이다(겔40:22,31,49).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의 길이와 넓이가 각각 25,000척과  25,000척이다. 그렇다면, 왜 에스겔서에서는 이렇게 "25"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가? 그것은 희년의 수인 "50"의 절반의 숫자와 관련이 있는듯 하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꺾어져서 희년으로 들어가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심판이 끝나가고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숫자가 25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에 해당한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환상을 1월 10일에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월 10일은 의미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첫째, 1월 10일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유월절양을 준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출12장에 보면 유월절규례가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구대로 한 집에 한 마리의 양을 준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는데, 그때 양을 선택하여 집에 두고 검사하는 날이 바로 1월 10일이었다(출12:3~5). 다시 말해, 애굽의 포로생활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가져달 줄 출애굽을 준비하는 짧은 기간이 1월 10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짜 있을 회복과 자유의 날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환상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둘째, 1월 10일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텐트를 치던 날이었다(수4:19). 그러므로 1월 10일은 또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관한 환상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4. 새 성전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렇다면,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어떻게 생겼는가? 새 성전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보면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다보면 복잡하기 그지 없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요약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의 사방의 담은 정사각형인데 길이와 넓이가 각각 500척이다. 1척이 1규빗(45.6cm)에 어른의 손바닦길이를 더한 것으로서 보통 53.2cm라고 한다. 그러므로 500척은 액 266m정도 된다. 고로 성전의 크기는 약 20,450평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담의 크기는 두께와 넓이가 각각 6척(3.2m)이다. . 새 성전(500척*500척)은 사실 성막(378평=100규빗*50규빗)에 비하면, 54배 차이가 난다. 그만큼 새 성전은 사이즈가 크다. 둘째, 성전은 이중구조(바깥뜰과 안뜰)로 되어 있으며, 둘 다 사방 중에서 동쪽과 북쪽과 남쪽에만 1개씩 문이 있다. 즉 서쪽에는 문이 없는 것이다. 문의 크기는 길이가 25척이요, 넓이가 50척이다. 문안쪽에는 좌우에 각각 3개씩의 문지기의 방이 있다. 셋째, 외부에서 외소까지는 총 25개의 층계를 올라가야 한다. 즉 외부에서 바깥뜰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7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올라갈 때에는 또 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마지막 안뜰에서 외소(성소)로 올라갈 때에는 1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한 계단의 높이를 30cm로 계산한다면, 7.5m가 된다. 넷째, 외부에서 문을 통과하여 바깥뜰에 들어가면, 바깥뜰벽으로부터 50척정도의 크기가 벽에서부터 박석이 깔려있고, 문의 좌우에 각각 5개씩 방들이 있다. 그런데 서쪽에는 문도 없고 방도 없다. 그러니, 동쪽벽에 붙어서 10개의 방이 있고, 북쪽과 남쪽에도 각각 10개의 방이 있으니, 새 성전의 바깥벽에 붙어있는 집들이 총 30개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백성들이 기거하는 방이며, 거기서 제물을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것 같다. 다섯째, 안뜰 동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앞에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서 더 앞으로 가면 성전이 있다. 성전은 외소(성소)와 내소(지성소)가 구분된 집이 있는데, 외소와 내소 모두에서 오직 외소에만 나무제단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고 불린다(겔41:22). 다시 말해, 새 성전 안에는 성막이나 솔로몬성전의 성소에 있었던 일곱금촛대, 분향단, 떡상이 없으며, 지성소 있었던 법궤도 없는 것이다. 달랑 하나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일컬어지는 나무제단만 있을 뿐이다. 여섯째, 외소와 내소의 성전 좌우에는 제사장들이 거하는 "거룩한 방"이 있고, 안뜰의 북쪽문을 열고 내려가면 왼쪽편에 회랑(다락방)이 3층으로 지어져 있다(겔42:10~14). 일곱째, 성전의 동쪽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은 성전 남쪽으로 흘러가면서 강을 이루게 되고, 강 좌우편에 나무들이 심히 많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과 고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특기 강 좌우편에 있는 나무들은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할 뿐더러 열매가 끊이지 않았으니 달마다 새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약 재료로 될 것이라고 했다(겔47장).

 

5. 새 성전은 천년왕국성전일까 아니면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새 성전"은 과연 천년왕국에 사용되기 위해 건축될 미래의 성전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성전인가? 사실 이러한 성전이 장차 존재할 것인지에 대해서 랍비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A.D.90년 구약39권을 정경으로 결정하는 얌니야 종교회의 때에 에스겔서의 40장부터 48장까지를 과연 정경 속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에스겔이 말하는 새 성전은 실제로 예루살렘에 건축되기는 불가능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정의 크기나 땅의 크기가 실제 예루살렘은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예수재림 이후에 이땅에 건축될 "천년왕국성전(제3의 성전)"인가 아니면 "또다른 성전인가"하는 것은 다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 이 땅위에 세워질 물질적인 제3의 성전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 성전의 크기가 실제 예루살렘의 땅의 크기보다 훨씬 크기에 실제로 건축되는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을 이룬다는 것은 사도요한이 A.D.95년경 셋째하늘에 올라가서 보았던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과 에스겔의 성전이 비슷한 것이다. 셋째, 겔33~3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미 예수님의 재림으로 회복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은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의 견본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즉 겔33~39장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회개를 외치는 파숫꾼으로 세례요한을 통한 회복, 직접 목자로 오시되 다윗이란 이름으로 오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통한 회복, 성령의 내주를 통한 회복, 하늘의 군대의 준비, 아마겟돈전쟁(곡과마곡의전쟁)을 통한 회복이 나왔었다. 그러므로 이 다음은 하늘에서 있을 성전과 예배와 땅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제3의 성전을 이스라엘에 건축하고 어린양의 피의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디 때문이다. 이미 구약의 예언과 예표에 따라 이미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번제단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셨는데 또 다시 어린양의 피의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경륜을 거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

 

5.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는 위의 말씀들을 통해서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영적인 성전으로서 "교회"를 예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는 구약의 물질적인 성전과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전의 중간단계에 있는 성전으로서, 사람공동체인 영적인 성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의 속성과 더불어 하늘의 속성을 동시에 다 지니고 있는 독특한 성전이다. 즉 교회는 이 땅에 속한 성전으로서 일곱금촛대(성령의 인도하심), 분향단(기도생활), 떡상(말씀생활)을 필요로 한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면서 모세로부터 시내산 율법을 받아 지키면서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속성으로서 교회는 생명을 흘려보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성령을 통해서 생명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회는 하늘에 속한 성전이다.

  그렇다면, 새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사실 에스겔 11장에 보면, 남유다의 우상숭배와 음란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주변강대국들에 대한 의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신다(겔11:23). 아니 떠나가신 것이다. 그것을 에스겔선지자가 전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만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문을 지나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즉시 남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멸망당하고 말하고 함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새 성전이 완성되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동쪽 문으로 되돌아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겔43:4). 그때 에스겔은 한 사람(천사이거나 성육신 전의 예수그리스도)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많은 물소리와도 같았다(겔43:2).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있을 곳이라(겔43:7)" 그렇다.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였던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의 한 중심에 있다. 그런데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새 성전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 있었다. 왜냐하면 새 성전이 하나님의 보좌 자체였기 때문이다. 고로, 새 성전을 교회라고 본다면, 오늘날 지상의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보좌인 셈이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요, 그분의 발을 두시는(통치하시는) 곳인 셈이다.

 

6. 나오며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의 모습(겔40:1~43:11)은 지상의 그 어떤 성전보다도 거대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때껏 지상에 있던 성전과는 달랐다. 왜냐하면 성소와 지성소에 성물들이 없었기 때문이요, 성전동문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와 모든 생명체를 살리고 강좌우에 달마다 실과를 맺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교회"를 예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크기에 그 어떤 사람들도 수용할 만하며,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처소이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를 아껴야 한다.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교회의 보존을 위해 힘써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곧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곧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0월 23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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