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께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하나됨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는 7가지의 하나를 힘써 지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은 직분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을 귀히 여기고 그것의 목적에 맞게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7가지 하나와 교회에게 은사로 주신 직분 5가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1-01-13(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1)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함(엡1:1~16)
https://youtu.be/NNwsGg7H1PY [혹은 https://tv.naver.com/v/17916458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심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구원경륜을 소개하고 있으며, 천사들도 전혀 몰랐던 인간구원에 관한 예정론이 들어있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7가지 방면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에 관한 심오한 말씀들을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영성가로 치자면 아마도 기독교 최고의 영성가가 아닐가 생각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는 비밀스러운 계시를 받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특히 그가 에베소서를 통하여 들려주는 말씀과 그가 올리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또한 제시해주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성도들이 힘써야 할 교회공동체의 연합과 일치에 관한 말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교회의 7가지 하나됨의 필요성을 살펴볼 것이며,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5가지 직분적인 은사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하여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하며, 성도를 온전케 하고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독려해야 한다. 

 

2. 교회공동체와 일치와 연합을 위한 7가지 하나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7가지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몸과 성령과 소망, 주와 믿음과 세례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들이다. 이들의 구조는 셋 셋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셋은 성령 하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가운데 셋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하나는 성부 하나님을 각각 거론하고 있다.

  먼저, 맨 처음 셋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몸과 영과 소망"에 관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제일 처음으로 "몸"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구성원 모두가 자신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형제들이라는 것과 지체들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전12:12~13,20,27). 그리고 몸은 한 분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가 되는데,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한 가족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첫번째 하나의 묶음의 내용들이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의 묶음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님으로 인하여 하나되는 것을 소개한다. 그것은 "주님과 믿음과 세례다" 제일 처음으로 하나는 "주님"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한다. 성도들은 결코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신약이후 주님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믿음"도 하나여야 한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믿는 믿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잉태과 출생, 그분의 공생애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신앙고백이 항상 같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곧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한 가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도 하나여야 한다. 이때 받는 세례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오늘날 장로교에서는 보통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만,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한 번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준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여기서 하나를 언급할 때에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믿는 이들이 세례를 통하여 다 "옛사람"으로 하나가 되며, 죽고 그리스도와 접붙힘을 받은 후에는 "새 사람"으로 하나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고 소개한다. 사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서 주일에 고백하는 "사도신조"를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신앙고백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 정 하나님을 제대로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는 생각을 다시 확고히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인가 세 분인가? 어찌보면 이것도 맞는 것 같아 보이고 저것도 맞아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엡4:6).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특히 사도바울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마지막 사항으로 언급한 것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모든 만)의 아버지 곧 근원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낳음을 받은 자가 곧 교회요 그 지체들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은 3가지라는 것을 소개한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분 홀로 모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신다. 둘째, 성자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통일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고는 존재하는 만물도 사실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영원히 성자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경영도 알고 미래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님은 만유 가운데 계신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각자의 속에 지금도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셔도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나눠서 순차적으로 집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두 차례에 걸쳐 내려오셨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신(눈높이를 하신) 것이다. 그 중에 첫번째 낮아지심은 성육신하심이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육체를 입은 것이다. 두번째는 그분이 음부에 내려가신 낮아지심이다.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했다. 그분께서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후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이다(엡4:8).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분께서 지극히 높으신 곳에 올라가셨다면 그분은 땅의 아래 부분들의 더 낮은 곳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곳은 어디인가? 그분은 음부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니다. 시편16편 기자인 다윗은 장차 나타나게 될 메시야는 결코 음부에서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시16:10).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땅 속에 3일간 계셨다(마12:40). 왜냐하면 땅 속에 음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 뒤에 살아나셨다. 그분에게서 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분의 1차적인 승귀다. 부활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승귀하셨다. 그것은 승천이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무슨 일을 하셨다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것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다시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전통적으로는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을 사로잡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부활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승천하실 때에는 누구를 사로잡았는가? 그것은 엡4:8에 답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때 사로잡혔던 자를 사로잡으시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사로잡혔던 자들'이다. 추정해보면, 사로잡혔던 자들은 사탄마귀에게 육신의 죽음을 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음부에 내려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은 부활체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원문), 사로잡은 자들은 죄로 인하여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자들을 예수께서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들에게 면류관도 주고, 집도 주고 상급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4. 교회에게 주신 은사로서 주어진 5가지 직분은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 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있는가 하면(고전12:8~10), 직분의 은사들이 있다(고전12:28~29, 엡4:11).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는 오늘날에도 그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총5가지 직분의 은사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인 교사. 여기서 목사와 교사를 하나의 직분으로 본다면, 4가지 직분의 은사들을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12:28~29에는 5가지 직분의 은사들 중에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만 나온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엡4:11에 나오는 5가지 은사를 다 받은 자다. 딤전2:7과 딤후1:11에 의하면, 스는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행13:1~2에 보면, 그는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온전케 하라고 주신 5가지 은사들은 대체 어떤 은사일까?

  첫째, "사도"의 은사가 있다. 사도의 은사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도록 친히 보낸 자들을 가리키는데, 어린양의 12사도들이 첫번째 사도들이다(눅6:13).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도가 있는데, 그는 "바울"이다.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위해 보냄받은 사도라고 한다면,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이기 때문이다(갈1:1, 15~16, 2:7~8). 첫번째 어린양의 12사도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자기의 길을 감으로 베드로는 맛디아를 제비뽑는데 그때 사도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자라고 했다(행1:21~22). 그러므로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선지자"의 은사가 있다. 여기서 선지자가 함은 구약의 선지자와는 좀 다른 은사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오실 메시야를 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선지자는 더이상 오실 메시야를 예언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미 오신 메시야를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선지자는 보통 대언자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13:1에 보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고, 사도행전 15:32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였던 유대와 실라(바울의 2차전도여행 수종자)가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신약의 선지자 중에는 예언적인 은사로 미래의 일을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선지자라기보다는 예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자라고 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초대교회가 개척되고 세워질 때에 가장 필요한 직분의 은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기초)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엡2:2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경륜의 비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했다(엡3:5).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정도의 기능을 가진 자를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지자는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은사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전하는 자"의 은사가 있다. 말 그대로 여러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 속한다. 그러나 복음전하는 자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들 중에 한 명으로서, 사마리아교회를 개척했던 빌립집사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행21:8).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바로 "복음전하는 자"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기의 후계자로서 에베소교회에 파송했던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기도 하였다(딤후4:5).

  넷째와 다섯째, "목사인 교사"의 은사가 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은사는 목사의 은사요 교사의 은사다. 그런데 이 두 직분을 언급하는 헬라어단어를 보면, 정관사가 하나만 붙어 있다. 그러므로 "목사이면서 교사"인 직분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여기서 "목사"는 양떼들을 목양하는 자라는 뜻이다. 또한 목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바울은 말한다. 만약 이 두 직분을 나눠서 "목사와 그리고 교사"라고 한다면, 오늘날 교회학교(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교사의 직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목사"라는 직책은 사실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포이멘"이라는 단어로서 양떼를 치는 "목자"와 동일한 단어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목자라는 단어를 목사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참고로, 오늘 위의 5가지 직분 가운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직분은 "목사"와 "교사"뿐이다. 앞으로 3가지 직분인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는 원래적 의미로서 그 직분이 현재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교회에서 이러한 5가지 직분을 주셨을까? 그것은 엡4:12에 나오는데 다음주에 공부해보기로 하자. 

  

5. 나오며

  오늘은 교회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7가지 하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엡4:4~6). 그리고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셨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땅 아랫곳인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그때 승천하시면서 사탄에 의해 육체적인 죽음을 맛보았던 자들로서 그때 낙원에 있던 성도들을 다시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지금 그들은 부활체를 입고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아서 자기 천국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각자 성령께서 정해주신 분량에 따라 직분의 은사도 주셨다는 가실을 배웠다. 직분의 은사는 사실 하늘에 속한 은사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영을 보내어 육체 속에 집어넣어주실 때에 은사를 줘서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 교회에서 받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교회를 섬기라고 보낸 은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더러는 하늘에서 주신 은사가 아닌데도 임직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직분에 충실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 과분한 직분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자기에게 어떤 직분이 주어졌든지 상관없이 받은 직분에 충성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다른 사람을 예수믿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1월 13일(수)

정병진목사

 

바울의 영성은 깊고도 높다. 아마도 이 세상에 살다간 사람들 중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가 권면하는 성도의 바람직한 영성은 어떤 것인가? 그는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제일 귀하게 여겼는가? 그는 그것을 대체 어떻게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였는가? 그는 변화된 새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속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누구도 말하지 않은 하늘에 속한 사람을 언급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가 받은 영성과 그가 귀하게 여긴 교회의 가장 큰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자.

2020-12-30(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0) 바울의 기도에 나타난 영성과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법(엡4:14~4: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7y0e9bIf4k [혹은  https://tv.naver.com/v/17583924 ]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제4차전도여행(로마여행) 중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 편지는 어떤 개교회에 보내어진 것이 아니라 회람용 서신으로서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읽혀질 것을 기대하고 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편지는 개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어떤 경륜에 따라 탄생하였고 성장해야 하는지를 깊이있게 서술하였다. 그는 이러한 서술에 함에 있어서, 자신이 받은 계시가 교회에 관한 계시인 것을 소개하였다. 그것이 바로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3장 후반부에는 성도를 향한 그의 두번째 기도가 나오는데(엡3:14~21), 그는 여기서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간구하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네 가지 차원의 그리스도의 풍성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4장부터 교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의 두번째 기도에 나오는 그의 영성과 더불어 교회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하나됨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2. 에베소 성도를 향한 바울의 두번째 기도는 무엇인가?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번의 기도를 올린다. 하나는 엡1:15~23까지인데, 여기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혀져서 첫째,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둘째, 성도들 안에서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셋재, 그분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크심이 어떻한지를 알기를 간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 말씀의 앞부분(엡3:14~21)으로서,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영)이 강건하게 되고, 이미 내주하여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혼의 영역까지도 모두 차지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차원의 영성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케 되기를 간구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3.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충만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에베소에는 몇가지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에베소서는 더 풍성한 책이 된다. 그것들 중에서 "풍성"이라는 단어와 "충만"이라는 단어가 에베소서 참 많이 나온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런데 이러한 "풍성"에도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풍성"이 있고(엡3:16),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있다(엡2:7). 하나님의 풍성하심은 하나님의 어떠하심 곧 신성의 어떠하심이 풍성하다는 뜻이지만,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곧 신성에다가 인성을 결합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풍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얼마나 풍성한 분이신가? 구약성경에 보면 우리는 예표와 상징과 사건과 예언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풍성한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창3:15에서는 그리스도가 남자의 씨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여자의 씨"에서 나온다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민수기21장에 가면, 우리를 이 땅에 유월절 양(출12장)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 놋뱀 사건으로 예표되어 있다. 그리고 안식일은 예수님의 그림자에 해당한다(골2:16~17). 이러한 풍성들이 성령을 통하여 채워질 때 모든 성도들은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다(엡3:16).

  그렇다면, "충만"이란 또 무엇인가? 특별히 사도바울은 교회를 정의하기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하나님)의 충만함이라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대한 표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충만에도 "하나님의 충만"(엡:13, 3:19)이 있고, "그리스도의 충만"(엡4;13)이 있다.

  그렇다면 풍성과 충만의 어떤 차이가 있는가? 풍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우리의 밖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을 가리킨. 그런데 충만은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공간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풍성함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것이 되는데 이때 그리스도의 풍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풍성은 우리 안에 들어올 때에 비로소 우리는 누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될 수 있다. 

 

4. 바울이 말하는 "속사람"과 "새사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바울은 에베소서서 "속사람"(엡3:16)과 "새사람"(엡2:15,4:24)을 언급한다. 여기서 '속사람'의 반대는 '겉사람'이고(고후4:16), '새사람'의 반대는 '옛사람"이다. 그럼, 속사람과 컽사람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가? 여기서 속사람은 우리 속에 있는 사람을 뜻하고, 겉사람은 우리의 밖에 있는 사람을 칭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의 내면에 들어있어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는 이것을 "영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이것을 일컬어 "속사람"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한편, "새 사람"은 옛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와 반대적인 개념은 옛사람은 예수 믿기 전에 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몸과 혼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자기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아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두번째 간구에서 등장하는 "속사람"은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는 "영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연 사람은 자기속에 속사람이 있다고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속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생겼으며, 그도 눈이 달려 있어 그것으로 볼 수 있고, 귀가 달려있어 그것으로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자신의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래서 아람나라의 수많은 군사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하지만 엘리사는 게하시의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돕는 천사가 도단성을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자 영안이 열려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순간에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람나라의 군사숫자보다 영안으로 보고 있는 군사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속사람으로 능력으로 강건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시작된다(엡3:16). 그런데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신 분이시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데, 영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이제 마음에 거주하도록 할 때에 속사람은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마음"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마음이란 우리가 가진 중요기관으로서, 사랑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영의 양심의 기능과 더불어 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결합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고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뿐만 아니라 혼까지 장악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 그가 영이 강건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그리스도의 사차원의 영적 분량과 그러한 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바울은 이어서 기도하기를 모든 성도들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바라다(엡3:8).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넓이와 길이, 그리스도의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원 한다고 기도하였다(엡3:9). 사실 그리스도는 매우 넓으며 그 스펙트럼이 매우 길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매우 깊고 또한 매우 높다. 그리고 이렇게 큰 입방체 안에 그리스도의 성분이 가득채워지면 우리는 그를 "성령충만"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의 기도는 응답도 잘 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이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6.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엡4:1~3)

  바울은 이제 그의 두번째 기도에 이어, 어떻게 하면 교회생활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는지를 권면한다. 그것은 성령이 하나이신 것처럼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에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어떻게 성도들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4가지 성품으로 변화될 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첫째로, 겸손함이다.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모든 성도들 안에는 공통분모로 성령께서 거주하고 계신다. 하지만 각자의 성품은 다르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 곧 각가의 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각 다른 혼들이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의 첫째가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지 아니하고 자신을 높이려 하면 교회는 성령의 하나를 지켜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오늘날에 교회에 분열이 생기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겸손함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온유하심이란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킨다. 혈기와 분노로 표출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 각자의 혼들을 주장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겸손과 온유는 그리스도의 2대 성품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마11:29). 그리고 세번째와 네번째의 성품도 필요하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래참는 것이며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이다.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급해서도 아니되며, 혈기를 내고 분노해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각자가 다른 혼들(생각과 감정과 의지)을 소유하고 있지만 교회의 일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평강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강은 그리스도의 4가지 성품이 교회의 구성원들 각자로부터 표출되어 나올 때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열매인 것이다. 천연적인 인성을 가지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이다. 

 

7. 교회가 강력해지기 위해 필요한 7가지의 하나는 무엇인가?(엡4:4~6)

  그렇다면,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강력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들을 지켜야야 하는가? 그것은 7가지 하나를 지킬 때다. 바울은 하나인 것을 총 7가지로 소개하였다. 그것은 몸이 하나요, 영이 하나이며, 소망이 하나요 주가 하나이며, 믿음이 하나요 세례가 하나이며,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7가지 하나는 다시 셋 셋 하나로 구분된다. 성도는 먼저 한 몸과 한 영과 한 소망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을 붙들 때 가능하다. 그리고 성도는 둘째로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세례를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주되신 예수님을 붙들 때가 가능하다. 그리고 성도는 한 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과하여 계시고, 만유 안에 있을 때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시간관계상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한다. 

 

8. 나오며

  사도바울의 기도를 보면, 그는 육체적인 어떤 것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잠깐 있는 것들로 썩어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물질세계에만 소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영의 세계와 물질세계의 양쪽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영으로서 영의 세계에 속한 것들을 접촉할 수 있으며, 육으로서 물질세계에 속한 것들도 접촉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물질세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세계의 사람들을 얻으려 하신다. 그 방법은 교회를 통하여서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표현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상속자를 얻으려 하시고, 하늘에 속한 지체들을 찾고 계시며, 하늘에 속한 약속들을 성취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온전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각자의 속사람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하나될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내주하시게 함으로 가능하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킬 때에 가능해진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변화된 성품에 참여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2월 30일(수)

정병진목사

 

 

하나님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 있었다. 바울이 이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는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칠을 만큼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계시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이미 안 채 있는 바울의 기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바울의 기도는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어떤 차이가 많이 난다. 여기 그의 깊이있는 영성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시지가 있다.

2020-12-16(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09)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와 바울의 두번째 기도(엡3:1~13)_2020-12-16(수)
https://youtu.be/JDiyvzUvkRs  [혹은 https://tv.naver.com/v/17278413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성경66권 중에서 가장 심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는 창세전의 시간으로 넘어가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무려 구약시대 4천년간 숨겨두었던 비밀들을 계시를 통해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에베소서라 일컬을 수 있는 골로새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숨겨진 비밀"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것은 왜 천사들도 몰랐던 것인가? 심지어 지혜로 보았을 때 하나님 다음가는 천사장 루시엘도 그것을 몰랐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아버지께 올려드린다. 그래서 오늘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가장 심오한 말씀인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정리해보고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두번째 기도를 통하여 교회가 추구해야 할 기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바울이 전달하려고 했던 핵심 키워드들(예를 들어, 속사람과 겉사람 등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그리스도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풍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말했다(엡1:23). 그리고 에베소서 3장에 들어와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풍성"이라고 말했다(엡3:8).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풍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얼핏 보기에 두 문구는 거의 같은 뜻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장소와 공간에 있어서의 차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했을 때에는 어떤 제한된 크기의 그릇 안에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가득히 채워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면, "그리스도의 풍성"은 넓은 공간에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주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표현이며, 외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면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가득 채운 그리스도의 충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진정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만 우리는 우리의 외부를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진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외부에는 그리스도이 이미 이루어지놓으신 풍성함으로 가득하다. 첫째는 그분의 낮아지심과 겸손이 성육신으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그분의 희생과 사랑은 그분의 십자가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그분의 초월하심과 높아지심과 권세있음은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승천과 그분의 보좌에 앉으심으로부터 왔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 외부에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교회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성들이 충만히 채워질 때 우리는 몸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체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교회를 통하여 비로소 높은 계급의 천사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지혜는 대체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지혜가 알려졌다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께 수종들던 천사들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다. 천사들의 생각에 사실 하나님의 아들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여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지기까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 듣던 신분이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시험하고 싶었다. 겉으로 보기는 40일 금식을 통하여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예수께서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그리하여 마귀는 마치 조폭세계의 경우처럼 예수님을 상전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쫓겨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잠시 예수님의 곁을 떠나 와신상담하기 시작하였고 중국에 가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과 군중을 꼬드겨 선동하여서 사람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는 파렴치한 행각을 저지른다. 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만 죽고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자기들 세상차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사망권세를 사용한 마귀는 그때로부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내주어야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3년반이라는 대환난이라는 기간동안) 예수께서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권세를 믿는 성도들에게 허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에 마귀고 흠모할만한 특권을 받아누릴 수가 있게된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자기들의 오히려 사망권세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결코 둘째아담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그렇게 대우했기에 그들은 무장해제당했고, 사탄마귀는 오늘날까지 무저갱에 갇혀 지내고 있다. 다만 거기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올려보내서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있는 귀신들이라 할지라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은 이미 "진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이긴 자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가면 귀신도 떠나간다는 사실이다. 

 

4.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며 천국마을까지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누구인가?

  바울은 이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무릎을 꿇은 채 두번째 기도를 드린다(엡3:14~15). 그런데 이때 그가 기도하는 대상은 이렇다. "하늘들과 땅 위에 있는 각 족속(종족)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다(엡3:14b~15a).

  첫째, 그는 아버지께 기도를 했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기도할 때에 "여호와여"라는 기도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섭고 엄위하고 심판하시고 공의로우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한 분 하나님께서 이제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신성만 가지신 그분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을 우리는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님으로서 계시는 예수님에게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명확하게 하려면 우리는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한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라.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 이름을 주신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성도들의 마을의 이름도 지어주셨다고 했다. 사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가면,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마을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마을, 이삭마을, 다윗마을, 다니엘마을, 세례요한마을, 베드로마을, 바울마을, 스데반 마을 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자기들이 들어갈 마을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예수믿게 했다면 그는 아브라함 마을에 들어갈 것이고, 순종하여 온유함으로 살았던 사람은 이삭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천국을 전하는 자는 세례요한의 마을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도 아마 자기가 들어가서 살 마을에 미리 가 본 것 같다. 

 

5.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바울의 기도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이제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데, 그 내용을 보면 총 4가지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을 통하여 그들 속사람을 능력있게 강건하게 하시기를 간구했다. 둘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 안에 계시기를 간구했다. 셋째,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간구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기를 간구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첫번쨀포 간구했던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속사람"에 대해서 3번 언급하였다. 그것은 로마서에서 1번, 고린도후서에서 1번, 에베소서에서 한 번이다.

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그렇다면, 바울이 강건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고후4:16에 의하면, "겉사람"을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람에게는 밖으로 사람이 있고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전했던 말을 요약하면, 겉사람은 몸을 기관으로 삼고 혼생명(생각과 감정과 의지)을 인격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육체에 죄된 본성이 들어와 있는데 혼생명이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속사람은 영의 사람을 가리킨다. 특별히 바울은 영의 사람을 언급할 때에는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여 성령과 자신의 영이 하나된 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은 성장이 가능하다. 영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되어지만 영도 나이를 먹듯이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엄마의 뱃속에서 사람이 잉태될 때, 육체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받아 만들어지지만(물론 이것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영은 천국에 있는 영이 이 땅으로 내려와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에서 보내어진 영도 나이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성숙한 영이 오기도 하고 어린이의 영이 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이가 아주 작은 어린이의 영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면 이 사람은 징징거리는 스타일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영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자라게 된다. 그러면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이미 성령을 받아 자신의 영과 하나가 된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아 더 성숙해지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6. 나오며

   신구약 66권 중에서 에베소서처럼 심오한 책은 사실상 없다. 그만큼 에베소서는 성숙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이 성숙한 바울이 이제 말년에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에베소서는 바울이 초기에 기록된 책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경륜이 구구절절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가 드리는 기도는 단순히 어떤 환난에서 자신을 면케해달라는 기도가 없으며, 에베소성도들이 물질적으로 힘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없다. 오로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어짐으로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져서 그분이 그들을 부르신 부름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분의 주고자 하는 하늘기업의 영광스러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를 바라고, 그분이 교회에게 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기도였다(엡1:15~19). 그런데 그의 두번째 기도를 보니(엡3:14~19), 사람의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적인 축복과는 거리가 먼 기도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승진하며, 육체적으로 강건하기를 위하는 기도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알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자신을 그리스도의 목적에 내어주어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서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어서 이런 장성한 분량을 갖춘 기도를 드리고 이런 기도에 올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2020년 12월 16일(수)

정병진목사

 

바울은 자신이 받았던 계시를 서서히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풀어놓는다. 그것은 만세전부터 감추어왔던 것이었는데,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바울은 그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보았던 이 계시를 전달하는데에 모든 생애를 바치게 된다. 대체 그가 보았던 것이 무엇이었길래 그는 그가 과거에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특권을 다 내려놓은 것인가?

2020-12-09(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08)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와 바울에게 주어진 사명(엡3;1~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RV6MquXaFh4 [혹은 https://tv.naver.com/v/17129449 ]

1. 들어가며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여러 성경책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겠지만, 성경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탁월한 교회론의 책을 추천한다면 그 책은 역시 에베소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서는 교회에 관한 7가지의 풍성한 방면이 빼곡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1)"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2장에서 바울은 교회에 관한 4개의 계시를 전달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가 2)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새 사람"이요, 3)성도들과 동일한 "하늘의 시민"이요, 4)"하나님의 가족"이며, 마지막으로 5)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이자 "건축물"이라고 했다. 모두가 다 놀라운 정의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에베소서 3장에 와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우주적인 새 사람은 사실 "그리스도의 비밀"이었다고 언급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1장에 이어서, 바울의 교회에 관한  4가지 추가적인 정의와 그리스도의 비밀은 대체 무엇이며, 그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서 사역자가 된 자신의 소명의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메시지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길 빈다.

 

2. 바울이 말하는 교회의 4가지 정의는 무엇인가?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밝힌 바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충만하게 하고 있는) 이의 충만"이라고 하였다(엡1:23).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이지만 사실 이 공동체의 머리는 하나로서 그것은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교회는 그리스도께 접붙힘받은 영적인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하고 그분의 통제아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으로 인하여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가 복종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교회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체현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위의 정의 외에도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의 4가지 방면을 추가로 언급한다. 그것은 교회가 첫째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우주적인 하나의 "새 사람"이라는 것이다(엡2:15).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 인류가 새롭게 탄생했다는 것이다. 왜 교회가 신 인류(새 사람)인가? 그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종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과 한 몸이 되기 전까지 인간은 단지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인하여 인간은 전능한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사람이라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교회는 새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서 이 땅에 화목제물로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 만약 홀로 한 분이셨던 그분이 인간이 되시어 자신을 낮추지 않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았다면 아마도 모든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로서 새 사람이 창조되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교회는 절대 잊어버려서는 아니 된다. 

  둘째로, 교회는 "하늘의 시민들"이라는 것이다(엡1:19a). 구약시대만해도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민족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만이 성도라고 불리었다. 그런데 주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간에 놓여 있는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다. 그리고는 이방인들도 유대인들 마찬가지로 성도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방인일지라도 구약 성도들처럼 이제는 하늘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고로 성도가 비록 이 땅에서 살기는 하지만, 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빌3:20). 다시 말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본적이 하나 더 새롭게 생성된  것이다. 고로 우리가 거듭난 순간 우리의 호적이 하늘로 옮겨졌기에, 우리의 주민등록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존재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이다(엡1:19b).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거듭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창조되고 탄생되어진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이 땅의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통해서 무려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은 이 땅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하늘로부터 보내어진다. 엄마의 뱃속에서 사람이 임신되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된 영을 이 땅의 육신 속에 넣어주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부모의 뱃속으로부터 탄생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 그냥 살아가는 혼의 생명만 갖고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시대의 생명을 소유하지 않은 채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외아들이신 예수님에게만 그의 생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만 해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는 오직 하나 아들 뿐이었다. 그분이 바로 이 땅에 독생자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다(요3:16). 그런데 예수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도 아버지의 생명을 공급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고 상속자가 되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의 형태로서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 속에 들어가셔서 지금도 생명을 공급하고 있다(고전15:45). 그러므로 아들을 모신 자는 생명을 가진다. 왜냐하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주 예수님을 형님으로 모시는 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보다 훨씬 능력이 많은 천사들이라도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종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하늘의 기업도 더 풍성하게 차지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넷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건축물이자 개인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이다(엡2:20~22). 주 예수께서는 죽고 부활하신 후 친히 교회를 건축하는 모퉁이돌이 되셨다(엡2:20, 사28:16). 그분이 교회의 모퉁이돌이 되셨다는 것은 그분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건축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오순절 성령강림후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직분자들인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실로서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라는 직책이 구약시대에는 없었으나 신약시대에 교회 가운데 주신 새로운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사도들이 없었다. 오직 예수께서 오셔서 처음으로 여러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따로 세웠고 그들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온 땅 안으로 복음전파를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이 바로 사도였다. 그들은 적어도 예수님의 공생애동안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행동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나가 그분의 어떠하심을 증거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당신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파송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도들이다.

  한편,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또 다른 종류의 사도들을 세우셨다. 역할과 기능은 동일하지만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인 점에서 어린양의 12사도들과는 다르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러한 사도들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처음부터 복음전파를 위해 세워진 자들로서 세상에 파송을 받는다. 그중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파를 위해 택함을 입었고 사도로 파송을 받았다.

  그리고 신약교회 안에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선지자"라는 직분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와는 좀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세워진 선지자들은 오실 메시야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오순절이후의 교회의 선지자들은 이미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전파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지자직에는 사도바울과 바나바도 포함되어 있었다(행13:1~2). 참고로, 나중에 에베소서 4장에 가서 배우겠지만, 하나님께서 초기교회 가운데 세우신 교회의 직분으로서 사도와 선지자 외에도 3가지 직분이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다(엡4:11). 그러므로 교회는 이렇게 해서 세워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를 받고 건강하게 세워졌다. 더욱이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더 많은 이방인들도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될 수 있었다. 

 

3. 바울이 계시로 알게된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엡3:1~4).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그리스도가 비밀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신성과 인성의 연합체인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교회"에 관한 비밀은 다른(헤테로스=different) 세대 곧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비로소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몸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엡3:6). 

  그런데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였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라고 하였다(골2:2). 그런데 그리스도의 비밀이었던 교회와 마찬기가지로,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도 숨겨진 비밀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이러한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왔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밀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게 된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라고 언급했다(골1:26~27). 이것은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대해서 구약시대의 사람들도 잘 몰랐다는 것이다. 막연히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오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께서 보좌에 앉아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분이야말로 구약에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셨던 바로 그분이였다. 그분이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니 누가 과연 하나님께서 속죄제물로서 사람이 되어 오실 줄을 알았겠는가? 구약시대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와 사실은 드러내셨고, 바울도 계시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4. 바울은 어떤 소명을 받은 자인가?

  이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자신이 어떤 직분을 가진 자인지를 맗나다. 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까지 전달하는 사도의 직분을 가진 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직분을 맡기에는 너무나 합당치 않은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는 그리스도의 원수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는 단지 출세가도를 위해 달려가는 욕심많은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A.D.34년 다메섹도상에서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모든 삶을 바꾸어놓기에 이른다. 그는 그때 이미 죽고 없어진 줄 알았던 예수님을 만났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생각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은 실로 미치광이들이었다. 이미 죽고 없어진 사람을 자기들의 주님으로 믿고 전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미쳐버린 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천생의 과업이지 자기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그때 그는 자기앞에 나타나신 분에게 물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때 주님은 "나는 네가 핍박(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다. 바울은 그때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았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가 박해했던 사람은 예수믿는 자들이었고 그가 죽였던 자는 스데반였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이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고 당신이 죽임당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금식후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영의 눈이 열리게 된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게 된다. 그것은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처럼,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를 써보낼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나는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11:13)"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의 직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자(딤전1:13), 죄인 중의 괴수(첫째)"(딤전1:15)였던 그가 이제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바울은 믿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였기에 사도라 칭함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생각햇따.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한 자처럼 태어난 자였기에 그는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여겼다(고전15:9~10). 언어와 문화와 종교에 있어서 뛰어난 실력자였고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였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부터는 자신이 가진 모든 특권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고 내려놓았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분을 전하는 데에 헌선하게 된다. 그러나 그도 사실은 자신을 신뢰할만한 자였으니, 그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이스라엘의 족속이었고, 베내민 지파 사람이었으며, 히브리인들을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자 율법의 의로 보았을 때에는 흠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었다(빌3:5~6).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지 그가 과거에 유익하게 여겼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게 된다. 그러니 그의 목숨을 내 놓은 선교활동으로 인하여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5. 나오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는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가장 심오한 주제에 해당한다. 둘 다 구약시대만해도 숨겨진 채 있었던 것들이다. 구약의 성도들도 몰랐고 심지어 천사들도 몰랐던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품속에 그러한 계획이 들어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구약시대 때에는 그것이 간접적으로 계시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감추어놓은 구원경륜을 펼쳐가나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되었으며, 공생애를 통해 완성되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뿌리깊은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서 한 우주적인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을 일컬어 오늘 우리는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과같은 혈통적인 특권이 존재하지 않은 구속공동체로서, 차별이 없는 유기적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우주적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누구든지 이 안에 들어가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며,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자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기만 하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코 상상 한 번 못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 모든 제한은 없어졌으며, 누구든지 믿음을 통하여 이 놀라운 은혜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로 이방인으로 태어나서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이방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다. 

 

2020년 12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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