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금식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성경전체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식을 명한 적이 있었는가? 이스라엘민족은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는 날(B.C.586년 5월 7일)을 기념하여 5월에는 전국민이 금식을 하였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어느날 스가랴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이때까지의 금식은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금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금식을 해야 하는가? 어떤 금식을 참된 금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참된 금식을 하는 자에게 어떤 복이 기다리고 있는가?

2020-02-05(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8) 벧엘인들이 질문한 금식에 대하여 스가랴가 답변한 하나님의 뜻(슥7:1~8:23)
https://youtu.be/RX91d2fBp-U


1. 들어가며

   B.C.518년 9월 4일, 대제사장과 여호수아와 유다총독 스룹바벨에 의해서 제2의 성전건축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스가랴선지자는 벧엘인이 보낸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그것은 예루살렘성전이 파괴(B.C.586년 5월 7일)된 이후 그때까지 지켜온 금식을 계속 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때 스가랴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찾아온 그들에게 답변을 준다. 그것이 바로 스가랴 7~8장의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벧엘인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해, 개인이나 민족은 어떤 경우에 버림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필요한 것들이 충분히 채워지는 복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참된 금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이 3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말씀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의 7~8장의 위치는?

  스가랴서는 총14장으로 구성된 예언서이자 묵시서다. 스가랴서는 크게 1~8장까지 전반부와 9~14장까지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전반부(1~8장)은 다시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슥1~6장)"과 "금식에 관한 질문과 답변(7~8장)"으로 나뉘어질 수 있고, 후반부(9~14장)은 다시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대한 예언"(9~13장)과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14장)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 살펴볼 부분은 전반부의 뒷부분으로서 "금식에 관한 질문과 답변(7~8장)"의 말씀이다. 이 부분은 바사국 다리오왕 제4년(B.C.518년) 9월 4일에 스가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들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어떤 벧엘인이 보낸 사람들이 금식을 언제 그쳐야 하는지 질문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3. 왜 이스라엘 민족은 해마다 5월이 되면 금식하게 되었나?

  B.C.518년 9월. 그러니까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 스룹바벨에 의해 다시 시작된 성전재건공사가 이제 2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떤 벧엘사람이 두 사람을 보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한 뒤에, 약 70년동안 성전파괴일에 맞춰 오월 달에 울며 금식을 해왔는데, 이제 성전이 다시 지어지는 있는 상황에서 금식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말씀셨다. 그것은 지난 7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5월과 7월에 금식을 해 왔는데, 그 금식이 어찌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었느냐며 책망하신다. 그것은 그 금식이 자기의 종교적인 체면치레를 위한 것이었을 뿐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금식기간에 애통하면서 금식했으나 실은 먹고 마시는 데에 더 치중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월 금식일과 7월 금식일에 그들은 왜 금식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금식하였는가?

  첫째, 남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5월과 7월에 금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아까도 살펴보았지만 남유다백성들이 5월에 금식하는 이유는 과거 5월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유다의 마지막 20대왕이었던 시드기야왕 11년(B.C.586년) 5월 7일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완전히 불이 타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유다백성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매년 그날에 금식을 시행해온 것이다. 그리고 7월에는 절기상 속죄일(7월 10일)이 있어서 모세시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7월이 되면 금식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성전이 파괴된 이후, 7월 어느날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받은 그달리야마저 암살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7월에도 역시 금식을 해왔었다.

  둘째,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방식으로 금식했을까? 일주일동안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금식했는가? 아니면 다른 방식을 써서 금식한 것일까? 그것은 본문의 말씀에 따라 해석해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처럼 낮에는 금식하나 밤이 되면 실컷 먹는 금식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금식은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라 자기의 체면치례를 위한 금식이었고, 오히려 그때에 더 잘 먹는 금식을 해온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금식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특히 금식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형식적인 금식은 오히려 하나님을 더 화나게 한다고 하였다.

 

4. 과거 북이스라엘(B.C.722년)과 남유다 백성(B.C.586)이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이후 이때까지 약 70년간 남유다백성들이 행하던 금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금식이라고 평가하셨다. 그러면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신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슥7:9~10). 그들은 진실한 재판을 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애와 긍휼을 베풀지도 않았으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했으며, 서로를 해하려고 마음에 무엇인가를 도모했었기 때문이다.

  둘째, 특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말을  듣기를 매우 싫어했으며, 고집세게 등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리면서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틀어막았기 때문이다(슥7:11~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불렀으나 그들이 했던 그대로 그들에게 응답하지 않았던 것처럼, 바벨론에 의한 멸망 때부터 현재의 이스라엘백성들에게도 똑같이 행했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여러 지역에 흩으셨고, 남유다는 저 멀리 있는 신바벨론 성의 여러 지역에 흩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땅을 황폐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5.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버림당할 수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백성이었지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불순종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슥7:11~12). 그들은 이미 기록된 율법말씀을 듣기를 거부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낸 선지자의 말을 듣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기로 결정하셨다.

  오늘날에 들어와서 예수믿는 사람들도 버림당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잘못 행하면 그들에게 징계는 내릴망정 결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는 아니하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만 하셨는가 아니면 버리셨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다. 북이스라엘은 아예 흔적이 없이 사라지게 하셨으며, 남유다는 70년동안 바벨론땅에 버리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수믿고 성령받아 구원받은 자라도 그가 계속해서 범죄한 채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계3:5). 그 어떤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성도들을 끊을 수 없을른지 몰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당연히 버림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너무 늦으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6. 성전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인가?

  왜 포로에게 귀환한 남유다백성들을 성전재건에 힘을 기울여야 했는가? 그것은 성전을 건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모든 일은 결국 재앙과 저주만이 임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도 그 품삯을 받을 수가 없었고, 짐승도 마찬가지였으며, 원수들이 득실거려 왕 안에서 출입도 평안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해 대적하는 상황이 계속될 뿐이었다(슥8:10). 이와같은 어려움을 학개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너희가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여,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뚫린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6)". 그들이 많은 것을 발했지만 도리어 적을 수밖에 없었고, 자기집으로 가져갈지라도 하나님께서 불어서 없애버리셨던 것이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게 놔 둔 채 자기의 집을 짓기에 빨랐기 때문이라고 했다(학1:9). 그러니 하늘은 이슬을 그치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땅과 산들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기근이 들 수밖에 없었다(학1:11).

  그러나 성전재건에 착수한지 2년이 지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성전재건에 힘쓰는 남유다백성들에게 큰 축복을 약속하셨다. 첫째는 예루살렘에 평강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슥8:12). 더이상 전쟁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이 사라지는 것이다. 둘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출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슥8:12). 농작물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힐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처럼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만물도 함께 복을 받는다. 셋째, 예루살렘성은 진리의 성읍이 될 것이고, 시온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일컫게 될 것이라고 했다(슥8:3). 그리고 넷째, 평화가 찾아왔으니 전쟁도 없고 질병이 없어져 사람들은 늙은이들은 장수하게 될 것이며, 젊은 이들이 자녀들을 많이 낳아 거리가 아이들로 북적일 것이라고 했다(슥8:4~5). 그렇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야 할 것이다.

 

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금식은 어떤 것인가?

  이제 하나님께서는 왜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수고를 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는지를 설명하신 뒤에, 참된 금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금식의 절기들을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슥8:18). 금식이란 음식을 먹지 않아 육체에 고행을 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않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데에 그 목적과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며칠을 금식했네, 나는 지금도 금식하고 있네 하면서 자신의 금식을 경건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자들은 먼저 자신의 상태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자신의 삶은 그렇지 않은데 육체의 금식만을 실행하고는 자신은 금식을 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떠벌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법이다. 참된 금식은 진실한 재판을 행하고, 서로에게 인애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억누르지 않고, 서로 해하여로 악한 것을 마음에 도무하지 않는 것이다(슥7:9~10). 또한 이웃과 더불어 진리(진실)을 말하며(슥8:16),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이다(슥8: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금식을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축복을 더 주신다. 그것은 바로 주변이 많은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음을 알고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몰려온다는 것이다(슥8:20~23). 그렇다. 앞뒤가 다른 삶을 살아서는 우리의 주변과 이웃을 주님께로 이끌 수가 없다. 내 자식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데 어찌 남을 주님께로 이끌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된다. 형식주의나 요식행위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저주와 재앙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하나님은 어떤 경건한 행동을 하고 있느냐 안 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가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신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금식에 빠져 있는 자를 결코 경건하다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우리는 실천적인 삶으로 우리의 경건을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말은 번지르르 잘 하면서 실제 행동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결국 죽은 믿음으로 마지막에 가서는 주님으로부터 버림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오순절 이후에는 혹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어서 성령께서 슬퍼하실 뿐 떠나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더러운 행실과 회개하지 않은 완고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이가 대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경건한 행위가 자기 안에 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음성을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재앙과 저주도 어느날에는 복과 은혜로 바꾸어주실 것이다. 아니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인가 아니면 내 이익과 만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자인가? 이제부터라도 이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서 변화된 삶을 위해 달려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0년 2월 5일(수)

정병진목사 


스가랴선지자는 예수께서 탄생하기 약 500년전 쯤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20대의 어린나이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 그때 그는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장면도 보았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이 땅에 보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보게 된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예표된 메시야가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도 미리 보게 된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알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늘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스가랴서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 오늘은 스가랴가 보았던 7~8번째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과 메시야 예언을 살펴보자.

2020-01-29(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7) 스가랴가 본 여섯 일곱 여덟 번째 환상(슥5:1~6:15)



1. 들어가며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스가랴는 B.C.520년에 포로귀환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던 선지자였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아마도 20대초반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 같고, 약 50년간 사역했던 선지자였다. 그리고 그의 부르심의 초기에는 이미 "학개"라는 노선지자가 있어서, 16년동안 중단된 제2성전건축에 대한 독려예언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학개보다 약 2개월 뒤에 있었다. 스가랴의 예언은 환상과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스가랴서 선지자가 초기에 보았던 8가지 환상들 중에서 여섯번째 환상인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과 일곱번째 환상인 "에바 속에 앉은 여인"에 대한 환상 및 여덟번째 마지막 환상인 "두 구리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에 대한 환상이 무엇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스가랴 보았던 여섯번째, 일곱번째, 여덟번째 환상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스가랴는 다리오왕 제2년 11월 24일 밤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슥1:7~6:15). 이때 그가 본 8가지 환상은 긴 환상은 아니었고 짧게 짧게 보여진 환상이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자신이 보았던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자기에게 말하는 천사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도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은 8가지는 무엇이며, 그 환상들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환상은 우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 환상과 여덟번째 환상을 좌우의 끝으로 하고, 가운데의 양쪽에 2번째와 3번째 환상 그리고 6번째와 7번째 환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한가운데에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다. 이 8가지 환상의 좌우 끝에 배치되어 있는 첫번째와 여덟번째 환상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천사들에 관한 환상에 해당한다. 그리고 2번째와 3번째 환상이 그 내용이 긍정적인 환상이라면, 6번째와 7번째환상은 그 내용이 부정적인 환상이다. 그리고 한 중앙에 4번째와 5번째 환상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스가랴가 보았던 8가지 환상은 제2성전건축을 독려하기 위한 환상이므로, 이 환상이 성전건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4번째와 5번째 환상은 성전건축을 주도했던 두 사람에 관한 환상으로서, 4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이고, 5번째 환상은 유다총독이었던 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으로 일곱금등잔과 두 감람나무에 대한 환상이다. 당시 건축될 수 있었던 제2의 성전은 이 두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 건축되기에 이른다.

 

3. 스가랴가 본 여섯번째 환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가랴보았던 여섯번째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마리"에 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일곱번째 환상은 "에바 안에 앉아있는 여인"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부정적인 환상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스가랴에서 보여주었을까?

  스가랴가 눈을 들어 보았을 때, 그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두루마리는 상당히 컸다. 가로의 길이가 이십규빗(약9m)이었고, 세로의 길이가 십규빗(4.5m)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자도 안팎으로 쓰여 있었다. 이에 스가랴 선지자가 그 두루마리가 무엇인지를 묻자 그에게 말하던 천사는 그것은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가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불어 도둑질한 자와 거짓으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는 이쪽 글과 저쪽 글에 나와있는대로 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저주가 쓰인 두루마리가 그 집안으로 들어가서 그 집의 나무들과 돌들을 불살라버림으로 실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서 두루마리 환상을 보여주었으며, 그리고 두루마리에 쓰인 글자는 도둑질한 죄(제8계명)과 거짓 맹세한 죄(제3계명)를 언급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주권적인 은혜로 성전을 건축했다고 할지라도 만약 또다시 십계명을 어기는 자가 있을 때에는 십계명에서 나와있는 말씀에 따라 그에게 저주를 퍼붓겠다는 뜻이다. 특별히 "도둑질한 죄"는 십계명 중에서 인간계명인 제5계명에서 10계명을 대표하는 죄이고, "거짓 맹세한 죄"는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계명인 제1계명에서 4계명을 대표하는 죄인 것 같다. 특히 십계명 중에서도 왜 제8계명과 제3계명을 스가랴에게 보여주었는지는 그것이 당시 포로에서 귀환했던 자들이 흔히 범하고 있는 죄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사람이 가진 것이 없고 가난하게되면 도둑질을 하게 되고, 남의 것을 빌리기 위해 거짓된 맹세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구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전건축후 나아지지 않는 예루살렘의 새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도덕법을 잘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여섯번째 환상을 보여준 것 같다.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마저 무너뜨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상과 대적의 도시였던 바벨론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왔고 또한 성전을 건축했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만을 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제2성전건축하 포로귀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도덕적인 계명을 스가랴에서 환상으로 보여준 것이다.

 

4. 스가랴가 본 일곱번째 환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일곱번째 환상을 들여다보자. 일곱번째 환상은 "에바 속에 앉은 여인"에 대한 환상인데, 이것도 부정적인 환상에 속하며, 여섯번째 환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스가랴라는 여섯번째 환상을 본 이후 곧바로 일곱번째 환상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커다란 "에바"가 등장한다. "에바"는 곡식을 재는 단위체(항아리?=22리터)로서, 여인이 들어갈 수 있는 큰 크기였다. 그런데 정말로 그 에바 안에는 한 여인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애써 그 에바에게서 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천사가 그 여인을 에바 안으로 집어넣더니, 둥근 납 조각으로 만든 두껑으로 덮어버렸다. 그러자 이제는 학과 같은 거대한 날개를 가진 두 명의 여인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 두 여인은 그 에바를 하늘과 땅 사이로 들어올리더니 자신의 날개로 날아서 바람을 타고 시날땅으로 가려고 했다. 왜 그리 가려는지를 물으니, 시날땅으로 가서 에바를 위하여 집(신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집(신전)이 준공되면 그것이 자기의 자리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에바 속의 여인의 환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감사하게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가랴와 함께 말하고 있는 천사가 일러주었다. 먼저 에바 속의 여인은 "악"이라고 했다(슥5:8). 즉 새로이 성전을 건축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어도 악은 내재되어 있어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나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악이 그곳에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환상의 핵심이다. 정말 악이 사람에게서 나오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악의 본고장인 시날 땅 곧 바벨론의 신전 안으로 내보낼망정 예루살렘에서는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불리는 예루살렘  성 안에 다시는 악이 창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나오려 한다면, 그 악은 이스라엘에게서 나와서는 아니 되고, 장차 악의 총본산인 바벨론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학의 날개를 가진 천사를 시켜 에바를 바벨론으로 이동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바벨론은 시날 땅에 있었던 것이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 처음 영걸 니므롯과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거주하고 있던 장소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총본산을 뜻한다. 그런데 장차 종말의 때에 진입하게 되면 다시 바벨론이 득세할 것이라고 사도요한은 예언하고 있다(계16~17장). 그리고 바벨론의 실체는 악을 품고 있는 음녀라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계17:1).

 

5. 스가랴가 본 여덟번째 환상은 무엇이며, 그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가랴가 보았던 마지막 환상(슥6:1~8)은 사실 첫번째 환상(슥1:7~11)과 조금 비슷하다. 다만 말이 병거(전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별적인 말들이 집단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거의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 여덟번째 환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스가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환상"두 구리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종류의 병거들"이었다.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메어있었고,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진 말들(회색의 억룩말들)이 메어 있었다. 그러자 스가랴선지자는 그에게 말하고 있는 천사에게 묻는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천사는 이것은 "하늘의 네 바람(영들)"이록 했다. 이들은 온 세상의 주이신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서 있다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들이 나가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검은 말들은 북쪽 땅으로 나갔고, 흰 말들은 서쪽 땅으로 나갔으며, 어룽진 말들은 남쪽 땅으로 갔다. 그런데 붉은 말들은 나오지 않는다. 만약 붉은 말들이 나갔다면 그들은 응당 동쪽 땅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동쪽 땅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건장한 말들은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였다. 그러자 그 천사는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땅 여기 저기를 두루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천사가 스가랴에게 외치며 말했다. "보라. 북쪽으로 나가는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으니라(슥6:8)"

  우선 병거를 몰고있는 말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스가랴에게 말하던 천사는 "병거를 몰고 있는 말들"은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셨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세상으로 나가는 천사들"이라고 했다(슥6:5). 다시 말해서, 네 종류의 전차와 말들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갔는가? 그것들은 그들의 해야 할 임무가 각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붉은 말들과 검은 말들과 흰 말들과 어룽진 말들은 각각 동쪽과 북쪽과 서쪽과 남쪽으로 나갔다.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아 지상에 내려가서 어떤 일을 수행할 자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까? 그것은 첫째로는 정찰의 임무를 수행하고, 둘째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령한 임무를 집행하고, 셋째로는 어떤 현상들을 일어나도록 집행하고 넷째로는 감시하고 보고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전염병을 두고 이 세상 사람들은 우한 폐렴(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곧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동물에서 인간을 감염시키고 그것이 점점 더 퍼져나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고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면, 하늘의 네 병거와 같은 환상의 측면에서 이것을 본다면, 이 현상은 전염병을 담당하는 말들(여기서는 어롱진 말들로 추정됨)이 중국의 우한으로 내려가더니 중국 땅에서 온 세상으로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러한 전염병을 확산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그들의 손을 거두라고 할 때까지다. 그럼 언제 천사들은 자신의 임무를 중단하는가? 2가지 사항을 가정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다윗과 같은 경우로서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제사를 올리자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중단시킨 경우다(삼하24:10~25). 이런 경우는 범죄한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경우다. 둘째로,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왕과 같은 경우로서,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계신 하나님을 능멸하면서 그들의 군사들이 다 죽어서 엎드려질 때까지 전염병이 창궐하는 경우다(왕하18:13~19:35). 이런 경우는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 자기 단독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시103:20~22). 그러므로 현재 중국 정부의 경우, 만약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상당한 기간동안 즉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기까지는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매우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네 병거를 모는 말들의 색깔은 어떤 의미일까? 스가랴가 환상으로 보았던 네 병거의 말들은 색깔들이 달랐다. 붉은 색, 검은 색, 흰 색, 어롱진 색(슥6:2~3). 그런데 거기에는 어떤 뜻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온다. 거기에 보면, 어린양께서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기록된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열어젖히는데, 첫째부터 넷째인을 열어젖힐 때에 말들과 그 말들 위에 탄 자가 튀어나왔는데, 첫째 인을 열어젖힐 때에는 흰 말이 나왔고, 둘째 인을 열어젖힐 때에는 붉은 말이 나왔으며, 셋째 인을 열어젖힐 때에는 검은 말이 나왔고, 마지막 네째 인을 열어젖힐 때에는 청황색 말이 나왔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말들의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까지 같이 나온다. 흰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붉은 말을 탄 자는 사람을 죽이는데 칼로 죽인다. 결국 이는 "전쟁"을 의미한다. 검은 말을 탄 자는 손에 저울을 가졌는데, 밀과 보리가 아주 비싸게 취급되고 있었다. 이는 검은 색은 '기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이 '사망과 음부'였다. 이는 전염병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다만 흰 말을 탄 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자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적그리스도의 미혹이라고도 하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요한계시록에서는 말들의 색깔들은 천사들이 맡은 각기 다른 임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북쪽으로 나간 검은 말들이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6장의 해석을 그대로 따와서 말하면, 그 말들이 나가서 "기근"을 일으켰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나갔던 "북쪽"을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모여서 회의하는 자리"라고 해석한다면(시48:2, 사14:12), 요한계시록 12:7~9의 말씀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그의 천사들을 쫓아버려서  땅 속으로 던져넣는 장면일 수 있는 것이다.

 

6. 스가랴가 8가지 환상을 본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이어지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스가랴에서 어떤 명령을 하시는 장면이다. 그것은 면류관들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씌워줌으로 성전완공에 힘을 쓴 여호수아를 위로하라는 말씀이었다(슥6:9~15).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서 요시아(=헨)의 집에 들어가 거기에 있는 자들 곧 헬대(=헬렘)와 도비야와 여다야로부터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들을 만들고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워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였다.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의 곳(자리)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장차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의 자리(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한 제사장이 자기의 자리(보좌)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는 말씀이었다(슥6:12~13). 이것은 여호수아로 예표되고 있는 메시야가 장차 "싹(체마흐)"으로 올 것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메시야를 "싹"으로 표현한 것은 사53:2에 따라, 메시야가 연한 순과 같아서 그분이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이 되시어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음으로 인류의 죄들을 속죄한 뒤에, 그가 여호와의 전 곧 교회를 건축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게 될 때에는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께서도 죽으신 후에 영광을 받으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교회를 건축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왕과 제사장으로서 왕노릇하시고 중보자의 일을 하고 계신다.

  한편,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여호수아의 대관식에 사용했던 면류관들을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고 하신다(슥6:14). 이는 면류관을 영원히 보관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무엇을 말해주는가? 은과 금을 헌물하여 면류관을 만들도록 했던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간직하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 헌신자들이 만약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들의 헌신이 영원토록 기억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먼데 사람들도 와서 여호의 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했다(슥6:15). 이는 "먼데 사람" 곧 "이방인들"이 교회건축에 합류할 것이라는 뜻이다. 처음으로 세워진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는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유대인들의 교회로 세워졌지만, 장차 세워질 교회는 이제 먼데 사람들 곧 이방인들에 의해 세워진다는 뜻이다. 이 예언의 말씀때로 이방인의 교회가 세워졌으니, 그것이 바로 안디옥교회요 사도바울이 소아시아와 유럽에 개척한 교회들을 가리킨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 예언은 살아있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방인의 교회는 계속해서 세워질 것이다.

 

7. 나오며

  어찌 보면 스가랴서의 말씀은 온통 메시야 예언으로 가득찬 선지서라고 할 수 있다. 환상 중에서도 메시야의 예언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즉 스가랴 보았던 8가지 환상 중에서도 메시야가 어떤 분인지에 대하여 "싹"(슥3:8, 6:12), "일곱눈을 가진 돌"(슥3:9), "두 감람나무"(슥4:3,14)라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호의 전을 건축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 스룹바벨은 두 감람나무로서 장차 제사장이자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시야로 오실 예수께서는 연한 "싹"이 되셔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들을 속죄하실 것이고, "돌" 곧 심판주로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후에도 여전히 하늘에서 왕직과 제사장직을 수행하시면서 성령의 기름을 보충하고 계시며, 성령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계시고, 교회를 성령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의 경륜을 이해하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스가랴서를 공부해야 하며, 장차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계시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시 스가랴서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스가랴서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020년 1월 29일(수)

정병진목사

  


스가랴서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구약성경으로서 묵시와 계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환상만을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 환상을 통해서 계시되고 있는 메시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차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고 사탄마귀를 심판하시는 메시야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 그 일들을 성취하실 것인지를 스가랴서를 통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제2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 두 사람을 쓰실 것이라고 환상을 통해서 말씀해주셨다. 그 환상들 2가지는 무엇이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2020-01-22(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6) 스가랴가 본 네 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숙3:1~4:14)
https://youtu.be/kGATqDQWvZs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6장까지는 B.C.520년 제2성전 재건사업이 시작될 무렵에 젊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룻밤에 주어진 8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7~8장까지는 B.C.518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기념 금식일 준수와 관련된 4가지 질문과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9~14장까지는 B.C.480~470년경 이제 나이가 50대를 넘긴 스가랴가 받았던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장차 도래할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 그리고 재림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서의 제일 첫번째 부분은 8가지 환상 중에서 4번째와 5번째 환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2가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누구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행하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의 궁극적인 실체가 누군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2.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은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슥1:7~6:15)은 수미쌍관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환상과 마지막 여덟번째 환상을 처음과 끝으로하여, 두번째 세번째 환상과 여섯번째 일곱번째 환상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중간에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에서 첫번째와 여덟번째 환상은 말이나 병거 위에 탄 자에 대환 환상으로서, 하나님께 지금도 이 땅에 천사들을 보내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 환상은 성전재건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으로 배치되어 있다면,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환상은 부정적인 환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에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성전재건의 핵심인물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 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으로서, 이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가 누군지를 말해주고 있다.

 

3.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해야 하는 2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실 2가지다. 첫째,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해서 메시야가 누구시며 오셔서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고 하셨다(요5:39).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메시야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구약성경을 읽는 읽었으나 잘못 읽은 것이 된다. 둘째,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하여, 묵시문학과 계시의 핵심이자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구약성경 가운데 묵시문학과 계시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역시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환상이나 상징들은 거의 다 구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성경 3권을 들라고 하면, 그것은 에스겔서, 스가랴서, 다니엘서다. 사실 이 세 권의 구약성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한계시록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짓이라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빠지는 이상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 권의 책에 나오는 환상들과 상징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계시들은 전부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되어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4.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사탄이 참소하는 모습을 보여준 환상이었다(슥3:1).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신뒤에,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고 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게 하시며, 정결한 관(터번)을 그의 머리에 씌우게 하신다. 그리고 그때에 여호수아 곁에 서 있던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에게 전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 사탄은 누구며, 사탄이 참소하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구약성경 가운데 "사탄"에 대한 명칭은 욥기서 1~2장(11회)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의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나머지 4회). "사탄"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딱 네 속 뿐인데, 첫째,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하는 대목(대상21:1), 둘째, 다윗이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들 가운데 사탄이 그들의 오른쪽에 송사하는 자가 서기를 기도하는 대목(시109:6)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가랴 3:1절과 2절에 각각 한번씩 나올 뿐이다. 우리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대적하는 자는 활동하는 사탄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성도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는 자고 있던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 땅 속(음부)으로 내어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계12:9~10). 그렇다면, 적어도 B.C.520년까지는 아직 사탄이 하늘에서 참소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사탄이 계속해서 하늘에 거주하면서 인간을 참소하는 역할을 했다가, 적어도 예수께서 이땅에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땅 속과 지상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불법을 저지르게 되어 결박을 받아 무저갱 속으로 떨어뜨려졌고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는 제한조치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성도들의 하늘에서의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사탄은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인간을 참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 가운데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오른쪽에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다. 사탄을 여호수아가 보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분명한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을 사탄이 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누군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그가 그것이다(슥3:2). 그랬다. 거의 탈 뻔 했는데 완전히 전소하기 전에 꺼내든 나무가 바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 에서 건져내신 후에 그의 더럽혀진 옷을 벗기고 그에게 깨끗한 옷과 정결한 관을 쓰게 하셨다. 그동안에 그가 죄악으로 인해 옷이 더럽혀졌는데 그간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셨고 징계가 끝나자 그로부터 징계를 거두시고 그에게 다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작게는 여호수아 개인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았으나 그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죄만 짓다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죽을 고생 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거지가 되어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언한다. 이것은 앞으로 그가 곧이어 실천해야 할 직무이자 이스라엘의 사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다. "네가 만일 내 도(길)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를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그렇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길을 걷지 않았다. 그리고 규례를 지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거의 파멸에 가까운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여호수아는 시드기야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집(이스라엘 공동체)를 계속해서 다스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성전)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지킬 수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온 인류의 죄악이 제거되고 인류를 죄짓게 만들고 대적하는 사탄마귀의 권세가 깨지고 그가 불못에 던져지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그 모습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시대의 평화로운 한 장면을 들어내어 말씀하신다(슥3:10). 그 날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여 평화롭고 한가로이 살아가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왕상4:25). 이는 곧 메시야의 재림으로 인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대제사장 여호수에게 주신 메시야 예언은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스가랴서는 모든 환상과 계시마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에도 역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들어 있다. 스가랴가 보았던 네번째 환상 속에는 중보자로서 "여호와의 천사"가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존재로서, 그가 여호수아에 들려준 말씀은 장차 누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며 사탄마귀를 박살낼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예언의 말씀 속에 들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의 종인 "싹"을 나오게 하여 이 땅의 모든 죄악을 제거할 것이라는 예언이다(슥3:8). 구약성경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싹"이라고 표현하는 곳이 많은데, 사4:2, 11:1~2, 53:2, 렘23:5, 33:15에도 싹이 등장한다. 특별히 메시야를 "싹"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연하고 순하다는 것이다(사4:2,53:2). 이는 죄가 하나도 없으신 메시야를 상징하며,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셨기에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수 있다는 것을 계시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메시야는 장차 혈통적으로 볼 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지만(렘23:5,33:15), 그분은 사실 줄기에서 나오는 "가지(호테르)"가 아니라, 뿌리에서 나오는 "싹(네째르)"이라고 함으로서, 그분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시는 메시야이신 것을 말해준다(사11:1~2).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세운 돌 곧 일곱 눈들을 가진 돌을 통하여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것이라는 예언이다(슥3:9). 이는 메시야가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지닌 분으로서(민20:11) 원수들을 쳐부수는 심판자가 될 것임(단2:35~45)을 말해주는 예언이며, 특히 돌에 일곱 눈들이 있다는 것은 그분은 온 세상을 완전히 감찰하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누구를 때려부숴야 하는지를 정확히 잘 아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시 오실 예수님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삼위일체인 용(사탄마귀)와 짐승(바다짐승)과 거짓선지자(땅짐승)을 철장권세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음녀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음녀는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타락한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이 음녀가 바로 [첫째]짐승(바다짐승)을 타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짐승보다 먼저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장차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께서는 먼저 음녀를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악의 삼위일체를 심판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라도 그 돌에 맞아 불의 형벌을 받지 않으려면 빨리 음녀에게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6. 스가랴가 보았던 다섯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이제는 스가랴가 보았던 다섯번째 환상을 살펴보자.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스가랴는 네번째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을 본다. 그리고 이어서 다섯번째로 유다총독"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로 볼 때, 이 환상에 등장하는 '스룹바벨'은 유다총독을 가리키지만 실은 그는 장차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메시야는 2가지 역할을 통해서 비로소 성전(교회)을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중에서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히5:5~10),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분은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계17:14,19:16).

  그렇다면, 스가랴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순금등잔대와 그 등잔대 곁 좌우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를 보게 된다(슥4:2~3). 이때 순금등잔대에는 일곱개의 등잔이 있었으며, 이 등잔대의 위쪽에는 기름그릇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양쪽에 있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이 공급되고 있었다. 그리로 기름그릇에 모인 기름은 일곱개의 관을 통하여 일곱개의 등잔에 기름을 대주고 있었다. 그러자 스가랴는 그와 말하는 해설천사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7. 순금등잔대와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순금등잔대"와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사는 그것을 슥4:6~10에서 해석해주고 있으며, 이어서 '두 감람나무'가 무엇인지는 슥4:11~14에서 해석해주고 있다. 먼저, "순금등잔대"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순금등잔대와 일곱개의 등잔"은 일차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한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이 땅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의 온전하고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세워지게 될 바림직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있는데, 그때 일곱금촛대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까지 일곱개의 등잔에 등잔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잔대 노릇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은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꿈을 성전의 일곱순금등잔으로 구성된 순금등잔대를 통하여 예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금등잔에 공급되고 있는 "기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셨다. 그 천사는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성전공사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그렇다. 조금 있다가 배우겠지만 두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은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받게 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이었던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쓰임받지 못했다. 다만 간신히 그것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남은 자에 의해 메시야를 낳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성령인 것이지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하시면 어떠한 대적이라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확인시켜주셨다(슥4:7a). 그러므로 그 천사는 스룹바벨이 이미 성전을 다 지어 머릿돌에 세울 것임과 백성들이 그것을 보면서 환호성을 친다고 하였다(숙4:7b). 성전의 기초를 놓았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결국 자기들의 손으로 그 일을 마칠 것이라고 한 것이다(스3:10, 슥4:9).

  그리고 이어서 그 천사는 스룹바벨의 손에 새 성전을 짓기 위해 측량하는 돌로만든 다림줄이 있는 것을 보고서, 백성들이 그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슥4:10a).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다림줄에 매달린 돌 추에 일곱개의 눈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개의 눈들은 온 땅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했다(슥4:10b). 이것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완전한 통제력으로 성전공사를 주관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8. 두 감람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이어서 스가랴와 말씀하는 천사는 등잔대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준다(슥4:11~14). 그때 두 감람나무는 기름을 흘러내려 큰 기름그릇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 기름이 일곱개의 관을 통해 순금등잔대의 일곱등잔에 기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시다(슥4:6). 고로 오직 성령으로만이 성전도 지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온전한 공동체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며, 신약에 들어와서 온전한 교회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감람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 천사는 "이것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들이니라"고 했다(슥4:14). 그들은 곧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총독인 스룹바벨"을 가리킨다(스3:10). 여기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있는 대제사장을 가리키고, 스룹바벨은 여호야긴왕의 아들이었던 스알디엘의 아들로서, 사실은 메시야의 조상이자 다윗왕의 후손으로서, 왕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고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대제사장의 직무와 왕직을 수행하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햐 할 것은 비록 기름이 두 감람나무에서 흘러나온다고 해서 기름을 감람나무가 생산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두 사람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어서 기름을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슥4:14). 그들도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지, 그들 자신이 기름을 생산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성령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흘러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이들로 인해 성전이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주의 종들 중에는 기름부음을 받아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흘러보내주는 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의 종들을 가르치는 주의 종, 주의 종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공급하는 주의 종들이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9. 나오며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예루살렘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있었고 유다총독 스룹바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이 두 사람에 의해 세워질 것임을 네번째와 다섯번째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 스가랴서 3장과 4장의 말씀다. 그렇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것도 성령의 기름을 충만한 받아 그것을 흘러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지금도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우편에서 일하고 계시며(히1:3, 8:1~6, 요일2:1~2),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때에는 심판주이신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오실 것임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식의 표현이다. 이것은 장차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사람들의 지도자와 더불어 성전을 지을 것인데, 그분은 성령을 충만히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일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이 오셔서 지은 성전은 곧 교회로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전3:16).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성령충만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0년 1월 22일(수)

정병진목사 



스가랴는 아주 젊은 시절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 그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지 3달만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하룻밤 사이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슥1:7~6:8).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열방을 심판하셨으니, 예루살렘에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는 환상들이었다. 그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와 세번째 환상은 이 우주만물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며, 이 세상제국의 흥망성쇠가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지, 그리고 한 나라와 성읍의 흥망성쇠도 주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육신으로 이뤄진 민족은 실패할 것이나 영적으로 이뤄진 민족은 성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럼 그때 스가랴는 무엇을 본 것인가? 그것과 요한계시록은 또 어떤 관련이 있는가?

2020-01-15(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5)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 중 앞의 3가지 환상(슥1:7~2:13)
https://youtu.be/L-HzERE1o7E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절반은 환상의 책(1~6장)이고 절반은 예언의 책(7~14장)이라 할 수 있다. 환상은 주로 새 성전의 건축에 대한 환상에 관한 것들이며, 예언은 주로 메시야의 신분과 생애와 재림 예언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스가랴서의 전반부에는 새 성전건축에 대한 환상들이 무려 8가지나 등장하는데, 오늘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 앞의 3가지 환상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앞의 3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성전을 떠나갔던 여호와께서 돌아오게 되면 이스라엘 공동체와 이스라엘 지역이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징과 계시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스가랴서는 어떤 구조와 내용이 들어있는 예언서인가?

  스가랴서는 총 14장으로 구성된 예언의 책으로서, 소선지서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분량을 갖고 있는 책이다. 스가랴서는 스가랴서 젊었을 때에 받고 보았던 예언(1~8장)과 그가 늙어서 받은 예언(9~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그가 총각시절에 보았던 것들은 B.C.520년에 보았던 8가지 환상(1~6장)과 B.C.518년에 들었던 여호와의 음성(7~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바사의 다리오왕 2년  열한째 달(스발월) 24일 밤에 무려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1:7~6:8). 그 환상들은 장차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세워지고 장차 예루살렘 성읍에 사람들이 가득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환상들이다. 이제 8가지 환상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환상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붉은 말을 탄 자의 환상(1:7~17)이다. 그리고  둘째는, 네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 환상(1:18~21)이며, 셋째는, 측량줄을 잡은 사람의 환상(2:1~13)이다. 그리고 넷째는 여호와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를 참소하는 사탄의 환상(3:1~10)이며, 다섯째는,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환상(4:1~14)에 대한 환상이다. 그리고 여섯째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5:1~4)이고, 일곱째는, 에바 안에 앉아 있는 여인의 환상(5:5~11)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덟째 환상은 두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의 환상(6:1~8)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덟 가지 환상은 사실 여호와께서 스가랴 선지자의 영안을 열어 보게 하신 환상으로서, 그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던 다리오왕 제2년 8월로부터 약 3개월 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인 다리오왕 제2년 11월 24일은 무려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제2성전재건사업이 다시 시작된 다리오왕 제2년 6월 24일(학:15)로부터 정확히 5개월이 지난 때였다.

 

3.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붉은 말 탄 사람"에 대한 환상(슥1:7~17)이다. 우리는 이 첫번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어떤 행정을 펼치시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떠나버린 성읍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성읍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함께 알 수 있다.

  스가랴가 보았던 첫번째 환상은 "붉은 말 탄 자"의 환상이다. 한 명의 붉은 말을 탄 자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여기서 화석류나무라 함은 '은매화'나무로서, 하얀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비슷한 나무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붉은 말들과 자줏빛 말들과 흰 말들이 쭉 서 있었다(물론 그 등에는 천사들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스가랴서는 자기와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보게된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리라"고 하였다. 그때 붉은 말을 탄 자가 말하기를 "이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했다(슥1:10). 그렇다. 이들은 이 땅을 순찰하는 순찰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세상으로 내려가서 이 세상을 순찰한 다음에 그 내용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은 몰라도 예루살렘은 성전 건축으로 인하여 북적거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은 아무 잠잠하고 조용하더라고 보고하였다. 그러자 붉은 말을 탄 사람(이는 "여호와의 사자"다)이 하나님께 호소하기 시작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당신이 이를 노하신 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슥1:12)."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말하던 천사에게 대답해주셨다. "너는 외치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하여 열심을 많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평온한 여러 이방나라들 때문에 주님이 심히 진노할 것인데, 이는 여호와께서는 조금 노하였지만,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거 돌아왔기에 이제는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집이 건축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읍 위에도 먹출이 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읍들도 넘치도록 풍부해질 것인데 이는 여호와께서 다시 시온과 에루살렘을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슥1:14~17).

  이 환상은 당시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언 천사들(순찰자들)이 땅에 두루 돌아다녀온 것을 대장 천사(붉은 말을 탄 천사)에게 보고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 당신의 종들인 천사를 보내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감찰하시고 그리고 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뭔가를 더 잘 알고 있는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께서 질문을 던진다. 언제 예루살렘과 유다성읍들을 회복시켜 줄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기에 곧 여호와의 집(성전)이 건축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읍이 건축되고, 유다의 여러 성읍들도 건축될 것이라고 했다(슥1:16~17). 이것은 성전공사가 무려 16년동안(B.C.536~520) 중단되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 첫번째 붉은 말 탄 자의 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첫째, 하나님께서는 이 온 우주와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은 천사들을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시온에 매우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넷째,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되면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부가적으로 모르는 환상이나 계시 등은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하늘에 있는 말들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천사들의 이동수단이라는 것이다.

 

4.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에 대한 환상이다(슥1:18~21).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환상에 이어 두번째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때에 스가랴의 눈에는 "네 개의 뿔"이 보였고 이윽고 "네 명의 대장장이들"이 보였다. 그래서 스가랴는 그에게 말하던 천사에게 네 뿔이 무엇이며, 왜 대장장이들와 왔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스가랴에서 말하던 천사는 "네 뿔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버린 뿔"이라고 하였으며, "네 명의 대장장이들"은 유다를 땅에 흩어버린 여러나라들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온 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가 "네 뿔"들은 "네 나라"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4"는 사방에 있는 대제국들을 가리키고, "뿔"들은 원래 권세와 힘을 상징하므로, "네 뿔들"은 네 나라의 권세와 힘을 가리킨다. 이 뿔들이 결국 유다를 흩어버려서 유다사람들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 져서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포로로 잡아간 대제국들(앗수르, 바벨론 등)의 뿔들을 대장장이를 보내어 그들을 두렵게하고 그들을 다 흩어버릴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슥1:21).

  이것을 무엇을 말해주는가? 비록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여 대제국에게 포로로 끌려가겠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어떤 기능공들을 보내어 네 뿔을 쓸어버린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대제국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괴롭힌 그들을 다시 없애버릴 자들을 세워 그들을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그들의 대장은 열뿔을 가진 짐승과 같은 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 계속 가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스가랴가 본 세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이어서 스가랴서 눈을 들어 "측량줄을 자기의 손에 잡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슥2:1~13). 이 사람은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러자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가 떠나갔고, 이어 한 다른 천사가 나타나, 스가랴에서 말하던 천사에게 외쳤다.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스가랴)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성 가운데에 영광이 되리라(슥1:4~5)" 이것은 무슨 뜻인가? 예루살렘이 장차 융성하게 발전한 큰 성읍이 되므로, 예루살렘은 그만 성벽이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주시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성 가운데에 임재하시겠다고 했다. 이는 지금은 예루살렘 안에 성전도 존재하지 않고, 성읍의 틀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예루살렘도 규모가 매우 커질 것이며, 광할한 성읍으로 변모할 것임을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B.C.520년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 도시가 단 한 번도 이 예언처럼 되어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환상의 의미를 이 환상후에 주어진 다른 천사의 음성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어서 어떤 천사(?)가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지 않고 살고 있는 바벨론성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한다. "화로다. 화로다. 너희는 북방땅에서 도망할지어다.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도망할지어다.(슥2:6~7)" "여호와께서 나를 노략한 여러나라로 보냈는데, 너희를 범하는 것은 그분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 내가 손을 들어 움직이면, 그들의 종들에게 오히려 노략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슥2:8~9)". 그리고 이제는 어떤 천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이제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왜냐하면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많은 이방나라들이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의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실 것이다"고 외쳤다.

  그렇다면, 천사들의 이러한 외침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첫째로, 유대인들은 빨리 바벨론성에서 도망치라는 것이다(슥2:6~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곧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B.C.519년과 514년에 바벨론은 바사에 의해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당하고 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성전에 돌아오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시  떠났다가 또 와서 예루살렘 가운데 머물 것이라는 예언이다(슥2:10~13). 이것은 결국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에는 이방나라들도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세번째 환상후 주신 첫번째의 말씀 곧 "예루살렘의 번영"에 대한 약속과 두번째의 말씀 곧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고 그때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뜻은 결국 예루살렘은 물질적인 예루살렘으로 예언이 성취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예루살렘 곧 영적으로 하나님을 모신 교회 가운데서 성취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 에루살렘은 남유다의 멸망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안한 성읍이 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크게 확장되어 성곽을 치지 못할 정도의 도시가 된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은 성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전 세계가 교회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것을 가리키며, 그때에는 이방나라들이 하나님께 속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합류할 것임을 말해준다.

 

6. 나오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렇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은 천사들을 통하여 온 세상과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천사들은 지금 이 시간도 자신이 감찰한 것들을 하나님께 보고하느라고 바쁘다. 그렇다면 그들은 현재 어떤 소식을 주님께 보고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임을 흰 꽃이 만발한 화석류(은매화)나무 사이에 선 순찰자들의 환상을 통해 알려주셨다. 이것이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이다. 그리고 이 세상제국의 흥망성쇠도 주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 스가랴가 본 두번째 환상의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곧 측량되어 성이 건축될 것인데, 그 성이 얼마나 확장되어 융성할른지 예루살렘이 성곽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성의 불성곽이 되어 지켜주실 것이고, 그 가운데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벨론에 남아있는 포로민들은 빨리 바벨론에서 도망쳐나오라고 하였다. 그 성이 파괴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환상에 대한 예언은 육적인 예루살렘에서 성취되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니,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뒤 성령을 보내주실 때에는 이방인들까지 다 구원받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은 1차적으로는 교회(하나님의 성령의 전)를 통해 성취되었고, 완전한 것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취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월 1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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