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메시야는 어떻게 예언되었을까? 아담의 타락직후 창3:15에서부터 시작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무려 350가지 이상이나 된다. 그런데 메시야의 예언은 크게 2가지로서, 영광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와 수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 예언이 있다. 그렇다면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시편22편, 이사야53장과 더불어 스가랴 12~13장에 나온다. 그렇다면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수난예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메시야의 수난과 더불어 반드시 알아야 할 또하나의 사건을 발견할 것이다.

2020-02-19(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10) 메시야의 수난과 성령강림에 대한 예언(슥12:1~13:9)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의 수난(고난)에 관한 예언이 그리 많지 않다. 이사야53장과 시편22편에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메시야의 수난에 관한 예언이 스가랴서에도 나온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350가지의 메시야예언 중에서 영광스런 메시야 혹은 왕이신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참으로 많지만, "배척받는 메시야 혹은 찔림받는 메시야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서 12~13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수난예언과 더불어 성령강림예언과 회개의 확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스가랴 14장 가운데 스가랴 12~13장의 위치는?

  스가랴서는 크게 스가랴가 젊었을 때에 본 환상과 벧엘인들의 금식질문(1~8장. B.C.520~518년)그가 늙었을 때에 받은 메시야의 예언들(9~14장, B.C.480~470년)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에서 메시야의 공생애에 대한 예언은 스가랴 9장부터 13장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스가랴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은 첫째, 메시야가 겸손하여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할 것을 시작으로 하여(슥9:9). 둘째, 그분이 과연 어느 지파의 후손으로 올 것인지(슥10:4~6) 그리고 셋째, 그가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슥11:4)가 나온다. 그 중에서도 스가랴 12장~13장에는 메시야의 수난과 성령강림 그리고 그 후에 있을 거국적인 회개운동과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을 회개케 하실 때에 나타나는 3가지 증상에 대해서 소상하게 언급한다.

 

3. 말세의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의 보존과 그 영광은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의 수난에 대해 언급하시기 전에 먼저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의 보존(보호)에 관하여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슥12:1~9). 그것은 그 어떤 이방민족도 예루살렘을 쳐서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둘러쌀 수는 있어도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자기들이 비틀거리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 다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슥12: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에워쌀 이방민족의 상태를 2가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사면을 둘러싼 이방민족은 "취하게 하는 자(비틀거리게 하는 대접)"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슥12:2). 생각해보라. 비틀거리는 잔을 안고 있으면 정작 본인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잔 때문에 자신은 더 많이 비틀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을 "무거운 돌"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슥12:3). 왜냐하면 그 돌을 옮기려고 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몸만 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말과 말탄 자들은 오히려 그들의 눈이 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것을 보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얻었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전쟁 중에 유다의 족장들을 나무들 가운데에 화로같게 만들 것이라고 했으며, 곡식단 사이에 횃볼같게 함으로 유다의 족장에게 덤비는 모든 자가 그만 불에 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슥12:6).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호해줄 백성의 범위는 고관대작부터가 아니라 평범한 유다시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 거민들 그리고 다윗의 왕가로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하셨다(슥12:7). 이는 하나님은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긍휼하심이 풍성하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듯 3년반동안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께서도 병들고 신음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먼저 구원으로 초청하셨다. 그들을 먼저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4. 스가랴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성령이 오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가?

  이어서 스가랴는 그날이 되면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서 은총과 간구의 영(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다(슥12:10). 그러면 그들이 찔렀던 바 그분(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심하게 통곡하기를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었던 애통과 같이 애통할 것이라고 했다(슥12:10~11). 그러므로 이 예언은 메시야에 대한 다음과 2가지를 예언을 포함하고 있는 놀라운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첫째는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예언이다(슥12:10). 먼저 이것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되 찔림받는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며, 수난받는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여호와 자신이시라는 놀라운 예언이다. 장차 메시야가 어떤 수난을 받을 것인지는 사실 이사야 53장과 시편22편이 없으면 잘 알 수도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가랴 12:10에서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구체적이고 놀라운 예언을 보게 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실 것이고 그분이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찔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것은 곧 메시야께서 장차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가시면류관과 채찍 그리고 창에 의해 온 몸이 찔리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찌르는 장본인들은 바로 예루살렘에 사는 거민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메시야는 가시면류관으로 인하여 머리가 찔리셨고, 채찍과 창에 의하여 몸과 옆구리가 찔리셨다. 그리고 그분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든 장본인은 로마군병이 아니라 바로 예루살렘 사람들 자신이었다.

  둘째, 성령강림과 성령강림에 대한 거국적인 회개에 관한 예언이다(슥12:10b~14). 그런데 성령께서 강림하시게 되면 동시에 큰 애통이 예루살렘에 서부터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눅24:47). 그 통곡은 므깃도 골짜기 하드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은 큰 애통이라고 했다(슥12:11). 그럼, 므깃도 골짜기에 있었던 큰 애통함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역대하35장에 나오는 사건으로서, 남유다의 16대왕이었던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왕 바로느고를 맞이하여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었을 때에, 남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왕의 죽음 때문에 슬피 울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랬다. 예수께서 죽고 난 뒤 성령이 오시고, 베드로가 "너희들이 메시야를 죽였다"고 설교하자, 15개국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기드이 메시야를 죽인 장본인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대성통곡을 하게 된다. 회개를 시작한 것이다. 이때 스가랴선지자는 회개의 순서가 왕의 족속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사장의 족속 그리고 남은 모든 이스라엘 족속들의 남녀가 다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최대의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고, 그러한 회개운동은 사마리아를 거쳐 온 이방지역으로 뻗어나갔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이 오시게 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한 회개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이라고 예언이다. 즉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이 오시게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제일 첫번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성령이 오시게 되면, 대부분 예언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고 방언을 하게 되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성령이 오셔야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성령이 오시면 결론적으로 나타나는 부수적인 것들에 해당할 뿐이다. 성령이 오시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자신이 지은 죄들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5. 성령이 오시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되면 나타나는 3가지 증상은 무엇인가?

  성령이 오시면 죄와 더러움울 씻는 샘이 열려 누구든지 이 샘에 와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족히 마시게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러면 3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 자기와 자기의 마음 속에서 우상을 제거하게 된다(슥13:2a).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게 되면 우상은 점차 자신에게 제거되는 것이다. 우상이 무엇인가?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것을 가리킨다. 기도해 보았더니 응답이 없다고 점쟁이를 찾아가면 그것이 우상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고 전하는 기쁨보다 세상에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은 그것이 우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돈이며 명예이고, 쾌락이고 인기다. 어떤 이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자식을 주님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식이 우상인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자기 맘 속에 들어와 죄를 깨끗하게 회개하게 되면 이러한 마음들이 어느순간인가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둘째,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이나 가르침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따라가지도 않게 된다는 점이다(슥13:2b). 어떤 사람은 예언을 받으러 매주마다 예언은사자들을 찾아간다. 예언자들로부터 예언을 받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예수점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원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아서 무엇을 결정하고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포기한 것이요, 예언을 하는 자의 종이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종이 되게하고 누군가를 종 삼으라고 오신 것이 아니다. 종된 우리의 인생을 놓아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예언자가 거짓된 가르침으로 말하는대도 그것이 거짓인 줄 모르고 그 가르침을 따라간다. 우리는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성령이 오시게 되면 그는 진리와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거짓을 버리고 진리만을 따라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기의 자녀들 중에 계속해서 예언하는 자가 있다면 부모는 그것을 근절시켜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거짓말하는 예언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환상과 예언하는 일이 점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더러운 귀신(영)을 추방하게 된다는 점이다(슥13:2c). 여기에 나오는 "더러운 영'이라는 "깨끗함을 받지 못한 영"을 가리킨다. 이것이 사탄마귀와 귀신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더러운 귀신과 하나될 수가 없으며, 더러운 귀신과 함께 할 수가 없다. 거룩한 영은 더러운 영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삶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다면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러운 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했으면 꾸짖어 귀신을 내쫓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하나 되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같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고로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 안에 있게 된다면 우리는 점차 귀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것이다.

 

6. 목자를 치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인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칼로서 하나님의 짝된 자 곧 목자를 치실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짝 된 자요 목자"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수난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라는 것을 뜻하며,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양떼들이 어려움과 역경을 통해서 진실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연단받아 구별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약한 자들을 당신의 손으로 보호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슥13:7). 그래서 하나님께서 목자를 치실 때에는 대부분의 양떼들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양떼의 2/3는 멸망당하겠지만 1/3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1/3이 불가운데서 금을 연단함없이 연단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슥13:8~9).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르짖는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것이며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고난의 연단없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산출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하는 가장 좋은 훈련소이며 교사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고난받는 종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사야 53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가랴 12~13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성령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왜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회개가 터저나온다. 자신이야말로 메시야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로소 성령의 샘이 열려질 것이고 그려면 모든 사람들의 갈한 영혼들이 비로소 만족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한 우상을 버리게 될 것이고, 더이상 거짓선지자를 좇아다니지 않게 되며, 더러운 귀신을 확실히 내쫓아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결과요 열매들이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이 진정 회개한 자인지를 가늠해보면 앞의 3가지 결과가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점검해보라.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가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목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회개가 성령께서 오시는 목적인 셈이다.

 

2020년 2월 1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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