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는 과연 언제 오시며, 그리고 어디로 오시는가? 그리고 그분은 누구와 함께 오시며 그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그분이 오실 때에 하늘의 징조는 무엇이며,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이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스가랴서 14장에 예언되어 있다. 스가랴 14장은 메시야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도 많은 분량의 재림 예언들이 들어 있다. 이제는 이것을 통해 거짓 선지자들과 미혹의 영들의 가르침을 벗어던져버리자.

2020-01-08(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4)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무엇인가?(슥14:1~15)
https://youtu.be/87fMsdRB77k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구약의 예언서들 가운데 이사야서 다음으로 메시야에 관한 많은 예언을 담고 있다. 스가랴 선지자가 일부러 메시야에 대해 많은 예언하려고 해서 많아진 것일까? 우리가 그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스가랴서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무려 18가지가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그분이 누구신가에 관한 예언과 더불어 그분이 어떤 삶을 사실 것인지에 관한 예언 등이 있는데, 스가랴서 14장에 가서는 그분을 재림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 예언들 중에서 스가랴 14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 5가지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스가랴 14장만큼 정확하고 풍부한 예언이 사실상 없다. 

 

2. 스가랴서에는 어떤 메시야의 예언들이 있는가?

   스가랴서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총18가지나 들어 있다. 그중에서 재림에 관한 예언 5자기를 빼면 총13가지다. 그중에서 메시야가 누군지에 관한 예언도 있고, 그분의 공생에 관한 예언도 있다. 먼저 그분이 누군지에 관한 예언을 살펴보면, 비유적으로 그분을 "일곱 눈을 가진 한 돌"(슥3:9)과 "싹(슥3:8, 6:12)" 특히 네째르(뿌리에 올라온 싹)이신 메시야로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분을 3가지 다른 직분자로서 소개해주고 있는데, 하나는 "제사장"이요(슥6:13) 또 하나는 "왕"으로(슥6:13) 소개한다. 그런데 왕도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겸손한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슥9:9) 그리고 하나는 그분을 "참 목자(슥11:4)"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스가랴서에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도 담고 있다. 공생애에 관한 예언은 그분은 오셔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왕으로 입성하실 것(슥9:9), 이방사람들에까지 화평을 전하실 것(슥9:10), 그분의 정권은 땅끝까지 이를 것(슥9:10), 그분은 목자이신데 그분을 치게 되면 양떼가 흩어질 것(슥11:8, 13:80), 목자이신 그분이 품삯으로 은 30개가 주어질 것(슥11:12), 은 삼십이 토기장이에게 던져질 것(슥11:13), 다윗과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분을 찌른 자를 보고 애통할 것(슥12:10) 등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5가지 예언이 더 있다.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첫째, 예루살렘을 치러온 이방나라를 치시기 위해 여호와께서 직접 개입하실 것(슥14:3). 그러므로 그날이 심판의 날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날이 될 것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둘째로, 재림하시는 그분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슥14:4), 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슥14:5), 넷째, 그날은 낮도 아니고 밤이 아닌 저녁 무렵과 같은 시기에 오실 것(슥14:6~7), 다섯째, 예루살렘을 치러온 이방인들을 초자연적인 재앙으로 치실 것(슥14:12)" 등이 예언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서는 재림주를 메시야로 소개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자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약의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오신 분이신 것을 여기서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3.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스가랴선지자는 재림주로 오신 메시야에 관한 어떤 예언들을 쏟아내고 있는가? 그것은 스가랴 14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재림주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슥14:3). 구약시대만해도 재림주로 오신 메시야는 여호와 자신이라고 계시되고 있었던 것이다(슥14:9).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역시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창18장에서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내년 이맘 때에 반드시 네게 돌아오리니 그때에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딤전3:16, 요1:14, 사9:6), 여기서도 여호와께서 재림주로서 임하실 것이 예언되어있지만 그 모든 일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다 성취될 것이다. 그렇다면,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재림주로 오셔서 심판하시고 어디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심판하시고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을까? 스가랴서에 총5가지 재림예언이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여호와께서 재림주로서 오시어 예루살렘을 치러온 이방나라를 치실 것이다(슥14:1~3).

  스가랴선지자는 이방인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는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슥14:1).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방나라들이 일어나 예루살렘에 쳐들어올 것이고 그래서 예루살렘 성읍을 함락시키고 가옥을 약탈하며 부녀에게 욕을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죽이고 사로잡아 갈 것이지만 그래도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슥14:2). 그러나 그날에 여호와께서 오셔서 이방나라를 치시되 옛날 전쟁 날에 싸운 것처럼 싸우실 것이라고 했다(슥14:3). 이는 하나님께서 옛날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때에 애굽과 애굽의 신들을 치신 것처럼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예언에서 2가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둘째는 여호와께서 오셔서 예루살렘을 괴롭힌 이방나라를 치시되 과거에 애굽과 전투하셨던 것처럼 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도성이자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쳐였던 예루살렘은 이 예언의 말씀(B.C.470)에 따라 적어도 수백번 이상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한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환난의 예들을 들어보자면, 첫번째는 헬라제국의 셀류커스왕조 때에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재위 B.C.175~164)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돼지피를 드리면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한 사건(B.C.167년)이라고 할 수 있다(단8:12,11:31). 그리고 두번째는 로마의 디도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사건(A.D.70)을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마24:15,눅21:20).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 또 다시 예루살렘의 파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메시야의 재림 예언이 A.D.70년의 이스라엘의 멸망 및 성전파괴사건으로 끝날 것이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신약에 들어와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고(롬11:26, 갈6:16),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계20:9). 고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의해 교회의 핍박과 공격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마24장에서 마지막에 될 일을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9, 21~22). 그리고 정말 마지막의 때가 되면, 사탄을 상징하는 용과 그의 졸개들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전쟁(아마겟돈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계16:12~16, 19:17~21).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에 의해 환난을 겪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을 겪고 있음을 안다. 그런데 이러한 환난은 주님께서 오셔서 이방나라를 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 그분이 재림하시는 장소가 예루살렘 앞 동편 감람산이 되실 것이다(슥14:4). 그리고 그때에 감람산이 동서로 갈라져서,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예루살렘 사람들이 도피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슥14:4~5a).

  스가랴선지자는 장차 여호와께서 메시야로서 지상에 재림할 장소로서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해발 814m 높이의 감람산을 예언했다. 이곳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하는 이방나라의 장수들이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던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을 쳐부수기 위해 메시야가 재림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어디에서 승천하셨을까? 놀랍게도 그 장소가 바로 감람산 꼭대기였다. 그때 천사 2명이 나타나 하늘로 올리워진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다(행1:11). 승천하셨던 그 장소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스가랴선지자는 그때에 감람산에 임할 큰 지진을 언급했다(슥14:4~5a). 메시야가 오실 때에는 포위망을 뚫고 예루살렘 백성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큰 길을 내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람산이 지진으로 쪼깨짐으로 동서로 큰 길을 내시어 그리로 도망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징적인 묘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내시겠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A.D.70년에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예루살렘을 치러올라온 로마군대가 잠시 공격을 푼 적이 었었다. 3년간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던 로마군대였다. 하지만 로마황제가 죽었다는 기별을 받고 베스파시안 장군이 로마로 갔고 그때 잠시 포위를 푼 것이다. 그러자 마2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을 빠져나와 펠라지역으로 피신한 것이다. 그리고 베스파시안이 황제로 오르자 황제는 그의 아들 디도장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하였다. 그때 3년간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 중에 죽은 자가 110만명이었고, 로마에 포로로 잡혀간 자가 10만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A.D.70년의 사건을 재림의 가장 중요한 징조의 하나로 본다.

 

다.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실 때에는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슥14:5b).

  이어서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야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에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이라고 했다(슥14:5b, 유1:14~15). 그러니 적어도 두 무리의 이상의 거룩한 자들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의 재림 예언을 보면, 그때 예수님을 뒤따라오는 거룩한 자들을 두 무리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는 성도들이요(살전3:13) 또 하나는 천사들이다. 먼저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첫째부활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있던 자들을 가리킨다(계20:4~6).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치기 위해 동행할 것이다(계2:27). 그리고 또 하나는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다(계19:14). 이들은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로 추정되는데(계12:7), 왜냐하면 인류 최후의 전쟁 때에는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그의 하수인으로 짐승과 거짓선지자 그리고 그의 부하들로서 귀신들이 땅의 왕들을 꼬드겨 전쟁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계16:12~16).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들은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사로잡아 불못에 던질 것이고(계20:10,19:20),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백마를 타고 오시는 대장 예수님과 그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계19:19,21).

 

라. 여호와께서 재림주로 오시는 날에는 빛이 없어지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며, 그 시간은 낮과 도 아니요 밤도 아니며 어두워갈 때로서 오직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될 것이다(슥14:6~7).

  여호와께서는 오시는 날은 빛이 없는 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치심으로 해와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은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타락한 천사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마24:29, 계6:12~17). 그러나 그 시각은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 아들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를 것이다. 다만 때와 기한을 주관하시는 아버지만 아실 것이다(마24:36, 행1:7).

 

마. 여호와께서 재림주로 오시어 만국을 치실 때에는 초자연적인 재앙을 치실 것이며, 대적들을 자기들끼리 쳐셔 죽게 할 것이다(슥14:12~15).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재림주로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초자연적으로 재앙으로 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살이 썩게 되고,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역시 썩게 될 것이며, 그들의 혀가 입속에서 썩어버릴 것이다(슥14:12). 그때 대적자들이 극심한 공포 속에서 서로 도망치려고 서로를 피차 붙잡고 죽이게 될 것이다(슥14:13). 이러한 일은 기드온이 아말렉 군사와 싸울 때에도 일어났고(삿7:22), 사울왕이 블레셋을 칠 때도 일어난 일이다(삼상14:15~20).

 

4. 나오며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B.C.470년경 스가랴선지자는 미래의 일들을 이렇게 눈으로 보듯이 예언할 수 있을까? 그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은 역시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이렇게 하여 스가랴선지자는 50년동안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쏟아내었다. 우리는 오늘날 스가랴선지자의 예언으로 말미암아 마2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스가랴서의 메시야 재림 예언을 통하여, 그분이 누구와 함께 오시며, 언제 어디에 오시는지 곧 그분의 동행자와 재림 시기 그리고 장소를 알 수 있으며, 그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악의 무리들(대적하는 사람들과 귀신들)을 처단하시는지를 살펴보았다. 스가랴 선지자자 아니었다면 희미하게 밖에 알 수 없었던 일들을 명확히 알게 되었으니, 그날을 잘 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다.(오직 성삼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2020년 1월 8일(수)

정병진목사 


스가랴는 구약의 17개의 선지서 중의 하나이지만 퍼센트로 따지면 가장 많은 메시야 예언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은 14장에 불과한데 무려 18가지의 메시야 예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서의 메시야 예언은 그분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에 관한 내용들인데, 그중 스가랴 9~13장에서는 메시야의 공생애 가운데 마지막 한 주간의 삶이 빼곡히 예언되어 있다. 그 예언들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성취가 되었을까?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가?

2019-12-18(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3)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약속은 무엇인가(2)(슥9:9~10)
https://youtu.be/jvRncmtynfk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예언서이지만 묵시서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스가랴서의 전반부에 8가지 환상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가랴서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다른 선지서들에 비해 탁월하게 많이 들어있는 예언서다. 1장에서 14장 사이에 총 18가지나 되는 메시야 예언이 들어 있으니, 이사야서 다음으로 메시야의 예언이 많이 들어있는 책이며, 퍼센트로 치자면 스가랴서는 구약의 선지서들 가운데 가장 많은 메시야의 예언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스가랴서에는 과연 어떤 메시야의 예언이 들어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서 계속해서 메시야 예언을 계속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오늘은 스가랴 9장에서 13장까지 들어있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가?

  스가랴서는 총14장으로 구성된 예언서인데, 내용면에서 본다면 예언의 내용이 확연하게 다른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 1장~8장까지는 성전공사의 독려를 위한 예언이 수록된 반면에, 후반부인 9~14장은 메시야의 오심을 통한 메시야왕국의 도래 예언이 수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에도 두 부분은 약 40년간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다. 즉 전반부 1장~8장까지는 B.C.520년에서 518년에 주어진 예언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 9~14장까지는 B.C.480~470년에 주어진 예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내용상 전반부인 스가랴 1~8장은 다시, 서론(슥1:1~6) 말씀과 8가지 환상이 기록된 부분(슥1:7~6:15)과 금식일에 관한 질문과 답(슥7:1~8:23)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후반부인 스가랴 9~14장은 다시 초림의 메시야 예언이 기록된 9~13장의 말씀과 다시 오실 재림의 메시야 예언이 기록된 14장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오늘 이 시간에는 9~13장에 나오는 초림의 메시야 예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스가랴서에는 어떤 메시야의 예언들이 있으며, 초림의 메시야 예언은 무엇인가?

  스가랴서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첫째,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1~8장)둘째,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9~13장)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셋째,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9~13장) 8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초림할 메시야의 예언 중에서 공생애 끝에 있는, 마지막 한 주간에 있을 메시야 예언을 주로 언급했다. 그것은 메시야가 나귀의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을 필두로 하여, 선한 목자로 오셨으나 결국 멸시와 천대 가운데 배척을 받으시고, 은30에 팔리시어 죽게 되시는데 찔려 사망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몸값 은30은 이내 다시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데 쓰여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선한 목자인 메시야가 죽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목자를 치시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심으로 메시야는 홀로 고난을 감당할 것임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다. 이것이 메시야의 공생애 예언의 중요 골자다. 이제부터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8가지 예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초림의 메시야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겸손한 왕이심이 예언되어 있다(슥9:9). 이 예언을 따라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마21:1~17, 막11:1~11, 요12:15). 그렇다. 예수께서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오신 것도 아니요, 군림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가 아니다. 왜냐하면 메시야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요18:33~37).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소개하셨다. 그러니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다(마11:29). 그분은 원래는 창조주요 하나님이셨지만 자기를 비우시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 우리는 겸손한 왕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공평하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둘째, 초림의 메시야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싸움 그리고 이방인들과 싸움을 끝내시고 평화를 가져오시되, 땅끝에서 땅끝까지,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평화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9:10). 스가랴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싸움을 끝내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평화를 이루실 장소는 땅과 강 모두라고 했다. 이 예언에 따라 예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그가 태어나실 때에도 천사들이 노래하기를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눅2:14)"이라고 노래했다. 정말 그분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애셨다. 그리고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해주셨다(마8:10). 그래서 그분은 우리(울타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을 인도하여서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그래도 이행하셨다(요10:16). 사도바울도 예수께서 오셔서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고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시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셋째, 초림의 메시야는 잡혀 죽임당할 가련한 양떼를 먹이기 위한 선한 목자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1:4,7). 스가랴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실 때에 양떼들의 형편은 가련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떼를 사들인 자도, 팔아버린 자도, 목자들도 양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슥11:5).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살 목자는 그러한 양떼들을 진정으로 돌보실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한 목자로서 진짜 예수께서 오셨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양떼를 살리기 위해 내놓으셨다(요10:11~15).  

  넷째, 초림의 메시야는 나중에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멸시와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1:8). 이때 스가랴 선지자는 양떼를 먹이기 위해 온 선한 목자를 양떼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배척하고 미워하고 멸시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에 따라 결국 예수님은 3년반동은 그동안 아끼고 사랑하셔서 치료해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었던 사람들에 의해 배반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사회는 이미 기득권세력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율법교육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고, 성전제사는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율법교사 위에 교사로 오신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을 제대로 해석해주셨고, 성전제사를 이익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성전매매상과 환전상을 성전에서 내쫓아내셨다. 그러자 그들은 분노했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결국 이 예언에 따라 예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을 받은 백성들에 의해(내면에는 사탄마귀의 조정에 의해) 배반당한 채 멸시와 천대와 미움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게 된다(마22:22,39~43).

  다섯째, 초림의 메시야는 은 30개에 팔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1:12). 이것은 스가랴선지자가 선한 목자로서 자신이 백성으로부터 배척을 당할 때에 그동안 일한 댓가를 백성에게 달라고 했더니 그들이 은30개를 달아서 품삯으로 주었다는 말씀이다. 이에 따라 예수께서도 가룟유다에 의해 대제사장들에게 팔리는데, 그때 대제사장들은 은30을 달아서 그에게 주었다(마26;15). 그러나 예수님의 몸값은 얼마나 되는 것인가? 당시 은30은 노동자의 넉달치 품삯에 해당한 것이다. 이는 남자 노예가 동물에게 받쳐 죽게 되었을 때에 물어내야하는 몸값에 불과하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노예처럼 취급을 받은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값은 사실 인류가 계산할 수 없이 고귀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노예만도 못한 사람으로 팔아버린 것이다.

  여섯째, 초림의 메시야를 샀던 은30이 토기장이에게 던져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1:13). 이에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이 자신에게 준 몸값 은30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토기장이에게 던져버린다. 이 예언을 따라 나중에 가룟유다도 자기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한 사실을 알고 자신이 받았던 은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주지만 그들은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성소에 던져넣고는 자살해버린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이것은 '피값'이라고 하면서 성전고에 넣어둠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의논한 후 그것으로 토기장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을 '피밭'이라고 불렀다(마27:3~8, 행1:18~19). 이에 메시야가 은30에 팔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는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마27:9~10).

  일곱째, 초림의 메시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찔림으로 고난받을 것이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행위 때문에 독자와 장자를 잃은 슬픔으로 통곡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2:10). 이 예언을 따라 예수께서는 머리에 가시면류관으로 찔림을 당하셨고(마27:29), 로마군병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셨으며(마27:26, 요19:1), 손과 발이 못에 찔리셨다(마27:35, 요19:18). 그리고 죽으신 후에는 로마군병이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요19:34). 한편 스가랴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은총과 간구의 영(성령)을 부어주실텐데 그러면 그들이 자신이 행한 일 때문에 애통하고 통곡하기를 독자와 장자를 잃은 슬픔처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예수께서 죽으신 후 50일 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메시야를 자기들의 손으로 죽였음을 시인하면서 통곡하고 회개하게 된다(마2:37~41). 그리하여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받은 이가 3천명이나 된다. 더불어 이 예언은 마지막 날에 또 한 번 성취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쳐다보게 될 터인데, 그때 가서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죄 때문에 가슴을 치며 한탄하겠지만 그때는 그 어떤 통곡도 그들을 지옥의 형벌로부터 면해주지는 못할 것이다(계1:7). 그러므로 회개하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그날에 회개하면 때는 늦다.  

  여덟째, 초림의 메시야인 선한 목자를 하나님께서 내치심으로 양떼들은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3: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자를 당신이 쳐서 내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때에는 양떼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예언에 따라 예수께서는 성찬식을 마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으니라(마26:31)" 그리고 얼마 후 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들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를 잡으러 왔을 때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자제시키면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 하겠느냐(요18:11)"고 하시고는 스스로 잡혀가셨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이 도망쳐 흩어지고 말았다.

 

4. 나오며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고 믿는가? 그분 스스로가 "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고 말씀하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주장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거짓말을 지어서 말로만 내뱉었던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실제 구약의 예언을 따라 사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 4,000년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보냄받은 자에 대한 약속대로 그대로 오셨고 또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메시야로 믿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 오실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은 무려 350가지 이상이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많은 예언들을 고스란히 성취하신 바 되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구세주로 믿는 것이다. 그러한 메시야의 예언들 가운데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4일 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까지의 예언들이 스가랴 9장에서부터 13장에 걸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스라갸선지자는 B.C.500년경의 예언자인데,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500년 뒤에 오실 메시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대로 예언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 공생애 4일간에 일어날 8가지의 예언을 그는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다.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다 행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19년 12월 18일(수)

정병진목사

  


구약의 스가랴서에서 메시야는 과연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까? 우리는 스가랴 1~6장을 통해서, 메시야의 신분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거기에는 그분이 왕과 제사장의 신분을 가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금 생소한 표현도 등장한다. 그것은 메시야가 "싹"이요 일곱눈들을 가진 "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싹"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당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로 부른 것인가? 그것은 "싹"이라는 단어에 그 비밀이 숨겨 있다.

2019-12-11(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2)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약속은 무엇인가(1)(슥6:12~13)
https://youtu.be/CI5cTbglj_o


1. 들어가며

  스가랴선지자는 예수께서 태어나기 500년에서 47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살펴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얼마나 자세하게 기록했던지 혀를 내두를만한다. 왜냐하면 그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정확성과 세밀한 부분은 직접 현장에서 보면서 말하는 사람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구약시대에 예언자들 중에서 메시야 예언을 많이 한 선지자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제1순위로서 이사야를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제2순위는 아마도 스가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가랴서에는 소선지자에 속한 책이지만 아주 많은 메시야의 예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서는 메시야에 관하여 적어도 18가지 이상의 예언이 들어 있다. 사실 스가랴서는 총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무려 18가지나 나오니, 스가랴서에는 한 장에 한 개 이상의 메시야 예언이 있는 수록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주에 스가랴서의 서론부분을 살펴보았다. 스가랴서의 저자와 기록연대, 내용과 요점, 그리고 내용상 구분을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2가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스가랴서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언들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오늘은 스가랴 6장에 나오는 2가지 예언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어떤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신약성경의 기록 중에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어떻게 구약의 예언을 통하여 풀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빈다.

 

2. 스가랴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스가랴서는 총 14장으로 구성된 예언의 책이자 묵시의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구분하는 것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스가랴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첫번째는 스가랴 1장부터 6장까지인데, 여기에는 8개의 환상으로 된 묵시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두번째는 스가랴 7~8장까지인데, 여기에는 금식에 관한 4가지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본다면, 첫번째 예언이 B.C.520년의 예언이라면, 두번째 예언은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뒤인 B.C.518년에 주어진 예언이다. 그리고 나서 2년 뒤인 B.C.516년 10월 3일에 드디어 제2성전인 스룹바벨성전이 건축된다. 그리고 나면 스가랴서의 세번째 부분이 나온다. 이 예언은 스가랴 8장의 예언으로부터 약 38년이 지난 후인 B.C.480~470년 사이의 주어진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메시야를 통한 메시야왕국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가?

  스가랴서는 메시야를 통한 메시야 왕국의 실현 예언으로 빼곡한 예언서다. 특별히 우리가 오늘 공부하고자 하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스가랴 3장과 6장에서는 "메시야의 인격:에 관한 예언이 나오고, 스가랴 9장부터 13장에서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그리고 스가랴14장은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내용이 섬세하게 나온다. 그중에서도 스가랴 9~13장까지에서는 초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받을 영광과 고난 그리고 메시야의 왕국이 어떤 것인지가 나온다.

 

4. 스갸랴서에 나오는 메시야 예언 중 첫번째와 두번째 예언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 가운데 첫번째오 두번째 예언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스가랴 3장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2가지 메시야 예언을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메시야의 첫번째 예언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당신의 종인 "싹"을 나게 하겠다는 예언이다(슥3:8). 여기서 "싹"이라 함은 연한 순같아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 싹이 결국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 있다가 살펴볼 메시야의 세번째 예언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어 메시야의 두번째 예언을 살펴보자.

  두번째 예언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 앞에 세워둘 메시야인 "돌"에 관한 예언이다(슥3:9). 그런데 이 돌이 예사롭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 돌은 생김새부터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돌에 일곱 눈들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눈들"이란 계5:6에 따르면, 어린양의 일곱눈들로서(여기서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나온다. 결국 이 돌에 박혀 있는 눈들은 이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예수님의 눈들이자, 예수께서 보내셔서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가리킨다. 둘째로 이 돌은 온 땅의 죄악을 하루 아침에 제거할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특이하다. 왜 그런가? 이 돌이 깨질 때면 온 인류의 죄악이 제거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돌의 의미는 사실상 모세를 통한 반석의 생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바다. 다시 말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르비딤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하나님이 지시한 거대한 반석을 자신의 지팡이로 내리침으로, 그 쪼개진 반석에서 생수가 콸콸콸 흘러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을 흡족히 다 먹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두고서 사도바울은 "쪼개진 반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고,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어진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했다(고전10:4). 고로, 스가랴3:9에 나오는 "돌" 역시 성령을 품고 있는 돌로서, 메시야를 가리키는 돌인 것이다. 그런데 이 돌이 쪼개질 때에 물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에서 모든 피가 흘러나왔는데, 이 피는 온 인류의 죄악을 씻기는 피였던 것이다. 그래서 슥3:9에 나오는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 돌은 2가지 용도로 쓰인다. 하나는 이 돌을 귀히 여기는 자들에게는 이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교회를 건축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돌을 천히 여기는 자에게는 이 돌이 그들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이는 사도베드로였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할 때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했는데, 그때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칭했다. 다시 말해,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반석(돌)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교회를 건축할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메시야를 거부했던 예수님 당시 종교자들에게 예수님은 거치는 돌이자 걸려넘어지게 하는 돌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시야가 우리의 구원자로 다가오게 해야지 그분이 우리의 심판주로 다가오게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5.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 중 세번째와 네번째 예언은 무엇인가?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세번째와 네번째 예언은 스가랴 6장에 나온다.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바벨론으로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님은 스가랴로 하여금 그 집 안으로 들어가 그들로부터 은과 금을 받아서 "면류관들"을 만들라고 하신다(한글개역개정판성경에는 "면류관"이 단수와 나와 있으나 히브리어로 보면 복수다). 여기서 "면류관(아타라)"는 면류관들로서, 왕이나 제사장들이 쓰는 관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면류관을 씌운 다음에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는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의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6:12)" 슥3:8에서는 하나님께서 장차 당신의 종 싹을 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장차 "자기의 자리에서 싹이 돋아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전(성전)을 건축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 싹이 "여호수아"를 가키리는지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아마도 여호수아를 가리키는 듯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 싹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메시야가 될 자(그가 여호수아라고 한다면 그는 예표가 될 것)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싹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계시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싹이 자기의 자리에서 스스로 돋아올라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구약 예언서에서 "싹"이라는 말은 연한 순같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고로 이사야53:2에 보면,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싹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싹"에 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또 한 가지 다른 예언을 드려준다. 그것은 이사야 11:1의 말씀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그런데 사실 이사야11:1의 한글번역은 조금 잘못 되었다. 실제로 줄기에서 나온 것을 "가지"라고 부르고, 뿌리에서 올라온 것을 "싹"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거꾸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히브리어를 통하여, 나무의 줄기에서 올라우는 가지를 어찌되었든 "호테르"라고 칭하며, 뿌리에서 올라오는 싹을 "네쩨르(네쎄르)"라고 칭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예수님 당시 메시야를 왜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는지 아는가? 그것은 단순하게 그분이 나사렛에서 사셨기에 나사렛예수라고 부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예수(여호수아, 예수아)라는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다른 예수(여호수아, 예수아)와 구별하기 위해 "나사렛출신의 예수"라고 불렀으리라고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다나엘의 말을 추억할 것이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사렛 촌동네에서 무슨 위대한 인물이 나오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나사렛 사람"이라는 뜻은 "촌동네사람, 무명의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마태복음의 기록을 통해서 그 말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마2:23). 그러면, 많은 독자들은 구약 어딘가에 예수께서 "나사렛 예수"라고 불릴 것이 예언되어 있는가보다 하고서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과연 구약성경에 나오는지 찾아보았는가? 그런데 이 말이 구약 어디에 기록되어있는지 밝혀주는 각주가 있다. 각주에는 그 말이 "이사야 11:1"의 예언의 성취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좀전에도 살펴보았지만 이사야11:1의 어디를 살펴보아도, 예수께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말씀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글로 된 성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한 번 살펴보았지만 사실 마태복음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초기교부였던 이네네우스와 오리겐은 마태복음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된 마태복음 2:23의 말씀을 읽어본 사람은 이사야11:1의 각주를 보고, 그것이 예수님을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수긍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분명, 메시야는 나사렛인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사야 11:1의 말씀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히브리어단어로 읽어보는 이사야11:1의 말씀은 이렇다. "이새의 줄기(게자)에서 한 싹(호테르)가 나며, 그의 뿌리(쉐레쉬)에서 한 가지(네쩨르,네쎄르)가 나서 결실할(열매를 맺을) 것이요" 그렇다. 한 나무에서 올라오는 "가지" 혹은 "싹"은 불리는 명칭이 다 달랐던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나무의 줄기에서 올라오는 가지는 "호테르"라고 불렀고, 뿌리에서 올라오는 싹은 "네쩨르(네쎄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이다(요8:42, 요16:28). 그러므로 그분을 "가지(호테르)"나 "싹(네쩨르)"으로 표현한다면, 그분은 "호테르"가 아니라 "네쩨르(네쎄르)"인 것이다. 즉 "나사렛 사람"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는 법적인 혈통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아담의 피 한 방울을 받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마1:20, 눅1:35).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법적으로는 이새의 줄기에서 올라온 가지(호테르)이지만, 사실은 이새의 뿌리에서 올라온 싹(네쩨르)이신 것이다. 고로 승천하여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계22:16)"이라고 소개하시고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뿌리 곧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올라온 네쩨르(네쎄르)인 것이다. 나사렛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랴선지자는 장차 그분이 자기의 장소에서 돋아올라오신다고 예언했던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스가랴선지자는 자기의 장소에서 돋아나오는 싹이 결국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슥6:12). 그렇다. 요한복음과 사도바울의 서신서들에 보면, 구약의 여호와의 전 곧 하나님의 성전은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되었고(요2:21), 예수님의 몸은 다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발전되었다고 나온다(엡1:23). 예수께서는 사실 육체로 계실 때에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요2:19~21). 그래서 자신의 몸을 헐고 3일만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예언하셨다. 이는 그분이 죽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교회를 건축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자신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을 밖으로 해방하여,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그분을 믿는 이들 안에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 곧 교회는 하나님을 모신 자들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 되는 것이다(고전3:16). 그러므로 네쩨르인이었던 예수께서 결국 죽고 부활하심으로 오순절날에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싹이라 이름하는 이가 여호와의 집을 건축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에 관한 네번째 예언을 살펴보자. 스가랴선지자는 이어 "싹"이라 이름하는 이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제사장이 그의 보좌 옆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슥6:13). 다시 말해, 메시야는 부활하여 만왕의 왕이 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면류관들을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운다는 것과 싹이라 이름하는 이가 왕이 될 것이요 제사장이 그의 보좌에 옆에 있을 것이라는 말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것은 대제사장의 머리에 금관과 은관을 씌움으로 그가 왕과 제사장직을 겸하듯이, 싹이라 이름하는 메시야에게도 금과 은관이 씌워짐으로, 그는 왕으로서의 직책과 제사장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시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 예수는 먼저 부활승천이후에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셨다. 그리고 그는 둘째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인류를 속죄하는 일을 지금도 감당하고 계신다(히2:17~18, 3:14:14~16, 5:5~10, 6:20, 7:11,22~28,8:19:11~12).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했으며,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고 증언하고 있다(히12:2).

 

6. 나오며

  예수 그리스도 그는 누구신가?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하여 그분이 누군지를 배울 수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 있다.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 그러한 경우에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찾아서 비교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럼, 구약성경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성경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사야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스가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가랴서의 총14장 가운데 총18가지나 되는 메시야 예언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예언은 스가랴 1장에서 8장 사이에 중점적으로 나온다. 특히 3장에서 2가지가 나오고, 6장에서 2가지가 나오는데, 오늘은 6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 2가지를 공부해보았다. 곧 그분은 싹이라 이름하는 분으로 네째르인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승천하셔서 지금도 왕직과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렇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왕이시면서 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핍절함이 없을 것이며,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장래의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2월 11일(수) 


스가랴서, 다소 생소한 구약성경책이다. 스가랴는 제사장이었다가 선지자가 된 인물로서, 포로귀환 때에 학개선지자와 더불어 성전건축을 촉구했던 선지자다. 그런데 그는 젊은 나이에 부름받아 8가지 환상을 보고, 더불어 메시야에 관한 18가지의 예언을 쏟아낸다. 그럼, 그가 보았던 8가지 환상은 대체 무엇이었으며 그가 예언한 메시야의 18가지 예언은 무엇이었는가? 중요한 것은 이 2가지 사실은 우리가 메시야의 공생애와 재림에 관해 푸는 열쇠들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이며, 요한계시록을 푸는 열쇠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제 스가랴서가 어떤 책인지 그 서론을 살펴보자.

2019-12-04(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1) 스가랴서는 어떤 책인가?(슥1:1~6)
https://youtu.be/JzW1xdp1AKQ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구약의 총 17권이나 되는 선지서(예언서)들 중에 소선지서에 해당한다. 이 예언서가 쓰여진 시기(B.C.520~470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포로에서 귀환할 때다. 다시 말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첫번째 귀환하던 시기에 쓰인 책이다. 포로귀환은 약 100년에 걸쳐 3번 있었는데, 그중에 첫번째 귀환이 B.C.357년에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B.C.356년에는 예루살렘에 성전건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인해 성전공사는 이내 중단되었고, 16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러자 스가랴선지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선지자 학개(노인이었을 것)가 일어나 성전건축공사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바로 바사국 제4대왕 다리오왕 2년 6월경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은 B.C.520년 6월의 일이었다. 스가랴서는 이때로부터 약 2달 뒤인 B.C.520년 8월부터 선포된 스가랴(20살청년이었을 것)의 메시지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스가랴는 구약성경 가운데 3대 묵시문학서 중의 하나다. 그래서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와 더불어 환상과 상징으로 가득찬 책이므로 조금은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본문의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고 묵시문학적 특징을 이해하고서 이 책을 읽게 되면 환상도 쉽게 해석할 수 있을 뿐더러, 이 책에 등장하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도 쉽게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환상과 메시야 예언에 관한 스가랴서 강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2. 스가랴서의 저자인 스가랴는 누구인가?

  스가랴서의 저자는 스가랴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스가랴(혹은 사가랴)가 약29명이 나온다. 그중에 스가랴서의 저자는 잇도의 손자와 베레갸의 아들이다(겔1:1). 잇도는 누구인가? 잇도는 제1차 포로귀환자들 중에서 제사장으로 돌아온 22명 가운데 한 명이다(느12:1~7). 그런데 잇도의 계보는 아들 베레갸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느12:16). 곧바로 잇도에서 스가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중요한 것은 선지자 스가랴가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에스겔도 선지자로 부름받은 자지만 원래는 제사장가문의 사람이었다. 스가랴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3. 스가랴서의 내용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스가랴서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스가랴서는 크게 2부분으로 나뉜다. 스가랴서의 내용은 한 마디로 "환상과 예언"이라고 보면 된다. 그중에서 전반부는 1~8장까지인데, 그것은 B.C.520~518년에 주어진 계시로서, "환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는 9~14장까지인데, 그것은 B.C.480~470년에 주어진 예언의 말씀으로서, 여기에는 장차 겸손한 왕이자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말씀은 제2성전 재건사업이 재개된 직후 그들을 독려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과 환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말씀은 묵시적이고도 종말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스가랴 9장은 겸손한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고, 스가랴11장은 메시야를 상징하는 참 목자의 행적과 백성들의 배척들에 관해 다루고 있다. 참고로, 전반부의 환상과 후반부의 예언은 약 40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전반부는 이제 막 성전공사를 시작할 즈금에 주어진 환상이라면, 후반부는 이미 성전공사가 마무리되고 약 40년이 경과한 시점에 주어진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4. 스가랴서에 오는 8가지 환상은 무엇인가?

  스가랴서의 전반부(1~8장)은 서론 부분(1:1~6)과 8가지 환상(1:7~8)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우는 부분(6:9~15)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 하이라이트는 역시 8가지 환상이다. 스가랴는 다리오왕 제2년(B.C.520년) 11월 24일 하룻밤에 8가지 환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는 환상들이었다. 그런데 제6번째 환상과 제7번째 환상은 자기들이 성전을 세웠다고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겠다는 환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때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던 환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총8가지다. 오늘은 간략히만 요약해본다. 첫째는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와 세 말의 환상(1:7-17)이 나온다. 이는 선민을 핍박한 열방을 심판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회복시켜 주시는 등 선민 회복 전반에 대한 예고다. 둘째, 네 뿔과 네 대장장이의 환상(1:18-21)이 나온다. 이는 포로 귀환 세대의 선민을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방의 모든 악한 세력을 심판하여 멸하실 것에 대한 예고다. 그리고 셋째, 측량줄을 잡은 소년의 환상(2:1-13)이 나온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예루살렘 성까지도 다시 재건될 것과 예루살렘이 번영하며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임재하심으로 안전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예고한다. 넷째,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관한 환상(3:1-10)이 나온다. 이는 여호수아로 대표되는 선민의 죄를 사하여 정결하게 하셨음과 장차 ‘싹’ 으로 상징된 한 종을 통하여 선민에게 종말론적 사죄와 축복을 보장하실 것에 대한 예고다. 다섯째,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4:1-14)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신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의해 성전이 반드시 재건될 것에 대한 예고하는 것이다. 여섯째,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5:1-4)이 나온다. 이는 제3계명과 제8계명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 대한 신속한 심판 예고다. 일곱째, 에바 안에 앉은 여인의 환상(5:5-11)이 나온다. 이는 관영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과 그 비참한 결과에 대한 예고다. 여덟째, 두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의 환상(6:1-8)이 나온다. 이는 선민을 대적하는 사방의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시행될 것에 대한 예고다.

  그렇다면, 왜 스가랴는 성전건축을 직접 독려하는 말을 하지 않고 환상을 보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달한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당시 스가랴선지자보다 2달 먼저 이미 성전건축을 독려하는 선지자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학개선지자였다. 학개 선지자는 다리오왕 제2년(B.C.520년) 6월 1일에 부름받은 노년의 선지자였다. 그는 제1차성전건축이 중단된 이후 16년이나 손을 놓고 있는 남유다와 예루살렘거민들에게 왜 성전건축을 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였다. 자기들은 편벽한 집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의 집은 황폐한 가운데 내버려두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땅의 산물의 축복도 주지 않고 있으며, 받을 복도 다 주께서 불어버리고 있다고 강하게 외쳤다. 그러자 백성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손을 걷어부치고 성전건축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스가랴는 똑같은 말을 두번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학개선지자는 노인이었기에 책망해도 백성들이 들을 수 있는 위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가랴선지자는 젊은이(약 20세가량)이였기에 책망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전달함으로서,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받았음을 확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 스가랴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야예언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스가랴선지자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언을 하였는가? 그는 메시야에 관한 총18가지의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3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계속 있다. 그런데 그 예언들을 종합해보면,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 그분의 신분에 대한 예언이 나오고, 둘째로 초림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버림받음과 고난에 관한 예언이 나오고, 이어서 셋째로, 그분의 재림과 아마겟돈전쟁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그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은 주로 9장에서 13장 사이에 나오고, 그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14장에 나온다.

  이중에서 오늘은 시간 관계상 슥3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 2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메시야에 관한 첫번째 예언은 "싹"을 통한 참된 성전건축에 관한 예언이다(슥3:8).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당신의 종 "싹"이 나오게 하여 그로 하여금 참 성전을 짓게 하겠다는 예언이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유다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를 통해 제2의 성전(스룹바벨성전)을 짓게 하셨다. 그중에서도 대제사장인 여호수아를 통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진짜 성전은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주님의 종인 "싹"이 나오게 해서 그가 그것을 짓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싹"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것은 연한 순으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약하게 보이고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그(메시야)가 장차 참된 성전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면, 장차 오셔서 메시야가 세울 성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교회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6:18). 그러므로 이 땅에 완전한 물질적인 성전은 세워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은 싹을 통해서 세울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메시야닉쥬들이나 유대인들은 제3의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겠다고 야단이다.

  메시야에 관한 두번째 예언은 "일곱눈을 가진 한 돌인 메시야를 통하여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시겠다"는 예언이다(슥3:9).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한 돌을 둘 것인데, 그 돌이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돌에는 일곱개의 눈들이 있었다. 우리는 신약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돌)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건축물처럼 모퉁이돌 위에 건축물이 세워진다. 그러므로 교회가 건축되기 위해서는 모퉁이돌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모통이돌과 같은 존재를 보내 참된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이 땅에 "돌(반석)"로 오신 예수께서 사람들에 의해 쪼개지심으로 그 속에서 생수가 나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사도바울은 고전10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에 쪼개진 신령한 반석에서 마신 생수를 '성령'이라고 하였으며, 그 "반석(돌)"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고전10:4). 그런데 이 살아있는 돌(반석)에 대해 베드로사도는 2가지 역할을 말했다. 하나는 그것을 메시야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모퉁이의 돌이 되어 집을 건축하게 되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그돌이 오히려 부딪히는 돌(반석)이 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벧전2:7~8). 다니엘 선지자는 그 돌을 "손대지 아니한 뜨인 돌(단2:34~35)"이라고 했다. 그 돌은 세상 모든 제국을 상징하는 큰 신상의 발을 쳐서 가루가 되게 하시겠다고 했다. 이 돌은 짐승을 치는 돌이 되는 것이다. 특히 스가랴선지자는 이 돌에는 일곱개의 눈들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일곱"이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상징하고, "눈들"은 어린양의 눈들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계5:6, 4:5). 사도요한도 예수님의 배(존재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성령이라고 해석했다(요7:37~39). 그러므로 새로운 참된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가 깨어지면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에 의해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6. 나오며

  오늘은 스가랴강해 첫번째 시간으로서, 스가랴서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살펴보았고, 메시야의 예언 18가지 가운데 2가지를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인류의 메시야께서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며,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시다가 30세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분을 메시야로 믿는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관한 약 350가지의 예언들이 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 예언들을 다 성취하셨기에 그분을 메시야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 가운데 스가랴서는 이사야서 다음으로 메시야에 관한 많은 예언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살펴보려면, 스가랴서를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려 18가지나 되는 메시야 예언이 스가랴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환상과 상징으로 가득찬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역시 스가랴서를 공부해야 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스가랴서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환상들 중에서, 일곱인들의 처음 4가지 인들에 대한 환상이 나오고(슥1:7~17) ,이어서 두 증인(두 감람나무)에 대한 환상이 나오기 때문이다(슥4:1~14). 더불어 그리스도 재림의 장면들 특히 아마겟돈전쟁에 관한 예언도 스가랴 14장에 나온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누구며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를 제대로 알고 메시야의 재림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면 스가랴서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시간마다 놀라운 성령의 조명하심이 함께 하기를 빈다.

 

2019년 12월 04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