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B.C.577년경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인류 최후의 때와 심판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단7장). 그 때는 다니엘 시대 이후에 나타날 넷째 짐승(제국)의 시대라고 하셨고, 특히 그 제국이 열 개의 나라로 분리된 후, 거기에서 올라운 "작은 뿔"의 시대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작은 뿔은 이어 하나님을 참칭하고 성도들을 핍박한다고 했다. 그럼, 넷째 제국은 어떤 나라이며, 작은 뿔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때가 이미 도래했는가 아니면 장차 도래할 나라인가? 그리고 그때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2020-05-06(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09) 다니엘이 본 네 마리 짐승들에 대한 환상과 그 해석(2)(단7:1~28)
https://youtu.be/_7_eAAVDrt4


1. 들어가며 

   세계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천년 전에도 역시 이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다 계획해 놓으셨고 그리고 지금도 그분의 뜻대로 이끌어가고 계신다. 특별히 B.C.577년 바벨론 제국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그것을 조금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시 언제나 살아계시고 또한 역사를 주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럼 대체 다니엘은 후대에 일어날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보았던 것인가? 그리고 그가 보았던 환상은 어떻게 실제로 역사 가운데 실현되었는가? 그래서 오늘은 다니엘이 직접적으로 보았던 첫번째 환상 곧 네 짐승에 관한 환상을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오늘은 이 세상 가운에 일어날 대제국으로서 넷째 짐승에 대한 환상과 그 짐승이 가진 열 뿔 및 짐승의 머리에서 새롭게 올라오는 "작은 뿔"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 전까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계획해 두셨는가?

  다니엘은 느부갓세살 왕이 정신병이 걸린 뒤, 그의 아들 벨사살에 의해 바벨론이 통치되던 바로 그해(B.C.577)에, 첫번째 환상을 보게 된다(단7:1~14). 그런데 이 환상은 하나의 꿈으로 나타났는데, 장면은 네 개였다. 그것은 "세 마리 짐승들에 관한 환상(2~6절)", 그리고 "넷째 짐승에 관한 환상(7~8절)", 또한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에 대한 환상(9~10절)"과 "왕국을 넘겨받은 인자같은 이에 대환 환상(13~14절)"으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다니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게 될 네 제국들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모두가 다 거대한 바람이 바다로 몰려불고 나서,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들이 보였다(단7:2~3). 첫째짐승은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자의 환상이었고(단7:4), 둘째짐승은 세 갈빗대를 물고있는 곰에 대한 환상이었고(단7:5), 셋째짐승은 머리과 날개가 각각 4개씩 있는 표범에 대한 환상이었다(단7:6). 그런데 이때 등장하는 "사자같은 짐승"과 "곰과 같은 짐승", "표범과 같은 짐승"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었는가? 그것은 지난주의 강의를 참고하면 되는데, 한 마디로, 그것은 "바벨론제국", "메대와 바사제국", "헬라제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음을 살펴보았다.

네 짐승들.jpg


3. 넷째 짐승은 어떤 짐승이며, 열 뿔과 작은 뿔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네번째 짐승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럼 "넷째 짐승"은 어떤 제국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우선 앞의 환상들이 세 마리의 짐승들에 관한 환상으로서, 그것은 바벨론, 메대와 바사, 그리고 헬라제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넷째짐승은 헬라제국을 무너뜨리고 올라오는 신흥제국이어야 할 것이다. 고로 거의 모든 신학자들은 넷째 짐승을 "로마제국"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제국은 점차 "열 왕들"로 바뀌게 되고, 그중에 새롭게 일어난 한 왕이 이미 있던 왕들 중에서 3명의 왕을 뿌리채 뽑아버린다. 그리고 그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동안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괴롭힌다. 심지어 성도들을 죽이기까지 한다(단7:7~8, 19~21,23~25). 그렇다면 "넷째 짐승"과 "작은 뿔"(나중에는 자라서 큰 뿔이 됨)은 어떤 상관괸계가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을 의미하고, 이 짐승의 머리에서 올라온 "작은 뿔"은 바티칸국의 로마교황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넷째짐승.jpg


  첫째로, "넷째 짐승"은 왜 로마제국을 상징하는가? 이 짐승이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이유는 첫째, 넷째 짐승은 헬라제국에 이어서 일어날 땅의 네번째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는 헬라제국은 B.C.331~168년까지 전 세계를 통치했으며, 이어서 로마제국이 B.C.168~A.D.476년(서로마제국 멸망)까지 통치했다. 그러므로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 짐승은 다른 짐승에 비해 포악하기가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짐승은 쇠이빨을 물어뜯었고 먹어치웠다. 그리고 남은 것은 놋발톱을 가진 발로 짓밟아버렸다. 그랬다. 정복자 로마는 그 이전 나라와는 달랐다. 인정사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이 짐승의 머리에 열 뿔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제국에서 일어날 10나라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단7:24). 그럼, 이 나라에서 올라오는 열 뿔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A.D.476년 서로마가 망한 뒤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로마제국은 10개국으로 분열되는데,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10개의 나라는 다음과 같다.


앵글로색슨프랑크알레마니부르군드롬바르드수에비서고트동고트반   달헤룰리
등장시기A.D.409351351406453406408453406476
훗날이름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이탈리아포르투칼스페인멸망멸망멸망

열 뿔은 열 개의 나라.jpg


  둘째로, "넷째 짐승"의 "열 뿔" 사이에서 올라와서 세 뿔을 뿌리채 뽑은 "작은 뿔"이 무엇인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A.D.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A.D.330년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천도한 이후, 로마교회의 주교였던 다마수스(Damasus)는 A.D.378년 이교도의 최고제사장직인 최고승원장(Pontifex Masimus) 자리를 로마의 황제로부터 받아서 스스로 패권을 차지한다. 이후 로마의 제37대 데오도시우스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게 되고(A.D.382년), 그러다가 로마의 주교(감독)가 아리우스이단을 따르던 헤룰리(A.D.493)와 반달(A.D.534)과 동고트(A.D.538)를 로마황제의 힘을 빌어 정복하게 된다. 이로써 서로마는 이제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뿔(헤룰리, 반달, 동고트)이 멸망당하고, 헤룰리지역에 있던 로마교황청(바티칸)이 서로마지역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로마교황청을 "작은 뿔"로 해석하는 것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계속될 것이다.

열뿔과 작은뿔.jpg



4. 작은 뿔은 왜 로마교황청이라고 해석하는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넷째 짐승에 올라오는 "작은 뿔"이다. 이 작은 뿔은 넷째 짐승(로마)가 열 나라(열 뿔)로 분열된 이후에 등장하는 세력으로서, 역사적으로 적용해 볼 때 "로마교황청"이 분명하다. 특히 모든 종교개혁자들과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작은 뿔을 로마의 교황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마교황청을 "작은 뿔"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다니엘 7장에 의하면 그것은 5가지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로마의 감독과 교황은 종교지도자에 불과한 직분이지만 서서히 자신을 황제처럼 군림했기 때문이다(단7:24). 즉 로마의 주교(감독) 다마수스가 A.D.378년 로마종교의 최고수장직을 가져오고, A.D.590년 로마의 제63대의 감독 그레고리 1세 때에는 스스로를 "교황"이라고 칭함에 따라, 교황이 하나의 국가나 군주처럼 그 세력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작은 뿔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말로 대적하였기 때문이다(단7:8,25). 이 작은 뿔에는 유별나게 사람의 눈들이 달려있었고, 말하는 입도 달려 있었으니, 이 세상을 감찰하고 권세와 말하는 입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렇다. 로마의 감독들은 6세기가 되자 자신을 "교황"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로마지역의 왕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 아래 복종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교황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참칭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다(단7:25). 그리하여 교황은 자신을 "이 땅에서 통치하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부패한 본성을 가진 자가 감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참람한 말을 교황은 거침없이 말한 것이다. 셋째로, 이 작은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기는 것을 다니엘이 보았기 때문이다(단7:21). 교황의 권세가 왕들을 지배하자, 교황은 이제 자신을 보이는 하나님이라 칭했으며,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면서, 자신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교황의 말을 듣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형하기 시작했으니, 중세시대 기간이었던 천년의 기간(500~1,500년)동안에 약 8,000만명의 기독교인이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넷째로, 작은 뿔이 때('제만')와 법('다트')을 고치려고 했기 때문이다(단7:25). 여기서 "때"는 히브리어로 "제만"이라는 단어로서, "정한 시기, 정한 절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법은 "율법"을 가리킨다. 로마천주교는 A.D.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이후, 점차로 새로운 절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이교도들이 쓰던 절기들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끌고 들어왔으며(대표적인 것이 '부활절'과 '성탄절'이다. 이 둘은 사실 태양신을 믿는 종교의 규례와 절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여신을 숭배하는 절기들을 계속해서 만들기 시작하였다. 여신은 고대바벨론의 종교의 창시자인 세미라미스(마리아로 변경함)에게서 가져온 것으로서, 그것이 로마카톨릭에서는 마리아숭배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로마카톨릭은 마리아숭배를 위한 온갖 절기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로마카톨릭(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숭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율법도 고쳤으니, 십계명까지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즉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인 "우상제작 및 숭배금지" 계명을 빼어내고,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아홉번째 계명은 남의 아내 탐심금지 계명으로, 열번째 계명은 남의 재물 탐심금지 계명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안식일준수 계명도 주일준수계명으로 바꾸어놓았다. 사실 콘스탄틴 대제가 A.D.313년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기독교인들 중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교인들도 있었고, 주일을 지키는 교인들도 있었으나, A.D.321년에 일요일 공휴일로 선포함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교인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오직 주일을 지키는 교인들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에 들어와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아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의식법으로의 율법(안식일법, 절기법, 음식법, 제사법, 정부정법)은 전부 폐지하시고, 도덕법으로서의 율법만을 남겨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일을 준수하는 것은 의식법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작은 뿔이 성도를 괴롭히는 기간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기 때문이다(단7:25). 여기서 "때"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잇단"이라는 말로서, 그것은 '시간, 때, 기간'을 일컫는 뜻인데, 이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가리키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잇단'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문맥에 나와있는 것이 있기도 하고, 나와있지 않는 것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11:13에 의하면, 여기에 나오는 "한 때(잇단)"은 "한 해(year)"를 가리킨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지만, 단7:25에서는 이 때(잇단)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정확히 설명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훗날 사도요한이 A.D.95~6년경에 밧모섬에 보았던 환상(계시) 가운데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기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 단7:25에 나오는 이 문구도 요한계시록과 함께 풀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우선 오늘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작은 뿔이 성도를 괴롭히는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정의하고 있는 바, 그 기한은 한도 끝도 없는 기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한 기한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5. 나오며

  이 세상의 역사는 사실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자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그분은 시작이요 마침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다니엘 7장에서는 인자같은 이이신 예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에 관하여 정확한 예언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것은 다니엘 이후, 지구상에 등장한 네번째 나라에서 일어난 작은 뿔이 성도를 괴롭게 한 직후다. 그런데 다니엘 시대 이후 넷째나라인 로마제국이 멸망당했고, 그 나라가 이미 1,500년전에 10개국으로 분리되었으며, 그중에서 세 나라가 멸망당하고 거기에서 일어난 로마교황청(바티칸국)이 벌써 성도를 약 천년간 괴롭히고 난 지 500년이 흘러갔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옛날보다 훨씬 더 주께서 재림하실 때는 더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배우겠지만 로마교황 이후, 로마교황 지배의 연장선상에 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출현의 때가 이미 도래했으며, 우리는 지금 그때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여 언제라도 주님이 오실지라도 곧바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혹 우리에게 핍박의 시대가 찾아올지라도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믿음을 잘 가꾸고 기도로 준비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2020년 05월 06일(수)

정병진목사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환난후에 오시는가 아니면 환난전에 오시는가? 아니면 환난중간에 오시는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다니엘 7장부터 12장에 나오는 4가지 환상을 통해 그것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다니엘이 바벨론왕 벨사살 원년에 보았던 네 마리 짐승에 대한 환상9단7:1~8)은 그 때가 언제쯤 될 것이며 어떤 상황으로 전개가 될 것인지를 우리에게 정확히 말해준다. 자, 이제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 환상 안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2020-04-29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08) 다니엘이 본 네 마리 짐승들에 대한 환상과 그 해석(1)(단7:1~28)
https://youtu.be/MCAWJ4UEZls [혹은 https://tv.naver.com/v/13594556 ]



1. 들어가며

  우리는 그동안 다니엘서 전반부(1~6장)을 통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가졌던 지조있는 신앙과 그것의 열매들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느부갓네살왕이 꾸었던 두 번의 꿈들과(2장과 4장) 벨사살왕의 석회벽 글자 기록 사건(5장)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제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더불어, 교만한 제국들의 왕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환상과 묵시들이 등장할 터인데,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묵시였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다니엘이 직접 본 묵시들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다니엘서 7장은 다니엘시대 이후 전세계의 대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네 마리 짐승들의 모습과 그것들의 최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대체 누구신지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보았던 네 마리의 짐승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다니엘은 이 환상을 본 후에 왜 두려워했으며 그의 얼굴빛이 왜 변해버린 것일까? 이번주는 그 첫번째 시간이다.

 

2. 다니엘서 제7장의 위치는?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1장에서 6장까지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다니엘과 그의 3명의 친구들이 비록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잡혀갔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이뤘던 신앙승리의 놀라운 기적적인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 후반부에 등장할 환상과 묵시 등을 미리 감지할 수 있도록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꾸었던 2가지 꿈과 그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부는 7장에서 12장까지인데, 이제 여기에는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본격적인 환상과 계시들이 등장한다. 후반부에는 총 4개의 환상과 묵시가 등장하는데, 첫째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4마리 짐승들에 대한 묵시(단7장)이 나오고, 둘째는 을래강변에서 본 숫양과 수염소의 묵시(단8장)가, 그리고 셋째는 칠십이레의 묵시(단9장)가 나온다. 그리고 넷째는 힛데겔강사에서 받은 여러 왕들에 관한 묵시(단10~12장)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듯 환상으로 계시되는데, 다니엘은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통한 현 세상의 종말과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원과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3. 다니엘은 네 마리 짐승들에 관한 환상을 언제 보았는가?

  다니엘 7장 1절의 말씀은 다니엘이 언제 이 첫번째 환상을 보았는지 설명해놓고 있다. 그것은 바벨론 벨사살왕 원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단7:1). 그런데 오늘날에는 너무나 황당하게도 그 시기를 B.C.550년경으로 잡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벨사살왕을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라고 해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연대기적으로 볼 때에 약25년 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있다. 우리가 지난 번 다니엘 5장 강해를 통해서도 살펴보았듯이, 사실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은 둘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첫번째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진짜 아들이었고, 두번째 벨사살은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다니엘 5장에 등장하는 벨사살이나, 다니엘서 7장과 8장에 나오는 벨사살도 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왕을 가리키고 있다. 벨사살왕(재위 B.C.577~575)은 자기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왕이 갑자기 광인병에 걸려 짐승처럼 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인물로서, 3년 통치 후에 신하들에 의해 암살을 당한 인물이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의 왕비였던 아미티스(메대왕 키악사레스의 공주였다)는 자신의 남동생인 메대의 다리오왕(아스티게아스)를 불러들여, 바벨론나라를 맡기게 된다. 그러자 벨사살왕이 암살당하던 날 62세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접수하게 되었고, 4년을 통치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4년후 제 정신으로 돌아온 매형 느부갓네살왕에게 바벨론 나라를 돌려준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벨사살 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광인이 되자 아버지의 나라를 물려받은 자로서, 그의 통치 원년에 있었던 환상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4.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 환상(묵시)는 무엇이었는가?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 환상은 꿈으로 보았던 4가지 환상들이다. 첫째와 둘째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무서운 큰 세 마리의 짐승들(단7:4~6)과 나머지 한 마리짐승에 대한 환상(단7:7~8)이요, 셋째와 넷째는 하나님의 보좌 환상(단7:9~12)과 인자같은 이의 왕국에 대한 환상(단7:13~14)이다. 그리고 이때 다니엘이 보았던 첫째와 둘째, 넷째환상을 하나님 곁에 서 있던 천사장들 중의 하나인 가브리엘(?)로부터의 해석이 다니엘7장의 후반부(단7:15~28)에 나온다.

  다니엘의 첫번째 환상 중에서 오늘은 첫째와 둘째환상 곧 세 마리의 짐승에 대한 환상과 넷째짐승의 환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바벨론왕 벨사살 원년의 어느날에 다니엘이 침상에 누워 자다가 환상을 보게 되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닥친다. 그러자 바다로부터 큰 짐승이 차례대로 올라온다. 첫번째는 독수리의 날개가 달린 사자 같은 것이 올라왔고, 두번째는 세 갈빗대를 입에 물고 있는 곰같은 것이 올라왔으며, 세번째는 네 개의 날개와 네 개의 머리를 가진 표범같은 것이 올라왔다. 그리고 네번째는 크고 무서운 짐승같은데 지구상에서는 볼 수 없는 괴물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 짐승의 이빨은 쇠이빨이었고, 발은 놋쇠였는데 그 짐승으로 이것들을 사용해 뭐든지 먹고 부서뜨리고 으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째짐승의 머리를 보아하니, 열 뿔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한 작은 다른 종류의 뿔이 그것들 사이에서 올라오더니, 전에 있던 세 개의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다. 그런데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같은 것들이 있었고, 또 입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말을 하는 입이 있었다. 이것이 네 마리의 짐승에 대한 환상이다.

 

5. 네 마리 짐승에 대한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 환상의 첫째와 둘째환상은 네 마리 짐승들에 관한 환상이었다. 그 중에 세 마리의 짐승의 특징은 다 저마다 자기가 사는 영역에서 최고의 포식자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들보다 강한 자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고로 이들 짐승은 "강한 자, 정복자, 지배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넷째짐승이 또한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사자와 곰과 표범 그리고 넷째짐승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천사가 다니엘에게 답변해준 내용을 살펴보면, 그 짐승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 수가 있다. 참고로, 여기서 다니엘에게 답변해준 천사는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의 보좌에 모셔 서 있는 천사로서(단7:16), 가브리엘 천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다니엘 8장에서는 다니엘이 을래강변에서 보았던 것을 가브리엘 천사장이 해석해주었기 때문이다(단8:15~19). 그렇다면 그러한 "네 마리의 짐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천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네 [마리의] 짐승[들]은 장차 세상에 일어날 네 [명의] 왕들이라(단7:17)" 그렇다. 이 네 마리의 짐승은 네 제국들의 왕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들의 특징에 따라 네 마리의 짐승들은 네 제국들의 왕들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첫째짐승(사자)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가리키고, 둘째짐승(곰)은 메대와 바사의 고레스왕을 가리키며, 셋째짐승(표범)은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고, 넷째짐승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황제를 가리킨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짐승들에 대한 묘사가 실제 제국의 왕들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왕들은 이 왕들을 이어받은 다음의 왕에게도 이어지는 것이다. 고로, 네 마리의 짐승들은 제국의 왕들이자 그 왕들을 이어받은 후대왕들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런데 다니엘이 보았던 네 마리의 짐승에 대한 환상은 사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5년전에 보았던 거대한 신상에 관한 환상도 거의 똑같이 일치한다. 즉 금머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었는데, 여기서는 독수리날개를 가진 사자로 나온다. 그리고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은 메대와 바사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세 갈빗대를 물고있는 곰으로 나온다. 그리고 철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제국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네 개의 날개들과 네 개의 머리들을 가진 표범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로된 종아리와 철과 진흙으로 된 열발가락은 로마나라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두렵고 무시무시한 열뿔 가진 짐승으로 나온다.  

 

6. 네 마리 짐승들에 대한 환상과 실제는 어떠했는가?

  그렇다면 네 마리 짐승들의 실제는 어떠한가? 그것은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지금 보면 다니엘의 환상은 과거의 일이지만, 다니엘 때에는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그렇게 되었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다니엘서가 헬라제국의 셀류커스왕조의 제8대왕이었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왕 때에 살았던 어떤 유대인이 기록했을 것이라고 하는 후대다니엘저작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환상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다. 다니엘이 이 해석을 들었을 때에, 네 짐승들은 장차 이 세상에 일어날 네 명의 왕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단7:17). 그러니 왕들에 대한 이러한 환상은 먼저 기록된 환상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제국들의 초대왕들의 모습과 다니엘이 본 환상을 서로 비교해서 살펴보자.

  첫번째로,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사자같은 왕"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단7:4) 그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다. 그는 맹수의 왕 사자처럼 거대한 제국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날쌘 군장이었는지, 독수리의 날개가 그에게 붙어있는 것을 다니엘이 보았다. 그런데 얼마나 날개는 떨어져나갔고, 사자가 들려 하늘을 쳐다보더니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또한 그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고 말한다(단7:4). 이는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히 행하다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고 광인병에 걸려 7년동안 짐승처럼 살게 되다가 그 끝무렵에 하늘을 우러러 회개함으로 그의 총명이 돌아와 겸손한 왕으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단4장).

  두번째로, "세 갈빗대를 입에 물고있는 곰"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단7:5). 그것은 메대와 페르시야(바사)왕인 고레스다. 왜냐하면 곰의 입에 물려있던 세 갈빗대는 고레스가 B.C.646년에 정복한 아프리카 북단의 리디아와, B.C.539년에 정복한 바벨론, 그리고 B.C.525년에는 정복한 애굽(이집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곰은 자신의 몸 한쪽을 들고 있었다. 이것은 곰이 두 발로 서서 먹이를 내려치려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정복 욕심이 강했던 나라가 바로 페르시아(바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일어나서 고기를 많이 먹으라" 이미 곰은 세개의 갈빗대(리디아, 바벨론, 이집트)를 물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곰에서 더 먹이를 주고 싶어하신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사의 초대왕이었언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주었고, 성전도 짓고 살라고 아낌없이 부대비용과 물자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사에게 줄 고기들이 더 많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바벨론은 70년만에 나라가 망했지만, 바사는 200년이상을 존속하며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세번째로, "머리가 넷이요, 새의 날개가 넷이 달린 표범"는 누구를 가리키는가?(단7:6) 그것은 헬라(그리스)제국의 알렉산더대왕이다. 왜냐하면 이 표범에게 4개의 달개가 주어졌다는 것은 전에 언급한 바벨론보다 한 쌍의 날개가 더 주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헬라제국의 정복의 속도는 가이 상상을 초월한 속도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된지 1년만에 마케도냐 근방을 다 정복하였으며, 전세계로 뻗어나갔는데, 10년이 되던 해에는 인도지역까지 정복하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0년만에 그는 병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이 표범은 머리가 넷이 달려있었다. 알렉산더의 헤드쿼터가 넷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죽게 되자 헬라제국은 네 명의 부하장수들이 차지하게 된다. 카산더(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리시마쿠스(트리키야와 소아시아 대부분), 셀류커스(바사, 소아시아 일부, 시리아북부, 메소포타미아 동부), 프톨레미(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일부) 장수가 알렉산더가 정복한 나라를 각각 나눠가지게 된 것이다. 환상의 계시대로 그대로 성취되었다.

  네번째, "쇠이빨과 놋발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열뿔을 가진 매우 무섭고 강한 넷째짐승"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단7:7~8). 그것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를 가리킨다. 이 짐승은 다른 짐승과는 달리 매우 잔인했는데 자신이 가진 쇠이빨로 무엇이든지 물어뜯었고 먹어치웠으며, 쇠발톱으로 무엇이든지 짓이겨버렸다. 그리고 이 짐승의 머리에는 열 개의 뿔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머리에서부터 한 다른 종류의 뿔이 나오더니, 다른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다. 그리고 이 작은 뿔은 좀 더 특별하게 사람의 눈같은 것들이 달려있었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는 큰 입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이 넷째짐승이 로마나라라는 것만을 기억하고 다음 주 이시간에 이 나라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열 뿔"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사이에서 올라온 한 "작은 뿔"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7. 나오며

  다니엘은 참으로 놀운 계시의 책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대제국의 흥망성쇠가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이 이 하나에 들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환상을 보여준 전능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제국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앉고 일어섬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다만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특별히 우리가 생각할 것은 넷째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무지막지하게 괴롭히고 핍박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로마나라요, 로마나라에서 올라온 작은 뿔에 의해서다. 그렇다.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던 것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이 환상을 통해 남유다가 계속해서 여러 대제국의 속국이 될 것임을 먼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넷째나라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엄청난 핍박과 고통에 시달리며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내다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환상을 본 후 다니엘은 큰 근심과 번민에 빠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아마도 바벨론제국 하에서 징계를 받으면 그것으로 남유다의 징계가 끝날 줄로만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죄는 너무나 크고 길다는 것을 여기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지은 나라와 백성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상황하에 자신의 신앙을 목숨처럼 지켜내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는 환난에 잘 대비해야 한다. 작은 뿔로 표현된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을 대비해야 한다. 그것을 이기는 자만이 결국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2020년 04월 29일(수)

정병진목사


다니엘과 에스겔은 둘 다 바벨론에게 포로로 붙들려간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직업은 서로 달랐다. 그중에서 다니엘은 일반성도들을 예표하고, 에스겔은 주의 종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는 어떻게 할 때, 세상제국의 왕으로부터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감탄사를 발하게 하고, 하나님만이 모든 신들 중의 신이라고 고백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비밀이 오늘 본문에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자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신에 대한 찬가를 여기서 맛보게 될 것이다.

2020-04-22(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07) 메대의 다리오왕과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단6:1~28)
https://youtu.be/1Evwa7lBdiw [혹은 https://tv.naver.com/v/13484498 ]


1. 들어가며

  다니엘은 어떤 인물인가? 다니엘은 에스겔과 동시대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인물이다. 지금까지는 다니엘은 바벨론에 제1차포로 때(B.C.605)에 잡혀간 인물이었고, 에스겔은 2차포로(B.C.597)로 잡혀간 인물로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은 둘 다 남유다19대왕이었던 여호야김 제11년(여호야김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3년간 섬기다가 배반한 직후)(B.C.599)에 잡혀갔다(김명현교수의 "다니엘의연대기" 참조). 그런데 둘은 가는 길이 달랐다. 다니엘은 이방제국의 왕 밑에서 일하는 관료로서 쓰임을 받았고, 에스겔은 그곳에서 선지자로서 쓰임을 받았다. 오늘은 다니엘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아들 벨사살이 살해된 직후 바벨론제국이 잠시 메대제국의 다리오왕에게 넘겨졌을 때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이때 다니엘은 다른 대신료들의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지만 살아나옴으로 인하여 메대왕 다리오마저 다니엘이 섬기는 신이야말로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메대왕 다리오는 대체 누구이며, 왜 그는 다니엘은 총리대신의 우두머리로 세우려했고,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 모함을 받게 되었고 사자굴에 던져졌으며, 어떻게 되어서 거기서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메대왕 다리오는 어떤 인물인가?

  메대왕 다리오(다리우스)는 누구인가? 다니엘서에 의하면 그에 대한 정보는 딱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5:30~31에 나온 바대로,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한 후에 [누군가로부터] 갈대아 나라를 [넘겨]받은 자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단9:1~2에 나오는데, 그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키악사레스)의 아들(아스티게아스)로서, 갈대아 나라 위에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 다니엘서 기자였던 다니엘은 다리오가 벨사살을 죽이고 바벨론(갈대아 나라)를 빼앗았다(정복했다)고 기록하지 않고, 갈대아 나라를 넘겨받았다고 기록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학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보통 학계에서는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다리오가 나라를 차지한 때를 B.C.539년으로 잡고 있는데, 실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그때로부터 약 35년전인 B.C.574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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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메대왕 다리오가 넘겨 받았던 갈대아 나라는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이 다스리던 나라가 아니라,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은 벨사살의 나라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주에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이 누군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제2대왕이었던 느부갓네살(B.C.605~562)의 아들로 나온다(단5:11,13,18,22). 그것이 진실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왕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 아니라, 나보니두스의 아들(B.C.556~539)이라고 주장한다. 나보니두스(나부나이드)는 바벨론제국의 제6대왕으로 등극한 자인데, 그는 시리아출신의 사람으로서 바벨론을 차지한 자였다. 그런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벨사살이었다. 그러니까 벨사살은 동명이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학계에서는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을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라고 설정해버리고, 단5장에 나오는 "벨사살의 부친"이라는 표현을 "왕의 조상"이라는 말로 바꾸어 해석하고 있다. 한 마디로, 다니엘 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35년 뒤의 일로 변개시켜버린 것이다. 아니다. 석회벽에 쓰인 글씨를 보고 죽임당한 벨사살왕은 나보니두스의 아들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왕의 실제 아들이었다. 그가 다니엘로부터 석회벽에 쓰인 글자를 해독하던 날 그는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둘째, 메대왕 다리오는 벨사살왕의 외삼촌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벨사살왕은 메대왕 다리오의 외조카다). 누군가로부터 벨사살이 죽임당한 후 메대왕 다리오는 바벨론을 넘겨받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인가? 그것은 그의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고대근동지역은 메대와 바사와 바벨론의 각축장이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가진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앗수르(앗시리아)였다. 그런데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이 앗수르를 멸망시킨다. 그때 메대왕은 메대제국의 제3대왕이었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리오왕의 아버지 "키악사레스"였다(B.C.615~575). 그리고 바벨론의 왕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버지 "나보폴랏사르(B.C.625~605)"였다. 두 사람은 두 나라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사돈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키악사레스(아하수에로, 단9:1)"는 자기의 딸(아미티스)을 나보폴랏사르의 아들(느부갓네살)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다. 고로 다니엘서 4장에 나오는 바벨론의 공중정원은 느부갓네살이 고향 메대를 그리워하는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어준 정원이었던 것이다(이 정원과 그리고 바벨론 도시를 건설하는데 남유다의 포로민들이 잡혀와서 참여하였다). 그러니까 아미티스 공주는 다리오(아스티게아스)의 친 누나인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그만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광인이 되고 만다(B.C.577년). 그러자 그는 낭광증이라는 정신착란증을 앓게 되는데, 미친 나머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동물처럼 살게 된다. 무려 7년동안이나 말이다. 그러자 왕권은 이제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벨사살에게 넘어가게 된다(B.C.577~575). 그래서 벨사살은 자기의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섭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그의 통치 3년째 되던 해에, 벨사살은 귀인 1,000명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자기 부친이 남유다의 성전에서 빼앗아온 성전기명을 술그릇으로 사용하다가 그만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석회벽 글자의 경고조치였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세어보고 세어보고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뵈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날 벨사살은 자신의 신복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자 아미티스 왕비는 자기의 남동생인 메대나라 다리오왕에게 잠시 바벨론을 맡긴 것이다. 그래서 메대왕 다리오가 갈대아나라를 얻게 된 것이다. 다리오는 바벨론지역까지를 4년간 통치하다가, 느부갓네살왕이 정신이 돌아보자(B.C.571년) 바벨론 나라를 다시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에게 돌려주게 된다.

 

3. 메대의 두 총리는 왜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계획했을까?

  이처럼 메대왕 다리오(아스티게아스)의 손에 어느날 갑자기 바벨론(갈대아) 땅이 주어진 것이다(단5:31). 그러자 넓은 땅덩어리를 다스리기 위해 메대왕 다리오는 그 땅을 120개 도로 나누어 각기 고관들(태수들)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고, 그들 위에 3명을 총리를 두어서 자신의 직무를 보게 하였다(단6:1~2). 그런데 그중에 다니엘이 바벨론지역의 총리로서 발탁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출중함을 메대왕 다리오가 금방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오왕이 세 명의 총리들 가운데 한 명을 그들 위에 두어서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 하자, 나머지 두 명의 메대나라의 총리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모략을 꾸미게 된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총리를 메대의 두 총리 위에 둔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용납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다니엘로부터 고발한 근거를 찾고자 모든 것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업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디에서도 그를 책잡을 만한 데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니엘처럼 깨끗하고 성실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뇌물을 받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충성된 관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니엘이 믿고 있는 신앙을 빌미로 고발거리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그때부터 30일동안 왕 이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구하는 자를 사자굴 속에 던져넣기로 하자는 제안이었다(단6:6). 그리고는 왕께는 이미 모든 신하들이 그것을 동의했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면서 말이다. 왕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두 총리들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고치지 못할 메대와 바사의 규례로 삼기 위해 도장까지 찍게 된다. 이처럼 어디에서 시기질투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이처럼 거짓말의 아비 마귀로부터 쓰임받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4. 성도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잠깐만 성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해 고민해보도록 하자. 다니엘은 어떻게 살았는가? 아직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믿음 좋고 성실한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주의 종의 길을 가라고 권면한다. 하지만 그것은 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진짜 믿음좋고 성실한 일꾼이 있다면 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다니엘처럼 살아서는 아니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니엘처럼 신앙으로 똘똘 뭉쳐쳤지만 믿지 않는 상전과 상대하여 그들에게 삶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항상 맞는 답은 아지미나 이 땅에는 에스겔선지자 몇 사람이면 족하다. 이 땅에는 수많은 다니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다니엘이 필요한가? 그것은 첫째, 불신 상전이 보아도 인정할 만큼의 성실함과 충성된 성도가 되어야 한다(단6:4). 자기분야에서 최고업무수행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신앙이 돈독한 자가 필요한 것이다. 다니엘은 메대왕 다리오가 바벨론 나를 얻음과 동시에 탐을 냈던 바벨론의 고위관리였다. 아니 자신이 그동안 데리고 있었던 두 명의 총리보다 더 탐을 냈던 인물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고자 했던 두 총리의 입술에서 나온 말을 들어보자.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과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둘째, 우리가 가진 신앙상의 이유 외에 다른 고발거리가 없는 성도라야 한다(단6:5).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상의 이유로 억울함을 당할 수도 있고, 고난과 환난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기뻐하라. 그러한 일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서 다른 고발거리가 없는 자는 진정 복있는 자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적으로는 일에 대한 성실함이 요청되며, 내부적으로는 돈독한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이런 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이다.

 

5. 다니엘은 어떻게 되어서 사자굴 속에서 살아서 걸어나오게 되었는가?

  다니엘을 없애고자 만든 금령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다리오왕에게 곧이어 다니엘이 끌려 나오자, 다리오왕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금령을 어긴 현장범으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그때부터 30일동안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있는 2층다락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그것도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단6:10). 어떤 사람은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대중반이므로 그가 이제 죽을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냥 포기한 채 기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39세~45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바벨론에 붙잡혀오던 때가 14~20세정도였고(B.C.599년), 두 명의 총리로부터 다니엘이 고발조치를 당한 때가 다리오왕 원년(B.C.574년)이었기에, 이제 다니엘의 나이는 중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던 것이다. 그렇다. 다니엘은 앞으로 창창히 일할 나이인데도, 그렇게 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전에 하던 대로 말이다. 날마다 기도하는 습관은 참 좋은 것이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계시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내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아연실색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만든 법으로 인하여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충신이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왕은 다니엘을 살려보기 위해 오후내내 방법을 모색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신하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진다. 그러자 다리오는 사자굴 속에 다니엘을 쳐넣도록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니엘의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다(단6:16)"

  다리오가 얼마나 다니엘을 잘 보았으면 그리고 얼마나 다니엘의 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확신했더라면 이러한 고백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는 다니엘이 굴속에 떨어진 뒤, 한 숨의 잠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곧장 사자굴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슬퍼하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단6:20)" 그때 굴 속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려온다. "왕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닫으셨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죄가 없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왕에게도 어떤 해를 끼친 일도 없습니다(단6:212~22)" 그렇다. 대제국의 왕이라도 결코 다니엘을 지켜낼 수 없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켜주셨던 것이다. 그러자 왕은 심히 기뻐하면서, 그를 굴에서 끌어올리게 한 후,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과 그의 처자들까지 그 굴속에 집어넣게 한다. 거짓모함죄를 그들에게 물은 것이다. 그리고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조서를 전국각지에 내려보낸다. "누구든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떨며 두려워할지어다.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요, 그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하며, 그의 권세는 영원할 것이다. 그는 구원도 하시고 건져내기도 하시며, 그는 하늘과 땅에서 이적들과 기사들을 행하시는 이시로다(단6:26~27)". 어찌 이방제국의 왕의 입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신앙고백이 그냥 튀어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다니엘은 왕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고, 그가 가진 신앙도 진짜라는 것을 왕이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6. 나오며

  언제 어디서든 꼭 두어명의 악인은 있기 마련이다. 거짓말의 아비 사탄마귀가 사람을 들어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마귀의 포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는 세상의 상전에게 충성해야 하겠지만,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만큼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야 한다. 대적자들은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서 핍박하거나 죽이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조를 지키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위험한 곳에서 지켜주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주님에 대한 절대신앙고백이야말로 우리에게 절대기적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고로 내가 죽음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다 주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마10:28). 그러므로 언제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을 택하라. 그것이 복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일반은총으로 주어진 세상의 권력자(상전)에게도 우리가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둘의 명령이 겹치게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의 법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에는 위험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최종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형통의 축복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동일하게 우리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이다.

 

2020년 04월 22일(수)

정병진목사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산에 있는 돌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살이에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배워야할 교과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왕은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보았으면서도 권력에 취했고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건 그의 비참한 죽음이었고 나라를 남의 나라에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또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04-15(수) 수요기도회
다니엘강해(06) 벨사살왕 때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와 다니엘의 해석(단5:1~31)
https://youtu.be/mGUnnevC3Eo [혹은 https://tv.naver.com/v/13379399 ]


1. 들어가며

  다니엘서는 총12장으로 구성된 예언서이자 계시서이며 역사서인데, 1장부터 6장까지는 각장마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한 가지씩 있다. 다니엘서 5장도 그중에 마찬가지다. 다니엘서 5장에서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더니 석회벽에다가 어떤 글자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메네 메데 데겔 우바르신" 대체 무슨 암호일까? 아람어 내지는 히브리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4마디의 말은 왜 바벨론의 술사들이 해석은커녕 읽지도 못한 것일까? 읽을 수 있었으나 해석을 하면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못읽는다고 했던 것일까? 당시 세계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왜 이 글자를 해독하지 못했던 것인가? 오늘 이야기는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벨사살왕이 자신의 통치 3년만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석회벽에 쓰인 이 글자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2. 벨사살 왕, 그는 누구인가?

  느부갓네살왕은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왕이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던 걸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했으며, 그 안에 세계 제7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지었던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나보폴랏사르(B.C.625~605)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B.C.605년에 왕위에 올라 무려 43년간을 통치하고 B.C.562년에 사망했던 신바벨로니아 제국의 제2대왕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두번째로 꾸었던 "큰 나무" 환상과 그리고 그 해석을 다니엘로부터 들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광인(낭광증)이 되고 만다. 그후 무려 7년간을 들판에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들짐승과 함께 살아간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 일은 B.C.577~571년에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는 B.C.571년이 되자 그는 다시 왕직에 복원되었고, 9년간을 더 통치하다가 자신의 아들 아멜마르둑(에윌므로닥)(B.C.562~560)에 물려주고 사망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인 다니엘서 5장에 등장하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인 벨사살은 대체 누구인가? 그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 대부분이 언급했던 것 곧 단5장에 나오는 벨사살왕은 바벨론의 제6대왕이었던 나보니두스(B.C.556~539)년의 아들일까? 그런데 이 벨사살은 실제로 왕은 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달신을 섬기기 위해 데마에서 약10년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가 일찌감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직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왕은 아니었지만 왕직을 수행하다가 메대왕 다리오와 바사왕 고레의 침략을 받고 사망했던, 신바빌로니아제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놀랍게도 다니엘 5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서 언급되고 있다. "벨사살은 ...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그릇을...(단5:2)"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왕의 어머니였던 태후(아미티스)도 자기 아들 벨사살 왕에게 "당신의 부친의 때에"라고 언급하고 있으며(단5:11), "당신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단5:11)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벨사살 왕 자신도 다니엘에게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온 유다자손 중의 [바로] 그 다니엘이냐?"(단5:14)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자신도 벨사살왕에게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왕위)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단5:18)"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니엘은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단5:22)"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다니엘서에서는 전적으로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인 것을 언급하고 있다. 고로 우리는 벨사살왕이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왕이라는 증거가 성경 이외에 있을까? 있다. 외경으로 알려진 바룩서에 1장에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 나와 있다. "그리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그 아들 벨사차르(벨사살)가 오래 살도록 기도하여, 땅에서 그들의 날들이 하늘의 날들처럼 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 눈을 밝혀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그의 아들 벨사차르(벨사살)의 그늘 아래 살 것이며, 오랜 나날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총애를 받을 것입니다(바룩1:11~12)."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바룩서는 남유다가 예루살렘에 점령당한 뒤 5년 후에 쓰여진 외경으로서 예언서 중의 하나다. 한편 연대기를 연구해 온 김명현교수(한국과학연구소 소장)는 그의 다니엘서 강해를 통해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서, 느부갓네살왕이 광인병에 걸려 들판에서 지낼 때에 왕위에 올라 3년을 통치했으며, 그가 죽자 메데왕 다리오(그의 외삼촌)가 그 나라를 4년간 차지했다가, 느부갓네살(다리오의 매형)이 제정신이 돌아오자 다시 나라를 그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후 느부갓네살왕은 9년간을 통치하고 그의 아들 아멜마르룩(에윌므로닥)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3. 벨사살 왕은 왜 죽임당해야 했는가?

  벨사살왕은 왜 왕위에 오른지 3년만에 [자신의 신하에 의해] 죽임당해야 했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교만했기 때문이요, 둘째,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며, 셋째, 그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는 아주 교만했으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견고한 대제국을 마치 자기가 세운 것인량 과시하기를 좋아했으며, 그래서 귀족들 1,000명을 불러다가 대잔치를 벌이며 자랑을 했던 것이다(단5:2~3). 또한 그는 왕후들과 후궁들이 많다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으며(단5:2~3),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었던 왕으로서의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자신의 것인량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하늘의 하나님보다 높이며 즐거워했던 것이다(단5:18,23).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신성모독의 죄와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것이다. 먼저 그는 귀족들을 모아놓고 벌인 잔치에서 술에 취한 나머지, 그의 부왕이 예루살렘에서 빼앗아온 성전기명 중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다가 귀족들과 자신의 처첩들의 술잔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단5:3,23). 사실 그는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매우 무시했던 왕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 선왕이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다니엘을 내쳐서 어디론가 보내버렸고, 남유다에서 가져온 성전기명을 향락의 도구로 사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팽개쳐버리고, 오히려 금과 은과 구리와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들 우상들을 찬양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단5:4,23).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긴 것은 남유다 백성의 죄로 인한 것이었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었는데, 그는 바벨론의 신들(마르룩, 벨, 느보 등)이 남유다의 신(여호와)보다 월등한 신으로 착각해버린 것이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이 아닌 금은동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던 것이다.

  셋째로, 그는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결과를 결코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왕이 왜 왕궁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살고 있는지를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선왕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왕위와 권세와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을 신격화하려다가 결국 하나님께 철퇴를 맞고 광인이 되었다는 것을 결코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적인 교훈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자는 왕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버림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하에 의해 죽임당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4. 벨사살왕은 어떻게 석회벽에 쓰인 글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나?

  벨사살왕은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에 의해 쓰여진 석회벽 글자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먼저는 사시나무떨듯 떨었던 왕은 이제 정신이 나간듯이 큰 소리로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석회벽에 기록된 글자가 대체 무슨 뜻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를 못했다. 그 글자의 해석은 커녕 읽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후(느부갓네살왕의 왕비)가 귀족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왕 앞으로 나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왕에게 전에 느부갓네살왕 때 있었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왕의 부친 때부터 봉사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의 부친은 꿈해석을 통해 그를 모든 바벨론의 술사의 어른으로 삼았는데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라고 알려주면서 그를 부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당시 왕은 다니엘과 그가 믿는 하나님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자신이 왕이 오르자, 다니엘을 내치고는 어디론가 보내버렸고 또한 그가 믿는 신을 모욕주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은그릇과 금그릇을 술잔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챈 벨사살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오게 한다. 그리고 그를 만나자마자, 그의 신분이 원래 포로가 아니었더냐는 투로 말한다.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라는 자냐?(단5:13)" 하지만 다니엘은 왕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후 왕이 그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들을 사양하고는 왕의 소원대로 글자를 해석해 드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선왕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벨사살왕은 마음을 낮추지 못하고 교만해졌으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칫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는 왕이 성전기명을 술잔으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으며(단5:23a), 아무 의미없는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했음을 지적한다(단5:23b). 그리고 하나님이야말로 왕의 호흡(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왕의 모든 앞날을 작정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단5:23c). 그리고 는 석회벽에 쓰여있는 글자를 해독하기 시작한다.

 

5. 왕궁 맞은편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그때 왕궁 맞은편 석회벽에 쓰여진 글자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다. 이 문장은 아람어이지만 실제 석회벽에 쓰였던 글자는 아마도 히브리어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만약 그 언어가 아람어였다면 아람어를 나랏말로 사용하고 있는 갈대아술사들이 그것을 읽지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그때 기록된 말은 아마도 히브리어로서 "한 마네흐 한 마네흐  그리고 하나의 반 세겔"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마네흐"와 "세겔"은 돈을 세는 단위인데, 20게라가 모이면, 한 세겔이 되고, 60세겔이 모이면 한 마네흐가 된다(겔45:12). 그렇다면 아람어로 볼 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문장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세어보고 세어보고 [무게를] 재어보니 [부족함이 보여서] 나누이게 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우바르신"의 "우"는 "그리고"라는 뜻이며, "바르신"은 "페레스(나누다)"의 복수형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은 첫째, "메네"는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계산하고 또 계산해보았다는 뜻이다. 이 딘어가 두 번씩이나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벨사살을 신중하게 그리고 아주 공의롭게 세어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째, "데겔"은 그의 함량을 재어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다. 셋째, "우바르신"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나누어서 다른 나라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결국 바벨론은 훗날 메대와 바사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처럼 다니엘의 해석은 정확했다. 왜냐하면 그날 밤에 벨사살왕은 [신하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나라는 훗날 나뉜채 메대와 바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금도 세어보고 달아보고 계신다. 그때 우리도 벨사살왕처럼 부족함이 있으면 아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알곡이 되도록 더욱더 성품과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다음주에 공부하겠지만,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이 죽게 되었을 때(B.C.574년), 바벨론이 곧장 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잠깐 바벨론이 벨사살의 외삼촌이었던 메대왕 다리오에게 넘어갔다가, 4년 뒤에 느부갓네살이 정신이 온전하여지자 그 나라를 또한 다리오가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왕에게 다시 되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년 뒤에 바벨론의 7대왕 벨사살2세 때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도 역시 심판하시며, 우상숭배자들도 심판하신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사치와 향락에 쓰는 사람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더욱이 역사의 현장을 보았으면서도 그 교훈을 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벨사살왕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세어보고 달아보시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에 우리의 무게가 합당하게 나간다면 이후에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더 값지게 쓰임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은 하나님이 달아보실 때에 과연 주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버림받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질문해보자.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차례가 된 것 같다.

 

2020년 04월 1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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