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천사장이었던 가브리엘까지 꼭 그에게 보내야 했던 것인가? 그의 기도는 자신의 민족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지만, 실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스라엘민족의 모든 경륜이 들어있는 70이레의 비밀로 나타났다. 그의 기도에는 크게 몇 가지 특징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즉시 상달되는 기도, 자신이 기도했던 것보다 더 큰 응답이 주어지는 다니엘의 기도, 그의 기도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2020-06-03(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3) 민족을 향한 다니엘의 회개중보기도와 70이레의 예언 및 해석(1)(단9:1~27)
https://youtu.be/p6vrmqsNkg0  [혹은 https://tv.naver.com/v/14109725  ]

 

1. 들어가며

  다니엘서 9장은 다니엘서 가운데 제일 난해한 본문으로서 "70이레(70주)(Seventy sevens)"에 관한 예언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상당수의 종말론자들(대부분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을 종말론적인 예언의 진수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70이레가 인류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알려주는 본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오늘날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영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누가 무슨 말을 주장했다고 해서 더이상 무턱대고 따라가는 시대는 더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70이레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70이레는 과연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그래서 오늘은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이 왜 다니엘서 9장에 기록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70이레의 예언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니까 한 번 들어보라고 들려주신 예언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대체 하나님께 그날 무슨 기도를 드린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다니엘에게 가브리엘 천사장을 시켜 70이레의 예언을 들려준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70이레의 예언과 그 해석을 접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하는 것을 보게 될른지도 모른다. 

 

2. 다니엘은 왜 기도하게 되었는가?

  다니엘은 왜 기도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읽다가 기도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니엘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에서 언제까지 포로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언제 다시 회복되고 성전은 건축될 수 있을른지에 관하여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어떻게 구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예레미야서를 구하여 그것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무려 2번씩이나 유대인들이 바벨론왕을 언제까지 섬겨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렘25:11~13). 그리고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민족이 바벨론에서 언제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하게 될 것인지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렘29:10). 그것은 한 마디로 유다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왕을 섬기고 있지만 70년이 차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여기에다가 한 가지 더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고 엄청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겔36:37).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드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겔36:37)" 그래서 다니엘은 그날부로 베옷을 입은 채, 재를 덮어쓰고 금식하면서 주 하나님께서 기도하기 시작한다(단9:3).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40년이상을 기도한 것 같다. 왜나하면 그가 기도를 시작하던 B.C.575년은 연대기적으로 볼 때, 그가 바벨론에 끌려온지 24년 정도가 흘러간 시점이므로, 앞으로도 46년 정도가 더 지나야 바벨론 포로귀환이 성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3. 다니엘은 언제 기도를 시작했는가?

  다니엘이 금식하면 기도를 시작하던 시기는 언제였는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다니엘이 80~90세정도의 고령의 나이가 되었고, 그가 고령의 나이에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70이레의 예언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는 수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자신이 중보기도하고 70이레의 예언을 받았던 시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의 통치 원년에(단9:1~2a)" 그렇다. 그는 메대왕 다리왕의 통치 원년에 책을 읽다가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때를 B.C.538년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에 바벨론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메대왕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단5:30~31). 그러나 우리는 지난 번 다니엘서 5장 강해 시간에 석회벽(분벽) 위에 쓰인 글씨에 대한 해독을 듣고난후 신하들에게 갑자기 암살당한 벨사살 왕은 바빌론의 나보니두스왕(B.C.55~539)의 아들이었던 벨사살2세(B.C.550~539)가 아니라는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석회벽에 위에 쓰여진 글씨 해독후 암살당한 벨사살왕은 나보니두의 아들이 아니라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즉 벨사살은 자신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갑자기 광인병에 걸려 사람들로부터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는 사람이 되자(느부갓네살왕은 그렇게 7년동안을 살아야 했다. B.C.577~571),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때로부터 바벨론을 다스렸고, 그가 죽었던 해는 그로부터 약 3년이 흐른 뒤(B.C.575년)였다. 그때에 석회벽에 손글씨의 기적이 나타났고 그 사건이후 벨사살은 신하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의 아내였던 아미티스 왕비가 자기의 남동생(메대의 다리오)을 불러들여 바벨론(갈대아)을 통치하게 한다. 그러자 메대의 다리오(아스티게아스. B.C.575~540)가 갈대아의 통치자로 들어온다. 다시 말해, 아미티스 왕비(누나)와 다리오(남동생)의 아버지였던 메대왕 아하수에로(키악사레스)(B.C.615~575)는 바벨론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자기의 딸 아미티스공주를 바벨론의 나보폴랏사르의 아들인 느부갓네살(B.C.605~562)과 정략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키악사레스와 나보폴랏사스가 사돈관계를 맺어, 나이가 좀 있는 느부갓네살왕과 젊은 아미티스 공주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는 뒤에 메대왕 다리오가 드디에 누나의 요청에 의해 바벨론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메대왕 다리오가 "메대왕"으로서 세움을 받았다고 기록하지 않고,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다"고 언급되어 있다(단9:1). 그리고 다시 4년이 흐른 뒤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정신이 돌아온다. 그러자 다리오는 자신이 맡았던 바벨론을 다시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왕에게 도로 넘겨주게 된다. 그러므로 연대기에 따라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서책을 본 후에 기도하기를 시작하던 해는 B.C.538년이 아니었다. 그때는 바로 B.C.575년인 것이었던 것이다. 이 해는 느부갓네살왕이 광인병에 걸린지 3년차가 되는 해요, 그의 아들 벨사살왕이 왕으로 통치한지 3년이 흐른 직후였다. 그러니까 이때 당시 다니엘의 나이는 약 4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다니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그때 무슨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딱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단9:20에 나온다. 이 말슴을 표준새번역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아직 아뢰어 기도하면서 나의 죄와 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고 나의 하나님의 거룩한 산 성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 나의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단9:20)" 그랬다. 그는 먼저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산 곧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간구한 것이다. 

  먼저, 그는 자기와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했다(단9:5~15). 사실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이지만 사실 흠 하나 없고 죄짓지 아니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다니엘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해 드린 기도에서 그는 결코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으며 꼭 자기를 포함시켜 죄를 자복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대상"을 "우리"라는 말로 계속해서 표현하였다(무려 '우리'라는 단어를 55회나 사용하였다). "우리가 범죄하였고 패역하였으며, 행악하였고, 반역하였다"고 고백한다(단9:5,9). 그리고 자기와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한 것을 3가지로 말했는데, 첫째는, 주의 법도와 규례 곧 주의 율법을 어겼다고 말했다(단9:5,11절). 둘째는,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음성)를 듣지 아니했다고 말했다(단9:10,11,14).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주님께서 보낸 주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고 말했다(단9:6). 

  그렇다면, 다니엘은 자기와 자기민족이 지은 죄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는가? 그것은 그것으로 인해 주의 분노가 임하여 3가지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첫째는 큰 재앙이 임했다고 말했다(단9:13~14). 둘째는 수치가 자기들 위에 임했다고 했다(단9:7,8,9,16). 셋째, 성과 성전에 황폐함이 임했다고 말했다(단9:17,18). 그것은 참으로 처참한 것이었다. 적국에 칼에 죽임을 당하고, 산 자들은 기근으로 죽어나가고, 어떤 이는 적국에 노예로 끌려가거나 팔려갔으며,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허물어졌으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성전은 훼파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둘째, 다니엘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성의 회복을 위해 간구했다(단9:16~19). 그런데 이때 다니엘이 드린 기도가 좀 특별하다. 첫째, 주님의 분노를 당신의 성 예루살렘과 당신의 산 시온산에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단9:16). 둘째, 주님 자신을 위하여 당신의 얼굴빛을 당신의 성전에 비추어달라고 했다(단9:17). 셋째, 주님께서 눈을 떠서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기를 간구했다(단9:18). 그러면서 주님의 큰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하면서, 주님 자신을 위하여 이미 약속한 말씀을 지체하지 말로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단9:19). 이처럼 다니엘의 중보기도는 오직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해달라는 기도였던 것이다. 우리 같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을텐데,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주시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다시 짓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5.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다. 누구든지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는 첫째, 회개기도를 통하여 주의 분노를 가라앉도록 납짝 엎드리는 기도를 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간구하는 기도를 올려드렸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것을 이뤄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오직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자비가 이 땅에 속히 이뤄지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쾌락이나 욕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다니엘은 속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받았던 기도응답을 통해 알 수 있는 놀라운 기도의 영적인 비밀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과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린다면 훨씬 더 빨리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단9:21). "가브리엘에 빨리 날아서"(단9:21)"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은 벌써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이다(단9:23).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다내:23)" 셋째, 기도의 응답은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천사들이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단9:21).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라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단9:21)" 넷째, 마지막으로 악의 영들에 의하여 기도응답이 조금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단9:21).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에 내렸으므로(단9:23)",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단9:21)" 그렇지만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두시는 천사장 가브리엘을 통하여 응답받게 하였던 것이다. 

 

6. 나오며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응답받는 기도 내지는 기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응답을 가져오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러한 기도를 드린 자였다. 그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법을 이미 터득한 채 기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날마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을 통해 내공이 쌓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는 첫째,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회개기도를 먼저 드림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는 기도를 드렸다. 납짝 엎드리는 기도를 먼저 드린 것이다. 또한 합당한 자세까지 취했다. 그는 베옷을 입었고 재를 덮어쓰며 금식하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비로소 간구하는 기도를 조심스럽게 하나님께 드렸다. 둘째,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주기를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지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까지 다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과연 이기적인 자신의 욕망만을 드러내는 기도인가 아니면 이타적인 중보기도인가? 나만을 위한 기도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기도인가? 시늉만 하는 기도인가 아니면 간절한 기도인가? 몇 번 하고 끝내려는 기도인가 아니면 응답받을 때까지 드리는 끈질긴 기도인가? 악한 영들을 뚫고 올라가는 기도인가 아니면 올라가다가 땅에 떨어지는 기도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과 태도를 돌아보고 응답받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다. 

 

2020년 06월 03일(수)

정병진목사

역사상 가장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등장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누구였을까?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네로황제나 도미시안 황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엔 대체 누구였을까? 그는 헬라제국 셀류커스 왕조의 제8대왕이었던 안티오커스4세 에피파네스왕이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거의 이견이 없다. 그는 대체 어떤 왕이었길래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까? 그런데 그 왕이 이야기가 오늘 다니엘 8장에 나온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2020-05-27(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2) 숫양과 숫염소 그리고 숫염소의 작은 뿔에 관한 환상과 그 의미(단8:1~27)
https://youtu.be/yzeexAhzIvM 

 

 

1. 들어가며

  다니엘서의 핵심이자 중심축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이 아닌가 싶다. 다니엘서는 제7장을 중심으로 다니엘서 2장의 금신상에 관한 꿈과 8장의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상에 출현했던 대제국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벨론제국 이후에 이 세상에 출현할 제국들로는  메대와 바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오늘은 그러한 대제국들 가운데 중간에 위치한, 메대와 바사제국 및 헬라제국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8장은 이 두 제국들에 대한 환상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두 제국들의 역사에 관하여 다니엘이 이미 보았던 두번째 환상(숫양과 숫염소)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진정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세밀하게 섭리자이신지, 그리고 세상 모든 역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헬라제국에서 올라온 한 "작은 뿔"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그가 활동하는 2,300주야란 대체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와 두번째 환상은 무엇이었나?

  다니엘서는 크게 6장까지가 전반부이고, 후반부는 7장에서 12장까인데 그 시작은 바로 7장이다. 특히 다니엘서가 6장까지는 다니엘에 들었던 간접적인 꿈과 환상로 구성되어 있다면, 7장부터는 다니엘이 직접적으로 환상이 4편이 나온다. 그중에서 7장에는 바벨론 벨사살왕 원년(B.C.577)에 다니엘이 보았던 첫번째 환상으로서 "네 마리 짐승들"과 그 중에서 넷째 짐승 후에 올라운 열 뿔들과 한 "작은 뿔" 그리고 그 뿔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환상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8장에는 바벨론 벨사살왕 제3년(B.C.575년)에 다니엘이 보았던 두번째 환상으로서, "두 뿔가진 숫양과 하나의 큰 뿔가진 숫염소"와 그 숫염소에서 올라온 네 뿔과 다시 네 뿔 가운데서 하나에서 올라온 "작은 뿔"에 대한 환상 및 그 작은 뿔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기간인 "2,300주야"에 관한 환상이 나온다.

  그런데 두 개의 환상의 특징이 있다면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다 "작은 뿔"에 관한 환상이라는 것이다. 대체 "작은 뿔'이 무엇이길래 두 장에서 각각 하이라이트로 등장하는 것인가? 그것은 둘 다 "적그리스도"들에 대한 예표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장과 8장에 나오는 "작은 뿔"은 각각 다른 시대에 출현한 적그리스도들로서, 7장에서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출현하는 작은 뿔이라면, 8장에서는 헬라제국으로부터 출현하는 작은 뿔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이들이 출현하는 시기들인데,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은 로마제국(B.C.161~A.D.475)에서 올라오는 작은 뿔이고, 8장에 나오는 작은 뿔은 헬라제국(B.C.332~146)에서 올라오는 작은 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은 7장의 작은 뿔과 이어져 있어도, 8장의 작은 뿔과는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도 다르다. 그러니까 작은 뿔이 활동하는 7장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주님의 재림직전까지의 정한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8장에 나오는 "2,300주야"는 결코 주님의 재림과 이어지는 기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다니엘이 본 두 뿔가진 숫양과 하나의 큰 뿔을 가진 숫염소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다니엘은 A.D.575년 이제 두번째 환상을 본다. 그런데 그의 몸은 분명 엘람지방 수산성에 있었지만 그가 환상을 보았던 장소는 을래강변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단8:2). 이는 아마도 그의 영이 빠져나가서 을래강변에서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런데 이때 두 마리의 짐승이 둘 다 강가에 서 있다. 첫째짐승은 "두 뿔 가진 숫양"이었고, 둘째짐승은 "큰 뿔 가진 한 마리의 숫염소"였다. 그럼, 왜 강가인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두 마리의 짐승은 "메대와 바사제국"과 "헬라제국"을 상징하는 짐승들이다. 그런데 다니엘 7장에서 이 두 마리의 짐승은 각각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과 "네 개의 머리들과 네 개의 날개를 지닌 표범"으로 등장했었고, 또한 둘 다 거대한 바람이 불어닥친 바다로부터 올라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그만한 강가에 서 있는 좀 약한 짐승들로서 등장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다니엘서가 2장 4b절부터 7장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제8장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아람어로 기록하고 있는 7장의 환상은 이방세계적인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라면, 제8장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함으로서 히브리인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방제국의 왕은 결코 거대한 최상의 포식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숫양과 숫염소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결코 포식자들이 아니다. 단지 힘이 조금 더 센 짐승일 뿐이다. 둘 다 풀을 먹고 살 뿐, 다른 동물을 먹고 사는 짐승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숫양과 숫염소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런데 강가에 서 있던 "숫양"은 두 뿔을 가지고 있었고, 둘 다 길었다. 하지만 나중에 올라온 뿔이 더 길었다. 이 숫양은 서쪽(바벨론과 시리아와 소아시아)과 북쪽(스키티아, 아르메니아, 카스피해)와 남쪽(이집트, 에티오피아)을 향하여 나가 받으나 그것을 당해낼 짐승이 없었다. 그래서 그 짐승은 점점 더 강해졌다. 고로 이 "숫양"은 메대와 바사제국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더욱이 이 환상 후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그 숫양은 메대와 바사제국이라고 해석해주었기 때문이다(단8:20). 실제로도 나중에 메대를 정복하고 하나가 나라가 되었던 바사제국이 더 컸고 오래 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쪽(그리스, 마케도냐)에서 올라온 한 마리의 "숫염소"가 있었다. 이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큰 뿔이 나 있었다. 이 숫염소는 강가에 서 있던 숫양을 치받고 두 뿔을 꺾어버렸으며, 숫양을 땅에 엎뜨려뜨리고 짓밟아버렸다. 그리고 숫염소는 더 강대해졌는데, 어느날 강성할 그때에 갑자기 큰 뿔이 꺾여버렸다. 그리고는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올라왔다. 이는 헬라제국에 대한 환상이다. 먼저 났던 "큰 뿔"은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고, 나중에 올라온 "현저한 네 뿔"은 알렉산더의 대를 이은 4명의 부하장수들에 의해 차지한 네 지역의 왕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네 명의 부하장수들은 각각 동서남북의 지역을 각각 나눠가졌으니, '카싼더'는 그리스와 마케도냐를 차지하였고(서북쪽), '리시마쿠스'는 트리키야와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서남쪽). 그리고 '셀류커스'는 페르시아와 소아시아일부와 시리아 북부와 메소포타미아 및 동방지역을 차지하였고(동쪽), '프톨레미'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시리아일부지역을 차지했던 것이다(남쪽). 

 

5. 숫염소의 네 뿔 가운데 한 뿔에서 올라온 "작은 뿔"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런데 네 뿔 중 한 뿔로부터 작은 뿔 하나가 올라오더니, 남쪽(이집트)과 동쪽(바사)과 영화로운 땅(유대)으로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하늘의 군대(이스라엘)과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 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았다. 그리고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버렸으며(소와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 금지), 그의 성소를 헐어버렸으며(번제단을 헐고 그 위에 제우스신상을 세움), 그의 악으로 인하여 군대가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다른 고기로 제사를 드림), 진리(진리의 말씀이 기록된 구약의 율법서)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게 된다. 

  그렇다면, "작은 뿔"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가 헬라제국 셀류커스왕조의 제8대왕 안티오커스4세 에피파네스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가 B.C.175년 그의 아버지(안티오커스 3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더니, B.C.171년에 유다를 침공하여 대제사장 오니아스3세를 죽였고, B.C.167년에는 2만2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평화로운 안식일에 8만명을 학살하고 제사를 폐지하였고,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지 말라고 공포했으며, 또한 할례를 금지하고, 율법서나 율법서사본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제우스신상을 성전의 번제단 위에 세우고, 돼지피와 돼지고기로 제사를 드리게 했기 때문이다. 

 

6. 이스라엘(남유다)은 언제까지 제사와 성소와 백성이 짓밟히게 될 것이라고 했는가?

  그런데 한 천사가 작은 뿔의 악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2,300주야까지"라고 하였다(단8:14). 그리고 이때에 비로소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2,300 주야(밤 아침까지 2,300)"는 언제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가?

  먼저는 안티오커스4세가 언제까지 예루살렘을 짓밟았는가를 살펴보자. 그는 B.C.171년에 예루살렘 침공했다. 그리고 대제사장을 죽였다. 그리고 때로는 베냐민지파사람을 대제사장에 앉히기도 했다. 또한 B.C.167년에는 제사와 안식일와 절기, 할례까지 폐지했다. 그리고 돼지고기와 돼지피로 제우스신상에게 절을 하게 했다. 완전히 예루살렘을 이방인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이듬해인 B.C.166년에 마카비가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난 후, 셀류커스왕조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철수했다. 왜냐하면 B.C.164년에 안티오커스4세가 죽고, 그의 부하장수도 패하여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때 가브리엘천사는 작은 뿔이 어떻게 파멸할 것인지 그의 마지막의 모습을 알려 주었는데,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단8:25). 그렇다면 안티오커스4세는 어떻게 죽었을까? 그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외경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에 의하면, 그가 죽은 이유에 2가지 학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종합해보면 안티오커스가 바사의 어떤 성에 귀중품을 약탈하러 갔으나 그 성의 저항에 못이겨 패하고 돌아오고 있었는데, 자신의 부하장수마저 마카비가문의 반란에 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그의 말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곳을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로 만들어주겠다"고 달려갔지만, 질주하는 병거에서 떨어져서 뼈가 부서지고 들 것에 실려갔는데 나중에 그의 몸에 구더기가 들끓었고 살이 썩어들어가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스라엘 성전에 몹쓸 짓을 한 것을 후회하면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즉 그가 전쟁터에서 사람의 칼이나 활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대로 이뤄진 것이다. 

 

7. 작은 뿔의 활동기간인 "2,300주야"는 대체 얼마의 기간인가?

  그렇다면, "2,300주야"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이것은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작은 뿔"의 환상은 "정한 때 곧 끝에 관한 환상"이라는 것(단8:17)으로서, 성소가 정결함이 얻기까지 2,300주야 때까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소가 더럽혀진 시기가 B.C.167~164년까지였으니, 실제 그 기간은 3년 하고 55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2,300 주야"는 "주야"를 하루로 계산했을 때에 그 기간이 1,150일에 불과한 것이기에 대략 3년으로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주간 1,150일, 야간 1,150일을 합친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또한 어떤 학자는 안티오커스4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B.C.171)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B.C.164)를 계산하면, 약 6년반인데, 그 기간이 "2,300 주야"라는 것이다. 한편 "2,300주야"를 안식교에서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2300은 2,3000년을 뜻하며, 시작의 시점을 다니엘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시점과 동일하게 해석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는 영이 날 때를 B.C.457년으로 잡고 거기로부터 2300년을 계산함으로 마지막 시점은 A.D.1844년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날에 예수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본문의 서두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다니엘의 2,300주야 환상은 종말의 시기에 관한 환상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예표에 관한 전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해석은 올바른 해석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전 한동대교수였던 김명현박사(성경과학연구소 소장)는 그 기간을 헬라제국의 시작과 끝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알렉산더대왕이 왕위에 오르던 때(B.C.334년 6월 7일)부터 헬라제국)(그리스)의 마지막 왕(콘스탄틴2세) 때(A.D.1967년 6월 7일)로 보면, 그 시기가 정확히 2,300년이 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작은 뿔"은 히틀러(A.D.1889~1945)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는 날짜를 계산함에 있어서 항상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도 계속해서 살펴보았지만 숫자는 거의가 다 상징적인 숫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올바른 해석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적그리스도에게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고, 이어서 다니엘 7장에 의하면 그가 죽임을 당한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8. 나오며

  다니엘은 그의 나이 약 42세(그가 14세에 왕궁자문위원에 발탁되었으며, 느부갓네살왕과 25년을 함께 했고, 다시 그의 아들 벨사살와 함께 3년을 지냈다고 했을 때) 때에 두번째 환상을 보게 된다. 오늘날에 와서 다니엘연대기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해, 늙은 노년의 시기에 들어서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계산된 해석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지 다니엘은 벨사살왕 제3년에 이 두번째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벨사살왕 원년에 본 환상과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결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는 이 환상을 본 다니엘은 몸저 눕게 된다(단7:28, 8:27). 그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후손들이 장차 맞이하게 될 엄청난 징계를 보고는 그는 그만 힘이 완전히 빠져버려 사무를 보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만약 그가 후대에 와서 히틀러에 의한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장면을 봤다면 얼마나 또 질겁했을까? 로마제국에서 올라온 작은 뿔이든, 헬라제국에서 올라온 작은 뿔이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는 이처럼 참으로 참담하기만 하다. 이제 그러한 끝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릴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단하고 절하지 않았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과 죽을 줄 알면서도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던 다니엘의 지조있는 신앙을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겠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환난후에 오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고 떠나셨기 때문이다(마24:29).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27일(수)

정병진목사 

로마교황권이 진짜로 마지막 적그리스도일까? 우리는 다니엘7장과 요한계시록13장의 말씀을 통해서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누군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재림의 때에 누가 과연 심판의 보좌에 앉이 심판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주님과 함께 심판에 동참하는 24장로들은 누구인가? 신구약시대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는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성도들은 누구를 심판하는가? 오늘은 적그리스도와 심판의 비밀에 대해 살펴보자.

2020-05-20(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1) 다니엘이 들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와 하나님 보좌에 대한 환상(2)(단7:9~28)
https://youtu.be/-fcLFxHk05E [혹은 tv.naver.com/v/13893424 ]

 

 

1. 들어가며

  오늘은 다니엘서 7장 강해의 마지막인 세번째 시간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B.C.577년(연대기기준) 바벨론의 벨사살왕 원년에 다니엘이 보았던 네 짐승들 중에서 넷째짐승에 관한 환상과 관련된 2가지 것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는 넷째짐승의 머리에서 올라온 열 뿔들 중에서 3개의 뿔을 뿌리채 뽑고 올라온 작은 뿔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간략한 정리와 아울러, 그 시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지 요한계시록 13장과 견주어 살펴볼 것이다. 그리 이어서 또 하나 살펴볼 것은 다니엘이 B.C.577년경에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와 여러 보좌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아계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과 그분에게로 인도된 "인자같은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극히 높으신 이"이 누군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 모습들을 통하여, 장차 우리 성도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게될 천국의 모습을 미리 내다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키워나가기를 바라며, 우리도 어떻게 하면 천국에 있는 심판의 보좌에 나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넷째짐승에서 올라온 작은 뿔의 정체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니엘이 보았던 그 넷째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포한 짐승이었다(단7:7~8). 그 녀석이 쇠이빨을 지녔고 놋발톱을 지니고 있었기에 닥치는대로 먹어치웠고 부서뜨렸으며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셋째짐승(헬라제국) 뒤에 올라우는 이 짐승을 "로마제국"이라고 해석한다. 로마제국은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제국보다도 잔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제국을 무러뜨리고 올라온 열 뿔을 열 나라로 해석한다. 이 중에서 세 뿔로 해석되는 '헤룰리'와 '반달'과 '동고트족'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올라온 한 작은 뿔은 "로마카톨릭" 곧 오늘날의 "바티칸국"으로 본다. 다시 말해, 로마카톨릭(천주교)의 교황들을 작은 뿔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뿔의 정체가 영락없이 로마제국 후에 올라온 로마카톨릭의 세력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한 작은 뿔은 지극히 높이신 이(한 분 하나님)을 말로 [거슬러] 대적할 것이라고 했는데, 로마교황이 그렇게 함부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말하라고 하였고, 자신의 말은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작은 뿔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했는데, 역대의 로마교황들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을 잡아다가 종교재판소를 열어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셋째, 그가 때들과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라고 했는데, 역대 교황들에 의해 율법의 절기들은 사라졌고, 마니교에서 들어온 태양신종교의 제도와 방식을 로마카톨릭에 들여와 성인숭배를 자행했으며, 율법의 근간 십계명을 임의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은 뿔이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대체 어느정도 되는 기간인가? 한 몇 년 참으면 되는 기간인가? 아니면 오래도록 지속되는 긴 기간인가? 우리는 다니엘에서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을 상징적인 기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따라, 그 기간이 정해진 어떤 기간으로 보며, 그 기간은 산술적으로 계산되어지는 기간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기간을 산술적으로 "3년반(42달,1,260일)"이라고 해석할 만한 역사적인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고, 또한 이 기간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만 나올 뿐, 그 기간을 산술적으로 기간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요한계시록의 해석법에 따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으로서, 성도들에게는 이 땅에서 고난받는 기간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산술적으로 "3년반(42달, 1260일)"으로 해석지 아니하며, 1,260일을 햇수로 환산한 1,260년으로도 보지 아니한다(A.D.538년 - 1,260년=1,798년). 왜나하면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성도들은 지금도 여전히 핍박받고 죽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대"를 성도들이 핍박받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해석한다. 

 

3.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은 언제인가?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은 대체 언제인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황권이 몰락했다고 보는 1,798년(538년 + 1260년)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말세의 어느 특정한 산술적인 시기인 "후3년반"의 기간인가?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딱 정의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에 인자같은 이가 와서 왕국을 접수한다고 다니엘서와 나와 있는데, 그때가 1,798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단7:13~14). 그리고 둘째, 그 기간이 끝나는 때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되어 있는데, 1,798년은 역시 그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단7:9~10, 25~27). 참고로, 안식교에서는 자기들이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이 예상했던 시기에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자, 그때에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셨고 그때부터 조사심판이 시작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셋째, 그 기간은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기간이라고 나와 있는데, 성도들이 박해를 받는 기간은 미래에 있을 어느 특정한 시기인 "후3년반"의 기간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받는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계12~13장).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의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결박받고 무저갱에 갇혀지내고 있는 용(짐승)이 지상위로 다시 올라와서 첫째짐승(적그리스도)과 거짓선지자(둘째짐승)와 합세하여, 세상의 왕들과 기독교 세력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아마겟돈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 때까지라고 본다. 그것은 제가 했던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4. 말세에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이는 누구신가? 그분은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바로 구름을 타고 오실터인에, 그분은 승천하시면서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고 다시 오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행1:9~11,마24:30~31).

  그럼, 이분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분은 마지막 심판 때에 구름을 타고 나아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인도되시는 이이시다(단7:13). 그런데 신약의 공관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보면 스스로를 "인자"로 부르셨던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을 "인자" 혹은 "아들"이라고 표현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분은 33년반의 생애를 사시고 인류의 속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일곱금촛대를 사이를 거닐고 계신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분을 다니엘처럼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했다(계1:13). 그분은 발에 끌리는 흰 옷을 입고 계셨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셨고, 그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 같았고 흰 눈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불꽃 같았으며, 그의 얼굴에서는 해가 힘있게 비치듯 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1:17~18). 고로 촛대 사이에 거닐고 계셨던 인자같은 이는 바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또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도 소개하신다. 그리고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도 소개한다. 

  그렇다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는 누구신가? 우선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에만 3번 등장하는데, 그분은 자신을 주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계1:17,2:8,22:13), 또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계19:4). 즉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고 소개하신 이는 첫번째로는 요한계시록1:17에서 자신을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두번째로는 서머나교회에 사자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 자신을 "처음으로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계2:8)"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이 예수 자신이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리고 세번째로는 그분은 곧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로서,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소개하시는 이는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이시다(계21:5~6).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21:5~6)"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19:4에 의하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곧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시는 이는 요한계시록 1:8에 의하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는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이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니엘이 보았던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아직 인자이신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이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그분은 "전부터 계셨던 이(계1:8)"이시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보좌에 앉아계신 이" 곧 "전부터 계셨던 이"는 대체 누구신가? 그분은 한 마디로 "여호와"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이에 대하여 환상을 보았던 미가야선지자(왕상22:19), 그리고 이사야선지자(사6:1~3)는 그분이 "여호와"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출애굽기 3:14~15에 보면, 여호와는 자신을 "스스로 계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라고 소개하신다(사41:4,44:6,48:12). 고로, 구약시대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바로 "스스로 계신 이"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로서 그분은 곧 "여호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 "스스로 계신 이"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3번씩이나 연거푸 말씀하신다(요8:24,28,58).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도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던 그분이 곧 신약시대에 예수님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니엘서에 나오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신약시대에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자같은 이로 이 땅에 오셨다가 비로소 다시 하늘에 올라가신 그분은 그후로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구약시대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서 여호와이심을 알 수 있고, 그분이 육신이 입고 구속사역을 완성한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그분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으며,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인자,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계시하셨신 것이다. 그분이 마지막 때에 재림주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시는 이는 아버지 하나님(구약에는 '여호와'라고 칭하셨던 이)이시나, 예수께서 아들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모든 일을 다 아들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이다(요5:27).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한 개뿐인 하나님의 보좌에는 지금은 예수께서 앉아계신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뿐인 그분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부르고 있다(계22:1,3)

 

5.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의 보좌들에 대한 환상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다니엘이 본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에는 놀라운 계시의 발전이 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여러 개의 보좌들을 다니엘이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단7:9). 물론 다니엘이 본 환상은 그때 당시의 하늘에 있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의 있어질 모습을 환상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보좌 좌우에 있는 24개의 보좌들을 다니엘이 그때 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누가 앉아있는지는 그는 보지 못했다. 거기에 앉을 사람들은 분명이 있겠으나 그들이 누가 될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본 자들은 대체 누구누구며 어떤 것을 보았는가? 그들은 대략 6명 정도 된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본 사람은, B.C.853년경 북이스라엘의 7대 아합왕 때의 미가야선지자다(왕상22:19). 그때 그는 단 한 개의 보좌만을 보았고 그 위에 여호와께서 좌정해 계시며, 그 좌우편에 하늘의 만군(군대)가 모셔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번째는 B.C.740년경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그는 높이 들린 한 개의 보좌에 여호와께서 좌정해 계신 것을 보았고, 그 옆에는 여섯개의 날개를 달고 있는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사6:1~5). 그리고 세번째는 B.C.593년경 다니엘과 동시대에 살았던 에스겔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겔1장과 10장). 그는 불이 이글거리는 보좌 위에 사람같은 분이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겔1:26). 그리고 그 주변에는 네 생물들이 있었다. 그 생물들의 모습은 각기 사면에 따라,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고, 네 날개가 있었다(겔1:5~11). 그 생물들은 "그룹"이라고 불리었다(겔10:20~21,14). 그리고 그러한 그룹 중에는 루시엘(사탄마귀)도 들어 있었다(겔28:14). 네번째는 B.C.577년경 에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아계신 것을 보았고,그 주변에 보좌들이 있는 것까지 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모셔 서 있는 것을 보았다(단7:9). 그러니 다니엘은 그때 당시의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을 본 것이 아니라, 말세의 때 곧 주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의 광경을 본 것이다. 

  이제 신약에 들어와서 두 명의 인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첫번째는 A.D.33년경 예루살렘교회의 일곱집사(?)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다. 그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행7:55~56).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려와서 그 옆에 서 계신 것을 본 것이다. 두번째는 A.D.95년경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사도요한이다. 그는 자신의 영이 하늘에 올라가 직접 하나님의 보좌와 그 좌우둘레에 있는 24보좌들을 보았고, 그 보좌에 앉아있는 24장로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하늘에 한 개밖에 없던 하나님의 보좌 외에 또 다른 24개의 보좌들이 생긴 것인가? 그것은 성도들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사실 구약시대만 해도 다니엘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 보좌들이 계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이제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 12명의 제자들이 앉을 보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히셨다(마19:28). 그리고 12제자들이 앉게 될 그 보좌들은 예수님처럼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 보좌라고 말씀해주셨다(눅22:28~30). 그런데 그 보좌들이 12명의 제자들에게 영구적으로 주어질지는 모른다. 그리고 나머지 구약의 성도들로 채워질 보좌에 누가 앉게 될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24보좌에 앉은 자들은 대체 무엇을 심판하는가? 그것은 눅22:30, 계20:4~5의 말씀과 아울러, 고린도전서6:2~3의 말씀에 따르면, 그때 24보좌에 앉은 자들은 첫째는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둘째는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 때 "세상"은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던 자들이거나,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그러한 외침을 외면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자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고전6:2). 정확한 것은 그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에 성도들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사실이다(고전6:3). 아마도 타락한 천사들을 무저갱에 보내는 심판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심판은 사람이나 천사나 불못에 보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오늘 우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넷째짐승의 작은 뿔에 대한 성도들의 핍박과 그 시기와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작은 뿔에 의한 성도들의 핍박의 시기는 언제인가? 그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다(단7:25). 그런데 결론적으로 볼 때 그것은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예수승천이후 재림때까지의 기간으로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 의해 핍박하고 죽임을 당하는 시기이다. 물론 반대로 이 시기에 성도들의 대부분은 광야의 피난처에서 보호받고 양육을 받을 것이다(계12장). 그리고 이 일이 끝나는 지점 곧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끝 지점에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곧바로 인류 앞에 심판대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때 재림주로 오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이며, 그 주변에 있는 24장로들에 의해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비록 B.C.577년경에 산 자였지만, 마지막 날에 있을 재판대가 하나님의 보좌 말고 더 많은 보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구약의 최초의 인물이자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럼, 누가 과연 이러한 놀라운 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가? 그것은 다니엘처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자가 아니겠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를 말씀으로 살펴보는 우리는 이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날 우리는 과연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심판하는 자로 앉아있을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20일(수)

정병진목사

중고등학교시절, 세계사를 공부할 때에 많이 힘들어 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에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목사가 되었고 벌써 23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의 역사가 곧 세계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세계의 역사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신약시대에는 로마제국과 로마카톨릭으로 중심으로 펼쳐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결코 세계사를 꿰뚫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세계제국의 흥망성쇠를 명쾌히 알려주는 네 짐승에 대 환상과 장차 미래에 되어질 일을 알려주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이야기가 오롯이 깃들어 있다.

2020-05-13(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0) 다니엘이 들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와 하나님 보좌에 대한 환상(1)(단7:9~28)
https://youtu.be/aeRa_TQWiUE [혹은 https://tv.naver.com/v/13786807  ]

 

1. 들어가며

  총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니엘서의 핵심 중의 핵심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그것은 다니엘 7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니엘7장은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4가지 환상 가운데 첫번째 환상에 대한 기록인데, 다니엘 7장의 첫번째 환상은 이 세상제국들의 흥망성쇠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모든 역사가 총망라된 환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하여, 이 환상의 시작되었던 4마리 짐승들에 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앞에 나오는 세 마리 짐승(사자, 곰, 표범)에 관한 환상을 보았고, 지난 시간에는 넷째짐승에 관한 환상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 넷째짐승에서 올라온 10뿔 가운데 3뿔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등장하는 한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 작은 뿔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며, 인류역사 가운데 어떻게 이 뿔이 나타났으며, 이 뿔이 성도들을 괴롭히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대체 어느 정도되는 기간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이 환상에 바로 뒤에 있는 재림하시는 인자같은 이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가 어떤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다니엘서의 7장의 위치는 어디인가?

  다니엘 7장은 다니엘서의 분수령과 같은 장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서가 1장부터 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직접 경험한 신앙승리의 사건을 보도하고 있지만, 다니엘 7장부터는 다니엘이 직접 보았던 4가지 환상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다니엘 7장은 그 첫번째 환상으로서, 환상 가운데 백미 중의 백미라고 할만큼의 놀라운 환상이 등장하고 있기 대문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 가운데 대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한 편의 환상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 성도들은 과연 이러한 대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주의 재림시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가 적나나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3. 다니엘이 본 네 마리 짐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이때 자신의 시대 이후 이 세상제국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 것을 보았는가? 그것은 네 마리의 거대한 짐승의 모습으로 보았다. 거대한 네 바람이 하늘에서 바다로 불어닥치자, 그곳으로부터 네 마리 짐승들이 차례대로 올라오는데, 첫번째 짐승은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자같은 짐승이었다.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번째 짐승은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이 나오는데, 이는 리디아와 바벨론과 이집트를 물리친 메대와 바사제국의 고레스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번째 짐승은 네 개의 날개를 달고 있는 표범같은 짐승인데, 네 개의 날개가 있었다. 이는 신속히 세상 나라들을 정복했던 헬라(그리스)제국의 알렉산더대왕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이후 10년만에 알렉산더가 죽고 이 거대한 나라가 카산더, 리시마쿠스, 셀류커스, 프톨레미라는 장수들에 의해 분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넷째짐승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짐승을 끝으로 주님의 재림시까지 다른 제국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날 보았던 넷째짐승은 세상에 있던 어떤 짐승과 비교될 수 없는 무서운 제국이었다. 이때 다니엘이 보았던 이 짐승은 매우 사납고 무섭게 생긴 짐승이었는데, 이 짐승의 핵심은 이발과 발에 있었다. 이빨은 쇠이빨로서 무엇이든 물어뜯고 먹어치웠기 때문이요, 나머지는 10개의 놋발로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그 짐승의 머리에서 10개의 뿔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3개의 뿔이 뿌리채 뽑히더니, 그 사이에서 한 "작은 뿔"이 올라왔는데, 이 뿔은 다른 뿔과는 달리 사람처럼 두 눈을 갖고 있었으며 말하는 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넷째짐승은 어떤 제국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제국을 제압하고 올라온 "로마제국"이라고 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이 해석한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은 헬라를 정복하고 올라왔는데, 이 제국은 그 어떤 제국보다 강포했으며, 잔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국의 번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A.D.476년이 서로마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로마나라는 10개의 게르만 민족에게 차례로 점령당하게 되는데, 그때 로마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다니엘이 본 "열 뿔"이기 때문이다. 그때 등장한 열 뿔은 오늘날에 와서 영국(앵글로색슨), 프랑스(프랑크), 독일(알레마니), 스위스(부르군드), 이탈리아(롬바르드), 스페인(서고트), 포르투칼(수에비)과 다른 세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차례대로 동로마 황제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세 나라는 당시 아리우스 이단에 속한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세 나라들이 멸망당한 후, 그 나라들은 동로마황제에 의해 로마의 시내에 있는 로마감독에게 선물로 주어진 바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거의 모든 성서해석학자들은 이 "로마의 감독(훗날 교황)"이야말로 바로 "작은 뿔"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A.D.330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으로 천도를 단행함에 따라, 로마감독은 이제 서로마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후 로마교회 감독이 점차로 정치세력화가 되어감에 따라, 훗날에는 옛 로마 지역에 있는 왕들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보면, A.D.378년에는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Damasus)가 당시 로마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가지고 있던 이교도의 최고제사장직인 최고승원장직(폰티펙스 막시무스)를 넘겨받아서 자신이 그 제사장이 되었고, A.D.533년에는 유스티아누스가 로마교회의 감독을 "전 세계의 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하게 됨으로 서로마교회의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A.D.538년에는 로마황제가 로마교회 감독에게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의 영토를 선물로 바치고, A.D.590년에는 로마교회의 감독 그레고리1세가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게 됨에 따라, 종교와 정치는 사실상 하나로 연합된 세상의 제국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의 바티칸시국이 되는 것이다. 로마의 시내의 한 가운데 있는 바티칸 시국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로마카톨릭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고로 우리는 로마의 교황이야말로, 넷째짐승의 열 뿔 사이에서 세 뿔을 뽑아버리고 올라운 한 작은 뿔(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4. 작은 뿔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시기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얼마 정도의 시간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가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공인 이후 급속히 종교화됨에 따라 참된 성도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기 시작하더라는 점이다. 로마제국에서 올라온 하나의 작은 뿔이 권력을 휘어잡더니, 이제는 거대한 뿔이 되어서 이 뿔의 말을 듣지 않는 순전한 기독교인들을 종교재판으로 몰아가서 핍박하고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을 참칭하는 교황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로마카톨릭에 의해 성도들은 언제까지 핍박을 받고 죽어가는 것인가? 다니엘은 그 시기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그 환상을 해석해주는 천사(아마도 가브리엘 천사장)로부터 듣는다(단7:25).

  그렇다면, 교황권에 의해 순전한 기독교인들이 핍박받고 죽어나가는 시기는 대체 얼마큼일까?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놓고, 수많은 해석들이 등장했는데, 그 해석들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오늘날 안식교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처럼 그 시기를 1,260년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그것을 3년반(1,260일, 혹은 42달)로 보는 것이다.

  먼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1,260년으로 보는 안식교의 해석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현재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서 해석하는 것으로서, 여기에 나오는 "때(히, 잇단)"를 "해(year)"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단11:13). 그렇게 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이라는 기간이 된다. 이것을 날짜로 계산하게 되면 1,260일이 되는데, 이것을 다시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는 해석법에 따라(겔4:6, 민14:12) 계산하면 1,260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해석이 교황이 일어나서 득세하다가 그 위세가 꺾이는 것을 1,260년으로 보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에 의해서 세 뿔 중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동고토족이 멸망한 연도는 A.D.538년이다. 여기에 1260년을 더하면, A.D.1798년이 된다. 그런데 이 때는 프랑스 혁명정부의 베르띠에장군이 이탈리아로 내려가 바티칸에 침입, 교황 피우스 6세를 사로잡아 프랑스의 감옥에 쳐넣었던 해였다. 그런데 교황은 이듬해에 옥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안식교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1260년을 지칭한다고보고, 그 해에 교황권이 종식됨으로 인하여 단7:25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올바른 것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야 그들의 마음이겠지만, 이 해석은 그렇게 설명하기가는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작은 뿔이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기간이 지나면 넷째짐승이 멸망을 당하고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되어있는데, 1798년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은 아직까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둘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1,260일로 보는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의 해석을 살펴보자. 이 견해는 미국의 세대주의에서 온 것인데, 실은 그 이전으로 올라가보면 로마카톨릭의 신부 리베라(A.D.1537~1591)의 성경해석에서 따온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무렵, 루터와 칼빈, 멜랑히톤이나 부처 등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열뿔가진 짐승을 곧 교황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는 계13장에 나오는 "열뿔가진 짐승"을 단7:25에 나오는 "작은 뿔"과 동일시한 것이다. 왜 종교개혁자들은 그렇게 해석했는가? 그것은 조금 있다가 다니엘 9장 강해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70이레"에 대한 환상을 해석하면서, 리베라신부는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대환난"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자기가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가 적그리스도로 등장할 것인데, 그가 곧 계13장에 나오는 "열 뿔"이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을 계속해서 적그리스도라고 공격하기 때문에, 그것을 무마하도록 리베라신부에게 시킨 것이다. 그러자 리베라신부는 적그리스도는 그때의 교황이 아니라, 미래 어느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나타나게 될 유럽연합의 총통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을 영국의 다비(A.D.1800~1882)가 미국으로 가졌가고, 이러한 견해가 미국의 스코필드(A.D.1843~1921)가 쓴 스코필드성경에 실림에 따라 결국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미국에 유학을 갔다온 한국의 목회자들이 다수 수입하여 우리나라에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환난전휴거설)주의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자들은 마지막시대 어느 시기 곧 한 이레(7년)의 후3년반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에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의 7년간의 평화협상을 깨고 환난을 시작하여 유대인들을 죽이는 시기가 곧 한 이레의 후3년반(1,260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해석에는 가장 큰 맹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니엘의 "70이레"의 한 이레를 69이레 후에 있을, 먼 미래의 일로로 떼어놓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짐승에 의한 하나님 백성들의 핍박기간은 꼭 7년대환난의 후3년 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그 짐승은 창세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혀왔고 핍박하고 죽여왔기 때문이다(계13:8, 17:8).

 

5. 요한계시록의 관점으로 볼 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기간일까?

  그렇다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그것은 이 표현이 한 번 더 고스란히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다(계12:14). 사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다니엘서에 2번 나오고(단7:25,12:7), 요한계시록에 단 한 번 나온다(계12:14). 그러나 그 개념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니엘에서의 그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받는 기간을 뜻하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광야로 도망친 한 여자(여인)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2:1부터 등장하는 이 여자는 용과 대쟁투를 벌이는 여인이다. 이 여자는 원래 해를 옷입고 달을 밟고 있었으며,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계12:1). 이는 창37:9에서, 야곱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을 생각나게 한다. 고로 이 여인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낳은 여인으로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산출했던 모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정말 중요한 사명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그 여인이 메시야를 낳아야 하는 것이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를 낳는 일이다(이것은 육적 이스라엘의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낳을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르실 남자아이라는 점에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님을 그녀가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계2:27,19:15). 그런데 이 여자가 해산할 무렵, 큰 붉은 용이 하늘의 별들(천사들) 1/3을 끌어들어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해 버린다. 그러자 용이 화가나서 분풀이를 여자에게 해댄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갑자기 독수리가 날개가 주어진 채, 그녀는 광야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게 된다(계12:14). 그리고 거기서 이기는 남자아이들을 계속해서 산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예수님을 출산했던 여인이 광야로 도망쳐 보호하고 양육받는 기간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간은 여자가 용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사도요한은 여자가 양육받는 기간을 "1260일"이라고도 기록하였다(계12:6).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260일"은 어떤 기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산술적으로 3년반(42달)의 기간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숫자는 다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이라는 숫자와 "12"라는 숫자를 보자. "7(=3+4)"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고, "12(=3*4)"는 하늘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땅에 보내어신 하나님의 영은 "일곱 영들"이라고 나타나며(계1:4,4:5),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일곱교회들" 혹은 "일곱금촛대들"이라고 나온다(계1:20). 그리고 이 땅에 펼쳐진 미래의 일들이 기록된 두루마리에 찍힌 도장도 "일곱"이다(계6:1). 그리고 이 땅에 임할 재앙도 "일곱나팔재앙"으로 나타나 있고(계8:1~2), 짐승 치하에 내릴 마지막 재앙들도 "일곱대접"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계16:1). 그리고 천국에서의 완전수가 "12"인 것 만큼, 천국에 "24장로들" 이 있다. 이는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자들인 12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인 12가 합쳐서 24라는 숫자를 이루는 것이다(계4:4). 시온산에 서있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총수가 144,000명인데 이는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수인 12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수인 12가 곱해진 숫자에다가(12*12=144), "많은 수"를 의미하는 1,000이 곱해질 때, 144,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는 다 상징적인 숫자라고 보면 된다. 고로 "3년반(1,260일)"이라는 숫자는 "7년"의 절반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그 기간이 완전히 긴 시간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절반의 기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1,260일이란 대체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그것은 제가 전했던 요한계시록강해(52강)을 살펴보면 자세히 나오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는 광야로 도망친 여자(하나님의 백성들을 산출하는 모체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내며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나타냄)가 광야도 도망가서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을 나타낸다(계12:6,14). 둘째, 두 증인(예수승천이후 모세와 엘리야처럼 율법과 선지자의 후예로서, 구약시대에 제2성전을 지었던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처럼 왕과 제사장으로 활동하는 자들이자, 성령의 기름을 흘려보내는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이고, 칭찬만 받았던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의 두 촛대 교회의 대표처럼 활동하는 인물)이 십계명준수와 회개를 외치며 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가리킨다(계11:3,4,10). 그런데 셋째로, 이 기간(42달)은 이방인들(이방핍박자들을 상징)에 의해 성전(교회를 상징)이 짓밟혀지는 기간이기도 하다(계11:1~2). 넷째로, 사탄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두 마리의 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기간(42달)이기도 하다(계13:5). 참고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지키는 기간으로 쓰일 때에는 "1,260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성도들이 핍박하고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기간으로 쓰일 때에는 "42달"이라는 용어로 쓰였다는 점은 숫자를 암송할 때 기억할 둘만하다.

 

6. 주님의 재림은 언제 있으며 1,260일은 언제 끝나는가?

  그렇다면, 주님은 언제 있는가? 다르게 질문한다면, 1,260일은 언제 끝나는가? 우리는 앞의 문단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시작되는 시점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직후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사탄에 의한 간접적인 핍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실 때에 사탄은 죄없는 예수님에게 사망권세를 사용한 탓에 불법의 댓가로서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사망권세가 그때부터 상당히 제한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게 된다(계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죽이고 음부에 끌어가는 일은 쉬지 않고 있으니, 자신의 화신들(높은 계급의 귀신들)을 지상으로 올려보낸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마리의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이야기다. 그리고 두 증인이 사역을 마치는 날, 즉 하나님의 종들이 회개와 천국복음 전파 사역을 마치는 날(사명이 끝나는 날),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을 풀어준다(계20:1~3). 그리하여 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 그 이유는 저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고하시기 바람)이 터진다. 그때 무저갱으로부터 사탄마귀가 올라오면서 맨 처음 주의 종들인 "두 증인"을 죽인다(계11:7, 17:8).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왕들을 끌어모아 예수님을 대적하는 최후의 전쟁을 벌인다. 그것이 아마겟돈전쟁이다(계17:11~14, 19:17~12). 그리고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즉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계19:11~16). 고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직전까지 성도들이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마귀과 귀신들 그리고 그것들이 쓰는 사람들에 의해 핍박받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다(한편으로는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는 보호받고 양육받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것을 다니엘 7장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은 "작은 뿔"에 의하여 성도들의 핍박을 받는 기간이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지난 직후에 있을 것이다(단7:11~14, 25~27)

 

7. 나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의 기록자들은 서로 다르다. 적어도 42명 이상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원저자는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이다(딤후3:16, 벧후1:21). 다니엘서에서 장차 되어질 일을 보여주셨던 분은 누구신가? 다음 주에 배우겠지만 그분은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이시다(단7:22,25,27). 자존자이면서 시작과 끝이신 분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다니엘에서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이 시간은 환난과 핍박의 기간임과 동시에 보호와 양육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대적자들에 의한 핍박과 고난의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29~30). 고로 우리 성도들은 곧 있으면 불어닥칠 환난을 대비해야 한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둘째인과 셋째인과 넷째인)이 계속되지만 회개와 천국복음전파(첫째인)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호소(다섯째인)와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이 있을 것이고(여섯째인), 그 다음에 일곱째인을 떼실 때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지금 전세계는 어떠한가? 코로나전염병(넷째인)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곧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순교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하고 신앙으로 맞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지조있는 신앙과 및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보호받았던 다니엘의 신앙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무장해야 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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