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1(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도바울이 받았던 일반은사와 특별은사는 무엇인가?(고전12:7~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ip6w897bIg  [혹은 https://tv.naver.com/v/30710654 ]

 

1. 들어가며

  성령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신다. 그것을 우리는 '성령의 은사'라고 부른다. 이것은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신약시대에도 있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에는 일반 은사가 있고 특별 은사가 있다. 일반 은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은사인데 보통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특별 은사는 좀 다르다. 특별 은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사이기 때문이다. 특별 은사가 이처럼 특별한 선물인 만큼 이 은사는 신령하며 또한 초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을 본인이 경험하면서 절대 전능자인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은사는 매우 귀중한 보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신약의 대 사도였던 사도 바울은 과연 어떤 은사를 받아서 그의 사역에 활동한 것일까? 그가 받은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는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구해야 할 은사는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사도 바울은 어떤 일반 은사를 받았을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생애를 사도행전의 기사와 그가 남긴 12개의 편지들을 통해서 그가 어떤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성령의 은사를 받았을까? 은사를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로 구분했을 때에 사도 바울은 어떤 은사를 받은 것일까? 먼저 사도 바울이 받았던 일반 은사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일반 은사'란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사가 아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은사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사들은 보통 부모와 조상들이 행한 일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는 은사들을 가리킨다. 재물의 은사, 건설의 은사, 섬김의 은사, 봉사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등이 일반은사에 속한다. 그러므로 일반 은사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부모나 조상들 중에 억압이나 착취 그리고 살인하거나 사기를 친 이들이 있다면 그의 후손들은 좋은 은사를 받지 못한다. 대부분 악한 영들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어떤 일반 은사를 받은 것일까? 그가 받은 일반 은사를 큰 것부터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사랑의 은사'를 받았다(고전13:1~2). 그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어떤 은사보다도 사랑의 은사를 강조했다.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어떤 초자연적인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즉 방언과 예언, 지식의 말씀,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만큼 사랑의 은사가 중요한데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크게 받은 은사는 역시 '사랑의 은사'였다. 

  둘째, 그는 '담대함의 은사'를 받았다(행20:23~24). 그는 모르는 사람 앞에 서서 설교할 때나,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 앞에서도 결코 떨지 않았다.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바치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없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 앞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것도 알았지만,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목숨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그는 '복음 전함의 은사'를 받았다. 그는 말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설득하고,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그러한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즉 회당에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공회 앞에서나 어디서든지 복음을 조리있게 잘 전할 수 있었다. 그의 감동적인 설교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으니, 안디옥 회당에서(행13장), 루스드라의 문 앞 광장에서(14장),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행18장), 밀레도에서(행20장),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에서(행23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벨릭스 총독에게 전한 설교(행24장)는 잘 알려진 설교들이다.

  넷째, 그는 '건설의 은사'를 받았다. 즉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받은 것이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너무나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비시디아 안디옥교회,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등등이 있다. 

  다섯째, 그는 '세움을 받는 은사'를 받았다. 그는 이방인 선교의 사도로서 세움을 받았으며, 가르치는 자로서도 세움도 받았다. 또한 그는 성경을 쓰는 자로 세움을 받았으며, 율법과 복음의 관계나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복음 증거자로서도 세움을 받았다. 

  여섯째, 그는 '가르침의 은사'를 받았다(딤후1:11). 그는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가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두란노에서 약 2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쳐 각 지역에 파송하여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다(행19:9~10).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것들 외에도 다양한 일반 은사를 받아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3. 사도 바울이 받았던 특별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위와 같은 일반 은사 외에도 사도 바울이 받아서 복음 전파에 사용하였던 초자연적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실 우리는 특별 은사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사도 바울이 써 놓은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비로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의 기본 은사로서 9가지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제시해 놓았기 때문이다(고전12:8~10). 그만큼 사도 바울은 은사의 모든 것을 알았고 또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특별 은사는 무엇이었는가? 그가 받은 특별 은사가 무엇인지 그 은사들을 큰 은사부터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 여기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란 지혜의 은사가 아니라, 미래의 상태를 초자연적으로 아는 앎의 은사를 가리킨다. 즉 미래의 일들을 마음의 영감이나 환상 그리고 글자로 보든지 음성을 듣는 은사가 이 은사인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있을 때에 마케도냐인의 환상을 본 것이 그 예이다(행16:9~10). 

  둘째, 그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받았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지식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정보를 초자연적으로 아는 은사를 가리킨다. 이것도 역시 마음의 영감이나 환상 글자 혹은 음성을 통해서 알게 되는 은사다. 예를 들어,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 구브로에 있을 때에 박수 엘루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초자연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앞잡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행13:10~11). 

  셋째, 그는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 여기서 '믿음의 은사'란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는데 그냥 믿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믿는 은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요, 또한 아직 땅 한 평도 없었고 자식 하나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신 말씀과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는 말씀을 고스란히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를 어떤 사람으로 불러 쓰신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믿고 자신의 전생애를 바쳐 그 일에 충성하였던 것이다(행9:15, 26:16~18). 

  넷째, 그는 '예언의 은사' 또한 받았다. '예언의 은사'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마음으로 듣거나,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듣거나, 성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 후에 그것을 전달해 주는 은사이다. 또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글자로 보여서 그것을 읽어 주는 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선지자였다(행13:1). 또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그는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를 언급하였는데, 특히 '예언'하기를 권면한 바 있다. 특별히 그가 예언한 재림 예언은 지금까지 재림 예언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전15:51~54, 살전4:13~18).

  다섯째, 그는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받았다. 여기서 '영들 분별함의 은사'라는 것은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로서, 천사와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귀신과 뱀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현상이 성령에 의한 것인지 악한 영들에 의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은사가 능력 행함(기적과 축사)의 은사와 함께 나타나면 사실 놀랍게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직접 예수님을 보았고, 주의 음성을 들었으며,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어떤 영인지를 구분하여 그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째, 그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여기서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로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방언을 외국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이것은 은사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자신은 방언을 더 많이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고전14:18). 그리고 그는 방언 찬양도 할 수 있었다. 

  일곱째, 그는 '방언 통역의 은사'도 받았다. 그는 방언을 많이 말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통역의 은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언만 말하지 말고 통역하기를 힘쓰라고 말했던 것이다(고전14:13). 

  여덟째, 그는 '병 고치는 은사' 곧 '신유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2차 전도여행 때에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였으며(행14:8~10),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두란노에서 그의 앞치마만 얹어도 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일들을 행할 수 있었다(행19:12).

  아홉째, 그는 '능력 행함'의 은사도 받았다. 여기서 '능력 행함'의 은사라는 것은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에, 점치는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그녀가 자꾸 전도하는 일을 방해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그 속에 있는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오라고 명함으로 귀신을 쫓아버렸다(행16:16~18). 또한 그 일로 인하여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기도하고 찬송을 하였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행16:25~26).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드로아에서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려내기도 하였다(행20:9~12).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전서 12장에 언급한 9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를 다 받은 아주 특별한 사역자인 것을 알 수 있다. 

 

4. 사도 바울이 받은 은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받은 은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부르심과 사역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아무렇게나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이 땅에 그 사람을 보낼 때에 주신 소명에 따라 그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에게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는 은사의 거의 전부를 주신 것이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은사를 구할 때에는 자신의 사역에 맞는 은사를 구해야 한다. 만약 은사를 받아서 자기 자랑하고 폼 잡으려고 은사를 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은사를 적극 활용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다. 은사는 그것이 일반 은사이든 특별 은사이든 상관없이 대부분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난다. 다만 악한 영들이 많으면 그 은사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 은사를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기에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간구해서 받은 은사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사역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사역에 은사를 적극 활용하여 그것으로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실 때에는 어떤 은사는 크게 주시고 어떤 은사는 상대적으로 작게도 주신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 있어서 큰 은사는 빛의 은사쪽이다. 즉 영안이 열려서 영의 세계를 보고 듣고 하는 은사를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 그리고 예언과 영들분별의 은사는 보다 더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의 은사 곧 병 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함의 은사는 적게 받았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도록 세우심을 받은 자는 아무래도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환상,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더 간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나오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는 사실 좋고 나쁨이 없다. 다만 은사는 자신의 부르심과 사역에 필요하고 합당한 은사를 구하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역시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에 그의 부르심과 사역에 맞는 은사를 같이 딸려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은사인데도 자신이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은사를 구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주신 은사를 활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에게 꼭 필요한 은사만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았으면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 그것을 자기의 영력의 자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거나, 아니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기도하는 은사, 기도 응답의 은사가 있으면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성도로서 중보기도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물의 은사와 섬김과 봉사의 은사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자신이 처음 믿는 가정이라면 영적 권세가 있어야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에, 영 분별의 은사를 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가정을 악한 영으로부터 구원해 낸 후에는 그것을 교회의 다른 지체를 섬기는 일에 곧 그들을 영적인 어둠에서 건져내는 일에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이라면 복음 전파의 은사와 더불어 지혜와 말씀, 지식의 말씀, 영 분별의 은사, 예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 치유의 은사를 구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은사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11일(금)

정병진목사

 

2022-11-04(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무엘이 받은 은사와 나의 은사는?(삼상3: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SqvFhVLbRQ  [혹은 https://tv.naver.com/v/30583455 ]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보면 자신에게는 과연 어떤 은사가 주어져 있으며 또한 앞으로 어떤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은사가 있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과연 부모로부터 어떤 은사를 물려받았는가 하는 것도 궁금하다. 은사는 일종의 선물이다. 또한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구약시대의 가장 유명한 사사이자 최종 사사였던 사무엘 선지자의 경우를 통하여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은사는 대체 무엇이며, 또한 각자의 사역을 위해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가운데 내가 간구할 은사는 대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사무엘은 대체 누구인가?

  사무엘은 이스라엘 최대의 사사이자 최종 사사이다. 그런데 그는 사사(재판관)로서만 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일도 겸해서 행했으며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통치자이기도 하였다. 구약시대의 인물치고 이렇게 많은 직임을 맡아서 사역했던 사람이 사실 없을 것이다. 특히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선지자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무엘은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한 인물로 쓰임받기까지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사무엘이 좋은 은사를 받게 된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3. 사무엘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사무엘의 부모는 '엘가나'와 '한나'였다. 그의 부모는 에브라임 지파의 땅으로서, 두 개의 고지로 이루어진 숩 족속이 거주하던 땅에 살았다. 그렇다고 그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은 아니었고,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에브라임 땅 안에 있는 레위 지파 성읍에 그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엘가나는 정실부인이었던 한나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러자 두 번째 부인을 취하여 자식들을 낳았으니,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은 '브닌나'였다.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이 자식을 여러 명 낳기까지 한나는 여전히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런데 브닌나가 자꾸 한나를 놀리고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나는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에 올라갈 때마다 울고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엘리 제사장이 여호와의 집 문설주에 앉아 있을 때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서원하며 기도를 하였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12)".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다(삼상1:20). 그래서 사무엘은 '들으심'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으로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4. 한나가 가진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나가 가지고 있던 은사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구약시대의 사람에게는 은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다만 경륜적으로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은사가 그때에도 다 있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가 있었고, 엘리야나 엘리사에게는 '능력 행함'의 은사, '치유의 은사', '소생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엘가나의 아내였던 '한나'에게는 어떤 은사가 있었던 것일까? 사무엘상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녀에게는 적어도 5가지 은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기도하는 은사'가 있었다(삼상1:10~12,15,17, 2:1). 그녀는 매년제를 드리면서 여호와의 성막에 올라갔을 때에 그냥 있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서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기도로 풀었던 여인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통성으로 기도할 줄도 알았고, 금식하며 기도할 줄도 알았으며, 서원하는 기도도 알았던 것이다. 둘째, '기도 응답의 은사'가 있었다(삼상1:27). 그녀가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다(삼상1:19~20).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3남 2녀라는 자식을 더 주셨다(삼상2:21). 셋째, '주님의 종을 신뢰하는 은사', 곧 '믿음의 은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에 엘리 제사장이 그녀를 나무랬다. 그녀가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기도하는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서러운 마음을 주님께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엘리가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고 축복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에게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 그는 주의 종의 말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고 믿었던 것이다. 넷째, 그녀에게는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은사'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 가난하게 되거나 부하게 되는 것, 낮게 되거나 높여지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삼상2:6~8).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아들이 생기는 것과 안 생기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주님께 헌신하는 은사'도 있었다(삼상1:28). 그는 어렵게 자식을 얻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하나님께 그 아이를 기쁨으로 바칠 수가 있었다.  

 

5.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태어난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사실 사무엘은 정말 훌륭한 부모를 만났다. 왜냐하면 자식이 아직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부모가 가지고 있던 은사를 물려받도록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거의 받지 못한 놀라운 은사들을 그에게 덤으로 주셨다. 그러면 사무엘은 어떤 은사를 받은 것인가? 사무엘이 받은 은사는 적어도 7가지 이상이 된다. 

  첫째, 사무엘은 부모로부터 '기도하는 은사'와 '기도 응답의 은사'를 받았다(삼상12:23).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인물 중에서 사무엘만큼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12:23). 그랬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또한 기도 응답을 받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엄마의 기도의 은사가 사무엘에게로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둘째, 사무엘은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와 '주의 형상을 보는 은사'를 받았다(삼상3:10,21). 이것은 한나의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서 사무엘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신 은사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주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가 있었다(삼상3:10,21). 고로 그는 평생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으며 주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며 살 수가 있었다. 

  셋째, 그는 '말의 응답의 은사'를 받았다(삼상3:19). 그가 말하면 그 말이 그대로 성취되는 은사를 받았으니, 그가 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과 같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다. 

  넷째, 그는 '통치의 은사' 곧 '다스림의 은사'도 받았다(삼상7:15~17). 사무엘이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운 선지자인 줄을 알았으며, 그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사이를 순회하면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집이 있는 라마에서도 모든 백성이 그의 말을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통치와 다스림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은사'를 받았다(삼상15:11, 22~23). 그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은사'를 받았다(삼상10:1, 16:13). 사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왕'을 세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왕을 세우기 위해 그는 이 땅에 파송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이전에 먼저 사울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웠으며(삼상10:1), 이어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울 수가 있었다(삼상16:13).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으니, '주의 종을 생산하는 은사'를 가진 자가 있고, '주의 종을 양육하는 은사'를 가진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을 종합하여 보면 사무엘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기도하는 은사'와 '기도 응답의 은사'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의 사명에 따라 특별 은사를 주신 것도 있다. 그러한 은사에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은사'와 '주의 형상을 보는 은사'가 있다. 또한 그가 받았던 은사들은 주로 '일반 은사'들에 속한 것들이다. 그것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사이자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은사들이었다. 그러한 은사들에는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고, 사무엘이 간구하여 받은 것도 있다. 

 

6. 오늘날 평신도들과 주의 종들에게 필요한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가? 우리가 기도하고 은사를 가진 훌륭한 부모를 만났다면 아마도 우리 몸 안에 은사들이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조상의 세대들의 영들이 많아 은사가 발현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잘 나타날 수 있도록 꼭 회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은사를 덮고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나타나지 아니하던 은사들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는 꼭 자신의 직임에 맡는 은사가 주어질 때 은사가 빛을 보게 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용하지 않을 은사를 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은사를 구할 때에는 자신의 직분에 따라 자신의 직임에 맡는 은사를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평신도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하며, 주의 종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할까?

  먼저, 평신도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 것인가? 평신도들에게는 사실 사역자들에게 있는 '특별 은사'보다는 '일반 은사'가 더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반 은사들로서는 '기도하는 은사, 기도 응답의 은사'가 가장 필요하다. 기도는 성도들의 삶에 최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김'의 은사, '재물'의 은사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섬김과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성품의 은사들도 필요하다. 성품의 은사로서는 '충성, 온유, 절제, 사랑, 인내' 등의 은사가 필요하며, 찬양대원이나 교사로 봉사하는 분들에게는 '찬양(노래)'의 은사와 '가르침'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로들에게는 '지도력'의 은사, '설득'의 은사 등이 필요하다. 

  둘째, 그럼 주의 종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필요한가? 주의 종들은 말씀을 전해야 하며,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성도들을 건져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 둘 다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은 '특별 은사'를 더 많이 간구해야 한다. 일반 은사로서 '설교를 잘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영의 세계를 모르면 악한 영들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특별 은사'로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그리고 '환상'의 은사를 구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고 그들의 앞길을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와 '귀신을 짓밟는 은사, '귀신을 느끼는 은사' 등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이 성도들을 짓누르고 있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들 분별의 은사', '영 판단의 은사', '영안이 열리는 은사'가 필요하며, 성도들의 사명을 알려 줄 수 있는 '방언 통역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 종들은 '치유의 은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자주 아프기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사실 은사는 너무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자기 안에 악한 영들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사를 받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양신(양쪽의 신, 곧 성령과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은사가 과연 성령이 주신 은사인지 귀신이 주고 있는 은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구하는 자는 보다 철저한 회개를 먼저 행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이 더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짓게 되면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자신에게 있는 은사를 나타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은사도 밀어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부모가 기도를 많이 하고 은사를 가진 부모라면 더욱 더 좋은 일이다. 혹 그러한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기가 기도하여 신령한 은사를 주님으로부터 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리고 기왕이면 자기 주변에 영적 은사자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특별한 선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은사의 잘못된 사용과 부작용을 철저히 숙지하고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은사를 자기 가족 구원을 위해, 교회를 위해, 오늘도 병들어 신음하고 고통받고 상처받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하고 천국 들어가는 백성이 많아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의 기본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04일(금)

정병진목사

 

2022-09-23(금) 금요기도회

제목: 은사를 끌어올리고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전12:4~11,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X6IMeJnhv8 [ https://tv.naver.com/v/29459359 ]

 

1. 들어가며

  은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행8:20). 은사는 선물이기에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거져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이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있다면 그것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그것을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자신에게 은사가 없다면 어떻게 할 때 이러한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그 은사를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은사란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은사에는 믿는 자 혹은 믿지 않는 자에게 다 주시는 은사가 있고, 믿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은사가 있다. 앞의 은사를 보통 '일반은사'라고 부르며, 뒤의 은사를 '특별은사'라고 부른다. 

  고로 '일반은사'란 한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인다거나 인격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게금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가리킨다. 이러한 일반은사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지도력), 긍휼'의 은사가 바로 그것이다(롬12:6~8). 그러나 이러한 일반은사에는 그런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은사에는 '재물'의 은사도 있고, '예체능'의 은사로서 노래를 잘하거나 체육활동을 잘 하며, 공교로운 기술을 잘 사용하는 은사도 있다. 그리고 성품적으로는 '사랑의 은사, 인내의 은사, 화평의 은사, 온유의 은사, 절제의 은사, 충성의 은사' 등 아주 다양한 은사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은사'가 있는데 이러한 은사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가리킨다. 이것은 보통 초자연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믿는 자에게 이러한 은사가 주어지면 하나님을 더욱 더 가까이 하게 되고, 사탄과 잘 싸울 수 있으며,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가 있다. 이러한 특별은사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9가지를 언급하였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치유의)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기적,축사), 예언의 은사, 영들분별(귀신,천사)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자연적인 특별은사는 꼭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귀신을 보는 은사, 천사를 보는 은사, 귀신을 밟는 은사, 세력을 느끼는 은사, 영적인 것을 듣는 은사, 환상을 보는 은사 등 더욱 더 다양한 은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3. 은사는 어떻게 받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은사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은사에는 사실 이미 '주어진 은사'가 있고 '구하여 받는 은사'도 있다. 대부분 은사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말이다. 그러나 100% 정해진 것은 아니다. 구하여 얻을 수 있는 은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전12:31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계속해서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따라서 너희에게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대부분의 은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채 있지만 어떤 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더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은사가 아무 사람에게나 막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주시는 특별은사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난후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구할 때 대부분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어진 은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조상들이 수고하여 심어놓은 것 때문에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주어지는 은사들이다. 이러한 은사에는 '재물'의 은사, '사업'의 은사, '예체능'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등이 있다. 그러므로 좋은 부모나 좋은 조상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신의 조상들이 예수님을 믿어 3대 이상 예수님을 믿고 있고 조상들이 영적인 일에 종사하거나 기도를 많이 한 성도라면 그의 후손에는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많이 주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 주어진 은사에는 태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 사람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주신 은사도 있다. 다시 말해 하늘에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은사를 딸려보낸 은사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은사에는 '영안 열림의 은사', '환상의 은사', '예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두번째로 '구하여 받는 은사'도 있다. 이러한 은사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은사를 사모하여 간구함으로 얻는 은사이다. 이렇게 해서 받을 수 있는 은사에는 일반은사도 있으며, 특별은사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일 경우 초자연적인 은사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것이지 아무나 그냥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4. 은사는 보통 사람의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가?

  그렇다면 은사가 주어지거나 또는 자신이 받게 되었을 때에 은사는 어디에 주로 붙어있는가? 그것은 사람의 몸 어딘가에 붙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라도 그것이 어디에 붙어있느냐에 따라 은사의 종류가 달라지며,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때 은사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손과 발 등에 달라붙는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가 어디에 붙어있느냐에 따라 은사의 종류가 달라지고 특성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은사 중에는 사람의 '머리'에 붙어있는 은사가 있다. 이러한 은사가 주어지면,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린다. 그리고 입술에 권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뇌에 지혜와 명철함이 임한다. 그런데 머리에 붙어있는 은사 중에, 영안이 열리면 귀신과 천사를 볼 수 있으며, 영의 귀가 열려지면 천사와 귀신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입술에 은사가 붙으면 말의 권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은 말을 조리있게 잘 할 수 있으며 남을 잘 설득하고 가르칠 수가 있다. 그리고 뇌에 은사가 달라붙으면 지혜가 임하고 명철함이 임하며 그에게도 지도력이 한층 강화된다.

  그리고 '가슴'에도 은사가 달라붙는다. 만약 가슴에 은사가 붙어있으면 대부분 '환상'을 본다. 환상은 그 사람의 과거를 보거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영화나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한 장면이 보이기도 하고 쭉 펼쳐지는 영상으로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가슴의 영역에 있는 은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고통을 같이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은사는 머리에 붙어있는 은사와 더불어 지혜를 더욱 더 소유하게 되고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은사 중에는 '손과 팔'에 붙어있는 은사도 있다. 이러한 은사들이 손과 팔에 붙어있으면, 그 사람은 재물의 복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손은 열심히 일하여 끌어모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손과 팔에 은사가 달라붙으면 이 사람은 재정의 축복을 받으며, 열매를 많이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팔로 귀신이나 뱀들을 잡아 뽑아버리기도 하고 칼처럼 그것들을 베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손에서 불이 나가서 악한 영들을 태워버릴 수도 있고, 손에서 강력한 에너지(힘)이 나가서 사람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의 손과 팔에 은사가 달라붙으면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고, 많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그것을 잘 건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과 다리'에 붙어있는 은사도 있다. 어떤 사람의 발과 다리에 은사가 달라붙으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잘 개척하는 은사가 주어진다. 그리고 두 발로 딱 버티어 서므로 쓰러지지 않으며 끈기있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항상 당당하게 살아간다. 또한 사람의 발에 초자연적인 은사가 붙으면, 그는 세력(귀신이나 뱀들)을 밟을 수도 있으며, 그것들이 자신의 발을 감고 있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5.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끌어올리거나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 이상의 은사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은사들이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은사들이 몸에 붙어 있는데, 그 위에 또 악한 영들이 달라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이들 중에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새로운 은사들을 받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더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받은 채 있는 은사인데도 일평생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가진 은사이지만 그것이 사라지게 되어 그 은사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해 내고 그것을 잘 활성화시키고 활용하는 것이 요청된다. 

  그렇다면 첫째,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내 몸에서 발현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의 시작은 기도에서 출발한다. 기도할 때에 은사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이방인 고넬료가 사도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천사를 보고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은 그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기도를 하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초자연적인 은사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은사를 정말 잘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주여, 내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 알려주시고, 그것이 내게서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은사가 없다면, "주여, 저에게도 은사를 주시옵소서. 은사를 제게 주신다면 그것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나이다. 제게도 영적인 은사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라. 

  둘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2가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은사가 더 활성화되기를 사모하고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에 우리의 몸에 바깥에 붙어있는 악한 영들이 우리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몸에 붙어있는 은사들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것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어찌하든지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어서 우리가 가진 은사를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눈에 악한 영들이 많이 붙어 있으면 영안이 열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을 볼 수도 없고, 천사도 볼 수 없으며, 자기 곁에 다가오시는 예수님도 볼 수 없다. 

  셋째, 이미 가진 은사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은사가 있어도 은사가 더욱 더 커지게 하려면 그때에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한다. 은사를 자신이 직접적으로 사용할 때에 은사를 더 개발되고 활성화되고 발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신을 쫓는 은사가 있다고 치자. 그런 자는 자꾸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할수록 귀신을 쫓는 권세가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귀신쫓는 사역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많고 더 높은 계급의 천사를 붙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가 더 강화되게 하려면 반드시 그 은사를 활용하여 사용하기를 바란다. 

 

6.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 혹은 자신이 기도로 받은 은사를 잘못된 용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마7:22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사용하였고, 귀신쫓는 은사도 사용하였으며, 많은 능력들을 행하며 살아왔지만, 그만 주님으로부터 쫓겨나 바깥 어두운데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사람의 경우는 자신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잘못 사용한 경우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은사가 있다고 무작정 자랑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은사를 잘 사용하는 법도 같이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은사받은 자를 책망하시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경우다. 첫째는 은사를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다. 자신이 이런 은사를 가졌다고 늘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교만죄에 걸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지체를 돕기 위하여 은사를 주신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라.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그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둘째는 은사를 물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즉 은사를 사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예언의 은사나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은 자는 상대방의 현재의 모습이나 과거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해 줄 수가 있다. 그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예언이나 방언통역이야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나 뱀을 집어올리는 일은 사실 한 두 번으로 그 사역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간 사람은 그만한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돈을 가져와야 귀신을 쫓아줄 수 있다면서 돈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특히 사람의 생사문제나 주식투자, 증권, 부동산매매, 기관장 출마나 승진 등을 물어보는 자에게 복채를 요구하는 경우 하나님은 그 은사자를 매우 싫어하신다. 은사는 사람의 영혼의 성장과 천국가는 준비를 하는데 사용해야지, 돈을 버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것을 물어온다고 할지라도 그 물음에 응해서도 아니 된다. 

 

7. 나오며

  은사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은사는 그것이 일반은사가 되었든지 특별은사가 되었든지,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좋고 유익한 것들이다. 특히 믿는 이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은사를 구할 때에는 주님께서도 그것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은사를 더 더하여 주시며, 있는 은사도 더 활성화시켜 주신다.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천국가게 도울 수 있기 때문이요,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님 일에 더 충성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사를 잘못 사용하여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심을 채우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슬퍼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는 계속 두고 보시지도 않으신다. 그에게서 그 은사를 소멸시켜버리거나 혹은 그의 생명을 취하여 가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겸손히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소중히 간직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과 가족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게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 번 받은 은사를 죽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이미 은사가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사가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몰라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들은 빨리 기도를 시작하라. 그리고 특별히 회개기도를 많이 하라. 특히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많이 회개해야 한다('회개기도문' 책에 나와 있음). 그래서 자신의 몸이나 몸 근처에 악한 영이 머물러 있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많으면 은사가 있어도 은사가 나타나지도 않으며 은사를 잘 활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든지 아니면 우리가 믿은 후에 구하여 얻은 은사가 있든지 이러한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은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자기와 성도들에게는 영적으로 많은 유익을 끼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에게 참으로 좋은 일인 것이다. 

 

 

2022년 09월 23일(금)

정병진목사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께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은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교회에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참고로 그것은 2가지 은사다. 그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음부가 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직분자로 세우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였으며 어떤 직무를 수행한 것인가? 특히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2021-08-04(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8)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3)(고전12:8~3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g9nC3t86zM [혹은 https://tv.naver.com/v/21702178 ]

 

1. 들어가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을 제시하였다. 그중에서 고린도전서 12~14장은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을 답변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시간에는 왜 성령의 은사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가운데, 처음 7가지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나머지 2가지 곧 방언과 방언통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것이고 아울러 한 몸에 붙어 있는 다양한 지체들간의 유기적인 연합과 통일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성령의 은사 중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 개론적인 설명과 아울러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의 은사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은사인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먼저,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으니,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 그리고 '직분의 은사'가 있다. '일반 은사'에는 믿지 않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은사로서 거기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 은사는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보다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 은사에는 일반적인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 구제, 다스리는 일, 긍휼 등의 은사가 있다(롬12:6~8). 그리고 '특별 은사'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만 선물로 주시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 은사를 총 9가지로 소개하였다. 물론 성령의 특별 은사에는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직분의 은사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그러한 은사에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를 비롯하여 추가로 2가지 은사가 있기에, 직분의 은사에는 총 5가지가 있는 것이다(고전12:28). 

 

3.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는 각각 삼위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로서, 은사의 분배는 같은(동일한) 성령께서 하시고, 직분의 수여는 같은 예수님께서 하시고,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6). 참고로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은 이렇다. 직분은 주 예수께서 주시는 은사인데, 직분의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은사는 전시간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으로서 그 은사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전시간을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성령의 특별 은사에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직분의 은사에는 "선지자(예언자)"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둘의 은사는 다르다.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은 성도가 선물로서 받은 것으로서 사용할 시간이 따로 있겠지만, "직분"은 전시간 동안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신도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역'은 직분은 맡지 않았어도 어떤 일을 도맡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청소를 담당한다든지, 안내를 담당한다든지, 예배위원을 담당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역을 맡은 것에 해당한다. 

 

4.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령의 특별 은사 중에서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앎'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의 은사이다. 그리고 '행함'에 관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다. 그리고 '말'에 관한 은사가 있아면 그것에는 '예언, 방언, 방언통역'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될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는 일종의 '말'의 은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란 대체 어떤 것인가? 방언이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이 말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주님께 말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가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영의 언어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방언은 '헛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그것을 알아들으신다.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의 언어를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주는 은사가 있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를 알아 듣게 하는 것이 바로 '방언통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방언통역의 은사와 쌍을 이룬다. 

  그렇다면, 방언 통역의 은사는 무엇이며, 방언을 통역해보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 것일까? 방언통역의 은사는 남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를 자신이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키는데, 그때 들려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나라의 말로 들려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방언을 들을 때 그 방언의 전체적인 내용이 그냥 깨달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방언통역"의 은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했을 때에는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다. 하나는 영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담겨 있으며, 또 하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는 때로는 책망이나 꾸지람의 말이 들어있기도 하고, 위로와 권면의 말씀도 들어있으며, 때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쓰시겠다고 하는 미래의 비전에 관한 말씀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하면 일종의 예언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방언과 방언 통역에 관하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 따로 다루고 있으니 그때 가서 보다 더 자세히 다를 것이이다. 

  오늘은 다만 왜 거듭난 사람이 되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은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특별 은사들 가운데, 방언과 방언 통역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은사는 구약시대에도 있기는 있었다. 다만 그 강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살던 성도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약시대에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덧붙혀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약시대에 성도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백성 혹은 하나님의 종에 불과했다. 한 사람도 거듭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사람이 거듭날 때에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성령이 들어오신다고 예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가신 후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요 죽지 아니하는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거듭나게 된다(요3:5). 그때 기존에 사람이 갖고 있는 생명에다가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잡히는데, 그것의 하나가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즉 방언이란 죽은 상태에 있었던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그 충격파가 생겨 영이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거듭난 이는 자기 영 속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태어난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지는 않는다(고전12:30).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의적으로 거절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할 수 있으며, 영적인 세계를 터부시할 때에도 방언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과 동시에 영의 터치가 일어나는데, 그때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다(행2:4).

  그러므로 방언은 자신의 영이 거듭났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은 자는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아무래도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방언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 몸이라고 하는가?

  교회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체들 중에는 더 연약한 지체들도 있고, 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도 있을 수 있다(고전12:23~24).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모여있는 연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지체들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다고 했다(고전12:12, 20, 27).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없으며,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 없이 다 하나의 지체인 것이다(고전12:13). 그러므로 한 지체가 다른 지체더러 필요 없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지체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여름에 덥고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 한 잔을 꺼내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눈만 있어서는 그 우유를 먹을 수가 없다. 발이 냉장고 앞으로 가야 하고, 손이 냉장고의 문을 열고 그것을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이 벌려서 그 우유를 마시게 될 때 비로소 몸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눈이 가장 소중하게 보이고, 냄새 나는 발은 덜 귀히 보이겠지만, 내 몸이 우유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몸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존귀함을 더하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고 오히려 서로 지체가 서로를 돌보게 한다고 하셨다(고전12:24~25). 우리 몸에 있는 각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한 가지의 지체만으로는 자신의 온 몸을 건강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받거나 반대로 우리 몸의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 몸이 함께 고통을 받게 되고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함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이다(고전12:26~27). 

 

6. 직분의 은사는 과연 누가 주는 것이며, 그러한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에 관하여 언급하였다(고전12:28).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크게 8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셋과 다섯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앞의 셋은 "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뒤의 다섯은 "능력들, 병고침의 은사들, 도움들, 다스림들, 방언들의 종류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의 다섯 가지 것들은 사실 직분의 은사라기보다는 특별 은사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실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고유한 직분의 은사에는 앞의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편지보다 조금 뒤에 썼던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 직분의 은사를 더 언급한다. 2가지를 더 추가한 것이다. 이제 그 다섯 가지 직분의 은사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 교사들"이 그것이다(엡4:11). 그러니까 A.D.55년경에 기록했던 고린도 교회 안에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만 있었다면, A.D.61~63년에 기록했던 에베소 교회에는 앞의 세 가지의 직분에다가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목자)"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누가 교회 안에 이러한 직분자를 세우시는 것인가가?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그분은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셨으나 오히려 하늘로 올라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4:8~10). 이것은 고린도전서 12:5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회에게 어떤 직분을 주시는 이는 "주님"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왜 직분을 주시는가? 그것은 3가지로 그 목적이 나와 있다. 그것은 첫째,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며,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엡4:11).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교회 안에는 어떤 직분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섯 가지 직분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직분은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켜 직분자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가지 직분은 교회 안에 있는 전시간 봉사자들로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일종의 직업과도 같은 것이다. 

 

7. '사도'의 직분과 '복음전하는 자'의 직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울은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주셨는데, 그중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직책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직책이라고 하였다(엡2:20). 이 땅에 있는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정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혀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직분자로서 "복음전하는 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복음전도자"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먼저, "사도"가 어떤 사람들인지부터 살펴보자. '사도'란 헬라어로 "보내심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보내심을 받았어도 보냄을 받은 자들 모두를 '사도'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때 사도들을 보낸 분은 반드시 "주 예수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들을 보내는 목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기 위함"이어야 한다(행1:21~22). 그리고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는 사도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참 많이 나온다. 세어보면 총 23명이나 나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만을 사도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가 선택받았다면 그는 '사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가리켜, 그를 사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울에 대해서 논쟁이 많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바울은 '사도'라고 부른다. 아예 이름을 부를 때에도 이름 앞에 직책을 넣어서 "사도 바울"이라고 쓰거나 또한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바울이 살아있을 당시만 해도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아예 성경 한 권을 저술하였으니, 그 책이 바로 '고린도후서'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그가 사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려면 '고린도후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동일한 예수님에게서 파송을 받은 자다. 다만 그는 육신을 입으신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차이가 있다. 그러한 장면은 사도행전 9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도 '사도'라고 칭한다. 이러한 사도에 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둘째, '복음전하는 자'는 사도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둘이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둘이 다 직분의 은사로서, 전시간 봉사자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도란 사도적인 직무에 전무하는 자요,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도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아서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를 가리키고, 복음전하는 자는 주 예수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시간 봉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도에는 어린양의 12사도인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파송받은 '바울'이 있다.

  한편 대표적인 '복음전하는 자'로서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빌립'이 있다. 그를 가리켜 사도행전의 저자는 '복음전하는 자(유앙겔리테스)'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행21:8). 그럼, '빌립'은 어떻게 되어서 집사에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핍박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12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일곱 집사도 흩어지는 가운데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행8:4~5). 그러자 그 동네에서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된 자들이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빌립은 어떻게 전도자가 되어 사마리아성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는가?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치유와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었다. 그래서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고, 귀신을 내어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고, 그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8.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없애고 은사들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의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는 어떤 직분이 필요하며 또한 교회에게 왜 직분자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교회가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은사로서는 부족하고 직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12사도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가 어떻게 기틀을 잡고 또한 세워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직분자로서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가 누군지에 대해 조금 살펴 보았다. 다음 주에는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의 자격과 역할 및 그 기능과 목적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리에게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하시고 기도케 하시며 사모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2021년 08월 0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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