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어떤 개인은 멸망시키리고 예정하셨다는 뜻인가? 대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 대해 어떤 구원경륜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예정론의 입장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성경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구원상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2020-10-28(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02) 성경적인 참된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02)(엡1:3~14)
https://youtu.be/sT56GJMRv68 [혹은 https://tv.naver.com/v/16444867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에베소교회를 포함한 다른 교회들까지 함께 읽혀지도록 쓰여진 회람서신이다. 이는 바울이 보낸 편지에는 각기 이 편지를 받는 교회 내지 목회자에게 대한 상황와 문제가 나오지만, 에베소서는 그러한 것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편지를 바울의 다른 서신과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모든 교회를 위한 노사도 바울의 간절한 염원과 소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지는 빌립보서와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와 더불어 옥중서신으로서, 바울의 말년에 쓰여진 깊이가 있는 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에베소서 강해 두번째 시간으로서 에베소서 1: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다룸에 있어서, 예정론과 견주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데, 그중에서 성부 하나님의 예정이 가장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에베소서는 어떤 책이며 그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에베소서는 어떤 책인가?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하여 성취되고 완성되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유를 통일하는 것이다(엡1:10). 이 일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 책을 "교회론" 책이라고도 한다. 교회는 단순한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의 유기체여서 계속해서 성장하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유기체로서, 만유를 그리스도로 통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 대하여 일곱 방면을 소개한다. 교회는 이런 것이라고 말이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1:23). 둘째, 교회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탄생한 새 사람이다(엡2:15).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들이다(엡2:19). 넷째,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나님의 가족이다(엡2:19). 다섯째,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다(엡2:21~22). 여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그리스도의 아내다(엡5:22~33). 여섯째, 교회는 단체적으로 영적 전쟁을 치룰 전사 곧 투사다(엡6:10~20). 누가 이처럼 풍성하게 교회를 정의할 수 있을까? 바울을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3. 예정론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어떤 것인가?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인삿말 직후부터 곧바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예정론의 관점에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가지셨던 위대한 경륜을 바울은 교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한 구원계획을 세우되 혼자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유효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엡1: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예정론의 골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럼 엡1:3~14의 말씀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의 찬송을 위하여"라는 구분이 3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3~6절까지는 성부의 구원경륜이 나오고, 7~12절까지는 성자의 구원경륜이 나오며, 13~14절에는 성령의 구원경륜이 나온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시작되고 진행되고 또한 완성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 맨 앞부분인 엡1:3~6의 말씀은 성부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언제 어떻게 구원계획을 세우셨는지를 언급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구원 계획을 당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세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설 전에 계획적으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없는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해주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홀로 계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려고 했을까?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했을 때에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왜 그들을 위해 친히 피조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신 것일까?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고 말한다(엡1:5). 하나님께서 자식을 보시고 그 자식들을 천국에 데려와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하시려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어떤 마음을 지니고 계셨는지는 사실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지으실 때 간접적으로 나타내셨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표현하셨기 때문이다(창2:18).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신 것이 바로 "하와"이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라고,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언급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없으시면 외로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데려가시려기쁘신 뜻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땅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그분이 주시는 기업을 받아 누려야 한다. 

 

4.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어떤 것인가?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세운 계획이 인간에게는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2가지로서 말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하늘들에 속한 복을 주시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영적인 복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말이다(엡1:3).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하늘들에 속한 복과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복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즉 사람이 받아야할 복에는 육체가 받아야 할 복과 영혼(정확히는 영)이 받아야 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복을 다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창세기에 나온다. 그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함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받을 축복과 하늘에서 받을 축복 2가지를 공히 누린 당사자가 되었다. 그럼, 아브라함이 누린 축복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먼저 "육체의 복"이요 "땅의 복"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손이 번성해 가고 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하나 더 복을 추가한다면, 그것은 육체가 건강하게 사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받아야 할 육체의 복이란 자손번성과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브라함은 "영적인 복"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땅에 속하지 않는 놀라운 복을 받았으니, 그것은 자신이 씨로 말미암아 원수들의 문들을 차지하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창22:17). 여기서 말하는 "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출생하게 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므로(갈3:16), 그분은 창3:15에 이미 약속된 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분을 가리킨다.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하여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사탄마귀는 불법를 저지른 죄로 인하여 그의 머리가 박살나게 되니, 자신이 가진 사망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늘들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기를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사람들이 받기를 원했던 하늘들에 속한 3가지의 영적인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이 3가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3가지 복인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총 3가지 종류의 하늘이 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이 있고,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이 있는 "둘째 하늘"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셋째 하늘"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받아야 할 복은 구약시대의 여러 인물들처럼 자손번성과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뿐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째 하늘에 속한 복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 하늘에도 영적인 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지만, 이 땅에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복이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고 그것을 통해 누리는 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귀신과 천사들의 정체와 속성을 제대로 알아, 죄를 회개함으로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계속해서 천사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하늘은 비록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차지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그들의 권세가 박살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복으로서, 그곳에 들어가 기업으로 땅을 상속받는 것이다. 그런데 셋째 하늘에서 받을 복은육신을 갖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에서 받게 될 영적인 축복들을 다 받아야 한다. 이것을 사도바울도 원했던 것이다. 

 

5. 예정론의 무조건적인 선택교리와 성경적인 예정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구원이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세전에 인류를 구원하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기뻐하셨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자녀가 탄생할 장소를 마련하셨으니 그 장소가 바로 "지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구 중에서도 아담과 하와 살 공간을 만들어주셨으니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다. 하지만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거짓의 아버지인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는 따먹지 말라 했던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의 구원계획에 따라 먼저 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신다. 그리고는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는 아버지의 생명을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 속에 넣어주심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당신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삼으시려 했는지를 살펴보자.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로서 당신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사람(인간)을 선택하신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천사나, 여러 동물들 중에서 그리고 식물들 중에서이나 상속자를 선택하지 아니하셨는가? 그것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셨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할 것만 가질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무조적인 선택"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타락이나 불순종에 상관없이 만세전에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낳으실 것과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순종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당신의 상속자로 선택하셨다고 할 수 있다. 고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이란 온 우주만믈을 창조하신 이의 주권에 따라 우리 인간이 하늘의 상속자로 선택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무조건적이 선택"교리는 성경말씀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교리가 많은 피조물들 가운데 인류가 선택되어졌다는 선택교리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 개개인을 선택하셨다는 교리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생명으로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사망으로 예정하셨다고 교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정론을 해석해도 한참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무조건적인 선택교리는 인류 개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예정으로 고착화되어버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형적인 폭군이자, 편애하시는 분이요 또한 불공평한 분으로 낙인찍혀가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교리를, 어떤 개인이 이 땅에서 생겨나기도 전에 그의 운명을 하나님이 미리 결정하신 것이라고 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 가운데 인간을 당신의 상속자로 선택하셨음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 개개인 중에서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낼 것은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예정교리는 하나님을 절대 폭군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선택에 관해 왈가불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단 한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으로 선택하시고 누구는 멸망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혹 인간에 관한 어떤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다 개인 사역에 관한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없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에베소서 1:3~14의 말씀을 통하여 만세전부터 세워놓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구원계획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지금도 구원하고 계신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보증해주시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치시고 있으시다. 인류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성령께서도 함께 일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도 황송한 은혜란 말인가? 벌레만도 못한 몹쓸 우리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행하셨다. 그만큼 우리는 사랑하신 것이다. 그만큼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큰 사랑을 베푸시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계속 거절하고 손절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대문에 결국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한 구원경륜과 예정섭리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내미시는 사랑의 손길을 꼭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을 위해 희생하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하고 선포하고 또한 널리 알려야 알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구원을 위해 직접 희생을 치르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하는 가장 중요한 반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28일(수)

정병진목사

 

누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하려고 예정해놓은 바로 그 사람들인가? 아니면 들어갈 사람들은 분명히 예정되어 있지만 그가 누군지는 아직 개인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는가? 성경에는 개인구원예정론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사역예정인 것이지 개인구원예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은 또 어떠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이 무엇인지 로마서 9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자.

2019-09-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개인구원예정론과 불특정다수구원예정론,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롬9:14~29)
https://youtu.be/ODRhV5f2xuQ



1. 들어가며 

  성경에는 과연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계획하셨다는 말씀이 존재하는가? 그러한 사례가 한 번이라고 나오는가? 어떤 분들은 그러한 사례가 성경에 나온다고 말한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서와 야곱"의 경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있으니 한 개인을 구원하시는 것도 그렇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진정 옳은 것인가? 성경은 정말로 개인구원예정론을 말씀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특정다수예정론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래서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로마서 9장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사례와 그리고 애굽왕 바로의 경우를 들어서, 과연 개인구원예정 사례가 존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예정론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성경에서는 예정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엡1장과  롬8장에서 예정론을 말씀하고 있다. 그중에서 엡1장과 3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로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엡1:3~6,3:6). 그리고 롬8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예정하신)자를 역시 부르셨고, 그리고 그분은 부르셨던 자들을 역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셨던 자들을 그분은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롬8:30)(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의 서정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롬8장에도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말씀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롬8:29,30). 그렇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는가? 그것은 최소한 천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으실 것을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정을 "인간구원예정"이라고 말한다.


3. 성경에는 과연 개인에 관한 구원예정론이 나오는가 아니면 불특정다수에 관한 구원예정론이 나오는가?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과연 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누군가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실 때에, 그 대상이 아직 창조되기도 전에 아무아무개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또한 그를 출생하게 하시며, 구원하시는 것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개인구원예정"을 계획하신 것인가? 지금까지 많은 분들은 그러한 예정이 존재했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성경에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떤 개인을 그가 아직 존재하기도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지 않으셨다. 만약 개인에 관한 어떤 예정이 있다고 한다면,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어떤 개인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에 관한 사역으로의 예정은 존재한다. 또한 그 시기도 어떤 개인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점에서 하나님은 예정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대표적인 경우를 살펴보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거룩히 구별하여 선지자로 쓰시겠다고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렘1:5).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사도바울을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그를 선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쓰실 것을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갈1:15~16).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렇다면 성경에는 개인구원예정에 관한 말씀 말고 또다른 어떤 예정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불특정다수구원"에 관한 예정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은 사실이나, 그 대상을 어떤 특정인을 지정한 채 예정하신 것이 아니며, 불특정다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가 누가 될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되 끝까지 믿음을 지켜낼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어떤 사람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었어도 그가 끝까지 믿음을 붙들지 않고 믿음을 버린다거나 핍박 때문에 믿음을 포기한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구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구원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고 회개하며 인내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대상이 누가 될른지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 안으로 초청을 받았다면 그 초청에 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 사람의 구원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믿음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간다면 그가 처음 믿었을 때에 그 믿음으로 그는 결국 구원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그 믿음을 포기한다거나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한다면 그 믿음은 좌초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예정은 불특정다수구원예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될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해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그 숫자를 아신다. 그 숫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들어올 때까지다(롬11:25).

롬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4. 롬9장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렇다면, 에서의 야곱의 경우는 개인구원예정 사례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개인구원예정 사례가 아니라, 개인사역예정에 관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서 9장에 나온다. 롬9장에는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를 어떻게 쓰시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직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아니하고, 그들이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였지만, 그들이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지를 예지하셨다. 그래서 그것을 그의 모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롬9:12[직역] [그것이] 리브가에게 말해졌다. 큰 자가 어린 자에게 종이 된다고.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쌍둥이였던 에서와 야곱 중에 "큰 자인 에서가 어린 자인 동생 야곱에게 종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 예언이 있고 난 후에 수백년이 흐른 뒤에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두 민족의 쓰임에 관한 예정이었던 것이지 이것이 곧 에서와 야곱의 개인구원예정에 관한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25장에 보면, 에서와 야곱은 사실 두 민족 곧 에서(에돔)족속과 야곱(이스라엘)족속에 대한 사역예정이었던 것이니, 에서와 야곱의 개인구원예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형으로서 동생을 섬기는 자가 되었더라도 에서가 하나님을 잘 믿고 그분을 섬기며 지은 죄를 회개하였더라면 그도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쓰임 때문이 자신의 운명이 구원과 멸망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구약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왕도 비록 자신이 범죄했을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그도 다윗처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다.


5. 애굽왕 바로의 경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렇다면, 애굽왕 바로의 경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예정한 사람은 반드시 멸망당하고 만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롬9장에 나오는 말씀은 그러한 내용의 말씀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흙 한 덩이로 당신이 사용할 그릇을 빚을 권한이 있으신 분이시다(롬9:21). 인간은 하나님에 의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그러한 권한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어떤 개인을 당신 마음대로 강제로 개종하여 구원받게 하거나 멸망시켜 지옥으로 보낼 권한을 갖고 계시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그 자신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칠 수가 있고, 기회를 주실 수가 있으신 분이시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코를 꿰어다가 강제로 구원시키는 분은 결코 아니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존중하여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줌으로 우리를 구원 안으로 초청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의 초청의 손길을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도록 놔 두셨다. 만약 이것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어떤 이는 구원받을 자로 만세전에 예정해 놓으셨고, 어떤 이는 멸망할 자도 예정해 놓으셨다면, 아마도 심판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세전에 멸망으로 예정되었던 자가 그날에 "왜 당신은 나를 아무런 이유없이 지옥에 멸하기로 예정하셨습니까?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라도 아무 대답을 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악한 자 마귀를 심판하실 것인가?

  그러므로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바로를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사람으로서 안배하신 것은 맞지만 그가 결국에 멸망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은 그가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다는 이유 때문에 멸망당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악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바로왕의 강퍅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게금 허락하신 것이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의 자유의지가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 싶었고, 당신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는 도구로 사용하시려 하셨기 때문이다(롬9:17). 다시 말해 그를 진노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려 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강제가 아니었고 그의 마음의 선택의 결과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신 것이다. 고로 그가 멸망받게 된 것은 그가 재앙 중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왜 구약의 사울왕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신약의 가룟유다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그것도 그들의 선택이었던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사울이 그날에 다윗처럼 회개를 하였고, 가룟유다도 베드로처럼 회개했다고 한다면, 그들의 운명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오래 참음으로 각기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신다(벧후3:9).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시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렇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돌이켜 다시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고 계신다(겔18:26~27).

겔18:26-27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6.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분은 롬8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있는 한, 한 번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번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한 면은 맞는 주장이지만 다른 한 면으로 보면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사랑은 정말 크고도 넓다는 것은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피조물이 되시어 사람으로 나타나셨을까?(딤전3:16)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있는 것을 놓지 아니하고 어떠한 핍박에도 주님을 부인하지만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는 그날까지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을 믿지 않거나 핍박 가운데 주님을 부인해 버린다고 하면, 우리 스스로가 주님을 놔버린 격이 되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우리를 강제로 구원하실 수는 없으시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우리가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우리의 구원도 보장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 밖에 있는 어떤 외부적인 요소들(환난이나 곤고, 박해나 기근, 적신이나 위험, 칼 등)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롬8:35). 특히 핍박의 상황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놓아버리거나 우리가 주님을 부인해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사랑도 우리에게서 그만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마22장과 눅14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엿볼 수 있다. 거기에는 먼저 초청함을 받은 유대인들이 있었다(마22:3~6). 하지만 그들은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날에 있었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잔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주인은 이미 잔치에 올 사람들의 숫자를 예상해 놓고 있었고 그 계획에 따라 음식을 준비했고 자리도 준비해 놓았다. 빈 자리가 많자, 주인은 자신의 종들을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보내어, 선한 자나 악한 자난 만나는대로 초청하고 데려오라 했다. 그래서 들어와 잔치에 참여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들"로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었다(눅14:21). 그래도 빈 자리가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하신다. 그러자 그렇게 해서 들어온 자들은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눅14:23). 그러자 잔치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결국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그 잔치에 가득차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날 잔치자리에 온 자들 모두는 다 그날 주인이 마련해준 "예복(겉옷)"을 입고 그 잔치에 들어갔다(마22:11~12). 그러므로 그들의 신분은 다 가려졌다. 그냥 아들의 혼인잔치의 손님들이라는 신분 하나로 통일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거져주어지는 "의의 예복"이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의의 옷을 입어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이 비유의 주제를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왜냐하면 초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그런데 선택함을 받은 자는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가 과연 천국잔치에 참여하는가? 미리 초청함을 받았던 유대인들이 들어가는가? 아니다. 이미 초청하기로 예정된 채 있던 자라 할지라도 막상 그날 잔치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천국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미리 예정된 어떤 개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잔치로 초대를 받은 자들 중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 잔치에 결국에 참여하는 자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으로 초청함을 받은 자는 많겠지만 결국 선택함을 입은 자는 매우 적을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무쪼록 구원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서, 꼭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9년 9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은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천국갈 자와 지옥갈 자로 미리 정해 놓으셨는가?(마22:1~14)

https://youtu.be/oP1DUxSKXx0

 

1.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을 거짓선지자라고 말씀하셨을까요?(마7:15~23)

 

2. 예수님께서는 주님더러 "주여 주여"라고 부르기만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가 곧 거짓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1). 그러나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마7:21). 또한 심판날이 되었을 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여 주여"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동안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다고 말하지만, 결국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낙인찍혀 주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7:22~23). 결국 심판날에 불신자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 중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받은 구원에 합당하지 않게 생활하는 자는 결국 심판날에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았던 성령께서는 사실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떠나가지 아니합니다(요14:16). 하지만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지 살지 못했을 경우(결국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못했을 경우) 그날 성령께서 떠나가시며,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도 지워지며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확실한 것이지만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세전 개인구원 예정론자들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미리 천국갈 자와 지옥갈 자를 정해 놓으셨으니. 선택받은 자는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을 받아 믿어서 성화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자는 유효한 부르심을 받지도 못한 채 죄를 짓다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은 그가 거듭난 성도가 아니었고 가짜 성도였기 때문이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7장에서 심판날에 주님으로부터 내쫒김을 당할 자를 불신자 내지는 가짜 신자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신자 중에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정은 어떤 것입니까?(엡1:3~5)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정과 만세전 개인구원 예정론자들(칼빈의 개인구원 이중예정을 따르는 자들)의 예정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을 구원하거나 멸하기로 하나님께서 언제 예정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엡1:3~5). 첫째, 누가 예정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둘째, 어떻게 예정하셨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셋째, 언제 예정하셨습니까? 창세 전에(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입니다. 넷째, 어떤 결과를 예정하셨습니까? 우리 인간(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세전 개인 구원예정은 무엇이 성경과 다른 것입니까? 그것은 개인 구원의 예정의 시기입니다. 만세전 개인구원 예정론자들은 만세전에, 아직 어떤 개인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멸망으로 갈 자를 예정해놓으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단 한 건도 그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민족적인 쓰심에 관한 사역예정일 뿐, 개인구원예정의 사례가 아닙니다). 또한 만약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개인구원이나 개인멸망을 예정해놓으셨다면 하나님은 더이상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미리 정해놓고 창조하신 뒤 죄짓게 하시고 지옥에 보내시면서, 어찌 사람더러 "나는 네가 행한대로 심판한다"라고 그에게 심판의 잣대를 대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훗날 악한 자인 마귀를 어떻게 심판하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당신이 다 알아서 미리정해놓고는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그대로 따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입니까? 또한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시려면 인간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놓으신 것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래서 만세전 개인구원예정론은 가설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거나 멸하기로 예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구원을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까?

 

4.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아무런 이유없이 어떤 개인을 구원하거나 멸하기로 예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복음의 소식을 듣게하여 구원으로 초청하시고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초청을 거부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선택을 받지 못하며,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자는 선택을 받도록 예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신 것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듣고 믿어 받아들이며, 자신이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정해 놓은 숫자는 분명하지만 그가 누가 될른지는 그 사람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하느냐 혹은 지은 죄를 책망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할 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선택되어지기도 하고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그리고 누구든지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진짜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행하시어 내게 안겨준 확실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고귀하게 간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고 해도 주님을 믿는 것을 중간에 포기하시면 아니 됩니다.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도 아니되며, 끝까지 오직 예수님만 나 자신의 구원자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셨는데, 죄짓는 데에 자신을 놓아두어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도 죄를 지었다면 즉시 죄를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죽을 때에 버림받지 아니하고 다음 세상까지 이어지는 영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요10:28~29). 그렇다면, 만약 사람이 개인구원예정론을 진짜 성경인 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요?

 

5. 하나님께서 나 자신의 구원을 예정해놓으셨고 그래서 지금 부르셔서 나를 믿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그에게 구원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다는 그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그는 점점 더 나태해집니다. 태만해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 불순종해도 괜찮다고 생각해버립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나를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셨으니 어찌되었든지 나를 구원할 것은 분명하니,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래서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어도 당장 무슨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회개시키겠지 하면서, 구원에 관한 긴장의 끈을 점점 놓아버립니다. 거짓된 안도감에 취합니다. 이제는 죄와 싸우지도 않습니다. 마귀에게 어쩌면 자신의 영혼을 무장해제시킨 채로 놓아두는 격이 됩니다. 나중에는 교회 지도자에 속한 그 누구의 말도 잘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은 죄를 회개치 못하다가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는데도 죽을 때에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마는 것입니다(계3:5).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가 버림당하지 않을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고전9:27). 그래서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일지라도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구원을 이뤄가야 하겠습니다(빌2: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니라(계14:12)"

 

2019년 01월 14일(월)

정병진목사

 


우리가 들어야 할 복음은 과연 무엇인가? 바울의 복음인가? 아니면 이신칭의의 복음인가? 그래도 아니면 성령세례의 복음인가? 진정 예수께서 전해주셨던 복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천국복음이다. 그렇다면 누가 실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믿는 자인가? 아니면 예정된 자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복음이 대체 무엇이며, 누가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알아야 하는가? 먼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의 필수요소요로서 구원의 관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믿음이 필요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믿음은 기본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절대 구원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과연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불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천국에 들어갈 줄로 굳게 믿고 있다. 아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 그분이야말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다. 이것들 중에 빠진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 없이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자신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은 분명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믿음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회개가 빠져있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그렇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다가 회개를 해야 한다. 그렇다.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들을 날마다 회개해야 하고, 자신이야말로 가진 죄된 본성으로 가득찬 존재임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성령을 힘입어 죄된 본성과 매일 싸워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회개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특히 죽기 전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에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수가 있다. 


2. 천국복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둘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국복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성도들이 알고 있는 복음은 과연 천국복음일까 아니면 다른 복음일까? 놀랍게도 천국복음에 대해 잘 모르고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천국복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음이 과연 자신을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이 과연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복음인지 한 번 쯤은 점검해봐야 한다. 천국복음 말고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른 복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바울의 복음이 천국복음인 줄 알고 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천국복음인 줄 알고 있다. 아니다. 아울러 어떤 교단에서는 성령세례의 복음이 천국복음인 줄로 알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이러한 유사복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헌 복음에는 회개의 중요성이 거의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의 개념이 죄사함이나 하나님의 생명을 얻음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핵심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야 하고 우리가 알아야 하고 우리가 믿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어야 한다.


3. 천국복음이 왜 중요한가?

  천국복음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과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파하려고 하신 복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천국복음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천국복음의 전파에 있다고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9:35).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기간동안 온전히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을 계속 수행하셨다(눅4:43). 그리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그때부터 계속해서 회개하고 믿는 자들은 천국 안으로 맞아들이시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언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더 이상 구원하지 않으실 것인가? 그것은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날이다(마24:14). 예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지만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천국복음이 전파되고 있는가? 그리고 과연 천국복음을 온 민족에게 전파하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되는가? 안타깝게도 이신칭의 복음이 전파될 뿐 천국복음이 전파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신칭의의 복음은 좀 더 나은 편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칼빈의 예정론 곧 칼빈복음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지금 두 귀를 기울이고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메시지를 분석해보라. 과연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복음말씀이 선포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얼마나 설교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예수 믿으면 병고침을 받고 부자되고 형통해진다는 복음은 많이 전파되고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형통복음이요 번영복음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외치는 회개와 천국복음은 과연 얼마나 전파되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자 신앙생활의 성공이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4. 누가 실제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과연 누가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이미 누가 먼저 천국에 초대된 자였는지 그리고 실제는 누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비유로 말씀해주셨다. 이러한 비유말씀에 의하면, 원래 초대된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손가락질당하던 사람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할례 혹은 율법과는 전혀 무관한 이방인들이 천국에 먼저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비유가 바로 한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이다(마22:1~10, 눅14:15~24).

  한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에 의하면, 거기에는 딱 3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첫번째 부류는 이미 그 잔치에 참석하기로 초청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당시 사두개인과 대제사장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들은 막상 당일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밭을 샀으니 검사해 보아야 한다고 참석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소를 샀으니 검사해보아야 한다고 가지 않았다. 또한 어떤 이는 장가들었으니 안 된다고 기별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다 핑계거리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이렇다. 그들은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세상이 주는 돈과 쾌락과 명예와 인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하늘에 준비한 천국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설령 이들이 제사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고, 율법사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 된다. 그런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부류로서, 당시 자기 동족에게는 죄인들이라고 낙인찍혀서 절대 그 잔치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 이들이 등장한다이들은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소외시키는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세리와 창녀들이며,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말하면 "죄인들"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두번째 부류인 사람들이 제일 먼저 혼인잔치로 예표하고 있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 놀랍지 아니한가?

  그리고 나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 비유에 나오는데, 이들은 세번째 부류로서 성밖에 지나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혼인잔치하고는 아무러 연관성이 없던 자들로서 이방인들을 지칭한다. 이때 첫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자들이그 잔치에 전혀 참석하지 않게 되자, 임금은 두번째 부류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래서 두번째 부류가 혼인잔치에 어부지리로 참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임금은 자기의 종들을 성밖의 사거리로 보냈다. 그리고 거기에 지나가는 자들을 자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했다. 그래서 마침내 성밖에서 길을 지나가던 이방인들이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5. 당신은 혼인예복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 마22장에 나오는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보면, 이 비유와 이어서 나오는 또 하나의 비유가 있다(마22:11~14). 거기에는 혼인잔치의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친구가 나온다. 그는 그 잔치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혼인예복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던 자였다. 혼인잔치에 참여는 했으나 옷을 입고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친구는 결박당해 쫓겨나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혼인잔치의 예복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혼인잔치의 예복의 중요성을 모른채, 그것에 주의하지 않는 자는 결코 혼인잔치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혼인잔치의 예복은 주인이 준비해서 입혀준다.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거기 참석한 자들의 모든 신분과 더러움을 덮어주는 의의 예복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예복은 그 잔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신분을 하나로 통일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혼인잔치에 초대된 똑같은 손님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날 참석자들의 옷을 벗겨본다면 많은신분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귀층의 신분을 가진 자일 것이다. 어떤 이는 병든 자였지만 거기에 초대된 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방인으로서 천한 신분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혼인예복의 옷 때문에 그들은 모든 신분은 덮어지고 오직 하나로 통일된다. 잔치손님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자기에게 주어진 혼인잔치의 예복에 주의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잔치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6.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2가지 필수요소

  그러므로 누구든지 혼인잔치로 예표되는 천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는 주인이 마련한 천국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인이 준비해준 혼인예복을 차려입고 그 예복을 벗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잔치초대에 응하는 일와 예복을 입은 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해주는 2가지 요소 곧 믿음과 회개인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나같은 자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쁨으로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천국에 참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마련해준 혼인예복 곧 예수님의 피로 만든 의의 옷을 입은 자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음 받은 자가 곧 천국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자라고 가르치는가? 그것은 대체로 2가지다. 하나는 믿는 자라고 말하고 또 하나는 예정된 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복음의 소식을 듣고 그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틀히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은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칼빈의 예정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오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선 정리할 할 것은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응당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으시대는 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막상 그들에게 천국잔치에 오라고 하면, 그들은 세상이 더 좋기에 그 잔치에 참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히려 천국에는 못 들어갈 것이라고 낙인찍인 자들 곧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누군가의 초청을 받고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천국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7. 나오며

  결국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천국에 들어갈 자라고 예정된 자가 들어가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로부터 천국복음을 듣고 기뻐하면서 그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 개인을 예정해놓고 그를 불러들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들었을 때에 그것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오도록 예정해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고 율법말씀을 알고 있는 특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영접하지 않는 자는 결코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도 마찬가지로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전해준 천국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거절하는 자도 결코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천국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오직 감사와 찬양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라도 얼마든지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는 자,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자인 것을 믿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천국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건투를 빈다.

크기변환20161120_205842.jp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