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중의 복은 대체 무엇인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고 재물을 누리며 살며 자녀가 잘되는 것 역시 복은 복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받아야 할 복은 산상수훈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천국 복'이다. 이 복은 이 땅에서 받을 복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저 천국에서 받는 복이다. 그런데 이 복만큼 중요한 복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그럼,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아니 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가? 오늘 이 메시지는 천국복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는 자에게 그리고 이 천국복을 얻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첫 출발 지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는 말씀이다. 이 메시지를 제대로 듣는 자에게는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2022-05-2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지금 이 시대에 진정 복있는 자는 누구인가?(마13:9~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42y7hafnNc8  [혹은 https://tv.naver.com/v/27081897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성경은 그것에 대해 크게 2가지 말하고 있다. 그것의 하나는 구약적인 복이요 또 하나는 신약적인 복이다. 구약적인 복은 육신이 받는 복이요, 이 세상에서 받을 복이지만, 신약적인 복은 영혼이 받는 복이요, 저 세상에서 받을 복이다. 그런데 구약적인 복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고르라면 그것은 시편1:1~2의 말씀일 것이다. 그리고 신약적인 복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성경 구절을 고르라면 그것은 산상수훈의 말씀으로서, 마태복음 5~7장의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이것들 중에서 과연 어떤 복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둘 다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적인 복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복이 되기 때문에 꼭 받아야 하는 것이며, 신약적인 복은 우리가 받을 궁극적인 복이기 때문에 반드시 받아야 할 복은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적인 복의 핵심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이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마5:3,10).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상얻는 자가 되는 것이며(마5:11~12), 그곳에서 더 큰 지위를 얻는 자가 되는 것이다(마5:19). 그렇다면 이러한 천국 복을 얻기 위한 첫 출발점은 무엇인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우리도 이러한 복을 받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국복을 얻기 위한 출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천국 복을 얻기 위한 바른 선택을 잘 하셔서 천국 복의 주인공이 꼭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왜 예수께서는 천국 말씀을 하실 때에는 비유로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 천국이 어떤 곳이며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설명하실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때에 예수께서는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대부분 다 비유로 말씀하셨다. 즉 천국을 말씀하실 때에는 "마치 천국은 ~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몇몇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13:31)",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같으니"(마13:45~46),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22:2),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리니(마25:1)"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국의 실상과 비교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천국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어떠함을 상상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큰 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직까지 천국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지 못한 자라면, 그의 참된 인생은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은 '천국 말씀'이요, 들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고 깨달아 실천하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3:16).

 

3. 보고 듣는 것은 왜 중요한가?

  모든 기독교인들은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는다. 왜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는가? 그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10:17).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주일 교회에 나가서 어떤 말씀을 듣는가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주일에 어떤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러한 사람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그것은 "너희들은 이 천국에 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당시 모든 군중들에게도 천국 말씀이 들려졌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닫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되고 천국에서 상얻는 자가 되며, 천국에서 144,000석의 보좌에 앉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천국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천국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하며, 천국의 실체에 대해 경험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실 여기서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으로 자신이 눈으로 무엇인가를 본다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실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천국의 비밀들을 바로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 

 

4. 우리가 죽기 전에 귀로 들어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셨던 것들은 사실 '말씀'만은 아니었다. 보여 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이 어떤 곳이며, 어떤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지를 들려주셨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하신 일은 천국 말씀 곧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이셨기 때문이다(막4:23, 9:35).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천국복음이 비로소 세상의 땅끝까지 증거될 때에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14). 주의 오심은 누가 오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복음이 전파될 때에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천국이 실제한다는 것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1/3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과 병든 자를 고치시는 치유 사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축사 사역과 치유 사역의 배후에는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배후 세력들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인데, 이들은 바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귀신이 쫓겨나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천국이 실제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5. 오늘날 내가 천국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내가 천국 말씀 곧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지금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소수의 사람들만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 보통 교회에서는 천국복음이나 귀신 축사 같은 것을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들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요 보아야 할 것은 천국의 실제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주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천국복음이 다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날 내가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그것은 내가 이제 천국복음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마13:17). 그래서 이제는 나도 천국복음을 들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간절히 보고자 했지만 보지를 못했으며, 너희가 듣고 있는 것을 간절히 듣고자 했지만 듣지를 못했느니라(마13:17)" 그렇다. 그때는 천국복음을 듣기를 사모했던 자들이라도 그것을 듣지 못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은 천국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확 달라졌다.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쫓아내어 무저갱에 쳐넣었기 때문에 그의 귀신들을 내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성도들을 보라. 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귀신을 쫓아내었는가? 없었다.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의 실제에 대해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들으려고만 하면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동탄명성교회 같은 이렇게 작은 교회도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세례 요한으로 끝났으며, 그 이후부터는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눅16:16).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는 것은 이 천국복음을 듣고 나도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시는 사인인 것이다. 사실  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도 저주 가운데서 있는지를 이 천국복음을 들어보지 않고는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회개와 천국복음은 이 모든 비밀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천국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네가 지금 이 천국복음을 듣고 있다면 나를 위한 천국 복이 예비되어 있는 상태다"는 것을 의미한다(마13:11). 주님은 아무에게나 이 천국복음이 들려지게 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도 당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채 있지만, 그들(무리들,군중들)에게는 주어진 채 있지 않다"(마13:11). 그렇다. 천국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천국 말씀이 모두 믿어지거나 또한 천국이 사모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 어떠하고 귀신이 어떠하며, 어떻게 회개해야 하고 또 천국에서의 신분이 어떠하다"고 들려주어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말씀을 귀기울여 듣지 아니한다. 아직 그 말씀을 들을 상태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천국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곧 나를 위한 말씀이요, 나를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는 음성으로 들린다면 그는 이미 천국에서 받을 상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지금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국복음이 들려지거들랑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런 자들에게 결국 천국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복을 더 사모하고 그것을 얻도록 더 준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마13:23). 사실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천국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듣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천국 입성과 천국에서 받을 상이 결정된다.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 바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뿌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그 비유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씨 뿌리는 자는 인자이신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마13:37). 그럼 그때 예수께서 뿌린 씨앗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냥 단순한 말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천국 말씀'이었기 때문이다(마13:19). 그 말씀이 바로 천국의 아들들에게 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들려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네 종류의 밭은 각각 천국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앞의 세 종류의 밭들 곧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의 밭은 결국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이 천국 창고에 들어가는 결실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이는 오직 좋은 땅 곧 옥토밭을 가진 자 뿐이다. 천국 말씀을 듣는 순간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 인내함으로 결실하는 자가 좋은 땅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눅8:15).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은 이때 주님께서 들려주신 결실의 양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100배를, 어떤 이는 60배를, 어떤 이는 30배를 각각 따로따로 수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국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실천했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상급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천국에서 받을 우리의 신분의 크기가 소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국복음을 듣게 된 자들은 정말 기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기대보다 훨씬 더 잘 행함으로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어도 다섯 달란트를 남길 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100배를 남길 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천국복음을 듣고 그 후로 어떻게 살았느냐가 결정해 줄 것이다. 

 

6. 내가 하늘에 준비된 천국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하늘에 준비된 채 있는 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천국 복을 사모하면서 살면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가 천국 복을 얻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결코 사모함만으로 가는 곳이 아니며, 천국에서 받을 복도 역시 사모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천국 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주의하기를 바란다.

  첫째, 많은 무리(군중)가 되려 하지 말고 소수의 제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마13:10~11). 당시 바닷가에 앉아 있는 무리들도 역시 제자들처럼 다 똑같이 천국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날 바닷가에 앉게 된 목적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예수께서 일으키는 기적을 보고 자기도 고침을 받아 보려고 거기에 왔을 것이다. 아니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통해 자신도 무엇인가를 얻어보려고 거기에 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 진정 주려고 하신 것과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달랐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시려는 것은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군중들, 무리들)에게는 아니 되었느니라"(마13:11). 그렇다. 그냥 천국 말씀을 들으면서 병이나 한 번 고쳐 보려고, 먹을 것이나 한 번 얻어 보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주님이 진정 주시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우리도 사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천국 말씀이 어렵다고 해서 그 말씀 듣기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마13:14~15).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천국 복을 사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가르침과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천국복음에 대해 말하면 대부분은 채널을 돌려버린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싫어한다. 그리고 천국은 평등한 나라가 아니라 차등 상급과 차등 계급이 있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면서 이단 삼단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당시에도 그들의 반응들 중에도 거역적인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천국 말씀을 환영하지 않으며, 스스로 천국 말씀을 배척해 버렸던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말씀이 좀 어렵다고 할지라도, 천국 말씀을 이해하기가 좀 쉽지 않다고 할지라도, 천국 말씀 듣기를 거절해서는 아니 된다. 그때에는 이렇게 하면 된다. 자기의 귀에 들려진 만큼만 순종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시점이 되면 점점 더 그 말씀이 많이 들려지고 점점 더 믿음이 생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는 더 받아서 더 풍성하게 될 것이지만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3:12).

  셋째,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과 댓가라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마13:18~22). 천국은 가만히 사모하고 있으면 주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 왕국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 몸속에도 있으며, 우리 밖에서도 우리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바로 마귀와 그의 귀신들이다(마13:19, 막4:15, 눅8:12).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천국 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 하고 그들이 주는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그들이 주려고 하는 것을 덥석 물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탄 마귀의 세력들은 어떻게 방해 공작을 펴는가? 그것은 3가지다. 하나는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면, 그에게서 즉시 천국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는 것이다. 천국 말씀을 듣지 못하게 아예 귀를 닫아 버리게 하는 것이다(마13:19). 교회에 나와도 졸게 만들어 그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면, 환난이나 박해를 그에게 일으켜 천국 복을 사모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마13:20~21). 예수 믿으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무슨 회개를 또 해야 하느냐면서 예수믿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핍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다 끝내셨는데, 왜 조상의 죄까지 회개해야 하느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단 삼단이라고 박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천국 말씀이 좋다는 것 정도만 아는 자들이라면,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염려와 근심거리를 더 많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것이 더 좋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즐기며 노는 것에 푹 빠지게 하는 것이다(마13:22~23). 그래서 결국 천국 복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천국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다. 세상이 주는 것이라도 천국 복을 받기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주는 명예와 영광, 돈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일에 너무 치어서 근심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회개하여 귀신을 내 속에서 제거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런데 회개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회개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리고 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 이겨내야 한다. 이 복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면서 이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귀있는 자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천국을 주시려고 준비해 둔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천국복음을 한 번 들으면 금방 깨달아 버린다. 금방 깨우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린다. 이것이 내가 지금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자는 이미 하나님께서 천국 복을 주시려고 예비한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이러한 자들은 이때부터 어떠한 희생과 댓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게 된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 천국 비유 가운데, 적어도 2가지 비유는 엄청난 희생과 댓가를 치러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비유이다. 그것은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요(마13:44),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다(마13:45~46). 이 사람들은 천국을 발견했을 때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버린다. 천국이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도 천국이 희생과 댓가 없이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어찌 천국이 사모함만으로 갈 수 있겠는가? 지금은 주님이 오시기 직전의 상황이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인들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천국 복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말라.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얻는 자가 진정 이 시대에 가장 복 있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23) 천국 비유 말씀을 깨달은 자는 무슨 사명이 있을까(마13:51~52)_2022-03-17(목)

https://youtu.be/CNbfr_up2yQ  [혹은 https://tv.naver.com/v/25715676 ]

 

1.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 비유는 총 몇 가지인가?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천국 비유가 총 7가지가 나온다. 처음부터 보면 1)씨뿌리는 자의 비유 2)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3)겨자씨 비유 4)누룩 비유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5)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6)좋은 진주 장사의 비유 7)그물 비유가 나온다. 그렇다면 오늘 읽었던 말씀 곧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비유'(마13:52)의 말씀은 8번째의 천국 비유인가? 아니면 더 추가된 말씀인가? 어떤 분은 이 비유도 역시 '천국 비유'라고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 비유가 총 8가지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두고서 그분의 주장이 틀렸다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비유는 사실 천국 비유에 부가된 비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천국의 7가지 비유는 전부 다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해 주신 것이지만, 오늘 읽었던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비유는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비유이기 때문이다(마13:51~52). 고로 처음 천국의 7가지 비유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천국 비유이지만, 마지막으로 8번째의 천국 비유는 그때 예수님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비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비유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는 마치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8복 말씀들(마5:3~10)에 이어서, 하나 더 복(9복)이 선언되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8복까지는 3인칭 시점으로 말해지고 있지만, 그 다음의 9복 말씀(마5:11~12)은 제자들에게 직접 2인칭 시점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인 셈이다. 

 

2.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비유는 천국 비유 말씀을 깨달은 자가 되었다면 그는 이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된 것이나 진배없으니, 그때부터는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천국 말씀과 구약성경에 나오는 천국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서 전해 주는 집주인(가장)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럼, 본문 말씀이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살펴보자. 

마13:51~52 너희는 이 모든 것들을 깨달았느냐? 그들이 그분에게 말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분(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 때문에, 하늘들의 왕국(천국)에게 관하여 제자가 되었던 모든 서기관(율법학자)은 마치 새 것들과 옛(묵은) 것들을 자기의 보물창고에서 꺼내오는 집주인인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여기서 '새 것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고 있는 천국 비유 말씀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옛 것들'은 구약에 나타난 천국 비유 말씀들이다. 그리고 '곳간'은 곡식을 모아 두는 곳간이 아니라, 보물을 쌓아 두는 곳간으로서 일종의 보물 창고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곳간'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마태복음 13:33에 '밭에 감추어진 채 있는 보물상자'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것들과 옛 것들'이라는 말은 천국에 관한 말씀들을 지정하신 것이며, 이것들은 보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살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천국 말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예수께서는 천국 비유 말씀을 깨달은 제자들에게 어떤 사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그동안 당신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천국 비유 말씀을 다 깨달았다면, 이제 제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서기관(율법학자)들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까지는 구약의 율법 말씀들을 기록하였던 자들이 서기관들로 쓰임받았지만 이제부터는 천국 말씀을 깨닫게 된 제자들이 그 배톤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비유 말씀을 듣고 그것이 깨달아진 자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꺼내와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사명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 비유 말씀은 아무나 다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천국복음 시리즈'의 설교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이나 둘 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차등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심지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라 할지라도 각자의 신분이 다르고(왕 노릇하는 자, 섬기는 자, 보좌 자리 등), 각자의 받을 면류관이 다르며, 천국집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옥이라는 곳도 세 종류가 있다. [성]바깥 지옥, 더 바깥 어둔 데 지옥, 불못 지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 기독교 인구 가운데 이러한 차등 지옥과 차등 천국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채 1%도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지 다 왕같은 제사장 노릇을 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것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곧이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말씀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자가 천국 복음의 전파자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4. 구약의 서기관(율법학자)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약의 서기관(율법학자)은 천국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만을 알고 있던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신약의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천국 말씀에 관하여는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으며, 거기에다가 예수께서 직접 들려주신 천국 비유 말씀까지를 기억한 채 그것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올 수 있는 자라야 한다. 사실 성경 본문에 따르면, 꺼내와야 할 새 것들과 옛 것들은 천국에 관한 말씀들을 가리키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사역자들은 이 두 종류의 천국 보화의 말씀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와서 쓸 수 있어야 한다.

 

5.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오늘 예수께서는 제자로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첫째는 집주인과 같아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에 나오는 '집주인'이란 용어는 '오이코데스포테스'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집을 담당하여 주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오이코스'(집)에다가 '데스포테스'(주재)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로서, 자기의 집안을 총 주관하는 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주인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집안의 '가장'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천국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영적인 가장이 되어서 말씀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의 보물 창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곳간'이란 실은 '보물 창고('데사우로스')로서 그 안에는 보물들이 들어 있는 장소다. 그런데 이러한 보물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이미 그것이야말로 '천국'을 가리킨다고 언급하셨고,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살 만큼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단어들에게 수식어가 붙어 있다. '자기의 보물 창고'인 것이다. 그렇다. 서기관들이 되기 위해서 제자들은 이미 천국 말씀이 자기 속에 들어온 후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어야(자기의 것이 되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도 천국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 서기관은 새 것들과 옛 것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말씀 사역자는 구약성경을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신약에 들어와서 천국 복음 사역자로 쓰임받으려면, 예수께서 천국에 관하여 직접 들려주신 천국 말씀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이러한 말씀들을 다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도 역시 천국 말씀의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구약이 아니라 신약을 보자. 정말로 이때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도 역시 신구약의 말씀 사역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자로 뽑을 때에도 그는 시편 말씀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였다. 그리고 오순절날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는 그것을 보러 온 15개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이미 시편에 기록된 것과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왜냐하면 베드로도 역시 구약성경의 말씀을 자유자재로 꺼내올 수 있었던 천국의 서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누가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는 나와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2022년 03월 17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22) 천국의 7번째 그물의 비유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마13:47~50)_2022-03-16(수)

https://youtu.be/mJXSJTp8Bec

 

1. 예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천국비유 중에서 마지막 7번째 비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7가지 비유들 중에서 7번째 비유는 '그물의 비유'다. 이 비유 말씀을 원문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마13:47~50 또다시 하늘들의 왕국은 마치 바다 속으로 던져졌던 그리고 모든 종류[의 물고기들]에서부터 함께 모았던 대형그물(예인망)과 같다. 48 그것(물고기)이 그것(그물)에 충만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해변 위로 끌어올린 후에 그리고 앉은 후에 그들은 좋은 것들은 그릇들 안으로 담았다. 그런데 그들은 쓸모없는(썩은, 부패한) 것들을 밖으로 내던졌다. 49 시대(세대, 아이온)의 완성 안에서 그것이 [장차] 이와같을 것이다. 그 천사들이 [장차]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의인들 가운데서 밖으로 악한 자들을 [장차] 골라낼(갈라낼) 것이다. 50 그리고 그들은 불의 아궁이에 그들을 [장차] 던질 것이다. 거기서 울부짖음과 그리고 이빨들의 갊이 [장차]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비유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비유로서,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운명이 전혀 다른 장소에 각각 처해진다는 말씀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그물로 물고기를 모으는 것에 있지 않고, 잡은 물고리를 물가에 꺼내어 좋은 것과 못된 것으로 나눈 뒤에, 그중에서 못된 물고기는 버린다는 것에 있다. 이 비유는 앞에 있는 가라지의 비유(마13:24~30과 거의 비슷한 비유로서,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사람들에 경고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마지막 주님 재림시가 되면, 주님께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 곧 불의 구덩이(불못)에 던져 넣는다고 하는 말씀이다. 

 

2. 이 비유는 믿는 이들에 대한 비유인가 아니면 신자와 불신자에 관한 비유인가?

  천국과 지옥의 실상 특히 지옥의 실상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은 처음부터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즉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신자와 불신자로 나누어 신자는 천국에 보내고, 불신자는 불못에 던지신다는 비유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져넣는다고 했기 때문이다(마13:49). 여기서 '의인들'이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도 똑같이 나오고 있으며(마13:4~43),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똑같이 나온다(마25:46). 고로 우리는 이들의 몰고기들은 모두가 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지막 심판의 때가 되면 신자들만 먼저 불러내어(벧전4:17~19) 곡식과 가라지로, 혹은 양과 염소로, 혹은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로 나누신다는 것이다. 이때 만약 자신이 곡식이나 양, 좋은 물고기로 분류된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날 자신이 가라지나 염소 그리고 못된 물고기로 분류된다면 그는 풀무불('불의 구덩이')안으로 던져지고 말 것이다. 둘째,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 따르면, 가라지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왕국에서부터 모든 넘어지게(실족하게) 하는 것들과 불법을 행하고 있는 이들이 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마13:41~42). 주님께서는 못된 물고기들을 먼저 끌어 모아서 풀무불(불의 구덩이) 안으로 던져넣으실 것이다.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에 따르면, 염소가 불신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생색내는 일에는 앞장 섰으나 자기 생각에 보잘 것 없는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스스로 작아져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들이 영벌(시대의 형벌)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25:46).

 

3. 그물의 비유에 나오는 '못된 물고기'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그리스도인이었던 자라도 누가 불못 안으로 던져지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불못 안으로 던져질 자는 비유적으로 볼 때 "못된 물고기"를 가리키며, 의인들 중에서 악한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모 첫째로, '못된 자"가 누군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여기서 못된 자는 죄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못된 자'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못된'이라는 이 단어는 '사프로스'라는 단어다. 이 단어의 원뜻은 '썩은, 부패한'이라는 뜻이며, 파생되어서 '쓸모없는, 무익한, 무가치한'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프로스'라는 단어(형용사)는 아무래도 '쓸모없는, 무익한, 무가치한'이라는 뜻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가 갖고 있던 원뜻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욕 있다. 왜냐하면 이 물고기는 분명 '썩은 물고기'이자 '부패한 물고기'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물고기이지만, 내부적으로 이미 썩어가고 있는, 부패하여 냄새하는 물고기들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다 믿는 자들(신자)로 보이겠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채 있었고, 부패하고 더러운 삶을 계속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를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천국 안으로 데려가실 수가 없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못된 물고기'는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지 않아서 더럽혀진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둘째로, '못된 자'는 '악한 자'라고 했다(마13:49). 그것도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원래 문장이 잘 맞아 떨어지려면, '의인들 중에서 죄인들'을 갈라내야 한다고 하는 표현이 더 옳다. 왜나하면 의인의 반대는 죄인이요, 선한 자의 반대는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죄인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악인들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인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어서 의인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행실이 여전히 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도 달라지거나 변화된 삶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고, 형제를 미워하여 살인하고 있었으며, 간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도둑질하고 있었으며, 거짓증거하고 있었고, 이웃의 것들을 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들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악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처음부터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는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처음부터 천국에 들어갈 사람과 지옥에 들어갈 사람이 아예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가? 그래서 바꿀 수가 없는가? 그렇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보통 '이중예정론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미 사람의 운명이 만세전에 하나님에 의해 운명적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님께서 억지라도 천국에 끌고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멸망받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읕 결코 올바른 구원관이 아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운명론적으로 변할 수 없이 주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계3:5). 그러므로 처음부터 좋은 물고기가 있거나 처음부터 운명론적으로 못된 물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그것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로서 결정되는 것이다. 못된 물고기는 이미 운명론적으로 못된 물고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자꾸 악한 쪽이나 죄짓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5. 그물의 비유에 나오는 '불못'이란 대체 어떤 곳이며, 누가 그곳에 떨어지게 되는가?

  마13장의 '그물의 비유' 말씀은 일종의 경고의 말씀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마지막 문장은 풀무불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에 대해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기에 떨어진다는 것은 그곳에 들어가게 되어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라지'나 '못된 물고기' 혹은 '염소'가 최종적으로 떨어짐으로서 가게 된 '불못'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우선 알 것은 이곳은 지옥 가운데서도 사실 가장 나쁜 상태의 지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사실 '지옥(게헨나)'이라는 것을 정의할 때 불타는 곳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주님의 임재가 없어서 어두운 장소라는 뜻으로 정의해보자. 그러면 지옥에도 3가지 지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는 그냥 '바깥' 지옥이 있다. 이곳에는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가 밀려나는 장소로서 예루살렘 성 의 바깥쪽을 가리킨다(마25:10). 둘째는 '바깥 어두운데 지옥'이 있다. 이곳은 성바깥의 바로 근방이 아니라 더 멀리 바깥쪽에 위치한 바깥쪽 지옥을 가리키다. 그런데 이 장소도 불못과 마찬가지로 죄의 경중에 따라 더 바깥쪽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했던 자가 밀려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며(마22:13), 마24장의 종말장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악한 종'이 들어갈 장소다. 그는 사명자인데도 불구하고 동료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셨다가 그만 성밖으로 밀려나가서 그가 들어간 장소다. 이 장소는 분명히 새 예루살렘 성 안이 아니다. 이곳은 그 성의 바깥쪽 더 어두운 곳으로서, 더 바깥쪽으로 밀려날수록 형벌은 더 강해진다. 그러므로 그곳으로 밀려나게 된 자들은 자신의 활동이 극도로 제한받게 되며, 또한 극도의 고통 가운데서 무한반복의 고통을 영원히 당하게 된다. 

 

2022년 03월 16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21) 밭에 감추인 보화와 좋은 진주 장사의 천국 비유는 대체 무엇을 말하기 위함인가?(마13:44~46)_2022-03-15(화)

https://youtu.be/uWbt4vn_u8A  [혹은 https://tv.naver.com/v/25684216 ]

 

1. 예수께서 13장에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 중에서 5번째와 6번째 비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무려 7가지나 말씀하셨다. 그중에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라고 불리며,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수의 비유'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비유는 같은 종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비유들이다. 한 마디로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더라도 취득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 비유가 같은 주제의 비유라는 것을 알려 주는 단서가 있는데, 그것은 여섯 번째 비유 '팔린(again)'이라는 헬라어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뜻은 '다시'라는 뜻이다. 이는 주님께서 똑같은 주제를 또다시 말씀하시겠다는 뜻이다. 결국 둘 다의 비유는 이렇다. 둘 다 어떤 사람이 매우 좋은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 것이다. 

 

2.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어떤 것인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정확히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하늘들의 왕국(천국)은 마치 밭 안에 [이미] 감추어진 채 있는 보물[상자]와 같으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 후에 감추었다(숨겨두었다). 그리고 그것의(혹은 그의) 기쁨으로부터 떠나갔다. 그리고 그는 가지고 있는 것들 만큼 많은 전부를 판다. 그리고 그는 저 밭을 산다." 그렇다.  여기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소작농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밭을 쟁기로 갈다가 쟁기에 무엇인가 걸려서 살펴보다가 보물 상자를 발견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그 당시에는 보물을 발견한 자가 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밭의 주인이 보물의 임자가 될 수 있었던 때였다. 그러므로 소작농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게 되는데, 팔고 사는 것이 현재형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 비유를 아주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좋은 진주 장수의 비유는 어떤 것인가?

  '좋은 진주 장수의 비유'는 이렇다. "또다시 하늘들의 왕국(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들을 찾고 있는 어떤 장사하는 사람(상인)과 같으니, 그런데 그가 비싼 어떤 진주 하나를 발견한 후에, 떠나간 뒤에 그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들 만큼 많은 전부를 처분한 채 있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샀다." 이 비유의 끝은 현재형의 문구가 아니다. 과거형이다. 어떤 상인이 이미 좋은 진주를 구매한 이후를 기록하고 있다. 즉 현재의 장면이 아니라, 이미 끝난 장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인이 좋은 진주를 구매한 시점은 이미 그 진주를 사려고 그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이미 다 처분한 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자기가 가진 재산 전부를 다 처분한 채 있지만 그 일이 결코 후회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실제로 더할 나위 없는 가장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4. 이 두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대체 주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이 비유를 든 것인가? 첫째로, 이 비유들은 천국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게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꼭 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중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는데, 천국은 그것들을 다 포기해서라도 꼭 얻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댓가의 지불없이는 그것을 결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든 인생이 꼭 취해야 할 것은 바로 '천국'인데, 그렇다고 할지라도, 희생이 필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거듭난 자로서 회개하는 자는 들어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막1:15, 마4:17). 그런데 여기서 취득해야 할 천국은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영광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에는 천국집과 면류관, 보좌 자리가 있다. 그리고 굳이 공통점 하나를 더 추가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둘 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내고 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5. 이 두 가지 비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비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비유는 공통된 주제를 말하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점도 있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가 하는 것이다. 밭에 감추어진 채 있는 보물 상자의 경우는 어떤 소작농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예기치 않게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날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천국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비유는 열심히 진주를 찾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두 번째 비유로서 '좋은 진주 장수의 비유'는 오랫동안 찾고 찾은 끝에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는 비유다. 이는 어떤 친구가 오랜 노력 끝에 천국을 찾아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사람들마다 천국을 발견하는 방법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천국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찾도록 찾다가 마침내 그러한 천국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한 후의 일이다. 그것을 발견한 후에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그것은 모든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그것을 다 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천국이 좋다는 것도 알고 회개하면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댓가도 지불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천국도 좋고 회개하면 들어가는 것도 알고 있으며, 충성하게 되면 천국에서 누릴 영광(상급)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위해 자신의 것들을 전혀 희생하려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즉 자신이 가진 물질과 달란트와 시간을 천국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강과 지혜와 능력을 그 놀라운 천국을 얻는 데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천국은 결국에 언감생심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다. 천국은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안다고 해서 그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사모한다고 해서 다 얻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반드시 어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 세상에서 그가 얼마나 천국을 위해 댓가를 지불했느냐에 따라 그가 받을 영광도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에 비하면 이 땅에서 잠시 잠깐 받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현재 받고 있는 고난은 장차 자신에게 주어질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롬8:17~18). 

 

2022년 03월 15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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