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50) 곧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인가 주 하나님인가?(계22:6~21)_2022-04-21(목)

https://youtu.be/wA9qK2U3Dds  [혹은 https://tv.naver.com/v/26371478 ]

 

1.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속히 곧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내가 속히 온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총 5차례가 나온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세 차례 나오고(계22:7,12,20), 그 외에도 두 차례 더 나오기 때문이다(계2:16, 3:11).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한다면, "내가 신속히 오고(가고) 있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장차 신속히 갈 것이라는 미래 시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오고(가고) 있다는 현재 시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밖에서 항상 현재로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분은 대체 누구인가? 계2:16, 3:11에는 그분은 '예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리고 계22:7,12,20의 말씀에서도 그분이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속히 오실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인가 주 하나님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분은 분명히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던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에 대해 사도 요한은 놀라운 정보를 우리에게 공개한다. 첫째로,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이다(계22:20,21). 그리고 둘째로 그분이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분을 '주님'이라고 칭했다는 말은 그분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라는 칭호가 요한계시록 21장까지는 전부 다 '하나님'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요한계시록 22장에 와서 '주님'이라는 칭호를 '예수'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계22:20,21). 또한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나'이신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계22:13). 이는 실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이전까지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하는 자기 선언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계1:8, 21:6). 더불어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자기 선언도 역시 오직 주 하나님이시자 보좌에 앉아 계신 분에 대해서만 사용한 용어이다. 다만 요한계시록 22장 이전까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셨을 뿐이다(계1:17, 2:8).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와서, 주 하나님의 칭호('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용어가 주 예수님의 칭호('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라는 용어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분을 가리켜 '주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그분은 사실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3. 구약 시대에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이셨는가?

  구약 시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는 딱 2가지로 말씀하셨다. 하나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 자신이다)"(출3:14)라는 자기 선언이요, 또 하나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 선언이다(사41:4, 44:6, 48:12).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자기 선언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 선언은 구약 시대에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던 여호와에게만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표현을 예수께서 똑같이 자기 선언으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3번이나 말씀하셨다(요8:24,28,58).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표현은 헬라어 성경에만 나올 뿐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기 선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계1:17, 2:8, 22:13).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그렇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양단 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도 아니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이도 아닌데도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으니 그분을 사기꾼으로 볼 수도 있다(이는 그분이 참람죄, 신성 모독죄를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니면 그분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으로서 구약에 나타났던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거짓이 전혀 없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버리거나 제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야말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신 분이자 동시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신 분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신약에 아들로 나타나셨던 예수는 구약의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분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총 7번 나온다(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을 지칭하는 고유한 명칭이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 하나님'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들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그것은 이렇다. 첫째, '알파와 오메가'라고 2번 나온다(계1:8, 21:6). 둘째, '전능하신 이'로서 9번 나온다(계1:8, 4:8, 11:17, 15:3, 16:7, 16:14, 19:6, 19:15, 21:22). 셋째, '시작과 마침'이라는 표현은 한 번 나온다(계21:6). 넷째,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3번 나온다(계1:4, 1:8, 4:8). 그렇지만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이"라는 표현만으로 보면 총 5회가 나온다(계1:4, 1:8, 4:8, 11:17, 16:5). 다섯째, "보좌[위]에 [스스로] 앉으신 이"라는 표현은 12회 나온다(계4:2, 4:3, 4:9, 4:10, 5:1, 5:7, 5:13, 6:16, 7:10, 7:15, 19:4, 21:5). 단, 1회는 그리스도에 쓰였다(계20:11).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주 하나님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이요, 전능하신 이시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시다. 그런데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자기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했으니, 장차 재림하실 분은 예수님이지만, 주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5.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 분 하나님의 실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에서 들려주는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가 있다. 그분은 만세 전부터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셨던 분으로서,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 주셨으며, 그분의 자기 선언으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만세 전의 계획과 경륜을 따라 자기에게서 아들의 이름으로 이 세상으로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를 대신하는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자, 아들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혹은 야훼)'라고 칭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님'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구약의 여호와와 동시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고로 '주님'이라는 칭호는 신성한 한 분 하나님의 칭호였던 것이다. 고로, 구약 시대에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하셨던 분은 아들의 이름으로 오신 후에 역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류 구원을 위해 삼위로 역사하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경 맨 마지막 장(계22장)에서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예수님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림하시는 그분을 뵈올 때에 '예수님'으로 보겠지만 그분을 이제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04월 21일(목)

정병진목사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것은 한 마디로 전능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전능자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무려 9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는 창세기를 시작으로 욥기서에만 32번이나 나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전능자라고 불리게 된 증거들은 무엇인가? 그분의 공생애 기간 중에 드러난 것에는 무엇이 있으며, 천국에 올라가셨을 때에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분이 전능자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2020-08-21(금) 금요심야기도회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32) 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20)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2) (계 11:17~18 )
https://youtu.be/OLb9q6PkzL4 [혹은 https://tv.naver.com/v/15380857 ]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얻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여기서 "구원얻는 믿음"이란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그분이 육체를 입고 오신 그분에 대한 믿음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의 그분에 대한 믿음이다. 전자의 믿음은 "당신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리키며(마16:16), 후자의 믿음은 "당신은 주님이요 하나님"이라는 쌍둥이 도마의 신앙고백을 가리킨다(요20:28). 그 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 가운데, 그분이 전능하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증거들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서는 사실 고대 최초의 신조였던 니케아신조(A.D.325년)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부터 종교개혁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출현한 대부분의 신앙고백을 볼 때, 예수께서 자존하시며 동시에 무소부재하신시다는 항목은 나오지 않는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기는 하지만 왜 그분이 하나님이신지에 관하여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그분이 가진 속성들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즉 그분이 가진 속성(특질)이 곧 그분이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자존(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시고, 무소부재하시며(혹은 동시존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이다. 즉 그분은 하나님으로서의 4가지 속성을 다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그분의 주장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실제로, 그분이 행하신 일들과 말씀 속에서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 위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이신 4가지 증거들은 그분이 이 땅에 3년반의 공생애 기간 중에도 발견할 수 있고,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이후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는 더더욱 그와 같은 사실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3.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이심이 드러나는가?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A.D.95~96년간 소아시아에 있는 밧모섬에 감금되어 있을 때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직접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록한 예언서이자 계시서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사도요한이 열려진 하늘을 통해 올라가서 보았던 천국의 실상이 소상히 나오는데, 천국에서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펼쳐보이는 두루마리의 환상과 예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이라는 것이 금방 확인이 된다.

  먼저는 계1:8을 통해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3가지 형태로 소개한다. 첫째,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계22:13)"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똑일한 표현이다. 둘째, 그분은 자신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현재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계시며 지금도 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분은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이다. 셋째, 그분은 자신을 "전능한 자"라고 소개하신다. 여기서 "전능한 자(전능자, 전능하신 이)"라는 말은 그분은 결코 못하실 것이 없는 존재로서,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하늘에 있는 보좌 곧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21:5~6,22;13). 그리고 사도요한은 그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를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는 계1:18에 의하면, 전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요(계4:10), 또한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자, 시작과 끝이신 것을 알 수 있으며(계22:13), 그분이 보좌에 앉아계시는 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또한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신다고 하는데, 마지막 나팔인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에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찬양을 들어보면, 그들은 하나님께 "옛적에도(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노래한다. 그럼, 왜 이 때에 24장로들이 부르는 찬양에 "장차 오실 이"가 빠져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께서 재림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이(판토크라토르, Almighty)"라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곧 전능하신 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전능자이심에 대한 증언들과 요한계시록의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전능하신 이로서 하나님이란 첫째, 창조주이시며(렘32:17, 계3:14), 둘째, 심판주이시고(욥34:12, 계11:18), 셋째, 통치자인 것(욥34:17, 계11:17)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예수께서는 전능하신 이이신데 왜 사람들에게 붙들려 갔으며 고난받으시고 죽으셔야 했는가?

  어떤 안티기독교인은 예수께서 진실로 전능하시다면 왜 자기 몸 하나 건져내지 못한 채 체포당하시고 고난받고 죽으셨느냐고 하면서 그분은 신적 존재가 아닌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지에서 온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신데, 만세전에 정한 놓았던 경륜을 따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왜 그분은 사람이 되셨는가? 그것은 온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여 고난받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그분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분의 공생애가 끝날 무렵에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셨다. 전능하신 힘을 사용하여 붙잡히지 아니할 수도 있었고, 얼마든지 죽지 아니할 수도 있었언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시어 붙잡히셨다. 그리고 그날 예수님을 붙잡으로 왔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하속들에게 붙잡혀가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항거를 보면,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군단(6,000명) 더 되는 천사를 자기 곁에 취하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면서, 만약 그렇게 하면, 이 일이 이뤄지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어찌 성취될 수 있겠느냐고 나무란다. 그렇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셨지만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낮아지셔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가 때가 되자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었고, "죽음의 세례"를 받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막10:38~39). 예수께서는 그때 붙들려가서 고난받으심으로 인하여 인류를 질병로부터 낫게 할 수 있는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에게는 속죄의 기쁜 소식이 전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예수께서는 전능자로서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던 이유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인류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부득이하게 피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고난받고 죽으셨지만 예수께서는 인류의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후, 3가지 권세를 차지하게 되셨다. 첫째, 하늘[안]과 땅[위]의 모든 권세를 차지하게 되셨으며(마28:18), 또한 둘째, 마귀가 가지고 있던 사망의 음부의 열쇠까지 가지게 되셨다(계1:18). 고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현재 하늘과 땅과 그리고 땅 아래에 있는 음부의 권세까지 모두 다 차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의 수중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허락없이는 단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까지 다 주님의 허락없이는 아니 되는 것이다. 주님이 하늘과 땅과 음부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있든지 아니면 죽게 되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면 그는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맞딱뜨리더라도 그분의 허락없이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야한다. 

 

6. 삼년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께서 보여준, 그가 하나님이신 증거들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30살부터 33살후 반년까지 그리스도로서 공적인 삶을 사셨다.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던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세상 죄를 전가받은 어린양이 되셨다. 하지만 그분은 3년반의 공생애를 통하여, 자신이 누군지를 계속해서 사건과 말씀 속에서 계시하셨다. 첫째,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보면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둘째, 그분은 자신이 행한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그분이 자연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요, 그분은 병든 자들과 장애인들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킬 수 잇는 전능자이심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그분은 어느날 풍랑이를 바다와 바람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외치셨다. 그러자 바다과 바람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잠잠해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느냐"하면서 감탄해 마지 않았다(막4:39). 뿐만 아니라 어떤 때에는 밤 사경(새벽 3시~6시)에 바다 위를 직접 걸어서 오셨다. 풍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물 위를 걸어오신 것이다(마14:25). 이는 그분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또한 만물의 지배자라는 것을 드러내준다. 또한 어느날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 한 나무에 다가갔을 때,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는 무화과를 보시고는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러자 다음날 아침 그 나무가 뿌리채 말라 있었다(마21:19). 그것은 식물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 일은 상징적으로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어느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정말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는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되었다. 이것은 고기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예수께서는 38년된 최악의 중풍병자를 말씀 한 마디 곧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는 말씀을 통하여 고쳐주셨다. 또한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나면서 소경된 자가 등장하는데, 예수께서 그를 만나셨을 때 진흙에다가 침을 이겨서 그의 눈을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그러자 정말 그가 정말 씻었어니 그의 시력을 회복되었다. 그것은 그분은 없는 것도 창조하시는 전능자이심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수많은 문둥병자도 낫게 하셨다. 사실 창세 이후로 문둥병자를 치료했다는 기록은 예수님 이외에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행하심으로 예수께서는 바로 당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도 무려 3차례나 걸쳐 살려내셨다. 한 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자마자 바로 살려내셨으며(막5:21~24), 또 한 번은 한 과부의 외동아들 곧 청년이 관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시고는, 관에 손을 대시며 그 청년에게 일어날 것을 명령하시자 그 청년이 되살아나기도 했다(눅7:11~17).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였던 나사로가 죽었고 또한 나흘이 되어 이미 무덤에 묻혀 있었고 또한 썩은 냄새도 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돌문을 옮겨놓게 한 후에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정말 세마포로 동인 채 나사로가 무덤에서 껑충껑충 뛰어나오기도 했다. 사실 죽은 자를 바로 살려내는 것은 조금이라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예수께서는 죽은지 4일 되어서 썩은 물이 흘러나오는 나사로를 살려내셨다. 이것은 그분이 전능자가 아니라면 절대 하실 수 없는 일을 하셨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통치자이시며 창조주로서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우리는 지금까지 구원얻기 위해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전능자이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사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고 계셨던 공생애의 때나 혹은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 하늘에 계신 때나 다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다. 곧 그분이 창조주와 통치자이시며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분은 곧이어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그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상을 받을 자도 있을 것이며, 또한 멸망을 받아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게 될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전능하신 이"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도 나오고 있지만, 그분의 공생애 가운데서도 고스란히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 속에 영접할 때에 단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접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영접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귀신의 공격 앞에서나 혹은 귀신이 공격할 때에도 주눅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담대히 맞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귀신도 우리가 대적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도망치고 말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8월 2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20) 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8) 예수님은 주님이요 하나님이시다(2)(롬14:4~12)_2020-08-10(월)

https://youtu.be/9fJVdLG3sQQ  [혹은 https://tv.naver.com/v/15196911  ]

 

 

1. 12제자들 중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고백한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나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하나였던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고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 왜냐하면 문이 닫혔는데 방 안에 주께서 갑자기 들어오셨고, 분명히 죽으셨다가 무덤에 묻히셨는데 자기 눈 앞에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못박힌 흔적이 있는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면서, 당신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바로 그 분인지를 직접 만져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요20:25,27). 

 

2. 초기교회 가운데 사용되어진 가장 오래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나요?

  초기교회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은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고전12:3, 롬10:9~10). 특히 예수믿는 사람으로서 예배에 참석하거나,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사도신경의 긴 문장으로 하고 있지만, 초기교회 가운데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은 아주 짧은 한 마디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고백들이 더해져서 오늘날 사도신경의 형태로 굳어진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에 성도들이 모였을 때 부른 찬송이 오늘날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빌2:6~11에 기록되어있는 "그리스도의 찬가"입니다.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찬양의 형태를 살펴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초기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처음부터 신적인 대상으로 불려지고 섬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고 하겠습니다. 

 

3. 초기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초기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신앙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초기교회 성도들 중에는 처음에는 이방인들이 전혀 없었고 오직 유대인들 뿐이었는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주님!(퀴리에)"이라는 호칭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입술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4. 초기교회 당시의 사람들은 보통 누구를 "주님!(퀴리에)"라고 불렀나요?

  초기교회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보통 하인이 자기의 주인을 부를 때에 "퀴리에"라고 불렀으며, 로마제국 내의 백성들이 황제를 부를 때에도 역시 "퀴리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를 가리켜서도 사람들은 "퀴리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에 "퀴리에 무(나의 주님)"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보면, "아도나이(my Lord)"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유대인들 또한 예수님을 일컬어 "퀴리에"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은 처음부터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처럼 신적인 지위를 가진 분으로 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 구약의 성도들 중에는 누가 하나님을 "아도나이(헬, 퀴리에)"라고 불렀나요?

  구약시대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을 "아도아니(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던 최초의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그분에게 기도할 때에 "나의 주여(아도나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창15:2,8, 18:30,32). 그리고 모세도 여호와께 기도할 때에는 "오 주여(아도나이), 나를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출4:10)",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이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왕도 "주(아도나이)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7:18)"이라고 부름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 느헤미야와 시편기자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아모스, 오바댜, 미가, 하바국, 스바냐, 스가랴,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칭하거나 또는 그분께 기도할 때에 "아도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오직 유일하게 여호와에게만 "아도나이"라고 불렀던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서 죽어갈 때에,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이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때 스데반이 예수님더러 "주님"이라고 외쳤다는 것은 유일한 하나님만 인정하는 유대인들의 신앙관에서 볼 때에, 스데반은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견고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스데반이 그 순간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으로부터 서신 것"이었습니다.

 

2020년 08월 10일(월)

정병진목사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서 과연 어떤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면 된다(마16:16).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한층 더 고양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나온다(요20:28). 그것은 더이상 인성을 갖고 있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이 신앙고백을 통하여 악한 마귀와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훨씬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이 맞아 얻어터진 것을 싸매는 수준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그러한 신앙고백을 한 것인가?

2020-08-0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9)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7) 예수님은 주님이요 하나님이시다(요일5:11~12)
https://youtu.be/DJvkKdB-cMw [혹은 https://tv.naver.com/v/15194947 ]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얻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2가지다.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대속제물로 돌아가셨고 죽으신 다음에는 3일만에 부활하시어 자신이 가지신 생명을 해방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그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일컬어 우리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또 하나의 신앙고백이 더 존재한다. 그것은 "도마의 신앙고백"이다(요20:28). 그런데 이러한 도마의 신앙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해당한다. 그래서 오늘은 도마의 신앙고백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며, 구원얻을 수 있는 믿음에서 더 업그레이드된 도마의 신앙고백에 대해서 좀 더 전반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 메시지를 주의깊게 듣는다면, 자신에게 놀라운 영적인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신앙고백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또 하나는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앞의 신앙고백을 일컬어 보통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이라고 부르고, 뒤의 신앙고백은 "도마의 신앙고백(요20:28)"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 대해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도마의 신앙고백"도 있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골똘이 생각하지 않고 무심커 넘겨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신앙고백은 많이 차이가 나온다. 앞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일컬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면, 뒤의 도마의 신앙고백은 육신을 초월해계시는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신적인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마의 신앙고백은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나서는 그분에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마가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이다. 이는 천상에 계신 신성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도마가 예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도마가 이방인으로서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으며, 상당히 충격적인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주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바치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 경험하면서 차츰차츰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모세도 정확히는 잘 몰랐다. 자기의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그분이 누군지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가 아니었다면 사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도 잘 몰랐을 수도 있다. 시내산 가시떨기나무에 불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 모세가 그분의 이름을 물어보아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주로 어떤 명칭으로 불리셨을까? 처음에는 "하나님(엘로힘)"와 "전능자"라고 불리셨다. 그러한 사실은 창세기의 기록과 아브라함 시대의 인물이었던 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욥4:17,5:17,6:4). 그런 다음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불리어졌다(출3:14). 그러다가 선지자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리었다(삼상1:3). 그러다가 다니엘 시대에 이르서는 "주 하나님"이라고 불리었다(단9:3~4). 그런데 도마가 예수님더러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을 뜻한다. 

 

4. 예수님은 여호와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구약의 여호와이신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역적인 삼위일체의 방식에서 본다면 그것은 매우 곤란한 정의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여호와는 훗날 아버지라고 불리며, 신약의 예수는 아들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예수께서 구약시대로 치자면 여호와라는 것을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금방 찾아낼 수가 있다. 

  첫째,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할" 사람이 올 것이라고예언하였다(사40:3). 그런데 신약의 마태복음의 저자는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언급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때 마태는 세례요한을 일컬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했다. 이는 곧 세례요한이 여호와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고 예언된 자인데 실제는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였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곧 우리는 여호와께서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은 삼십에 팔리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슥11:13). 하지만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께서 은 삼십에 팔렸다고 고 하면서 예수께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마27:9).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구약의 요엘선지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욜2:32)"고 외쳤다. 하지만 실제로 신약시대에 베드로사도와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하면서, 여호와가 곧 주이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행2:21, 롬10:13).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이셨던 여호와라는 분이 곧 신약시대에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신약시대의 신약성경의 저자들을 통해서 이것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장을 예로 든다면, 마리아에게 나타난 주의 천사는 장차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텐데,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할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구약의 선지자였던 이사야가 예언한 것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즉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언급된 "예수" 혹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나 호칭은 사실 예수께서 여호와이심을 또한 알려준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께서 구원자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예수라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태어난 아들을 칭할 때 사람들이 "임마누엘"이라고 칭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임마누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함께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데 사람되신 분이라고 정의를 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시대에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한 분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는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수가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분이시므로, 신약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곧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5. 예수님이 진짜 주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지금까지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심이 고백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의심많은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는 즉시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을 그때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신앙고백은 사실 그가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었음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진짜 주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도마의 높여진 신앙고백에 불과한 것인가? 그것을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와있는 말씀을 통하여 확인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주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나님 곧 보좌 위에 앉아계시는 주님은 대체 누구신가?

  첫째, 요한계시록 1:8에서는 "주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계1:8). 

  둘째, 요한계시록 22:13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하신 분은 주 예수님이시다(계22:12,16).

  셋째, 요한계시록 21:5~6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하신 분이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이이시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이시며, 그분이 전능자요, 그분이 지금도 있지만 과거에도 계셨고 장차 올 자이신 전능자이심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님더러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도마의 개인적인 신앙고백 정도가 아니라, 그분이 진짜 주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6.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알고 고백하게 될 때의 유익은 무엇인가?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서 한층 더 올라가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적어도 3가지 유익이 있다고 본다.

  첫째, 사탄마귀와 귀신을 처리하는데 좀 더 담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탄마귀가 비록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시도했지만 3대0으로 판정패당했다. 그때부터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고로 마귀와 귀신들과 싸우거나 대항할 때 예수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훨씬 더 강력한 믿음으로 무장하게 되고 귀신들을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예수께서 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단을 분별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보통 이단의 교주들은 자기를 늘 "재림하신 예수님, 영으로 오신 예수님, 보혜사 성령, 이긴 자"등으로 사칭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여호와"라고 주장하는 이단교주는 없다. 왜냐하면 이단 교주 중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자존자, 전지전능한 자, 무소부재한 자, 영원하고 불변하는 하나님으로서의 속성을 갖춘 자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을 사칭하여 거짓말로 예언하고 있는 거짓예언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에 들어와 자신은 성령받았는다는 둥,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한다는 등의 거짓말로 사기치는 자를 금방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왜냐하면 여호와나 예수님은 결단코 거짓말을 한 마디로, 단 한 단어도 말씀하지 않기 때문이다. 

 

7.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으로 인하여, 신앙고백을 할 때에 "예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해야 하며, "여호와"는 반드시 "아버지"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분은 하나님이신 것은 맞지만 위격이 서로 다른 분이라는 것이다. 100%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주장이 100% 옳은 주장이라고 결코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나 예수님은 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나 예수께서는 전능자로서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분이기에, 그분들은 언제라도 동시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공존할 수가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누군지에 대한 한층 더 고양된 신앙고백 곧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이시지만, 사실 그분은 동시에 주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렇더라도 그분은 한 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33년 반의 생애를 사셨다가 가신 분이다. 하지만 죽고 부활하신 뒤에 예수님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셨다. 그러자 도마는 즉시 그분을"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되어진 분인가? 아니면 진짜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은 과거에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지금은 "주 하나님"이시요,"보좌에 앉으신 이"시요, "전능자"이심을 알 수가 있다(계1:8). 

 

202년 08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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