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0)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계2:26~27)_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다(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DPGQ8Ikblc [혹은 https://tv.naver.com/v/26808386 ]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분은 저 하늘에 계신 분을 가리켜 당신의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 보내신 분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이 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은 두 분인가 한 분인가? 두 분이라고 하면 다신론이 되는 것이고, 한 분이라고 하면 양태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말하기도 곤란하고 저렇게 말하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이것을 만들어낸 교리가 바로 먼저는 '이위일체'하나님이었고 나중에는 성령까지 포함시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아버지와 아들이 정녕 다르다고만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봐야 하는지를 통하여,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2.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칭호를 가리키는가?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물론 비유적으로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의미로 사용한 적이 있으시다). 즉 출생에 따라 아들을 두신 아버지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심에 따라 하늘에 계신 분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으로서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은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의미로 '아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사는 아버지의 생명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지혜가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다. 우리는 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로 이 땅에 사는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역시 '아버지'라고 하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로 아들이 없는 아버지가 없으며,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예수께서는 언제까지 하나님에게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시는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품 속에 있다가 이 땅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들로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 속에 계셨던 것이다(요1:18). 그때 아들은 육신을 입으셨다. 고로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을 직접 취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들어오셨는데 그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은 죄인들을 위해 구속사역을 완성하려고 오신 것이다. 즉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하여 죽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실 필요가 없었언 것이다. 그래서 인류구속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고는 "다 이루었다"(요19:30=그것이 완성된 채 있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인류구속사역을 위하여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다 완성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후 예수께서는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지상에서 약 40일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셨따. 그리고 승천하셨다. 그런데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아들로서 그분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상징적이지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해야 할 사역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의 중보자로서의 기능이 있고, 둘째로, 대제사장으로서 회개할 때에 죄를 속죄해주시는 기능이 있으며, 셋째로, 그분이 마지막 날에는 재림하시어 악의 무리를 처단하시고 주님을 믿고 따랐던 자들에게 상주시는 심판주로서의 기능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때까지는 적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심판주로서 그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더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4.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는 아니신가?

  그렇다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님은 아들인가 아니면 아버지인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니 '아들'이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영원히 '아들'이신가 하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하는가?

 

 

5. 구약성경에 나타난 아들의 하나님되심과 아버지되심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6. 예수님께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통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7. 아버지의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

 

 

 

8. 예수께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오신 것인가?

 

 

 

9.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어떤 것인가?

 

 

 

10.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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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6)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5)(계4:10~11)_2022-05-03(화)

https://youtu.be/CxT21ZS9uFc [혹은 https://tv.naver.com/v/26610426 ]

 

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주 하나님이셨다. 그러다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사람들이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몰랐다. 그러다가 그분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절대 다시 살아서 나타나실 수가 없는데, 제자들 앞에 쑤욱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을 닫았지만 그냥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구운 생선도 받으시고서 잡수셨다(눅24:42~43). 그리고 순간적으로 사라지셨다. 그분은 죽고 이제 부활체를 입으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원래 부활승천이후 주 하나님이셨던 상태로 되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적어도 6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이 어떻게 증거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존재론적 측면에서 볼 때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 세세토록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계1:17~18).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분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요(계1:4,8, 4:8, 11:17, 16:5), 한 때는 죽음을 겪으셨지만 다시 살아나 영원토록 살아 계신 이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1:18). 둘째 그분은 사역적인 측면에서도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계2:22~23). 그래서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셨다. 모든 것을 그분이 시작하시었으며 앞으로 그분이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시기 때문이다(계2:17, 22:13). 셋째로 호칭적인 측면에서도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자 하나님이시며, 보좌에 앉으신 이요, 대주재이시다. 그래서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님께서 주 하나님과 똑같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심이 인간의 대표자들인 먼저는 '24장로들'에 의해서 그리고 '천사들'에 의해서 선포되고 있다. 첫째,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대표자로서 24장로들이 주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다음과 같이 찬송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당신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만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물들이 당신의 뜻 때문에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물들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4:11) 그렇다. 24장로들은 모든 만물이 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분의 뜻 때문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만물들은 그분이 창조하셨기에 그분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고 있었다. 둘째, 천국에서 천사들이 주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즉 요한계시록 10장을 보니, 한 힘센 천사가 주 하나님을 가리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가 하늘과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땅과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바다와 그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다(계10:6). 그리고 세 천사 중 한 명의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왜냐하면 그분의 심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하늘과 그리고 땅과 그리고 바다와 그리고 물들의 샘들(원천들)을 만드셨던 이를 경배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계14:7). 그렇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것도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골1:15, 출20:11, 창2:1). 그리고 그것 안에 온갖 것들을 다 만드셨던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으로 존재하게 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창조와 관련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창조와 관련하여 딱 2가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는 그분을 옛 창조를 시작하신 이로 표현하고 있다(계3:14). 또 하나는 새 창조를 시작하신 이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계1:5). 먼저 그분은 옛 창조를 시작하신 이이시다. 그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일곱 금촛대('교회'를 상징함)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로 묘사되었는데, 그분은 사도 요한더러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게 하신다. 그때 각 편지들마다 서두에서 그 편지를 보내고 있는 이가 누군지를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분은 예수님이시다(계1:13~20). 그런데 그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에 그분은 당신을 3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세 번째 소개가 바로 당신 스스로를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기초, 근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아르케)'이라는 단어다. 한 마디로 한 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창조의 시작을 예수님이 비로소 열었다는 것이다. 그분을 통하지 않았다면 창조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은 첫째로, '그분 안에서', 둘째는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셋째는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골1: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 왜냐하면 하늘들과 땅 위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채 있기 때문이다"(골1:16).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 교회와는 떨어진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읽혀지고 있었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골4:16).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골로새서가 증언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뜻은 무슨 뜻인가? 이는 주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예수께서 그 시작을 여셨던 분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만물이 생겨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만물은 다 그분 안에서 비로소 창조되었으며,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골1:16). 그러니 그분 안에서 창조되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요1:3). 고로 그분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 또한 만물의 주인이시다. 심지어 사탄 마귀와 귀신들의 주인까지 다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자신을 창조한 주인을 몰라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 땅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다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하지만, 인간만이 그분을 거역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능력있는 자들 곧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다 자신을 창조하신 이를 경배하고 찬양드리는데, 인간만이 자신의 창조주를 소홀히 생각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배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서 주는 박사를 수십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 때 그가 빌딩을 수백 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면 그의 인생은 꽝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죽으면 저 하늘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아니 그들은 자신을 창조한 이를 경배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5월 03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4)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3)(계1:8, 17~18)_2022-04-29(금)

https://youtu.be/rSuoxN0mv2k  [혹은 https://tv.naver.com/v/26519317 ]

 

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은 어떻게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제자들이 분명하게 알아차린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다. 그 이전까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 정도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제자들 앞에서의 나타남은 제자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분이 원래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만져 보았던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곧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40일간 부활하신 것을 보여 주신 예수께서는 40일 후에 승천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그분이 지상에 계셨을 때에도 그분은 역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려 준다. 지상을 거니시는 하나님이 주 예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요14:9)"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내가 하는 말은 나 스스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그분의 일을 하고 있으시는 것(요14:10)"이라고 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같은 분 곧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원래 한 분이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은 영원 전에 아들로 계시던 분이 육신을 입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며(딤전3:16),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요16:27~28). 다시 말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영원 전부터 아들로 계시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협의한 끝에, 누가 내려가서 인간을 대신하여 죽을 것인지에 대하여 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있었고 그리하여 아들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영원히 하나님은 세 분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이 아니고, 아들이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같다는 교리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세 분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한 분이시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할 때에는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것이며, 신약 시대에 제자들과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자신은 '아들'로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이 되신 것이라고 해야 한다. 

 

3.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를 요한계시록 1:8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부터 나온다. 즉 요한계시록 1장 8절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자기가 누군지를 알려 주시기 시작하셨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1:8). 이말은 번역이 조금은 미흡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것을 헬라어 원문을 따라 번역하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지금도 계시는 이 그리고 지금까지 계셔 온(아직도 계시는 이) 그리고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전능한 이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라든지 '지금도 있고(계시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며 '전능한 이'는 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는 말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 끝에 가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고 계시는 분이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계22:13).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하나님의 자기 선언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 선언을 하셨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이나 예수께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자기 선언이 나온다. 나오는 구절은 총 네 구절이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자기 선언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것은 총 3가지 종류의 선언들이다. 그러나 의미는 같은 것이다. 우선 그 말씀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시작과 마침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요한계시록 1:8에서는 주 하나님이신 이 곧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6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리고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7에서는 예수께서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3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리고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하셨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한 분 하나님 곧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이는 자신을 처음 소개하실 때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소개하셨다. 하지만 맨 나중에 가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며,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들로 오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우리가 알아야 할 놀라운 사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시고 선언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딱 2가지로 선언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그리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사41:4, 44:6, 48:12)"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로소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실 때 이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어느 위격이 단독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기를 표현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 분이신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혹은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표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의 칭호들 가운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하는 뜻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알파'는 헬라어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헬라어의 마지막 글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3종류의 자기 선언은 다 똑같은 뜻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시간 밖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모든 것을 마치시는 통치자요 전능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분이야말로 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시며, 심판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선언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분만이 모든 것을 시작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모든 것을 끝낼 만한 능력을 갖추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예수님은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며 심판자로 믿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시작했던 것을 끝내시는 시점이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날을 대비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그날을 대비하는 자가 그때 슬피 울며 통곡하지 않을 것이다. 

 

2022년 04월 29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1)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시다(01)(계1:1~8)_2022-04-26(화)

https://youtu.be/DmISlHynFz0  [혹은 https://tv.naver.com/v/26518040 ]

 

1. 우리는 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는 2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때 회심으로서 회개를 하고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모른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과 끝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상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지혜와 능력이 출중하여 인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들보다 더 뛰어난 지혜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며 섭리하시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2. 지상을 거니셨던 예수님 곧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공관복음에 나온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께서 누구신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만을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일 뿐이다. 좀더 말하자면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은 그분을 어떻게 믿었을까? 처음에 그들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뛰어난 선생님(랍비)이나 혹은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민족을 구원해 주신 분, 그리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병든 자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분의 공생애 기간이 다 끝날 무렵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훌륭한 선생님이나 선지자 정도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제자들의 신앙 고백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을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매우 탁월한 고백으로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분의 신분에 대한 계시적인 고백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실로 엄청나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에게는 최소 2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마16:18~19). 이 중에서 '음부의 권세'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음부의 문들'이다. 그럼, 음부는 무엇인가? 사람이 죄값으로 인하여 죽게 될 때에 죽은 영혼을 빨아 당기는 세력 있는 문들이다. 이 문들은 지구의 곳곳에 있기에 복수로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벗을 때면 사망이 죽은 사람의 영혼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의 영혼을 집어 삼키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그 권세가 더 이상 그 영혼을 이기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계2:11). 그렇다면 '둘째 사망의 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을 가리킨다(계21:8).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수님을 진실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다면 그의 영혼은 최소한 둘째 사망의 해 곧 불못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실제로 천국에 가 보면 천국에 진짜 들어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성밖 곧 새 예루살렘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밖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불못에 던져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가 보면 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천국 열쇠를 받는 복을 받게 된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남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 곧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지상을 거니셨던 바로 그 예수님 수준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분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계3:21). 다시 말해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인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그분이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천국에 올라가셔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때부터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본래부터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육체를 입고 오셔서 목수로 30년 동안 사시고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럼, 언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분의 부활 사건이다. 그분이 죽고 난 이후에 그분을 믿고 따르던 제자부터 시작하여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자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분이 진짜 누군지를 잘 몰랐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정도로 생각했다(눅24:19). 만약 제자들이 진짜로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면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다 도망갈 리가 없었을 것이요, 풀이 죽어 마가 다락방에 숨어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 이후에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문을 닫아 놓았는데 그분이 그냥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그분은 죽고 무덤에 묻히셨었는데 살아서 다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못 오는데 그분이 오신 것이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람이셨지만 사람만이 아니셨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이 자신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지만, 더욱이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40일 동안 그분을 여러 번 뵈온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마가 다락방에 모여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오순절날에 성령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은 채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5.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고백은 누가 고백한 것이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신앙 고백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디두모(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였다. 도마는 예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거기에 있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 사실을 믿지를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흐르자 주님께서 일부러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때도 역시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빌었다. 그때였다. 주님께서는 일부러 의심 많은 도마에게 가시더니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그러자 즉시 도마가 대답하였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나의 그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그 하나님이십니다(혹은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음)"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의'라는 말을 뺀다면,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것도 둘 다 정관사가 붙어 있다. "호 퀴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 무(The my Lord and The my God)". 참고로, 요한복음에서 '주'라는 호칭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쓰이며,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지 않지만, 부활 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는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분이 유일한 주가 되시며 유일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22장에 가서 '주 하나님'(1:8, 4:8,11, 11:17, 15:3, 16:7, 18:8, 19:6, 21:22, 22:5,6)이라는 용어를 '주 예수'(계22:20,21)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2년 04월 26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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