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_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01)_2022-05-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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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

회개와천국복음(정병진) |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10)(계19:11~16)_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01)_2022-05-10(화) https://youtu.be/H7cG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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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전능하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라는 뜻은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예수께서도 역시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어떻게 자신이 전능자이심을 나타내셨는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3년 반의 공생애를 이 지상에서 사셨다. 그때에 그분은 자신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셨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에게 찾아온 모든 사람들의 문제 하나라도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냥 보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분은 당시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도 살려 내셨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말씀 한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였으며, 바다 위로 걸어 오시기도 하셨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이기에 낙원에 가 있던 구약의 두 인물들 곧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오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분이시기에 이 세상의 임금(왕)인 사탄 마귀를 세 번씩이나 이기셨으며,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음부에 내려가셨지만 죽은 지 3일 만에 그분은 스스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거기에서 걸어 나오실 수가 있었다. 그분은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뜻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으시다는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4가지 뜻을 가진 것이다. 첫째는 그분이 창조주이시다는 뜻이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분만이 없는 것을 창조해 내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분이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분는 못하실 것이 없으시므로 망가진 어떤 것이라도 다시 회복시켜 놓으실 수 있으며, 원래 가지셨던 뜻대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1:8)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는 놀라운 표현인데, 이 말의 깊은 뜻은 그분이 시작하시고 그분이 끝내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며, 그분만이 모든 것을 시작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는 그분이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만약 그분이 당신이 만드신 창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하실 수 없다면 그분은 전능한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분의 손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분의 주권하에 있어야 그분이 전능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 넷째는 그분이 심판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뜻에 복종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겠지만 만약 그분의 뜻을 거역한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심판하여 처벌할 수 있을 때에 그분을 전능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어떤 자에게는 상을 주시겠지만 어떤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4. '주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 곧 '전능하신 이'이다. 요한계시록과 신약 성경에서는 전능하신 이에 대해서 몇 번 말씀하셨는가?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이(전능자)라고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말씀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총 10번 밖에 안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능하신 이'에 대한 단어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9번 나온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린도후서 6:18에 나올 뿐이다. 즉 신약 성경에서는 주 하나님께서 곧 전능하신 이라고 하는 표현이 오직 요한계시록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분이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라는 표현은 총 7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그리고 나머지 2번은 '하나님 전능하신 이'로만 나온다(계16:14, 19:15).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관한 계시를 담고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지를 소개해 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에 대한 7가지 사용 용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전능하신 이는 주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신 이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시다(계1:8). 둘째, 전능하신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표현되는 분으로서 거룩하신 분이자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계4:8). 셋째, 전능하신 주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왕 노릇하시는 분이시다(계15:3). 넷째, 그분은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으로서 만국의 왕이 되시며 그분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계15:3). 그분이 바로 이 세상의 강을 건너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고 있는 만국의 왕들 위에서 왕 노릇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분은 전능자로서 참되고 의로움으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계16:7). 그분은 재판을 굽게 하지 않으신다. 여섯째, 그분만이 전능자이시기에 모든 만물 위에서 왕 노릇하실 수 있으시다(계19:6). 마지막으로 일곱째,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에 그분은 어린양으로도 표현되시는 것이다(계21:22). 

 

5. 현재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어떻게 요한계시록에 기록하였는가?

  예수께서 천상에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 여실히 증거되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 그분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소개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밝히셨기 때문이다(계3:14). 또한 둘째로, 그분은 구원자요 완성자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짐승을 이기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노래를 하는데,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10)". 그렇다. 모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골1:16). 그때 그분은 어떤 뜻과 목적을 가지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나중에 재림하실 때에는 그분의 뜻과 목적을 다 이루시고는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이다(계21:6). 그리고 셋째로, 그분은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당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의 통치자이시며(계19:15~16, 19~20), 무엇보다 이 지상의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시며, 동시에 천국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하고 있는 이들 곧 천국의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기도 하시기 때문이다(계1:5~6, 15:3). 마지막으로 넷째, 그분은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인자(사람의 아들)가 됨으로 인하여 모든 이들에 대한 심판을 맡으셨기 때문이다(요5:22,27). 그러므로 맨 나중에는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다 그분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25:31~32, 고후5:10, 계20:11~15). 특히 모든 악의 세력들이 장차 한꺼번에 주 예수님께 대항하는 전쟁을 벌일 터인데(아마겟돈 전쟁), 그때에 주님께서는 심판주로 오셔서 그들을 모조리 쳐부숴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심판주로서 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10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9)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8)(계3:5)_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다(1)_2022-05-06(금)

https://youtu.be/L87C_JHi--E  [혹은 https://tv.naver.com/v/26759086 ]

 

1. 요한계시록에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은 이미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계3:21).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계1:8, 1:17, 22:13). 그러나 그분은 아직도 아들로서 해야 할 사역이 남아 있다. 그러한 일에는 재림과 심판 사역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 그분이 아들로서의 사역을 마치게 된다면 그분은 이제 모든 것을 끝마치시고 안식하시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된 것이며, 그분을 위하여 된 것이었다(골1:16). 그러므로 그분께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그것들을 완성하시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작하셨던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하여 1차적인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셔서 주 하나님으로서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예수님은 주 하나님께서 가지시고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곧 그분은 첫째로, 주 하나님이시다(계1:8, 22:20~21). 둘째로, 자기 스스로를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계1:4,8, 2:8, 21:6, 22:13). 셋째로 그분은 자신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 자'로 말씀하신다(1:4,8, 4:8, 11:17, 16:5). 넷째로, 그분은 전능한 자이시다(1:8, 4:8, 11:17, 15:3, 16:7,14, 19:6,15, 21:22). 그리고 다섯째로,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이시다(계10:6, 15:7). 그리고 여섯째로,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4:2,3,9,10, 5:1,7,13, 6:16, 7:10,15, 19:4, 21:5)이시다. 그리고 일곱째로 그분은 창조주이시다(계4:8,14:7). 그리고 여덟째로서,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시다(계1:17, 22:13, 22:1,3, 3:21). 

 

2.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가?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렇게 말씀하신다(계2:27, 3:5, 3:21). 그리고 사도 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증거하고 있다(계1:6, 14:1)

계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아들로서 해야 할 사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사탄 마귀의 세력들을 쳐부술 일과 진실한 성도들 곧 이기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과 심판과 상급 수여가 끝날 때까지 예수께서는 주 하나님이시지만 여전히 아들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실 것이다. 

 

3. 실제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하나라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구약의 성경은 무엇인가?

  분명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나를 보내셨던 자(아버지)"라고 지칭하셨다(요8:18,14:23, 17:18,25). 그리고 자신은 "보냄을 받은 자(아들)"라고 말씀하셨다(요8:32). 그러나 보내셨던 아버지와 보내심을 받은 아들은 '둘'(two)이 아니라 '하나(one)'라고 말씀하셨다(요10:30).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요(요14:9~10),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요14:10). 그런데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말씀하는 것이고, 구약 시대에도 예수님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사야서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야서만을 읽어서는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사야서와 요한복음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함께 읽을 때에라야 그것을 발견하기가 용이하다. 왜냐하면 이사야서에서는 첫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 선언은 오직 여호와께서만 하셨기 때문이요(시41:4, 44:6, 48:12), 둘째,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오실 길을 예비할 자를 보내신다고 하셨는데, 그는 바로 선구자로서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사40:3). 그런데 실제로는 예수께서 오셨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그 길을 예비한 자는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이다(마3장,막1장,눅3장,요1장). 셋째,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이 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사44:24).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곧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모여 협의를 했다는 것과 같은 진술은 구약에 없기 때문이요, 창1:26~27의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기 때문이다(전 총신대 구약학교수 김정우 교수 논문 참조). 고로 이사야서는 메시야에 대해 예언으로서의 가장 탁월하고 많은 분량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아주 많은 분량의 예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4. 이사야 선지자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주 하나님 되심의 증거는 무엇인가?

  이사야서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주 하나님 되심의 증거는 무엇인가? 사실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A.D.700년경이었지만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탁월한 계시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러면 이사야서에서 들려주는 예수님의 주 하나님 되심의 증거들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이사야서에서는 누군가 '여호와의 오실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세례요한에 주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만이 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3:14). 셋째, 여호와만이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나는 처음으로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계22:13). 넷째, 이사야서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는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것인데 그 아기와 아들은 '기묘자인 모사(뛰어난 보혜사)'요, '전능한 하나님' 혹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울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사9:6), 실제적으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보혜사와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5.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였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지를 잘 몰라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그들은 예수께서 만세 전부터 하나님으로 계셨던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요한복음에서는 바로 첫 장부터 알려주고 있다. 즉 요한복음에서는 1장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으로 계셨다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는 곧바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요1:1~3, 49).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지만, 둘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10:30). 그리고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심으로 예수께서 곧 아버지라고 보아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4:9). 아버지가 아들과 어떠한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시간 관계상 다음 시간에 또 계속적으로 더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5월 06일(금)

정병진목사

 

우리가 가족을 전도할 때에는 다른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말씀만을 가지고 전도하는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해줄 때 반드시 전해 주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베드로는 그것을 두고 불신자들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가진 소망이라고 했다. 성경은 그것을 3가지로 말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것들 중에서 무엇을 가장 놓치고 있는가?

 

2022-01-30(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대답은 무엇인가?(벧전3: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IBLW1rtbB0 [혹은 https://tv.naver.com/v/24913239 ]

 

1. 들어가며

  명절이 되면 늘 생각나는 것은 가족이다. 왜냐하면 모든 믿는 자는 나의 가족을 구원하고픈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전도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가족전도는 말로 하는 전도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가족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아직까지 자신의 성품이나 성격이 달라지지 않았고, 내 삶에 뚜렷한 변화가 없는데도 불신가족을 향하여 나를 보고 예수 믿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불신가족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신가족을 전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가족전도를 할 때에 어떤 것으로 전도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불신자들이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었을 때에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일반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위치에서 이 부분을 점검하고자 한다. 특히 내가 전도할 때 과연 무엇을 전해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전도할 때에 내 가족이 내가 전해주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때에 꼭 전해주어야할 핵심 3가지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올 때에 우리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는가? 사도 베드로는 누군가가 그것을 물어오면 언제라도 그것을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복음을 전파할 때에 꼭 들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빠뜨려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소망하고 있는 그것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복음을 전해줄 때에 이 세 가지 것을 항상 마음에 염두에 두고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중간에 예화도 집어넣고 말씀도 집어넣고 내 삶도 들려주면 된다. 그럼, 복음의 핵심요체 3가지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천국'과 '예수님'과 '회개'다. 이 세 가지 것들 중에 한 가지라도 빠뜨리게 된 안 된다. 신앙생활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우리는 위의 3가지 요소를 균형있게 바르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3.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소망에 관한 말씀 곧 복음의 첫 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그럼, 누군가 내가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에 관한 소식이다. 이것은 모든 성도의 최종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도 언젠가는 도래할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모든 성도들은 고대해야 한다고 말했다(벧후3:12~13). 그렇다. 우리가 꿈에도 이루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가 원래 보내어졌던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다. 천국에는 사실 악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서는 병도 없고 저주도 으며 슬픔과 죽음도 없다. 고로 우리의 소망이란 바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곳에 자연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첫 시조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람들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롬5:12). 그리고 내 속에 잠재된 죄된 본성은 나도 모르고 나타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말과 행동을 지배하여 죄를 짓게 된다. 왜냐하면 죄된 본성은 우리에게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그리고 이 생에 대한 자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면 우리는 저마다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죄를 가진 채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신다.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도 동시에 소유해야 한다. 누군가 사자의 왕국에 들어가서 살려고 한다면 그는 사자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물고기 왕국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다면 그도 역시 물고기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로 우리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치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채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전15:45).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그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둘째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4.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소망에 관한 말씀 곧 복음의 두 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소망에 관한 두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그분이 왜 이 세상에 들어오셨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들려주는 것이 복음전파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분은 왜 이 세상에 들어오셨는가? 그것은 알고보면 간단하기만 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마26:26~28).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죄를 지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로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해주시기 위함이고, 둘째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즉 죄사함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가? 먼저는 인간의 죄값을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려 죽으셨다(막10:45). 왜냐하면 죄값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 그것은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우리에게 주시려고 당신을 대신하여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지금도 그 생명을 받을 수 있다(요5:26, 11:25~26). 이 생명을 받은 자만이 결국에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런 자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들려주고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게 하는 것이 전도인 것이다. 

  

5.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소망에 관한 말씀 곧 복음의 세 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세 번째로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말씀을 묻는 자들에게 들려줄 세 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물론 회개해야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회개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믿기 전에 하는 회개는 이제 회개를 시작하는 회개를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 행하는 회개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행하는 회개는 2가지로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회개'가 있고, 또한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한 회개'가 있다.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일평생 한 번 행하는 회개이지만, 나머지 2가지는 일평생 반복적으로 행하는 회개인 것이다. 그럼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왜 하는가? 그것은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어주신 하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섬기고 살아왔음을 회개하는 것이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는데도 그분을 믿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한 회개'를 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행하는 회개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는 한 번 예수님을 믿은 자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이제 구원의 노정에 첫 발을 내딛은 것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죽는 날까지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하며, 주님을 끝까지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날마다 회개함으로써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다든지 간음을 행하는 자는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서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더라도 죄를 짓기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가 죽는 날에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계3:5). 그럼, 이미 예수믿은 자가 되었지만 끝끝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구원 탈락이다. 그때에는 새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든지(계22:15), 아니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히 불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계21:8). 그러므로 예수믿은 자라도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적인 회개를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6.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회개는 왜 해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지만 반복적인 회개는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저주로부터 벗어나 형통함을 얻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회개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한 회개'다. 그런데 저주로부터의 회개에도 2가지 방면이 있다. 하나는 내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방면이 있고, 또 하나는 내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방면이 있다. 내가 지은 죄들은 내가 지었으니 내가 응당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국에도 들어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회개 곧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방면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짓지도 아니한 조상들의 죄를 왜 내가 회개해야 하느냐면서 반문하기도 한다. 그런 자는 회개하지 않고 그냥 살면 된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 이 방면의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기를 바란다. 첫째는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후손들에게 내려온 악한 영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몸 안에서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면 그 영들이 우리 몸에서 떠나기 때문에 그들이 인하여 생겨난 질병들이 없어져서 낫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조상들로부터 후손에게 내려온 악한 영들은 우리 몸 안에서만 아니라 우리몸 밖에서도 일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손과 발을 묶어서 물질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새어 나가기는 하지만 물질이 안들어온다면 그는 조상들의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는 자녀의 앞길이 열려진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 때문에 우리의 자녀의 앞길이 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들의 죄를 회개할 때에 이 영들이 떠나감으로 우리 자녀의 앞길이 스스로 열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그냥 내 자식을 도와주는 것이다. 어느날 지혜가 임하고 정신 차리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시험을 치면 합격장이 날아오고, 사업을 해도 더 이상 망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망하게 하는 영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줄 때에는 이러한 회개가 있다는 것을 꼭 가르쳐주어야 한다. 고로 복음을 전할 때에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가서 전달하면서 그것을 보고서 차근차근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의 길을 잘 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회개도 잘 하게 될 것이다. 

 

7. 예수믿고 나서 회개하는 일은 왜 그리 중요한가?

  그러나 그간 우리가 해왔던 회개는 어떤 것이었는가? 한 번 회개해서 죄사함을 받았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회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믿을 때에 받은 죄사함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회개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회개를 구원받는 회개로 알고 있다.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회개는 '회심으로서의 회개'일 뿐이다. 그것은 일생에 한 번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 구원의 노정에 첫 발을 내딛었으니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회개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회개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는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주시는 형통함을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과 더불어 내가 과거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들도 같이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지은 죄들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이미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몸 밖에도 수많은 영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의해 지금도 우리가 병들고 있고, 사건사고를 당하고 있으며, 재물이 들어오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자녀들의 앞 길이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이 땅에서 형통함의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며, 나 자신이 예수믿기 전에 지은 우상숭배의 죄도 같이 회개해야 한다. 이것을 가르쳐주어 그들로 하여금 형통함을 경험하게 해 줄 때, 그들도 드디어 가족들을 전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8.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할 때 불신자에게 무엇을 전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누군가가 우리 믿는 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었을 때에 무엇을 답해주어야 하는지를 들었다. 그것은 총 3가지였다. 그것은 '천국'과 '예수님'과 '회개'이라는 것이다. 이 중에 어느것 하나도 빠뜨리면 아니 된다.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이기 때문이요, '예수님'은 그것을 얻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효하게 되게 하고 또한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누리는 축복을 얻기 위하여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덜 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전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맞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도 같이 전해주어야 한다(사9:6, 딤후3:16).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에 의해 이 땅에 보내어졌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분은 분명 아들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시대에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약화시켜 놓았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의 영역에서 '회개'라는 부분을 빠뜨려놓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전도에는 '천국'보다도 이 세상에서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 세 가지 것을 다 전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복음, 참된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회개 중에서 저주로부터 해방받기 위한 회개는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회개의 능력을 경험하고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쉽게 가족전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회개를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그것을 들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그들이 보게 된다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 번째 방면의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이는 불신가족들의 마음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국이요 예수님이지만, 회개를 통한 축복도 꼭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것도 함께 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1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69) 또 하나의 영적 계승자로 축복받은 유다의 삶과 그가 받은 영광(창49:8~12)_2021-08-04(수)

https://youtu.be/2DfsIJudPnY  [혹은 https://tv.naver.com/v/21700693  ]

 

1. 야곱의 장자권은 누구에게로 넘어갔나요?

  야곱의 장자권은 원래 큰 아들 르우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그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도 분노와 혈기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임으로 장자권은 4번째 아들 유다와 사실 11번째 아들 요셉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중에서 영적인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넘어갔으며, 물질적인 장자권은 요셉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2. 야곱의 장자권이 요셉과 유다에게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곱의 장자권이 우선 요셉에게 넘어간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러한 안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명을 받아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요셉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장자권은 그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충실하게 그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로 장자권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에게로 넘어간 이유는 그가 그러한 축복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죽을 요셉을 살려내었으며, 자기 가족들을 기근으로부터 건져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려고 했던 헌신적인 책임자였기에 장자권은 르우벤에게서 유다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왕권은 이제 요셉과 유다지파에게로 전승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야곱의 장자권이 유다와 요셉에게 있다는 것은 어떻게 예표되었나요?

  사실 야곱의 장자권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두 배의 땅을 기업으로 약속받은 요셉에게로 넘어갔으며, 또 하나는 메시야를 낳을 영적 계승자인 유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이 야곱의 장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되었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죽고 난 후 약 300년이 지난 시점에 고스란히 성취 되었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이 경과보고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매우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면서 어서 가서 그것을 취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땅에 신장이 거대한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했으니 가서 차지하자고 말한 것입니다(민14:6~9). 결국 당시 광야로 나왔던 출애굽 1세대들 가운데 오직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두 명이 바로 요셉과 유다의 지파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즉 여호수아는 요셉의 장남이 된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요, 갈렙은 유다 지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민13:6,8).

 

4.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으로서 왕권에 대한 예언은 누구를 통해서 실현되었나요?

  야곱은 유다에게 장차 그가 형제들로부터 절을 받을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며, 그가 원수들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창49:8). 그랬는데 정말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B.C.1010년에는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서 왕이 된 다윗에게 모든 이스라엘의 지파가 엎드렸습니다(삼하5:1~5). 왜냐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곧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베들레헴 출신으로서 30세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A.D.96년경 천상의 예배광경을 지켜보던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누가 두루마리를 받아 펼칠 수 있는가?" 하는 힘있는 천사의 질문에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양이 그 일을 할 것이라는 소리를 24장로의 한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계5:5). 그렇습니다. 유다 지파의 후손에 메시야의 예표인 다윗이 있었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유다에게 "너는 사자 새끼(젊은 사자)"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예서께서 30살의 젊은 나이에  이 땅에 물질계와 영계의 왕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이 세상 임금의 머리를 박살냈으니, 야곱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성취가 된 것입니다. 

 

5. 야곱은 유다지파에서 나오게 될 약속된 메시야를 어떻게 예언했나요?

  야곱은 유다에게 축복하기를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가 유다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창49:10). 이는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남유다의 왕이 유다지파에서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영적인 장자의 축복을 받았던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탄생하기까지 유다의 후손들 중에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윗을 필두로 왕은 계속 되었으니, 만약 남유다 왕들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왕위를 이어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이었던 남유다의 왕들의 범죄로 인하여 남유다는 20대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왕위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왕위가 언제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언했는데, 그것은 "실로가 오시기까지"였습니다(창49:10). 여기서 "실로"란 히브리어로 "그것을 가진(소유한) 자"라는 뜻으로서, "왕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실로'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야곱은 그가 오시면 암나귀와 나귀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 예언을 을 이루었으니, 그가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포도주처럼 붉은 피를 흘리시어 인류의 속죄제사를 완성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창49:11~12). 그렇습니다. 유다는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예정된 안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서 그가 행했던 행위들을 통하여, 그는 영적인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후손들 중에서 수많은 왕들을 배출할 수가 있었으며,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아시고, 장래에 우리가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위해 오늘도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처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08월 0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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