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가?(골1:15~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fq33urOS9s  [혹은 https://tv.naver.com/v/30434246 ]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가장 먼저 아들을 낳으셨다(골1:15~17).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그분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아들' 또는 '독생자'라고 증언한다(요일4:9~10).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아들은 아버지만 못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아들은 피조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한 하나님이 되는 것도 아니며, 아들이 피조물이 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래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요8:42). 고로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을 가리켜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아들을 가리켜 '먼저 나신 이'라고 증언하였다(골1:15).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신 것일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혼자서 모든 일을 행하시면 되실 것을 왜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 것일까? 거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은 먼저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 아들을 낳으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아들을 낳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만물이 생기기 전에 먼저 낳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들을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라고 증언하고 있으며,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으며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증언하였다(골1:16).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살아생전에 마가 다락방에서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창세전에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지금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요17:5). 그러므로 아들은 만세전에,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도 전에 먼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이자 만물의 창조자이신 아들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로고스)이라고도 증언하고 있다(요1:3). 만물이 말씀을 통하여 생기게 되었으니, 만물이 말씀이 없이는 하나도 있게 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 이때만 해도 아들은 아직 육체를 입지 않으신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도 역시 아들은 보이지 않는 영체로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한 번 태어난 것이 아니다. 실은 두 번 태어난 것이다. 먼저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먼저 태어나셨다. 그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셨다. 그런데 만세전부터 아들로 계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 또 한 번 태어나셨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 태어난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때에 자신을 가리켜 1인칭 대명사로서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없이 태어난 그분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언급했으며, '둘째 사람'이라고도 말했다(고전15:45,47). 왜냐하면 아담 이후 그분은 사람으로서는 죄없이 태어난 유일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해서 아들이 하나님보다 부족한 존재이거나 그분을 피조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으니 그분은 아버지보다 더 부족한 분이거나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하나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요10:30). 그래서 아들은 결코 아버지로부터 분리할 수가 없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만 구별할 수는 있지만 분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증언하시기를 "나 자신과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0:3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요14:9~10), "나를 믿는 것은 나를 보셨던 이(아버지)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2:44~45).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보다 부족한 분이 결코 아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스스로 계신 분'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증언하셨기 때문이다(요8:24,28,58, 계1:17~18, 22:13). 즉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께 "너는 누구냐?"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온 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요8:24,28,58).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는 "내가 그"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출3:14~15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 주실 때에 당신의 이름으로 사용하신 것을 그대로 예수께서 인용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천국에서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하늘에 계신 아들 예수께서 사도 요한을 불러내어 그에게 말씀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계1:127~18).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계22:13). 그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이 예수께서 처음 사용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에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을 무려 3번씩이나 하셨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 곧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을 먼저 하셨으니, 구약으로 치자면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친히 증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다고 해서 아버지보다 부족한 하나님이거나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9:5).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분의 발 아래 만물이 있는 것이며, 그분은 만물의 머리로서 만물의 통치자이신 것이다(엡1:2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리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라고 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이셨던 예수님을 가리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증언하였다(계17:14, 19:15~16).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하나님께서 굳이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왜 굳이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것일까? 그것은 먼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만물들에게 자신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그런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들로서 표현하지 않았다면, 피조물은 영영토록 하나님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를 영원토록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노릇하는 거짓 영들에게 속아 피조물인 귀신들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영으로서 그분은 죽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누구도 그분을 볼 수 없으며 보이지도 않는 분이다(딤전6:16). 심지어 영물인 천사들도 본 적이 없으며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피조물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 곧 아들인 것이다.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둘째, 피흘릴 수 없고,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낳으신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하고 반역한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피와 살을 갖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으실 수가 없다(딤전6:16).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마귀의 말을 들어 영원히 죽게 생겼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인간을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 대신 죽기로 결정하셨다(히2:9).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죽으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죽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셨고, 아들로 하여금 종의 형체인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죽기 위해서 낮고 천한 종의 형상인 인간의 육체를 입고 태어나셨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이 되신 후에 또한 죽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2:14).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역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 놓고 행한 설교에서 교회를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획득하신) 교회"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과정이 곧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셔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되고자 했던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이 되신 것이다. 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은 원래 하나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마귀가 되고 귀신이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보았을 때 육체를 가진 인간은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사람인 이상 그를 죽여 없애버리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사람들을 배후 조종하여 죄 없으신 그분을 거짓으로 고소한 끝에 십자가에서 죽게 한다. 하지만 사망 권세는 오직 죄를 지은 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일을 통해 사탄 마귀는 불법자가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여 이 지상에서 내쫓아 지옥(음부)에 가둬버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 마귀는 지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의 부하들인 귀신들만 올려보내어 그의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요일3:8),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고자 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히2:14). 

 

5. 구약시대에 아들은 과연 어떠한 상태로 계셨는가?

  그렇다면 아들이 육신을 입지 않고 계셨던 구약시대에 아들은 어떤 존재로 계셨던 것일까?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에 비로소 붙여진 이름이므로, 그분이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에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는 '아들' 내지는 '말씀'으로 계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신격에 있어서 그분은 아버지와 항상 하나이기 때문에 그분도 역시 어느 누구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피조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부터 먼저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아들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그것은 최소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자 영광의 빛(광채)(히1:3, 요1:9)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 없는데 그분이 빛으로 나타나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빛으로 보여졌다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빛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이요, 그 계시의 통로가 바로 아들이었음을 말해 준다. 고로 구약시대에는 천사들도 역시 아들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임재를 빛으로서 조금이나마 감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도 그들이 빛을 직접 볼 수 없기에 두 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 했다. 그러므로 만약 구약시대에 아들이 보여진 존재로 있었다면 천사들도 그분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루시엘(루시퍼, 마귀)조차도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다. 이는 그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누군지를 알고 싶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은 맞지만 예수께서 육신을 입을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아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는 아들이 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말씀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아담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아들을 따라 창조될 수 있었으며, 만물들도 생겨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시대까지만 해도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으나 형체를 가지지 않는 영체로서 아버지와 같은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나타나실 때에 비로소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증언하였던 것이다(요1:18).

 

6. 나오며

  왜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기도 전에 아들을 먼저 낳으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분이 창조한 모든 만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제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게 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구약의 십계명은 그때는 아직 아들도 역시 육신을 입지 않았던 때이므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만들어 낸 우상을 섬길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계시고 또한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주신 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신 아들이 드디어 육신을 입고 아들이 되셨으니 우리는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만 경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중에 제자들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 경배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을 바로 하나님으로 경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분으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찌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 역시 놀라운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온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그분을 만세전부터 그리스도 특히 만유의 주인이자 왕으로 간증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간증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계시의 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자에게 주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고 했다(요17:3). 그런 자들이 아들의 나라인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2022년 10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10-16(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진리의 영이 오셔서 가르쳐주시는 궁극적인 진리란 무엇인가?(요15:23~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cEnENQscXY

 

1. 들어가며

  신이나 종교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신자나 불신자와 관계없이 관심이 많다. 삼성가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었던 이병철 회장도 신과 종교에 관한 질문을 24가지나 어떤 신부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 역시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다는데 과연 죄사함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우리가 거듭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데 나의 이름이 어떻게 생명책에 기록되는지 궁금하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지만, 그분의 제자 도마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했다고 하는데, 그럼 구약의 주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아들을 보낸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인지 늘 궁금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리에 관한 이러한 갈망을 잘 아시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이다(요15:26).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시는 궁극적인 진리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2.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는가?

  A.D.30년 1월경 이제 하루가 지나면 십자가에 못박힐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그리고 성찬식을 통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면서 곧 있으면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고 생명을 주실 것을 암시해 주셨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신을 핍박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핍박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은 제자들을 보낸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본 자는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를 본 것이며, 나를 미워한 것은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곧 아버지로부터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인데,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님을 증언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이유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할 것이고(요15:26) 모든 진리 가운데로 제자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6:13).

 

3. 진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진리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요한복음에 보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여러가지 단서들이 나온다. 요17:17에 보면,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나온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요1:14). 그때 예수께서도 오셔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14:6).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말과 그리고 행동이 다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4:9~10). 만약 예수께서 아버지가 아니라면 이것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왜 사람들이 이처럼 진리에 대해 알기를 갈망하는가? 그것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는데, 악한 자가 바로 거짓의 아버지 마귀이기 때문이다(요8:44). 그러므로 온 세상은 속고 속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진짜 진리를 접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 진리를 말씀하신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약 거짓말을 하신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서 사람되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와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4. 언제부터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셨던 것인가?

  우리는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던 빌립에게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9~1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셔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언제부터 아들 안에 있었던 것인가?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될 때부터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셨던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인가? 그런데 우리는 빌립보서와 골로새서 등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들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때에 이미 하나님의 모든 신격이 아들 안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빌2:6~7). 그렇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을 소유하고 있던 하나님이셨는데 아들로 태어난 채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때에 아들은 하나님과 동등됨의 신격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그분이 당신 자신의 아들 형상을 벗어 놓고 사람의 형상 곧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셋째 하늘에서 아들로 계셨으며, 그때에 이미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그의 몸 안에 거하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골2:9). 그러므로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때는 아직 인간처럼 육체를 입지 않으셨기 때문에 영으로서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 것은 갈4:6의 말씀처럼 셋째 하늘에 있던 아들도 그때는 영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으실 때에도 자신의 영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시는 것을 통해서도 예수께서는 영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눅24:46). 고로 육체를 입기 전에 아들은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아들은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아들의 영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연합된 영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5.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인가 아니면 그분이 아들을 보내신 것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딤전3:16).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말씀을 보게 된다(요3:16). 그럼 대체 어떤 표현이 바른 것인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인가? 우선 둘 다 맞는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둘 다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성육신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이 강조되든지, 아니면 삼위의 다른 활동이 강조되든지 하는 것이 된다. 즉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로 오신 것이 강조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아들로 태어난 채 있다가 아들이 육신을 입은 것이므로 아들의 위격이 더 강조된다. 그런데 그동안 회개와 천국복음에서는 하나님께서 한 분임을 강조해 왔다. 왜냐하면 도마가 예수님에 대해서 신앙고백할 때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곧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요20:28).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분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들이 원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증거는 성경에서 아주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요8:24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이 '스스로 계신 분(여호와, 에흐에)'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3에서도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강력히 증언하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오직 여호와께서 당신만이 홀로 하나님이며, 당신만이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해 오셨는데(사41:4, 44:6, 48:12), 예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위대한 두 사도들 곧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받으실 하나님"이라고 증언하였고(롬9:5), 사도 요한도 역시 "그분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요일5:20).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6. 예수께서는 언제부터 아들로 계셨는가?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언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하고 말이다. 예수께서는 언제부터 아들로 존재하신 것인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화목제물이자 구주로 보내셨다는 말씀을 볼 수 있다(요일4:10,14). 또한 하나님께서 죄로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말씀도 보게 된다(요일4:9, 요3:16).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독생자이자 아들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7:5의 말씀 곧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이미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창세전에 영광스러운 존재로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모다 먼저 나신 이'이며(골1:15),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과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골1:16~17). 고로 예수께서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즉 아직 시간과 공간이 있기도 전에 먼저 계셨으며, 그분이 독생자라는 말씀을 통하여 그분은 이미 아들로 태어난 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창조 전에 이미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아직 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시기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있게) 하신 것이다(갈3:4~5). 그리하여 이 땅에 그분이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은 영으로 태어난 채 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육체로 태어난 채 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고로 그분이 영으로만 있으셨을 때에 그분이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는 측면에서 그분은 아들이지만, 그분은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한 채 있었기에, 그분은 동시에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영이신 아들이 때가 차매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고로 그분이 영으로 태어난 채 있었던 영원의 시간에서 보면, 그분은 '독생자'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어났을 때에는 그분은 '사람의 아들(인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 전 아들을 낳으실 때에 이미 그분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것은 아버지의 생명으로서 영원히 사는 생명이자 아버지의 생명이다(요5:26). 그러므로 창조 전에 태어난 채 있었던 예수 안에는 이미 아버지의 생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 생명이 자기들 앞에 나타난 채 있었으며 자기는 그분을 직접 보았고 만져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요일1:2). 그러니까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요한의 시대에 나타나신 것이다(요일1:2).  

 

7. 아버지와 아들은 위격이 같은가 다른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체현이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그분은 아들로서의 인격을 갖추고 있었고 활동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그분은 아버지께 기도를 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마26:39).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양태론자들은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양태론자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과대 해석한 나머지 아들도 아버지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그때 예수님의 기도는 육체를 가지셨던 아들이 셋째 하늘에 계신 신성만을 가지신 아버지께 기도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육체를 입으셨던 아들이 죽은 것이지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육체의 겉사람이 죽은 것이지 영의 속사람이신 하나님과 아들의 영이 죽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한 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8.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같은가 다른가?

  그렇다면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과 우리 인간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다른 하나님의 아들인가?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됨은 같은 종류의 생명을 받아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차이가 있으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지만, 우리 인간은 아들이 받은 생명을 성령을 통해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는 자기 안에 신격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며(골2:9),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1:3, 골1:16~17, 히1:2).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결코 자기 안에 신격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피조물인 것이지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맏아들로 승격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동생들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분의 아들되심과 우리의 아들됨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편 예수께서도 역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원래 신격을 가진 하나님이셨기에 하늘에 오르신 이후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셨다(계3:21, 22:1~3). 그런데 '아버지의 보좌'는 대체 어떤 자리인가? 그것은 바로 통치의 보좌요 심판의 보좌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 앉아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고 또한 심판하여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승천하시어 한 개 밖에 없던 하나님의 보좌를 여러 개로 나누셨다. 그리하여 24보좌를 만들어 이겼던 자들에게 앉게 하셨다. 그리고 144,000개의 보좌 중에서도 왕 노릇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통치와 심판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 아닌가? 하지만 이기는 자들에게도 그러한 역할을 나눠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분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만 해도 송구스럽고,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인데, 우리에게 보좌까지 앉혀 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어찌다 갚을 수 있다는 말인가?

 

9. 나오며

 육체를 입으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저 셋째 하늘에서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아들로 계셨다. 그때는 오직 아들만이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분은 '독생자'라고 불리셨다. 여기서 '독생자'라는 말은 '모노게네스'라는 것으로서, '모노'라는 말은 '유일한, 오직 하나의'라는 뜻이며, '게네스'는 동사 '겐나오'에서 나온 명사를 합친 것이다. 여기서 동사 '겐나오'는 '아버지로부터 자식을 보다'는 뜻이다. 이는 엄마가 자식을 낳다는 단어인 '틱토'와는 다른 단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채 있었던 유일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분은 피조물이 결코 아니시다.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아들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시고 있다. 그때 아들은 영으로 계셨기 때문에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셨고, 동시에 아버지 안에 아들도 계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났을지라도 여전히 그분의 영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었다. 즉 그분 안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함께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이며, 당신을 미워하는 자는 당신과 아버지를 동시에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들의 신성한 영은 결코 죽을 수가 없다. 그 영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은 죽지 않는 영원한 부활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으실 때 예수께서는 죽을 수 없는 당신의 아버지와 연합된 영을 셋째 하늘에 계신 신성한 아버지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이 육신을 입고 죽으신 것은 다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구원경륜을 이루기 위함으로서,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일을 영원히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또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함으로 하늘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을 다른 영혼에게도 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영혼들도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시는 궁극적인 진리이다. 

 

 

2022년 10월 16일(주일)

정병진목사

 

2022-07-22(금) 금요기도회
제목: 영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는 것인가?(요17: 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fc0zhqHKcY [혹은 https://tv.naver.com/v/28137334 ]

 

1. 들어가며

 

 

2. 요한복음에서 영생을 얻는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

 

 

3.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님은 누구신가?

 

 

4.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5.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6. 영생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안다(기노스코)'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7. 나오며

 

 

2022년 07월 22일(금)

정병진목사

 

2022-05-0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0)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계2:26~27)_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다(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DPGQ8Ikblc [혹은 https://tv.naver.com/v/26808386 ]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분은 저 하늘에 계신 분을 가리켜 당신의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 보내신 분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이 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은 두 분인가 한 분인가? 두 분이라고 하면 다신론이 되는 것이고, 한 분이라고 하면 양태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말하기도 곤란하고 저렇게 말하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이것을 만들어낸 교리가 바로 먼저는 '이위일체'하나님이었고 나중에는 성령까지 포함시켜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아버지와 아들이 정녕 다르다고만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봐야 하는지를 통하여,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2.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칭호를 가리키는가?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물론 비유적으로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의미로 사용한 적이 있으시다). 즉 출생에 따라 아들을 두신 아버지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심에 따라 하늘에 계신 분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으로서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은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의미로 '아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사는 아버지의 생명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지혜가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다. 우리는 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로 이 땅에 사는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역시 '아버지'라고 하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로 아들이 없는 아버지가 없으며,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예수께서는 언제까지 하나님에게 아버지라는 칭호를 사용하시는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품 속에 있다가 이 땅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들로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 속에 계셨던 것이다(요1:18). 그때 아들은 육신을 입으셨다. 고로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을 직접 취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들어오셨는데 그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은 죄인들을 위해 구속사역을 완성하려고 오신 것이다. 즉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하여 죽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실 필요가 없었언 것이다. 그래서 인류구속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시고는 "다 이루었다"(요19:30=그것이 완성된 채 있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인류구속사역을 위하여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다 완성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후 예수께서는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지상에서 약 40일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셨따. 그리고 승천하셨다. 그런데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아들로서 그분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상징적이지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해야 할 사역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기도의 중보자로서의 기능이 있고, 둘째로, 대제사장으로서 회개할 때에 죄를 속죄해주시는 기능이 있으며, 셋째로, 그분이 마지막 날에는 재림하시어 악의 무리를 처단하시고 주님을 믿고 따랐던 자들에게 상주시는 심판주로서의 기능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때까지는 적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심판주로서 그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더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4.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는 아니신가?

  그렇다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님은 아들인가 아니면 아버지인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니 '아들'이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영원히 '아들'이신가 하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하는가?

 

 

5. 구약성경에 나타난 아들의 하나님되심과 아버지되심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6. 예수님께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통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7. 아버지의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

 

 

 

8. 예수께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오신 것인가?

 

 

 

9.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어떤 것인가?

 

 

 

10. 나오며

 

 

[글 전체보기] https://dongtanms.kr/94990

 

2022년 05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