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회개해도 될까? 아니 적당히 믿어도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나님은 심판 날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악한 사탄마귀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적당히 회개해서 아니될 것이고, 적당히 믿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왜 적당히 회개해서는 아니 되는지는 낮예배 시간에 전했다. 지금 오후찬양예배 때에는 적당히 믿어서는 왜 아니 되는지를 전한다. 왜 적당히 믿어서는 아니 되는가?

2020-10-11(주일) 주일찬양예배
제목: 회개와천국복음[부록2] 적당히 믿어도 되는가(요8:42~47)
https://youtu.be/ZRnTRpI9SAE [혹은 https://tv.naver.com/v/16185235 ]

 

 

1. 들어가며

  회개할 때에 적당히 회개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지난 시간에 적당히 회개해서는 귀신들이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더불이 적당히 회개해서는 귀신이 사람에 주는 저주와 가난과 질병과 사건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그것에게 휘말리게 된다는 것도 배웠다. 더불어 영안이 열리는 것을 방해받고,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영적인 축복도 받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회개를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질문을 이제 다른 것에 던져보자. 적당히 믿어도 되는가? 적당히 믿어서 과연 예수 이름의 권세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적당히 믿어서 구원받을 수는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 낮예배에 전했던 "적당히 회개해도 되는가?(눅3:7~9)"에 대해 짝이 되는 말씀으로서, "적당히 믿어도 되는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과연 적당히 믿어도 되는 것인지 보다 더 종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회개와 더불어 꼭 필요한 구원의 요소는 무엇인가?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회개와 더불어 꼭 필요한 구원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믿음"이다. 아니 회개보다도 사실은 "믿음"이 더 우선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을 믿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결국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이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행4:12,요14:6).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미 믿는 자가 회개할 때에 혹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자에게 회개는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종교개혁시대 이후에 회개와 믿음 중에서 "믿음"에 관한 부분은 너무나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회개는 너무나 축소되어 왔으며, 어떤 곳에서는 아예 회개를 언급하지도 않는 곳도 있다. 믿음만 가지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낮예배시간에는 회개에 대해 먼저 언급하였다. 그래도 회개보다도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구원의 요소는 역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믿을 때를 보라. 사람은 전부다가 믿으면서 회개한다. 그러므로 그때에 행하는 회개를 "회심"이라고 부른다. 회개에 믿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받게 된 자는 그 다음부터는 회개를 줄곧 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 없어지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마귀가 우리를 쉽게 포하기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자라도 일평생을 회개해야 한다. 

 

3. 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용납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세 가지 증상은 무엇인가?

  그런데 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용납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점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일들이 발생한다. 즉 하나는 거짓의 아비이자 거짓말장인 사탄마귀의 미혹을 받아 그의 미혹의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결국 가짜를 믿게 되어 이단에 빠지고 만다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결국 가짜 믿음 때문에 죽을 때에 지옥 즉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도 있다.

 

1)거짓의 아비인 사탄마귀의 미혹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소개하셨다(요14:6). 그리고 그분은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8:40,45). 또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도 진리라고 언급하셨으며(요17:17), 자기 대신에 보내실 또다른 보혜사도 "진리의 영"이라고 소개하셨다(요15:26). 다시 말해 인류 구원을 위해 활동하시는 삼위의 하나님께서 전부다 진리이며 진리만을 말씀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탄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장이였다(요8:44). 하늘에서도 하나님을 속였고 이 땅에 있는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에게도 거짓말로 속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도 진리되신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사탄마귀의 거짓말에 미혹받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고 또한 그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오직 진리의 말씀, 즉 예수님의 말씀만을 순수하게,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말씀을 좇아가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의 아버지인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갈 수도 있다. 

 

2)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더욱이 거짓을 버리지 못한 채 거짓이나 거짓말을 버리지 않는 자는 결국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사도바울이 경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딤전4:1). 그러면 그 끝은 결국 이단이다. 이단들의 가르침을 보라. 그들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은 아니다. 진실된 말씀 가운데 거짓말이 섞여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거짓말도 진리일 것이라고 공부하다보니, 결국에는 거짓말도 진리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번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였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자신은 결단코 거짓이나 거짓말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진리의 말씀에 섞여있는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다가 그만 이단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3)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번 두 번 거짓을 용납하게 되면, 결국 그는 죽어서 거짓의 아버지가 사는 곳에 불못 곧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지옥은 누가 들어가는가? 그것은 거짓의 아버지인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들어가는 곳이다. 더불어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 혹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 지옥이란 거짓말을 하는 자가 떨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단해야 한다. 

 

4. 진리를 추구하는 자에게 있어서 절대 용납해서는 아니되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진리이시고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무엇인가를 믿고 따라갈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진리만을 추구하며 진리만을 따라가겠다는 굳은 각오라고 말씀드렸다. 때로는 진리를 따르는 것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진리만을 믿고 따라가는 것 때문에 왕따를 당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진리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교단의 교리나 신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교단으로부터 제제 조치 내지는 제명까지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오직 진리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적당히 믿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버가모교회의 주의 종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의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하지만 버가모교회 성도들 중에서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발람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아 타협하는 가르침에 넘어간 자들도 있었다. 그러면 아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코 타협하는 말씀을 따라가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의 순수한 말씀 그대로를 믿고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성경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교리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나가서 듣는 말씀들 중에서 성경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거의 전역에 걸쳐 거짓된 가르침들이 들어있다. 특이한 점은 어떤 분은 한쪽 방면에서는 진리를 따르고 있는데, 다른쪽 방면을 보면 아직도 거짓말이 섞여있는 비진리를 따라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주의 종들은 말씀을 더욱 더 연구하여 가르치되, 원문말씀을 연구하여 말씀이 전해주는 정확한 의미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님

  오늘날에 들어와 신앙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하나님이 한 분이신가 아니면 세 분이지만 한 분이라고 해야 한다는 가르침 중에서 어느 가르침을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고, 또한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중보자 극리고 보혜사라고만 아는 이가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도 계시며, 땅 위에 있는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교회들을 상징하는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기도 하시며, 보좌에 앉아계시기도 하시는, 한 분 하나님 자신이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흰 보좌에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께서 앉아계신다는 사실이다. 즉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경륜적으로 삼위일체방식으로 일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잘못 정의된 삼위일체 교리에 취한 자들은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는다. 그리고 여호와만이 영원히 아버지라고 믿는다. 그러한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하시는 역할에 따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불리시기도 하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불리시고, 또한 대제사장이시며 중보자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2)성령론

  그런데 성령론에 있어서는 각 교단마다 매우 다양한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수용할만한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붅이 사실은 잘못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은사에서 있어서 더욱 그렇다.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신 본래의 목적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은사를 주시는 성령으로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이 하는 일조차 분별하지 못하고는 그것을 성령이 하는 일이라고 언급하는 데에 예를 들자면, 예언사역의 부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3)부활관

  또한 성도들의 부활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잘못 아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부활의 시기에 관한 것이다. 성도라도 죽으면 무덤같은 곳에서 잠을 자다가(혹은 쉬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천국으로 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부터는 사람이 죽는 그 날과 그 시간에 곧바로 심판받고 천국과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죽어보면 금방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종말론

  뿐만 아니라 종말론에 있어서는 교단마다 매우 다양한 교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은 환난전휴거를 성경말씀이라고 믿는 교단도 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환난 후에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마24:29~30). 또한 환난전휴거를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재림후 이 땅에서 펼쳐지는 천년왕국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환난시기에 짐승이 이마나 오른손에 666표를 치는데 그것이 베리칩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부분 환상이 상징적이듯 천년왕국도 또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666표는 우상숭배자들을 사탄이 영적으로 자기소유라고 표시하는 것이지 결코 어떤 물건을 사람의 몸 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베리칩은 속임수요 거짓이다. 

 

5)예정론

  또한 대부분의 장로교단의 경우에는 개인구원예정론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고 있고, 성도의 견인교리조차 성경말씀인 것으로 알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는 개인사역 예정은 있어도 개인구원 예정은 하나도 없다. 구원받을 숫자는 예정되어 있으나 그것이 어떤 누구라고 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는 반드시는 구원받는다는 교리도 잘못된 것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구원의 노정에 들어온 자라도 구원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원에 관한 바램을 성경말씀과 혼돈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너무나 쉽게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 대하여 거짓된 처방전을 주는 것과 같다. 

 

6. 나오며

  적당히 믿어도 되는가? 적당히 믿어도 천국갈 수 있는가? 그건 아니다. 적당히 믿어서는 미혹의 영의 가르침에 빠져 이단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짓말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적당히 믿어서는 아니 된다. 오직 진리를 믿으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오로지 진리만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히6:18). 하지만 예수님시대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거짓선지자들과 거짓교사들이 일어나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좁고 협착한 길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살았다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힘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에, 적당히 혼합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래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어떠한 말씀도 적당히 혼합된 말씀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불순물이 하나도 혼합되지 아니하는 진리의 말씀만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는 자는 구원의 경주서 타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일평생을 통해서 달려가야하는 여정과도 같은 것임을 알라. 그 동안에 믿음도 변질되지도 않아야 하겠지만, 더불어 지은 죄들을 날마다 회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죽음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받은 자는 실제로는 많지 않다. 부자나 교만한 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더욱 더 어렵다고 했다. 핍박이 무서워 믿음을 배반하거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잘 믿던 자가 타락하여 세상길로 가서 현저히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조있는 믿음, 끝까지 지켜내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즉시 무릎꿇고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지 못한 채 여기에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0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10)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요일5:10~13)_2020-07-31(금)

https://youtu.be/bYhTwcMc3GA [혹 https://tv.naver.com/v/15056912  ]

 

 

1.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과 회개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은 것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딤전2:4),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3:9). 그렇더라도 믿음을 갖는 것과 회개하는 일은 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요 우리들에게 맡겨져있는 책임입니다. 만약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일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더러 "믿으라(행16:31)"고 명령하셨겠시며,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리고 때로는 주께서 어떤 사람을 보고서 그에게 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기도 하셨는데, 이는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사람이 갖는 믿음이 주님이 다 알아셔 주시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어서 당신이 준 믿음에 반응하는 자를 보고 그를 칭찬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또한 우리 모든 이들에게 믿음이 더 풍성해지시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에 관한 책임은 순전히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요5:39). 

 

2. 주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사랑(아가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된 용어라면, "은혜(카리스)"라는 단어는 예수님과 관련된 용어입니다(고후13:13). 왜냐하면 요1:17에 의하면,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 죄인들이 속량 곧 죄들의 용서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주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선물로서 은혜는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죄의 은총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다 베풀어 주시는 선물인 것이지 어느 특정한 선택된 몇몇의 사람에게만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요일2:1~2, 딤전2:6). 

 

3.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사람이 믿을 때에 2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요일1:7,9). 또 하나는 주 예수께서 이 땅에 가지고 오셨던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분배되는 것입니다(고전15:45, 롬8:1, 요일5:12). 

 

4.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할 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나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 없는 지어낸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주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데(요일1:7b),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용서된다고 말입니다(요일1:9). 그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주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지 죄용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고로, 죄를 지어놓고도 자백하지 않은 모든 죄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로 지은 죄들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즉시 자백하여예수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5.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되는 것인가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에게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에 인하여 우리 속에 분배된다는 것입니다. 실은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생명이 분배되어 아들(독생자)이 되었듯이, 우리들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에,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먼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후에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사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것이 먼지 일어나고, 그리고 어느날 성령께서 그 사람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분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첫째로 사람이 회개함으로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로,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받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번째의 일은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여 사람이 중생(다시 태어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받은 생명(영생)이 반드시 영원하게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어 영생을 소유하면 그 사람이 생명을 가졌으므로 곧바로 하늘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기는 하지만, 이미 하늘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사람 중에는 자신의 이름에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할지라고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자는 모세요(출32:32), 다윗입니다(시69:28).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사도요한입니다(계3:5). 고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2020년 07월 31일(금)

정병진목사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딱 2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미 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다. 앞의 기도의 대표는 회개기도며, 뒤의 기도의 대표는 요청기도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거나 천국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도는 요청기도가 아니라 회개기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든지 저 천국에서든지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요청기도도 필요하다. 오늘은 특별히 요청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요청기도. 그것은 곧 청원기도다.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기도를 생각해보라. 그 요청기도가 잘 응답되고 있는가? 혹여 응답될 때도 있겠지만 응답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오늘은 자신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그것은 약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 대부분은 이것들 중에서 적어도 2가지 이상 걸려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걸림돌을 제거할 차례다. 그리고 기도의 걸림돌을 제거한 다음, 기도에 들어가게 된다면 당신의 기도는 정말 놀라우리만큼 응답될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 기도는 과연 무엇이 부족하여 응답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자.

  첫째는 믿음의 부족해서다(마7:7~8). 구하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다(눅18:7~8).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기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내 기도를 정말 하나님께 들어주시기나 하는 것일까?"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이다. 즉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의 기도가 정작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인지 아니 될 것인지에 대하여 확신이 없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기도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는 매우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인지에 대해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양심이 자신을 참소하기 때문에 그렇다. 즉 자신이 양심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네 죄가 이렇게 많은데, 기도는 무슨 놈의 기도야?"라고 스스로 기도를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지은 죄가 있음에 불구하고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기도하면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은 죄를 감추어둔 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자신의 양심이 자신을 참소하여 기도응답에 대해 확신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면 감사할 뿐이요,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있는 자의 기도를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을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예수님 말씀처럼 무화과나무에서 되어진 일 뿐만 아니라 산이 들려져서 바다에 던져리라고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21:21~22).

  내 기도는 과연 무엇이 부족해서 응답이 없는 것일까? 둘째로 그것은 정성 즉 간절한 요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마7:7). 기도하되 진실로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보이지 못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계속해서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 보면, "너희는 계속해서 요청하라."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꼭 응답해주셔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 여리고성의 소경이자 거지였던 바디매오를 보라. 그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 주님의 귀에 들리도록 외치고 또 외쳤던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 곁으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는 어떻게 했는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잠잠하라면서 그를 꾸짖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그의 간절한 요구는 주님의 발걸음을 멈춰서게 한 것이다. 다윗의 경우를 보라. 그도 기도할 때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들리도록 부르짖어 기도했다(시18:6). 한 번 생각해보라. 우리가 드리는 기도소리가 정말 하나님의 귓가에 들리게금 기도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가 잡수셨냐? 그렇게 큰 소리로 꼭 기도해야만 하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아도 들으실 수 있으신 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기도가 그만큼 간절한다는 것을 주님께 알리는 것임을 알라. 더불어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할 때마다 찾아오는 귀신들의 방해공작 즉 졸음과 잡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해주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에게 보여다오."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주님, 저는 지금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면 그러한 기도는 분명 간절한 기도는 아니다. 짜투리 시간에 그것도 억지로 기도 한 번 한 것 가지고 주님께 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하지 말라. 정말 시간을 일부러 내서 기도하라. 그리고 작정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눈물로 기도하라.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내 기도는 과연 무엇이 부족해서 응답이 없는 것일까? 셋째로 그것은 헌신 즉 기도의 분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마7:7). 우리의 기도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단계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의 응답이 있기까지는 어떤 기도이든지 일정한 기도의 분량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는 기도를 아주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골방에 들어가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아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되 기도의 분량이 차야 비로소 응답된다. 만약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의 분량이 필요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밤이 새도록 철야기도를 하셔야했을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죄짓도 아니하셨는데 그리고 그분에게는 의심도 없었을턴데 말이다. 그분은 믿음이 충만하기 때문에 한 번만 기도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다. 때로는 40일동안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도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어떤 기도는 한 두 번 기도해서 응답받을 수 있기도 있지만 어떤 기도는 기도의 분량이 차야 응답되는 것도 있다. 특히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자라면 한 두 번, 아니 며칠 정도의 기도로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몇 시간씩, 몇 년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그렇다. 부르짖어 기도하되, 어떤 은밀한 것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정말 충분한 기도의 분량이 요청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만큼의 기도를 해보았는가? 기도,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이 결코 아니다. 기도는 일삼아서 하는 것이지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도도 일종의 헌신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기도의 분량이 채워져야 응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그분이 응답을 주실 때까지 오로지 기도로 밀고 나아가라.

  그렇다면, 실제로 기도할 때에는 우리는 어떤 순서로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 이렇게 한 번 해보라.

  첫째,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가장 먼저 회개기도와 감사기도로 시작하라. 둘째, 기도할 때는 반드시 통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라. 셋째,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하라.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주님이 느끼시도록 기도하라. 그래서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실 때에 "아, 저 기도는 정말 내가 응답해주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도하라. 넷째, 어떤 기도는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할 것도 있다. 그러니 조급하지 생각하지 말로, 꾸준히 기도해 나아가라. 다섯째, 시간을 정해놓고 일삼아서 기도하되 일부러 기도하라. 퇴근할 때라면 교회에 들려서 기도해보라.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되, 일주일에 적어도 몇 시간은 그렇게 기도하라. 여섯째, 때로는 밤을 새워 기도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금식하면서 기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그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다. 기도,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한 없이 자비로우신 분임을 잊지 말라. 그분은 우리가 비는 것에 항상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약1:5). 그분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따라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다. 그분 앞에 정말 믿음으로 기도하되, 정성다해서 기도하라. 그리고 기도의 분량을 채워가면서 기도해보라. 요청하는 기도는 사실 이 생과 내 생에 풍성한 삶을 살게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만큼 도전해 볼 가치가 너무나 큰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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