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3) 경륜의 영(01)_2020-05-19(화)

https://youtu.be/6wv41qV6z70 [혹은 https://tv.naver.com/v/13864243 ]

https://youtu.be/6wv41qV6z70

 

1. 그리스도인들에게 3가지 영적 스승은 누구이며, 또한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3가지 영적인 스승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 그리고 성경말씀 그리고 목회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완전하고도 영원한 스승이십니다(요14:26). 그리고 성경말씀은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스승입니다(딤후3:16~17,요5:29). 그리고 목회자(렙4:11~12)은 사람으로서 모델이자 바른 스승입니다. 그럼에도 부룩하고 우리는 주의해야 할 것이 있으니, 성령께서 우리의 스승인 것은 맞으나 성령님을 가장하여 귀신들이 거짓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분별해야 하며, 성경말씀도 사도바울과 같이 예표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령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죄된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자로 스스로가 늘 하나님과 성경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2. 성령님은 스승으로서 어떤 분인가?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해서 성령께서 누구신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성령님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계5:6).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 땅에 보내어져 활동하시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십니다(엡1:17, 사11:2), 성령은 지혜로우시며, 하나님과 구원과 종말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감추어 있던 것들을 드러내서 계시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번째 시간으로, 성령은 경륜의 영이라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성령께서 경륜의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관점을 놓치게 되면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서 시대의 경륜을 거슬러 성령의 역사를 말하다가 그만 잘못된 판단과 오류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3. 성령께서 "경륜의 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는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성령은 아버지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실 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 때에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셔서 창조의 일을 하셨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몇몇의 사람들에게 보내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도 성령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또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이라는 명칭에는 2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원래의 보혜사가 있는데 거기에다가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그분이 "또다른 보혜사"라는 말은 원래의 보혜사가 하시는 일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원래의 보혜사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요일2:1~2에 의하면,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1-2)" 이 말씀에 있는 "대언자(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사실 요14:16에 나오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다만 한글로 번역할 때에, 요14:16에서는 "보혜사"로 번역했꼬, 요일2:1에서는 "대언자"로 번역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새롭게 보내주시는 성령은 이제 보혜사로서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경륜의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원래의 보혜사이신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신 것인가요?

  그렇다면, 원래의 보혜사였던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경륜상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어 인류의 죄를 용서해주시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율법을 주시어 그것으로 사람을 정죄하여 죄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그만 죄값으로 인해 지옥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실 정죄와 심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람에게 무섭고 두려운 분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전 우주와 하늘과 땅과 음부 속까지 하나님의 공의가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하셔서 잘못한 것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의 질서는 그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과 우주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귀신들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에 인간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런데 그때 인간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반응했습니까? 첫째는 율법의 조항에 나오는 문구만을 지킨 채 정죄를 피해가는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명칭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 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이 징계를 받게 되더라도 회개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통치와 인도의 방식을 이제 달리 하셨습니다. 그것은 죄된 본성과 귀신의 미혹에 둘러싸여 있는 인간의 한계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다 죄용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때 하나님의 공의도 같이 실현해야 하므로, 인류의 죄값은 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철저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막10:45). 그리고는 끝까지 죄인을 사랑하고 기디려주고 용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도 살려보내셨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 그런데 바로 이분이 보혜사인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아버지께 구하심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성령도 역시 보혜사이신 예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5. 보혜사 성령을 받은 자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을 받은 자는 구약시대처럼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을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쪽 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주고 기다려주고 회개하도록 이끌어주는 일은 할지언정, 결코 그러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죽이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교개혁자 칼빈(A.D.1509~1564)은 성령을 받은 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달리했던 세르베투스(A.D.1511~1553)를 종교재판에 붙여 이단의 죄목으로 죽게 했기 때문입니다. 세르베투스는 42살밖에 안 되었지만 결국 화형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시에 해를 끼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에 의해 붙들려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죽임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경륜적으로 볼 때 어찌 그러한 일을 보혜사 성령을 받은 자가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인지 그가 저지른 이러한 악한 행위는 고스란히 역사(교회사전집 제8권 스위의 종교개혁, 필립샤프, 박경수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에 수록되어, 오늘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받은 자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2020년 05월 19일(화)

정병진목사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귀신들이 가르쳐주고 보여주는 것까지 그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령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것들을 보고 경험하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 우리는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으로서,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것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기록들과 신구약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20-05-15(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2)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엡1:15~19)
https://youtu.be/WtTd0EA4VX8 [혹은  https://tv.naver.com/v/13820037 ] 

 

 

1. 들어가며

  성령님은 누구신가? 오늘은 올 해 스승의 날이요, 돌아오는 주일은 스승의 주일이다. 스승의 날과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신 성령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선하신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을 잘 알 필요가 있다. 사실 성령께서는 보이지 아니하시므로 만약 성령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고 삐뚫어져 있으면 우리는 이내 성령을 가장한 귀신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성령님도 보이지 않고 귀신도 보이지 않는데, 성령님이나 귀신은 인간보다는 더 뛰어난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게 자꾸 혼돈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영원한 영적인 스승이신 성령님이 누구신지를 보다 더 정확히 알아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의 말씀은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했으니 (https://youtu.be/MNEEmHKMYFU), 그것과 함께 오늘은 성령께서 누구신지 그 두번째 시간을 갖고자 한다. 

 

2. 성령님은 누구신가?(01)

  성령께서는 누구신가? 성령께서 누구신지에 관하여 많은 정의가 있어왔고 또한 그러한 것들을 들어왔을 것이다. 그분에 대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역시 "하나님의 영"혹 "성령(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결의 영" 등등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성령이 누구인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 속에서 정의되어왔다. 이를테면,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세 번째 위격에 해당하시는 분이시다"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중에 세번째 위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정의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를 듣고 있노라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특히 세번째 위격을 가졌다는 말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잘못하면 하나님을 셋으로 완전한 나눠놓아서, 누구근지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데, 성령님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의구심을 갖기도 할 것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이 누군지를 정의하려고 할 때에는 우선 성부와 성자와는 별개의 또 다른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분명 구별은 있으시다),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있으니, 어느날 누가 "어머니 하나님"(하나님의 교회) 혹은 "하나님의 어머니"(로마카톨릭)고 있다고 하면 금방 넘어갈 공산이 크다. 고로 우리는 성령님이 누구신지를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성령님을 성부와 성자와 완전히 다른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첫번째로 성령님을 정의하기를, 그분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니까 물론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땅에 보내어진 분이라는 측면에서는 성령님은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성령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계5:6에 의하면, 사도요한이 성령님을 정의하기를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영들"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도 했다. 이때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의미하므로, 성령님이란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하나님의 일을 행하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령에 대한 표현이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성령님이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마지막고별사 중에서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시고 나서, 오순절날이 이르자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고로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닌가 한다. 

 

3. 성령님은 누구신가?(02)
 그렇다면, 두번째로 성령님은 어떤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둘째로, 신구약성경을 통하여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을 정의할 때에 구약시대에는 나오지 않으나 오순절 이후에만 등장하는 표현도 더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성령께서 경륜적인 영이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라는 명칭들이 부가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수 있다. 이것은 전부 오순절이후에 신자들 속에 강림하시어 내주하시게 된 성령님을 일컫는 말로서, 구약시대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명칭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보내신 성령님을 사람들 속에 내주하시게 하였고, 예수님 또한 이 땅에 아들로 나타난 바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호칭이 약간씩 달라지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한 것이다. 고로 신구약성경에서 공히 사용하고 있는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영"이라는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명칭은 구약시대에도 사용된 바 있고, 오순절이후 교회시대에도 전격적으로 사용된 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지혜와 계시를 주신다는 말씀은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신약에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호와나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으로서, 예수니은 지혜 그 자체이시며,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성령님은 지혜를 주시고 계시하는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4. 성령께서 지혜의 영이자, 계시의 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럼, 이제 "지혜와 계시의 영"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렇다면,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성령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이는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사11:2,엡1:17), 지혜 그 자체이자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을 한 분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그분의 속성인 지혜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첫째,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다. 

  구약시대 이사야선지자는 "여호와의 영"이 누군지를 설명하면서 그분을 "지혜의 영"이라고 소개한다(사11:2). 그리고 사도바울도 성령을 "지혜의 영"이라고 소개한다(엡1:17).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이며 지혜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원래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욥12:1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지으셨다(시136:5,잠3:19,시104:24). 특히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천사(겔28:12)와 인간(고전2:5)에는 이 세상 다른 만물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주셨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 가운데 천사와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지혜를 많이 흐뜨려지셨다. 지혜에 손상이 가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지혜를 받을 때 사람은 더 온전해질 수 있다.

  그렇다. 지혜는 원래 하나님에게 있었고 그것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천사와 인간에게는 더 그것을 많이 주셨지만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지혜에 손상이 가해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지혜를 더 부어주셨으니 그것을 받은 자들이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누구든지 후히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달라고 간구할 것을 권면하였다(약1:5). 그러므로 오순절이후 성령을 받은 자는 더욱 더 지혜로운 자가 된다. 그러면 나타나는 증상의 첫번째로는 사람도 하나님처럼 어떤 창조적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아이디어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해내고, 그것으로 사람을 이롭게 할 때 세상에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만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도록 해야하겠다. 

  둘째, 성령은 "계시의 영"이시다. 두번째로 성령은 계시하시는 영이시기도 하다. 구약시대에 성령은 사람 위에 내려오셔서 지혜를 주셨지만, 오순절이후에는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몇몇 사람만이 지혜의 영을 받아 살았던 구약시대보다는 오순절이후에 예수님을 믿어 성령받은 자들에게는 자기 안에 위대한 지혜자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이 성령은 보이지 않는 것, 감추었던 것을 보여주고 드러내주는 계시의 영이시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는 그에게서 지혜 말고 또다른 것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며,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감추었던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할 수가 있다. 

 

5. 신구약의 인물 가운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인물들은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신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며 그들에게서 어떤 증상이 나타났을까?

  먼저, 지혜의 영을 받은 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실 때에, 특별히 브살렐과 오홀리압에서 하나님의 영을 충만케 하셨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공교로운 일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더해졌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출31:3). 또한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에 성령이 그에게 충만이 부어져서 그에게 지혜가 충만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신34:9). 그리고 "지혜"라고 말하면 우리는 잘 아는 구약의 인물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지혜의 왕이라고 불렀던 솔로몬이다. 그는 다윗의 위를 이어서 왕이 되었으나 하나님께 기도부터 시작하였다.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든지 주려고 했는데, 겸손히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자, 주께서는 기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부와 귀와 장소의 축복까지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왕상4:29).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 중에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왕의 산해진미(우상의 제물일 가능성이 있다)를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가고 마음 먹었더니, 3년 후 왕정자문학교를 마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지식과 분별력과 지혜를 주셨다. 그리고 그중에서 다니엘에게서는 환상(계시)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단1:17). 그렇다. 지혜의 영을 받은 자들은 무엇인가 달라고 많이 달랐다. 그러므로 자기분야에서 더 특출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둘째, 계시의 영을 받은 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구약시대의 인물들 중에 성령을 받아 지혜를 받은 인물도 있지만,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비밀한 것을 보고 드러낸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꿈을 꾸기도 했고, 영적인 것을 보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들에는 아브라함이 있다. 그는 환상중에 400년 뒤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운명을 보았다(창15:1~21). 또한 욥도 환상을 본 자였고(욥4:130, 여러 선지자들도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와 천국을 보았으며, 장차 되어질 인류의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 그러한 자들로는 이사야선지자(사22:1), 에스겔선지자(겔8:3), 다니엘(단1:17), 스가랴선지자(슥1~6장) 등이 있다. 그런데 구약의 인물들 중이 계시의 영을 받은 아주 특별한 인물이 한 명이 있다. 그는 "다윗"이다. 다윗은 당시로부터 1천년 뒤에 일어날 일까지 보았다. 왜냐하면 그가 기록한 시110:1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인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원수들로 하여금 발등상되게하기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있으라고 하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사람이 진정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정확히 이해한 자였다. 즉 사람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고 제사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는 죄사함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시51:16~19). 뿐만 아니라 그는 하늘에 생명책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시56:8, 139:6). 왜 그런가? 그것은 그에게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졌기 때문이다(사11:2). 

  한편 신약의 인물로서 계시의 영을 받은 자의 대표인물은 역시 사도바울과 사도요한이다.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부름받은 사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가 갈라디아에 편지를 보낼 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그가 전했던 복음은 그가 누구에게서도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했노라고 말했던 것이다(갈1:12). 그랬다. 그는 많은 환상과 계시를 보았다(고후12:1,7). 너무 많이 받아서 자고할까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탄의 가시 곧 귀신을 붙여주었을 정도다(고후12:7). 뿐만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비밀을 계시를 알게 되었다(엡3:3). 아마도 다메섹체험이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설명해주는 지도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는 예표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사용하여 구약성경 속에 들어있는 그리스도를 찾아내서 소개한 인물이 되었다(고전10장). 그리고 사도요한도 훗날 밧모섬에서 예수그리스도부터 계시를 받았다(계1:1).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방대한 분량이었고 그것은 신구약성경의 완성판과 같았다. 인류와 역사의 시작부터 시작하여 지구와 우주의 종말까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다 성령을 통하여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성령은 누구신가? 그분은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분은 바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 만물이 창조되었고,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시었으며, 계시를 주셨다. 왜냐하면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시대에 들어와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데,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믿는 성도들의 인도자와 돕는 자가 되신다. 그리고 지금도 믿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계시를 주신다. 그러므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자가 있거든 하나님께 지혜의 영을 구하기를 바란다(약1:5). 그리고 감추었던 하늘의 비밀을 깨닫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도 또한 하나님께 계시의 영을 구하기를 바란다. 만약 본인이 성도라고 한다면 적어도 지혜의 영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겠고, 목회자라면 계시의 영까지 구하는 기도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5월 15일(금)

스승의 날, 금요기도회에서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1) 이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사11:1~2)_2020-05-15(금)

https://youtu.be/MNEEmHKMYFU [혹은  https://tv.naver.com/v/13805546 ]

 

 

1.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스승으로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스승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크게 셋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사이신 성령이십니다(요14:26).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성도들을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경말씀입니다(딤후3:16~17). 성령님께서 인격적인 교사이자, 초자연적인 것까지 가르쳐주는 특별한 교사라고 한다면, 성경말씀은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교사 중의 하나입니다. 더욱이 성경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졌기에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목회자입니다(앱4:11). 목사인 교사가 바로 세번째 스승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가르치는 가장 가까운 스승으로 부름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첫번째 스승으로서 성령님은 어떤 분일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첫번째 스승으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역시 우리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엡1:17).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되 완전한 지식의 분량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엡1:17).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성령님에 대해서는 그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영이다. 예수의 영이다.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의 영이다"이라는 정의합니다. 또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혜사다. 진리의 영이다. 생명의 영이다. 양자의 영이다. 성결의 영이다" 등등의 많은 정의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정의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완벽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다"는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용어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성령님을 정의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과 관련지어서 말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하나님도 영이시고(요4:24), 성령님도 영이신데, 하나님과 성령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께서 승천하신후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보내시는 영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정의들을 다 포괄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정의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계시의 최종적인 완성의 책인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려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성령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일곱눈들로서, 이 온 땅안으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5:6)"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성령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여기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란 표현은 인류의 대속을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사 십자가에서 속죄값을 대신 치르셨던 순결하고 깨끗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어린양은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계5:6). 그러므로 계5:6에 표현되고 있는 어린양은 예수님의 실제모습은 아닙니다. 만약 이 어린양이 예수님의 실제 모습이라면 예수님은 뿔들이 7개가 달리고, 눈들이 7개가 달린 괴물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창조세계 있어서 완전성을 뜻하는 것이 "일곱"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하늘의 영적인 세계에서의 완전성은 "12"라는 숫자로 표현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하늘에 계신 어린양의 모습으로서, 예수님의 또다른 오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채 있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특별한 정의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인데, 특별히 삼위의 하나님으로서 성령님을 표현할 때에는 "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 천국에 계시고 이 땅에 당신의 영을 보내어 일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일찌감치 하나님의 영으로서 창조사역에도 같이 동참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2). 또한 성령님은 "일곱 영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땅에 사는 피조물과 생명체들을 완벽하게 감찰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이 땅에 보내어진 예수님의 완전한 영이자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4. 이사야선지자는 다윗에게 기름부어질 성령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요?

  이사야선지자는 다윗에게 기름부어질 때에 그이 위에 내려오실 성령님을 "여호와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영이 어떤 영인지를 6가지로 분류하여 말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총명(명철)의 영"이라고 했고, "모략(조언)과 재능(능력)의 영"이라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지식의 영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부어지거나, 오순절 이후에 하나님의 영을 받게 된 자는 이 6가지의 놀라운 능력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님을 받은 자만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그러한 은혜가 주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5. 누가 과연 충만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을 수 있나요?

  사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 모든 성도들에게는 거듭날 때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고전3:16,요3:5).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동일한 보혜사 성령님께서 다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세계를 알고 성경을 깨닫는 데에 있어서는 성도들마다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그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성도들이 각각 다른 성령님을 받아서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믿을 때에 다 동일한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사람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그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 각자의 분량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러한 분량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데, 자신이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것들의 많고 적음도 있을 것이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느냐에 따라서도 차이도 날 것입니다. 특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기들 스스로가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고, 더불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불평한다거나 아쉬워하지 않는 지조있는 모습을 보일 때, 지혜와 계시의 영의 분량을 더 풍성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뜻을 정하여 신앙의 지조를 지키자,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성령을 더 풍성히 부어주셨으니, 그들에게 지식과 분별력과 지혜를 더 풍성히 부어주셨으며, 다니엘에게는 환상(계시)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 부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단1:17).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5월 15일(금)

정병진목사

주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준 모범적인 기도문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어떤 것이며, 인간의 관심사는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중에서 하나님의 관심사와 인간의 관심사는 각각 3가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관심사와 주께서 가르쳐준 관심사는 과연 같은 것일까? 그리고 주기도문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송영은 왜 들어간 것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원래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기도한 후에 저절로 나오는 탄성을 공동체가 전수해 준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지난 한주간 진행되었던된 특별새벽집회 주기도문 강해의 핵심사항들과 마지막 송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2019-09-0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
https://youtu.be/az7Re8m-OhY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일주일동안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으로서 주기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기도는 이 세상의 끝 날까지 성도들이 드려야 할 마땅한 기도이자 꼭 필요한 기도다. 주기도를 보면, 그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는 기도의 대상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기도할 내용여섯 가지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영이 나온다. “기도의 대상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에 배웠고, “기도할 내용여섯 가지는 지난 9월 특별새벽집회 주간의 새벽시간을 통해 나눴다. 이제 오늘은 주기도문의 부록으로 첨가되어 있는 송영에 관해 살펴볼 차례다. 이러한 송영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준 기도가 초기교회의 신앙고백의 하나로도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은 주기도문의 전체내용을 조감해보고, 마지막 송영 찬송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기도의 대상에 나타난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

  우리는 지난 주일 기도의 대상에 대해 배웠다. 그분은 하나님도 아니고 여호와도 아니라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배웠다. 주기도문은 2가지 형태가 남아 있는데 마태복음의 것(6:9~13)과 누가복음의 것(11:2~4)이 있다. 특히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보면 아버지라는 호칭 앞에 다른 수식어들이 더 있는데,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의 아버지로만 머물러 있으실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늘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는 계획을 그분이 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은 하늘들에 계신 분으로서, 모든 것 위에 초월해 계신 절대주권자이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며, 언제 어디서나 당신에게 비는 기도를 들으실 수 있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응답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3. 우리가 기도해야 할 여섯 가지 기도제목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난 한 주간동안 새벽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의 실제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기도의 제목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 쪽은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간구이며 또 한 쪽은 인간의 필요를 위한 간구다.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간구는 다시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간구이며, 하나님의 나라(왕국,통치)를 위한 간구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간구다. 즉 하나님의 이름나라이 바로 첫 번째 하늘을 위한 간구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때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떠하심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인격을 가진 다른 존재들 곧 사람이나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 언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영광스럽게 되는가? 그것은 주님의 뜻이 성취될 때. 만세전에 계획했던 주님의 뜻이 이 땅 위에 펼쳐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특히 그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직접 당신이 이루실 때.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선포된 당신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질 때, 하나님은 아주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단순히 한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가 임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 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오도록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방해하는 세력이 아직 땅 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 기도제목에서 더 자세히 배우게 되겠지만, 우선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장소가 이 땅이면 이 땅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내 마음 속에서 이뤄지면 내 마음 속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예수믿는 자가 되었다고 하더라고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늘 기도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 안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는 보편적이고도 일반적인 것들이 있다. 하지만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란 거대하고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저 하늘에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이루는 것을 거역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의 대장은 사탄마귀고 그를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천사들을 하늘에서 쫓아버렸고 그들을 위한 감옥(음부, 지옥)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하지만 사탄마귀는 거기에서 왕좌를 펴놓고는 왕노릇을 하면서 지금도 음부의 문들을 통해 귀신들을 이 땅 위에 올려보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귀신이 이 땅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산출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더불어 이 땅 위에서 육체를 입고 살고 있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3가지 간구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먹을 양식죄용서보호에 대한 청원이다. 이 청원은 사실 좀 더 면밀히 분석해보면, 사람의 육체와 마음()과 영에 관한 문제이다.

  첫째, 우리는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육체의 생존을 위해 양식()”을 구해야 한다. 천사는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사람은 육체를 지녔기에 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원문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었고, 그것을 위해 간구하는 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생존에 필요한 양식은 꼭 육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초기교부들의 해석도 있었다. 특히 그것은 우리의양식이며, “매일기도해야 함을 배웠다.

  둘째,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서 자신의 를 용서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빚의 탕감이라는 비유로 이것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당시 주기도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대상은 전부 유대인들로서,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면제년희년규례를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를 원하는 자가 하고 있어야 할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으로부터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우리 믿는 이들은 자신에게 아주 작은 백 데나리온의 채무를 가진 자의 빚을 탕감해주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마지막심판의 날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우리는 시험 안으로 이끌리지 않고 악한 자로부터 건짐을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세 가지 의미로서, 단순히 마귀의 유혹(Temptation)”만을 의미하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진단하기 위한 테스트(Test)”로서의 시험도 들어 있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과 상급을 높여주기 위한 시련(Trial)”으로서의 시험도 같이 들어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악한 자 마귀의 시험으로부터의 구출은 저주받은 귀신들이 주는 온갖 저주들 곧 가난과 질병과 우환과 사건사고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지은 죄를 회개한 뒤 그들을 대적하는 기도도 해야 한다.

 

4. 우리는 어떠한 송영으로 하나님께 찬양해야 하는가?

  이제 오늘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 위에 한 가지 더,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송영에 관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여섯 가지의 기도들을 잘 드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그분이 행하신 일들에 관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행한 일에 대해서 그분이 찬양받는 매우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것들이 그분에게 돌려져야만 하는가? 그것은 3가지. 첫째, 모든 나라(왕국)가 그분의 것으로 돌려져야 하고, 둘째, 모든 능력(뒤나미스)이 그분의 것으로 돌려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셋째, 모든 영광(독사)이 영원토록 그분의 것으로 돌려져야 한다(대상29:11).

대상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사탄마귀는 이 영광을 자신을 차지하려고 시도한 놈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탄마귀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합당하게 처벌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업적들을 찬탈하려 시도한 그들을 하나님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분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높이는 자를 주님은 구원할 것이고 저 영원한 천국에 데려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다. 아멘.

 

2019년 9월 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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