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누구

신지에 관한 말씀을 어찌 한 편의 설교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경66권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해 경륜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령이 누군지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 한 분이신 영원하신 주 하나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전능한 이시여,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로서 행하신 당신의 위대하심을 영원히 찬양하고 경배하나이다."

2020-05-22(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7) 경륜의 영(05) 한 분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계1:4~8)
https://youtu.be/m04NDCcGxBs [혹은 https://tv.naver.com/v/13935084 ]

 

1. 들어가며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영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령을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모든 영역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그 어떤 영적인 것들도 깨달을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이 죄인인지도 잘 모르며, 왜 구원을 받아야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므로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역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성령이 누구신지 그 인격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이 누구신지 알아보는 7번째 시간으로서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우리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분의 사역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른 정의라고 말할 수 있, 성령을 "양자의 영", "성경의 영", "인치시는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사역에 따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서 성령을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6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요, 둘째는 "여호와의 영"이시다. 그리고 셋째 그분은 "아버지의 영"이요, 넷째, 그분은 "아들의 영"이며, 다섯째,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자, 여섯째, "예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이 누군지를 인격적으로 정의할 때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령은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는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영이기는 하셨으나, 그의 인격적인 명칭이 시대에 따라 약간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륜에 따라 성령을 다른 명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구약시대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오자 성령은 구약시대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렸지만,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전혀사사용되지 않은 명칭이 사용되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륜에 따라 불성령의 명칭이 달라졌음을 알고 뒤에 나오는 성령을 앞의 시대에 소급적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나오는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든지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아들이 세상에 출현하지도 않았고 대속사역을 완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은 성령의 명칭을 모든 명칭으로 다 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성령께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성령이 되셨기 때문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은 누구신가?

  그럼,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인 정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성경의 결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어떤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령을 5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명칭들이다. 다른 곳에도 나오는 성령의 명칭 한 가지는 "그 영'이라는 것이며, 나머지 네 개는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고유한 명칭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칭으로는 "보좌앞의 일곱 영들(계1:4)", "보좌 앞에 켜져 있는 일곱 등불들(계4:5)",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4:5)",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5:6)", "어린양의 일곱눈들(계5:6)"이 있다. 참고로, 구약시대에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기도 하다(슥4:10).

 

4.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이 알려주는 놀라운 비밀은 무엇인가?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은 정말 많은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는데, 그중에서도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의  비밀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성령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 영들", "일곱 등불들"이 그것이다. 왜 하나님의 영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을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으로서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숫자들은 산술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영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곱"과 "열둘"은 매우 중요한 숫자인데,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키고, "열둘"은 하늘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뿔들이 일곱이고, 어린양의 눈들이 일곱이며, 성령을 일곱 영들이자 일곱 등불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는 순전히 이 땅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다.  사도요한이 성령더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일곱 등불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께서 얼마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관심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곧 창조와 보존과 섭리에 관하여 계속해서 관여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알려준다. 

  둘째, 성령이 꼭 "어린양"이나 "여호와"와 관련지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요한이 성령을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며, 또한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데, 편지의 맨 마지막에 가서는 꼭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며(계5:6), 여호와와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슥4:10). 왜냐하면 성령은 독립적인 또 하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특별히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했다는 것은 성령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지켜보고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으로 형상화된 예수께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도 다 감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5.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인가, 하나님 자신의 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누군지에 관하여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아들의 영도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아버지의 영"이라면 그 영은 결코 "아들의 영"이 될 수 없으며, 혹 성령이 "아들의 영"이라고 한다면 그 영은 결코 "아버지의 영"이 될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영"이라고 성경이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영들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신의 영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성령은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다른 표현으로서 한 분의 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령이 경륜의 영이시라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륜적으로 볼 때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려졌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아들의 영이라고 불려졌기 때문이이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성경은 단독적으로 말씀하시며, 명령하시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행8:29,10:19,11:12,13:2,딤전4:1,계14:13,22:17). 그러므로 성령은 첫째,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일곱 등불들)"이시다. 더불어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는 하나님 자신의 또 다른 영이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면서 여호와의 영이자, 예수의 영이신 것이다. 

  

6.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영은 영이나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령을 이해하려고 할 때, 여기서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명칭들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명칭들이 있지만, 성령의 최종계시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최종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이 대한 고유한 명칭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분은 "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계1:8,4:11). 둘째로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이신 분이시다(계1:4,8,2:8,21:6, 22:13). 셋째로 그분은 "전능자"이시며(계1:8,4:8, 11:17), 넷째로, 그분은 "보좌[위]에 앉아계신 이"이시다(계4:7,5:1,7,13,6:16,7:15,21:5). 그리고 다섯째로,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이시다(계1:4,5,4:8).

  이러한 표현들 중에서 우리가 성령과 관련지어 살펴볼 명칭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라는 명칭이다. 엇필보기에 이 명칭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명칭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소아시아교회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문안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성부는 "전에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성령에게는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으며, 성자에게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이"라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해석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은 성부만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1:4,8)"가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신 이후(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곱째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 주 하나님은 이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심판주로 오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을 성부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표현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가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라고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방식으로 "전에도 계셨고(이미 계셔왔고 아직도 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성부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하고, "이제도 계시는 이"는 성령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산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인 성령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다른 표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동일한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에 세 가지 위격을 가지신 분이신 것이다.

 

7. 성령께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들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께서는 경륜적인 안배가 있다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위격을 사용학디 시작한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이후부터라는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나 예수님의 공생애시대에 성령께서는 한 번도 독립적으로 자신을 1인칭시점으로서 말씀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전부 다 3인칭시점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 사건이후 성령께서는 이제 스스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자신을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사도행전13:2의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그들이 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미 부른 채 있는 바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 '나에게'(나를 위하여) 구별하라"(행13:2). 그렇다. 여기서 성령께서는 "내가" 혹은 "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이것은 그분에게 독립적인 위격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고로 우리는 성령강림사건 이후부터는 성령에 대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분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께서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계5:6)"이자 "여호와의 일곱 눈들(슥4:10)"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명칭상으로 볼 때에도 성령께서는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 아버지의 영"이라는 표현하고 있기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8. 나오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4세의 이단이었던 아리우스(A.D.250~336)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다가 그만 예수님을 피조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니케아종교회(A.D.325)와 콘스탄티노플종교회의(A.D.381)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식으로 표현하려다가 그만 하나님을 세 분처럼 표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종교회의의 신앙고백 어디에도 "셋이 하나다"라는 조항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하나님에 대해서 표현할 때에는 세번째 위격만을 강조하다가 성령을 세번째 하나님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이야기하려다가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과 활동으로만 제한하려고 해도 아니될 것이다. 우리의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경륜적으로 당신을 나타내시고 일하셨던 것을 지켜보면서,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오, 전능하신 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찬양과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2020년 05월 2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6) 경륜의 영(04) 세번째 위격을 가진 삼위일체의 성령(행13:1~3)_2020-05-22(금)

https://youtu.be/o4RIIFeg7sg [혹은 https://tv.naver.com/v/13916875 ]

 

 

1. 성령을 신구약시대에는 어떻게 불렀나요
  구약시대에는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렀고(창1:2,출31:3,겔11:24),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준 이후부터는 "여호와의 영"이라고도 불렸습니다(삿3:10,14:6,15:14,삼상10:6,삼하23:21,사11:2). 그리고 신약시대 이후 성령은 "하나님의 영"(마3:16,12:28,빌3:3)이라는 명칭 외에도 "아버지의 영"(마10:20), "아들의 영"(갈4:6), "예수의 영"(행16:7)", "그리스도의 영"(롬8:9,벧전1:11),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1:19)"이라고도 불렸습니다. 

 

2. 성령을 "예수의 영",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성령을 "하나님의 영(혹은 여호와의 영)"이라고만 부르지 않고, "예수의 영"이나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자신의 영이라는 뜻이고, "여호와의 영"이라는 것은 여호와 자신의 영이라는 뜻인데, 이러한 성령을 다시 "아들의 영"(혹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이면서 아들(혹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이라고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와 '예수'께서 다른 분이라면 성령을 "여호와의 영"이자 동시에 "예수의 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성령에 대한 호칭사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3.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경륜상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비단 호칭만 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사람에게 오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몇몇 사람 위에 머물러계시다가(삿14:6,15:14,삼상10:6,사11:2), 성령을 받은 자가 범죄하기라도 하면 떠나가기도 하셨는데(시51:11), 오순절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거듭날 때)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성령을 받은 자가 죽기전까지는 떠나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요14;16). 그것은 구약시대에 말세에는 만민에게(모든 사람) 위에 성령을 부어줄 것이며(욜2:28~29), 성령을 사람 속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겔36:26~27). 그리고 나중에 배우겠지만 사역에 있어서도 많이 달라졌으니,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거듭나게 하시는 일을 행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4.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으로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모세시대 이후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심)께서 창조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창조사역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행하신 일을 굳이 표현을 사용하여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의해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기 전까지 항상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서 사역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예수께서 승천후 아버지께 구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보혜사이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신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께서는 이제 구약시대에 여호와처럼, 신약시대에 예수님처럼, 자신을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A.D.30년 오순절이전까지 성령께서는 항상 간접적으로 활동하셨지 단독적으로 활동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후부터 성령께서는 이제 단독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몇바나바와 사울(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행13:2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보면 그 뜻이 이렇게  더 선명해집니다.

행13:2[직역] 그런데 그들이 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미 부른 채 있는 바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나를 위하여 구별하라

 

5. 오순절이후 성령은 어떻게 불리게 되었나요?

  그러므로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사건 이후 성령께서는 한 분이지만 세번째 위격을 가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께서도 직접적으로 말씀하기 시작하셨으며, 독립적으로 위격으로서 자신을 "내가",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후 시대에 살고 있는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륜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여 구약시대에도 성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밖으로 나와 활동했다고 하는 해석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독립적으로(1인칭 시점을 사용하여) 일하시거나 말씀하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시대에 성부께서 성령과 서로 협의를 했다고 말하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2020년 05월 22일(금)

정병진목사

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5) 경륜의 영(03)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곧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행16:6~7)_2020-05-21(목)

https://youtu.be/fqNV1AuLRHg [혹은 https://tv.naver.com/v/13898504 ]

 

 

1.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어떻게 불리웠나요?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창1:2)"이라고 불리우다가, 사사시대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영(삿3:10)"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2. 성령은 어떻게 창조사역에 동참했나요?

  성령께서는 창1:2에 보니, 수면 위에 운행하심으로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3. 천지창조 때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의논하셨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천지창조 때에 성령께서 성부와 혹은 성자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으로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만해도 성령께서는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고 활동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으로서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배우겠지만 성령께서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고 활동하시게 된 것은 아들로 오셨던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부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이후부터입니다.

 

4. 천지창조는 누가 하신 것인가요?

  그렇다면, 천지만물은 누가 창조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홀호 창조하신 것입니다(사44:24). 구약성경에서는 오직 한 분이신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출20:11). 그런데 그분은 모세 때에 비로서 천지만물을 홀로 창조하셨던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출3:14~15). 그리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자나 성령과 의논하신 것이 아니라,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자가 없이 창조하셨습니다(사44:24). 그러므로 창1:26~27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의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그분 옆에 있는 천사들 곧 천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이것은 전 총신대 구약학교수이신 김정우교수님께서도 논문으로 발표하신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직 위격적인 구분이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활동하지 않으시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서 구약성경 어디에도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나 "아들의 영" 혹은 "예수의 영"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도들 중 그누구도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믿지 않았고, 오직 한 분 여호와만로만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비로소 제2위격인 아들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불리워졌고 그때부터 위격적 구분이 생겨났으며, 오순절이후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비로소 성령을 "예수의 영"(행16:7) 혹은 "아들의 영"(갈4:6)이라고 칭하였던 것입니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들]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창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 예수께서는 천지창조사역에 동참하신 성령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그런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손가락(원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눅11:20). 그러니까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 혹은 당신의 손가락으로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하늘들을 펼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영" 안에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마12:28), 그것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손가락" 안에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도 표현하신 것입니다(눅11:20). 참고로, "아들을 통하여" 혹은 "아들 안에서"의 창조사역 및 성령의 위격적 구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사48:12-13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들]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시8:3-6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들]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시102: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020년 05월 2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은 누구신가(04) 경륜의 영으로써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이신 성령(02)(요14:16~19)_2020-05-20(수)

https://youtu.be/LshjhsTEMSc [혹은 https://tv.naver.com/v/13893756 ]

 

 

1. 성령은 누구신가요?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으로서(계5:6), 그분은 구약시대부터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활동하셨습니다(사11:2,엡1:17). 그리고 그분은 경륜의 영으로서, 보혜사이신 예수님의 또다른 보혜사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요14:16,요일2:1), 그분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죽는 날까지 결코 떠나가지 아니하십니다(요14:16). 그렇지만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불리지도 않았고, 또한 사람 속에 들어가시지도 않았으며 다만 그 사람 위에 머물러 계셔서 그 사람에게 예언하게도 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지도력도 발휘하게 하시고, 꿈과 환상을 보게도 하셨습니다. 물론 성령이 임한 자가 범죄하고서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을 가차없이 떠나가시기도 하셨습니다(삼상16:14, 시51:11).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울왕의 경우입니다(삼상16:14).

 

2.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은 어떤 분인가요?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 예수께서 아버지께 구하시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영이십니다(요14:16). 그럼 성령은 누가 보내시는 것인가요? 그것은 2가지입니다. 첫째로 성령은 아버지께서 보내주시는 영이십니다(요14:26). 그분은 아버지께서 예수의 이름 안에서 보내주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분은 동시에 아들이 보내주시는 영이십니다(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요15:26)" 그러므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보내어진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아버지께로부터(에게서) 나오는 영이시기도 합니다(요15:26). 그런데 그분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오직 예수님을 증언하신다는 사실입니다(요15:25). 성령은 오셔서 자신이 누군지를 증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누구신지를 증언하시며, 아들이 이 세상에서 하셨던 말씀을 생각나게(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요14:26).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 오신 성령은 사람 속에 들어가셔서 보혜사로서 활동하시는데,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이 땅에 오신 영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영으로서,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만을 증언하는 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은 어떻게 불리게 되었나요?

  그러므로 경륜의 영으로서 오순절 이후에 이 세상에 오신 성령께서는 구약시대와는 전혀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첫째로 우선 그분은 "아버지의 영"이라고 불리어집니다(마10:20). 공생애 기간 중 예수께서는 장차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당하게 될 고난에 대해 미리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오순절 이후 제자들이 받을 영을 "아버지의 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성령은 "아들의 영"이시기도 합니다(갈4:6).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고 하심으로서 믿는 자들이 받는 영은 아들의 영이라고 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한 번도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나 "아들의 영"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 아들이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아들이 출현해야 하나님도 아버지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호칭을 "하나님의 영(창1:2)" 내지는 "여호와의 영(삿3:10)"으로만 사용했을 뿐입니다.

 

4. 성령은 아버지의 영인가요 아들의 영인가요?

  고로 오순절 이후 믿는 자들 속에 오시는 성령은 이제 "아버지의 영"이시면서 동시에 "아들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2천년전에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고(딤전3:16), 그분이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셨으니,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 그러니까 아직 아들로 출현하던 않았던 시대에는 결코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는 호칭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아들의 영"으로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령께서 구약시대에 없었던 것도 아니며, 아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이미 성령께서 이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으로서 천지창조사역의 사역에서부터 동참하셨기 때문이요(창1:2), 아들은 이미 하나님의 품 속에 아들로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5.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으로 오신 성령께서는 누구를 증언하시나요?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으로 성령께서는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증언하십니다(요15:26). 즉 성령께서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왜 아들로 오셨는지 즉 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는지를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아들이신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를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으로서 활동하신 분이셨기에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지금도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며, 오직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들으시는 것만 말씀하실 뿐이십니다(요16:13). 그러므로 오늘날 세번째 하나님으로서 성령을 알아야 한다는 신사도와 빈야드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경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판단되며, 그들의 가르침에는 성령을 위장한 귀신의 가르침이 많이 섞여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0년 05월 2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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